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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올리브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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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풍 올리브 (1971년)는 1971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일본과 대한민국에 영향을 준 태풍이다. 괌 동쪽에서 발생하여 열대 폭풍으로 발달한 후, 필리핀 부근에서 태풍으로 세력을 키웠다. 일본 규슈에 상륙하여 세력이 약화된 후 동해를 지나 대한민국에 근접했다. 올리브로 인해 일본에서는 6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제13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활동이 방해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27명의 사망자가 보고되었고, 강원도 삼척시에 390.8mm의 일최다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남부 해안 지역에 피해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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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올리브 (1971년)
기본 정보
1971년 8월 3일 올리브 태풍의 모습. 일본 규슈 섬이 북쪽에 보인다.
1971년 8월 3일 올리브 태풍, 일본 규슈 근접.
JMA 정보
최저 기압935
JTWC 정보
최대 풍속155 km/h (85 mph)
태풍 정보
종류열대
해역북서태평양
태풍 이름197119 올리브 (OLIVE)
발생일1971년 7월 30일
소멸일1971년 8월 7일
최저 기압935
1분 최대 풍속85 노트
영향
연도1971
사망자90명 (확인)
실종자7
피해액알 수 없음
영향 지역캐롤라인 제도
북마리아나 제도
류큐 열도
한국
일본
사할린섬 남부
쿠릴 열도
인명 피해69명 (일본)
27명 (대한민국)
관련 정보
태풍 시즌1971년 태평양 태풍

2. 발생 및 경로

태풍 올리브는 1971년 7월 24일 동쪽에서 발생하여 복잡한 경로를 거쳐 8월 10일 소멸하였다. 발생 초기에는 느리게 이동하며 발달하였으나, 점차 강해져 8월 3일에는 최대 풍속 155km/h의 카테고리 2등급 태풍으로 발달하여 최성기를 맞았다.

이후 동중국해 해안 근처 장파 골짜기의 영향으로 북쪽으로 이동, 8월 5일 이른 시간에 나가사키현 근처 규슈 본토에 상륙하면서 섬과의 상호 작용으로 최소 태풍으로 약화되었다.[1][2][3] 사가현을 통과하면서 급속히 열대 폭풍으로 약화된 후 정오 전에 동해를 통과했다.[2] 8월 6일 대한민국과 가장 가까이 접근한 후 북동쪽으로 굽어지기 시작했다.[2] 8월 8일 프리모르스키 지방 나홋카에 접근한 후 다음 날 초기에 온대 저기압으로 변하기 직전에 열대 저기압으로 더 약화되었다.[1][2]

올리브의 온대 저기압 잔해는 일본 홋카이도 북부와 사할린 사이의 라페루즈 해협을 통과한 후 태평양을 거쳐 8월 10일 날짜 변경선 근처에서 소멸되었다.[2]

2. 1. 발생 초기

1971년 7월 24일 06:00 (UTC)에 중국 기상청은 기상도에서 동쪽에 위치한 적도 부근의 저기압 골짜기에서 산재된 대류와 순환이 있는 지역을 감시하기 시작했다.[1] 기상청은 당시 이 교란의 기압을 1010 밀리바로 추정했다.[1] 거의 이틀 후, 기상청은 이 시스템을 약한 열대 저기압으로 격상시켰으며, 당시 교란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풍속을 35km/h로 추정했다.[1] 7월 29일 08:00 (UTC)에 합동 태풍 경보 센터는 이 교란이 이제 그들의 레이더 영상에서 감지되었으며 시스템의 이동을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2] 또한, 중국 기상청은 이 시점에 자체 추정을 바탕으로 이 시스템을 열대 폭풍으로 격상시켰다.[1] 당시, 교란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며, 대류는 시스템이 형성된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북동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었다.[1] 이 시스템은 북쪽에 위치한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으로 북동쪽으로 굽어지기 전에 서쪽으로 이동하며 천천히 통합되기 시작했다.[2] 그날 하루 동안, 순환은 정의되었지만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아있었다.[2] 상기 고기압이 강해지고 지배하게 되면서, 이 시스템은 7월 30일 이른 시간에 서쪽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2][1] 이후 이 지역에서 천천히 맴돌았으며, 위성 영상에서 조직화가 정의되었다.[2] 그날 11:00에서 12:00 (UTC) 사이에 합동 태풍 경보 센터는 이 시스템을 열대 폭풍으로 격상시키고 "올리브(Olive)"라는 이름을 붙였다.[2] 이 시스템은 레이더 영상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좋은 유출을 보였다.[2]

2. 2. 발달 과정

1971년 7월 24일 06:00 (UTC)에 중국 기상청(CMA)은 기상도에서 동쪽 적도 부근 저기압 골짜기에서 산재된 대류와 순환이 있는 지역을 감시하기 시작했다.[1] 당시 이 교란의 기압은 1010 밀리바(hPa)로 추정되었다.[1] 거의 이틀 후, 기상청은 이 시스템을 약한 열대 저기압으로 격상시켰으며, 당시 교란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풍속을 35km/h로 추정했다.[1] 7월 29일 08:00 (UTC)에 합동 태풍 경보 센터(JTWC)는 이 교란이 레이더 영상에서 감지되었으며 시스템의 이동을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2] 같은 시점에 CMA는 자체 추정을 바탕으로 이 시스템을 열대 폭풍으로 격상시켰다.[1] 당시 교란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며, 대류는 시스템이 형성된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북동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었다.[1] 이 시스템은 북쪽의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으로 북동쪽으로 굽어지기 전에 서쪽으로 이동하며 천천히 통합되기 시작했다.[2] 그날 하루 동안, 순환은 정의되었지만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아있었다.[2] 고기압이 강해지고 지배하게 되면서, 시스템은 7월 30일 이른 시간에 서쪽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2][1] 이후 이 지역에서 천천히 맴돌았으며, 위성 영상에서 조직화가 뚜렷해졌다.[2] 같은 날 11:00에서 12:00 (UTC) 사이에 JTWC는 이 시스템을 열대 폭풍으로 격상시키고 "올리브(Olive)"라는 이름을 붙였다.[2] 시스템은 레이더 영상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좋은 유출을 보였다.[2]

올리브는 그 후 서북서쪽으로 약간 이동한 후, 필리핀 근처에 위치한 또 다른 아열대 고기압의 약화로 인해 북북서쪽으로 이동했다.[2] 또한 시스템의 속도가 느려졌고, 다음날 18:00 (UTC)에 폭풍의 전진 속도가 빨라지면서 강한 열대 폭풍으로 격화되었다.[1] 또 다른 고기압이 시스템을 북서쪽으로 끌어당겼고, 올리브가 위성 이미지에서 불분명해지면서 속도가 다시 느려졌다.[1][2] 8월 1일 12:00 (UTC)에 CMA는 68노트의 추정치와 나타나는 눈을 기반으로 이 시스템을 최소 태풍으로 격상시켰지만, JTWC는 다음날 같은 시간에 시스템의 강도를 태풍 상태로 올렸다.[1][2] 그 후 시스템은 북서쪽으로 가속화되었고, 8월 3일 12:00 (UTC)에 카테고리 2 태풍으로 더 격화되었으며, 155km/h의 최대 지속 풍속과 정찰기에 의해 기록된 935mbar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최소 기압을 기록하며 곧 최고 강도에 도달했다.[2] 이후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여 야쿠시마 섬 근처를 지나 자정 전에 최고조에 달하면서 류큐 열도 북부에 영향을 미쳤다.[2]

2. 3. 최성기

태풍 올리브는 서북서쪽으로 약간 이동한 후, 필리핀 근처에 위치한 또 다른 아열대 고기압의 약화로 인해 북북서쪽으로 이동했다.[2] 속도가 느려졌다가 다음날 18:00 (UTC)에 폭풍의 전진 속도가 빨라지면서 강한 열대 폭풍으로 격화되었다.[1] 또 다른 고기압이 이 시스템을 북서쪽으로 끌어당겼고, 올리브가 위성 이미지에서 불분명해지면서 속도가 다시 느려졌다.[1][2] 8월 1일 12:00 (UTC)에 중국 기상청(CMA)은 68노트의 추정치와 나타나는 눈을 기반으로 이 시스템을 최소 태풍으로 격상시켰지만, 합동 태풍 경보 센터(JTWC)는 다음날 같은 시간에 시스템의 강도를 태풍 상태로 올렸다.[1][2] 그 후 이 시스템은 북서쪽으로 가속화되었고, 8월 3일 12:00 (UTC)에 카테고리 2 태풍으로 더 격화되었으며, 155km/h의 최대 지속 풍속과 정찰기에 의해 기록된 935mbar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최소 기압을 기록하며 최고 강도에 도달했다.[2]

2. 4. 소멸

8월 5일 이른 시간에 올리브나가사키현 근처 규슈 본토에 상륙하면서 섬과의 상호 작용으로 최소 태풍으로 약화되었다.[1][2][3] 사가현을 통과하면서 급속히 열대 폭풍으로 약화된 후 정오 전에 동해를 통과했다.[2] 8월 6일에 대한민국과 가장 가까이 접근한 후 북동쪽으로 굽어지기 시작했다.[2] 8월 8일에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나홋카에 접근한 후 다음 날 초기에 온대 저기압으로 변하기 직전에 열대 저기압으로 더 약화되었다.[1][2]

올리브의 온대 저기압 잔해는 일본홋카이도 북부와 사할린 사이를 가르는 해협인 라페루즈 해협을 통과한 후 태평양을 통과하여 8월 10일 날짜 변경선 근처에서 소멸되었다.[2]

3. 영향

태풍 올리브는 일본과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쳤다.

태풍 올리브는 대한민국에 직접 상륙하지는 않았지만, 동해 해안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쳐 삼척시에는 390.8mm(총 강수량 444.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19] 울릉도에서는 최저 기압 976.2 hPa, 순간 최대 풍속 32.0 m/s가 관측되었고, 포항시에서도 최대 풍속 19.3 m/s의 강풍이 불었다.[19] 서울특별시의 국가재난구호센터를 포함한 여러 기관 및 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태풍 올리브로 인해 27명이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19] 갑작스러운 홍수와 광범위한 산사태도 발생했다.[20]

3. 1. 일본

일본 기상청10월 4일부터 태풍 올리브의 상륙에 대비했다.[17] 규슈 지역에는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가 예상되었고,[17] 8월 5일부터 열차 및 항공기 운행이 중단되었다.[10]

올리브는 바람보다는 비가 더 많은 '강우 태풍'으로 분류되었다.[4] 일본 남부 전역에서 심각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1] 야쿠시마 섬의 야쿠시마 기상 관측소에서는 최대 풍속 80노트, 최저 기압 938.7mb를 기록했지만 피해 보고는 없었다.[2]

가고시마현 가세다시에서는 폭우로 인해 가세다강 제방이 붕괴되어 인근 주택과 상가가 침수되었다.[5] 구마모토현구마강도 범람하여 209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2,647채가 침수되었다.[6] 이치후사 댐을 포함한 현 내 댐들도 붕괴를 막기 위해 대량의 물을 방류하여 댐 호수가 범람하고 인근 가옥들이 파괴되었다.[2]

미야자키현 에비노시에는 약 151.89cm의 강수량이 기록되어 광범위한 산사태가 발생, 69명이 사망했다.[2][7][8] 산사태로 주택이 파괴되고 209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대부분은 집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2]

해상 당국에 따르면 태평양일본해에서 27척의 선박이 침몰했고, 대형 선박 2척이 좌초되었지만 선박 이름은 보고되지 않았다.[2][9][10] 규슈 전역의 77개 도로가 파괴되었고, 열차 운행, 항공 교통, 해상 운송 등 모든 운송이 중단되거나 영향을 받았다.[11][12][13] 일부 사람들에 따르면 도쿄까지 비가 내렸다고 한다.[10]

태풍 올리브로 인한 일본의 총 사망자는 69명이며,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14]

3. 1. 1. 제13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1971년 8월 2일부터 8월 10일까지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에서 제13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개최되었으나, 태풍 올리브의 영향으로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15][2] 8월 3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기존 전선의 영향이었으나,[16] 이 비로 인해 후지산 야영지에 홍수가 발생했다.[16]

이에 따라 현지 일본 보이 스카우트 관계자들은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16][17][18][10] 이 행사에는 닐 암스트롱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스카우트 대원들이 대피한 후였다.[16] 이후 보도에 따르면 스카우트 대원들은 사찰, 시청, 인근 학교, 자위대 기지 등 다양한 장소로 이동했다.[16] 아키히토 황태자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향하던 관광 버스와 관광객들로 인해 대피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 역시 태풍으로 인해 취소되었다.[16]

태풍 올리브는 10월 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시즈오카현을 강타하면서 폭우와 강풍으로 인해 일부 텐트가 파괴되고 야영지가 침수되거나 유실되었다.[16][2] 행사 기간 동안 사망자나 부상자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보이 스카우트 오브 아메리카 본부의 보고에 따르면 이로 인해 스카우트 야영지에서의 활동이 제한되었다.[16][10]

3. 2. 대한민국

태풍 올리브는 대한민국에 직접 상륙하지는 않았지만, 동해안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삼척시에는 390.8mm(총 강수량 444.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19] 강릉(289.1mm), 울진(248.0mm), 속초(176.0mm), 포항(115.7mm), 울산(115.0mm) 등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21] 울릉도에서는 최저 기압 976.2hPa, 순간 최대 풍속 32.0m/s가 관측되었고, 포항시에서도 최대 풍속 19.3m/s의 강풍이 불었다.[19]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는 태풍에 대비해 비상근무에 돌입하고 수방 대책을 마련했지만, 갑작스러운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27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20]

태풍 올리브는 대한민국에서 태풍 내습 시 관측된 최대 강수량 순위에서 9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태풍 내습시 관측된 최대 강수량 (1904년-)'''
순위태풍 번호태풍 이름일 최대강수량관측 연월일관측 장소
1위0215루사870.5mm2002/8/31강릉
2위1918미탁556.9mm2019/10/3울진
3위8118아그네스547.4mm1981/9/2장흥
4위9809예니516.4mm1998/9/30포항
5위9112글래디스439.0mm1991/8/23부산
6위0711나리420.0mm2007/9/16제주
7위0314매미410.0mm2003/9/12남해
8위7214베티407.5mm1972/8/20해남
9위7119올리브 390.8mm1971/8/5삼척
10위9907올가377.5mm1999/8/1동두천


3. 2. 1. 주요 관측값

태풍 올리브의 주요 관측값
구분관측 지점관측값 (hPa)
최저해면기압울릉도976.2
부산979.7
울산981.6
통영982.1
포항983.3[21]
구분관측 지점관측값 (m/s)
최대풍속포항19.3
울릉도17.7
여수17.5
목포16.8[21]
최대순간풍속울릉도32.0
부산27.8
여수27.8
울산26.4[21]
구분관측 지점관측값 (mm)
일최다강수량삼척390.8
강릉289.1
울진248.0
속초176.0
포항115.7
울산115.0[21]
총 강수량삼척444.0
강릉361.6
속초309.4
울진272.5
포항136.2
울산130.4[21]


참조

[1] 웹사이트 IBTrACS - International Best Track Archive for Climate Stewardship http://ibtracs.unca.[...] 2021-04-15
[2] 웹사이트 Annual Tropical Cyclone Report of 1971 https://www.metoc.na[...] 2021-04-15
[3] 웹사이트 METEOROLOGICAL RESULTS 1971 http://www.weather.g[...] 2021-04-16
[4] 웹사이트 昭和46年8月5日九州西岸に上陸した台風第19号に関する異常気象速報 -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https://dl.ndl.go.jp[...] 佐賀地方気象台 2020-05-09
[5] 웹사이트 昭和46年・台風19号 - 西日本新聞フォトライブラリー http://c.nishinippon[...] 2020-05-09
[6] 웹사이트 昭和46年8月洪水 http://www.qsr.mlit.[...] 八代河川国道事務所 2020-06-29
[7] 뉴스 78 Dead in Storm's Wake In Japan and South Korea https://www.nytimes.[...] 2021-04-16
[8] 뉴스 Typhoon Olive Hits Japan https://www.newspape[...] 2021-04-16
[9] 뉴스 Typhoon Olive Sweeps Japan https://www.newspape[...] 2021-04-16
[10] 뉴스 Typhoon Olive Wallops Japan's Western Coast https://www.newspape[...] 2021-04-16
[11] 뉴스 Typhoon Olive Sweeps Japan https://www.newspape[...] 2021-04-16
[12] 뉴스 Typhoon Olive kills 7 https://www.newspape[...] 2021-04-16
[13] 뉴스 Typhoon Olive Hits Island https://www.newspape[...] 2021-04-16
[14] 웹사이트 デジタル台風:台風197119号 (OLIVE) - 災害情報 http://agora.ex.nii.[...] 2020-05-09
[15] 뉴스 Wet Scouts Come Home https://www.newspape[...] 2021-04-16
[16] 뉴스 Floods Force Closing of Jamboree Camp https://www.newspape[...] 2021-04-16
[17] 뉴스 Cold Overcomes Boy, Scout Leader https://www.newspape[...] 2021-04-16
[18] 뉴스 Typhoon Olive Strikes Japan https://www.newspape[...] 2021-04-16
[19] 웹사이트 "[한반도 영향 태풍] 1971년 19호 태풍 올리브" https://typhoon-info[...] 2020-09-10
[20] 뉴스 Typhoon Olive Claims 78 Lives, Injures Many More https://www.newspape[...] 2021-04-17
[21] 웹인용 "[한반도 영향 태풍] 1971년 19호 태풍 올리브" https://typhoon-info[...] 2020-09-10
[22] 웹인용 デジタル台風:台風197119号 (OLIVE) - 総合情報(気圧・経路図) http://agora.ex.nii.[...]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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