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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호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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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투호놀이는 화살을 병 속에 던져 넣어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중국 당나라 때 성행하여 한국에도 전래되었다. 고려 예종 때 대중화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궁중 연회나 기로연에서 행해졌다. 학자 이황과 정약용이 권장하기도 했으며, 1000원 지폐에 등장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설날과 추석의 전통 놀이로, 술 마시기 게임으로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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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호놀이
개요
투호를 하는 중국인(왼쪽)과 베트남인(오른쪽)
투호를 하는 중국인(왼쪽)과 베트남인(오른쪽).
종류전통 중국 게임
명칭
중국어 (표준어)표기: 投壺/投壶
병음: tóuhú
웨이드-자일스: t'ou hu
일본어표기: 投壺
가나: とうこ
한국어표기: 투호 / 투호놀이
로마자 표기: tuho / tuhonori
베트남어표기: đầu hồ
한자: 投壺

2. 역사

투호는 중국에서 유래한 오래된 놀이로, 고대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11] 중국 당나라 때 성행하였으며,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사』 백제전과 『신당서』 고구려전의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18] 조선시대에는 주로 궁중의 연회나 고위 관료들의 잔치에서 여흥으로 즐겼다.[18]

2. 1. 기원과 발전

『명선종 행락도』에 묘사된 투호 장면


투호는 『춘추좌씨전』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매우 오래된 놀이이다.[11] 고대 중국의 『예기』와 『대대례기』에는 투호 편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놀이의 의례 절차, 항아리와 화살의 규격, 놀이 장소에서 항아리까지의 거리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본래 중국 당나라 때 크게 유행했던 놀이로, 한국에는 이 시기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북사』 백제전과 『신당서』 고구려전에 투호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에 이미 한반도에 들어와 행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18]

시대가 흐르면서 『예기』에 규정된 규칙 외에 여러 특수한 규칙들이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서경잡기』에 따르면 항아리에 던져 넣은 화살이 다시 밖으로 튕겨 나오는 것을 '효(驍)'라고 하여 높이 쳤다고 한다.[12] 안지추의 『안씨가훈』 잡기편에서도 '효'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13] 또한, 항아리 옆에 '이(耳)'라고 불리는 부분을 만들어, 화살이 그곳을 통과하면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도 생겨났다. 중국 북송 시대의 학자 사마광은 투호가 본래의 예법에서 벗어나 기교만을 겨루는 오락으로 변질된 것을 비판하며 『투호신격(投壺新格)』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기도 했다.[14] 하지만 사마광이 제시한 규칙 역시 당시 유행하던 규칙을 일부 수정한 것이었으며, 고대 『예기』의 규칙과는 차이가 있었다.

신윤복의 그림 〈임하투호〉(林下投壺)에 보이는 투호놀이


조선시대에는 주로 궁중의 연회나 고위 관료들의 기로연(耆老宴) 등에서 여흥으로 즐겼다.

2. 2. 한국의 투호

두 사람이 하거나 편을 나누어 청색과 홍색의 화살(살)을 병 속에 던져 넣은 후, 그 수효로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이다.

한국에서의 투호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 『수서』 동이전 백제 조에는 백제에서 행해진 여러 놀이와 악기 중 하나로 투호가 기록되어 있다.[15] 또한 『북사』 백제전과 『신당서』 고구려전에도 투호에 대한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이미 한반도에 투호가 전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18] 이후 고려 시대인 1116년 송나라에서 정식으로 들어와 예종이 이를 장려하면서 궁중 놀이로 유행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5] 예종의 후원으로 투호는 인기 있는 궁중 오락으로 자리 잡았으나, 이후 원나라의 영향 아래에서 인기가 감소하기도 했다.[5]

조선 시대에는 주로 궁중의 연회나 고관들의 기로연(耆老宴) 때 여흥으로 행해졌다.[18] 조선 왕조는 투호를 유교적 예법과 수양의 방편으로 삼아 장려하며 부활시켰다.[5] 1518년 중종은 투호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며 그 존중성과 유교적 함의를 강조했다.[5] 궁중에서의 인기는 사대부와 일반 백성에게까지 확산되는 데 기여했지만, 조선 후기 사림 세력은 이를 경박한 놀이로 여기며 비판하기도 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자 이황은 투호를 즐겼으며 제자들에게 신체 단련과 정신 집중을 위한 방법으로 권장했다.[6] 실학자 정약용 역시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투호를 긍정적으로 언급했다.[5] 이러한 중요성을 반영하여 투호는 1983년부터 2002년까지 발행된 1000 지폐 뒷면에 이황의 도산서원과 함께 그려졌으나, 2007년 발행된 새 지폐에서는 제외되었다.[6] 한편, 19세기 말 미국의 민속학자 스튜어트 큐린은 조선의 투호를 "방통이"라 불렀으며 주로 기생들이 즐기는 놀이였다고 기록하기도 했다.[15]

투호 병 모양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상징성을 담아 여성 장신구인 노리개의 장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7][8]

오늘날 투호는 주로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행해지는 전통 놀이로 명맥을 잇고 있다. 현대의 투호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간소화되어, 보통 간단한 통과 끝에 고무가 달린 화살을 사용한다. 화살의 길이는 대략 50cm에서 60cm 정도이며, 약 10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통을 향해 던진다.[9] 과거에는 투호가 술자리 놀이로도 행해졌는데, 화살을 넣지 못하면 '불승'(不承)이라 하여 벌주를 마셨고, 벌칙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반대로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모든 화살을 넣은 사람은 '현'(賢)이라고 불렀다.

2. 3. 일본의 투호

일본의 고대 사전인 『와묘류주초』 잡예류에는 "투호"에 대해 "쓰보우치・쓰보나게"라는 일본식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나라쇼소인에는 투호에 사용되었던 구리 항아리와 나무 화살 유물이 보관되어 있어, 고대 일본에 투호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과 유물에도 불구하고, 투호는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지는 못했다. 이후 에도 시대유학이 성행하면서 투호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8세기 후반에는 학자 다나카 코난이 투호를 일본식으로 변형하여 시도하기도 했으나[16], 널리 퍼지거나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의 전통 놀이인 투선흥은 투호를 바탕으로 고안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17]

3. 규칙 및 방법

화살을 든 투호, 주문거의 그림 세부 묘사. 남당 시대, 10세기.


투호의 규칙과 방법은 시대와 기록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고대 중국의 예법서인 예기에는 투호를 단순히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주인이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며 서로의 재능을 논하는 의식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3] 예기에는 진나라 이전 시대의 상세한 규칙과 방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게임 시작 전 서로 양보하는 절차나 참여자들이 지켜야 할 예절 등 정교한 의례를 강조했다.

이후 송나라 시대의 학자 사마광은 『투호신격』이라는 책을 통해 기존의 복잡한 규칙을 정리하고 새로운 점수 체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투호는 단순히 화살을 병에 던져 넣는 행위를 넘어, 시대별로 다양한 규칙과 예법을 갖춘 놀이이자 의례로 발전해왔다. 자세한 규칙은 기록된 문헌이나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예기에 기록된 전통 방식과 사마광이 정리한 방식 등이 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명절에 즐기는 민속놀이로 간소화된 형태로 행해진다.

3. 1. 전통적인 규칙 (예기)



예기에는 투호에 대해 "병(甁)은 주인이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며 재능을 논하는 의식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3] 이 책에는 진나라 이전 시대의 투호 규칙과 방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게임의 규칙과 의례는 정교하게 규정되었는데, 주최자와 손님은 게임 시작 전 세 번씩 양보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으며, 시중드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참가자는 정해진 예절을 따라야 했다.

'''도구'''[4]

예기에 규정된 투호 도구는 다음과 같다.

도구세부 설명치수
병(甁)투호에 사용되는 병. 넓은 배와 긴 목, 좁고 약간 열린 입구를 가졌으며, 목 바깥쪽에는 작은 귀 두 개가 달려 있다.배 길이: 약 12cm
목 길이: 약 16cm
전체 높이: 약 28cm
입구 지름: 약 6cm 미만
화살깃털이 없으며, 모두 둘레가 약 2cm 미만이다. 용도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뉜다.실내용: 길이 약 46cm
홀(堂)용: 길이 약 65cm
야외용: 길이 약 83cm
중간(中)득점 기록용 통-
계수(計數)득점 계산용 막대길이 약 28cm



'''진행'''

예기에 따른 투호 진행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시작 전: 주최자는 손님에게 게임 참여를 정중하게 권유하고, 손님은 예의상 두 번 거절한다. 주최자가 세 번째로 권유하면 손님은 이를 수락하고 게임에 참여한다.
  • 위치 및 투척: 주최자는 왼쪽에, 손님은 오른쪽에 선다. 각자 병으로부터 '두 개 반 화살 거리'만큼 떨어진 위치에서 화살을 던진다. 낮은 지위의 사람은 화살을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 점수 계산: 병 옆에 선 사회자(의전 담당자)가 각 화살의 득점을 계산하며, 점수 기록용 '계수' 막대는 '중앙' 통에 넣는다.
  • 첫 번째로 들어간 화살('첫 번째')은 10점을 얻는다.
  •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들어간 화살은 각각 5점을 얻는다.
  • 네 번째로 들어간 화살('위진', 偉鎮)은 20점을 얻는다.
  • 첫 화살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화살이 모두 들어간 경우('느슨한 화살')는 1점이 추가된다.
  • 화살이 병에 들어가지 못하고 빗나가면('기울어진 화살') 점수를 얻지 못한다.
  • 화살의 깃 없는 쪽(끝 부분)이 병에 들어가면('뒷면 타격') 점수를 얻지 못한다.
  • 라운드 종료 및 벌칙: 네 개의 화살을 모두 던진 후, 사회자는 총 점수를 계산하여 승자를 발표한다. 시중드는 이가 술을 따르면, 승자는 패자에게 벌주를 권하고 패자는 벌칙으로 술을 마셔야 한다.
  • 게임 종료: 총 3라운드를 진행하여 두 번의 라운드에서 승리한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 사회자가 최종 승자를 발표하면 참석자 모두 축하의 건배를 하고, 사회자가 게임 종료를 선언한다.

3. 2. 사마광의 투호신격

사마광이 저술한 『투호신격』(投壺新格)은 투호의 규칙을 새롭게 정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투호에 사용하는 항아리는 높이 1척, 입구 지름 3치이며, 양쪽에 각각 지름 1치의 '귀(耳)'라고 불리는 구멍이 두 개 있다. 사용하는 화살(箭)은 길이 2척 4치짜리 12개이며, 투호 거리는 화살 길이의 2.5배인 6척이다.

승리 조건은 두 가지이다. 12개의 화살을 모두 성공시키면 그 자리에서 즉시 승리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화살이 들어간 방식에 따라 점수를 계산하여 먼저 120점에 도달하는 쪽이 승리한다. 점수 계산 방식은 다음과 같다.

상황점수
첫 번째 화살 성공10점 (귀에 들어가면 20점)
두 번째 이후 연속 성공성공마다 5점 추가
마지막 화살 성공15점
귀(耳)에 들어감10점
효(驍, 화살이 튕겨 나가는 것)10점
기타 성공1점



사마광은 『투호신격』을 통해 기존 규칙 중 항아리 위에 화살이 걸쳐지는 경우 등에 주어지던 보너스 점수를 폐지하여 규칙을 간소화했다.

3. 3. 현대 한국의 투호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투호는 주로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즐기는 전통 놀이로 여겨진다. 현대의 투호는 과거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행해지던 복잡한 규칙 없이, 비교적 간단한 통과 고무 팁이 달린 화살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간소화되었다. 보통 50cm에서 60cm 길이의 화살을 사용하며, 약 10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통을 향해 던진다.[9]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투호는 과거 인기 있는 술 마시기 게임이기도 했다. 화살을 통에 넣지 못하면 '불승'(不承)이라 하여 벌칙으로 술을 마셔야 했고, 내기를 금지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벌칙을 대신하기도 했다. 반대로 모든 화살을 성공시킨 사람은 '현'(賢)이라고 불렸다.

19세기 말 미국의 인류학자 스튜어트 큐린은 그의 저서에서 조선의 투호를 '방통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며, 당시에는 기생들이 즐겨 하던 놀이였다고 기록했다.[15] 현재 투호는 엄격한 규칙을 갖춘 경기보다는 명절이나 행사에서 즐기는 민속놀이의 형태로 주로 행해지고 있다.

4. 문화적 의의



투호는 본래 중국 당나라 시대에 성행했던 놀이로, 『북사』 백제전과 『신당서』 고구려전에 관련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는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8] 문헌상으로는 1116년 고려 예종 때 송나라로부터 정식으로 들어와 왕의 장려로 궁중 놀이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 원나라의 영향 아래 투호의 인기는 다소 줄어들었다.[5]

조선 시대에 들어 투호는 다시 부흥기를 맞았다. 15세기 조선 왕조는 투호를 궁중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하며 유교적 예법과 수양의 도구로써 그 의미를 강조했다. 1518년 중종은 투호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 맞서 놀이의 긍정적 측면과 유교적 가치를 재확인하며 옹호하기도 했다.[5] 이러한 궁중에서의 인기는 사대부 학자들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투호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사림 계층 일부에서는 투호를 격이 낮은 놀이로 치부하기도 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호는 여러 저명한 인물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대학자 이황은 투호를 즐겨 했으며, 제자들에게는 심신 단련과 정신 집중을 위한 수단으로 권장했다.[6] 실학자 정약용 역시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투호를 유익한 놀이로 언급했다.[5]

문화적으로 투호 병은 때때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상징물로 여겨져 여성들의 장신구인 노리개의 장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7][8] 또한, 이황의 초상과 함께 투호 장면이 1983년부터 2002년까지 발행된 1000KRW 지폐 뒷면에 도안으로 사용되었으나, 2007년에 발행된 새 지폐에서는 제외되었다.[6]

오늘날 투호는 주로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행해지는 대표적인 전통 민속놀이 중 하나로 인식된다. 현대의 투호는 보통 고무 촉이 달린 50cm에서 60cm 정도 길이의 화살을 사용하여 약 10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통에 던져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9] 과거에는 투호가 술자리에서의 여흥으로도 인기가 있었는데, 화살을 제대로 넣지 못한 사람을 '불승'(不承)이라 하여 벌칙으로 술을 마시게 하거나 노래를 부르게 했다. 반면 모든 화살을 성공시킨 사람은 '현'(賢)이라고 칭찬했다.

5. 현대의 투호

(작성할 내용 없음)

6. 갤러리

한푸를 입고 투호를 하는 현대 중국인


베트남인들이 투호를 하는 모습

참조

[1] 간행물 Pitch-Pot: The Scholar's Arrow-Throwing Game http://sites.asiasoc[...] Asia Society
[2] 논문 T'ou hu — the ancient Chinese pitch‐pot game 1940
[3] 웹사이트 The Forbidden City Wine Culture Exhibition http://www.dpm.org.c[...] 2014-03-04
[4] 웹사이트 投壺禮儀 - 台北科技大學-通識教育-資料庫系統 http://chinese.ntut.[...] 2012-04-16
[5] 서적 Korea's Pastimes and Customs: A Social History https://books.google[...] Homa & Sekey Books
[6] 서적 China, Japan, Korea: Culture and Customs https://books.google[...] Ju Brown 2006-09-07
[7] 서적 Norigae: Splendor of the Korean Costume https://books.google[...]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8] 서적 Traditional Korean Costume https://books.google[...] Global Oriental
[9] 서적 Korea: Its People and Culture https://books.google[...] Hakwŏnsa
[10] 문서 『礼記』投壺
[11] 문서 『春秋左氏伝』昭公十二年伝
[12] 문서 『西京雑記』巻5
[13] 문서 『顔氏家訓』雑芸
[14] 서적 投壺新格 https://archive.org/[...]
[15] 서적 Korean games with notes on the corresponding games of China and Japan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Pennsylvania
[16] 서적 投壺指南 https://dl.ndl.go.jp[...]
[17] 서적 皇都午睡(みやこのひるね)初編 https://archive.wul.[...]
[18] 웹인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투호 http://encykorea.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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