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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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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나르는 1890년 프랑스에서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최초로 제작한 회사로, 다임러와 벤츠보다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메이커 중 하나이다. 1887년 르네 파나르, 에밀 르바소르, 에두아르 사라쟁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초기에는 다임러 엔진의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했다. 파나르는 전륜 엔진·후륜 구동 방식을 실용화하며 자동차 기술 발전에 기여했고, 1895년부터 1903년까지 자동차 경주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보수적인 기술과 고급차 생산에 집중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형차 생산으로 전환, 시트로엥에 인수되어 군용차량 전문 제조사로 변경되었다. 현재는 르노 트럭 디펜스 산하에서 군용 차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파나르 로드는 파나르가 발명한 서스펜션 링크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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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르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회사 종류제조업
슬로건(정보 없음)
위치프랑스 파리
설립일1887년
해체일2018년
설립자르네 파나르, 에밀 르바소
주요 인물(정보 없음)
산업제조업
제품자동차
계승시트로엥 (민간 차량)
르노 트럭 디펜스 (군용 차량)
자회사(정보 없음)
추가 정보(정보 없음)
추가 정보
(정보 없음)
(정보 없음)
일반 정보
산업 분야자동차 및 방위 산업
설립 연도1887년
설립자루이 프랑수아 르네 파나르, 에밀 르바소
계승 회사시트로엥, 르노 트럭
위치프랑스 파리
로고
(정보 없음)
(정보 없음)

2. 역사

파나르는 원래 '''파나르 에 레바소'''라고 불렸으며, 1887년 르네 파나르, 에밀 레바소, 그리고 벨기에 변호사 에두아르 사라쟁에 의해 자동차 제조 회사로 설립되었다.[1]

1890년에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제작했다. 본격적인 자동차 메이커로서는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 (현 다임러)보다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메이커이다. 자동차 생산 시작 당시의 사명은 '''파나르 에 르바소르''' (Panhard et Levassor)였다. 구 사명의 약칭인 "PL"은 이 회사의 많은 모델에 오랫동안 차명과 엠블럼으로 사용되었다. 1898년 메이지 시대의 일본에 수입된 최초의 자동차 중 하나로 추정되는 파나르 차의 사진이 있다.

thumb에 수입된 최초의 자동차 파나르 르바소 (1898년 촬영).]]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생산 종료 시까지 소수나마 파나르 차량이 계속 수입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이나하타 산업의 자회사인 메종 이나바타가 수입하고, 당시 시트로엥을 취급하던 일불 자동차가 판매를 담당하는 체제였다. 다만, 주요 납품처는 자동차 제조사의 연구용이었다. 1950년대 초반에 수입된 디나 X는 택시로도 사용되었지만, 당시 일본의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조기에 문제가 빈번히 발생했고, 부품 수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용 불능 상태에 놓였다고 한다.

1965년 시트로엥에 승용차 부문이 흡수된 파나르는 1967년 일반 승용차 생산을 종료하고 군용 차량 전문 제조사가 되었다.[2] 1968년부터 시트로엥 그룹 산하에서 군용 차량 개발 및 제조에 특화되었다.[2]

2005년 1월, PSA 그룹은 파나르를 프랑스의 군용 차량 제조사인 오버랜드에 매각했다.[2] 2012년 10월, 볼보 그룹의 르노 트럭이 6250만유로에 파나르 브랜드를 인수했으며,[2] 현재는 르노 트럭 디펜스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다.[2]

파나르는 50개 이상의 국가에 18,000대 이상의 군용 바퀴형 차량을 공급했으며, 10톤 미만의 다양한 전투 차량을 생산했다. 주요 차량은 다음과 같다.

차량 종류상세 설명비고
VBL기본 장갑차프랑스 육군에서 1,600대 운용, 16개국에 2,300대 판매
PVPA4 AVL프랑스 육군에서 933대 선택
EBR
PVPXL/AVXL확대된 AVL
TC 54, TC 10, TC 24, A3
푸조 P4오베르랑이라는 이름으로 생산, 9,500대 생산 (7톤 미만)
ERC 90 사게5,400대의 장갑차 (AML, ERC 90 사게이, LYNX VCR 6x6)
VBR확대된 VBL 다목적 장갑차
VAP심부 침투 차량(VBL 기반 특수 작전 차량)
VPSP4 기반 SAS 정찰 차량
파나르 CRAB


2. 1. 초기 역사 (1887년 ~ 1897년)

파나르는 원래 '''파나르 에 레바소'''라고 불렸으며, 1887년 르네 파나르, 에밀 레바소, 그리고 벨기에 변호사 에두아르 사라쟁에 의해 자동차 제조 회사로 설립되었다.[1]

1890년, 파나르 에 레바소르는 다임러 엔진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첫 번째 자동차를 판매했다. 레바소르는 고틀리프 다임러의 프랑스 내 권리를 대리했던 친구이자 변호사인 에두아르 사라진에게서 라이선스를 얻었다. 사라진이 1887년 사망한 후, 다임러는 사라진의 미망인 루이즈에게 남편의 대리 업무를 계속 맡도록 위탁했다. 파나르 에 레바소르의 라이선스는 루이즈가 확정했으며, 루이즈는 1890년에 레바소르와 결혼했다.[2] 다임러와 레바소르는 친구가 되었고 서로 개선 사항을 공유했다.

이 최초의 차량들은 많은 현대적 기준을 세웠지만, 각각은 맞춤형 디자인이었다. 체인 구동 기어 박스를 작동시키기 위해 클러치 페달을 사용했다. 또한 차량에는 전면에 장착된 라디에이터가 있었다. 1895년형 파나르 에 레바소르는 최초의 현대적인 변속기로 인정받고 있다. 1894년 파리-루앙 자동차 경주에서 알프레드 바슈론은 4kW 파나르에 스티어링 휠을 장착했는데, 이는 이 원리의 가장 초창기 사용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진다.[3][4]

1891년, 회사는 최초의 완전한 레바소르 디자인[5]인 "최첨단" 모델인 ''파나르 시스템''을 제작했다. 이 시스템은 4개의 바퀴, 전면 엔진과 후륜 구동, 그리고 조잡한 슬라이딩 기어 변속기로 구성되었으며, 3500 프랑에 판매되었다.[5] 이는 캐딜락1928년에 싱크로매시를 도입할 때까지 표준으로 유지되었다.[6] 이는 다음 세기 대부분 동안 자동차의 표준 레이아웃이 되었다. 같은 해, 파나르 에 레바소르는 다임러 엔진 라이선스를 자전거 제조업체인 아르망 푸조와 공유했고, 푸조는 자체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1895년, 1205cc ''파나르 에 레바소르'' 차량이 파리-보르도-파리 경주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했으며, 레바소르는 혼자 48시간 45분 동안 운전했다.[7] 그러나 1896 파리-마르세유-파리 경주 중, 레바소르는 개를 피하려다 사고로 치명상을 입었고, 이듬해 파리에서 사망했다. 아르튀르 크레브스는 1897년에 레바소르의 뒤를 이어 총괄 관리자가 되었고, 1916년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그는 파나르 에 레바소르 회사를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가장 크고 수익성이 높은 자동차 제조업체 중 하나로 만들었다.

1894년 파나르 르바소르 측면 단면도. 앞 차축 바로 뒤에 V형 2기통 엔진을 배치하고, 상자에 덮이지 않은 변속 기어 세트와 차동 기어, 좌우 최종 체인을 통해 뒷바퀴를 구동한다. 프론트 엔진·리어 드라이브 방식의 가솔린 자동차의 시초가 되었다.


1895년 파리-보르도 레이스에서 파나르 르바소르의 승리를 기념하는 부조. 르바소르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 조종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907년 프랑스 자동차 클럽에서 건립.

2. 2. 보수화와 고급화 (1897년 ~ 1945년)

1897년 창업자 중 한 명이자 기술 지도자였던 르바소르가 급사한 이후, 파나르의 기술과 경영은 점차 보수화되어 갔다. 르바소르의 죽음은 1896년 레이스 중 사고로 입은 후유증 때문이라고 전해진다.[8]

남겨진 르네 파나르나 경영 간부이자 레이서이기도 했던 르네 드 쿠니프 등은 오로지 대배기량화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안정적이지만 평범한 방식을 사용했다. 1903년 이후에는 다임러사의 "메르세데스"의 영향을 받은 추종적인 설계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다소 구식 설계의 대배기량차를 생산하는 고급차 메이커로 존속하게 되었다. 동사의 낡은 관습은 1906년까지 목재 프레임을 사용하고, 르노식 후차축 직접 구동인 다이렉트 드라이브가 주류가 된 후에도 1910년대 초까지 최종 감속부를 체인에 의존하는 초기 파나르 이래의 방식을 계속 사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19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도 직렬 4기통차가 주력이었고, 경쟁 메이커와 같은 직렬 6기통차의 양산에서도 뒤쳐졌다.[9]

1910년 이후에는 찰스 나이트의 특허에 의한 슬리브 밸브 방식(파나르에서는 밸브리스를 의미하는 "상 스파프" sans soupapes라는 통칭으로 불렸다)을 탑재한, 보수적인 설계의 대형 승용차를 주력 제품으로 삼아, 그 정숙성에 집착하는 형태로 오랫동안 슬리브 밸브 엔진을 주력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저효율적인 슬리브 밸브 방식에 집착하면서도 그 고성능화에는 열의를 보였고, 1925년에는 4.8리터(292 ci)의 레코드 브레이커로 평균 185.51km/h를 기록하는 등, 당시의 국제 기록을 다수 갱신했다.[10] 1913년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되어 이듬해 출시된 20CV 스포츠는 차체의 아름다움과 호화로움, 주행 시 소음의 적음, 견고한 제작, 험한 언덕길도 오를 수 있는 놀라운 파워로 인기를 끌어 프랑스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차 역시 슬리브 밸브 엔진이었고, 프론트 서스펜션에는 댐퍼를 장착했으며, 전기식 램프, 클랙슨 외에 우산꽂이까지 장비되어 있었다.[22]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파나르는 다른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와 마찬가지로 군용 트럭, V12 실린더 항공기 엔진, 총 부품, 대형 75mm 및 105mm 포탄 등 전쟁 물자 생산에 집중했다.[8]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 재임 기간(1913년~1920년) 동안 파나르 & 르바소의 18CV 및 20CV 모델은 공식 대통령 차량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격식 높은 중급에서 고급 승용차를 소량 생산해 왔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 앞 유리 모서리에 시야 확보를 위해 파노라믹 윈도를 채용한 "파노라미크"(PANORAMIQUE 1932)나, 센터 스티어링 배치와 특이한 유선형 스타일・백본 프레임에 전토션 바 스프링의 "디나미크"(DYNAMIC 1936) 등, 개성적인 설계의 모델을 잇따라 등장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급차들도 품질과 정숙성은 뛰어났지만, 1930년대에는 이미 개량의 한계에 다다라 시대에 뒤떨어진 슬리브 밸브 엔진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고,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할 수 없었다.

2. 3. 소형차 전환과 시트로엥 인수 (1945년 ~ 1967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회사는 "르바소르"를 빼고 파나르(Panhard)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다이나 X, 다이나 Z, PL 17, 24 CT 및 24 BT와 같은 경차를 생산했다. 회사는 오랫동안 알루미늄의 무게 이점을 주목해 왔으며, 이는 전후 정부의 강철 배급과 함께, 회사가 차체 및 기타 여러 부품을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대안을 추진하도록 장려했다. 따라서 다이나 X와 초기 다이나 Z 시리즈 1은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했다.

파나르 디나X 초기형


파나르 디나Z 1954년형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사회적 피폐는 많은 명문 고급차 메이커의 브랜드를 과거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중 파나르는 1946년에 소형 승용차 디나X를 발표, 4CV를 주력으로 삼은 르노와 마찬가지로 소형 대중차 메이커로의 전진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디나는 전륜구동 (FF) 승용차 설계를 선구한 천재적인 자동차 설계자 J·A·그레고와르가 전시 중부터 구상했던 알루미늄 합금을 다용하는 경량 전륜구동차 콘셉트인 "알루미늄 프랑세 그레고와르"(AFG)를 도입, 거의 충실하게 양산한 매우 독특한 자동차였다. ALPAX제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한 플랫폼에, 후에 고급차 파셀 베가를 생산하게 될 코치빌더의 파셀 메타론사에 외주 제조시킨 알루미늄 바디를 조합하여 600 - 850 cc의 공랭수평대향 2기통 엔진으로 전륜을 구동했다[23]

차급은 르노 4CV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엔진이나 서스펜션 등 많은 설계가 독특했고[24] [25], 르노나 시트로엥과 같은 대형 메이커의 대중차보다는 한 단계 위를 노린, 매우 개성적인 설계의 승용차였다. 그 고회전형 2기통 엔진이나 섀시는 DB (두츠 & 보네) 등의 스포츠카/레이싱카의 베이스가 되었고, 르망 24시에서는 연비가 좋아서 "성능 지수 상" 획득의 단골이 되었다. 파나르 자체도 섀시를 이용하여 디나 유니올이라는 2인승 오픈 모델을 생산했다.

1953년에는 제2세대 디나Z로 모델 체인지했다. 프레스 가공이 용이한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의 "듀라리녹스"가 실용화되어, 바디에 이르기까지 내재가 가능하게 된 것에 따른 것이었다[26]

디나Z의 특징은 차체 크기와 배기량의 극단적인 불균형에 있었다. 전장 4,570 mm·전폭 1,600 mm의 6인승으로, 당시 타사 2,000 cc 클래스 (르노 프레가트, 시트로엥 11CV 등)에 필적하는 큰 세단 바디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워트레인은 디나X 말기형의 최대 배기량인 851 cc·42 HP의 공랭 2기통 엔진을 유용했다.

그럼에도 실용이 된 이유는 경이적인 가벼움이었다. 바디·섀시 전체를 알루미늄 합금으로 구축하고, 당초에는 바디 장식용 몰딩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든 철저한 경량 설계로, 최초의 1954년형에서는 차량 중량 710 kg을 실현, 게다가 차체 전체에 둥근 공력 스타일을 도입함으로써, 2,000 cc급의 라이벌과 동등한 최고 속도 130 km/h를 달성하면서, 리터당 14.3 km라는 우수한 연비 성능도 갖추어, 바로 프랑스적 합리주의의 극단을 가는 엑센트릭한 모델이 되었다. 이례적인 유선형 스타일은, 1948년의 초유선형 시제품 "디나비아" (Dinavia)의 스타일을 응용한 것이다.

파나르 다이나비아 콘셉트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나 Z의 스타일은 공기역학에 중점을 둔 전반적인 미니멀리스트 디자인으로 독특하게 부드럽고 둥글게 표현되었다.

전쟁 후 한동안 파나르 기반의 모노폴 레이싱 카는 파나르로부터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DB 및 로베르 샹셀과 같은 다른 고객과 마찬가지로), 이를 활용하여 1950년, 1951년, 1952년 르망에서 "성능 지수" 클래스에서 우승했다. 1953년 파나르는 샹셀과의 보다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지만, 이는 치명적인 1955년 르망 이후 종료되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는 도이치 보네 레이서("DB 파나르")가 이 역할을 이어받아 "성능 지수"는 물론 다른 소형 엔진 레이싱 클래스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1963년부터는 샤를 드 투슈의 설계에 의해, 양산 모델의 2기통 엔진과 서스펜션을 유용하고 초공력 FRP 보디와 백본 프레임을 조합한 GT 모델 "파나르 CD"가 소량 생산되었다. 1965년까지 제조된 이 모델은 차중이 불과 580kg에 불과했고, 티글 사양의 50마력 엔진으로 160km/h, 70마력 이상으로 하이 튠된 "랠리" 모델에서는 최고 속도 180km/h에 도달하는 고성능을 보였다.

마지막 파나르 승용차는 1964년에 등장한 24 시리즈로, PL17과 컴포넌트를 공유하면서도, 분명히 시트로엥의 영향이 느껴지는 듀얼 라이트의 스마트한 보디를 갖춘 모델이었다. 특히 프론트 엔드에는 1967년 이후의 시트로엥 DS와의 유사성이 강하게 나타나 디자인의 선행 사례(파일럿 모델)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70년에 발매된 시트로엥 GS에도 24계열의 설계 노하우가 활용되었다고 한다.

신설계의 2도어 세단 (24B=벨리느), 2도어 쿠페 (24C=쿠페)는 시트로엥 아미 6과 ID19의 중간 차종으로 스페셜티 카로 자리매김했다. 고출력 버전 "티글"도 계속 존재했으며 각각 24BT·24CT로 불렸고, 4륜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되었다.

만성적인 경영 부진으로 1955년 이후 시트로엥의 산하에 들어가 일부 공장에서는 시트로엥 2CV의 생산을 수탁하여 가동률을 유지하게 된다. 디나 Z 시리즈도 1956년 모델 이후 서서히 스틸제 부품의 비율을 높여 무게가 증가했고, 1960년 이후에는 결국 800kg을 초과하는 올스틸 보디가 되어 "PL17"로 개칭되었다. 호랑이 무늬의 내장을 가진 고출력 버전 "티글"(Tigre, 호랑이의 뜻)이 추가되었으며, 8~10마력 정도의 출력 향상으로 무게 증가에 따른 성능 저하를 보완했다.

그러나 신모델 투입으로도 형세 회복에는 이르지 못했고, 1965년, 시트로엥에 승용차 부문을 흡수당했고, 1967년에는 일반용 승용차 생산을 종료하고 군용 차량 전문 메이커가 된다.

2. 4. 군용차량 전문 제조사 (1968년 ~ 현재)

1965년 시트로엥에 승용차 부문이 흡수된 파나르는 1967년 일반 승용차 생산을 종료하고 군용 차량 전문 제조사가 되었다.[2] 1968년부터 시트로엥 그룹 산하에서 군용 차량 개발 및 제조에 특화되었으며, 이 시기부터 경쟁 업체는 르노 그룹의 사비엠(SAVIEM)이었다.[2]

2005년 1월, PSA 그룹은 파나르를 프랑스의 군용 차량 제조사인 오버랜드에 매각했다.[2] 오버랜드는 파나르 인수 후, 같은 해 12월에 "파나르 제네럴 디펜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파나르" 브랜드로 군용 차량 제조를 계속했다.[2]

2012년 10월, 볼보 그룹의 르노 트럭이 6250만유로에 파나르 브랜드를 인수했으며,[2] 현재는 르노 트럭 디펜스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다.[2]

파나르는 50개 이상의 국가에 18,000대 이상의 군용 바퀴형 차량을 공급했으며, 10톤 미만의 다양한 전투 차량을 생산했다. 주요 차량은 다음과 같다.

차량 종류상세 설명비고
VBL기본 장갑차프랑스 육군에서 1,600대 운용, 16개국에 2,300대 판매
PVPA4 AVL프랑스 육군에서 933대 선택
EBR
PVPXL/AVXL확대된 AVL
TC 54, TC 10, TC 24, A3
푸조 P4오베르랑이라는 이름으로 생산, 9,500대 생산 (7톤 미만)
ERC 90 사게5,400대의 장갑차 (AML, ERC 90 사게이, LYNX VCR 6x6)
VBR확대된 VBL 다목적 장갑차
VAP심부 침투 차량(VBL 기반 특수 작전 차량)
VPSP4 기반 SAS 정찰 차량
파나르 CRAB


3. 주요 모델

파나르는 다양한 모델을 생산했는데, 주요 모델은 다음과 같다.


  • 승용차


유형생산 기간
파나르 디나 X1945–1954
파나르 디나비아1948
파나르 디나 주니어1951–1956
파나르 디나 Z1953–1959
파나르 PL 17/171959–1965
파나르 CD1962–1965
파나르 241963–1967


  • 파나르 기반 기타 차량


형식제작 기간
다이나 베리타스1949–1954
로젠가르 스칼렛1952
DB HBR 51954–1961
DB 르망1958–1964
세라-파나르1959–1961


  • 군용차


1930년대 파나르 K 50


프랑스 육군의 VBL


파나르는 1910년대부터 K4, 2.5톤 트럭 등을 생산하며 군용차량 분야에 진출했다.

모델 명칭형식출시일 (연대)
K 4트럭1910년대
2톤트럭1920년대
2.5톤트럭1910년대
K 101트럭1930년대
K 11트럭1910년대
K 113트럭1930년대
Panhard K 125|K 125프랑스어트럭1930년대
K 128트럭1930년대
K 13트럭1910년대
K 140트럭1930년대
K 155트럭1940년대
K 161버스1940년대
K 162트럭1940년대
K 172트럭1940년대
K 173버스1940년대
K 175트럭/버스1940년대
K 185트럭1950년대
K 188 (ALM VS 215)트럭1940년대
K 219 (ALM VS 237)트럭1950년대
K 224트럭1950년대
K 332트럭1950년대
K 48트럭/버스1930년대
K 50트럭1930년대
K 61트럭/버스1930년대
K 63버스1930년대
K 73트럭/버스1930년대
K 85트럭1930년대
K 91트럭1930년대
K 944트럭1950년대



파나르는 파나르 178과 같은 장갑차도 제조했으며, 1968년부터는 시트로엥 그룹 산하에서 군용 차량 개발 및 제조에 특화했다.

대표적인 군용 차량은 다음과 같다.


  • VBL
  • 파나르 VBR: VBL의 대형화(긴 차체) 버전
  • Véhicule d'Action dans la Profondeur|파나르 VAP영어: VBL을 기반으로 한 특수 부대용 정찰/초계 차량
  • 파나르 ERC: 6×6륜 구동 정찰 장갑차
  • Panhard VCR|파나르 VCR영어: ERC와 차체 구성 요소를 공유하는 6×6륜 구동 장갑 수송차
  • Petit Véhicule Protégé|파나르 PVP영어: 푸조 P4의 후계로 프랑스군에 도입된 소형 경장갑차
  • 파나르 178
  • 파나르 EBR
  • 파나르 AML
  • 파나르 M3

3. 1. 승용차

1918년 평화가 찾아온 후, 파나르는 1919년 3월에 2140cc 4기통 엔진을 사용한 10HP 파나르 Type X19를 출시하며 승용차 생산을 재개했다.[8] 석 달 뒤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모델 3종을 출시했는데, 이 모델들은 전기 장치와 여러 부분을 개선했다.[8] 1919년 10월 파리 모터쇼에서 파나르는 4기통 엔진을 탑재한 4가지 모델을 전시했다.[8]

모델명배기량 / 마력
파나르 Type X192150cc / 10 HP
파나르 Type X312275cc / 12 HP
파나르 Type X283175cc / 16 HP
파나르 Type X294850cc / 20 HP


  • 파나르 Type X31은 1920년에 12 HP 파나르 Type 25로 대체되었다.


1925년까지 파나르의 모든 자동차는 강철 슬리브 밸브를 사용하는 나이트 엔진으로 구동되었다.[9] 1910년부터 파나르 슬리브 밸브 엔진에 장착되었던 주철 슬리브보다 얇고 가벼워, 엔진이 더 높은 속도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마찰 계수를 개선했다.[9] 엔진의 고착 위험을 줄이기 위해, 1923년부터는 내부 측면에 마찰 방지 물질을 코팅하는 특허 기술을 적용했다. 이는 파나르 엔지니어가 나이트 엔진 슬리브 밸브 엔진에 적용한 여러 개선 사항 중 하나였다.[9]

1925년에는 4800cc 모델이 1시간 동안 평균 185.51km/h의 최고 속도 기록을 세웠다.

1926년 10월 파리 모터쇼에서 파나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6기통 모델인 파나르 16CV "Six"를 선보였다.[10] 이 모델은 3445cc 엔진을 장착하고 3540mm 휠베이스를 가졌으며, 베어 섀시 형태로 58,000 프랑에 판매되었다.[10] 1927년 모델에는 1480cc (10CV)에서 4845cc (20CV)까지 7개의 4기통 엔진 모델이 있었고, 가격은 31,000 프랑에서 75,000 프랑이었다 (모두 베어 섀시 형태).[10] 1921년부터 제공된 8기통 6350cc (35CV) "Huit" 모델도 전시되었으며, 베어 섀시 형태로 99,000 프랑에 판매되었다.[10]

1930년 10월 파리 모터쇼에서 파나르는 1931년 라인업을 선보였는데, 마지막 두 개의 4기통 모델은 단종되었다.[11] 대신, 1년 전에 출시된 엔진 크기에 따라 "파나르 CS"와 "파나르 DS"로 지정된 "S 시리즈" 자동차에 집중했다.[11] 당시 홍보 자료는 "S"가 "Voitures surbaissées" (언더슬렁 섀시를 가진 자동차)를 의미한다고 밝혔지만,[12] "S"는 "...souples, supérieures, stables, spacieuses, silencieuses, sans soupapes (밸브가 없는 실린더를 사용함)..."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11] 전시된 다섯 대의 파나르 중 네 대는 2.35L에서 3.5L에 이르는 6기통 엔진 자동차였다.[11] 8기통 5.1L 파나르 Type X67도 3590mm의 휠베이스와 함께 전시되었으며, 베어 섀시 형태로 85,000 프랑에 판매되었다.[11]

1936년에 처음 소개된 파나르 에 레바소르 다이내믹 시리즈는 파나르 에 레바소르의 마지막 전쟁 전 자동차였다.[13]

파나르 에 레바소르는 미터 궤간 피니스테르 철도를 포함한 철도 버스도 생산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회사는 "르바소르"를 빼고 파나르(Panhard)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파나르 다이나 X, 파나르 다이나 Z, 파나르 PL 17, 24 CT 및 24 BT와 같은 경차를 생산했다. 회사는 알루미늄의 무게 이점을 주목해 왔으며, 전후 정부의 강철 배급과 함께 차체 및 기타 부품을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것을 추진했다. 다이나 X와 초기 다이나 Z 시리즈 1은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했다. 그러나, 회사의 상속자이자 전무 이사인 장 파나르의 비용 계산은 강철에 비해 알루미늄의 추가 비용을 고려하지 못했다. 생산 결과 알루미늄 차체는 55,700프랑, 강철 차체는 15,600프랑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알루미늄의 사용은 회사를 파산 직전으로 몰아갔고, 서둘러 강철로 돌아섰다. 따라서, 후기 다이나 Z (1955년 9월 중순부터)와 후속 PL 17 차체는 강철이었다.

파나르 다이나비아 콘셉트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나 Z의 스타일은 공기역학에 중점을 둔 전반적인 디자인으로 독특하게 부드럽고 둥글게 표현되었다. 24CT는 (1963년 여름부터) 2+2 시터였으며, 24BT는 더 긴 휠베이스와 4인승 공간을 가진 동일한 모델의 변형이었다.

전쟁 후 한동안 파나르 기반의 모노폴 레이싱 카는 파나르로부터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DB 및 로베르 샹셀과 함께 1950년, 1951년, 1952년 르망 24시에서 "성능 지수" 클래스에서 우승했다. 1953년 파나르는 샹셀과의 보다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지만, 1955년 르망 참사 이후 종료되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는 도이치 보네 레이서("DB 파나르")가 이 역할을 이어받아 "성능 지수"는 물론 다른 소형 엔진 레이싱 클래스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마지막 파나르 승용차는 1967년에 제작되었다. 시트로엥을 위해 2CV 패널 트럭을 조립하고, 시트로엥에 점진적으로 소유권을 매각하여 운영 자금을 조달하고, 각각 모회사인 미슐랭(1965년 완전 통제)에 매각한 후, 1967년 가을에 민간 부문은 시트로엥에 흡수되었고, 상표는 폐지되었다. 1968년부터 파나르는 장갑차만 제작했다.

유형생산 기간
파나르 디나 X1945–1954
파나르 디나비아1948
파나르 디나 주니어1951–1956
파나르 디나 Z1953–1959
파나르 PL 17/171959–1965
파나르 CD1962–1965
파나르 241963–1967



형식제작 기간
다이나 베리타스1949–1954
로젠가르 스칼렛1952
DB HBR 51954–1961
DB 르망1958–1964
세라-파나르1959–1961


3. 2. 군용차



파나르는 1910년대부터 K4, 2.5톤 트럭 등을 생산하며 군용차량 분야에 진출했다. 20세기 초 파나르 화물 운송 차량에는 K 명명법이 표준화되었으나, 파나르는 클래스를 지정하는 5글자 시스템과 섀시 유형에 문자와 숫자를 조합하는 시스템 등 두 가지 다른 명명 옵션을 사용하기도 했다.

모델 명칭형식출시일 (연대)
K 4트럭1910년대
2톤트럭1920년대
2.5톤트럭1910년대
K 101트럭1930년대
K 11트럭1910년대
K 113트럭1930년대
Panhard K 125|K 125프랑스어트럭1930년대
K 128트럭1930년대
K 13트럭1910년대
K 140트럭1930년대
K 155트럭1940년대
K 161버스1940년대
K 162트럭1940년대
K 172트럭1940년대
K 173버스1940년대
K 175트럭/버스1940년대
K 185트럭1950년대
K 188 (ALM VS 215)트럭1940년대
K 219 (ALM VS 237)트럭1950년대
K 224트럭1950년대
K 332트럭1950년대
K 48트럭/버스1930년대
K 50트럭1930년대
K 61트럭/버스1930년대
K 63버스1930년대
K 73트럭/버스1930년대
K 85트럭1930년대
K 91트럭1930년대
K 944트럭1950년대



파나르는 파나르 178과 같은 장갑차도 제조했으며, 1968년부터는 시트로엥 그룹 산하에서 군용 차량 개발 및 제조에 특화했다. 이 시기부터 경쟁 업체는 르노 그룹의 사비엠(SAVIEM)이었다.

2005년 파나르는 오버랜드에 매각되었고, 이후 "파나르 제네럴 디펜스"로 사명을 변경한 뒤에도 "파나르" 브랜드로 군용 차량 제조를 계속했다. 2012년에는 볼보 그룹의 르노 트럭이 파나르 브랜드를 62.5억유로에 인수하여 현재는 르노 트럭 디펜스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다.

파나르는 50개 이상의 국가에 18,000대 이상의 군용 바퀴형 차량을 공급했으며, 대표적인 차량은 다음과 같다.


  • 5,400대의 장갑차: AML, ERC 90 사게이, LYNX VCR 6x6 등
  • 2,300대의 VBL: 16개국에 수출되었으며, 프랑스 육군에서 1,600대 운용
  • 933대의 A4 AVL—PVP—: 프랑스 육군이 선택
  • 9,500대의 지프와 유사한 차량: 대부분 오베르랑이라는 이름으로 생산
  • 파나르 VBL
  • 파나르 VBR: VBL의 대형화(긴 차체) 버전
  • Véhicule d'Action dans la Profondeur|파나르 VAP영어: VBL을 기반으로 한 특수 부대용 정찰/초계 차량
  • 파나르 ERC: 6×6륜 구동 정찰 장갑차
  • Panhard VCR|파나르 VCR영어: ERC와 차체 구성 요소를 공유하는 6×6륜 구동 장갑 수송차
  • Petit Véhicule Protégé|파나르 PVP영어: 푸조 P4의 후계로 프랑스군에 도입된 소형 경장갑차
  • 파나르 178
  • 파나르 EBR
  • 파나르 AML
  • 파나르 M3

4. 기술적 특징

파나르 에 르바소르는 1890년에 다임러 엔진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첫 자동차를 판매했다. 초기 차량들은 현대적 기준을 세웠지만, 맞춤형 디자인이었다. 클러치 페달로 체인 구동 기어 박스를 작동시켰고, 전면에 라디에이터가 있었다. 1895년형 모델은 최초의 현대적인 변속기로 인정받는다. 1894년 파리-루앙 자동차 경주에서 알프레드 바슈론은 4hp 파나드에 스티어링 휠을 장착했는데, 이는 이 원리의 초기 사용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진다.[3][4]

1891년, 회사는 최초의 완전한 르바소르 디자인[5]인 "파나르 시스템"을 제작했다. 이 시스템은 4개의 바퀴, 전면 엔진과 후륜 구동, 조잡한 슬라이딩 기어 변속기로 구성되었으며, 3500 프랑에 판매되었다.[5] 이는 이후 자동차의 표준 레이아웃이 되었다.

1910년부터 파나르는 미국의 찰스 예일 나이트가 특허를 낸 슬리브 밸브 기술을 라이선스 하에 사용하여 일반적인 밸브가 없는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1924년부터 1940년까지 모든 파나르 차량은 슬리브 밸브 엔진을 사용했다.

1925년까지 파나르의 모든 자동차는 강철 슬리브를 사용하는 나이트 슬리브 밸브 엔진으로 구동되었다.[9] 강철 슬리브는 1910년부터 파나르 슬리브 밸브 엔진에 장착되었던 주철 슬리브보다 얇고 가벼웠으며, 이는 엔진이 더 높은 속도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마찰 계수를 개선하는 결과를 낳았다.[9] 엔진의 잼 발생 위험을 더욱 줄이기 위해, 외부 슬리브는 1923년부터 파나르 엔지니어가 연구해온 특허 기술을 사용하여 내부 측면에 마찰 방지 물질을 코팅했다.[9]

1925년에는 4800cc 모델이 1시간 동안의 최고 속도 기록인 평균 185.51km/h를 세웠다.

파나르는 1930년 10월 파리 모터쇼에서 1931년 라인업을 선보였을 때, "파나르 CS"와 "파나르 DS"로 지정된 "S 시리즈" 자동차에 집중했다.[11]

파나르 에 르바소르의 마지막 전쟁 전 자동차는 1936년에 처음 소개된 특이한 스타일의 모노코크 다이내믹 시리즈였다.[1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회사는 경차인 다이나 X, 다이나 Z, PL 17, 24 CT 및 24 BT를 생산했다. 다이나 X와 초기 다이나 Z 시리즈 1은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했다. 후기 다이나 Z와 후속 PL 17 차체는 강철이었다.

파나르 다이나비아 콘셉트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나 Z의 스타일은 공기역학에 중점을 둔 전반적인 미니멀리스트 디자인으로 독특하게 부드럽고 둥글게 표현되었다. 24CT는 스타일리시한 2+2 시터였으며, 24BT는 더 긴 휠베이스와 4인승 공간을 가진 동일한 모델의 변형이었다.

마지막 파나르 승용차는 1967년에 제작되었다.

5. 갤러리

참조

[1] 서적 Cars: Early and Vintage, 1886-1930 Grange-Universal 1990-11
[2] 웹사이트 Louise and Edouard Sarazin http://www.daimler.c[...] 2013-11-09
[3] 웹사이트 Reinvent The Wheel – A Nonstandard Look at Standards http://www.infochach[...] infoChachkie 2011-01-04
[4] 서적 The World on Wheels - Volume I
[5] 문서 Georgano
[6] 문서 Georgano
[7] 문서 The prize would go to Koechlin's Peugeot, instead, since the Panhard et Levassor had only two seats, while the rules required four. Georgano, p.20.
[8] 간행물 Automobilia Histoire & collections
[9] 간행물 Automobilia Histoire & collections
[10] 간행물 Automobilia Histoire & collections
[11] 간행물 Automobilia Histoire & collections
[12] 문서 With an "underslung" chassis, the axles were placed directly above (rather than beneath) the chassis “floor”, so that the car's height and centre of gravity could be reduced.
[13] 간행물 La Panhard Dynamic: Sa carosserie étonne et sa conception technique réserve elle aussi des surprises Histoire & Collections 1996-11
[14] 간행물 La Voiture du Bled https://commons.wiki[...] Musée des Blindés
[15] 웹사이트 Monopole : l'Autre DB http://panhard.racin[...] Panhard Racing Team 2012-05-03
[16] 문서 Panhard: The Flat Twin Cars 1945-1967 David Beare
[17] 웹사이트 Défense : Panhard renforce Renault Trucks Défense http://www.latribune[...] La Tribune
[18] 문서 「Panhard」のフランス語での正確な発音表記は「パンアール」の方が近いが、本稿では日本で定着している表記である「パナール」を用いる。また同社の正式な旧名は「パナール・エ・ルヴァッソール」(Panhard et Levassor)であるが、日本では「[[アンパサンド|エ]]」を抜いた「パナール・ルヴァッソール」と表記されることが多いため、本稿ではこの慣例に従う。
[19] 문서 それ以前のギアセットは床下露出状態で砂塵に晒されており、消耗が激しく、[[騒音]]も酷かった。
[20] 문서 ラジエターはまだこの時点では、フィン付きのパイプを屈曲させただけの原始的設計だったが、それ以前の水冷エンジンが車体後部の冷却水タンクからの自然蒸発冷却に頼っており、水の消耗でパナール車でも100 km毎に1回は給水を要したことに比べれば、非常な進歩であった。
[21] 문서 ダイムラーの新設計による2気筒1,200 cc・5馬力「フェニックス」エンジンを搭載したエミール・ルヴァッソール操縦の2座パナール「No.5」は、パリ - ボルドー往復1,178 kmを48時間48分で走破して、このレースの1位となった。ただしレースのレギュレーションである「4座以上」の条件を満たさなかったため、正式な優勝者とはならず、ルヴァッソールも承知の上での出場であった。延べ50時間に及ぶ連続ドライブは偶発事態と言うべきもので、スタートからルヴァッソールの運転ペースがあまりに速すぎたため、途中の交替地点で歯、予定より大幅早着の深夜となってしまったのが原因である。折悪しく交替ドライバーはまだ就寝中であったため、大幅リードに勢い付いていて、後続車に差を付けたかったルヴァッソールは、結局、途中で助手だけを乗せ替えて、ほとんど休憩を取ることもなく、往復全区間を運転しきってしまった。歓呼の声に迎えられてパリにゴールしたルヴァッソールは、[[ブイヨン]]と[[ゆで卵]]を平然と平らげてから「深夜のレースは危険であるから避けた方が良い」と語ったという。当時の夜間ドライブは[[馬車]]並みの[[石油ランプ]]に頼るほか無く、灯火類の改良は以後も[[安全]]面での切実な課題であり続けた。
[22] 서적 20世紀全記録 クロニック 講談社 1987-09-21
[23] 문서 AFGコンセプトの小型車は、同時期に[[イギリス]]のケンドールや[[オーストラリア]]のハートネットといった新興企業も導入を試みたものの、量産化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24] 문서 エンジンは[[空冷エンジン|空冷]][[水平対向2気筒]]だが[[オートバイ]]並に[[シリンダーヘッド]]を一体構造としており、[[燃焼室|半球形燃焼室]]で対向する吸排気バルブが、[[バルブスプリング]]に同一の[[トーションバー]]1本を共用するという異例の設計であった。トーションバーバルブスプリングの採用は、他にはオートバイやレース用エンジンでわずかな事例がある程度である。
[25] 문서 前輪[[独立懸架]]は横置きリーフスプリングで当時としては普通の設計であったが、後輪はへの字型の鋼管[[車軸]]を片側あたりのべ4本もの横置きトーションバーで支持する複雑な設計で、[[車軸懸架|固定車軸]]でありながら、一種、[[独立懸架]]に近い機能を確保した、他に類似例のない構造であった。
[26] 문서 ディナXの車体生産が無くなって遊休設備を抱えたファセル・メタロン社は、ファセル・ヴェガ([[:fr:Facel Vega|Facel Vega]])を自社開発し、高級車市場に進出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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