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동방철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프로이센 동방철도는 1840년대 전략적, 경제적 이유로 건설이 추진된 철도 노선이다.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주도로 시작되었으나, 의회의 반대로 건설이 지연되었다. 1848년 혁명 이후 건설이 재개되어, 1851년 슈나이데뮐-브롬베르크 구간을 시작으로 단치히, 쾨니히스베르크를 거쳐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되었다. 베를린과 프로이센 각 지방을 연결하며 화물 운송에 기여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국영철도에 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오데르-나이세 선으로 인해 노선이 분할되었으며, 현재는 독일, 폴란드,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프로이센 동방철도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철도 노선 정보 | |
이름 | 프로이센 동방철도 |
원어 이름 | Preußische Ostbahn |
원어 사용 언어 | 독일어 |
시작점 | 베를린 |
종착점 | 아이드트쿠넨 (체르니셰프스코예) |
노선 번호 | 200.5 (베를린–슈트라우스베르크) 209.26 (베를린–코스트진) 345 (코스트진–필라) 426 (필라 글–트체프) 400 (트체프–말보르크) 505 (말보르크–브라니에보) |
선로 번호 | 6006 (베를린–슈트라우스베르크) 6078 (베를린–코스트진) 203 (코스트진–트체프) 9 (트체프–말보르크) 204 (말보르크–마모노보) |
노선 길이 | 724.3km |
궤간 | 표준궤 (베를린–칼리닌그라드) 1520mm 광궤 (브라니에보–키바르타이) |
전철화 | 베를린 S반: 750V 직류 트체프–말보르크: 3kV 직류 베를린 본선: 15kV/16.7Hz 교류 가공선 |
최고 속도 | 100km/h (최대) |
소유주 | DB 네츠 (독일) PKP 폴스키에 리니에 코레이오베 (폴란드) 러시아 철도 (러시아) |
운영자 | S-반 베를린 니더바르니머 아이젠반 폴레기오 TLK 칼리닌그라드 철도 (RZhD) |
위치 | 프로이센 왕국 |
이미지 | |
![]() | |
역사 | |
개업 | 1851년 |
폐지 | 해당사항 없음 |
기타 | |
노선 거리 (총) | 2210 km |
2. 역사
프로이센 동방철도(Preußische Ostbahndeu)는 과거 독일 제국의 수도 베를린에서 당시 러시아 제국과의 국경이었던 아이트쿠넨(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 체르니셰프스코예)까지 이어졌던 총 길이 742.3km의 주요 철도 노선이다. 19세기 중반 프로이센의 동부 지역 개발과 군사적 목적을 위해 건설되었으며, 동서 교통의 중요한 축 역할을 수행했다.
1840년대부터 프로이센 군부는 전략적 이유로 러시아 국경과의 철도 연결을 주장했으며, 낙후된 동프로이센과 포메라니아 지역 개발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민간 투자가 부진하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국왕이 1845년 직접 건설 준비를 지시했으나, 지방 의회의 반대로 잠시 중단되었다. 1848년 혁명 이후 아우구스트 폰 데어 하이데 상공부 장관의 주도로 1849년 건설 법안이 통과되면서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첫 구간인 크로이츠(현 크시시비엘코폴스키)-슈나이데뮐(현 피와)-브롬베르크(현 비드고슈치) 구간은 1851년에 개통되었다. 이후 노선은 서쪽으로는 베를린까지, 동쪽으로는 단치히(현 그단스크), 마리엔부르크(현 말보르크), 엘빙(현 엘블롱크), 쾨니히스베르크(현 칼리닌그라드)를 거쳐 1860년 러시아 국경 지대인 아이트쿠넨까지 연장되었다. 베를린과의 더 짧은 직통 노선은 1867년에 완성되었고, 브롬베르크를 우회하는 단축 노선 건설 등을 통해 1871년에는 본선 전 구간이 효율적으로 연결되었다. 노선 대부분은 복선으로 건설되었다.
프로이센 동방철도는 완공 후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화물 운송량을 기록하며 동부 지역의 농산물 등을 베를린 등지로 운송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오데르 강이나 비스와 강의 수운이 어려울 때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철도 건설 자체도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고, 기관차 및 차량 제작 공장이 들어서는 등 연관 산업 발전을 이끌며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파리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Nord Express와 같은 국제 열차가 운행되는 등 유럽의 주요 간선 철도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폴란드 회랑이 생기면서 동방철도는 독일 본토와 월경지가 된 동프로이센을 잇는 중요한 통과 노선이 되었으나, 이는 정치적 긴장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1월 운행이 중단되었으며, 전후 국경 변경에 따라 현재는 독일, 폴란드, 러시아 3개국의 철도 회사가 각각 분할하여 운영하고 있다.
2. 1. 건설 배경 및 초기 역사 (1840-1849)

1840년대 초반부터 프로이센 군부는 전략적인 이유로 러시아 제국과의 국경 지대에 철도 연결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한, 이 철도는 초기부터 동프로이센과 포메라니아와 같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민간 부문에서는 철도 건설에 대한 관심이 저조했다. 이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국왕은 1845년에 직접 동부 철도 건설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동프로이센 지방 의회(Provinziallandtagdeu) 의원들이 국왕의 사업 자금 대출 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중단되었다. 이러한 반대 입장은 1847년 4월에 소집된 프로이센 최초의 통합 의회(Vereinigter Landtagdeu)에서도 재확인되었는데, 의원들은 정부의 동부 철도 사업 차관 승인에 대해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인 반대표를 던졌다.
상황은 1848년 독일 혁명 이후 변화를 맞이했다. 혁명 이후 은행가 출신의 아우구스트 폰 데어 하이데가 프로이센 상공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철도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되면서 사업 추진에 진전이 생겼다. 1849년 8월, 폰 데어 하이데 장관은 동부 철도 건설에 관한 법안 초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이 법안은 같은 해 12월 7일에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법안 통과에 앞서, 1849년 11월 5일에는 브롬베르크(현재의 비드고슈치)에 동부 철도의 건설 및 운영을 담당할 왕립 동부 철도국( Königliche Direktion der Ostbahndeu )이 설립되었다. 폰 데어 하이데 장관은 이후 "철도 기금"을 활용하여 동부 철도 건설 자금을 조달하고 사업을 재개했다.
2. 2. 본선 건설 (1849-1882)

1840년대부터 프로이센 군부는 러시아 제국과의 국경 지대에 철도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민간의 관심은 저조했다. 이에 1845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국왕이 직접 건설을 지시했고, 1848년 혁명 이후인 1849년에 최종적으로 건설이 결정되었다. 같은 해 비드고슈치(브롬베르크)에 동방 철도의 철도 부서(Eisenbahn-Direktion)가 설립되었으며, 1840년대부터 노선 계획에 참여했던 Edward Wiebe가 1849년부터 기술 관리를 담당했고 1853년에는 해당 부서의 이사였다.[2] Albert von Maybach는 1863년부터 1867년까지 그의 뒤를 이어 이사직을 맡았는데, 그는 이전에 상 슐레지엔 철도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동방 철도의 첫 구간 건설은 슈타르가르트-포즈난 철도 노선 중간의 크시시비엘코폴스키(크로이츠) 분기점에서 시작되었다. 크로이츠에서 피와(슈나이데뮐)를 거쳐 비드고슈치(브롬베르크)까지 이어지는 145km 구간이 1851년 7월 27일에 개통되었다. 이어서 체프(디르샤우)를 경유하여 그단스크(단치히)까지 이어지는 161km 연장 구간이 1852년 8월 6일에 완공되었다.
동쪽으로의 건설은 계속되어, 말보르크(마리엔부르크)에서 엘블롱크(엘빙)을 거쳐 브라니에보(브라운스베르크)까지의 83.75km 구간이 1852년 10월 19일에 개통되었고, 1853년 8월 2일에는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까지 62km가 더 연장되었다. 그러나 디르샤우와 마리엔부르크 사이는 비스툴라강과 노가트강으로 단절되어 있었는데, 1857년 9월 비스툴라강 철교와 10월 12일 노가트강 철교가 완공되면서 마침내 18km 길이의 디르샤우-마리엔부르크 구간이 연결되었다.
한편, 베를린과의 연결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었다. 185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코스트신나트오드롱(퀴스트린)까지의 29km 직선 노선과, 퀴스트린에서 고주프비엘코폴스키(란츠베르크 안 데어 바르테)를 경유하여 크로이츠까지 이어지는 105km 노선이 개통되었다. 이를 통해 베를린과 동방 철도는 니더슐레지엔-마르키셰 철도(NME)를 통해 더 짧은 경로로 연결될 수 있었다. 프로이센 국가는 이미 1850년 NME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1852년에 완전히 국유화하여 프로이센 국영 철도에 편입시킨 상태였다. 베를린-퀴스트린 간 직통 노선은 1866년 10월 1일 퀴스트린-구소(Gusow) 구간(18km) 개통, 1867년 10월 1일 구소-슈트라우스베르크 경유-베를린 동역(당시 명칭) 구간(64km) 개통으로 더욱 단축되었다.[5]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동쪽으로 노선은 계속 확장되어, 1860년 6월 6일에는 체르냐홉스크(인스터부르크)까지(구세프(굼빈넨), 트라케넨, 네스테로프(슈탈루푀넨) 경유), 같은 해 8월 15일에는 국경 직전의 체르니솁스코예(아이트쿠넨)까지 총 153km 구간이 연장 개통되었다. 국경역은 아이트쿠넨에 설치되었고, 러시아 제국 측 국경역은 키바르타이(독일어: Wirballen, 리투아니아어: Virbalis, 러시아어: Verzhbolovo)에 마련되어 여객 환승 및 표준궤와 광궤 간 화물 환적이 이루어졌다.
1871년에는 비드고슈치(브롬베르크)를 우회하는 34km 더 짧은 경로인 피와(슈나이데뮐)-호이니체(코니츠)-체프(디르샤우) 노선이 건설되어 본선이 더 효율적으로 연결되었다. 이 구간 완공 후, 이미 복선화되어 있던 베를린-퀴스트린 구간에 이어 퀴스트린 동쪽 구간의 복선화 공사가 시작되었다.
1882년에는 베를린의 새로운 종착역으로 슐레지엔역(Schlesischer Bahnhof)이 현재의 위치에 개통되었고, 기존의 동역(Alter Ostbahnhof)은 폐쇄되었다.
2. 3. 프로이센에 미친 영향
프로이센 동방 철도는 완공 이후 베를린과 프로이센의 여러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철도를 통한 화물 운송량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으며, 특히 가축, 곡물, 채소 등 농산물 운송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 주요 운송로였던 오데르 강, 비스와 강, 바르타 강 등은 잦은 수위 저하나 겨울철 결빙으로 운송이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이로 인해 동방 철도의 화물 운송량이 주기적으로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동방 철도 건설 자체가 프로이센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 철도 건설은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1851년 6월 건설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약 12,000명의 노동자가 철로 건설 현장에 고용되었다.
철도 운영을 위해 브롬베르크(현 비드고슈치)에 동방 철도의 왕립 철도 부서가 설립되었으며, 산하에 베를린, 슈나이데뮐(현 피와), 스톨프, 단치히(현 그단스크), 쾨니히스베르크(현 칼리닌그라드), 알렌슈타인, 토른, 브롬베르크, 슈테틴(현 슈체친), 포젠(현 포즈난) 등 10곳에 운영 사무소를 두었다. 1880년 기준으로 동방 철도는 상당한 규모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종류 | 수량 |
---|---|
여객 및 급행 기관차 | 265대 |
화물 기관차 | 320대 |
탱크 기관차 | 93대 |
또한 동방 철도는 지역 관련 산업의 발전을 촉진했다. 1855년 쾨니히스베르크의 'Union-Gießerei'(주조 공장)가 기관차 생산을 시작했고, 1860년에는 엘빙(현 엘블롱크)에 위치한 페르디난트 시쇼의 시쇼-베르케 공장도 기관차 제작에 뛰어들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농업 장비 제조업체였던 L. 슈타인푸르트는 화물차와 여객 열차를 생산하며 철도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1895년에는 프로이센 국영 철도 시스템이 재편되면서 브롬베르크, 단치히, 쾨니히스베르크, 포젠에 독립적인 철도 부서가 추가로 설립되었다.
동방 철도는 당시 유럽의 주요 장거리 노선이자 동서 교통의 핵심 축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황금 시대"에는 파리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연결하던 Nord Express를 비롯한 여러 국제 열차가 이 노선을 경유했다. 주요 철도 및 지선 개발이 계속되면서 1895년에는 노선 총 길이가 4833km에 달했다.[3] 이 시기 베를린에서는 동부 독일 지역으로 매일 장거리 화물 열차 7편과 장거리 여객 열차 15편이 운행되었으며, 1892년부터는 D-열차(D-Züge, 장거리 급행열차)도 운행되기 시작했다.
2. 4. 주요 노선 (1860-1945)
1860년 6월 6일에는 쾨니히스베르크(현: 칼리닌그라드)에서 굼빈넨(현: 구세프), 트라케넨, 슈탈루푀넨(현: 네스테로프)을 거쳐 인스터부르크(현: 체르냐호프스크)까지 노선이 연장되었고, 같은 해 8월 15일에는 아이트쿠넨(현: 체르니셰프스코예)까지 총 153km 구간이 개통되어 러시아 제국 국경에 도달했다. 국경역에서는 환적과 환승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리투아니아의 비르발리스(독일어: Wirballen, 러시아어: Verzhbolovo, 폴란드어: Wierzbałowo, 현: 키바르타이) 역이 러시아 측 국경역 역할을 했다. 이후 표준궤에서 광궤로 열차의 궤간을 변경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베를린과의 연결은 1866년 10월 1일 퀴스트린에서 구소(Gusow)까지 18km 노선이 개통되고, 이듬해 1867년 10월 1일에는 슈트라우스베르크를 경유하여 베를린 동역(Berlin Ostbahnhof)까지 마지막 64km 구간이 개통되면서 더욱 단축되었다. 이로써 베를린과 쾨니히스베르크를 잇는 더 짧은 직선 노선이 완성되었다.[5]
1871년에는 브롬베르크(현: 비드고슈치)를 우회하는, 34km 더 짧은 슈나이데뮐(현: 피와)-코니츠(현: 호이니체)-디르샤우(현: 트체프) 노선이 건설되어 본선이 완성되었다. 이 구간들의 완공 후, 이미 복선화되어 있던 베를린-퀴스트린 구간 외에 퀴스트린 동쪽 구간의 복선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1882년에는 슐레지엔역(Schlesischer Bahnhof, 현재의 베를린 동역)이 베를린의 새로운 종착역으로 개통되었고, 옛 동역은 폐쇄되었다.
프로이센 동방철도는 유럽의 주요 장거리 노선이자 동서를 잇는 중요한 간선 철도 중 하나였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파리-상트페테르부르크를 운행하던 북급행(Nord Express)과 같은 국제 열차도 이 노선을 경유하는 등 황금기를 누렸다. 1895년 기준으로 하루 7왕복의 장거리 화물열차와 15왕복의 장거리 여객열차가 운행되었으며, 1892년부터는 장거리 급행열차(D-Züge) 운행도 시작되었다.
2. 5. 20세기 초 (1895-1918)
1895년 프로이센 국영 철도의 재편에 따라 브롬베르크, 단치히, 쾨니히스베르크, 포젠에 추가적인 독립 철도 부서가 설립되었다.동방 철도는 당시 유럽의 주요 장거리 철도 노선 중 하나였으며, 동서 교통의 주요 축으로 기능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황금 시대"에는 노르트 익스프레스(Nord Express)를 포함한 여러 국제 열차가 이 노선을 운행했다.
주요 철도 및 지선의 개발로 1895년에는 노선 거리가 4833km까지 확장되었다.[3] 이 시기 베를린에서는 동부 독일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화물 열차가 매일 7편, 동프로이센으로 향하는 장거리 여객 열차가 매일 15편 운행되었다. 또한 1892년부터는 장거리 급행 열차인 'D-열차'(D-Züge|데추게de)가 동방 철도에서 운행되기 시작했다.
2. 6.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18-1945)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동방 철도를 포함한 프로이센 주립 철도는 다른 독일 주립 철도와 함께 새로 창설된 독일국영철도에 통합되었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폴란드 회랑이 조성되면서 자유도시 단치히와 동프로이센이 독일 본토와 분리되었고, 동프로이센은 월경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동방 철도 노선은 동프로이센과 독일 본토를 잇는 주요 통과 노선, 즉 회랑 열차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단치히 남쪽 디르샤우 근처 비스툴라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전간기 동안 나치 독일은 이러한 철도 이용에 대한 분쟁을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 중 하나로 선전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한편, 1905년부터 1909년까지 뮌스터발데(폴란드어: Opaleniu의 Most) 근처 비스툴라 강에 건설되었던 1000m가 넘는[4] 강철 다리는 폴란드가 마리엔베르더의 동프로이센 도시로 가는 다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자 1927년부터 1929년 사이에 해체되었다.
1939년 여름 시간표에 따르면 베를린과 쾨니히스베르크 사이에는 4쌍의 특급 열차, 12쌍의 D열차, 그리고 1쌍의 장거리 통과 열차가 운행되었다. 이 장거리 통과 열차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베를린 슐레지엔역까지의 590km 노선을 6시간 36분 만에 주파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1월 22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가 운행된 것을 끝으로 이 노선에서의 연속적인 철도 운행은 중단되었다.
3. 현재 상황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면서 오데르-나이세 선을 따라 국경이 변경되었고, 이에 따라 과거 프로이센 동방철도 노선은 여러 국가로 분할되었다. 독일 영토에 남은 구간은 베를린에서 퀴스트린 인근 오데르 강까지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현재 폴란드 또는 러시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동방철도의 각 구간은 독일, 폴란드, 러시아의 철도 회사가 각각 운영하고 있으며, 총 6개의 노선으로 나뉜다.
- 독일: 베를린 - 코스트진 선
- 폴란드: 코스트진 - 토체프 선, 토체프 - 말보르크 구간, 말보르크 - 브라니에보 선
- 러시아: 마모노보 - 칼리닌그라드 선, 칼리닌그라드 - 체르니셰프스코예 선
전쟁 이후 노선의 중요성은 크게 줄어들었으며, 독일 구간을 포함하여 폴란드 및 러시아 영토가 된 구간 대부분은 단선 지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 러시아 제국과의 국경역으로 중요했던 체르니셰프스코예(과거 아이트쿠넨) 등 일부 역은 그 기능을 상실하거나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다.
국제 장거리 열차 운행도 크게 줄어, 2009년까지 운행했던 베를린-바르샤바 간 야간열차 D-448/449("Stanislaw Moniuszko")가 피와까지 이 노선을 이용한 것이 최근의 유일한 사례였다. 이 열차에는 그디니아, 칼리닌그라드, 크라쿠프 방면 연결 객차도 운행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중단되었다.
독일 재통일 이후 1991년부터는 과거 노선을 따라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동방철도"(Ostbahn|오스트반deu)라는 명칭이 다시 사용되기도 한다.
3. 1. 독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오데르-나이세 선을 따라 국경이 변경되면서, 과거 프로이센 동방철도 노선 중 현재 독일에 남은 구간은 베를린에서 퀴스트린 인근 오데르 강까지의 구간뿐이다. 이 구간은 현재 폴란드나 러시아 영토에 있는 다른 구간들처럼 대부분 단선 지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 중요했던 국제역인 아이트쿠넨 등 일부 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그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다.동방철도를 경유하는 유일한 국제 장거리 열차였던 베를린-리히텐베르크역과 바르샤바를 잇는 D-448/449 야간 열차("Stanislaw Moniuszko")는 2009년까지 피와 구워나까지만 운행했으며, 그디니아, 칼리닌그라드, 크라쿠프 방면 연결 객차도 운행되었으나 현재는 운행하지 않는다.
현재 독일 국경 내의 베를린-퀴스트린-키에츠 구간은 주로 단선 비전철 간선으로 운영된다. 이 노선은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운송 연합에 속해 있으며, 2006년 12월 10일부터 니더바르니머 철도가 봄바디어 탈렌트 디젤 동차를 투입하여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이 구간은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전쟁 배상의 일환으로 단선화되었으며, 이후 트레브니츠-제에로-구조우 구간과 퀴스트린-키츠-폴란드 국경 구간만 복선으로 복구되었다. 노선은 전철화되지 않았다.
2006년 12월 22일에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노선 일부(75.0km 지점 ~ 80.7km 지점)의 최고 속도가 시속 120km/h로 복구되었지만, 실제 운행 시간 단축이나 시간표 변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향후 동방철도 개선의 초기 단계로 평가받는다.
베를린 동역에서 슈트라우스베르크역까지의 구간은 베를린 S반 5호선이 병행 운행하고 있다.[6][7]
3. 2. 폴란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데르-나이세 선을 기준으로 국경이 변경되면서 프로이센 동방철도의 대부분 구간은 폴란드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폴란드 구간의 선로 상태는 다음과 같다.- 코스트르진 - 피와 구간: 고주프비엘코폴스키역 동쪽 출구의 짧은 구간을 제외하고 복선으로 운영된다.
- 피와 - 구토비에츠 구간: 단선으로 운영된다.
- 구토비에츠 - 보가체보 구간: 복선으로 운영되며, 한때 단선으로 축소되었으나 현재 재복선화 공사가 진행 중이다.
- 보가체보 - 브라니에보 (러시아 국경) 구간: 단선으로 운영된다.
엘블롱크에서 칼리닌그라드까지는 표준궤 선로 옆에 광궤가 함께 부설되어 있다. 그러나 엘블롱크와 보가체보 사이의 광궤는 철거되었으며, 므워나리(Młynary)에 남아있는 광궤 선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흐루시치엘(Chruściel)과 브라니에보 사이의 광궤는 자갈 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체프에서 보가체보까지의 구간은 전철화되어 전기 열차가 운행된다. 하지만 이 노선은 인구가 희박한 지역을 지나고 주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교통량이 적은 편이다.
폴란드 구간의 노선 번호는 다음과 같다.
3. 3.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리투아니아의 키바르타이로 이어지는 구간은 구 프로이센 동방철도 노선 중 유일하게 중요한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으로, 칼리닌그라드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통과 노선 역할을 한다. 이 노선은 칼리닌그라드 철도에 속하며, 러시아 광궤로 개축되었다.과거 리투아니아와의 국경역이었던 체르니셰프스코예 역은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되고 국경 통제가 폐지되면서 해체되었다. 현재 국경 관리역은 네스테로프 역이다. 러시아 철도는 네스테로프 역의 용량 부족 문제 때문에 체르니셰프스코예에 국경역을 다시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마모노보(과거 하일리겐바일)에서 칼리닌그라드 인근까지의 구간에는 러시아 광궤 주 노선과 함께 과거 사용되었던 표준궤 노선이 병설되어 있다. 광궤 선로는 서쪽에서 칼리닌그라드 남역(구 쾨니히스베르크 중앙역)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경로를 따르는 반면, 표준궤 선로는 남쪽으로 우회하여 동쪽에서 역에 도착한다.

4. 지선
1846년에 설립된 사설 슈타르가르트-포젠 철도 회사(Stargard-Posener Eisenbahn-Gesellschaft, SPE)는 당시 프로이센의 주요 도시였던 슈테틴과 포젠을 연결하는 170km 길이의 단선 철도를 건설했다. 이 노선은 크로이츠 역에서 동방 철도의 간선과 교차하며 중요한 연결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회사의 초기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프로이센 정부는 공공 교통망 확충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1851년에 이 회사를 인수하여 브롬베르크의 동방 철도 왕립 철도 부서 산하에 두었다. 1857년에는 잠시 국영 오버슐레지엔 철도(Oberschlesischen Eisenbahn)가 관리하기도 했으며, 1883년 1월 1일에 정식으로 국유화되었다. 다만, 회사 이름은 1886년 7월까지 유지되었다.
동방 철도의 또 다른 중요한 지선으로는 1871년부터 1873년 사이에 건설된 토룬-체르냐홉스크 철도가 있다. 이 노선은 1861년 토른이 브롬베르크와 철도로 연결된 이후 건설되었으며, 토른과 인스터부르크를 잇는 290km 길이의 노선으로 동프로이센 지역의 교통망 확충에 기여했다.
이 외에도 동방 철도 시스템의 확장을 위해 여러 지선들이 건설되었다. 주요 지선들은 다음과 같다.
노선 | 개통 연도 | 연결 도시/구간 | 비고 |
---|---|---|---|
단치히 – 노이파르바서 | 1867 | 단치히 – 노이파르바서 | |
프레데르스도르프 – 뤼더스도르프 | 1872 | 프레데르스도르프 – 뤼더스도르프 | |
노이슈테틴 – 방게린 | 1877 | 노이슈테틴 – 방게린 | 포메른 중앙 철도 노선 |
노이슈테틴 – 코니츠 | 1878 | 노이슈테틴 – 코니츠 | 포메른 중앙 철도 노선 |
노이슈테틴 – 벨가르트 | 1878 | 노이슈테틴 – 벨가르트 | |
노이슈테틴 – 촐브뤼크 – 뤼겐발데/스톨프뮌데 | 1878 | 노이슈테틴 – 촐브뤼크 (포메른) – 뤼겐발데 / 스톨프뮌데 | |
슈나이데뮐 – 포젠 | 1879 | 슈나이데뮐 – 포젠 | |
슈나이데뮐 – 노이슈테틴 | 1879 | 슈나이데뮐 – 노이슈테틴 | |
라스코비츠 – 그라우덴츠 – 야블로노보 | 1878/79 | 라스코비츠 – 그라우덴츠 – 야블로노보 | 브롬베르크-쾨니히스베르크 및 토른-인스터부르크 철도 연결 |
인스터부르크 – 골다프 – 리크 | 1878/79 | 인스터부르크 – 골다프 – 리크 |
5. 베를린 교외선
동쪽 방면 교통은 주로 장거리 노선에 집중되었으나, 베를린 시내 구간에서는 노선 개선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1871년 동쪽 구간이 개통된 베를린 링반과 연결되었는데, 니더슐레지엔-마르키셰 철도는 프랑크푸르트 (오데르)에서 오는 노선과, 동방철도는 슈트랄라우 룸멜스부르크역 근처 평면 교차로에서 연결되었다. 1888년 5월 1일부터는 슐레지엔 역을 통해 베를린 슈타트반을 지나 베를린 중심부와 서쪽으로 열차 운행이 가능해졌다. 얼마 후, 통근 열차가 장거리 열차와 독립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링반 북쪽 절반에 또 다른 선로 쌍이 추가되었다.
니더슐레지엔-마르키셰 철도와 동방철도의 교차 지점에서 장거리 선로와 통근 선로가 얽히면서 교통 체증이 증가했다. 링반과의 교차 지점은 공간이 부족하여, 룸멜스부르크 차량기지에서 2km 떨어진 프랑크푸르트(오데르) 방면 본선에 새로운 입체 교차로가 건설되었다. 거기에서 카울스도르프 바로 서쪽에 있는 본선과 연결하기 위해 북동쪽으로 노선이 건설되었으며, 이 노선은 VnK 노선으로 알려졌다. "Vn"은 ''Verbindung nach''(~로 연결) 또는 ''von und nach''(~에서 ~로)를 의미했을 수 있으며, K는 카울스도르프 또는 퀴스트린을 의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노선의 교통을 위해 1901년에 카울스도르프역에 추가 플랫폼이 개설되었으며, 기존 플랫폼은 링반으로 가는 통근 노선에 대한 원래 선로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이 서쪽에는 슈타트반 통근 선로와의 연결이 있었다. 1903년, 룸멜스부르크에서 장거리 선로의 교차점과 슈타트반 시작 지점 사이에 프랑크푸르트(오데르) 선로 옆에 별도의 통근 선로 쌍이 놓였다. 이로 인해 슈타트반 선로와 슐레지엔 역으로의 연결은 입체 교차로로 분리되었다.
1903년에는 링반과 슈타트반 및 슈트랄라우 룸멜스부르크역의 교차로가 완전히 재건되었다. 동서 노선과 링반은 각각 통근 열차를 위한 플랫폼을 갖게 되었다. 이 개발로 슈트랄라우-룸멜스부르크역은 베를린에서 가장 큰 역 중 하나가 되었다. 1933년에 역 이름이 오스트크로이츠로 변경되었다.
1920년대 중반, 베를린 통근 노선에서 광범위한 전철화가 시작되었다. 동방철도의 전철화는 1928년 11월 6일에 완료되었다. 증기 기관차와 전기 열차의 혼합 운행은 1929년 1월까지 계속되었다. 1930년 12월 15일, 통근 열차는 마르스도르프역까지 베를린 S반 서비스로 지정되었다. 카울스도르프역의 장거리 플랫폼은 제거되었다.
나치 정권의 도시 계획은 동방철도의 대대적인 개량을 구상했다. 열차는 노선 남쪽의 슈트라우스베르크 또는 뤼더스도르프까지 연장될 예정이었고, 또 다른 장거리 선로 쌍은 마르스도르프의 베를린 시 경계까지 건설될 예정이었다. 동방철도는 노선의 방향을 기준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노선이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에 대한 작업이 계속되었다. 1944년, 주로 통근 노선인 슈트라우스베르크까지의 단선 노선이 운행을 시작했지만, 서비스는 계속 증기 기관차로 운행되었다. 1947~1948년에 4단계로 전기 운행이 시작되었다. S반 노선은 나중에 새로 건설된 지선으로 슈트라우스베르크 노르트역까지 연장되었다.
1989년, U반 노선 E (현재 U 5)는 VnK 노선을 통해 부탈역까지 연장되었다. 이곳은 S반과 U반 서비스를 같은 플랫폼에서 환승할 수 있는 베를린의 유일한 역이다. 1992년, 비르켄슈타인역이 마르스도르프와 호페가르텐 사이에 개통되었다. 동시에 이 구간에 두 번째 S반 선로가 운행을 시작했다.
참조
[1]
서적
Eisenbahnatlas Deutschland (German railway atlas)
Schweers + Wall
[2]
웹사이트
Wiebe
http://www.retrobibl[...]
2011-12-17
[3]
웹사이트
Enzyklopädie des Eisenbahnwesens 1912–1923
http://www.zeno.org/[...]
2011-12-17
[4]
웹사이트
Weichselbrücke Münsterwalde
2011-12-17
[5]
문서
Berlin – Müncheberg (– Küstrin – Dirschau – Königsberg)
http://www.berliner-[...]
[6]
문서
ベルリンSバーン路線図
http://www.s-bahn-be[...]
[7]
문서
RE/RB運行路線図(ベルリンおよびブランデンブルク州) 2017年版
http://images.vbb.d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