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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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흥수는 백제 멸망기 인물로,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 당시 의자왕에게 백강과 탄현을 이용한 방어 전략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백제가 멸망하고, 그는 삼충사에 성충, 계백과 함께 배향되었다. 드라마 《삼국기》, 《연개소문》, 《계백》, 《대왕의 꿈》 등 여러 작품에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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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한글 이름 | 흥수 |
한자 이름 | 興首 |
로마자 표기 | Heung Soo |
한글 음독 | 흥수 |
한자 음독 | 흥수 |
직위 정보 | |
직책 | 좌평 |
군주 | 백제 의자왕 |
군주 직함 | 국왕 |
개인 정보 | |
국가 | 백제 |
성별 | 남성 |
2. 생애
백제 말기의 인물로, 660년 나당연합군이 침공했을 때 의자왕에게 군사 전략을 조언했다. 당시 유배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2] 흥수는 백강과 탄현 등 주요 방어 거점을 지키며 지구전을 펼치다가 연합군이 지쳤을 때 반격할 것을 제안했다.[1] 하지만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백제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멸망했다.[2]
2. 1. 백제 멸망과 흥수의 전략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로 진군하자, 의자왕은 좌평 의직, 달솔 상영 등 신하들과 대책 회의를 열었으나 의견이 갈려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왕은 당시 유배 중이던 흥수에게 사람을 보내 의견을 물었다.[1]흥수는 다음과 같이 전략을 제시했다.
"당은 군사력이 강하고 군율이 엄하며, 신라와 연합하여 협공하는 상황입니다. 넓은 들판에서 싸우면 불리할 수 있습니다. 백강(백마강)과 탄현은 백제의 중요한 요충지이니, 당나라 군대가 백강을 건너지 못하게 막고 신라 대군이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왕께서는 성문을 굳게 닫고 수비하며 연합군의 식량이 떨어지고 병사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1]
그러나 다른 대신들은 흥수의 전략에 반대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흥수는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여 임금에게 원한을 품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의 말을 따를 수 없습니다. 당나라 군대가 백강에 들어와 배를 정렬하지 못하게 하고, 신라 정예군이 탄현에 올라 좁은 길에서 말을 정렬하지 못하게 한 다음 공격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새장 속의 닭을 잡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2]
의자왕은 결국 대신들의 의견을 따랐다.[2] 하지만 당나라 대군은 이미 백강을 통과했고 신라 군대 역시 탄현을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왕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계백이 이끄는 5천 결사대는 황산벌에서 신라 정예군에게 패배했고, 백강에서는 의직이 이끈 2만 수군이 당나라 군대에게 전멸당했다. 이로 인해 백제는 660년 멸망하였다.
3. 유산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삼충사는 백제 말기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을 함께 기리기 위해 1957년에 세워진 사당이다.[3] 흥수는 나당연합군의 침공 당시 의자왕에게 탄현 방어를 건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3]
3. 1. 삼충사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삼충사는 백제 말기의 세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1957년에 세워진 사당이다.[3]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국정을 소홀히 하자 성충은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투옥되어 옥사했다.[3] 흥수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침공했을 때 전략적 요충지인 탄현을 지킬 것을 건의했다.[3]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 명이 공격해오자, 계백은 5천 명의 군사로 맞서 싸웠으나 황산벌 전투(660년)에서 전사했다.[3]4. 흥수가 등장하는 작품
참조
[1]
서적
Samguk Sagi, Scroll 28
[2]
서적
Samguk Sagi, Scroll 28
[3]
웹사이트
Samchungsa shrine | Buyeo, South Chungcheong Province | Korea | OzOutback
https://ozoutbac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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