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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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정은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설치한 군사 조직으로, 점령지를 관할하는 야전군 역할을 했다. 지증왕 때부터 시작되어 진흥왕 대에 본격적으로 정비되었으며, 대당, 상주정, 한산정, 우수정, 하서정, 완산정으로 구성되었다. 각 정은 깃발의 색으로 구분되었으며, 신라의 영토 확장과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6정 외에도 9서당과 10정이 있었으며, 9서당은 통일 신라 시대의 중앙군으로, 다양한 출신의 병사들로 구성되어 민족 통합에 기여했다. 10정은 지방에 배치되어 국방과 치안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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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정 (六停)
신라는 신라 지증왕 때부터 영토 확장 정책을 펴면서 점령지에 '정(停)'이라는 군사 조직을 배치하고, 이 정을 중심으로 '주(州)'라는 지방 행정 조직을 설치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정은 점령지를 관할하는 야전군이자 신라 최고의 지역 군사 행정 조직으로 추정된다. 6정은 목둘레 깃의 색깔(금색(衿色))로 구분되었다.[1]
6정은 다음과 같다.
| 정(停) 이름 | 설치 시기 | 깃 색깔 | 비고 |
|---|---|---|---|
| 대당(大幢) | 544년(진흥왕 5년) | 자백(紫白) | [1] |
| 상주정(上州停) | 552년(진흥왕 13년) | 청적 | 673년(문무왕 13년) 귀당(貴幢)으로 개칭[1] |
| 한산정(漢山停) | 604년(진평왕 26년) | 황청 | 신주정(新州停)에서 남천정으로 이동 후 재설치[4][5] |
| 우수정(牛首停) | 673년(문무왕 13년) | 녹백 | 비열홀정(현 강원도 안변군) 폐지 후 설치 |
| 하서정(河西停) | 658년(태종무열왕 5년) | 녹백 | 실직정(悉直停, 강원도 삼척시) 폐지 후 설치[8] |
| 완산정(完山停) | 685년(신문왕 5년) | 백자(白紫) | 하주정(下州停) 폐지 후 설치[9] |
2. 1. 대당 (大幢)
544년(진흥왕 5년)에 처음 설치되었다. 깃의 색은 자백(紫白)색이었다.[1]2. 2. 상주정 (上州停)
552년(진흥왕 13년)에 설치되었다가 673년(문무왕 13년)에 귀당(貴幢)으로 개칭되었으며, 깃발 색은 청적색이다.[1]2. 3. 한산정 (漢山停)
한산정(漢山停)은 원래 신주정(新州停)이었다. 568년(진흥왕 29년) 남천정으로 옮겼다가 604년(진평왕 26년) 다시 한산정을 설치했는데, 깃의 색은 황청색이다.[4][5]551년 백제 성왕과 연합하여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공격한 진흥왕은 553년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한강 하류까지 빼앗았고, 이곳에 신주정(新州停)을 두어 아찬 무력을 군주(軍主)로 삼아 관할하게 하였다.[1] 557년(진흥왕 18년) 신주정을 북한산(北漢山, 현 서울의 한강 이북 지역)으로 옮겼고,[2] 568년(진흥왕 29년)에는 남한강의 남천(현 경기도 이천시)으로 옮겼다가[3] 604년(진평왕 26년) 다시 한산정(漢山停, 현 경기도 하남시)을 설치하였다.[4][5]
2. 4. 우수정 (牛首停)
673년(문무왕 13년)에 비열홀정(현 강원도 안변군)을 폐지하고 우수정(현 강원도 춘천시)을 설치하였으며, 깃의 색은 녹백색이다.2. 5. 하서정 (河西停)
하서정(河西停)은 원래 강원도 삼척에 설치되었던 실직정(悉直停)이었다. 658년(태종무열왕 5년) 실직정을 폐지하고 하서정을 설치했는데, 깃의 색은 녹백(綠白)색이다.[8]505년(지증왕 6년) 이사부가 군주(軍主)로 임명되어 실직정을 관할하였다.[6] 639년(선덕여왕 8년) 사찬 진주가 강원도 강릉에 설치된 북소경(北小京)을 지켰다.[7] 658년(태종무열왕 5년) 태종무열왕은 하슬라(현 강릉시) 지역이 말갈과 경계를 맞대고 있어 백성들이 불안해한다고 판단하여, 경(京)을 폐지하고 주(州)로 삼아 도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또 삼척을 북진(北鎭)으로 삼았다.[8]
2. 6. 완산정 (完山停)
완산정(完山停)은 원래 하주정(下州停)이었다. 685년(신문왕 5년) 하주정이 폐지되고 완산정이 설치되었는데, 깃의 색은 백자(白紫)색이다.[9]하주정은 555년(진흥왕 16년) 경상남도 비사벌(현)에 하주(下州)를 설치할 때 창설되었다.[10] 이후 전세(戰勢)에 따라 치소(治所)가 565년 대야(大耶), 642년(선덕여왕 11년) 압량, 661년(태종무열왕 8년) 다시 대야로 이동했다가 685년 전라북도 완산주(현)가 설치될 때 폐지되었다.
3. 9서당 10정 (九誓幢 十停)
신라는 지증왕 때부터 영토 확장 정책을 펴면서 점령지에 '정(停)'이라는 군사 조직을 배치하고, 정을 중심으로 지방 행정 조직인 주(州)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정은 점령지를 관할하는 야전군으로서 신라 최고의 지역 군사 행정 조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 이들은 목둘레 깃의 색깔(금색(衿色))로 구분되었다.[1] 6정은 삼국통일 이후 중앙군인 9서당과 지방군인 10정으로 발전하였다.[1]
3. 1. 9서당 (九誓幢)
9서당(九誓幢)은 신라 삼국 통일 이후 군대 편제의 하나이다. 진평왕 5년(583년)부터 증설되어 신문왕 7년(687년)에 완성된 중앙군으로 신라인뿐만 아니라 고구려인, 백제인 출신도 포함하여 만들어진 군대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직속부대였다. 이는 이국민(異國民)에 대한 반란의 위험을 덜고, 중앙의 병력을 강화한다는 두 가지 효과를 노린 것으로, 금색(衿色, 목둘레 옷깃의 색)으로 부대를 구별하였다.3. 2. 10정 (十停)
10정(十停)은 통일 신라의 군대 편제 가운데 하나이다. 9주 5소경이 완성될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되며, 지방에 배치된 중요한 부대였다. 10정은 가장 지역이 넓고 국방상 중요한 곳인 한산주에만 2개 정을 설치했으며, 다른 8개 주에는 1개 정씩을 배치했다. 이 10정은 국방뿐만 아니라 경찰 임무까지도 담당한 듯하다.참조
[1]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진흥왕
[2]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진흥왕
[3]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진흥왕
[4]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진평왕
[5]
삼국사기
제40권 잡지 제9(신라 무관 3)
[6]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지증왕
[7]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 선덕왕
[8]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 태종왕
[9]
삼국사기
제40권 잡지 제9 신라 무관
[10]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신라 양주
[10]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진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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