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광명성 1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광명성 1호는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발사한 인공위성으로, 백두산 1호 로켓에 탑재되었다. 북한은 발사 성공을 주장했지만, 미국, 대한민국, 일본 등 국제 사회는 장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로 간주하며, 위성이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추락했을 것으로 평가한다. 광명성 1호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개량한 백두산 1호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으며, 이란, 파키스탄 등과의 관계,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반응을 통해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공위성 - 만리경 1호
    만리경 1호는 북한이 개발한 군사 정찰 위성으로, 2023년 11월 세 번째 발사에 성공했으며 궤도 상승 기동을 수행하고 지상 통신국과 통신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공위성 - 광명성 3호 2호기
    광명성 3호 2호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012년에 발사한 인공위성으로, 작물 수확량 예측, 기상 데이터 수집 등을 목적으로 했으며, 북한은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국제 사회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위반으로 규정했다.
  • 199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1998년에 실시된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김일성 사망 후 유훈통치 이후에 진행된 형식적인 선거로, 조선로동당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했으며 투표율은 99.85%를 기록하여 조선로동당의 독점적인 정치 지배력을 보여주었다.
  • 199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은 김일성에게 부여된 칭호로, 사후에도 그를 국가원수로서 상징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헌법에 명시되었다.
  • 1998년 8월 - 1998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98년 8월 7일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의 미국 대사관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며 수백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국제 테러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 1998년 8월 - 대한항공 8702편 활주로 이탈 사고
    대한항공 8702편 활주로 이탈 사고는 1998년 기상 악화 속 김포국제공항 착륙 중 활주로를 이탈하여 항공기 파손 및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기장 조작 미숙, 부기장 부주의, 기상 악화가 원인이 되어 항공기 퇴역 및 안전 강화 대책 수립으로 이어졌다.
광명성 1호
기본 정보
광명성 1호의 이미지
북한 텔레비전에서 공개된 첫 실험 위성 광명성 1호의 이미지
임무 유형기술
운영 기관KCST
임무 기간발사 실패
발사 날짜1998년 8월 31일, 03:07 UTC
발사 로켓백두산
발사 장소동해
궤도 기준지구 중심
궤도 영역지구 저궤도
근지점218.82 km
원지점6,978.2 km
궤도 경사40.6도
궤도 주기165분 6초
기타 정보
코스파르 ID해당 없음
샛캣 번호해당 없음
명칭
한국어광명성 1호
한자光明星 1號
로마자 표기Gwangmyeongseong 1 ho

2. 명칭

"백두산"과 "광명성"이라는 이름은 한국 민족주의와 김씨 일가 숭배에 매우 상징적이다. 백두산은 한반도(북한과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해 있다. 한국 민족주의 신화에 따르면, 한국의 신화적 건국 시조인 단군은 기원전 2333년 이 산에서 태어났다고 여겨진다.[5]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선전에 따르면, 이 산은 김일성의 항일 유격 기지이자 김정일의 출생지로서 신성시된다. 비록 김정일이 실제로는 하바롭스크 인근 옛 소련 극동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자료는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으며, 그날 밝은 샛별(광명성)이 하늘에 나타나 모두가 새로운 장군이 태어났음을 알았다고 주장한다.

3. 디자인

광명성 1호 설계 과정에서 중국의 로켓 기술 연구원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발사 후 공개된 사진에 따르면 광명성 1호는 72면 다면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둥팡훙 1호와 유사하며, 둥팡훙 1호는 다시 미국의 텔스타 1호와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하지만 광명성 1호의 질량에 대한 추정치는 출처에 따라 6kg에서 170kg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는 173kg의 질량과 100cm × 100cm × 100cm 크기를 가진 둥팡훙 1호와 비교된다.[6]

4. 발사

1998년 8월 31일 03:07 GMT (현지 시간 12:07), 북한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의 시험장에서 '백두산 1호' 로켓을 발사했다.[1] 이 로켓에는 북한이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인공위성 '광명성 1호'가 탑재되었다. 발사는 당초 8월 30일 저녁으로 예정되었으나 악천후로 인해 연기되었다.[1]

발사 준비는 8월 초부터 진행되어, 과학 기술 인력들이 시험장에 도착하고 조선인민군 해군 함정이 로켓 추적을 위해 동해에 배치되기도 했다.[1] 이러한 활동은 미국 정보 당국에 의해 감지되었으며,[1] 미국은 처음에는 이 발사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기술 시험으로 보았으나, 이후 로켓의 궤도를 분석하여 인공위성 궤도 발사 시도였음을 나타낸다고 평가를 수정했다.[1][7] 이 로켓은 발사 후 일본 아키타현 상공을 통과했다.

북한은 발사 며칠 후인 9월 4일 조선중앙방송 등을 통해 인공위성 '광명성 1호' 발사에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며,[18][19][20][21] 위성이 특정 궤도를 돌며 '김일성 장군의 노래' 등을 전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25][26] 그러나 대한민국, 미국, 일본 등 국제 사회는 북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로켓의 3단계 추진체가 실패하여 위성이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7] 발사 실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 기술 개발 의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7] 이 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가 공식 출범하는 시점과 맞물려 국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8]

4. 1. 북한의 주장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발사체를 인공위성 '광명성 1호'라고 주장하며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18][19][20][21] 발사 며칠 후 조선중앙방송은 검은색의 길쭉한 로켓 발사 영상을 공개하며 성공 소식을 전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광명성 1호는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울 때 218.82km, 가장 멀 때 6978.2km인 타원궤도를 165분 6초 주기로 돌고 있다.[25][26][1] 또한, 위성에 탑재된 송신기가 27MHz 주파수로 '김일성 장군의 노래', '김정일 장군의 노래', '주체 조선'을 모스 부호로 전송하고 있으며,[1][25][26] 우주 공간의 온도와 압력, 전원 상태에 대한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왔다고 주장했다.

북한 언론 매체들은 광명성 1호가 9월 13일에 100번째 지구 궤도를 돌았다고 보도했으며,[1] 10월 3일 새벽에는 평양 상공을 지나는 위성을 많은 주민들이 목격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TV 방송 등을 통해 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하여 전파를 보내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발사 직후 열린 집단체조 행사에서도 위성 발사 성공을 다루었는데, 이는 북한 당국이 발사의 실제 성패와 관계없이 성공을 선언할 계획이었음을 시사한다.

이 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를 공식적으로 열기 위한 최고인민회의의 헌법 개정(9월 5일) 직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8] 북한 매체들은 발사 전후로 위성 및 미사일 기술을 최고 수준의 성과로 내세우며 '강성대국' 건설을 강조했다.

4. 2. 국제 사회의 평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8년 8월 31일 발사한 ‘광명성 1호’가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하여 지구 최단 거리 218.82km, 최장 거리 6978.2km의 타원궤도를 165분 6초 주기로 돌고 있으며, ‘김일성 장군의 노래’ 등을 모스 부호 27 MHz로 전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25][26] 또한, 북한 언론 매체들은 광명성 1호가 9월 13일 100번째 지구를 돌았고, 10월 3일 새벽에는 평양 상공을 지나는 위성을 많은 주민이 목격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미국, 일본을 포함한 국제 사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러한 성공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정보 당국은 발사 준비 과정을 감지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 로켓이 3단계 우주 발사체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1] 미국은 처음에는 이 발사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기술 시험으로 간주했으나, 로켓의 궤적 분석 후 위성 발사 시도였음을 인정하는 쪽으로 분석을 수정했다.[1][7]

미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명성 1호는 3단계 추진체 점화에 실패하여 위성을 정상 궤도에 올리지 못하고 결국 추락한 것으로 분석된다.[7] 구체적으로는 3단계 고체 모터가 연소 중 파열되어 궤도 속도를 달성하지 못하고 궤도 진입 직후 이탈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7] 하버드 대학교 우주물리학센터 역시 1998년에 발사된 82개의 인공위성 중 실패한 6개 중 하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광명성'을 명시적으로 지목하며 실패 평가에 힘을 실었다.[27] 설령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북한이 발표한 데이터상의 근지점 거리(지구 최단 거리)가 218.82km로 매우 짧아[25] 대기 마찰로 인해 단기간 내에 추락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지배적이다.

국제 사회의 이러한 평가는 몇 가지 근거에 기반한다. 발사된 로켓의 궤도가 인공위성 발사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구 자전 속도를 이용하기 위해 발사장에서 동쪽으로 발사하는 궤도를 따른 점과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시 통상적으로 동반되는 탄착 지점 관측 활동이 없었다는 점 등은 단순한 미사일 시험이 아닌 위성 발사 시도였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발사 이후 궤도상에서 광명성 1호로 추정되는 어떠한 물체도 발견되지 않았고, 북한이 주장한 전파 신호 역시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23] 이는 3단 로켓의 문제나 추력 부족으로 위성이 제1우주 속도를 넘지 못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또한, 2009년 시점까지도 북한에는 위성을 안정적으로 추적하고 제어하는 데 필수적인 지상 관제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23] 성공 주장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더했다.

한편,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던 임동원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위성이 소형(20~30kg)인데다 미국이 미사일로 예단하고 추진체 항적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 탓에 위성로켓의 추적에는 실패한 듯하다"고 밝혀, 미국의 탐지 및 추적 능력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북한의 위성 발사 시도 및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28]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사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국제 사회의 평가와는 별개로, 북한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광명성 1호 발사가 완전한 성공이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2]

5. 논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광명성 1호 발사가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국제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3단계 추진체가 점화에 실패하여 위성을 제대로 궤도에 올리지 못하고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발사 후 공개된 데이터에 따르면 1단 로켓은 95초간 연소 후 동해 (동경 40도 51분, 북위 139도 40분 지점)에 떨어졌고, 2단계 로켓은 144초간 연소 후 태평양 (동경 40도 13분, 북위 149도 07분 지점)에 떨어졌다. 3단 로켓은 27초 이상 연소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론은 발사 5분 후에 위성이 궤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설령 궤도 진입에 성공했더라도 근지점 거리가 짧아 금방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버드 대학교 우주물리학센터 역시 1998년에 발사된 인공위성 중 실패한 6개 중 하나로 광명성 1호를 지목했다.[27] 반면,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던 임동원은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위성이 소형(20~30kg)인데다 미국이 미사일로 예단하고 추진체 항적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 탓에 위성 로켓 추적에 실패한 듯하다"고 언급하며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28]

미국 정보 당국은 1998년 8월 중순부터 무수단리 시험장에서 미사일 시험 관련 활동을 감지했으며, 8월 31일의 발사 자체는 예상했지만 이것이 3단계 로켓을 이용한 우주 발사체일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1][7] 미국은 처음에는 이 발사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기술 시험으로 간주했으나, 이후 로켓의 궤도가 인공위성 궤도 발사 시도를 나타낸다고 분석을 수정했다.[1][7] 백두산-1호의 고체 연료 3단계는 연소 시간과 스핀업(spin-up) 자체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나, 모터가 파열되어 궤도 속도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궤도 진입 직후 위성이 궤도에서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7]

발사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중앙방송 등을 통해 로켓 발사 영상을 공개하고 '광명성 1호' 발사의 완전한 성공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2][18][19][20][21] 발사 직후 열린 집단체조에서도 인공위성 발사 성공을 다룬 점으로 미루어, 성패와 관계없이 '성공' 발표를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발사를 두고 국외에서는 '탄도 미사일 실험을 겸한 인공위성 발사설'과 '순수한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설'로 의견이 나뉘었다. 인공위성 발사설은 로켓이 지구 자전을 이용하기 위해 발사장에서 거의 동쪽으로 발사하는 전형적인 위성 발사 궤도를 따른 점[22], 그리고 1993년 미사일 실험 때와 달리 탄착 지점 부근에서 탄착 관측을 위한 조선인민군 해군 함정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발사 후 궤도상에서 위성이 발견되지 않았고 관련 전파도 전혀 관측되지 않아, 3단계 로켓의 이상 연소나 추력 부족으로 제1우주 속도에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또한 인공위성을 궤도상에서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지상의 대형 수신 안테나나 추적 레이더 시설이 당시 북한에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된다[23].

한편, 일본 정부는 자체 분석을 통해 이를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이었다고 단정했다. 이는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목적으로 한 인공위성 발사'로 보는 미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및 기타 여러 국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이 발사를 계기로 정보 수집 위성 발사와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6. 스푸트니크 1호와의 비교

스푸트니크 1호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러시아스푸트니크 1호는 직경 58cm의 알루미늄 구체 외형에 4개의 안테나가 한 방향으로 붙어 있었다. 중량은 83.6kg이다. 20MHz와 40MHz 짜리 2개의 송신기(출력 1W)를 탑재하여 위성의 온도 정보를 0.3초마다 발신했으며, 전 세계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이 신호를 수신했다. 스푸트니크 1호는 3개월간 지구 궤도를 비행하였다.

반면, 광명성 1호는 중량이 30kg 이하로 알려져 있으며, 27MHz의 단파대에서 모스 부호를 송신했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이 신호를 수신했다는 보고는 없었다. 위성의 정확한 수명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론의 9월 13일 보도가 사실이라면 10여일 이상 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명성 1호 설계 과정에서 북한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로켓 기술 연구원으로부터 상당한 기술 지원을 받았으며, 이러한 지원은 광명성 2호 위성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는 향후 조악한 수준의 정찰 위성을 포함한 추가 위성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발사 후 공개된 사진 속 광명성 1호는 72면 다면체 모양으로, 이는 중국 최초의 위성인 둥팡훙 1호 및 미국의 텔스타 1호와 유사한 형태이다. 그러나 광명성 1호의 질량과 크기에 대한 추정치는 출처에 따라 6kg에서 170kg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참고로 둥팡훙 1호는 질량 173kg, 크기 100cm × 100cm × 100cm이다).[6]

7. 국제 관계

광명성 1호 발사는 국제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으며, 여러 국가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했지만, 다수의 국가는 이를 장거리 탄도 미사일 기술 시험으로 간주하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란, 파키스탄과는 기존의 미사일 및 위성 기술 협력 관계가 더욱 부각되었다. 반면, 중국러시아는 북한의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 움직임에는 경계심을 나타냈다. 일본은 자국 상공 통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체적인 정보 수집 위성 개발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 도입을 서둘렀다. 대한민국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규탄하면서도 외교적 해결 노력을 이어갔다. 이처럼 광명성 1호 발사는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반응과 후속 조치를 이끌어냈다.

7. 1. 이란과의 관계

이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사일 및 위성 기술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1987년부터 1988년 사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월 8기에서 10기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스커드 미사일 100기를 이란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요 미사일 및 위성 발사 과정을 직접 참관하며 기술 협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1993년 노동 1호 미사일 발사와 1998년 대포동 1호(광명성 1호) 위성 발사 시 이란 관계자들이 참관했으며, 일본 산케이 신문은 미국 부시 행정부 관계자와 군사 소식통을 인용하여 이란 혁명수비대 미사일 개발 간부급 기술자 10명이 대포동 2호 발사 준비 현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 협력의 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로동 1호 미사일은 이란의 샤하브-3 미사일 개발의 기반이 되었고, 샤하브-4 미사일은 대포동 1호 미사일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으로 평가된다. 2009년 2월 2일 이란이 자체적으로 발사한 첫 인공위성 오미드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술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2. 파키스탄과의 관계

북한미사일 기술을 파키스탄에 주고, 파키스탄의 핵무기 기술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있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교 국가의 유일한 핵보유국이다.

7. 3. 중국과의 관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주 로켓이나 대형 탄도 미사일 제작에 필요한 수많은 첨단 부품들을 중국에 있는 회사들을 통해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명성 1호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의 중국 로켓 기술 연구원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지원은 광명성 2호 위성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계속되었다. 발사 후 공개된 사진에 나타난 광명성 1호 위성은 72면 다면체 모양이었는데, 이는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둥팡훙 1호와 유사하며, 이는 다시 미국의 텔스타 1호와 매우 유사하다.[6]

중국 정부는 광명성 1호 발사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미국에 "핵 미사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벗어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10] 그러나 중국 정부는 미국일본이 제안한 전역 미사일 방어(TMD) 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일본과 미국은 자제하고 이 지역의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삼가야 한다"고 경고했다.[11]

7. 4. 러시아와의 관계

전략 로켓군 사령관 블라디미르 야코블레프는 북한이 로켓 발사를 러시아에 사전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 협정에 따라" 이루어진 통보라고 언급하며, 발사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로켓의 궤도가 변경되어 러시아 감시 시스템의 추적 범위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12]

그러나 러시아 외무부는 야코블레프 사령관의 발표 내용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외무부의 한 소식통은 러시아와 북한 간에 미사일 발사 사전 통보에 관한 어떠한 협정도 존재하지 않으며, 해당 발사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은 바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13]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모스크바에 우려를 야기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러시아는 북한과 정상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14]

7. 5. 일본의 반응

북한의 광명성 1호 발사에 대해, 일본 정부는 자체 분석을 통해 단순한 인공위성 발사가 아닌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이라고 단정했다. 이는 미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등 여러 국가가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목적으로 한 인공위성 발사"라고 본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입장이었다.

1998년 8월 31일 발사된 대포동 1호 로켓은 일본 아키타현 상공을 통과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자체적인 정보 수집 위성 발사와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7. 6. 대한민국의 반응

대한민국의 반응은 비교적 잠잠했다. 1998년 9월 25일 유엔 연설에서 대한민국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제 사회가 북한의 미사일 개발, 시험 및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그는 또한 일본의 고무라 마사히코 외무대신 및 미국의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공동 언론 성명을 발표하여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지만,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15]

7. 7. 미국의 반응

미국 정보 당국은 1998년 8월 중순부터 북한의 미사일 시험 관련 활동을 감지하고 있었다.[1][7] 따라서 8월 31일의 발사 자체는 예상된 일이었으나,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 로켓이 3단계 우주 발사체 형태로 구성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1][7]

미국은 처음에는 이 발사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기술 시험으로 간주했으나, 이후 로켓의 비행 궤적을 분석한 결과 위성 궤도 진입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을 수정했다.[1][7] 발사된 백두산-1호의 3단계 고체연료 모터가 연소 중 파열되면서 위성이 정상적인 궤도 속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관계자들은 이 발사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7]

이 사건 이후,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중단되었던 4자 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1999년 9월 10일, 미국북한과의 일련의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16]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이행을 위해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정 명령 권한을 사용하여, 북한에 1500만달러 상당의 중유 구매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17]

8. 대포동 1호 미사일

광명성 1호 발사에 사용된 운반 로켓은 백두산 1호로 알려져 있으며, 서방 세계에서는 이를 대포동 1호 미사일을 기반으로 개량한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8년 8월 31일 이 로켓을 이용하여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고 발표했으나, 미국 등 국제 사회는 위성 궤도 진입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한다.

대포동 1호는 2단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 탄도 미사일로 개발되었으며, 그 제원은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대포동 미사일 비교'''
구분대포동 1호대포동 2호
단수2단3단
1단액체연료 노동 1호액체연료
2단액체연료 스커드-C액체연료
3단-고체연료
총길이27m32m
총중량21ton60ton
사거리2200km6000km
탄두 중량1ton1ton
시험발사일1998년 8월 31일2006년 7월 5일
시험발사실패로 추정실패로 추정
발사장소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1998년 8월 31일 발사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발사 5분 후 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데이터를 공개했다. 공개된 데이터에 따르면 1단 로켓은 95초간 연소 후 동해 상 (동경 40도 51분, 북위 139도 40분)에, 2단 로켓은 144초간 연소 후 태평양 상 (동경 40도 13분, 북위 149도 07분)에 떨어졌으며, 3단 로켓은 27초 이상 연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 정보 당국은 3단계 추진체 점화 실패로 위성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추락한 것으로 분석했다.[7] 하버드 대학교 우주물리학센터 역시 1998년 발사된 위성 중 실패 사례로 광명성 1호를 포함시켰다.[27] 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회고록에서 미국이 미사일 발사로 예단하고 제대로 추적하지 못해 위성 추적에 실패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28]

이 발사를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부에서는 '탄도 미사일 실험을 겸한 인공위성 발사'라는 시각과 '순수한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이라는 시각이 존재했다. 인공위성 발사설은 로켓 궤도가 지구 자전을 이용하는 동쪽 방향 발사 궤도를 택했다는 점, 탄착 관측을 위한 선박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다. 반면, 발사 후 궤도상에서 위성이 발견되지 않았고 관련 전파도 수신되지 않아 3단 로켓의 문제나 추력 부족으로 궤도 진입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게 제기된다.

인공위성 발사 로켓 기술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기술과 매우 유사하여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 중국 등 여러 국가의 우주 발사체는 ICBM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따라서 대포동 1호 발사는 인공위성 발사 목적 외에 장거리 미사일 기술 확보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한편, 대포동 1호 발사는 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하여 일본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일본 육지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발사 각도를 조정했다고 주장했으나, 사전 통보 없이 발사를 강행하여 일본 국민의 안전을 위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한 북한 로켓
번호날짜모델통과 지역사전 통보북한 주장인공위성 이름
11998년 8월 31일대포동 1호아키타현아니오인공위성 발사광명성 1호
22009년 4월 5일은하-2아키타현, 이와테현인공위성 발사광명성 2호
32012년 12월 12일은하-3오키나와현인공위성 발사광명성 3호
42016년 2월 7일광명성 (은하-3)오키나와현인공위성 발사광명성 4호
52017년 8월 29일화성-12홋카이도아니오미사일 발사해당 없음
62017년 9월 15일화성-12홋카이도아니오미사일 발사해당 없음
72022년 10월 4일화성-12 (추정)아오모리현아니오


참조

[1] 웹사이트 Kwangmyongsong 1 https://web.archive.[...] Encyclopedia Astronautica 2009-04-06
[2] 뉴스 U.S. Calls North Korean Rocket a Failed Satellite https://www.nytimes.[...] 1998-09-15
[3] 뉴스 North Korea's space launch programme and long-range missile projects https://www.reuters.[...] 2023-07-31
[4] 웹사이트 Kwangmyongsong https://web.archive.[...] Encyclopedia Astronautica 2009-04-06
[5] 서적 Korea's Place in the Sun W. W. Norton 1997
[6] 웹사이트 一九九六-二〇〇五年全球运载火箭发射概况 https://web.archive.[...] 中国空间技术研究院 2006-07-25
[7] 웹사이트 A North Korean Satellite? U.S. Is Searching https://www.nytimes.[...] 1998-09-06
[8] 논문 North and South Korean Space Development
[9] 뉴스 NORTH KOREAN CONSULAR OFFICIAL IN RUSSIA MAKES COMMENT ON MISSILE LAUNCH ITAR-TASS news agency (World Service) 1998-09-02
[10] 뉴스 Beijing 'to Help U.S.' Over North Korean Missiles South China Morning Post 1998-09-17
[11] 뉴스 China Warns U.S, Japan About Missile Defense Agreement Indian Express 1998-09-23
[12] 뉴스 North Korea fires missile over Japan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1998-09-01
[13] 뉴스 Russian Pacific Fleet Scared by Russian Rocket Forces Russkiy Telegraf 1998-09-02
[14] 뉴스 Moscow Analyzes Impact of North Korean Missile Launch on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Situation in the Region Interfax 1998-09-02
[15] 뉴스 Joint Statement on North Korea Issues Kyodo News Service 1998-09-25
[16] 뉴스 Pyongyang Agrees to Return to Four-Party Peace Talks Korea Herald 1998-09-11
[17] 뉴스 Perry May be Named to Try to Salvage Pact with N. Korea Washington Post 1998-10-04
[18] 웹사이트 共和国初の国産人工衛星「光明星1号」基礎知識 http://www1.korea-np[...]
[19] 웹사이트 検証-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人工衛星打ち上げ -日本における「弾道ミサイル発射説」の迷走- http://www1.korea-np[...]
[20] 웹사이트 インタビュー//人工衛星打ち上げの科学者たち/労働新聞掲載 http://www1.korea-np[...]
[21] 웹사이트 共和国の国産人工衛星打ち上げ 「ミサイル」と歪曲し騒ぐ日本 事実、真実は何か http://www1.korea-np[...]
[22] 문서 北朝鮮の[[建国記念日]]は[[9月9日]]
[23] 뉴스 北「人工衛星」受信施設は未確認 http://www.iza.ne.jp[...] 産経新聞 2009-04-03
[24] 뉴스 <북한 미사일 개발 어디까지 왔나>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3-01-12
[25] 뉴스 北매체 “우린 언제든지 위성 쏠 수 있어” http://www.dailynk.c[...] DAILY NK 2008-08-31
[26] 뉴스 說···說···끓는 ‘대포동’ 진실은 뭘까 https://news.naver.c[...] 경향신문 2006-06-21
[27] 뉴스 <北핵실험> 北발표 어디까지가 진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6-10-10
[28] 뉴스 위성-탄도미사일 추진체 동일…‘탄두’만 달라 https://news.naver.c[...] 한겨레 2009-02-16
[29] 뉴스 “대포동2호 7분간 날아갔다”…499km 비행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06-07-07
[30] 뉴스 “북 발사준비 미사일은 사실상 대포동3호” http://www.hani.co.k[...] 한겨레 2006-06-2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