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국립 초상화 미술관 (워싱턴 D.C.)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은 미국의 역사, 발전, 문화를 기여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워싱턴 D.C.에 위치해 있다. 1962년 설립되어 1968년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구 특허청 건물을 사용한다. 1976년 사진 부서를 설립하여 사진 작품 수집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개조 공사를 거쳤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 링컨,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초상화와 사진, 조각 작품 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68년 설립된 미술관 - 헤이워드 갤러리
    헤이워드 갤러리는 1968년 개관한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의 현대미술 전시 공간으로,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의 대표적 예시이며, 현대 및 현대미술 기획 전시를 주로 개최하고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기념물 기금의 보호 목록에 등재되었다.
  • 1968년 설립된 미술관 - 히로시마 현립 미술관
    히로시마 현립 미술관은 1968년 개관한 주고쿠 지방 최초의 공립 미술관으로, 히로시마 관련 작가 작품, 아시아 공예품, 1920~30년대 세계 미술 등 5,000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색회 화훼문 윤화발'이 대표적이다.
  • 워싱턴 D.C.의 미술관 - 국립 아프리카 미술관
    국립 아프리카 미술관은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 위치한 스미소니언 협회 소속 박물관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미술 작품을 전시하며 아프리카 미술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하는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 미술 전문 기관이다.
  • 워싱턴 D.C.의 미술관 - 필립스 컬렉션
    필립스 컬렉션은 덩컨 필립스가 설립한 미국 최초의 근대 미술관으로, 3,000여 점의 인상주의 및 근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르누아르의 "선상 파티의 점심"으로 유명하고, 다양한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현대 미술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 공식 웹사이트에 알 수 없는 변수를 사용한 문서 - 브루클린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은 1823년 브루클린 견습생 도서관으로 시작하여 현재 약 50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뉴욕 브루클린 소재의 미술관으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며 특히 아프리카 미술과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기여가 크다.
  • 공식 웹사이트에 알 수 없는 변수를 사용한 문서 - 광주지방기상청
    광주지방기상청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기상 예보, 특보, 관측, 기후 정보 제공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상청 소속 기관으로, 1949년 광주측후소로 설치되어 1992년 광주지방기상청으로 개편되었으며, 기획운영과, 예보과, 관측과, 기후서비스과와 전주기상지청, 목포기상대를 두고 있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 (워싱턴 D.C.)
기본 정보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F 스트리트 입구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F 스트리트 입구
위치미국 워싱턴 D.C. 북서부 8번가와 F 스트리트
개관1962년
대중교통(워싱턴 지하철)
갤러리 플레이스-차이나타운
방문객 수1,069,932명
관장킴 사제트 (2013년–현재)
웹사이트국립 초상화 미술관 웹사이트

2. 역사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있는 건물은 원래 구 특허청 건물로, 로버트 밀스가 설계하여 1836년부터 1867년까지 건설되었다. 그리스 부흥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20세기 중반 워싱턴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건물이 되었다. 1958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스미소니언 협회에 넘겨져 개수되었다. 이후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과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Smithsonian Museum of American Art)이 함께 자리 잡았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1962년에 설립되었으며, 1968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대규모 개조 및 확장을 위해 폐관되었다가 재개관했다.

2. 1. 설립 배경

찰스 윌슨 필이 1796년에 설립한 '아메리칸 판테온'은 미국 최초의 초상화 미술관이었지만,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1859년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개관했지만, 당시 미국인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1] 1886년, 매사추세츠 역사 협회 회장 로버트 C. 윈throp이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방문한 후, 미국에도 비슷한 박물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

1919년 1월,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미국 예술 연맹 등과 협력하여 국립 미술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 주요 지도자들의 초상화를 의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위원회에는 허버트 L. 프랫, 에델 스페리 크로커, 에이브럼 가필드, 메리 윌리엄슨 애버렐, J. P. 모건, 찰스 펠프스 태프트, 헨리 클레이 프릭, 찰스 돌리틀 월콧 등이 참여했다.[3] 의뢰된 초상화들은 1921년 5월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고, 이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 컬렉션의 핵심이 되었다.[4]

1937년, 앤드루 멜론은 자신의 미술품 컬렉션을 미국에 기증했고, 이는 국립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졌다. 멜론은 초상화 미술관이 설립되면 자신의 컬렉션 중 초상화를 이관해 달라고 요청했다. 데이비드 E. 핀리 주니어는 국립 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서 초상화 미술관 설립을 위해 노력했다.[1]

1957년, 연방 정부는 구 특허청 건물을 철거하려 했으나, 대중의 항의로 1958년 3월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했다.[5] 1960년에는 국립 초상화 박물관을 조직하고 구 특허청 건물에 박물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울 위원회가 설립되었다.[3]

2. 2. 설립 과정

1957년, 연방 정부는 구 특허청 건물을 철거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대중의 항의와 역사적 구조물을 보존하기로 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1958년 3월 의회는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했다.[5] 그 직후, 스미스소니언 미술 위원회는 스미스소니언 총장에게 국립 초상화 박물관을 조직하고 구 특허청 건물에 박물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울 위원회를 임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위원회는 1960년에 설립되었다.[3]

앤드루 멜론, 그의 미술품 컬렉션은 국립 초상화 미술관 컬렉션의 기반 중 하나였다


1962년, 국립 초상화 미술관(NPG)은 의회에서 승인 및 설립되었다.[6] 이 법률은 미술관의 목적을 "미국의 역사, 발전 및 문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 남녀"의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으로 정의했다.[6] 그러나 초상화, 판화, 드로잉, 조각으로 소장품을 제한했다.[3][10]

초기에는 스미스소니언 자체의 방대한 미술품과 앤드루 멜론의 컬렉션에도 불구하고 전시할 작품이 거의 없었다. S. 딜런 리플리 스미스소니언 사무총장은 "1960년대에 초상화 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은 미국 초상화가 이미 가격의 정점에 도달했고 공급이 최저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려웠다"고 말했다.[1] 1964년부터 스미스소니언을 이끈 리플리는 새로운 미술관의 강력한 지지자였으며, 큐레이터들에게 다른 사람의 전체 컬렉션을 구매하는 대신 고품질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 선택된 개별 작품을 기반으로 처음부터 컬렉션을 구축하도록 장려했다. 그 후 5년 동안 기증과 구매를 통해 컬렉션을 서서히 구축했다. 당시 미술관은 자금이 거의 없었고, 종종 원하는 항목을 찾아낸 다음 소유자에게 기증을 요청했다.[1]

2. 3. 초기 운영 및 발전



1965년 제임스 스미손 탄생 200주년 기념일에 예술 및 산업 건물에서 첫 번째 NPG 전시회인 "국립 컬렉션의 핵심"이 열렸다.[3] 이듬해 NPG는 스미스소니언이 소장한 초상화의 첫 번째 목록인 미국 초상화 목록을 완성했다. 이 목록에는 각 예술 작품의 물리적 특징과 출처(작가, 날짜, 소유권 등)가 기록되었다.[3] 1966년,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국립 미술품 컬렉션과 함께 구 특허청 건물로 이전했고,[7] 1968년 10월 7일에 일반에 공개되었다.[8]

1969년, 건축 회사 포크너, 프라이어 앤 반더풀이 구 특허청 건물을 개조했고, 이 개조는 1970년 미국 건축가 협회 국가 명예상을 수상했다.[9] 이듬해 국립 초상화 미술관(NPG)은 전국의 모든 공공 및 사립 컬렉션과 박물관이 소장한 모든 형식의 초상화를 목록화하고 사진 촬영을 시도하는 국립 초상화 조사를 시작했다. 1973년 7월 4일, NPG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만 헌정된 박물관 최초의 전시회인 "미국 혁명 시대의 흑인 존재, 1770-1800"을 열었다. 1974년, 자선가 폴 멜론은 프랑스계 미국인 조각가 C.B.J.F. 드 생-메맹의 초상화 761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3]

1976년 1월, 의회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그래픽 아트 외의 매체로 된 초상화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10] 이를 통해 NPG는 사진 수집을 시작할 수 있었고, 1976년 10월에 사진 부서를 설립했다. 1978년 9월, 갤러리의 첫 번째 사진 전시회인 "빛을 마주하며: 역사적인 미국 초상 다게레오타입"이 열렸다.[3] 같은 해 5월, 잡지 ''타임''은 1928년부터 1978년 사이에 표지를 장식했던 850점의 원본 초상화를 기증했으며,[12] 이 작품들의 주요 전시회는 1979년 5월에 개최되었다.[3]

2. 4. 스튜어트 논쟁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1979년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조지 워싱턴마사 워싱턴 초상화(보스턴 미술관 소장) 구매를 시도했으나, 보스턴 지역 사회는 초상화가 보스턴에 남아야 한다며 반발했다.[35]

매사추세츠주 법무장관 프랜시스 벨로티는 스튜어트 초상화가 보스턴 미술관의 "공공 자선 신탁" 일부이므로 주 밖으로 판매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보스턴 미술관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1980년 2월 두 기관은 초상화를 공동 구매하고 1980년 7월 1일부터 3년간 번갈아 전시하기로 합의했다.[36]

벨로티 법무장관은 이 합의를 승인하여 논쟁이 해결되었다. 이 논쟁은 국립 초상화 미술관장 마빈 사딕의 사임(1981년 1월 1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37]

2. 5. 컬렉션 확장

1979년 4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길버트 스튜어트의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먼로, 존 애덤스,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 초상화 5점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 그림들은 깁스-쿨리지 세트로 알려졌으며, 보스턴의 쿨리지 가문으로부터 기증받았다.[23] 12월에는 존 트럼불알렉산더 해밀턴 흉상(훗날 10달러 지폐에 사용된 초상화의 원형으로 추정)과 매사추세츠주의 헨리 캐벗 로지 가문으로부터 하원 의원 피셔 에임스의 길버트 스튜어트 초상화를 입수했다.[24] 이듬해 4월, 바리나 웹 스튜어트와 조엘 A.H. 웹은 제퍼슨 데이비스와 그의 아내 바리나 하웰 데이비스의 초상화를 기증했다. (스튜어트와 웹은 데이비스의 증손자였다.)[3] 1980년에는 그래픽 아티스트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의 작품 여러 점을 구매 및 대여를 통해 확보하여 전시했는데, 그의 "크리스티 걸" 징병 포스터부터 ''미국 헌법 서명 장면''과 같은 역사화까지 다양했다.[25]

1981년,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두 개의 주요 19세기 사진 컬렉션을 추가했다. 첫 번째는 매튜 브래디와 그의 조수들이 제작한 5,419개의 유리 건판 사진으로 구성된 프레데릭 힐 메서브 컬렉션이었다.[26] 역사적으로 정확한 화학 물질, 종이, 기술을 사용하여 네거티브에서 인쇄물을 제작해 전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인수를 통해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브래디 연구의 "진원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27] 같은 해 말, 알렉산더 가드너가 제작한 남북 전쟁 시대의 유리 건판 사진 5,400점도 메서브 가문으로부터 구입했다. 여기에는 1865년 2월에 촬영된 에이브러햄 링컨의 "금 간 판"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1865년 4월 링컨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촬영된 사진이었다.[3]

1980년대 초, 토머스 제퍼슨의 길버트 스튜어트 초상화를 개인 수집가에게 100만달러에 구입했다. 구매 가격의 일부는 제퍼슨의 농장 몬티첼로를 소유, 운영하는 토머스 제퍼슨 재단에서 지원했다. 두 기관은 초상화를 번갈아 전시하기로 합의했다.[28] 에드가 드가가 그린 친구 메리 캐사트의 초상화도 130만달러에 구입했다.[29]

1984년 12월 31일에는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도둑은 전시 케이스를 뜯고 남북 전쟁 장군들의 초상화와 함께 전시되어 있던 자필 문서 여러 점을 훔쳤다. 훔쳐간 문서 중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직접 작성하고 서명한 문서와 율리시스 S. 그랜트, 조지 미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이 작성하고 서명한 문서 세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30]

1980년대 후반에도 소장품은 꾸준히 확장되었다. 1985년에는 앨리스 닐의 자화상 누드 이미지를 획득했는데, 이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 최초의 누드 작품이었다. 닐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80세였다.[3] 2년 후, 사진작가 어빙 펜은 지난 50년간 자신이 촬영한 패션 및 유명 인사 초상화 120점의 백금 인화 사진을 기증했다.[32]

1990년대에는 두 점의 중요한 은판 사진을 구입했다. 1990년에는 노예 폐지 운동가이자 전 노예였던 프레데릭 더글러스의 은판 사진을 획득했는데, 현존하는 더글러스의 은판 사진 4점 중 하나였다. 당시 박물관의 사진 소장품은 8,500점에 달했다.[33] 6년 후에는 노예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의 가장 오래된 은판 사진을 11.5만달러에 확보했다. 1859년 하퍼스 페리 습격을 주도한 존 브라운의 이 초상화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진작가 어거스터스 워싱턴이 제작했다.[34]

2. 6. 랜스다운 초상화 구매

랜스다운 초상화의 조지 워싱턴


2000년 가을, 제7대 로즈베리 백작 닐 프림로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길버트 스튜어트의 랜스다운 초상화를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그림은 1796년 4월 펜실베이니아의 상원의원 윌리엄 빙엄이 의뢰한 것이다. 크기의 이 초상화는 영국 총리 윌리엄 페티 피츠모리스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피츠모리스는 제2대 셸번 백작이었으며, 후에 초대 랜스다운 후작이 되었다(그래서 이 초상화의 이름이 붙여졌다). 1890년에 제5대 로즈베리 백작이 이 그림을 구입했다. 랜스다운 초상화는 미국에서 단 세 번 전시되었는데, 1968년 세 번째 방문에서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되어 무기한 대여로 남아 있었다.[35]

로즈베리 경은 그림을 2천만 달러에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는 추정치의 최저 가격이었다. 이 제안에는 2001년 4월 1일까지라는 마감 시한이 있었다. 스미소니언 협회 사무총장 로렌스 스몰과 스미소니언 협회 이사회가 직접 기부자를 찾았지만, 3개월 만에 성과가 없었다. 걱정하던 스미소니언 관계자들은 2001년 2월에 기부자가 나타나기를 호소하며 대중에게 알렸다.[35]

2001년 3월 13일, 판매 마감 시한 2주 전, 도널드 W. 레이놀즈 재단이 랜스다운 초상화를 구입하기 위해 3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재단 회장 프레데릭 W. 스미스는 2월 26일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기부자 확보 실패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레이놀즈 재단은 노인 간호, 심혈관 연구, 저널리즘 분야에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랜스다운 구매 지원은 재단의 "특별 프로젝트" 책임 영역에 해당되었다.[36] 국립 초상화 미술관 관장 마크 파크터는 3월 3일 재단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네바다로 갔고, 재단은 다음 날 기부를 승인했다. 3천만 달러 기부에는 초상화를 3년간 전국 순회 전시하는 데 600만달러(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2006년까지 개보수 공사로 폐쇄), 초상화 전시를 위해 구 특허청 건물에 새로운 공간을 건설하는 데 400만달러가 포함되었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이 전시 공간의 이름을 재단을 설립한 미디어 거물 도널드 W. 레이놀즈의 이름을 따서 명명할 것이라고 밝혔다.[37]

2. 7. 재개관 및 현대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구 특허청 건물의 개조 공사를 위해 2000년 1월에 문을 닫았다.[38] 당초 2년, 4200만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개조 공사는 7년, 2.83억달러가 소요되었다.[38] 인플레이션, 개조 설계 승인 지연, 개방된 안뜰 위에 유리 캐노피를 추가하는 등의 문제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모두 증가했다.[38] 이 기간 동안 NPG 소장품의 대부분이 미국 전역을 순회 전시했다.

2007년 3월, 8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리더십에 대한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대한 권고안이 제시되었다.[38] 보고서는 박물관이 진정으로 국립 박물관을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강력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고 결론 내렸다.[38] 보고서는 또한 국립 초상화 미술관과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의 "행정 통합"을 요구했다.[38]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그래픽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버락 오바마 "희망" 포스터를 입수했다.[39] 오바마 지지자 토니 포데스타와 그의 아내 헤더가 이 작품을 박물관에 기증했다.[39]

2010년 11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데이비드 C. 워드와 조나단 카츠가 기획한 대규모 신규 전시회 "숨바꼭질: 미국 초상화의 차이와 욕망"을 개최했다.[40] 이 전시회는 역사 속 동성애적 사랑의 묘사에 초점을 맞췄으며, 국가적 위상을 가진 박물관에서 이 주제를 다룬 최초의 전시회였다.[40] 또한 국립 초상화 미술관 역사상 가장 크고 비용이 많이 든 전시회였으며, 이전 어떤 국립 초상화 미술관 전시회보다 더 많은 개인 기부자가 참여했다.[41] 전시회에 포함된 105점의 작품 중에는 예술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단편 무성 영화 ''A Fire in My Belly''의 4분 편집본이 있었다.[41] 이 영상의 11초는 개미로 뒤덮인 십자가를 묘사했다.[41]

이 전시회는 2010년 10월 30일부터 2011년 2월 13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전시회 개막 며칠 만에 가톨릭 리그 회장 윌리엄 A. 도노휴는 ''A Fire in My Belly''를 혐오 발언, 반가톨릭적, 반기독교적이라고 규정했다.[41] 미국 하원 의장으로 취임할 예정이었던 존 베이너 하원 의원의 대변인은 이 영화가 사적 기부로 자금이 조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신탁을 "오만하게" 남용하고 납세자의 돈을 잘못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41][42] 하원 다수당 대표 에릭 캔터 하원 의원은 이 영화가 계속 전시될 경우 스미소니언의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했다.[43] 국립 초상화 미술관 관장 마틴 설리번, 공동 기획자 데이비드 C. 워드(하지만 공동 기획자 조나단 데이비드 카츠는 제외),[44] 스미소니언 차관 리처드 쿠린, 스미소니언 정부 관계 및 홍보 담당 부서와 협의한 후, 스미소니언 사무총장 G. 웨인 클라우는 11월 30일에 ''A Fire in My Belly''를 전시회에서 철거하라고 명령했다.[41]

클라우의 결정은 광범위한 검열 비난과 스미소니언이 소수의 목소리 큰 활동가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주장을 불러일으켰다. 스미소니언 관계자들은 이 비디오 철거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설리번은 "그 결정은 굴복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우리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어떤 것도 회피하고 싶지 않지만, 박물관과 이번 전시회의 강점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41] 쿠린은 대중의 의견에 부응하고자 하는 스미소니언의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남아있는 전시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전시회와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생각에 민감하다"며 "우리는 이 전시회를 지지한다. 이 전시회는 많은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과 강력한 학술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한 부분을 대표한다"고 말했다.[41] 12월 13일, 이 전시회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인 앤디 워홀 시각 예술 재단은 이 영화가 복원되지 않으면 10만 달러의 기부를 돌려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라우는 "스미소니언의 비디오 철거 결정은 어려운 결정이었으며 우리는 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기부금은 반환되었고, 워홀 재단은 국립 초상화 미술관 전시회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게 되었다.[45] 이 전시회를 지원하기 위해 1만 달러를 기부한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도 스미소니언의 향후 전시회에 대한 모든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이 두 결정 모두 일부 동성애 권리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그들은 나머지 작품들이 계속 전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금 삭감이 너무 가혹하다고 느꼈다.[46]

논란은 전시회가 예정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2011년 1월 말, 스미소니언 이사회는 클라우에게 만장일치로 신임 투표를 실시하여 지난 19개월 동안 스미소니언의 행정, 재정, 거버넌스 및 유지를 개선한 그의 업적이 "숨바꼭질" 논란으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클라우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고(비록 그는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계속 말했지만), 이사회는 스미소니언 직원들에게 이 논란을 연구하고 향후 이와 같은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스미소니언의 모든 사람이 이사회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일부(익명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관장과 큐레이터들이 클라우의 결정으로 인해 위축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느꼈다고 보도했다. 허시혼 박물관 및 조각 정원 이사회는 클라우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영화를 철거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선례"라고 밝혔다.[47]

2006년, 미술관은 3년마다 열리는 현대 초상화 전시회인 아웃윈 부체버 초상화 공모전을 개최하기 시작했다.[48] 오랜 기간 도슨트이자 자원 봉사자였던 버지니아 아웃윈 부체버의 이름을 딴 이 공모전은 초상화 분야에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모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48] 회화, 드로잉, 조각, 사진 및 기타 매체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참가할 수 있다.[48] 작품은 피사체와의 대면 만남을 통해 제작되어야 한다.[49] 2006년의 첫 공모전에는 4,000점 이상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이 중 51명의 최종 후보가 선정되었다. 2013년 공모전에서는 총 상금 42000USD가 상위 8명의 작가에게 수여되었으며, 우승자는 25000USD와 미술관의 영구 소장품을 위한 초상화 제작 의뢰를 받았다.[50] 위촉 작품의 주제는 작가와 국립 초상화 미술관 큐레이터가 공동으로 결정한다. 2006년 우승자는 위스콘신주 밀워키 출신의 데이비드 렌츠였으며, 그는 스페셜 올림픽의 설립자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의뢰받았다.[51] 이는 대통령이나 영부인으로 재직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첫 번째 초상화 위촉이었다.[51] 2009년 우승자인 콜로라도주 포트 콜린스 출신의 데이브 우디는[52] 음식 개척자이자 Chez Panisse Restaurant and Cafe, 에더블 스쿨야드의 설립자이며 슬로우 푸드 운동의 챔피언인 앨리스 워터스를 사진으로 촬영하도록 의뢰받았다. 2013년 우승자는 뉴욕주 비컨 출신의 보 게링이었으며,[53] 그는 재즈 뮤지션 에스페란자 스팔딩의 비디오 초상화를 연출하도록 의뢰받았다.[54]

2012년,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새로운 특별 전시인 "시적 초상: 현대 미국 시인"을 후원했는데, 이 전시는 위대한 미국 시인들의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품이 매우 방대해져서, 이 전시는 거의 전적으로 미술관 자체 소장품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다.

3. 주요 컬렉션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1969년 포크너, 프라이어 앤 반더풀에 의해 개조된 구 특허청 건물을 사용하며, 이 개조는 미국 건축가 협회 국가 명예상을 수상했다.[9] 1973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헌정된 첫 전시회인 "미국 혁명 시대의 흑인 존재, 1770-1800"을 열었다. 1974년에는 자선가 폴 멜론이 C.B.J.F. 드 생-메맹의 초상화 761점을 기증했다.[3]

1976년, 의회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그래픽 아트 외의 매체로 된 초상화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사진 수집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10] 1978년에는 첫 사진 전시회인 "빛을 마주하며: 역사적인 미국 초상 다게레오타입"을 개최했다.[3] 1977년에는 메리 커샛의 자화상과 존 싱글턴 코플리의 자화상을 구입했다.[3][11]

1978년, ''타임''지는 1928년부터 1978년 사이에 표지를 장식했던 850점의 원본 초상화를 기증했다.[12] 2008년에는 셰퍼드 페어리의 버락 오바마 "희망" 포스터를 입수했다.[39]

2011년 기준으로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미국에서 초상화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일한 미술관이었다.[6] 2013년에는 21,200점의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62] 주요 소장품으로는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를 담고 있는 대통령의 전당과, 알렉산더 가드너,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 어빙 펜, 매튜 브래디의 사진, ''타임''지 표지 컬렉션 등이 있다.

길버트 스튜어트의 작품, 초대 대통령 5명의 유화 작품인 깁스-쿨리지 세트. 1979년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


벤저민 프랭클린(1785) 조셉 뒤플레시 작품, 1987년 케프리츠 재단 기증


프레더릭 더글러스(1856), 미상의 작가가 제작한 다게레오타입, 1990년 NPG에서 구입

3. 1. 대통령 초상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영구 소장품 중 하나인 대통령의 전당은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를 소장하고 있으며, 백악관 소장품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컬렉션이다.[58] 대통령 전당의 핵심은 조지 워싱턴의 유명한 랜즈다운 초상화이다.

미술관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확보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다. 1962년부터 1987년까지는 주로 구매나 기증을 통해 대통령 초상화를 얻었다. 1998년부터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시작으로 대통령 초상화를 직접 의뢰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부터는 힐러리 클린턴을 시작으로 영부인의 초상화도 의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초상화 의뢰에는 개인 기부금이 사용되며, 각 초상화 제작에는 약 15만달러에서 20만달러가 소요된다.[58]

2000년 가을, 제7대 로즈베리 백작 닐 프림로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길버트 스튜어트의 랜스다운 초상화를 판매할 의사를 밝혔다. 이 초상화는 1796년 4월 윌리엄 빙엄 상원의원이 의뢰했으며, 윌리엄 페티, 제2대 셸번 백작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1890년, 제5대 로즈베리 백작이 이 그림을 구입했다. 랜스다운 초상화는 미국에서 단 세 번 전시되었는데, 1968년 세 번째 방문에서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된 후 무기한 대여되었다. 로즈베리 경은 2000만달러에 판매를 제안했지만, 기부자를 찾지 못했다. 2001년 3월, 도널드 W. 레이놀즈 재단이 3000만달러를 기부하여 초상화를 구입했다. 이 기부금에는 초상화의 전국 순회 전시 비용과 새로운 전시 공간 건설 비용이 포함되었다.[35][36][37]

3. 2. 주요 작품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주요 작품으로는 알렉산더 가드너가 촬영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금 간 판" 초상화(1865)가 있다.[3] 이는 링컨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촬영된 사진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존 트럼불알렉산더 해밀턴 흉상(1789)은 10달러 지폐에 사용된 초상화를 조각한 것으로 추정된다.[24] 조지아 오키프가 그린 보포드 델라니의 초상화(1940)와[63] 조셉 뒤플레시의 벤저민 프랭클린 초상화(1785)도 주요 작품이다.[63]

론 셔의 콜린 파월 초상화(2012)와[63] 마이클 오브라이언의 도널드 트럼프 사진(1989)도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이다.[64][65] 이 외에도 길버트 스튜어트조지 워싱턴 초상화(미완성, 1796), 존 싱글턴 코플리의 자화상(1780–1784), 에드가 드가의 메리 커샛 초상화(1880–1884)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63]

알렉산더 가드너 컬렉션의 일부로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획득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금 간 판" 초상화


3. 3. 주요 컬렉션 분야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초창기부터 다양한 주요 컬렉션을 소장해 왔다. 1976년에는 그래픽 아트 외의 매체로 된 초상화를 수집할 수 있게 되면서 사진 수집을 시작했다.[10] 1978년 9월에는 "빛을 마주하며: 역사적인 미국 초상 다게레오타입"이라는 첫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다.[3]

1981년에는 유명한 남북 전쟁 사진작가 매튜 브래디와 그의 조수들이 제작한 5,419개의 유리 건판 사진으로 구성된 프레데릭 힐 메서브 컬렉션을 인수했다.[26] 같은 해, 사진작가 알렉산더 가드너가 제작한 남북 전쟁 시대의 5,400개의 유리 건판 사진도 메서브 가문으로부터 구입했는데, 여기에는 1865년 2월에 촬영된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금 간 판"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3]

1980년에는 그래픽 아티스트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의 작품(그의 "크리스티 걸" 징병 포스터, ''미국 헌법 서명 장면''과 같은 역사 기반 작품)을 여러 점 확보하여 전시했다.[25] 1987년, 저명한 사진작가 어빙 펜은 지난 50년 동안 제작한 패션 및 유명 인사의 초상화 120점의 백금 인화 사진을 기증했다.[32]

1978년, 잡지 ''타임''은 1928년에서 1978년 사이에 표지를 장식했던 850점의 원본 초상화를 기증했다.[12]

주요 컬렉션은 다음과 같다.

컬렉션설명
알렉산더 가드너사진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그래픽 아트
어빙 펜사진
매튜 브래디사진
타임 잡지 표지그래픽 아트


4. 건물

국립 초상화 미술관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로버트와 알린 코고드 안뜰


국립 초상화 미술관 최상층에 있는 개조된 그레이트 홀


국립 초상화 미술관(NPG)은 차이나타운 인근의 국가 사적지인 구 특허청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1836년부터 1867년까지 로버트 밀스의 설계로 지어진 이 건물은 그리스 부흥 양식으로, 사암과 대리석으로 마감되었으며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포르티코가 특징이다.

1957년 연방 정부가 건물을 철거하려 했으나, 역사적 가치를 지키려는 여론에 따라 1958년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의회 승인을 받았다.[5] 이후 1962년 국립 초상화 미술관 설립이 승인되었고,[6] 1968년 10월 7일 대중에 공개되었다.[8]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대대적인 개조 공사가 진행되었다.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유리 캐노피가 중앙 안뜰에 추가되었고, 이 공간은 로버트와 알린 코고드 부부의 기부로 '코고드 안뜰'로 명명되었다. 개조 총비용은 2.83억달러였다.[103]

4. 1. 건축 개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국가 사적지인 구 특허청 건물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워싱턴 시내의 차이나타운 바로 남쪽에 있다. 1836년에서 1867년 사이에 로버트 밀스가 설계했으며, 사암과 대리석으로 된 외관을 가지고 있고,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포르티코가 있는 그리스 부흥 양식 건물이다.

이 건물은 미국 남북 전쟁 동안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클라라 바턴월트 휘트먼이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인디언 사무국, 미국 일반 토지 관리국, 연금국은 남북 전쟁 기간과 전쟁 이후 기간 동안 특허청과 함께 건물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남북 전쟁으로 인해 연금 처리가 대폭 증가하면서 1887년 연금국은 연금국 건물로 이전했다. 일반 토지 관리국과 인디언 사무국은 1898년에 건물을 비웠다. 미국 공무원 위원회와 정부 회계 감사국은 1932년 특허청이 건물을 비운 후 건물을 사용했다. 정부 회계 감사국은 인근에 새로운 본사가 완공된 후 1942년에 건물을 비웠다. 공무원 위원회는 자체 본사 건설을 시작하여 1962년에 건물을 비울 계획이었다.

워싱턴 D.C.의 지역 사업가들은 미국 일반 서비스 관리청(GSA)에 건물을 철거하고 부지를 매각하여 중심지에 사설 주차장을 건설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몇몇 의원, 건축가 및 연방 도시 100인 위원회(책임 있는 계획 및 토지 이용을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GSA는 입장을 바꿔 1956년 6월에 더 이상 건물을 철거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1958년 3월 21일, 의회는 만장일치로 건물을 국립 미술관을 위해 스미스소니언으로 이전하는 것을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며칠 후 이 법안에 서명했다.

의회는 1962년에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설립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공무원 위원회는 1963년 11월에 건물을 이전했다. 1964년 11월에 개조 준비가 시작되었으며, 그룬리, 월시 건설 회사는 1965년 5월까지 비역사적인 내부 구조물의 철거를 시작했다. 600만 달러의 개조 공사는 1968년 4월에 완료되었으며,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10월 7일에 개관했다.

1995년, 스미소니언 협회는 구 특허청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86] 1997년 1월, 2년간 4,200만 달러를 들여 건물을 개조하기 위해 2000년 1월에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트만-콕스 건축사(Hartman-Cox Architects)가 보존 및 수리를 감독하기 위해 고용되었다.[87] 그러나 3년 후, 개조 공사가 시작되려 하자 수리 비용은 1억 1천만 달러에서 1억 2천만 달러로 증가했다.[88]

2000년 1월 건물 폐쇄 전에 건물 전체 공간의 약 3분의 1을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할당하는 결정이 내려졌다.[89] 2001년 3월까지 개조 비용은 1억 8천만 달러로 증가했다. 그 달, 캘리포니아 신문 상속녀이자 예술 후원자인 낸 터커 맥에보이(Nan Tucker McEvoy)가 개조를 위해 1,000만 달러를 기부했다.[90] 헨리 루스 재단(Henry Luce Foundation)은 그해 말에 또 다른 1,000만 달러를 기부했다.[91]

2003년, 정부는 기부금을 1억 6,600만 달러로 늘렸다. 이후 스미소니언 협회 관계자들은 구 특허청 건물 중앙의 열린 안뜰에 유리 지붕을 추가하는 설계 변경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의회는 2003년 8월 이 변경 사항을 승인했다. 2004년 3월, 스미소니언 협회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유리 캐노피를 설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94] 11월, 부동산 개발 임원인 로버트 코고드(Robert Kogod)와 그의 아내 아를렌(Arlene, 찰스 E. 스미스 건설 재산 상속녀)은 캐노피 완성을 위해 2,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 당시 비용은 2억 9,8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여전히 6,000만 달러의 민간 기금이 모금되어야 했다.[91]

오늘날 코고드 안뜰은 워싱턴 D.C.에서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이다. 충분한 좌석, 무료 와이파이, 그리고 박물관 방문객을 위한 스낵을 제공하는 카페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된다.[95]

캐노피 디자인 승인은 어려움을 겪었다. 국립 수도 계획 위원회(National Capital Planning Commission, NCPC)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NCPC는 예비 디자인을 승인했지만,[91] 역사 보존 자문 위원회(Advisory Council on Historic Preservation, ACHP), 미국 내무부, D.C. 주 보존 사무소, 그리고 국립 역사 보존 신탁 모두 안뜰의 폐쇄에 반대했다.[96] NCPC는 2005년 6월 2일에 예비 승인을 번복했다.[97] 2005년 9월 8일, NCPC는 다시 입장을 바꿔 수정된 디자인 중 하나를 승인했다.[99] 이 지연으로 인해 스미소니언 협회는 1,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57] 2005년 10월, 도널드 W. 레이놀즈 재단(Donald W. Reynolds Foundation)은 건물 개조와 캐노피 완성을 위해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4,500만 달러를 기부했다.[100]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2006년 7월 1일에 재개관했다.[102] 건물의 개조 총 비용은 2억 8,300만 달러였다.[103]

4. 2. 역사적 용도

이 건물은 미국 남북 전쟁 동안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클라라 바턴월트 휘트먼은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했다.[3] 인디언 사무국, 미국 일반 토지 관리국, 연금국은 남북 전쟁 기간과 그 이후 기간 동안 특허청과 함께 건물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남북 전쟁으로 연금 처리가 대폭 증가하면서 1887년 연금국은 연금국 건물로 이전했고, 일반 토지 관리국과 인디언 사무국은 1898년에 건물을 비웠다.[3]

4. 3. 박물관 전환 과정

1957년, 연방 정부는 구 특허청 건물을 철거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대중의 항의와 역사적 구조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1958년 3월 의회는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했다.[5] 그 직후, 스미스소니언 미술 위원회는 스미소니언 총장에게 국립 초상화 박물관을 조직하고 구 특허청 건물에 박물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울 위원회를 임명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위원회는 1960년에 설립되었다.[3]

국가 사적지인 구 특허청 건물은 차이나타운 바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1836년에서 1867년 사이에 건축된 이 건물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된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포르티코가 있다.

1962년, 의회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NPG)을 승인하고 설립했다.[6] 이 법률은 미술관의 목적을 "미국의 역사, 발전 및 문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 남녀"의 초상화를 전시하는 것으로 정의했다.[6] 그러나 이 법률은 박물관의 컬렉션을 회화, 판화, 드로잉, 조각으로 제한했다.[3][10]

1966년,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국립 미술품 컬렉션과 함께 구 특허청 건물로 이전했다.[7] 그리고 1968년 10월 7일, 마침내 일반에 공개되었다.[8]

1995년, 스미소니언 협회는 구 특허청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86] 2000년 1월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 건물은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거쳤으며, 총 비용은 2.83억달러에 달했다.

4. 4. 2000-2007년 개조

1995년, 스미소니언 협회는 구 특허청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86] 1997년 1월, 스미소니언 협회는 2000년 1월에 2년간 42억달러를 들여 건물을 개조하기 위해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트만-콕스 건축사(Hartman-Cox Architects)가 보존 및 수리를 감독하기 위해 고용되었다.[87] 그러나 3년 후, 개조 공사가 시작되려 하자 수리 비용은 1.1억달러에서 1.2억달러로 증가했다.[88]

2000년 1월 건물 폐쇄 전에 건물 전체 공간의 약 3분의 1을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할당하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동시에 국립 초상화 미술관과 미국 미술관 사이의 비공식적인 남북 분할을 없애기로 했다.[89] 이로 인해 두 미술관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어떤 컬렉션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스미소니언 협회는 이 분쟁을 실용적으로 해결했다. 전시 공간에 가장 잘 맞는 작품이 해당 공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미술은 대개 큰 캔버스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미술은 천장이 높은 3층에 전시된다.)[57]

2001년 3월까지 개조 비용은 1.8억달러로 증가했다. 그 달, 캘리포니아 신문 상속녀이자 예술 후원자인 낸 터커 맥에보이(Nan Tucker McEvoy)가 개조를 위해 1000만달러를 기부했다.[90] 헨리 루스 재단(Henry Luce Foundation)은 그해 말에 또 다른 1000만달러를 기부했다.[91] 비용은 계속 상승했다. 의회는 개조를 위해 3350만달러를 배정했지만, 2001년 6월 재건 비용은 2.14억달러로 추산되었고, 미술관은 2005년까지 재개관할 예정이 없었다.[92] 불과 한 달 후, 재개관은 2006년 7월로 더 늦춰졌다.[93]

2003년, 정부는 기부금을 1.66억달러로 늘렸다. 이후 스미소니언 협회 관계자들은 개조 설계에 대한 주요 변경 사항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구 특허청 건물 중앙의 열린 안뜰에 유리 지붕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의회는 2003년 8월 이 변경 사항을 승인했다. 2004년 3월, 스미소니언 협회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유리 캐노피를 설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94] 11월, 부동산 개발 임원인 로버트 코고드(Robert Kogod)와 그의 아내 아를렌(Arlene, 찰스 E. 스미스 건설 재산 상속녀)은 캐노피 완성을 위해 250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 당시 비용은 2.98억달러로 증가했다. 여전히 6000만달러의 민간 기금이 모금되어야 했다.[91] 오늘날, 코고드 안뜰은 워싱턴 D.C.에서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이다. 충분한 좌석, 무료 와이파이, 그리고 박물관 방문객을 위한 스낵을 제공하는 카페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된다.[95]

캐노피 디자인 승인은 어려움을 겪었다. 디자인은 D.C. 대도시 지역의 모든 건물 및 개조를 승인할 법적 권한이 있는 국립 수도 계획 위원회(National Capital Planning Commission, NCPC)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NCPC는 예비 디자인을 승인했지만,[91] 역사 보존 자문 위원회(Advisory Council on Historic Preservation, ACHP), 미국 내무부, D.C. 주 보존 사무소, 그리고 국립 역사 보존 신탁 모두 안뜰의 폐쇄에 반대했다.[96] NCPC는 2005년 6월 2일에 예비 승인을 번복했다.[97] 캐노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스미소니언 협회는 8월 4일에 NCPC에 5개의 대안을 제시했다.[98] 2005년 9월 8일, NCPC는 다시 입장을 바꿔 수정된 디자인 중 하나를 승인했다.[99] 이 지연으로 인해 스미소니언 협회는 1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57] 2005년 10월, 도널드 W. 레이놀즈 재단(Donald W. Reynolds Foundation)은 건물 개조와 캐노피 완성을 위해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4500만달러를 기부했다.[100] 스미소니언 협회는 이 기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구 특허청 단지 내의 두 박물관, 보존 센터, 안뜰, 저장 시설 및 기타 운영 시설을 "도널드 W. 레이놀즈 미국 미술 및 초상화 센터"(Donald W. Reynolds Center for American Art and Portraiture)라고 부르기로 했다.[101]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2006년 7월 1일에 재개관했다.[102] 건물의 개조 총 비용은 2.83억달러였다.[103]

개조된 건물 방문객 수는 불과 두 달 만에 214,495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과거에는 두 박물관이 12개월 동안 45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다른 모든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방문객 수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상황에서 더욱 인상적이었다.[104] 더 많은 방문객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후원자는 마음에 안 드는 예술품에 침을 뱉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림에 키스하거나 만졌다. 2007년 9월에는 이러한 기물 파손을 막기 위해 비디오 보안 카메라가 급하게 설치되었다.[105] 연말까지 786,000명 이상이 두 박물관을 방문했다.[106]

5. 운영 및 관리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국립 초상화 미술관 위원회라는 이사회가 운영하며, 위원회 위원은 스미소니언 협회 이사회에서 임명한다. 미술관 관장은 박물관의 일상적인 활동을 감독한다.

5. 1. 이사회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국립 초상화 미술관 위원회로 알려진 이사회에 의해 운영된다. 위원회 위원은 스미소니언 협회 이사회에서 임명한다. 이 박물관은 관장이 이끌며, 관장은 박물관의 일상적인 활동을 감독한다. 역대 박물관 관장은 다음과 같다.

관장 이름재임 기간
찰스 네이글1964년 7월 1일 ~ 1969년
마빈 사딕1969년 ~ 1981년 7월
앨런 M. 펀1982년 6월 ~ 2000년
마크 파흐터2000년 ~ 2007년
마틴 E. 설리번2008년 ~ 2012년
웬디 윅 리브스2012년 ~ 2013년 (임시)
킴 사제트2013년 4월 ~ 현재


5. 2. 역대 관장

이름재임 기간
찰스 네이글1964년 7월 1일 ~ 1969년
마빈 사딕1969년 ~ 1981년 7월
앨런 M. 펀1982년 6월 ~ 2000년
마크 파흐터2000년 ~ 2007년
마틴 E. 설리번2008년 ~ 2012년
웬디 윅 리브스2012년 ~ 2013년 (임시)
킴 사제트2013년 4월 ~ 현재[3]


6. 한국 관련 내용 (추가)

(이전 단계에서 원본 소스와 요약이 제공되지 않아 내용을 생성할 수 없었으므로, 수정할 내용도 없습니다.)

참조

[1] 간행물 Who Gets Into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and Why? Washington Post 1999-06-13
[2] 문서 Smith, p. 268.
[3] 웹사이트 Chronology of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http://siris-sihisto[...] 2012
[4] 문서 Oehser, p. 146.
[5] 문서 Oehser, p. 200.
[6] 문서 Schultz, p. 272.
[7] 문서 Alexander, p. 302.
[8] 간행물 A National Family Album Washington Post 1968-10-06
[9] 간행물 Avery C. Faulkner Wilmington Star-News 2007-02-25
[10] 간행물 A New Face for the Stuffy Old Portrait Washington Post 1977-04-03
[11] 간행물 American Masterwork: Portrait Gallery's New 'Cornerstone' A Copley Self-Portrait for the Portrait Gallery Washington Post 1978-01-16
[12] 문서 Permanent Collection Illustrated Checklist, p. 7.
[13] 간행물 Athenaeum's Dilemma New York Times 1979-04-06
[14] 간행물 Marvin Sadik: 'I'm Resolute' Washington Post 1979-04-11
[15] 간행물 For $5m, Portraits Stay Here Boston Globe 1979-04-12
[16] 간행물 Boston City Officials Go to Court to Keep 2 Washington Portraits New York Times 1979-04-11
[17] 간행물 Bound in Boston Washington Post 1979-04-13
[18] 간행물 Bostonians Are Falling Short in Drive to Keep Art Associated Press 1979-11-25
[19] 간행물 Portrait Fund Drive Falls $4 Million Short Washington Post 1980-01-18
[20] 간행물 Museums in Capital and Boston to Share Washington Portraits New York Times 1980-02-08
[21] 간행물 Pact on Stuarts Approved By Massachusetts Official Associated Press 1980-03-22
[22] 간행물 New Faces in Town Washington Post 1980-06-24
[23] 간행물 5 Stuarts Go to U.S. Gallery Washington Post 1979-04-10
[24] 간행물 Lodge Donates Two Portraits Washington Post 1979-12-15
[25] 간행물 GEE!! It's Christy Washington Post 1980-01-11
[26] 간행물 The Meserves' Photo Legacy Washington Post 1982-05-14
[27] 간행물 The Photographer Who Went to War Washington Post 2010-11-07
[28] 간행물 Gilbert Stuart's Jefferson Acquired for $1 Million Washington Post 1982-09-10
[29] 간행물 Portrait Gallery Buys Degas. Washington Post 1984-05-22
[30] 간행물 Civil War Era Notes Are Stolen Washington Post 1985-01-01
[31] 뉴스 Man Gets 6 Months for Stealing Documents https://news.google.[...] 1985-04-24
[32] 간행물 The Beautiful Peoples Washington Post 2005-06-19
[33] 간행물 Daguerreotype of Frederick Douglass Washington Post 1990-12-23
[34] 간행물 John Brown, Captured For History Washington Post 1996-12-19
[35] 간행물 Smithsonian Battles to Keep Prized Portrait of Washington Washington Post 2001-02-23
[36] 문서 The Reynolds Foundation board had discretion to make grants in areas that presented patriotic or entrepreneurial opportunities or which supported a lifetime interest of foundation founder Donald W. Reynolds.
[37] 뉴스 A Washington Bailout. Washington Post 2001-03-14
[38] 뉴스 Committee Sees a Lack of Money, Leadership at 8 Smithsonian Museums Washington Post 2007-03-21
[39] 뉴스 Fit for a T: New at the Portrait Gallery Washington Post 2009-01-07
[40] 뉴스 "'Hide/Seek' Finds a Frame for Showing Sexual Identity" Washington Post 2010-11-05
[41] 뉴스 Portrait Gallery Removes Crucifix Video From Exhibit After Complaints Washington Post 2010-12-01
[42] 문서 Almost no taxpayer money was spent on the exhibit, since it was funded by private donations.
[43] 뉴스 Clough Defends Removal of Video Washington Post 2011-01-19
[44] 뉴스 After Smithsonian Exhibit's Removal, Banned Ant Video Still Creeps Into Gallery Washington Post 2010-12-06
[45] 뉴스 "'Hide/Seek' Sponsor Threatens to Cut Funding for Smithsonian." Washington Post 2010-12-14
[46] 웹사이트 Mapplethorpe Foundation Withdraws Support for Smithsonian Exhibitions http://www.washingto[...] 2013-02-06
[47] 뉴스 Regents Support Censorship Decision Washington Post 2011-02-01
[48] 뉴스 Portrait Capital. Washington Post 2005-05-29
[49] 간행물 Last Call: Outwin Boochever Portrait Competition http://blogs.smithso[...] 2013-02-08
[50] 웹사이트 Frequently Asked Questions: National Portrait Gallery http://www.npg.si.ed[...] Smithsonian Institution 2013-06-07
[51] 간행물 Eunice Kennedy Shriver Portrait Unveiled http://www.smithsoni[...] 2009-05-11
[52] 웹사이트 National Portrait Gallery's Portrait Competition https://www.pbs.org/[...] 2009-11-05
[53] 뉴스 Boochever Portrait Competition winners https://www.washingt[...] 2013-03-22
[54] 웹사이트 Bo Gehring: Reminding Us to Slow Down http://portraitcompe[...] National Portrait Gallery 2016-03-10
[55] 뉴스 American Poets, On the Surface. Washington Post 2012-11-04
[56] 뉴스 The Changing Face of American Portraiture. Washington Post 2006-06-25
[57] 뉴스 Museums Reopen to a Brand-New View. Washington Post 2006-07-01
[58] 뉴스 The Clintons: They've Been Framed! Washington Post 2006-04-25
[59] 뉴스 https://www.washingt[...]
[60] 웹사이트 Trump PAC's $650,000 'charitable contribution' to the Smithsonian will pay for portraits of Donald and Melania Trump https://www.business[...]
[61] 웹사이트 Donald Trump used $650,000 in supporter money to fund official portrait: documents https://www.independ[...] 2022-08-22
[62] 웹사이트 Fact Sheets: National Portrait Gallery http://newsdesk.si.e[...] Smithsonian Institution 2013-02-06
[63] 뉴스 Have Renovation, Will Travel. Washington Post 2005-12-14
[64] 뉴스 National Portrait Gallery Installs Photo Of President-Elect Trump https://www.npr.org/[...] 2017-01-17
[65] 뉴스 Trump Photograph Installed at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https://abcnews.go.c[...] 2017-01-17
[66] 간행물 National Portrait Gallery Annual Report http://www.npg.si.ed[...] 2008-10-01
[67] 서적 Price and Price, p. 102; Silber, p. 61 https://books.google[...]
[68] 서적 Ross, p. 87.
[69] 서적 Sandler, p. 51.
[70] 서적 Dale, p. 47.
[71] 서적 Fixico, p. 27; Bureau of Land Management, p. 25; National Park Service, p. 8
[72] 서적 Moeller and Feldblyum, p. 100
[73] 서적 Secretary of the Interior, 1899, p. 107
[74] 서적 Public Buildings Commission, p. 24-27
[75] 서적 Committee on Appopriations, p. 466
[76] 서적 Select Subcommittee on Education, p. 159
[77] 뉴스 "Sen. Maybanks Fights Plan to Raze CSC Building." ''Washington Post''. November 17, 1953; "Architects Fight Plan to Raze CSC Building." ''Washington Post''. February 24, 1954; "Committee Protests Razing Plan." ''Washington Post''. December 17, 1955. Washington Post 1953-11-17
[78] 뉴스 "GSA Wants to Preserve Patent Bldg."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56-06-03
[79] 뉴스 "CSC Building to Become Art Museum."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58-03-22
[80] 뉴스 "Exhibit to Tell American Art Story."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58-04-02
[81] 뉴스 "Civil Service Dedicates Home."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63-11-13
[82] 뉴스 "Patent Building to Become Arty."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64-12-27
[83] 뉴스 "Art Collection to Go in Old Patent Office."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65-05-21
[84] 뉴스 "A Major New Art Museum to Open."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68-04-28
[85] 뉴스 "A National Family Album."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68-10-06
[86] 뉴스 "The Dilapidated State of the Nation's Attic."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95-06-10
[87] 뉴스 "Repairs to Close Two Art Museums."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1997-01-29
[88] 뉴스 "Extensive Leaks In the Nation's Attic."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0-04-01
[89] 뉴스 "The Old Patent Office, Pending Renewal."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0-01-01
[90] 뉴스 "Smithsonian Art Museum Gets Second $10 Million."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1-03-07
[91] 뉴스 "Old Patent Office Gets A $25 Million Boost."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4-11-16
[92] 뉴스 "Smithsonian Projects Face Delays."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1-06-23
[93] 뉴스 "Naked Splendor."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3-07-20
[94] 간행물 Museum Courtyard Glides Through the Ages http://info.aia.org/[...] 2007-12-21
[94] 뉴스 Portrait of a new Washington / Penn Quarter: District of Columbia's once-derelict neighborhood welcomes back Smithsonian museums, tourists with rejuvenated flair https://www.sfgate.c[...] 2006-07-02
[94] 뉴스 Way Clear for British Architect's Glass Act Washington Post 2004-03-16
[95] 웹사이트 The Courtyard Café https://npg.si.edu/v[...] 2015-08-21
[96] 뉴스 "Patent Office Roof: Pending."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5-04-25
[97] 뉴스 "Panel Rejects Smithsonian Plan For Patent Office."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5-06-03
[98] 뉴스 "Old Patent Office Options Clearly Still Favor Glass."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5-08-05
[99] 뉴스 "A Roof That's Patently the Best Option."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5-09-09
[100] 뉴스 "Smithsonian Scores a $45 Million Gift."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5-10-12
[101] 뉴스 "Smithsonian Thanks Its Big Donor By Name."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5-10-13
[102] 웹사이트 'Looking History in the Eye' at Portrait Gallery https://www.npr.org/[...] National Public Radio 2006-07-13
[103] 뉴스 Seeing the Light at Last https://www.washingt[...] 2007-11-19
[104] 뉴스 "Smithsonian Attendance Down." ''Washington Post'' Washington Post 2006-09-20
[105] 뉴스 GAO Faults Smithsonian Upkeep and Security https://www.washingt[...] 2007-09-29
[106] 뉴스 Some People Would Die to Wind Up at This Museum https://www.washingt[...] Washington Post 2008-05-23
[107] 뉴스 Sadik, Director, Quits National Portrait Gallery https://www.nytimes.[...] 2013-02-05
[108] 뉴스 Portrait Gallery Chief Alan Fern to Retire https://www.washingt[...] 2010-12-03
[109] 뉴스 Portrait Gallery Director to Retire in '07 https://www.washingt[...] 2006-12-12
[110] 뉴스 Martin Sullivan Steps Down as Portrait Gallery Director https://www.washingt[...] 2013-02-05
[111] 뉴스 National Portrait Gallery Names Kim Sajet as Its New Director https://www.washingt[...] 2013-02-0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