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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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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라야마 부시코》는 이마무라 쇼헤이가 감독한 1983년 일본 영화이다. 19세기 일본의 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70세 노인을 산에 버리는 '우바스테' 풍습을 중심으로 가난과 죽음, 인간의 생존 본능을 다룬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닛카츠 조감독 시절 후카자와 시치로의 원작을 읽고 영화화를 꿈꿨으며,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1958년 동명의 영화와는 다른 리얼리즘 방식을 추구했다. 오가타 켄, 사카모토 스미코 등이 출연했으며, 제36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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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나라야마 부시코 (1983) 포스터"
제목나라야마 부시코
원제楢山節考
로마자 표기Narayama Bushikō
감독쇼헤이 이마무라
제작고로 쿠사카베, 지로 토모다
각본쇼헤이 이마무라
원작시치로 후카자와의 나라야마 부시코
출연오가타 켄
사카모토 스미코
아키 타케조
톤페이 히다리
세이지 쿠라사키
카오루 시마모리
류타로 타츠미
준코 타카다
니지코 키요카와
미츠코 바이쇼
음악신이치로 이케베
촬영마사오 토치자와
편집하지메 오카야스
제작사이마무라 프로덕션
배급사도에이 , 엄브렐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상영 시간130분
제작 국가일본
언어일본어
제작비 및 흥행
제작비미상
전 세계 티켓 판매2,370만 장
배급 수입10억5000만 엔
기타
칸 영화제1983년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2. 제작 배경

1958년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동명 영화는 가부키 기법을 도입한 추상적인 작품이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아직 리얼리즘으로 촬영하는 방법은 남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언젠가 올 로케이션으로 찍고 싶어 했다.[14]

후카자와 시치로의 원작 소설에는 농촌의 구체적인 묘사가 부족했기에, 이마무라 감독은 다른 작품인 동북의 신무들을 참고하여 각본을 썼다. 동북의 신무들은 동북 농촌 차남, 삼남들의 성과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후카자와 시치로는 처음에 어색해했지만 결국 허락했다.[14] 이마무라 쇼헤이는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추상적인 연출과는 달리, 더욱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주는 자신만의 나라야마 부시코를 만들었다.

2. 1. 기획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카다 시게루 도에이 사장에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세 가지 기획" 중 하나로 『나라야마 부시코』를 제안하여 제작 승인을 받았다.[18] 이마무라는 『나라야마 부시코』 외에도 『검은 비』, 『무라오카 이헤이지 (여관 ZEGEN)』의 세 가지 플롯을 제시했다. 이 중 『검은 비』는 어두운 이야기라 대형 영화사에서 제작이 어렵고, 『무라오카 이헤이지』는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하여 예산이 많이 든다고 판단되었다. 반면 『나라야마 부시코』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예산이 적게 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히가시베 고로 프로듀서는 이마무라 감독과 함께 일하고 싶어 했지만, 처음에 준비한 기획이 텔레비전 드라마에 선취당했다. 그래서 이마무라에게 하고 싶은 기획을 물었고, 이마무라가 세 가지 플롯을 보내왔다. 히가시베는 오카다 사장에게 『나라야마 부시코』 영화화를 여러 번 요청했고, 오카다는 이마무라 감독의 이전 작품 『복수는 나의 것』이 쇼치쿠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을 고려하여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제목은 같지만 내용은 다르다. 닛카츠 로맨 포르노 10편 분량의 정사 장면이 있다"는 히가시베의 설득에 결국 제작을 승인했다고 한다.[19]

2. 2. 각본

이마무라 쇼헤이닛카쓰 조감독 시절 후카자와 시치로의 원작을 읽고 "이것은 내 세계다!"라고 생각했지만,[14] 영화화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기노시타 케이스케가 영화화한다는 소식에 분해했고, 쇼치쿠(松竹) 조감독에게서 까마귀를 모으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왜 산촌 이야기인데 올 세트로 촬영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1958년 나라야마 부시코(1958년 영화) 개봉 첫날, 기타유(義太夫)를 사용한 추상화된 기법에 놀랐지만, "아직 리얼리즘으로 촬영하는 방법은 남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언젠가 올 로케이션으로 찍고 싶어 했다. 이후 끈질기게 영화화를 노려 실현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자 기노시타의 추상화가 탁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후카자와 시치로의 원작에는 농촌의 섹스, 노동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고, 추상화된 에센스뿐이었다. 그래서 후카자와 시치로의 다른 작품인 동북의 신무들(東北の神武たち)을 도입하려 했다.[14] 동북의 신무들은 평생 결혼도 할 수 없고 농노처럼 일하는 동북 농촌의 둘째, 셋째 아들의 섹스와 생활을 그린 것이다. 후카자와 시치로는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결국 "네 솜씨니까"라며 허락했다.[14]

조감독 이케하타 슌사쿠는 이마무라가 쓴 1차 시나리오는 속도감은 있지만 거칠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2차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동물은 1차 시나리오부터 많이 등장했는데, 이케하타 슌사쿠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을 더 늘리자고 제안했고, 이마무라도 동의했다. 3차 시나리오를 이마무라가 쓴 후, 이케하타 슌사쿠가 수정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되었다.[24]

2. 3. 캐스팅


  • 오가타 겐 - 다쓰헤이
  • 사카모토 스미코 - 오린
  • 바이쇼 미츠코 - 오에이
  • 히다리 톤페이 - 리스케
  • 타케죠 아키 - 타마얀
  • 오자와 쇼이치 - 가쓰조
  • 토키타 후지오 - 진사쿠
  • 산쇼테이 신스이 - 제니야노 마타얀
  • 쿠라사키 세이지 - 케사키치
  • 타카다 준코 - 마쓰얀
  • 도노야마 타이지 - 테루얀
  • 타카미네 히데코 - 아라야시키
  • 고바야시 넨지 - 츠네
  • 기요카와 니지코 - 오카네
  • 요코야마 아키오 - 아마야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각본을 집필할 때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지 않는 편이지만, 이 작품에서 장남 다쓰헤이 역만큼은 오가타 겐을 처음부터 낙점했다.[14]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오가타 겐과 처음 만나 2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후, 그의 매력에 깊이 빠져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14] 이마무라 감독은 "오가타 겐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장남 역은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 없다"라고 강하게 원했고, 결국 다른 작품과 일정을 조율하는 조건으로 출연이 성사되었다.[26]

오린 역은 당초 스기무라 하루코에게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26] 기요카와 니지코가 자원했지만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26] 최종적으로 사카모토 스미코가 오린 역으로 결정되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45세로 아들 역의 오가타 겐과 불과 한 살 차이였다. 사카모토 스미코는 실제 나이보다 30세 가까이 많은 노파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한 달 만에 10kg을 감량하고, 할리우드에서 특수 메이크업 기술을 도입했으며, 이마무라 감독의 지시에 따라 앞니 4개를 깎아내는 등[15][14][29]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2. 4. 촬영

나가노현 오타니촌의 폐촌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이 이루어졌다.[14][15][30] 이곳은 북알프스 산기슭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폭설지대로[31], 오이토선 미나미오타니역에서 약 4km 떨어져 있다.[27] 산길을 약 2시간 가야 하며 차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곳곳에 "곰 출몰" 경고판이 서 있다.[31] 峠 두 개를 넘어간 마키 촌(오타니촌 센고쿠·마키 지역)이 촬영지였다.[14][15][30]

촬영지 선정을 위해 시나리오 작성과 병행하여 로케이션 헌팅이 진행되었고, 1981년 2월부터 이마무라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도야마현, 니가타현, 군마현, 후쿠시마현 등을 돌아다녔다.[14][30] 1981년 4월에 촬영지로 결정된 곳의 항공사진을 입수하여 확대경으로 보니 이미지에 딱 맞는 12채의 농가가 찍혀 있었다. 눈이 녹기를 기다려 현지에 가보니 마치 무릉도원처럼 이미지와 똑같아 촬영지로 결정했다.

촬영지 협상 당시 오타니촌 주민들로부터 "우리 마을에는 우바스테(노인 버리기) 풍습이 없으니, (촬영 후 관객들이 실제로 우바스테가 있던 마을이라고) 오해받는 것이 곤란하다"는 반대 의견이 제기되었다.[26] 그러나 지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촬영 허가를 받았다.[26]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도에이 제작부는 주부전력에 매일 방문하여 특별히 케이블을 설치받았고, 미술부에서 황폐해진 농가를 수리했으며, 촬영 세트로도 사용하고 스태프와 배우들의 숙소로도 사용하도록 했다.[32] 그 외, 우바스테 장면은 니가타현 이토이가와시에서 촬영했다.[16]

1981년 12월 3일 크랭크인[30]되었고, 촬영은 작품의 후반부인 "오가타(緒形)가 연기한 신페이(辰平)가 우바스테(姥捨)를 마치고 나라야마(楢山)에서 혼자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26] 촬영 현장은 매우 고된 곳이었다.[33] 현지에 논밭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촬영 기간 동안의 취사, 소품의 현지 조달, 촬영에 필요한 동물 사육, 겨울철 제설 등을 모두 함께 해내면서, 1년여에 걸쳐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생활했다.[14][15][28][29][26]

리얼리즘을 철저히 하기 위해 농업팀이 조직되어, 극중에 필요한 논밭을 개간하여 작물을 재배했다. 이마무라 감독으로부터 "이 마을은 가난한 마을입니다. 땅도 척박합니다. 따라서 작물도 겨우 자란 정도로 해주세요"라는 지시가 있었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시들지 않을 정도로만 거름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알이 작고 색깔이 좋지 않은 작물과 를 재배했다.

춘하추동을 아우르는 생물들의 삶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여, 조감독이 동물 섭외를 위해 일본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 동물 담당팀의 일은 매우 힘들었는데, 살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살 수 없는 것은 포획하여 촬영일까지 살려두어야 했기 때문에 야생 동물을 사육했다. 게다가 야생 동물에게 연기를 시켰다. 아마추어에게는 연기를 시킬 수 없는 아키타현에서 매사냥꾼과 함께 현장에 초대했다.

서두의 동면 중인 가 먹는 장면은 뱀을 냉장고에 넣어 동면시키고, 버터를 발라 며칠 동안 먹이를 주지 않은 쥐에게 갉아먹게 했다. 여러 번 비춰지는 생물들의 영상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공존을 시사한다.[31]

마지막 "토네이도처럼 꿈틀거리며 새 떼가 솟아오르는" 장면은 운 좋게 대규모 서식지를 찾더라도 카메라와 사람이 가까이 가면 도망갈 것이라고 판단되어, 포획하여 일제히 날려 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태프는 반년 전부터 도쿄의 신주쿠 교엔이나 메이지 신궁 등 포획이 가능한 장소에서 까마귀를 모아[31] 까마귀 사육을 시작했다. 이마무라는 "가능하면 1000마리, 적어도 5~600마리는 필요하다"고 요구했다.[14] 그러나 이 장면은 "거의 실패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로 운반한 까마귀(정확한 수는 불명)를 사육하여 한때 600마리 정도까지 늘었지만,[26] 우리 안에서 까마귀들이 서로 잡아먹어 수가 상당히 줄어 촬영일에는 300마리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이 총출동하여 주변의 비둘기를 잡아 검게 칠했다. 촬영에서는 흐린 날씨를 일주일 동안 기다렸고, 본 촬영에서는 부리를 묶은 까마귀들을 일제히 날려 보내는 한 방 촬영이었지만 어떻게든 성공했고, 합성 영상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26] 컷이 되면 대기시켜 두었던 사냥꾼에게 쏘게 하여 모두 죽였다.

절정의 산골에 버리는 장면에는 완전한 형태의 유골 35구를 준비했고,[31] 짐승 뼈도 트럭 한 대 분량을 모았다.[31]

3. 줄거리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19세기 일본의 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70세가 된 노인을 산에 버리는 '우바스테(姥捨て)' 풍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오린은 70세를 앞두고 스스로 산에 가기로 결심하고, 1년 동안 가족과 마을의 일을 정리하며 이별을 준비한다.

척박한 땅과 혹독한 기후 속 산골 마을에는 엄격한 세 가지 계율이 있었다.


  • 장남만 결혼하여 자손을 남길 수 있다.
  • 다른 집에서 식량을 훔치는 것은 중죄다.
  • 70세가 된 노인은 ‘나라야마 참배’를 나가야 한다.


내년에 나라야마 참배를 가야 할 운명에 놓인 노파 오린의 집에서는 가족들이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장남 닷페이는 작년에 아내를 사고로 잃고 홀로 살고 있었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오린을 나라야마 참배에 보낼 수 없었다. 차남 리스케는 머리가 약하고 입 냄새가 심해 마을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있었다. 닷페이의 아들 케사키치는 오린의 이빨이 33개나 된다며 놀리면서 마을의 음탕한 여자 마츠얀과 놀아나고 있었다.

그때, 이웃 마을의 젊은 과부 타마얀이 닷페이의 후처로 들어온다. 한편 케사키치도 마츠얀을 아내로 맞이하지만, 리스케는 닷페이와 타마얀의 성행위를 엿보며 그릇된 망상에 빠져든다. 마츠얀은 손버릇이 나빠 귀중한 식량을 마음껏 먹어치우고, 결국 훔친 감자옥수수를 친정으로 가져간다. 마츠얀은 곧 임신하고, 식량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조짐을 보였다.

집안에는 파장이 일기 시작하는 가운데, 오린은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 나라야마로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런 와중에 마츠얀의 친정인 “아메야”가 식량 절도죄로 마을 사람들의 집단 제재를 받게 된다.

4. 등장인물

배우역할비고
오가타 겐다쓰헤이(辰平)45세. 가족을 생각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소극적인 면도 있다. 전처를 잃고 타마얀과 재혼한다.
사카모토 스미코오린(おりん)신페이의 어머니. 69세. 나이에 비해 튼튼한 치아를 가졌으며, 나라야마 참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히다리 톤페이리스케辰平의 남동생. 35세. 야코(집안의 머슴)로, 입냄새 때문에 쿠사레(썩은 것)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아키 타케조타마얀辰平의 후처. 37세.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오린과도 사이가 좋다.
쿠라사키 세이지케사키치辰平의 장남. 장난기 많고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오린과 리스케를 바보 취급한다.
타카다 준코마쓰얀"아메야"의 젊은 여성으로, 케사키치의 아이를 임신하여 辰平의 집에서 살게 된다.
바이쇼 미츠코오에이시로라는 흰 개를 기르는 여성.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마을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다.
고바야시 넨지츠네마을에 사는 야코 중 한 명.
키요카와 니지코오카네병으로 누워 있다가 시라하기사마(흰쌀밥)를 먹고 회복한다.
요코야마 아키오아마야
시마모리 카오루토메키치辰平의 차남.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로, 장난기 많은 성격이다.
이와사키 사토코스기얀케사키치의 후처.
리헤이辰平의 아버지. 30년 전에 실종되었다.
요코야마 아키오(横山あきお)우야(雨屋)산에서 머리가 두 개인 뱀을 죽인 후, 이 집 사람이 산에 가면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시무라 사키에(志村幸江)우야의 아내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로, 말을 하지 못한다.
오카모토 마사미(岡本正巳)우야의 장남마츠얀을 포함하여 여섯 남매가 있는 가정의 장남.
에토 칸킨얀오카네 집의 장남.
츠네타 후지오진작킨얀의 남동생.
후카미 산쇼센야의 츄얀(忠やん)센야(銭屋)는 상호명이다. 에치고에서 가져온 덴포츠호가 집에 있기 때문이다.
타츠미 류타로센야의 마타얀(又やん)70세. 츄얀의 아버지.
케이시 타카미네신야시키(あらやしき)의 아버지오에이의 아버지. 중병으로 시한부 인생이다.
오자와 쇼이치카츠조오에이와 관계를 맺은 야코.
미키 노리헤이시오야행상인.
덴간 야스시테루얀마을의 리더격 인물.
히우라 벤야케마츠야케마츠는 상호명이다. 집 뒷편에 낙뢰로 타 죽은 소나무가 있다.


5. 영화 속 관습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기후와 경작지가 모두 부족하여 주민들은 적은 농작물과 사냥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대부분의 풍습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 식량을 확보하고, 집안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관습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들이 있었다.


  • 장남만이 결혼하여 자손을 남길 수 있다.
  • 다른 집에서 식량을 훔치는 것은 중죄이다.
  • 70세가 된 노인은 ‘나라야마 참배’를 나가야 한다.


이러한 규칙들은 기근과 가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엄격한 관습이었다.

5. 1. 나라야마 참배 (楢山参り)

70세가 되면 '나라야마 참배'라는 의식을 통해 노인을 산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생존 본능과 잔혹함을 보여준다.[1]

작품 속 마을 주민들은 70세 정도가 되면 ‘나라야마 참배’를 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고령의 노인을 장남 등이 등짐(背負子)을 이용하여 혼자서 지고 나라야마에 데려가 버려두는 것이다.[1]

‘나라야마 참배’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다.[1]

  • 산에 들어가면 노인은 한마디도 말해서는 안 된다.
  • 출발할 때는 몰래 집을 나선다. 아무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
  • 노인을 짊어진 사람은 노인을 내려놓고 귀가할 때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

5. 2. 후계자

장남만이 결혼하여 가문을 이을 수 있고, 장남 이외의 아들들은 평생 머슴(야코)으로 살아야 한다. 각 가정에서는 장남이 가장 으뜸이며, 남동생들은 장남에게 거역할 수 없다.

5. 3. 식량 절도에 대한 처벌

마을에서 도둑질, 특히 다른 집의 식량을 훔친 것이 발각되면 "나라야마 씨에게 사과하게 한다"는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범인의 집에 쳐들어가 가재도구를 부수고 집을 뒤져 주민들을 모두 살해하고, 발견한 식량을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눠 갖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임시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처벌은 일종의 이벤트와 같았다.

6. 수상 내역

수상 연도영화제부문수상자
1983년제36회 칸 영화제[10]황금종려상이마무라 쇼헤이
1984년일본 아카데미상최우수 남우주연상오가타 켄(Ken Ogata)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음향상베니타니 켄이치(Kenichi Benitani)
1984년블루리본상최우수 남우주연상오가타 켄(Ken Ogata)
촬영상토치자와 마사오(Masao Tochizawa)
1983년호치 영화상최우수 조연여우상바이쇼 미쓰코(Mitsuko Baisho)
1984년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최우수 남우주연상오가타 켄(Ken Ogata)
최우수 음향상베니타니 켄이치(Kenichi Benitani)


7. 평가

1983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직후, 《나라야마 부시코》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44]


  • 프랑스 언론의 반응:

프랑스 언론은 《나라야마 부시코》의 섹스신과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주제 의식에 주목했다. 고노 에쓰코(高野悦子)는 섹스신에 대해 "매우 우스워서 모두 웃지만, 점점 숙연해진다"고 평했다.[44] 특히 사토 톤페이(左とん平)와 키요카와 니코(清川虹子)의 섹스신은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가와키타 카시코(川喜多かしこ)는 《나라야마 부시코》가 일본 특유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44] 《나라야마 부시코》 상영 후에는 터질 듯한 박수가 터져 나왔으며,[50] 프랑스 공산당 계열의 《뤼마니테》(L'Humanité)부터 우익 계열의 《피가로》(Le Figaro), 《르 파리지앵》(Le Parisien), 《리베라시옹》(Libération)까지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이 칭찬했다.[44][50][51]

  • 일본 내 평가:

원작자 후카자와 시치로(深沢七郎)는 시사회 후 "아방가르드(前衛)적"이라며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평했다.[55] 특히 오가타 켄의 연기와 베드신을 칭찬했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제7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 최우수 녹음상을 수상했다.

8. 흥행

1983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주연 배우의 스캔들[45]로 큰 화제를 모으면서 《나라야마 부시코》는 흥행에 성공했다. 일본 개봉 당시 배급 수입은 10.5억[4], 총 수입은 17.9억[5]을 기록했으며, 이는 약 170만 장의 티켓 판매에 해당한다.[6]

해외에서는 소련[7]에서 2110만 장, 프랑스에서 1983년 개봉 당시 84만 4077장[8], 1996년부터 2018년까지 네덜란드, 스위스, 스페인에서 1696장[9]의 티켓이 판매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약 23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칸 영화제 수상과 더불어 각국 바이어들로부터 250만달러에 가까운 문의가 있었고,[40] 텔레비전 방영권도 1.3억에 팔렸다.[40] 비디오 등을 포함해 총 20억의 매출을 올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영화학교 경영 정상화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40]

9. 기타

이 영화는 파격적인 내용과 묘사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상영이 제한되기도 했다.[23]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영화의 수익금 1.5억을 들여 자신의 영화 학교인 요코하마 방송영화전문학원을 신유리가오카 역으로 이전, 재건하는데 사용했다.[26]

참조

[1] 논문 Ballad of Narayama http://sensesofcinem[...] 2016-08-19
[2] 웹사이트 Narayama-Bushi-Ko http://www.festival-[...] 2016-08-19
[3] 웹사이트 The Ballad of Narayama (1983) - IMDb https://www.imdb.com[...]
[4] 웹사이트 1983 http://www.eiren.org[...] Motion Picture Producers Association of Japan (MPPAJ) 2022-04-12
[5] 웹사이트 邦画興行収入ランキング http://www.generalwo[...] General Works 2019-02-19
[6] 웹사이트 Statistics of Film Industry in Japan http://www.eiren.org[...] Motion Picture Producers Association of Japan (MPPAJ) 2022-04-13
[7] 웹사이트 Narayama Bushiko https://www.kinopois[...] 2022-03-27
[8] 웹사이트 Narayama bushiko (The Ballad of Narayama) (1983) http://www.jpbox-off[...] 2022-03-27
[9] 웹사이트 Narayama Bushiko https://lumiere.obs.[...] 2022-04-12
[10] 웹사이트 Narayama-Bushi-Ko http://www.festival-[...] 2016-08-19
[11] 뉴스 (제목 없음) China Times
[12] 웹사이트 Umbrella Entertainment http://www.umbrellae[...] 2013-05-22
[13] 간행물 映連配給収入 1983-01-01
[14] 논문 話題作の現場から まだリアリズムで撮る手が残っている! 今村昌平監督がオール・ロケで撮影中の『楢山節考』 国際情報社 1982-11-01
[15] 웹사이트 第30回東京国際映画祭 | 『楢山節考』デジタルリマスター版上映 あき竹城、入院中の母のためにも熱演 http://2017.tiff-jp.[...]
[16] 웹사이트 『楢山節考』上映会 糸魚川|イナ日記 https://ameblo.jp/hi[...]
[17] 웹사이트 長野県小谷村観光公式サイト|雪と緑と温泉のふるさと、信州おたりの自然 http://www.vill.otar[...]
[18] 논문 東映京都・日下部五朗プロデューサー に聞く 『東映というメジャーな場があるから』 文化通信社 1993-10-01
[19] 뉴스 連載 私の名画座招待席 『勲章を1本残したい(上)』 神戸新聞社 2013-09-24
[20] 논문 一九八〇年の日本映画を考える(上) 企画が行き詰ったとき、いつでも帰っていける安全な世界だった『二百三高地』 植田泰治・東映テレビ局プロデューサー シネ・フロント社 1983-03-01
[21] 논문 1983年の日本映画を考える=2 1億円かけて1人の作家を育てる力はないと会社はいうけれど... シネ・フロント社 1984-03-01
[22] 논문 映画・トピック・ジャーナル キネマ旬報社 1984-10-25
[23] 뉴스 ふたつのポルノ映画まで 1983-08-01
[24] 뉴스 今村昌平を語る リアルと寓意の間に インタビュー・池端俊策 2006-09-01
[25] 방송 ドラマ人間模様 羽田浦地図
[26] 잡지 週刊現代2023年5月20日号・週現「熱討スタジアム」第468回・映画『楢山節考』を語ろう 週刊現代 2023-05-20
[27] 논문 追悼 映画監督 今村昌平 緒形拳 キネマ旬報社 2006-08-01
[28] 논문 今月の封切作品ガイド 『楢山節考』 集英社 1984-03-01
[29] 웹사이트 歌手・女優の坂本スミ子さん パルムドール表彰式の思い出|日刊ゲンダイ https://www.nikkan-g[...]
[30] 웹사이트 ぴあ映画チラシ http://cinema.pia.co[...]
[31] 뉴스 訪ねたい:銀幕有情 楢山節考(長野・小谷) 毎日新聞社 2008-08-11
[32] 웹사이트 日本映画学校 OB牧場 - 株式会社シネマネストJAPAN http://www.cinemanes[...]
[33] 뉴스 今村昌平全映画 作品解説 2006-09-01
[34] 논문 今村昌平が『楢山節考』のリメイクに挑戦中 集英社 1982-08-01
[35] 논문 追悼 わが友、緒形拳 最期のことば ガタ、おまえの死に様は理想的だったー 文藝春秋 2008-12-01
[36] 간행물 こちら『楢山節考』はドタン場でピンチに 読売新聞社
[37] 간행물 映画・トピック・ジャーナルワイド版 特別ゲスト岡田茂 映連会長、東映社長、そしてプロデューサーとして キネマ旬報社
[38] 간행물 《話題の人・訪問》 『郡上一揆』に出演した緒形直人さん シネ・フロント社
[39] 간행물 『楢山節考』グランプリ受傷 新潮社
[40] 간행물 映画・トピック・ジャーナル グランプリを獲った『楢山』も、逃した『戦メリ』も、共に興行は大成功で、カンヌの影響が一気に噴出する キネマ旬報社 1983-07
[41] 웹사이트 私のベストライフ 日本映画黄金対談今村昌平監督第2回 http://www.bestlife.[...] ヘルスネット 2003-08-13
[42] 웹사이트 華やかな舞台の裏側『シネマの極道 映画プロデューサー一代』日下部五朗さん(2/3ページ) https://web.archive.[...]
[43] 웹사이트 楢山節考 http://022.holidaybl[...]
[44] 간행물 映画より面白い カンヌ映画祭の逆転逆転また逆転 文藝春秋
[45] 간행물 今村昌平監督のお怒りはごもっともだが... 文藝春秋
[46] 간행물 記録編 団体報告 時事映画通信社
[47] 뉴스 これなら摩擦起こるまい、映像文化は世界市場をめざす―通産省が音頭の東京映画祭 日本経済新聞社 1982-06-29
[48] 간행물 映画・トピック・ジャーナル 60年科学博でその開催が要請されている"国際映画祭"だが、果たして実現するのか? キネマ旬報社
[49] 웹사이트 今年は木村拓哉も登場! カンヌ国際映画祭を彩った歴代日本人をプレイバック http://www.elle.co.j[...]
[50] 간행물 第36回カンヌ国際映画祭カンヌ映画祭報告Ⅰ 二本の日本映画が映画祭の話題を独占! キネマ旬報社
[51] 간행물 カンヌ映画祭での二本の日本映画評 キネマ旬報社
[52] 간행물 追悼 映画監督 今村昌平 映画祭で受賞するということ。今村昌平の場合 キネマ旬報社 2006-08
[53] 간행물 第36回カンヌ国際映画祭報告Ⅱ 大島渚インタビュー 国際的視野に立った映画作りを キネマ旬報社
[54] 간행물 日本映画に話題集中、寂しいフランス映画の低迷 白水社 1983-07
[55] 간행물 《人物日本列島 深沢七郎》 『これねえ、よく見たら女性のアソコに似てるでしょ!』 光文社
[56] 간행물 世界で評価される日本映画の国内的価値 国際映画祭と国内興行の関連性 キネマ旬報社 2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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