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베 히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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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나베 히사오는 일본의 음악학자로, 1883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동양 음악 연구에 종사하며, 특히 1921년 조선을 방문하여 조선 궁중 음악의 보존에 기여했다. 또한 새로운 종류의 악기인 고큐를 발명하고, 다양한 음악 관련 저술 활동을 펼쳤으며, 1981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다나베 히사오는 일본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 이론을 융합한 선구적인 음악학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나베 히사오 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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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베 히사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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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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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다나베 히사오 (田辺尚雄) |
출생 | 1883년 8월 16일 |
출생지 | 도쿄부 |
사망 | 1984년 3월 5일 |
분야 | 음악학 |
모교 | 도쿄제국대학 |
직장 | 궁내성 도쿄음악학교 도쿄제국대학 |
자녀 | 다나베 히데오(음악평론가) |
2. 생애
188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프랑스인 선교사 노엘 페리(Noël Péri)에게 작곡과 음악 이론을 배웠으며, 대학원에서는 음악심리학을 전공했다.
1883년 도쿄부에서 태어나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프랑스인 선교사 노엘 페리(Noël Péri)로부터 작곡과 음악 이론을 배웠으며, 대학원에서 음악심리학을 전공하였다.
1920년부터 쇼소인과 궁내성(현재의 궁내청) 소장 악기 연구 및 동양 음악 연구에 종사했다. 1921년 4월에는 조선을 방문하여, 당시 존립 위기에 처해 있던 조선 궁중 음악의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하 일본 정부가 조선의 왕립 음악 연구소를 해산시켜 민간 후원에 의존하게 만들었으나, 다나베는 "''아악''과 같은 전통 음악과 무용은 지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1] 그는 관련 영화와 오디오 녹음을 제작하고, 한국 궁중 음악을 높이 평가하며 일본 궁중 음악과 비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널리 배포했다. 같은 해 후반에는 고음을 연주하기 위한 새로운 종류의 고큐를 발명하기도 했다.
1929년 제국 학사원상을 수상했다. 이후 도쿄 제국 대학과 도쿄 음악학교 (구제)(현 도쿄 음악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36년에는 동양 음악 학회를 설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무사시노 음악대학 교수로 재임했다.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며, 음악 분야의 계몽 활동에도 기여했다. '다나베 요시오'라는 필명으로 수필을 쓰기도 했다.
1981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으며, 1983년 그의 음악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나베 히사오 상이 제정되었다. 1984년 3월 5일 사망하였다.
3. 경력 및 활동
1920년부터 쇼소인과 궁내청(당시 궁내성) 소장 악기 연구 및 동양 음악 연구에 종사하며 본격적인 음악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1921년에는 조선을 방문하여 일제 강점기 하에서 존립 위기에 처했던 조선 궁중 음악의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일본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해산될 위기에 놓였던 조선의 왕립 음악 연구소에 대해, 다나베는 ''아악''과 같은 전통 음악과 무용의 가치를 강조하며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를 통해 관련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1]
이러한 연구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29년 제국 학사원상을 수상했다. 이후 도쿄 제국 대학과 도쿄 음악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36년에는 동양 음악 학회를 설립하여 동양 음악 연구의 발전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무사시노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다나베 히사오는 폭넓은 주제에 걸쳐 다수의 저서를 남겼으며, 음악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높이는 계몽 활동에도 공헌했다. 1981년에는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고,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3년부터 다나베 히사오 상이 수여되고 있다. 1984년 3월 5일 사망하였다.
3. 1. 초기 연구 활동
도쿄 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음향 심리학을 연구하던 중, 프랑스인 선교사 노엘 페리(Noël Péri)에게 작곡과 음악 이론을 배웠다. 1920년부터는 쇼소인 및 궁내성 (현 궁내청) 소장 악기 연구와 동양 음악 연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며 음악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1921년 4월에는 조선을 방문하여 중요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일제 강점기 하에서 일본 정부는 조선의 왕립 음악 연구소를 해산시켜 조선 궁중 음악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다나베 히사오는 이러한 상황에서 "''아악''과 같은 전통 음악과 무용은 지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일본 정부에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조선 궁중 음악 보존을 위한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1] 그는 조선 궁중 음악을 직접 접하고 영화 촬영과 오디오 녹음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으며, 일본 궁중 음악과 비교하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보고서를 널리 배포하기도 했다. 같은 해 말에는 고음 연주가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고큐를 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초기 연구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아 1929년에는 제국 학사원상을 수상했다.
3. 2. 조선 궁중 음악 보존 노력
1921년 4월, 다나베 히사오는 조선을 방문하여 위기에 처한 조선 궁중 음악의 전통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일제 강점기 하에서 일본 정부는 이왕직 아악부와 같은 왕립 음악 연구소를 해산시켜 민간 후원에 의존하게 만들었지만,[1] 다나베는 "''아악과 같은 전통 음악과 무용은 지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었다.[1] 그는 조선 궁중 음악을 영화와 오디오로 기록했으며, 한국 궁중 음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일본 궁중 음악과 비교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널리 배포하기도 했다.
3. 3. 악기 개발
1921년 후반 또는 1922년경, 다나베 히사오는 기존의 일본 현악기인 고큐가 주로 고음만을 낼 수 있었던 한계를 극복하고 "깊이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한 새로운 악기를 발명했다. 이 악기는 다나카 쇼헤이에 의해 "영금(玲琴)"이라고 명명되었으며,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신일본음악의 표현력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영금의 고안은 다나베가 하였고, 실제 제작은 미사고 토시아키가 담당했다.
영금의 구조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영금은 크기에 따라 세 종류로 개발되었으며, 각각 서양의 현악기에 대응된다.
종류 | 대응 서양 악기 | 연주 자세 |
---|---|---|
소(小) | 바이올린 | 바이올린과 동일하게 악기를 어깨에 올리고 연주한다. |
중(中) | 비올라 |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악기를 세워서 연주한다. |
대(大) | 첼로 |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악기를 세워서 연주한다. 의자에 앉을 경우, 몸통 하부에 긴 막대를 삽입하여 첼로와 같은 자세로 연주할 수 있다. |
3. 4. 저술 활동
다나베 히사오는 서양 음악, 일본 음악, 동양 음악, 음악 이론, 음향학 등 폭넓은 주제에 걸쳐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저술 활동은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담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계몽 활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다나베 요시오'라는 필명으로 수필을 발표하기도 했다.아래는 다나베 히사오의 주요 저서 목록이다.
연도 | 저서명 | 출판사 |
---|---|---|
1906 | [https://doi.org/10.11501/854913 『서양 음악 안내 - 일명 통속 악리 일반』] | 금항당 |
1908 | [https://doi.org/10.11501/854799 『음향과 음악』] | 홍도관 |
1909 | [https://doi.org/10.11501/826192 『휴대용 신식 대수표』] | 내전노학포 |
1911 | [https://doi.org/10.11501/830132 『실용 대물리학 강의 제1권』] | 내전노학포 |
1912 | [https://doi.org/10.11501/830377 『물리학 통해』] | 원원당 |
1914 | 『서양 음악사 개요』 | 십자가 악기점 |
1914 | [https://doi.org/10.11501/931117 『최신 물리학 요의』] | 보영관 |
1915 | [https://doi.org/10.11501/955018 『통속 서양 음악 강화』] | 이와나미 서점 |
1916 | [https://doi.org/10.11501/955086 『최근 과학상에서 본 음악의 원리』] | 내전노학포 |
1918 | [https://doi.org/10.11501/957293 『음악 통론』] | 취미 보급회 |
1919 | [https://doi.org/10.11501/961502 『일본 음악 강좌』] | 이와나미 서점 (1984년 고단샤 학술 문고 재간) |
1919 | [https://doi.org/10.11501/961513 『여성의 미용과 무용』] | 내전노학포 |
1921 | [https://doi.org/10.11501/960169 『아악 통해』] | 고곡 보존회 |
1922 | [https://doi.org/10.11501/968175 『가정 무용 해설』] | 음악과 축음기사 (음악과 축음기 총서 제1편) |
1922 | [https://doi.org/10.11501/971637 『가정에 필요한 축음기의 지식』] | 문화 생활 연구회 |
1922 | [https://doi.org/10.11501/971657 『가정 음악 강좌』] | 계문사 서점 |
1922 | [https://doi.org/10.11501/976843 『문명사상에서 본 세계의 음악』] | 경성사 (시민 자유 대학 강좌) |
1923 | [https://doi.org/10.11501/971700 『음악에 필요한 소리의 지식』] | 문화 생활 연구회 |
1923 | [https://doi.org/10.11501/971711 『초보자를 위한 악보의 지식』] | 주부의 벗사 |
1923 | 『제1 음악 기행』 | 문화 생활 연구회 |
1924 | [https://doi.org/10.11501/971800 『현대인의 생활과 음악』] | 문화 생활 연구회 |
1925 | 『음악 개론』 | 경문사 |
1925 | [https://doi.org/10.11501/1017809 『가정에서 맛볼 레코드 명곡 해설』] | 문화 생활 연구회 |
1925 | [https://doi.org/10.11501/1018405 『근세 음악 개론』] | 서동 교육회 (시마다 하계 강좌 필록) |
1926 | [https://doi.org/10.11501/968183 『일본 음악의 연구』] | 경문사 |
1926 | [https://doi.org/10.11501/1020653 『어린이의 음악 - 악성의 일화와 명곡의 감상법』] | 문화 생활 연구회 (모성 독본) |
1927 | [https://doi.org/10.11501/1226529 『섬나라의 노래와 춤』] | 이소베 갑양당 (일본 민속 총서) |
1928 | [https://doi.org/10.11501/1848321 『에도 시대의 음악』] | 근세 일본 문화사 연구회 (에도 시대 문화사 총서) |
1929 | [https://doi.org/10.11501/1126438 『동양 음악론』] | 춘추사 |
1929 | [https://doi.org/10.11501/1089883 『서양 음악의 감상법』] | 제국 교육회 출판부 |
1930 | [https://doi.org/10.11501/1179265 『일본 음악 통』] | 사륙 서원 (통 총서) |
1930 | [https://doi.org/10.11501/1214855 『동양 음악사』] | 웅산각 (동양사 강좌・제13권, 2014년 헤이본샤 동양 문고 재간) |
1931 | [https://doi.org/10.11501/1175430 『축음기와 레코드 선택법・감상법』] | 선진사 |
1931 | [https://doi.org/10.11501/1148136 『음악 이론』] | 공립사 서점 (만근 물리학 총서) |
1932 | [https://doi.org/10.11501/1176105 『일본 음악사』] | 웅산각 (동양 예술 강좌 제2) |
1932 | [https://doi.org/10.11501/1181157 『방악 연구자를 위해』] | 선진사 |
1934 | [https://doi.org/10.11501/1211456 『음향학』] | 학예사 (음악 낙 강좌 제12편) |
1935 | [https://doi.org/10.11501/1233992 『음악 원론』] | 춘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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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 [https://doi.org/10.11501/2458955 『음악 음향학』] | 음악지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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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 [https://doi.org/10.11501/2467774 『음악 예술학』] | 명현 서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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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 『소리의 울림 수필집』 | 명현 서방 |
1981 | 『다나베 나오오 자서전 - 메이지 편』 | 방악사 |
1982 | 『다나베 나오오 자서전 속 - 다이쇼・쇼와 편』 | 방악사 |
4. 수상 및 영예
- 1929년: 제국학사원상을 수상하였다.
- 1981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 1983년: 음악학 업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다나베 히사오 상이 제정되었다.
5. 가족
- 장남: 다나베 히데오는 음악 평론가이다.
6. 평가
다나베 히사오는 일본의 음악학자로서, 특히 동양 음악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도쿄 제국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음악 이론과 음악심리학을 공부했으며, 1920년부터 쇼소인과 궁내청 소장 악기 연구를 비롯하여 동양 음악 전반에 걸쳐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1929년 제국 학사원상을 수상했으며, 1936년에는 동양 음악 학회를 설립하여 연구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도쿄 제국 대학, 도쿄 음악학교, 무사시노 음악대학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을 방문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조선 궁중 음악의 보존 필요성을 주장하고 기록을 남기는 등, 한국 음악사 연구에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1]
그는 연구와 교육 활동 외에도 새로운 종류의 고큐인 '영금(玲琴)'을 발명하고 가정무용을 발안하는 등 음악과 무용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3년부터 다나베 히사오 상이 수여되고 있다.
6. 1. 비판적 시각
다나베 히사오는 1921년 4월, 일제강점기 하의 조선을 방문하여 당시 위기에 처했던 조선 궁중 음악의 보존에 관여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의 왕립 음악 연구소를 해산시켜 민간 후원에 의존하게 만들었으나, 다나베는 "''아악''과 같은 전통 음악과 무용은 지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1] 그의 노력으로 일부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그는 관련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조선 궁중 음악의 명맥을 잇는 데 일부 기여했을 수 있으나, 그 동기와 과정, 그리고 당시 일본의 문화 정책과의 연관성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검토와 다양한 해석이 요구된다. 순수한 학문적 관심과 문화 보존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는지, 혹은 제국주의적 시각이나 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활동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참조
[1]
간행물
1910-1911: YEARS THAT CHANGED SEOUL’S MUSIC
Centre of Kore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2013-11-28
[2]
웹사이트
田辺尚雄とは
https://kotobank.jp/[...]
2021-12-09
[3]
논문
第四七回大会における公開講演会 (学会創立六〇周年を迎えて) 民族音楽学と東洋音楽研究
https://doi.org/10.1[...]
東洋音楽学会
1998
[4]
서적
東洋音楽概説参考書
https://dl.ndl.go.jp[...]
春秋社
1930
[5]
논문
第四七回大会における公開講演会 (学会創立六〇周年を迎えて) 民族音楽学と東洋音楽研究
doi:10.11446/toyoong[...]
東洋音楽学会
1998
[6]
서적
東洋音楽概説参考書
https://dl.ndl.go.jp[...]
春秋社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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