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달구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달구지는 소가 끄는 바퀴 달린 차량을 의미하며, 기원전 4천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농업, 운송, 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으며,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관광 상품이나 전통 축제에서 주로 사용되며, 코스타리카에서는 전통 소달구지가 국가 상징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인도의 교통사 - 그랜드 트렁크 로드
    그랜드 트렁크 로드는 기원전 3세기부터 존재했던 인도 동부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도로로, 여러 제국을 거치며 개축 및 확충되었고, 현재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주요 도로로 남아 있으며 문학 작품에도 등장한다.
  • 동물 견인차량 - 왜건
    왜건은 화물 운반, 이동식 주거, 오락,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 수레의 총칭으로, 소달구지, 커네스토가 마차, 우유 수레, 쇼맨의 마차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존재했으며, 초기 자동차 발전에 기여하고 현대에는 스테이션 왜건이나 농업용 특수 왜건으로 이어진다.
  • 동물 견인차량 - 수레
    수레는 바퀴를 이용하여 물건이나 사람을 운반하는 장치로,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형벌 도구로도 사용되었고, 현재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대한민국 법령에 따라 분류된다.
  • 소 - 황소
    황소는 소의 수컷을 의미하며, 암소보다 근육질이며 뿔의 형태나 털의 특징 등 생물학적 특징을 갖고 번식, 노동, 스포츠, 문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된다.
  • 소 - 젖소
    젖소는 우유 생산을 목적으로 낙농업에서 사육되는 소로, 집약적 또는 광범위한 시스템으로 관리되며, 우유 생산 유지를 위해 번식이 필수적이고, 생산성 저하 등으로 인해 평균 6세에 도축되며, 최근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달구지
지도
기본 정보
인도에서 사용되는 달구지
인도에서 사용되는 달구지
다른 이름우차 (牛車), 외거 (輦車), 달구, 방아, 달구배
영어Bullock cart, ox cart, bullocky cart
역사 및 문화
용도수송 (주로 농산물 운반)
결혼식 (전통 혼례)
관련 문화
농경 문화
마을 공동체
구조
주요 구성 요소바퀴
차체
멍에
재료나무

진흙
지역별 특징
한국전통 농기구
민속 문화
인도농촌 지역에서 여전히 사용
다양한 형태 존재
기타 지역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기타 정보
현대적 변형농업용 트레일러
암소
암소
황소
황소
니혼고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 탄 소가 끄는 [[소달구지]]. 얇은 판자로 덮여 있으며 지붕이 있고 옆면에는 발이 달려 있다.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 탄 소가 끄는 소달구지. 얇은 판자로 덮여 있으며 지붕이 있고 옆면에는 발이 달려 있다.
명칭牛車
로마자Gyūsha
역사적 맥락
사용 시기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
종류
아자리차 (網代車)대나무를 엮어 만든 차
이타비사 (板廂車)판자로 만든 차
루리차 (륜차)장식이 화려한 차

2. 역사

달구지는 바퀴의 발명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4천년경, 북캅카스와 중앙 유럽 등지에서 바퀴 달린 차량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최초의 차량은 소가 끄는 수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 1. 고대

교통에 사용되는 바퀴의 발명은 유럽에서 처음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퀴가 달린 차량의 증거는 기원전 제4천년기북캅카스와 중앙 유럽에서 거의 동시에 등장한다. 최초의 차량은 소달구지이다.[18] 수레 사용의 초기 징후(수레 자국, 절개, 바퀴 모형)는 기원전 44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송에 사용 가능한 가장 오래된 나무 바퀴는 러시아 남부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3325 ± 125년으로 추정된다.[1] 바퀴 달린 차량의 증거는 기원전 4천년 중반부터 북해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서 나타난다. 최초의 차량은 소 수레였을 수 있다.[2]

1900년대 초반의 인도인들의 소 수레

2. 2. 한국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소달구지가 사용되었으며, 주로 짐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농업 생산성 증가와 상업 발달에 따라 소달구지의 사용이 더욱 증가하였다.

2. 2. 1. 조선시대

『조수희화』 병권의 우차


『도카이도 53차』「오쓰」의 우차


『도토 명소』「다카나와의 저녁 풍경」의 우차


짐마차로서의 우차는 『조수희화』 병권에 그려져 있으며, 중세 전기에는 교토의 물자 수송에 종사했다. 에도 시대에는 교토 외에 에도, 슨푸, 센다이, 그리고 막말에는 하코다테에서 운용되었지만, 다이하치구루마를 포함한 수레의 사용은 막부와 번의 인프라 정비 부담 증가, 교통사고 증가에 대한 우려로 억제되었다.[1] 초기에는 천하 보수 공사에 중량물 수송에 활약했지만, 중기 이후에는 대규모 보수 공사가 줄어들고, 다이하치구루마 및 선박 운송과의 경쟁으로 인해 에도 시대를 통틀어 우차와 수레의 수는 모두 감소했다.[1]

교토의 우차는 교토의 외항인 오쓰에서 교토 도카이도 (오사카 고개, 히노오카 고개 경유), 후시미에서 교토로 가는 다케다 가도, 시모토바에서 교토로 가는 토바 가도에서 짐 수송, 특히 오쓰에서 쌀 수송에 사용되었으며, 에도 후기에는 구루마이시라는 돌로 포장된 차도가 정비되었다.[1]

에도의 우차는 간에이 시대 에도 보수 공사에 따라 교토에서 초빙되어 다카나와에 거주하며, 요카이치(에도바시히로코지·핫초보리 우시바)를 거점으로 했다.[1] 각 거점은 강변에 인접해 있어, 육상에서 내려진 각종 짐을 수송했다.[1]

슨푸의 우차는 호에이 5년 (1708년) 슨푸성 수복 공사를 계기로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 게이초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슨푸성 축성 때 교토에서 초빙되었다.[1] 시미즈항과 슨푸 사이의 짐 수송에 종사했다.[1]

센다이의 우차는 조쿄 4년 (1687년) 닛코 도쇼구 보수 공사에 종사한 다테 마사무네가 에도의 우차를 고용하고, 그 후 일부를 센다이로 초빙한 것이 시작이라고 여겨진다.[1] 쌀 창고 간의 연공미 수송에 종사했다.[1]

오사카는 수운이 발달했기 때문에 우차가 사용될 여지는 없었지만, 다이하치구루마와 같은 베카샤가 사용되었다.[1]

2. 2. 2. 일제강점기

메이지 시대 이후, 에도 시대에 비해 도로도 정비되었고, 다이하치구루마 등과 함께 우차의 이용도 지방으로 파급되었다. 쇼와 30년 이후에 모터리제이션이 진행되어, 지방에도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다른 견수와 마찬가지로 우차도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2. 2. 3. 현대

현대 한국에서는 소달구지를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오키나와현 야에야마군 다케토미정다케토미섬유부섬에서는 물소차가 관광에 이용되고 있다. 다케토미섬의 물소차는 4륜으로, 마을 관광에 사용된다. 한편, 유부섬의 물소차는 4륜도 있지만 2륜이 주를 이루며, 얕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리오모테섬과의 왕래에 사용된다.

3. 각국의 소달구지

소달구지는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었다.


  • '''중국''': 아지가 끄는 독거(犢車)가 있었으며, 한대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탔으나, 위진남북조 시대(2세기 말 ~ 6세기 말)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도 타게 되었다.[17]
  • '''구미''': 특히 개척 지역에서 마차를 소가 끄는 경우가 많았다. 말보다 느리지만 견인력이 좋고, 소의 식사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었다.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에서 많이 이용되었다.

3. 1.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래파엘 터크 앤 손스에서 인쇄된 컬러 엽서로, 양모를 싣고 가는 소 팀을 묘사한 오일렛 이미지를 담고 있다. 엽서 제목은 "호주 양 농장. 양모 운송"이다.


호주에서 소 달구지는 바퀴가 두 개일 경우 "소 드레이"라고 불렸고, 바퀴가 네 개일 경우에는 "소 마차"라고 불렸다. 소 달구지는 일반적으로 대량의 짐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 쟁반이 없고 보일러와 같은 큰 통나무나 기타 둥근 물체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징커"라고 알려진 네 바퀴 차량도 있었는데, 이들은 20마리 이상의 동물이 이끄는 소 팀에 의해 끌려갔다. 소 팀의 운전자는 '소몰이꾼'으로 알려졌다.

소 팀은 농촌 지역에서 주요 도시와 항구로 농산물을 운송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호주의 크기 때문에 이러한 여정은 종종 먼 거리를 이동했고 며칠, 심지어 몇 주가 걸릴 수 있었다.

3. 2.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에서 소달구지(carretases)는 1850년에서 1935년 사이에 독특한 제작 및 장식 전통이 발전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일상생활과 상업의 중요한 부분이었다.[3] 코스타리카의 퍼레이드와 전통 축제에는 전통적인 소달구지 행렬이 자주 등장한다.

1988년, 코스타리카 정부는 전통 소달구지를 국립 노동 상징으로 지정하였다.

2005년에는 유네스코의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코스타리카의 소몰이 및 소달구지 전통"이 등재되었다.

3. 3. 인도네시아

프람바난 사원 축제에서 ''바징안''과 함께 있는 황소 수레


인도네시아에서는 농촌 지역에서 소달구지가 물건과 사람을 운송하는 데 사용되지만, 말 마차가 더 흔하다. 소달구지 운전사는 인도네시아어로 ''바징안''이라고 불린다. 자바어에서 ''바징안''이라는 용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일반적으로 불량배나 악당을 가리키는 속어로 사용되지만, 황소 수레 마부를 의미하기도 한다.[4]

역사적으로 황소 수레는 명성을 상징했으며, 종종 마을에서 존경받는 인물들이 소유했다. 그러나 현대 교통 수단의 등장으로 실용적인 사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오늘날 많은 황소 수레는 수집품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이 전통 유산을 유지하려는 수집가들이 헛간에 보관한다.[4]

3. 4.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에서 달구지는 자동차가 도입되기 전 널리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승객 운송 차량도 포함되었으며, 현재는 특히 관광객을 위해 사용된다.[5] 승객용 달구지는 보통 햇빛과 비를 막기 위한 차양을 갖추고 있으며, 종종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6][7]

3. 5.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연료 부족으로 인해 달구지라고 불리는 수레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는 농업과 군대 모두에서 일상적인 운송 수단으로 사용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17]

3. 6. 일본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에 귀족들의 이동 수단으로 소달구지가 사용되었으며, '깃샤' 또는 '규샤'라고 불렸다.[8] 헤이안 시대 이전에는 천황의 탈 것으로 정해져 있었으나, 헤이안 시대부터 귀족들도 사용하게 되었다.[9] 소달구지는 사용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894년에는 사치스러운 폐단으로 인해 승차가 금지되기도 했다.

가마쿠라 시대무로마치 시대에는 종5위 이상의 관위를 가진 무가들도 소달구지를 탈 권리가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한 것은 쇼군가뿐이었다.[11] 오닌의 난 이후 소달구지는 쇠퇴했지만,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라쿠다이 행차에 사용할 소달구지를 새로 제작하면서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현대 일본에서는 관광이나 제례용으로 소달구지를 볼 수 있다. 일본 도로교통법에서는 소달구지를 경차량으로 취급한다. 소달구지는 주로 낙중(교토 시내)에서의 이동에 사용되었으며, 소를 끄는 소치기 동(우시카이와라와)이나 소달구지 양쪽에 붙는 차부(구루마조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따라다녔다.

소달구지의 각 부 명칭은 다음과 같다.

thumb)]]

명칭설명
집(야카타), 차상(샤소), 상자(하코)사람이 타는 곳
상(토코)앉는 곳
동(무네)집 위를 앞뒤로 통과하는 나무
미간(마유)앞뒤의 밖으로 나오는 부분
소매(소데)미간의 양쪽에 튀어나온 부분
미간 격자(마유고시), 소매 격자(소데고시)미간 소매 안쪽의 격자 모양 부분
동융(무네유이)집 앞 상부 중앙에 붙는 총각의 끈
방립(보다테)앞뒤 입 좌우에 있는 판
답판(후미이타)앞의 판
물견(모노미)상자 좌우의 창
하립판(시타다테이타)물견 아래의 판
가리개(히사시)상자의 앞뒤, 물견 위에 내미는 곳
식(도지키미), 고란(고란)앞뒤 입 아래에 댄 낮은 칸막이 판
원(나가에)전방으로 길게 나오는 2개의 나무
추미(토비노오)차 뒤로 나오는 부분
멍에(쿠비키)원 끝의 소의 머리를 얽는 곳
탑(시지)멍에 아래에 놓는 대
축(요코가미)바퀴의 심봉
할(쿠사비)축 끝의 철
토코시바리상자와 차를 연결하는 밧줄 (※"膊"의 변이 "革"인 한자)
살(야)바퀴살
곡(코시키), 통(토)바퀴살이 모이는 곳
강(카리모), 카모곡 입의 철
발(스다레)앞뒤에 있으며, 앞발(마에스다레), 뒷발(아토스다레)이라고 함
하발(시타스다레)안쪽의 장



일본의 소달구지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사용되었다.


  • 교토: 오쓰에서 교토로 가는 도카이도 , 후시미에서 교토로 가는 다케다 가도, 토바 가도에서 짐을 수송했으며, 특히 오쓰에서 쌀을 수송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 에도: 다카나와에 거주하며, 요카이치, 에도바시, 핫초보리 우시바를 거점으로 하여 강변에서 내려진 각종 짐을 수송했다.
  • 슨푸: 시미즈항과 슨푸 간의 짐 수송에 종사했다.
  • 센다이: 쌀 창고 간의 연공미 수송에 종사했다.
  • 오사카: 수운이 발달하여 우차가 사용될 여지가 없었지만, 베카샤가 사용되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도로 정비와 함께 우차의 이용이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쇼와 시대에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우차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오키나와현다케토미섬유부섬에서는 물소차가 관광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3. 6. 1. 일본의 소달구지 종류

일본에서는 소달구지가 다양한 종류로 발전했으며, 사용자의 신분과 용도에 따라 그 형태가 달랐다.

  • 당비차(唐庇車): 태상천황, 섭정, 관백 등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한 최고급 소달구지이다. 지붕이 당파풍 모양을 하고 있어 '당거(카라구루마)'라고도 불렸다. 대형으로, '잔'(하시다테)이라는 사다리로 타고 내렸다.[13] 윗덮개, 가리개, 허리 등은 빈랑 잎으로 만들고, '소방발'이라는 붉은 발을 걸었다.

  • 우미차(雨眉車): 섭정, 관백이 직의 차림으로 사용할 때 사용한 소달구지이다. 당비차의 간략 버전으로, 미간이 당파풍 모양을 하고 있다. 발은 푸르고 하발의 장도 푸른소농이다.

  • 빈랑모차(檳榔毛車): 상황 이하, 사위 이상의 상급 귀족이 사용했지만, 입내하는 여방이나 고승도 사용했다. 빈랑을 잘게 찢어 지붕을 이은 차로, '모차'라고도 불린다.[13] 소방발로 하발은 적색소농이다.

  • 빈랑비차(檳榔庇車): 상황, 친왕, 섭관, 대신이 사용한 소달구지이다. 빈랑모차에 구경거리를 설치한 것으로, 앞뒤 미간 아래와 구경거리 위에 히사시(가리개)가 붙어 있다.

  • 사모차(糸毛車): 우와부키(차상의 지붕 부분)를 색으로 염색한 실로 덮은 차로, 구경거리는 설치하지 않았다.
  • 청사차: 황후, 중궁, 동궁의 승용차이다.
  • 자사차: 여어, 갱의, 상시, 전시의 승용차이다.
  • 적사차: 가모 축제 때, 여자 사용인이 사용한다.

  • 망대차(網代車): 차상 표면에 노송나무나 대나무 등의 얇은 판을 붙인 차의 총칭이다.[13] 소매나 입판 등에 옻으로 그림 문양을 그린 것이 많다. 소매 표나 동 표를 하얗게 칠하고 가문자를 붙인 차는 '소매백의 차', '우와지로(상백)의 차'라고 불리며 대신의 승용이었다. 동, 소매, 구경거리 위에 문양을 그린 차를 '몬(문)의 차'라고 불렀다.

  • 반시부차(半蔀車): 물견 창에 시토미를 설치한 차이다.[14] 상황, 섭관, 대신, 대장이 사용한다. 노송나무를 망대로 붙인 망대차의 일종이다.

  • 팔엽차(八葉車): 망대차의 일종으로, 대신에서 공경, 지하까지 널리 사용한 차이다. 망대를 황록색(황록)으로 칠하고, 구요성(팔엽/큰 원 주위에 작은 원을 여덟 개 그린 것)의 문양을 그린 차이다. 문양의 크기로 구분하여 '대팔엽', '소팔엽' 등으로 불렀다.

  • 거차(柩車): 귀인의 장례 때 을 싣고 운반하는 차이다. 거차(지샤)라고도 한다. 다이쇼 천황의 대상의례에 사용된 거차는 교토에서 약 70명의 장인이 도쿄로 이동하여 단기간에 제작되었다.[15]

4. 갤러리

참조

[1] 서적 The Earliest Wheel Finds, their Archaeology and Indo-European Terminology in Time and Space, and Early Migrations around the Caucasus ARCHAEOLINGUA ALAPÍTVÁNY 2019
[2] 서적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 How Bronze-Age Riders from the Eurasian Steppes Shaped the Modern World.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 웹사이트 La carreta típica http://www.guiascost[...]
[4] 웹사이트 Oxcart festival remembering past https://www.thejakar[...]
[5] 웹사이트 Melacca government Portal - Menaiki Kereta Lembu. http://www.melaka.go[...]
[6] 웹사이트 Passenger bullock cart outside Malaysia Museum. https://archive.toda[...] 2010-02-14
[7] 웹사이트 Historical picture of bullock cart in Malaysia. https://web.archive.[...] 2010-09-15
[8] 서적 運ぶ手段 吉川弘文館 2016
[9] 서적 新訂総合国語便覧 第一学習社 1998
[10] 서적 旅 いろいろ地球人 淡交社 2009
[11] 서적 中世武家の作法 吉川弘文館 1999
[12] 서적 新訂総合国語便覧 第一学習社
[13] 웹사이트 網代 https://kotobank.jp/[...]
[14] 서적 例解 古語辞典:第二版 三省堂 1985
[15] 뉴스 難しい七種の哀音、轜車謹製の苦心 大阪毎日新聞 1926-12-30
[16] 뉴스 轜車を引く牛四頭を買い上げ 大阪毎日新聞 1927-01-05
[17] 웹사이트 軺車是什麼車 https://kknews.cc/hi[...]
[18] 서적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 How Bronze-Age Riders from the Eurasian Steppes Shaped the Modern World.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