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혼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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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명혼일도는 명나라 시기에 제작된 세계 지도로, 현재 중국 제1 역사 기록 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후반에 제작되었다는 주장과 1389년에서 1391년 사이에 제작되었다는 추정이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까지 포함하고 있는 동아시아 중세의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로 평가받는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유럽, 남쪽으로는 자와섬, 북쪽으로는 몽골까지 광대한 영역을 포함하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한반도와 중국 부분 묘사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지도는 원나라의 세계관을 반영하며, 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인도, 일본 등의 묘사에서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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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혼일도 | |
---|---|
지도 정보 | |
개요 | |
명칭 | 대명혼일도 (大明混一圖) |
유형 | 채색 필사본 지도 |
제작 시기 | 1402년 (추정) |
소장처 | 류코쿠 대학 도서관 |
상세 정보 | |
크기 | 가로 386cm, 세로 456cm |
묘사 범위 | 유라시아, 아프리카 |
제작 주체 | 불명 (당시 명나라 황제의 명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 높음) |
제작 참여자 (추정) | 이혜 (李惠) 청준 (慶濬) |
특징 | |
아프리카 묘사 | 당시 중국인의 아프리카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 |
지도 크기 | 현존하는 동아시아 고지도 중 가장 큼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의 관계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추정 |
기타 | |
가치 | 15세기 초 동아시아의 세계관 및 지리 정보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 |
참고 문헌 | 대명혼일도 관련 학술 논문 및 연구 자료 |
2. 제작 시기
1944년 이 지도를 열람했던 월터 퓨크스(Walter Fuchs)는 지명을 토대로 볼 때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측 연구에서는 지도상의 '광원현(廣元縣)', '용주(龍州)' 등의 지명을 토대로 명나라 초기인 1389년(홍무 22)에서 139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4] 이는 현존하는 동아시아 중세 세계지도 가운데 아프리카 대륙까지 포함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지도이다.
비단에 그려진 대형지도로 청초(淸初)에 한자 지명을 만문(滿文)으로 첨기한 점이 특징이다. 중국 내부 지역의 축척은 세로 1:106만, 가로 1:82만에 해당하며, 중국 이외의 지역은 변형이 심하다. 동쪽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유럽, 남쪽으로는 자와섬, 북쪽으로는 몽골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국가 간 경계선은 없고 지명이 표기된 사각형의 색깔로 구분하였다. 지도에는 명대의 산천과 행정단위가 주로 그려져 있다.[15]
지도에 표시된 중국의 지명은 1389년, 즉 홍무제 치세 22년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중국 학자들은 1389년 또는 그 직후에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1] 다른 학자들은 1389년에 제작된 것은 ''대명혼일도''의 원본 지도이며, ''대명혼일도'' 자체는 훨씬 나중에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2]
일본 학자 미야 노리코는 명나라가 1389년경에 지도를 제작한 동기에 대해, 명나라의 초대 황제인 홍무제가 1368년에 몽골의 원나라를 중국에서 몰아냈지만 몽골이 새로운 왕조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1388년 북원 우스칼 칸이 사망하고 쿠빌라이의 계승이 종결되면서 상황이 바뀌자, 명나라가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지도를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2]
3. 특징
이 지도는 1402년(조선 태종 2년) 이회가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거의 유사하지만, 한반도와 중국 부분을 매우 간략하게 표현한 점이 다르다.[16] 또한 인도 반도의 형태도 다른데, 대명혼일도에서는 인도가 돌출된 반도로 표현되었으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돌출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17]
3. 1.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의 비교
이회가 1402년(조선 태종 2년)에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대명혼일도와 거의 유사하지만, 한반도와 중국 부분을 대단히 소략하게 표현한 점이 다르다.[16] 또한, 인도 반도의 윤곽에서도 차이가 있다. 대명혼일도에서는 인도가 돌출된 반도로 그려져 있지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인도가 돌출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17]
학자들은 ''대명혼일도''가 현재는 유실된 세계 지도인 ''성교광피도''(聲教廣被圖)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추정한다.[5] 이 지도는 몽골 원나라 시대의 리쩌민(李澤民)이 제작한 것으로, 리쩌민의 지도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다른 지도들로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의 몇몇 사본과 ''동남해이도''(東南海夷圖) 및 ''서남해이도''(西南海夷圖) 등이 있다.[6] 이 지도들은 뤄훙셴(羅洪先)의 ''광여도''(廣與圖)(1555)에 기록되어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비교했을 때, ''대명혼일도''는 몽골, 중앙아시아, 인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7] 만주에서는 백두산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만주족 아이신 교로 황실 가문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인도가 "중국 대륙"에 포함된 형태로 그려진 반면, ''대명혼일도''는 인도를 반도로 묘사한다.[8] 이는 리쩌민의 지도에서는 인도가 반도로 묘사되었지만, 한국의 유교주의자들이 반불교 정책을 추진하면서 인도의 크기가 축소된 것으로 추정된다.[9] ''대명혼일도''의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유사하지만, 유럽은 상당히 다르다.[10] 또한, 황하의 발원지 묘사에서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뤄훙셴의 ''광여도''에 나타난 것과 매우 유사하다.[11]
4. 다른 고지도와의 관계
『대명혼일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윤곽이 비슷하여,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와의 관련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중국 부분은 『대명혼일도』와 『광여도(廣與圖)』 사이에 지명 표기가 유사한 경우가 많아, 『광여도』의 저본인 주사본의 『여지도』를 주로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대명혼일도』의 서남쪽 부분과 『광여도』 「서남해이도」의 비주(非州)가 유사하고, 비주 동쪽의 섬과 지중해 등의 지명 및 위치가 유사하므로, 유럽 및 아프리카 부분은 『성교광피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도와 해외(海外) 부분은 원대 찰마로정(札馬魯丁, 원 세조 쿠빌라이에게 여러 과학 기구를 만들어 바침[18])의 지구의(地球儀)를 참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현재 남아있는 지도를 바탕으로 계보를 추정한 결과론적 해석이라는 한계가 있다.[17]
학자들은 『대명혼일도』가 현재는 유실된 세계 지도인 『성교광피도』(聲教廣被圖)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추정한다.[5] 이 지도는 몽골 원나라 시대의 이택민(李澤民)이 제작하였다. 이택민의 지도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다른 지도들로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의 여러 사본과 『동남해이도』(東南海夷圖) 및 『서남해이도』(西南海夷圖)가 있으며,[6] 이 지도들은 뤄훙셴(羅洪先)의 『광여도』(廣與圖)(1555)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현존하는 지도들을 비교 연구하여 이택민의 원본 세계 지도의 내용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명혼일도』는 뤄훙셴의 사본이 해안 지역과 섬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명을 삭제했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한국 지도 제작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비교했을 때, 『대명혼일도』는 몽골, 중앙아시아, 인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7] 만주에서는 백두산(長白山)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었는데, 이는 만주족 아이신 교로 황실 가문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인도가 "중국 대륙"에 잠겨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이 지도에서는 인도를 반도로 묘사하고 있다.[8] 인도는 이택민의 지도에서는 반도로 묘사되었으나, 한국의 유교주의자들이 반불교 정책을 펴면서 축소된 것으로 추정된다.[9] 『대명혼일도』의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유사하지만, 유럽은 상당히 다르다.[10] 또한, 황하의 발원지 묘사에서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뚜렷하게 구별되며, 뤄훙셴의 『광여도』에 나타난 것과 매우 유사하다.[11]
5. 원나라적 세계관의 반영
몽골족이 세운 원 제국은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여 유럽까지 진출하였는데, 이로 인해 동서 간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명혼일도에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그려질 수 있었던 이유도 원 제국 시대의 동서 간 문화 교류에 기인했던 것으로 보인다.[19] 원나라가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하면서 유럽과 중앙아시아, 아랍 세계 및 아프리카 등에 대한 지리 정보가 한층 정확해졌으며, 이슬람 계통의 지도도 원나라를 통해 들어왔다. 원나라는 한족의 입장에서 이적(夷狄)인 몽골의 나라이기 때문에 중화(中華)와 이적을 차별하던 송나라의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을 버리고 이적과 중화가 하나가 되었다는 개념인 '혼일도(混一圖)'라는 명칭을 즐겨 썼다.[20] 대명혼일도는 명나라 때 제작되었으나 이와 같은 원나라적 세계관을 아직 탈피하지 못한 시대의 성격을 보인다. 이후에 제작된 『대명국지도(大明國地圖)』, 『대명일통지도(大明一統地圖)』, 『황명여도(皇明與圖)』등에서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이 빠지고 그 대신 명과 그 주변 국가들을 부각시킨 것이 특징으로, 원나라적 세계관을 벗어나 명나라 중심의 세계관을 확립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21]
6. 내용
비단에 그려진 대형지도로 청초(淸初)에 한자 지명을 만문(滿文)으로 첨기하여 붙인 점이 특이하다. 중국 내부 지역의 축척(비례척)은 종으로 1:106만, 횡으로 1:82만에 해당하고 중국 이외의 지역은 변형이 심하다. 동쪽으로는 일본, 서로는 유럽, 남으로는 자와섬, 북으로는 몽골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국가 간 경계선은 없고 단지 지명이 표기된 사각형의 색깔로 구분하였다. 지도에는 명대의 산천과 행정 단위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15] 이 지도는 1402년(조선 태종 2년) 이회가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와 거의 유사하지만, 한반도와 중국 부분을 매우 간략하게 표현한 점이 다르다.[16]
수 세기 동안 지도는 중국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이는 중국의 지도 기술을 최첨단으로 이끌었다. 당시 중국은 자기 나침반을 개발했으며, 13세기에는 이 장치의 서양식 버전이 유럽의 지도 제작술이 중국의 정확성 기준을 따라잡도록 했다. 격자 시스템을 사용한 돌에 새겨진 지도(1137년)가 남아있어, 현대 지도 제작술에서도 여전히 사용되는 기술을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14세기 초, 몽골의 지배가 유라시아 대부분 지역에 걸쳐 동서 간의 소통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을 때, 유럽과 아프리카의 이슬람 지도가 중국으로 유입되었고, 중국 지도 제작자들은 새로운 정보를 통합한 세계 지도를 만들었다.
학자들은 ''대명혼일도''가 현재는 유실된 세계 지도인 ''성교광피도''(聲教廣被圖)를 기반으로 했다고 여긴다.[5] 이 지도는 몽골 원나라 시대의 리쩌민(李澤民)에 의해 제작되었다. 리의 지도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현존하는 지도들로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의 몇몇 사본과 ''동남해이도''(東南海夷圖) 및 ''서남해이도''(西南海夷圖)가 있으며,[6] 이 지도들은 뤄훙셴(羅洪先)의 ''광여도''(廣與圖)(1555)에 기록되어 있다. ''대명혼일도''는 뤄의 사본이 해안 지역과 섬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명을 삭제했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한국 지도 제작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비교하여, ''대명혼일도''는 몽골, 중앙 아시아, 인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7] 만주에서는 백두산(長白山)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묘사되었는데, 이곳은 만주족 아이신 교로 황실 가문의 건국 신화가 자리 잡은 곳이다. ''대명혼일도''의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유사한 반면, 유럽은 상당히 다르다.[10] 또한, 황하의 발원지 묘사에서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뚜렷이 구별되는데, 뤄의 ''광여도''에 나타난 것과 매우 유사하다.[11] 지구의 곡률은 지도 중국 부분의 축척에도 영향을 미쳐, 수평적으로는 약 1:820,000, 수직적으로는 약 1:1,060,000이다.[12]
6. 1.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정확한 형태에 가깝게 묘사되었으며, 아프리카 남단 근처의 산맥까지 표현되어 있다. 아프리카 내륙에는 두 개의 수원지를 가진 강(고전 및 이슬람 지도에서 나일강의 일반적인 묘사)이 대륙 남쪽에서 시작하여 홍해로 들어가고, 나일강은 광대한 내해에서 시작된다.6. 2.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
『대명혼일도』에서 인도 반도는 돌출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반면, 1402년 (조선 태종 2년) 이회가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는 인도가 돌출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17]아라비아 반도는 수평으로 압착되었지만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이다. 중국 대륙 서해안의 눈에 띄는 반도는 말레이 반도이지만, 인도는 아라비아 북서쪽에 위치한 지명들의 집합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6. 3. 일본과 타이완
대명혼일도에서 일본은 과도하게 크고 모양이 이상하며, 더 정확한 크기와 위치를 가진 타이완과 혼란스럽게 만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외부 자료와의 협력을 시사한다.[12]7. 보관
이 지도는 황궁에 보관되었으며, 일부 목록에서는 ''청자견일통도''(清字簽一統圖, 만주 문자로 표기된 통일 지도)라고 불렸다.[3] 현재 이 지도는 베이징에 있는 중국 제1 역사 기록 보관소의 보호 저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2002년에는 남아프리카 정부를 위해 실물 크기의 디지털 복제본이 제작되었다.[4]
참조
[1]
논문
1994
[2]
논문
2006
[3]
논문
1962
[4]
간행물
Ancient map of Africa poses questions
http://groups.google[...]
AFP press release
2002-11
[5]
논문
1975
[6]
논문
1975
[7]
논문
2007
[8]
논문
1962
[9]
논문
2006
[10]
서적
Daichi no shōzō: Ezu, chizu ga kataru sekai
[11]
논문
2007
[12]
논문
1994
[13]
서적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효형출판
1999
[14]
논문
조선시대의 세계지도와 세계 인식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1
[15]
논문
위의 논문
[16]
서적
위의 책
[17]
논문
위의 논문
[18]
웹인용
과학사
https://web.archive.[...]
2008-05-18
[19]
논문
위의 논문
[20]
서적
위의 책
[21]
서적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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