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 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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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조선 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은 1891년 조선 정부가 매입하여 공사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877년에 건축된 빅토리아 양식 건물로,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관리권이 넘어갔다가, 1910년 일본 공사에게 매각되었다. 이후 개인 주택 등으로 사용되다 2012년 대한민국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하여 복원, 2018년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2024년에는 컬럼비아 특별구 역사 유적 목록과 미국 국립 사적지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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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 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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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명칭 | 구한말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
원어 명칭 | Old Korean Legation Museum |
다른 이름 | 대조선 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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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미국 워싱턴 D.C. 로건 서클 1500 13번 가 NW (15 Logan Circle NW (1500 13th Street NW)) |
좌표 | 38°54′37.3″N 77°1′47.4″W |
종류 | 역사적인 집 박물관 |
지정 현황 | 컬럼비아 특별구 역사 랜드마크 (DCIHS) (2024년 7월 25일) 국가 사적 등록재 (NRHP) (2024년 9월 9일, 번호: 100010773) 로건 서클 역사 지구의 일부 (CP) (1972년 6월 30일, 번호: 72001426) 그레이터 포틴스 스트리트 역사 지구의 일부 (CP) (1994년 11월 9일, 번호: 94000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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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정보 | |
완공일 | 1877년 |
건축가 | 토머스 M. 플로먼 (Thomas M. Plowman) |
건축 양식 | 빅토리아 건축 |
개장 | 1891년 (주미조선공사관) |
소유주 | 대한민국 문화재청/문화유산국민신탁 |
역사 | |
매입 가격 | 10 달러 (1910년) |
비고 | 물가상승률 감안 시 현재 가치 환산 |
2. 역사
1891년 11월, 조선 정부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1877년에 건축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빅토리아 양식 건물을[33] 당시 거액인 2.5만달러에 매입하여 ‘대조선 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美國華盛頓公使館)으로 명명하고 공사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32]
1897년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한 이후에도 공사관 건물은 계속 사용되었으나, 1905년 11월 일본 제국의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공사관 건물의 관리권 역시 일본 제국에게 넘어가게 되었다.[32]
1910년 6월, 일본 제국은 이 건물을 당시 주미국 일본 제국 공사였던 우치다 고사이(内田康哉) 백작에게 단돈 5USD라는 헐값에 매각했다. 우치다 고사이는 불과 석 달 뒤인 같은 해 9월, 이 건물을 미국인 풀턴(Fulton)에게 1만달러에 되팔았으나, 워싱턴 D.C.의 부동산 등기부에는 관례에 따라 10USD에 거래된 것으로 기록되었다.[34]
이후 100여 년간 개인 소유 및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공사관 건물은 2012년 8월, 대한민국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총 373만달러(당시 약 42억원)에 다시 매입하여 마침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32]
2. 1. 건립 이전
1877년 12월 16일, 세스 레디야드 펠프스는 당시 워싱턴 D.C.의 아이오와 서클(Iowa Circle, 1930년 존 A. 로건 장군을 기려 로건 서클로 개칭됨)[1][2] 15번지에 7개의 침실을 갖춘 주택 건설 허가를 받았다. 펠프스는 미국 해군 장교 출신으로 미국-멕시코 전쟁과 미국 남북 전쟁에 참전했으며, 이후 지역 위원회 의장과 페루 주재 공사를 역임한 인물이다.[3]건축가 토마스 M. 플로먼(Thomas M. Plowman)이 설계를 맡았고, 조셉 윌리엄스(Joseph Williams)가 5500USD의 비용으로 건설했다.[3]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약 585.29m2 면적을 가진 벽돌 주택으로,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졌다.[33][3] 주석 지붕, 장식용 난간, 주철 현관이 특징이며, 오하이오 사암 장식과 돌출된 만창을 갖추고 있었다.[1][4][5]
펠프스는 부동산 개발업자이기도 했으며, 로건 서클 15번지의 이 주택은 그가 이 지역에 건설한 최초의 대형 주택 중 하나였다.[3] 그는 인근에 1202 Q 스트리트, 1500-1504 버몬트 애비뉴, 1502 13번가 등의 다른 건물들도 건축 의뢰했다.[6][7][8] 1885년 펠프스가 사망한 후, 그의 아내 리지(Lizzie)와 딸 샐리(Sally)가 이 집에 계속 거주했으며, 1504 버몬트 애비뉴의 소유권은 1919년까지 유지했다.[3]
2. 2. 대한제국 공사관 시절 (1891-1905)
1891년 11월, 조선 정부는 미국 워싱턴 D.C. 로건 서클에 위치한 건물을 당시 거액인 25000USD에 매입하여 공사관으로 사용하였다.[32][9][10] 이는 고종이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독자적인 외교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9][10] 이 건물은 ‘대조선 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美國華盛頓公使館)으로 명명되었다.[32] 건물은 1877년에 건축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빅토리아 양식 건축물이며,[33] 조선 정부는 이 건물을 펠프스의 사위였던 세벨론 A. 브라운(Sebellon A. Browneng)으로부터 매입했다.[9][10]1888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 공사로 임명되어 워싱턴 D.C.에 처음 공사관을 개설한 이래[9][10][11][12][13], 청나라는 조선의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방해하려 했다.[14][15] 청나라는 조선 관리들에게 다른 외교관들과 접촉하거나 외교 업무에 관여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조선 측은 이를 무시했다.[14][15] 미국 정부는 조선의 자주 외교를 지지하며 공사관 유지를 도왔다.[14][15]
189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한 이후에도 이 건물은 계속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다.[32] 1898년 4월에는 공사관 3층의 굴뚝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 화재로 가구와 서적이 소실되고 건물 일부가 손상되었으나, 당시 공사였던 이범진과 그의 가족은 무사했으며, 이웃들의 도움으로 중요 문서들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16]
그러나 1905년 11월, 일본 제국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다.[32][9][17][18] 이로 인해 주미 공사관은 기능을 상실하고 사실상 폐쇄되었으며, 건물 관리권도 일본 제국에 넘어갔다.[32]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공사 윤치호가 사용하던 로건 서클의 건물은 더 이상 공사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9][17][18] 1906년 1월에는 김 공사가 미국 국무부 직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공사관의 폐쇄는 공식화되었다.[9][17][18] 이후 미국 정부는 엘리후 루트 국무장관의 주도로 일본 공사관을 통해 대한제국 관련 외교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고,[9][17][18] 공사관의 재산과 기록물 역시 일본 측에 넘겨졌다.[9][17][18]
2. 3. 일제 강점기 (1905-1945)
1905년 11월, 대한제국은 을사늑약 체결로 외교권을 박탈당하면서 공사관 건물의 관리권 역시 일본 제국에 넘어가게 되었다.[32] 이후 1910년 6월, 해당 건물은 당시 주미국 일본 제국 공사였던 우치다 고사이(内田康哉) 백작에게 단돈 5USD라는 헐값에 매각되었다. 우치다 고사이는 불과 석 달 뒤인 같은 해 9월, 이 건물을 미국인 풀턴(Fulton)에게 1만달러에 되팔았다. 그러나 워싱턴 D.C.의 부동산 등기부에는 관례에 따라 실제 매각 가격 대신 10USD에 거래된 것으로 기록되었다.[34]2. 4. 매각 이후 (1910-2012)
1910년 6월, 공사관 건물은 을사늑약 이후 관리권을 넘겨받은 일본 제국에 의해 당시 주미 일본 공사였던 우치다 고사이 백작에게 단돈 5USD에 매각되었다.[34] 우치다는 같은 해 9월 미국인 풀턴에게 1만달러에 되팔았는데, 워싱턴의 부동산 대장에는 관례에 따라 10USD로 기재되었다.[34]이후 수십 년간 건물은 개인 주택, 194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 팀스터 노조 회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4][2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한민국이 해방되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한국 정부는 역사적인 공사관 건물을 되찾기를 염원했다.[21]
1977년, 티모시 젠킨스와 로레타 젠킨스 부부가 이 집을 매입했다. 당시 주변 지역은 매춘과 마약 거래의 온상으로 알려질 정도로 낙후된 상태였으며,[4] 인접한 건물(1502 13번가)은 1976년 폐쇄될 때까지 사창가로 운영되기도 했다.[21][22] 젠킨스 부부는 약 35년간 거주하는 동안 집을 팔 의향이 있는지 묻는 한국인들의 방문을 꾸준히 받았다.[4] 처음에는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완전히 알지 못했으나, 1980년대 어느 날 집 앞에 서 있던 전 대한민국 육군 장군이자 초대 공사의 손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집을 안내하면서 그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4][19] 하지만 젠킨스 부부는 건물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매각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19][23]
2000년대 중반, 한 한국계 미국인 단체가 건물 매입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벌였으나 8만달러를 모으는 데 그쳐 실패했다.[5] 2008년부터 주미 대한민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젠킨스 부부와 본격적인 매입 협상을 시작했다. 부부는 처음에 600만달러를 요구했으나 협상은 계속되었다.[4]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물 매입 예산으로 30억원 (당시 약 260만달러)을 배정했다.[4]
2012년,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본격적으로 매입 캠페인을 추진했고, 젠킨스 부부가 주미 대한민국 대사와의 만찬에 초대된 직후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감정가는 165만달러였으나, 최종 매입 가격은 350만달러였다.[4][24]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총 373만달러(당시 약 42억원)에 건물을 매입하여 마침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32]
공사관 건물의 반환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부동산 매입을 넘어,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는 국가적 승리로 여겨졌다.[19][24]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은 "이것은 단순한 건물 매입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빼앗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19][24] 문화재청 김찬 청장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에게서 훔쳐간 모든 역사를 되찾을 수는 없지만, 이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매우 의미 있고 역사적인 날입니다."라고 말했다.[19][24]
이 매입은 독도 분쟁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 및 보상 요구 등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된 시기에 이루어졌다. 주미 일본 대사관 측은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5] 한국 언론들은 이 매각을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을 상징적으로 바로잡는 것"으로 평가했으며,[4] 건물 매입 운동을 벌였던 고종 황제의 증손녀 에이미 리는 "우리가 충분히 강해지고 다시 사들일 돈이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5]
2. 5. 대한민국으로의 귀환 (201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한민국이 해방되자,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한국 정부는 역사적인 공사관 건물을 다시 매입하고자 노력했다.[21] 그러나 건물은 수십 년 동안 개인 주택,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 팀스터 노조 회관 등으로 사용되었다.[4][21]1977년, 티모시 젠킨스와 로레타 젠킨스 부부가 이 집을 매입했다.[4] 당시 주변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았고, 인접한 집은 사창가로 운영되기도 했다.[21][22] 젠킨스 부부는 집을 구매한 직후부터 한국인들이 찾아와 매각 의사를 묻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부부는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있었지만, 팔 생각은 없었다.[4][19] 그러던 1980년대 어느 날, 집 앞에 서 있던 한 남성과의 만남을 통해 건물에 담긴 한국인들의 염원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는 초대 공사의 손자이자 전 한국 육군 장군이었고, 젠킨스 부부의 안내로 집을 둘러보며 매우 경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4][19]
이후에도 한국인들의 매입 제안은 계속되었지만, 젠킨스 부부는 건물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매각을 망설였다.[19][23] 2000년대 중반에는 한국계 미국인 단체가 매입 운동을 벌였으나 충분한 자금을 모으지 못했다.[5]
본격적인 재매입 논의는 2008년, 주미 대한민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젠킨스 부부와 협상을 시작하면서 이루어졌다. 당시 젠킨스 부부는 600만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4] 이듬해인 2009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물 매입을 위해 원화 30억원 (당시 약 260만달러) 예산을 편성했다.[4] 2012년, 대한민국 문화재청(CHA)이 문화유산국민신탁과 함께 본격적인 매입 캠페인을 시작했고, 젠킨스 부부를 주한 대한민국 대사와의 만찬에 초대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문화재청이 고용한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매입 가격 합의에 이르렀다. 당시 건물의 감정가는 165만달러였으나, 최종 매입 가격은 350만달러였다.[4][24] 최종적으로 2012년 8월, 대한민국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총 373만달러(당시 약 42억원)에 건물을 매입하여 대한민국 품으로 되찾아왔다.[32]
공사관 건물의 귀환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부동산 매입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은 "이것은 단순한 건물 매입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빼앗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19][24] 문화재청 김찬 청장 역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에게서 훔쳐간 모든 역사를 되찾을 수는 없지만, 이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매우 의미 있고 역사적인 날"이라고 소회를 밝혔다.[19][24]
특히 이 매입은 독도 분쟁과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되었던 시기에 이루어져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되었다.[5] 한국 언론들은 이를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을 상징적으로 바로잡는 것"으로 평가했다.[4] 건물 매입 운동에 참여했던 고종 황제의 증손녀인 에이미 리는 "우리가 충분히 강해지고 다시 사들일 돈이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말했다.[5] 주미 일본 대사관 측은 이 사안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5]
3. 복원 및 박물관 개관
건물 매각 후, 대한민국 정부는 이 건물을 문화 센터로 활용할 계획을 밝혔다.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건물은 미국 대중에게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고 한국인에게 역사적 교훈을 가르치는 교두보로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19] 2013년, 공사관 건물에 대한 조사와 새로운 센터 설계를 시작했으며,[9] 같은 해 이 건물은 로건 서클의 유산 길에 포함되어 건물 앞에 공사관의 역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되었다. 이 길의 공개 행사에는 당시 주미대사였던 안호영을 비롯한 대한민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25]
2015년부터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9][15][26] 2018년 5월 22일, 건물에 태극기가 다시 게양되고 '구 대한제국 공사관 박물관'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15] 공식 개관식은 며칠 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워싱턴 D.C. 방문 일정에 맞춰 열렸다.[26]
3. 1. 박물관의 구성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건물은 19세기 말의 모습으로 광범위하게 개조되고 복원되었다.[9][15][26] 외관은 원래의 빅토리아 양식 건축 세부 사항을 특징으로 하며, 내부는 이러한 세부 사항과 한국 장식품을 조화롭게 결합했다. 각 방은 1889년부터 1905년까지 사용되었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복원을 위해 골동품 가구를 구매하고, 벽지와 카펫은 당시 시대를 반영하도록 신중하게 선택되었다.[9][15][26] 건물 옆의 작은 주차장은 화벽과 화강암으로 된 불로문(한국어로 ''bulomun'')이 있는 정원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단장된 박물관 내부는 도서관, 사진 전시실, 공사관의 침실, 개인 사무실 및 연회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9][26]3. 2. 개관 이후
건물 매각 후, 대한민국 정부는 이 건물을 문화 센터로 활용할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건물은 미국 대중에게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고 한국인에게 역사적 교훈을 가르치는 교두보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19] 2013년에는 부동산 조사와 새로운 센터 설계를 시작했으며,[9] 같은 해 이 건물은 로건 서클의 유산 길에 포함되어 건물 앞에 공사관의 역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되었다. 이 길의 공개 행사에는 당시 주미대사였던 안호영을 비롯한 대한민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25]2015년부터 2018년까지 건물은 19세기 말의 모습으로 광범위하게 복원되었다. 외관은 본래의 빅토리아 양식 세부 사항을 살렸고, 내부는 이러한 특징과 한국적 장식을 조화롭게 결합했다. 각 방은 1889년부터 1905년까지 사용되었던 이름으로 다시 명명되었으며, 고풍스러운 가구를 구매하고 벽지와 카펫도 당시 시대를 반영하여 선택했다.[9][15][26] 건물 옆의 작은 주차장은 화벽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불로문한국어이 있는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새롭게 단장된 건물에는 도서관, 사진 전시실, 공사관의 침실, 개인 사무실, 연회장 등이 마련되었다.[9][26]
2018년 5월 22일, 건물에 대한민국 국기가 게양되면서 '구 대한제국 공사관 박물관'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15] 공식 개관식은 며칠 뒤 문재인 대통령의 워싱턴 D.C. 방문 일정에 맞춰 열려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26] 박물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9]
개관 이후 박물관은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군의 한국 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박물관 건물 외부와 주미 대사관 영사과 및 문화 센터에는 기념 현수막이 게시되었다. 현수막에는 평화, 연대, 기억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양국 국기, 그리고 "미국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27] 또한, 미국 국빈 방문 중이던 김건희 여사는 박물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여 오토 웜비어의 어머니와 탈북민 조셉 김 등을 만나기도 했다.[28]
이 건물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4년 7월 25일 컬럼비아 특별구 역사 유적 목록에, 같은 해 9월 9일에는 미국 국립 사적지에 등재되었다.[29][30] 또한 로건 서클 역사 지구 및 그레이터 제14번가 역사 지구의 기여 재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1][31]
4. 역사적 의의
구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은 1891년 조선 정부가 2.5만달러에 매입하여 자주적인 외교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다.[32] 1877년에 건축된 지하 1층, 지상 3층의 빅토리아 양식 건물로,[33] 대한제국 시기까지 그 역할을 이어갔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공사관 건물 역시 일본 제국에 의해 관리권이 넘어가는 비운을 맞았다.[32] 일제는 1910년 6월, 이 역사적인 건물을 단돈 5달러라는 헐값에 당시 주미 일본 공사였던 우치다 고사이 백작에게 매각하였고, 그는 같은 해 9월 미국인에게 1만달러 (장부상 10달러)에 되팔았다.[34] 이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국권 침탈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빼앗겼던 공사관 건물은 100여 년이 지난 2012년 8월, 대한민국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노력으로 총 373만달러(당시 약 42억원)에 다시 매입되었다.[32] 이 재매입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를 넘어, 아픈 역사를 바로 세우고 국가의 자존을 되찾으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 복원되어 대한제국의 자주 외교 노력을 기리고, 일제 침탈의 역사를 되새기며, 한미 관계의 역사를 조명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게 교훈을 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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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입 서명운동… 대한제국 駐美공사관 건물 내부 공개〉 벽난로·거울·칸막이… 100년 전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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