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 특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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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군 특수부대는 대한민국 국군의 정규 부대와 비정규 부대를 통칭하며,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다양한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 1948년 창설된 제803독립대대를 시작으로, 한국 전쟁 중 KLO 첩보대, 백골병단 등 다양한 부대가 창설되어 활동했다. 휴전 이후 육군 특수전사령부, 해군 특수전전단, 공군 공정통제사 등이 창설되었고,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계기로 제707특수임무단이 창설되었다. 각 군별로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며, 해병대 특수수색대대도 창설되어 대테러, 적지 종심 작전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해난구조대, 공정통제사 등도 특수전부대로 인정받아 관련 분야 특채 시 경력으로 인정된다.
대한민국 특수부대의 역사는 시기에 따라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2. 역사
2. 1. 초창기 (1948~1950)
광복 이후, 조선인민유격대가 남한에 잠입하여 활동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48년 10월 이범석 국방부 장관의 명령으로 육군 본부 정보국에 제803독립대대 "보국", 1949년 2월 25일에 호림부대, 1948년 11월 25일에 수색학교, 11월 6일에 유격대 등의 부대를 창설하였다. 호림부대는 5, 6대대로 편성되어 설악산에서 활동하였다.
6.25 전쟁 발발 9달 전인 1949년 9월 11일, 5, 6대대 부대원 44명이 한 달 전인 1949년 8월 중순,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 일대의 북한 땅에 침투해 양민을 학살했다는 혐의로 평양시 모란봉에 있는 최고재판소 특별 법정에서 피고 전원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호림부대 부대원 44명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전향해서 한국 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1]
호림부대가 해체된 후, 호국군에 편입되고 남은 병력은 현역으로 입대하였다. 제803독립대대 "보국"은 1950년 6월 북한으로 침투할 예정이었으나, 주한 미군 군사 고문단(KMAG)의 반대로 취소되었고 6.25 전쟁 발발 후 7월 10일에 해체되어, 병력은 제1군단에 편입되었다. 1948년 12월 31일, 당시 활동 중이던 각 여단에 반란군 및 공비를 소탕하기 위한 1개 유격대대가 편성되었다가 1949년 해체되었다.[2] 같은 해, 군정기를 마친 주한 미군(United States Force In Korea (USFIK)영어)이 철수하면서 KLO 첩보대를 창설하였다.[3]
2. 2. 한국 전쟁 (1950~1953)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KLO부대, 백골병단, 영도유격대[4] 등 여러 특수부대들이 한반도 각지에서 창설되었다. 이들은 조선인민군 후방으로 침투하여 주요 구조물을 파괴하고 요인을 납치하거나 암살하고, 첩보 및 정찰 등 특수 작전을 수행하였다. 1951년에는 비정규전 부대가 제8240부대로 통합되었다.
2. 3. 정규 특수부대 창설 (1953~1988)
한국 전쟁 휴전 이후, KLO 첩보대와 각종 유격대는 제8240부대로 통합되었다가, 1953년 8월 국방부 제8250부대로 통합되었다. 1954년 1월, 육군 직할대로 예속되었고, 제8250부대에 남아 정식 군인이 되기를 원했던 대원들에게 대한민국 육군 군번과 계급이 정식으로 부여되었다. 이후 제8250부대는 해체되었고, 소속 부대원들은 육군 여러 부대로 배치되었다.[5]
1958년 4월 1일, 육군 본부 특전감실에서 백문오 대령의 지휘 아래 제1전투단 제7725부대가 창설되었다. 창설 요원들은 1958년 4월 15일부터 일본 오키나와현에 주둔한 미국 육군 특전부대인 제1특전단에 파견되어 공수 및 특수전 교육을 위탁받았다. 귀국 후 이들 중 일부는 교관이나 조교가 되어 신입 대원들을 대상으로 자체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부대는 1959년 제1공수특전단으로 개편되었다.[5]
1·21 사태와 울진·삼척 지구 공비 침투 사건으로 북한 특수부대의 위력이 알려지자, 육군 특수전 부대 증강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1969년 8월 18일, 제1공수특전단과 동해안경비사령부의 제1, 2유격여단(1969년 1월 1일 창설)을 통합하여 육군특수전사령부가 창설되었다. 1970년대에 특전사령부 예하 공수특전여단이 추가 창설되었다.[5] 1970년 제1공수특전단은 제1공수특전여단으로 증편되었고, 제1, 2 유격여단은 각각 제3 "비호", 제5 "흑룡" 공수특전여단으로 개편되었다.[6] 1974년 10월 1일에는 제7 "천마", 제9 "귀성" 공수특전여단이, 1977년 7월 1일에는 제11 "황금박쥐", 제13 "흑표" 공수특전여단이 창설되었다.[5]
1982년 4월 17일 12·12 군사 반란으로 특수전사령관이 직접 지휘할 부대의 필요성과 1988년 하계 올림픽에 따라 "국가 대테러 활동 지침"을 세우고 제707특수임무대대를 창설하였다.[7]
대한민국 해군은 한국 전쟁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특수부대 필요성을 느껴, 1954년 미국 해군 수중 폭파대 훈련 과정에 요원들을 파견, 1955년 11월 25일까지 훈련을 이수하게 했다. 이들이 훈련시킨 25명으로 수중 폭파대와 같은 목적의 부대를 창설하였다. 1968년 폭발물 해제(EOD) 임무가 추가되었고, 1976년 네이비 실처럼 육해공(SEAL) 임무가 추가되었다. 1993년에는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대로부터 해상 대테러 임무를 이관받았고, 1999년 5월 해상대테러 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대테러특임대가 창설되었다. 2000년 1월 1일 특수전여단이 창설되었고,[8] 2012년 2월 1일 전단으로 증편되어 해군 특수전전단이 되었다.[9] UDT 혹은 UDT/SEAL이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 공군은 1968년 1·21 사태에 대한 보복으로 김일성 암살을 위한 제20특무전대(2325 부대) 209파견대 "684부대"를 창설했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안정되면서 부대 해체를 결정했고, 이에 반발한 부대원들이 실미도를 탈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군은 이들을 훈련시킨 성과를 바탕으로 1978년 공정통제사(CCT)를 창설하였다.[10]
2. 4. 발전 및 확대기 (1988~)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계기로 제707특수임무대대가 창설되었다.[1] 2018년에는 해병대가 해병대 특수수색대대를 창설하여 대테러 특수임무, 적지 종심 작전, 해상 및 공중 침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1]
해병대 특수수색대대는 2018년 5월 1일 전진구 중장(해사 39기)의 주도로 창설되어 해병대사령부 직할부대가 되었다.[1] 전진구 중장은 위관장교 시절부터 해병수색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해군 UDT/SEAL 및 육군 특수전사령부 위탁교육을 수료하는 등 특수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1] 그는 해병대사령관으로서 기존 수색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간부 위주의 특수작전부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특수수색대를 창설하였다.[1] 창설 초기에는 소령이 부대장을 맡는 소규모 부대였으나, 2021년까지 대대 규모의 완전한 간부 편제를 목표로 인원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1]
3. 각 군별 특수부대
해난구조대, 공정통제사,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해병대수색대, 군사경찰 특수임무대 등도 특수전 부대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소방공무원, 경찰특공대, 해양경찰특공대 특채 지원에 활용할 수 있다.
3. 1. 육군
한국 전쟁 동안 KLO 첩보대와 각종 유격대는 미군 제8240부대로 통합되었다가 1953년 휴전을 맞아 같은 해 8월에 국방부 제8250부대로 통합되었다. 이듬해 1월 육군 직할대로 예속되었고, 제8250부대에 남아 정식 직업군인이 되기를 원했던 소속 대원들에게는 육군 군번과 계급이 정식으로 부여되었다. 이후 제8250부대는 해체되었고 소속 부대원들은 육군의 여러 부대로 배치되었다. 1958년 4월 1일 육군 본부 특전감실에서 군에 남은 전 제8250부대원들을 소집하여 백문오 대령의 지휘 아래 제1전투단 제7725부대를 창설했다. 제1 전투단 창설요원들은 1958년 4월 15일부터 일본 오키나와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육군 특전부대인 제1특전단으로 파견가서 공수교육과 특수전교육을 위탁교육 받았고, 귀국 후엔 이들 중 일부가 교관 또는 조교 요원이 되어 이후 새로 전입해온 신입 대원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인 공수훈련과 특수전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부대는 이듬해인 1959년에 제1공수특전단으로 개편하였다.
1.21 사태 및 울진·삼척 공비 침투사건을 통해 북한의 대규모 특수부대의 존재와 위력이 알려지자, 한국군에서도 육군 특수전 부대의 규모를 대폭 늘릴 필요성을 느꼈다.
3. 1. 1. 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
한국 전쟁 이후 KLO 첩보대와 유격대들은 미군 제8240부대를 거쳐 1953년 국방부 제8250부대로 통합되었다. 이들은 1954년 육군 직할대로 예속되었고, 1958년 백문오 대령 지휘 하에 제1전투단 제7725부대로 창설되었다. 이들은 미 육군 특전부대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고, 1959년 제1공수특전단으로 개편되었다.[5]
1.21 사태와 울진·삼척 공비 침투 사건 이후, 1969년 8월 18일 육군특수전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제1공수특전단과 동해안경비사령부의 제1, 2유격여단이 통합되었고, 1970년대에 걸쳐 특전사령부 예하 공수특전여단들이 추가로 창설되었다.[5] 1970년 제1공수특전단은 제1공수특전여단으로, 제1, 2 유격여단은 각각 제3 "비호", 제5 "흑룡" 공수특전여단으로 개편되었다.[6] 1974년에는 제7 "천마", 제9 "귀성" 공수특전여단이, 1977년에는 제11 "황금박쥐", 제13 "흑표" 공수특전여단이 창설되었다.
1982년 4월 17일 12·12 군사 반란 이후 1988년 하계 올림픽을 대비하여 제707특수임무대대가 창설되었다.[7]
3. 2. 해군
대한민국 해군은 한국 전쟁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특수한 목적의 부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954년 미국 해군 수중 폭파대 훈련 과정에 7명의 요원을 파견하였다. 이들은 1955년 11월 25일까지 훈련을 받고 돌아와, 훈련받은 25명과 함께 수중폭파대와 같은 목적의 부대를 창설하였다. 1968년에는 폭발물 해제(EOD) 임무가 추가되었고, 1976년에는 네이비 실처럼 해상뿐만 아니라 육상과 공중(Sea, Air, and Land (SEAL)영어)에서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1993년에는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대로부터 해상 대테러 임무를 넘겨받았으며, 1999년 5월에는 해상 대테러 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대테러특임대가 창설되었다. 이러한 임무 확대와 규모 증편 과정을 거쳐 2000년 1월 1일 특수전여단이 창설되었다.[8] 2012년 2월 1일, 특수전여단은 전단으로 증편되어 해군특수전전단이 되었다.[9] 이러한 공식적인 부대 명칭 변경과 관계없이, UDT 혹은 UDT/SEAL이라고도 불린다.
3. 3. 공군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공군 정보부는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제20특무전대(2325 부대) 209파견대 "684부대"를 창설하여 훈련시켰다. 대한민국과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가 안정되면서, 기밀 유지를 위해 부대를 해체하려 했으나 684부대는 이에 반발하여 실미도를 탈주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공군은 이들을 훈련시킨 성과를 바탕으로 1978년 공정통제사(CCT)를 창설하였다.[10]
3. 4. 해병대
해병대 특수수색대대는 2018년 5월 1일 해병대사령부 직할부대로 창설되었다. 당시 해병대사령관이었던 전진구 중장(해사 39기)은 위관장교 시절부터 해병수색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해군 UDT/SEAL 및 육군 특전사 위탁교육을 수료하는 등 특수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1] 그는 해병대사령관이 되자 기존 수색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간부 위주의 특수작전부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특수수색대를 창설했다.[1]
창설 초기에는 간부 인원 확보 문제로 소령이 부대장을 맡는 소규모 부대로 출발했으나, 지속적인 인원 확충을 통해 2021년까지 대대 규모의 완전한 간부 편제를 목표로 증편되고 있다.[1] 해병대 특수수색대대는 기존 해병수색대의 임무 외에도 대테러 특수임무, 적지 종심 작전, 해상 및 공중 침투 임무를 수행한다.[1]
4. 과거의 특수부대
KLO 첩보대, 제8240부대, 백골병단, 영도유격대는 과거에 존재했던 대한민국 국군 특수부대이다.[10]
1968년 1월 21일, 조선인민군 124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공군 정보부는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제20특무전대(2325 부대) 209파견대, 일명 "684부대"를 창설하여 훈련시켰다.[10] 그러나 남북 관계가 안정되면서 기밀 유지를 위해 부대 해체가 결정되었고, 이에 반발한 부대원들은 실미도를 탈주하여 북한으로 진격하려다 진압되었다.[10] 이후 공군은 684부대 훈련 성과를 바탕으로 1978년 공정통제사(CCT)를 창설하였다.[10]
참조
[1]
웹인용
북한 침투 호림부대 공판장면 기록 필름 발굴
http://imnews.imbc.c[...]
MBC
2000-06-22
[2]
웹인용
특수부대(보국대,호림부대)
http://theme.archive[...]
국가기록원
2007-12-01
[3]
웹인용
육이오 때의 '켈로부대'를 아십니까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06-10-14
[4]
뉴스
영도유격부대 활동 입증하는 CIA 비밀문건 공개
http://www.newdaily.[...]
뉴데일리
2012-10-05
[5]
간행물
한국 스카이다이빙 역사
http://www.kpa.or.kr[...]
대한낙하산회
2012-01-17
[6]
뉴스
특전사 요원들, 스파이더맨으로 ‘둔갑’
https://news.joins.c[...]
중앙일보
2020-11-28
[7]
뉴스
"국가가 부를땐 군복이 수의" 707특수임무부대
http://weekly.hankoo[...]
주간한국
1998-09-03
[8]
웹인용
UDT/SEAL의 연혁
http://udtseal.or.kr[...]
2012-09-18
[9]
웹인용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 전단 창설식을 끝내고
http://udtseal.or.kr[...]
2012-02-02
[10]
웹인용
실미도의 후예 공군 CCT부대…우린, 죽음까지 제압한다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0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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