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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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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무리아는 1864년 동물학자 필립 스클래터가 여우원숭이 화석의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가설상의 대륙이다. 스클래터는 인도양에 존재했던 대륙을 상정하고, 여우원숭이의 학명에서 따온 '레무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1912년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이 발표되면서 레무리아 가설은 폐기되었다. 이후 레무리아는 신지학, 오컬트, 뉴에이지 등에서 잃어버린 대륙으로 묘사되며, 대중문화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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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무리아
개요
위치인도양 (가설)
주요 주장대륙 이동설 이전의 가설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분포 설명
인종학적 이론: 문명 발상지로서의 역할
관련 분야고대 문명
초고대 문명
인종
오컬트
어원 및 명칭
명칭 유래여우원숭이 (Lemur) 서식지 연결 가설
역사적 맥락
제창자필립 스클레이터 (Philip Sclater)
주장 시기1864년
주장 배경대륙 이동설 부재 시기, 생물 분포 설명 필요성
초기 목적지질학적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
과학적 반증
대륙 이동설대륙 이동 증거 발견으로 르무리아 가설 불필요
해저 지질 조사인도양 해저에서 침몰 대륙 증거 발견 실패
대중문화 속의 르무리아
관련 개념아틀란티스
뮤 대륙
등장 작품다양한 소설, 영화, 게임 등에서 소재로 활용
기타
관련 인물엘레나 블라바츠키
찰스 덜리틀 월콧

2. 과학적 기원

레무리아 대륙에 대한 전설은 인도의 고대 도시 마두라이와 관련된 전설에도 언급되며, 남인도 대부분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레무리아의 존재를 처음으로 주장한 것은 1864년 영국의 동물학자인 필립 스클래터였다.

레무리아 대륙의 어원이 된 여우원숭이


당시 새로운 이론이었던 진화론에 근거해 여우원숭이의 진화 과정을 조사하던 스클래터는 여우원숭이 화석이 인도뿐만 아니라, 동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섬오스트레일리아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일대에서도 발견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당시에는 대륙이동설이 발표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스클래터는 선사시대 인도양에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륙의 존재를 가정하여 이를 설명하려 했고, 여우원숭이의 학명(Lemuriformes)에서 따와 '레무리아'(Lemuria)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1912년 독일의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을 발표하자 스클래터의 가설은 곧 폐기되었다. 레무리아는 생물지리학적 불연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로 세워진 침강된 육교였으나, 이 아이디어는 현대 판 구조론에 의해 구식이 되었다. 태평양의 뉴질랜드 대륙과 인도양의 모리셔스[2], 케르겔렌 고원과 같은 침강 대륙은 실제로 존재하지만,[3] 인도양이나 태평양의 어떤 지질 구조도 대륙 간의 육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인류를 12개 인종으로 보고, 레무리아에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추정한 19세기 그림

2. 1. 가설의 제안

1864년 영국동물학자 필립 스클래터는 진화론에 근거하여 여우원숭이의 진화 과정을 조사하던 중, 여우원숭이 화석이 인도뿐만 아니라 동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섬오스트레일리아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일대에서도 발견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4]

당시는 대륙이동설이 발표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스클래터는 이 사실을 선사시대 인도양에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륙의 존재를 가정하여 설명하려 했다. 그는 여우원숭이의 학명(Lemuriformes)에서 따서 '레무리아'(Lemuria)라고 그 대륙의 이름을 명명하였다.[4]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여우원숭이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 세계에서 이곳에서만 발견된다. 그러나 화석종이 인도에서 발견되었으며, 또한 근연의 원원류는 이 섬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중부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 인도네시아에만 서식한다. 이처럼 인도양을 사이에 둔 양 지역에는 근연 관계에 있는 생물이 발견 (격리 분포)되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클래터는 5천만 년 이상 전의 인도양에 인도의 남부, 마다가스카르 섬, 말레이 반도가 합쳐진 대륙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우원숭이(레무어, Lemur)에서 따와 "레무리아 대륙"이라고 명명했다.[22][23][24] 독일의 동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저서 『자연 창조사』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 에서 레무리아 대륙이야말로 인류 발상지라고 주장했다.[25]

그러나 이후, 1912년독일의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을 발표하자, 스클래터의 가설은 곧 폐기되었다.

2. 2. 유사한 가설들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는 인도와 마다가스카르의 동물 간 관계를 연구하면서 스클레이터보다 약 20년 전에 남부 대륙을 제안했지만,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6] 다윈주의가 수용되면서 과학자들은 종의 진화 기원으로부터 종의 확산을 추적하게 되었다. 대륙 이동설이 받아들여지기 전, 생물학자들은 현재 물로 분리된 육상 종의 개체군을 설명하기 위해 종종 수중 대륙의 존재를 가정했다. 지질학자들 역시 서로 다른 대륙의 암석 형성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을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1887년 멜키오르 노이마이어는 저서 『지구의 역사』에서 최초로 체계적인 시도를 했다. 19세기에는 현재 종의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가상의 수중 육교와 대륙이 제안되었다.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여우원숭이가 서식하며, 전 세계에서 이곳에서만 발견된다. 그러나 화석종이 인도에서 발견되었고, 근연의 원원류는 마다가스카르 섬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중부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인도네시아에만 서식한다. 이처럼 인도양을 사이에 둔 양 지역에는 근연 관계에 있는 생물이 발견된다 (격리 분포).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클레이터는 5천만 년 이상 전의 인도양에 인도의 남부, 마다가스카르 섬, 말레이 반도가 합쳐진 대륙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우원숭이(레무어, Lemur)에서 따와 "레무리아 대륙"이라고 명명했다.[22][23][24] 독일의 동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저서 『자연 창조사』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에서 레무리아 대륙이 인류 발상지라고 주장했다.[25] 그 외에도 일부 지질학자들은 인도양 연안 지역의 지층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비슷한 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인도양을 포함하여 대양으로 격리된 지역 간의 생물상 유사성은 1912년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대륙 이동설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레무리아 대륙 설을 비롯한 육교 설이 우세했지만, 1950년대부터 대륙 이동설이 우세해졌다. 1968년 판 구조론 이론이 완성되면서 대륙 이동설이 확실한 뒷받침을 얻게 되었고, 레무리아 대륙 설은 부정되었다.[26][27]

2. 3. 학설의 확산



영국령 인도양 지역의 문장. (라틴어) "Limuria is in our charge/trust"라고 새겨져 있다.


과학계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후, 레무리아의 개념은 다른 학자들의 저서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진화론자이자 분류학자인 에른스트 헤켈은 레무리아를 화석 기록에서 초기 인류의 "미싱 링크"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헤켈은 스클레이터보다 먼저 "렘리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이 가설을 제시했다.[7]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여우원숭이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 세계에서 이곳에서만 발견된다. 그러나 화석종이 인도에서 발견되었으며, 또한 근연의 원원류는 이 섬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중부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 인도네시아에만 서식한다. 이처럼 인도양을 사이에 둔 양 지역에는 근연 관계에 있는 생물이 발견된다 (격리 분포).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클레이터는 5천만 년 이상 전의 인도양에 인도의 남부, 마다가스카르 섬, 말레이 반도가 합쳐진 대륙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우원숭이(레무어, Lemur)에서 따와 "레무리아 대륙"이라고 명명했다.[22][23][24] 독일의 동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저서 『자연 창조사』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 에서 레무리아 대륙이야말로 인류 발상지라고 주장했다.[25] 그 외에도 일부 지질학자들이 인도양 연안 지역의 지층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비슷한 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양을 포함하여, 대양으로 격리된 지역 간의 생물상 유사성에 대해서는, 1912년의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대륙 이동설에 의해서도 설명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레무리아 대륙 설을 비롯한 육교 설이 우세했지만, 1950년대부터 대륙 이동설이 우세해졌다. 1968년판 구조론 이론의 완성으로 대륙 이동설에 대한 뒷받침이 확실해지면서, 레무리아 대륙 설은 부정되었다.[26][27]

2. 4. 학설의 폐기

1864년 영국의 동물학자 필립 스클래터는 진화론에 근거해 여우원숭이의 진화 과정을 조사하던 중, 여우원숭이 화석이 인도뿐만 아니라 동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섬오스트레일리아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일대에서도 발견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8] 당시에는 대륙이동설이 발표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스클래터는 선사시대 인도양에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륙(레무리아)의 존재를 가정하여 이를 설명하려 했다.[8] 그러나 1912년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알프레트 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을 발표하자 스클래터의 가설은 곧 폐기되었다.[8]

레무리아 이론은 판 이동과 대륙 이동 이론이 주류 과학계에 받아들여진 후 기존의 과학적 고려 대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8] 판 이동 이론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와 인도는 한때 같은 육괴의 일부였지만(그리하여 지질학적 유사성을 설명한다), 판의 움직임으로 인해 수백만 년 전에 인도가 떨어져 나와 현재 위치로 이동했다.[8] 원래의 육괴인 마우리티아[8]와 그 이전의 초대륙 곤드와나는 붕괴되었으며, 주로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다.[8]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여우원숭이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 세계에서 이곳에서만 발견된다. 그러나 화석종이 인도에서 발견되었으며, 또한 근연의 원원류는 이 섬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중부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 인도네시아에만 서식한다. 이처럼 인도양을 사이에 둔 양 지역에는 근연 관계에 있는 생물이 발견된다 (격리 분포).[22][23][24]

스클레이터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5천만 년 이상 전의 인도양에 인도의 남부, 마다가스카르 섬, 말레이 반도가 합쳐진 대륙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우원숭이(레무어, Lemur)에서 따와 "레무리아 대륙"이라고 명명했다.[22][23][24] 독일의 동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저서 『자연 창조사』 (''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 에서 레무리아 대륙이야말로 인류 발상지라고 주장했다.[25]

그러나 인도양을 포함하여, 대양으로 격리된 지역 간의 생물상 유사성에 대해서는, 1912년 알프레트 베게너대륙 이동설에 의해서도 설명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레무리아 대륙 설을 비롯한 육교 설이 우세했지만, 1950년대부터 대륙 이동설이 우세해졌다. 1968년 판 구조론 이론의 완성으로 대륙 이동설에 대한 뒷받침이 확실해지면서, 레무리아 대륙 설은 부정되었다.[26][27]

3. 신지학과 오컬트에서의 레무리아

레무리아는 원래 생물지리학적 불연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침강된 육교였으나, 현대 판 구조론에 의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러나 뉴질랜드 대륙, 모리셔스 (미소대륙), 케르겔렌 고원과 같이 실제로 침강한 대륙은 존재한다.[2][3]

이후 레무리아의 개념은 신지학에 통합되었으며, 가짜 고고학 및 잃어버린 땅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등장한다. 레무리아 교우회와 같은 관련 개념과 "레무리아"와 관련된 여러 문헌들은 고대에 태평양이나 인도양에 있던 대륙이 지질학적 격변으로 침몰했다는 공통된 믿음을 공유한다. 레무리아 신화의 중요한 요소는 그곳이 복잡한 지식 체계가 출현한 장소였다는 것이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레무리아를 무라고 칭하며 태평양에 존재했던 잃어버린 대륙으로 규정했다. 그는 오거스터스 르 플롱제온에게서 이 이름을 가져왔는데, 르 플롱제온은 "무의 땅"이라는 개념을 아틀란티스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레무리아/무와 아틀란티스 간의 관계는 L. 스프래그 드 캠프의 저서 ''잃어버린 대륙: 역사, 과학, 문학 속의 아틀란티스 테마''(1954)에서 자세히 논의된다.

1880년대부터 레무리아의 개념은 신지학, 인간지학 및 기타 오컬트 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많은 소설,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및 음악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유사 고고학과 대중 문화의 영역에 속한다.

3. 1. 블라바츠키와 신지학

헬레나 블라바츠키1888년 저서 『비밀 교리』에서 레무리아 대륙설을 처음 주장하며, 레무리아 대륙이 태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여 신비주의자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28] 1880년대부터 레무리아의 개념은 신지학, 인간지학 및 기타 오컬트 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블라바츠키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레무리아의 내륙 잔존 지역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이 동물과의 교배를 거쳐 레무리아 및 레무로-아틀란티스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3. 2. 레무리아 대륙의 묘사

레무리아는 생물지리학적 불연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로 제시된 침강된 육교였으나, 현대 판 구조론에 의해 이 아이디어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뉴질랜드 대륙, 모리셔스 (미소대륙), 케르겔렌 고원과 같이 실제로 침강한 대륙은 존재한다.[2][3]

이후 레무리아의 개념은 신지학에 통합되었고, 가짜 고고학 및 잃어버린 땅에 대한 논의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레무리아 교우회와 같은 관련 개념과 "레무리아"와 관련된 여러 문헌들은 고대에 태평양이나 인도양에 있던 대륙이 지질학적 격변으로 침몰했다는 공통된 믿음을 공유한다. 레무리아 신화의 중요한 요소는 복잡한 지식 체계가 출현한 장소였다는 것이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레무리아를 무라고 칭하며 태평양에 잃어버린 대륙으로 규정했다. 그는 오거스터스 르 플롱제온에게서 이 이름을 가져왔는데, 르 플롱제온은 "무의 땅"이라는 개념을 아틀란티스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처치워드의 저서에는 ''무의 잃어버린 대륙, 인류의 어머니''(1926), ''무의 아이들''(1931), ''무의 성스러운 상징''(1933), ''무의 우주적 힘''(1934), ''무의 우주적 힘의 두 번째 책''(1935) 등이 있다. 레무리아/무와 아틀란티스 간의 관계는 L. 스프래그 드 캠프의 저서 ''잃어버린 대륙: 역사, 과학, 문학 속의 아틀란티스 테마''(1954)에서 자세히 논의된다.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레무리아의 내륙 잔존 지역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이 동물과의 교배를 거쳐 레무리아 및 레무로-아틀란티스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1890년대와 1900년대 초 백인 호주 대중 문화에서 발전되었는데, 민족주의 호주 시인 버나드 오도드, 작가 로사 캠벨 프레이드의 《나의 호주 소녀 시절》, 작가 존 데이비드 헤네시의 《호주 부시 트랙》, 그리고 조지 퍼스 스콧의 소설 《마지막 레무리아인: 웨스트레일리언 로맨스》 등이 포함된다.[10][11]

로버트 딕슨은 레무리아인과 아틀란티스인과 같은 "잃어버린 종족"에 대한 아이디어가 식민지 호주인들의 불안감을 반영한다고 말하며, "영국성이 사라지면 대체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10] A. L. 맥캔은 프레이드가 레무리아의 비유를 사용한 것은 "원주민 학살에 직면하지 않고 백인 정착민의 계보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본다.[12]

신지학 협회 창설자 중 한 명인 블라바츠키는 1888년에 간행한 저서 『비밀 교리』에서 레무리아 대륙설을 처음 등장시켰다.[28] 그녀는 레무리아 대륙이 태평양에 있다고 주장하여 신비주의자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28]

레무리아 대륙은 최대 시기에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적도를 반 바퀴 도는, 현재의 유라시아 대륙과 동등한 면적을 가졌지만, 약 7만 5천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친 지각 변동으로 대부분이 감소하여, 마지막에는 일본 동쪽에 호주 정도 크기의 대륙 2개가 남았고, 이윽고 완전히 침몰했다고 주장되었다.[29][30]

침몰기의 마지막에 남은 두 개의 대륙을 무 대륙과 레무리아 대륙으로 나누는 신비학자나 비의학자도 있지만, 최초의 거대 대륙 시기를 무 대륙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무 대륙의 기원을 레무리아 대륙이라고 했다.[28][31] 두 대륙 모두 동일한 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아카식 리딩에 의한 저서에서 주장되며, 문명의 종말기에는 라 무가 지도자에 해당했다는 것이 설해지고 있다.[29]

미국 작가 바바라 워커는, 전설상의 대륙명 "레무리아"는, 원래 "렘레스의 세계", 즉 "망령의 세계"를 의미했다고 자서에서 언급하고 있다.[32]

3. 3. 뉴에이지와 레무리아

레무리아의 개념은 신지학 철학에 통합되었고, 가짜 고고학과 잃어버린 땅에 대한 논의에서 주제로 남아있다. 레무리아 교우회와 같은 관련 개념과 기타 "레무리아"와 관련된 광범위한 주변 문헌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고대에 현재 태평양이나 인도양에 있던 대륙이 지질학적 대격변으로 침몰했다는 공통된 믿음을 공유한다. 레무리아 신화의 중요한 요소는 복잡한 지식 체계가 출현한 장소였다는 것이다.[2]

제임스 처치워드는 레무리아를 무라고 칭하고 태평양에 잃어버린 대륙으로 규정했다. 그는 오거스터스 르 플롱제온에게서 이 이름을 가져왔는데, 르 플롱제온은 "무의 땅"이라는 개념을 아틀란티스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L. 스프래그 드 캠프의 저서 ''잃어버린 대륙: 역사, 과학, 문학 속의 아틀란티스 테마''(1954)에서 레무리아/무와 아틀란티스의 관계가 자세히 논의된다.

1894년, 프레더릭 스펜서 올리버는 강령술 서적인 ''두 행성의 거주자''를 출판했는데, 이 책은 레무리아의 생존자들이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는 샤스타 산 아래의 복잡한 터널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도시는 '텔로스: 빛의 도시'로 알려졌으며, 풍요로움을 나타냈다. 스펜서는 또한 레무리아인들이 흰색 로브를 입고 표면을 걷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13] 1931년, 하비 스펜서 루이스는 위샤 스펜르 세르브라는 필명으로 ''레무리아: 태평양의 잃어버린 대륙''을 저술하여, 샤스타 산이 레무리아인들의 저장소라는 생각을 대중화했다.[14][15][16]

1930년대에 가이 워렌 발라드는 생 제르맹 백작으로부터 지식과 지혜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발라드는 신분 Godfré Ray King으로 ''미스터리의 베일''을 쓰고 출판했는데, 여기서 발라드는 생 제르맹이 세상을 향해 말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텔로스에 대한 믿음은 발라드와 그의 생 제르맹 재단을 따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승천한 스승, 백색 대형 형제단, 자유로 가는 다리, 정상 등대, 보편적이고 승리적인 교회, 크라이언과 같은 다른 종교 단체에 의해 확산되었다.[17] 매년 이 종교 단체의 구성원들은 샤스타 산으로 순례를 떠나며, 다양한 연례 축제와 행사로 기념된다. 생 제르맹 재단은 샤스타 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연례 "나는 왔다!" 페이지언트를 개최한다. 레인보우 패밀리는 순례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8월마다 ''레인보우 모임''을 개최한다.[18][19] 이러한 종교는 종종 토착, 기독교, 불교 및 도교 전통을 기반으로 한 영적 수행의 혼합으로, 그들의 신념을 종합하고 그러한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배제한다. 예를 들어, 생 제르맹 재단은[19] 예수의 십자가형을 그들의 가르침에 포함하지 않는다.

레무리아 대륙은 최대 시기에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적도를 반 바퀴 도는, 현재의 유라시아 대륙과 동등한 면적을 가졌지만, 약 7만 5천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친 지각 변동으로 대부분이 감소하여, 마지막에는 일본 동쪽에 호주 정도 크기의 대륙 2개가 남았고, 이윽고 완전히 침몰했다고 주장되었다.[29][30]

침몰기의 마지막에 남은 두 개의 대륙을 무 대륙과 레무리아 대륙으로 나누는 신비학자나 비의학자도 있지만, 최초의 거대 대륙 시기를 무 대륙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무 대륙의 기원을 레무리아 대륙이라고 했다.[28][31] 두 대륙 모두 동일한 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아카식 리딩에 의한 저서에서 주장되며, 문명의 종말기에는 라 무가 지도자에 해당했다는 것이 설해지고 있다.[29]

미국 작가 바바라 워커는, 전설상의 대륙명 "레무리아"는, 원래 "렘레스의 세계", 즉 "망령의 세계"를 의미했다고 자서에서 언급하고 있다.[32]

현재에는 오컬트 및 뉴에이지계에 폭넓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오렐리아 루이즈 존스 여사가 저술한 레무리아와 샤스타의 지하도시, 즉 테로스와의 연결을 다룬 2007년 일본어판 서적 『레무리아의 진실: 샤스타 산의 지하도시 테로스からの 메시지』[33], 『레무리아의 지혜: 샤스타 산의 지하도시 테로스からの 메시지』[34], 『새로운 레무리아: 샤스타 산의 지하도시 테로스からの 메시지』[35]가 있다. 샤스타 산이 뉴에이지에서 유명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 지역과 레무리아의 관계를 다룬 책이 뉴에이지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4. 쿠마리 칸담과의 연관성

레무리아 개념은 제임스 처치워드가 상세히 발전시켰다. 처치워드는 레무리아를 무라고 칭하고 태평양에 있는 잃어버린 대륙으로 규정했다. 그는 오거스터스 르 플롱제온에게서 이 이름을 가져왔는데, 르 플롱제온은 "무의 땅"이라는 개념을 아틀란티스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처치워드의 저서로는 ''무의 잃어버린 대륙, 인류의 어머니''(1926), ''무의 아이들''(1931), ''무의 성스러운 상징''(1933), ''무의 우주적 힘''(1934), ''무의 우주적 힘의 두 번째 책''(1935) 등이 있다. L. 스프래그 드 캠프의 저서 ''잃어버린 대륙: 역사, 과학, 문학 속의 아틀란티스 테마''(1954)에서 레무리아/무와 아틀란티스 간의 관계를 자세히 논의하고 있다.

4. 1. 타밀 민족주의와 쿠마리 칸담

타밀 민족주의 문헌에서 레무리아를 쿠마리 칸담으로 묘사하여 마다가스카르, 남인도, 호주를 연결 (대부분의 인도양을 포괄)


데바네야 파바나르 등 일부 타밀 작가들은 레무리아를 타밀 문헌에 언급된 전설적인 수몰 대륙인 쿠마리 칸담과 연관지어, 이곳이 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했다. 아디야르쿤알라르라는 타밀 해설자는 나중에 바다에 잠긴 판디아 왕조의 파할리 강과 쿠마리 강 사이에 걸쳐 있던 영역에 대해 묘사했다.[9]

5. 대중문화 속 레무리아

레무리아는 과학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유사 고고학과 대중 문화의 영역에 속한다. 1880년대부터 신지학, 인간지학 및 기타 오컬트 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많은 소설,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및 음악에 영감을 주었다.

아틀란티스 대륙설과 다르게 레무리아 대륙 및 문명 설에서는 플라톤의 저작에 대표되는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무대 설정의 자유도를 높여 창작물의 무대로 설정되는 경우가 있다.

제임스 처치워드는 레무리아를 무라고 칭하고 태평양에 잃어버린 대륙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 이름을 오거스터스 르 플롱제온에게서 가져왔는데, 르 플롱제온은 "무의 땅"이라는 개념을 아틀란티스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처치워드의 저서에는 ''무의 잃어버린 대륙, 인류의 어머니''(1926), ''무의 아이들''(1931), ''무의 성스러운 상징''(1933), ''무의 우주적 힘''(1934), ''무의 우주적 힘의 두 번째 책''(1935) 등이 있다. 레무리아/무와 아틀란티스 간의 관계는 L. 스프래그 드 캠프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 과학, 문학 속의 아틀란티스 테마''(1954)에서 자세히 논의된다.

5. 1. 문학과 예술

플라톤의 저작에 대표되는 문헌은 레무리아 대륙 및 문명 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반대로 무대 설정의 자유도를 높여 창작물의 무대로 설정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로버트 E. 하워드[36]나 린 카터[37]는 고대 레무리아를 무대로 한 작품을 썼다.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서도 종종 언급된다.[38]

5. 2.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의 연결 (비판적 관점)

블라바츠키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레무리아 대륙이 가라앉은 후 내륙에 남은 잔존 지역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태즈메이니아 원주민(그녀는 이들을 별개의 집단으로 식별)이 동물과의 교배를 거쳐 레무리아 및 레무로-아틀란티스 기원이라고 주장했다.[10][11] 이러한 주장은 1890년대와 1900년대 초 백인 호주 대중 문화에서 유사 역사 및 소설로 발전되었는데, 민족주의 호주 시인 버나드 오도드, 작가 로사 캠벨 프레이드의 저서 《나의 호주 소녀 시절》, 작가 존 데이비드 헤네시의 《호주 부시 트랙》, 그리고 조지 퍼스 스콧의 소설 《마지막 레무리아인: 웨스트레일리언 로맨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10][11]

로버트 딕슨은 레무리아인과 아틀란티스인과 같은 "잃어버린 종족"에 대한 아이디어가 "영국성이 사라지면 대체할 것이 없다"는 식민지 호주인들의 불안감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10] A. L. 맥캔은 프레이드가 레무리아의 비유를 사용한 것은 "원주민 학살에 직면하지 않고 백인 정착민의 계보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한다.[12]

5. 3. 샤스타 산과 텔로스

1894년, 프레더릭 스펜서 올리버는 강령술 서적인 ''두 행성의 거주자''를 출판했는데, 이 책은 레무리아의 생존자들이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는 샤스타 산 아래의 복잡한 터널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13] 이 도시는 '텔로스: 빛의 도시'로 알려졌으며, 모피로 덮인 카펫 바닥과 보석으로 장식된 벽을 자랑하며 풍요로움을 나타냈다. 스펜서는 또한 레무리아인들이 흰색 로브를 입고 표면을 걷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13] 1931년, 하비 스펜서 루이스는 위샤 스펜르 세르브라는 필명으로[14][15] 샤스타 산이 레무리아인들의 저장소라는 생각을 대중화한 ''레무리아: 태평양의 잃어버린 대륙''을 저술했다.[16]

1930년대에 가이 워렌 발라드는 생 제르맹 백작으로부터 그가 지식과 지혜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발라드는 신분 Godfré Ray King으로 ''미스터리의 베일''이라는 책을 쓰고 출판했는데, 여기서 발라드는 생 제르맹이 세상을 향해 말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텔로스에 대한 믿음은 발라드와 그의 생 제르맹 재단을 따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승천한 스승, 백색 대형 형제단, 자유로 가는 다리, 정상 등대, 보편적이고 승리적인 교회, 크라이언과 같은 다른 종교 단체에 의해 확산되었다.[17] 매년 이 종교 단체의 구성원들은 샤스타 산으로 순례를 떠나며, 다양한 연례 축제와 행사로 기념된다. 생 제르맹 재단은 샤스타 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연례 "나는 왔다!" 페이지언트를 개최한다. 레인보우 패밀리는 순례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8월마다 ''레인보우 모임''을 개최한다.[18][19] 이러한 종교는 종종 토착, 기독교, 불교 및 도교 전통을 기반으로 한 영적 수행의 혼합으로, 그들의 신념을 종합하고 그러한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배제한다. 예를 들어, 생 제르맹 재단은[19] 예수의 십자가형을 그들의 가르침에 포함하지 않는다.

오렐리아 루이즈 존스 여사가 저술한 레무리아와 샤스타의 지하도시, 즉 테로스와의 연결을 다룬 2007년 일본어판 서적 『레무리아의 진실: 샤스타 산의 지하도시 테로스からの 메시지』[33], 『레무리아의 지혜: 샤스타 산의 지하도시 테로스からの 메시지』[34], 『새로운 레무리아: 샤스타 산의 지하도시 테로스からの 메시지』[35]가 있다. 샤스타 산이 뉴에이지에서 유명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 지역과 레무리아의 관계를 다룬 책이 뉴에이지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6. 기타

영국령 인도양 지역의 모토는 라틴어로 '''In tutela nostra Limuria'''이며, "레무리아는 우리의 보호 아래 있다"라는 뜻이다.[1] 레무리아 대륙설이 부정된 현재에도 이 라틴어 표기는 현지 문장에 사용되고 있다.[1]

참조

[1] 웹사이트 Did the Lost Continent of Lemuria Ever Exist? https://history.hows[...] 2022-06-22
[2] 웹사이트 BBC News - Fragments of ancient continent buried under Indian Ocean https://www.bbc.co.u[...] BBC.co.uk 2013-02-25
[3] 웹사이트 Navigation News https://frontline.th[...] Frontline.in
[4] 서적 Supercontinent: Ten Billion Years in the Life of Our Planet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11-02
[5] 웹사이트 An Entire Lost Continent Was Found Under the Island of Mauritius https://www.forbes.c[...]
[6] 서적 Supercontinent: Ten Billion Years in the Life of Our Planet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11-02
[7] 서적 Lost Continents 1954
[8] 웹사이트 Fragments of continents hidden under lava in Indian Ocean: New micro-continent detected under Reunion and Mauritius https://www.scienced[...]
[9] 웹사이트 Login - Single Sign On {{!}} The University of Kansas https://login.ku.edu[...]
[10] 논문 Aboriginality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Bernard O'Dowd and the creation of an Australian national imaginary http://press-files.a[...] 2000
[11] 웹사이트 The Lost Lands of Mu and Lemuria: Was Australia Once Part of a Sunken Continent? – New Dawn : The World's Most Unusual Magazine https://www.newdawnm[...] 2007-09
[12] 웹사이트 Stargazing with Rosa Praed https://sydneyreview[...] 2016-10-31
[13] 서적 A Dweller on Two Planets
[14] 서적 Lemuria, The Lost Continent Of the Pacific https://f5db1a33c5d4[...] AMORC 1931
[15] 서적 Religious leaders of America: a biographical guide to founders and leaders of religious bodies, churches, and spiritual groups in North America Cengage Gale 1999-03
[16] 서적 Mount Shasta: an annotated bibliography College of the Siskiyous 1993
[17] 서적 Unveiled Mysteries Saint Germain Press
[18] 논문 Spiritual Tourism and Frontier Esotericism at Mount Shasta, California https://journal.equi[...] 2014
[19] 논문 Spiritual Pilgrims at Mount Shasta, California https://www.tandfonl[...] 2000-10-01
[20] 문서 と学会 (1997)
[21] 문서 ディ・キャンプ(1997)
[22] 문서 Neild (2007)
[23] 문서 ディ・キャンプ (1997)
[24] 문서 と学会 (1997)
[25] 서적 The Tragic Sense of Lif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6] 문서 と学会 (1997)
[27] 문서 ディ・キャンプ (1997)
[28] 서적 知っておきたい伝説の秘境・魔境・古代文明 西東社
[29] 서적 黎明 上・下 太陽出版 2001-05
[30] 서적 世界大師と覚者方の降臨 シェア・ジャパン出版
[31] 서적 「クトゥルフ神話」がよくわかる本 PHP文庫
[32] 서적 神話・伝承事典 失われた女神たちの復権 大修館書店
[33] 서적 レムリアの真実 シャスタ山の地下都市テロスからのメッセージ 太陽出版
[34] 서적 レムリアの叡智―シャスタ山の地下都市テロスからのメッセージ 太陽出版
[35] 서적 新しいレムリア―シャスタ山の地下都市テロスからのメッセージ 太陽出版
[36] 문서 D'Ammassa (2006)
[37] 문서 D'Ammassa (2006)
[38] 서적 Scientific Mythologies InterVa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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