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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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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봉은사는 794년 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조선 시대에는 선종 수사찰로 지정되어 불교 부흥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498년에는 성종의 능인 선릉을 관리하는 능묘 사찰로 개칭되었으며, 명종 시대 문정왕후의 후원으로 불교 부흥을 이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울 및 경기 지역의 사찰을 관할하는 본사 역할을 했으며, 1939년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다. 현재는 한국 최대 미륵대불을 보유하고 있으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사찰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봉은사에는 보물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문화재자료 등 다양한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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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봉은사 미륵대불
봉은사 미륵대불 (2022)
이름봉은사
로마자 표기Bongeunsa
한자 표기奉恩寺
위치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종교한국 불교 조계종
창건794년 (신라)
창건자연회국사
웹사이트봉은사
건축 및 특징
건축 양식한국 불교 사찰
유형사찰
추가 정보
설립 시기794년
창건자 (한자)緣會國師
이전 이름견성사
중흥문정왕후
본존석가모니불
일본어 정보
산호수도산
종지선종조계종
사격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말사
선종 총본산 (1551년 - 1936년)
조선 삼십본산 (일제강점기)
한국어 정보
소재지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2. 역사

794년(원성왕 10년) 연회가 견성사를 창건한 것을 봉은사의 창건으로 보고 있다. 1498년(연산군 시대) 견성사를 개축하여 성종의 능인 선릉을 관리하는 능묘 사찰로 삼고, 이름을 봉은사로 개명하였다. 1551년에는 전국의 선종을 관장하는 선종 수사찰로 지정되어 선종의 총본산이 되었다. 세종의 불교 탄압 이후 종파는 선교의 두 종파만 남았는데, 선종의 총본산은 봉은사였고, 교종의 총본산은 봉선사였다.

1562년 (명종 17년)에 현재의 위치로 사찰을 옮겼다. 명종 초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문정왕후수렴청정을 하였는데, 문정왕후는 봉은사를 불교 부흥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1548년 보우가 주지가 된 이후로, 선교 양파 모두 과거의 승과 시험을 부활시켰다. 승과 시험은 봉은사에서 치러졌다. 조선 말기인 1902년, 대한사찰령이 제정되면서 봉은사는 전국 14곳의 수사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한국 병합 이후1911년, 조선 삼십일본산에 선정되어 서울 및 광주 등 경기도 8개 군에 있는 80여 개의 사찰을 관할하였다. 1939년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1941년부터 1942년에 걸쳐 재건하였다. 연합군 통치하의 1945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의 직할 사찰이 되었다. 1996년에 높이 23m의 한국 최대 미륵대불을 건립하였다.

2. 1. 신라 시대 창건과 고려 시대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인 794년에 연회가 견성사를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1]

2. 2. 조선 시대 불교 부흥과 쇠퇴

조선 시대에 한국 불교는 심하게 탄압받았다. 그러나 정현왕후의 후원으로 1498년에 중건되면서 봉은사는 본격적으로 본사(本寺)로 알려지게 되었다. 본사(奉恩寺)라는 이름은 임금을 공경하는 행위를 뜻하며, 여기서는 성종의 영생을 기원하는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2]

성종의 아들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기행과 폭정을 일삼다가 이복동생 진성대군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이다.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봉은사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붕어하자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이후 8년 동안 문정왕후가 섭정을 하였고, 섭정이 끝난 후에도 문정왕후의 영향력은 컸다.

이 기간 동안 문정왕후는 폐지된 승과고시를 부활시켜 봉은사에서 승려를 뽑는 시험을 치르게 했다. 또한, 보우대사를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고 봉은사를 선종 수사찰로 지정했다. 이후 승과고시를 통해 배출된 서산대사, 사명대사, 벽암 등의 고승들이 봉은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봉은사를 중심으로 조선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551년부터 1936년까지 봉은사는 한국 선(禪)종의 중심 사찰이었다.[3] 1548년 문정왕후에 의해 보우 스님이 봉은사의 주지로 임명되었으나, 문정왕후 시대 말엽 반불교 세력이 다시 우세해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되었다. 1552년부터 1564년까지 봉은사는 승과(僧科) 시험의 중심지였다.

1562년(명종 17년)에 봉은사는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명종 시대 초,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문정왕후는 봉은사를 불교 부흥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보우1548년에 주지가 된 이후로, 선교 양파 모두 과거의 승과 시험을 부활시켰다. 승과 시험은 봉은사에서 치러졌다.

문정왕후의 철권통치가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자 봉은사의 위상은 급격히 쇠락하게 된다. 하지만 서울 도성에서 한강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대찰 봉은사는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다. 특히 추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며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에 동참했다.[8] 추사는 최고의 글씨이자 최후의 명작으로 꼽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고, 이 글씨는 현재까지도 봉은사 판전에 있다.

2. 3.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1902년 대한제국의 14개 주요 사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서울 지역의 80여 개 작은 불교 사찰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1922년1929년에 청호 대종사는 한강에서 7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공을 세웠고, 이는 기념비 건립으로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 이후 봉은사는 한국 최대 불교 종파인 조계종에 소속되었다.

1939년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한국 전쟁 중에도 사찰의 다른 부분들이 파괴되었다. 다행히 한국 전쟁 중 파괴를 면한 몇 안 되는 전각 중 하나인 판전(板殿)에는 1855년 영기 스님이 제작한 목판 불화인 ≪화엄경≫의 목판들이 보존되어 있다. 사찰은 여러 차례 수리 및 보수 공사를 거쳐 현재는 다시 크고 번성한 사찰 단지가 되었다. 복원 작업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1902년, 대한사찰령이 제정되면서 봉은사는 전국 14곳의 수사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한국 병합 이후인 1911년, 조선 삼십일본산에 선정되어 서울 및 광주 등 경기도 8개 군에 있는 80여 개의 사찰을 관할하였다. 1939년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1941년부터 1942년에 걸쳐 재건하였다. 연합군 통치하의 1945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의 직할 사찰이 되었다. 1996년에 높이 23m의 한국 최대 미륵대불을 건립하였다.

3. 특징

봉은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무역센터, 코엑스, 테헤란로 등 최첨단 시설과 IT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릉과 정릉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역사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강남역, 압구정, 종합운동장 등도 인접해 있다.

3. 1. 전통과 현대의 공존

봉은사 주변은 서울특별시를 대표하는 최첨단 시설이 밀집한 곳이다. 한국과 교역하려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전초기지로 삼는 무역센터가 봉은사 승과평 터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규모 컨벤션센터인 코엑스테헤란로 불리는 IT업종 밀집지역도 옛 봉은사 자리에 있다.

2009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조선의 왕릉 가운데 선릉과 정릉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어 그 능침사찰이었던 봉은사와 더불어 강남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남역이나 압구정, 1988 서울 올림픽을 치른 종합운동장 등 세계적인 명소이자 강남을 대표하는 번화가들이 모두 봉은사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산재해 있다.

4. 문화재

근대까지 서울, 경기 일원에서 본사 역할을 수행했던 봉은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1996년 1월 7일에 봉안된 미륵대불은 높이 23m로,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관촉사 은진미륵보다 5m 정도 높다.[1]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제321호)은 고려시대,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819호)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불교 문화재이다.

추사판전 현판 글씨, 조선시대 승과고시 장소였던 선불당, 판전 내부의 화엄경 경판과 사천왕상, 영산전 십육나한상 등의 조각상, 대웅전 삼장보살도를 비롯한 10여 점의 불화 등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7]

4. 1. 보물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제321호)은 고려 충혜왕 5년(1344년)에 만들어진 청동 향완이다. 표면에 제작 연대와 만든 사람들을 기술한 103자의 명문이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공예 기술이 절정에 달했던 고려시대 작품으로 형태미도 뛰어나다.[1]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819호)은 조선 효종 2년(1651년) 승일(勝一) 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17세기 불교 조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불상이다.[1]

4. 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이외에도 앞서 소개한 추사판전 현판 글씨와 조선시대 승과고시 장소로 사용되었던 선불당, 판전 내부에 보관중인 화엄경 경판과 사천왕상, 영산전 십육나한상 등의 조각상과 대웅전 삼장보살도를 비롯한 10여 점의 불화 등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조선 후기 조각과 회화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7]

명칭지정 번호
봉은사 선불당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
봉은사 판전 현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3호
봉은사 목 사천왕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0호
봉은사 목 삼불상(석가불, 아미타불, 약사불)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6호
봉은사 목 삼존불상(석가불, 가섭존자, 아난존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7호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8호
봉은사 대웅전 신중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9호
봉은사 판전 신중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0호
봉은사 괘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1호
봉은사 비로자나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2호
봉은사 칠성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3호
봉은사 삼세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4호
봉은사 삼장보살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5호
봉은사 감로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6호
봉은사 영산회상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7호
봉은사 십육나한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8호
봉은사 판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5호


4. 3.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1996년 1월 7일에 봉안된 미륵대불은 높이가 23m로,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관촉사 은진미륵보다 5m 정도 높다. 이외에도 봉은사 영산전 사자도(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8호), 봉은사 영산전 신중도(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9호) 등이 있다.

5. 템플스테이

봉은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10] 참가자들은 사찰의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전통을 체험할 수 있으며, 승려들이 사용하는 발우(鉢盂)를 이용한 불교 사찰 음식인 '발우 공양'(鉢盂供養)을 체험할 수 있다.[4]

6. 사건 및 사고

2010년 10월 26일, 찬양인도자학교라는 개신교 단체에서 봉은사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는 동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이 동영상에는 불교가 우상숭배라는 주장이 있으며, 동영상에 출연한 사람이 "주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크고 웅장한 절이 있어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종교 비하 논란이 일기도 했다.[11] 이들은 다음날 봉은사를 찾아가 사과를 하였고, 봉은사 스님은 이를 받아들였다.[12]

참조

[1] 뉴스 13 things you've got to do in Seoul http://travel.cnn.co[...] 2013-02-26
[2] 서적 Temples of Korea Myeong-jong
[3] 웹사이트 buddhapia.com http://www.buddhapia[...] 2010-06-04
[4] 웹사이트 봉은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설명 http://temple.bongeu[...]
[5] 뉴스 Feast of food in a concrete jungle http://koreajoongang[...] 2013-01-27
[6] 서적 조선선종갑찰대본산경기도광주군수도산봉은사사적비명(朝鮮禪宗甲刹大本山京畿道廣州郡修道山奉恩寺事蹟碑銘)
[7] 서적 삼국사기
[8] 서적 한국불교인명사전 불교시대사
[9] 보도자료 18.청호학밀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15-11-18
[10] 웹사이트 봉은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http://templestay.co[...]
[11] 뉴스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논란 外 http://imnews.imbc.c[...] mbc 2010-10-27
[12] 뉴스 '봉은사 땅밟기' 관련자, 봉은사 찾아 사과 (종합)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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