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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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탄의 가면은 1960년에 개봉한 마리오 바바 감독의 이탈리아 공포 영화이다.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소설 '비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17세기에 처형된 마녀 아사 바이다와 그녀의 후손인 카티아 바이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19세기 몰다비아를 배경으로, 아사가 부활하여 카티아의 젊음을 빼앗으려 하고,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갈등을 그린다. 이탈리아 고딕 호러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바바라 스틸의 1인 2역 연기와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 화면 폭력 묘사 등으로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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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가면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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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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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 |
원제 | 라 마스케라 델 데모니오 (La maschera del demonio) |
영어 제목 | The Mask of the Demon |
한국어 제목 | 사탄의 가면 |
다른 제목 | 피묻은 일요일 (Black Sunday) 사탄의 가면 (The Mask of Satan) 복수의 가면 (The Revenge of the Vampire) |
제작 | |
감독 | 마리오 바바 |
제작자 | 마시모 데 리타 (Massimo De Rita) |
각본 | 엔니오 데 콘치니 (Ennio De Concini) 마리오 바바 (Mario Bava) 마르첼로 코스티아 (Marcello Coscia) 마리오 세란드레이 (Mario Serandrei) |
원작 | 니콜라이 고골 (Nikolai Gogol)의 ヴィイ (Viy) |
음악 | 로베르토 니콜로시 (Roberto Nicolosi) 레스 박스터 (Les Baxter) |
촬영 | 우발도 테르차노 (Ubaldo Terzano) |
편집 | 마리오 세란드리 (Mario Serandrei) |
스튜디오 | 갈라테아-졸리 필름 (Galatea-Jolly Film) |
배급사 | 유니디스 (Unidis) 쇼치쿠 셀렉트 (일본) |
출연 | |
주연 | 바버라 스틸 (Barbara Steele) 존 리처드슨 (John Richardson) 안드레아 체치 (Andrea Checchi) 이보 가라니 (Ivo Garrani) 아르투로 도미니치 (Arturo Dominici) 엔리코 올리비에리 (Enrico Olivieri) |
출시 | |
개봉일 | 1960년 8월 11일 (이탈리아) |
일본 개봉일 | 1961년 4월 18일 |
상영 시간 | 87분 |
제작 국가 및 언어 | |
언어 | 이탈리아어 |
흥행 | |
흥행 수입 | ₤1억4천만 (₤140,000,000) |
2. 역사적 배경
1960년대 초 이탈리아 영화계는 검과 샌들 장르를 중심으로 장르 영화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제작사 갈라테아는 ''헤라클레스'' 시리즈의 국제적 성공을 통해 입지를 다졌고, 이는 이탈리아 장르 영화에 대한 해외 투자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 감독으로 경력을 쌓아가던 마리오 바바는 여러 작품에서 비공식적으로 연출에 참여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갈라테아 필름은 바바에게 첫 장편 영화 연출 기회를 제공했으며, 그는 당시 해머 필름 프로덕션스의 성공적인 공포 영화들에 영향을 받아 고딕 호러 장르인 ''사탄의 가면''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마리오 바바의 공식적인 감독 데뷔작으로, 이후 이탈리아 공포 영화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2. 1. 제작 배경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의 제작사 갈라테아(Galatea)는 장르 영화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제작사 중 하나였다. 이들은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헤라클레스''(1958)와 ''헤라클레스 언체인드''(1959)를 제작하며 당시 검과 샌들 장르 유행을 이끌었다. 갈라테아는 상대적으로 덜 성공했지만 SF 영화인 ''칼티키 – 불멸의 괴물''(1959) 같은 다른 장르 영화도 제작했다. 두 편의 ''헤라클레스'' 영화가 성공하자 미국 배급사들은 이탈리아 내 인기가 없더라도 이탈리아 장르 영화에 미리 투자하려 했다.촬영 감독 마리오 바바는 두 편의 ''헤라클레스'' 영화 외에도 ''칼티키 – 불멸의 괴물''과 ''마라톤의 거인''(1959) 등 여러 영화에서 크레딧 없이 부분적으로 연출을 맡았다. 이를 계기로 갈라테아의 사장 리오넬로 산티는 바바에게 해외 시장을 겨냥한 영화 제작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제작자 마시모 데 리타에 따르면, 산티가 ''마라톤의 거인''에서 바바의 작업에 감명받아 그에게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 데 리타는 자신이 산티에게 바바에게 영화 제작을 맡기도록 설득했으며, 영화가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예산을 늘려달라고 간청했다고 주장한다.
테렌스 피셔 감독이 연출하고 해머 필름 프로덕션스가 제작한 ''드라큘라''(1958)가 최근 성공을 거두면서, 바바는 공포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드라큘라''와 경쟁하기 위해 산티는 영화를 테크니컬러로 촬영하길 원했지만, 바바는 흑백 촬영을 고집했다. 바바는 이를 스타일과 실용성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는데, 특히 변신 장면에서 특수한 빨간색과 녹색 조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컬러 촬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탄의 가면''의 정확한 촬영 예산은 알려지지 않았다. 데 리타는 5만달러에서 6만달러 사이였다고 기억하는 반면, 제작 관리자 아르만도 고보니는 최종 예산이 약 10만달러였다고 회상했다.
2. 2. 각본 및 사전 제작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의 제작사 갈라테아(Galatea)는 영화 장르 영화를 가장 활발하게 제작하는 회사 중 하나였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헤라클레스''(1958)와 ''헤라클레스 언체인드''(1959)를 제작하며 당시 검과 샌들 장르의 유행을 이끌었다. 갈라테아는 상대적으로 덜 성공했지만 SF 영화인 ''칼티키 – 불멸의 괴물''(1959)과 같은 다른 장르 영화도 제작했다. 두 편의 ''헤라클레스'' 영화가 성공하자, 미국 배급사들은 이탈리아에서 인기가 없는 영화일지라도 이탈리아 장르 영화에 대해 선뜻 선금을 지불하려 했다.촬영 감독이었던 마리오 바바는 두 편의 ''헤라클레스'' 영화 외에도 ''칼티키 – 불멸의 괴물''과 ''마라톤의 거인''(1959) 등 여러 영화에서 크레딧 없이 부분적으로 연출을 맡았다. 이를 계기로 갈라테아의 사장 리오넬로 산티는 바바에게 해외 시장을 겨냥한 영화를 제작할 기회를 주었다.
제작자 마시모 데 리타에 따르면, 산티가 ''마라톤의 거인''에서 바바의 작업에 감명받아 그에게 직접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는 외전에 가깝다고 한다. 데 리타는 자신이 산티를 설득하여 바바에게 영화 제작 기회를 주도록 했으며, 영화의 수익성을 고려하여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테렌스 피셔가 감독하고 해머 필름 프로덕션스에서 제작한 ''드라큘라''(1958)가 최근 성공을 거두면서, 바바는 공포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드라큘라''와 경쟁하기 위해 산티는 영화를 테크니컬러로 촬영하기를 원했지만, 바바는 흑백 촬영을 고집했다. 바바는 흑백 촬영이 스타일리시할 뿐만 아니라, 변신 장면에서 특수한 빨간색과 녹색 조명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컬러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실용적인 이유를 들었다. ''사탄의 가면''의 정확한 촬영 예산은 알려져 있지 않다. 데 리타는 5만달러에서 6만달러 사이였다고 기억하는 반면, 제작 관리자 아르만도 고보니는 최종 예산이 약 10만달러였다고 회상했다.
2. 3. 캐스팅
영화의 주요 역할에는 영국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다. 바바라 스틸이 아사 바이다와 카티아 바이다의 1인 2역을 맡았고, 존 리처드슨이 카티아의 연인 안드레이 고로베츠 박사(미국 국제 영화사 더빙판에서는 안드레아스 고로베츠 박사) 역으로 출연했다. 이 외에도 다수의 이탈리아 배우들이 참여했다.다음은 주요 출연진 목록이다.
배우 | 배역 | 비고 |
---|---|---|
바바라 스틸 | 아사 바이다 / 카티아 바이다 | 1인 2역 |
존 리처드슨 | 안드레이 고로베츠 박사 | (미국 국제 영화사 더빙판: 안드레아스 고로베츠 박사) |
안드레아 체키 | 크로마 크루바얀 박사 | (미국 국제 영화사 더빙판: 토마스 크루바얀 박사) |
이보 가라니 | 바이다 공작 | |
아르투로 도미니치 | 이고르 야부티치 | (미국 국제 영화사 더빙판: 자부토) |
엔리코 올리비에리 | 콘스탄틴 바이다 | |
티노 비안키 | 이반 | 바이다의 하인 |
안토니오 피에르페데리치 | 신부 | |
클라라 빈디 | 여관 주인 | |
마리오 파산테 | 니키타 | 마부 |
레나토 테라 | 보리스 | 바이다의 마부 |
게르마나 도미니치 | 소냐 | 여관 주인의 딸 |
2. 4. 촬영

《사탄의 가면》의 주요 촬영은 1960년 3월 28일에 시작하여 5월 7일에 종료되어 약 6주 동안 진행되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영화 평균 촬영 기간인 3~4주보다 길었지만, 갈라테아 제작사의 평균 일정과 비슷했다. 영화 역사가 로베르토 쿠르티는 촬영이 6월에 시작되어 7주 동안 진행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화 대부분은 스칼레라 필름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으며, 야외 장면과 일부 실내 장면은 아르솔리의 마시모 성에서 촬영되었다.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바바가 변신 장면에 필요한 특수 적색 및 녹색 조명 때문에 컬러 촬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바는 많은 제작 및 홍보용 스틸 사진을 컬러로 촬영하도록 허용했는데, 이는 영화를 위해 선택된 조명 방식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며, 스틸 사진 작가를 위해 별도로 연출된 장면은 아니었다.

제작 매니저 아르만도 고보니는 촬영이 "매우 피곤한" 경험이었고 긴 작업 시간이 특징이었다고 회상했다. 루카스는 이것이 대본의 철저한 수정이나 특정 촬영 물류에 대한 고려 없이 영화가 조기에 제작에 들어간 결과이며, 바바가 자신의 직감에 의존하고 즉흥적으로 작업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아사와 자부티치가 영화 전체에서 마녀, 사탄 숭배자, 뱀파이어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는 것에서 드러난다. 바바라 스틸과 아르투로 도미니치는 처음에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소품 송곳니를 착용했다. 바바는 진부한 외모 때문에 배우들에게 이를 빼라고 요청했다고 회상했고, 고보니는 송곳니가 촬영 중 유지되었으나 편집 과정에서 제거되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출연진은 안드레아 체키와 도미니치를 제외하고 대사를 영어로 했다. 고보니는 출연진이 사용한 원래 이탈리아어 대본의 영어 번역이 조잡했지만 대부분 이를 따랐다고 회상했다. 영화 촬영 각본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데, 고보니는 완전한 이탈리아어 초고를 읽었다고 주장했지만, 스틸은 배우들이 장면 촬영 직전에야 각본 페이지를 받았다고 말해, 영화의 많은 부분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자주 수정되었다는 루카스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촬영 내내 바바라 스틸은 함께 일하기 어려운 배우로 여겨졌다. 고보니는 그녀를 "이상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묘사했고, 바바는 "스틸은 반 미쳤고 이탈리아인을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해로 인해 종종 호출 시간을 놓치거나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한 예로 도미니치가 의상 아래에서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바바가 피사체를 나체로 보이게 하는 특수 필름을 발명했다는 소문을 믿기도 했다. 비평가 마틴 콘테리오는 스틸이 영화 제작에 대해 회상한 내용 중 일부(예: 영화가 겨울에 촬영되었고 모든 사람이 흑백 의상을 입었다는 주장)는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스틸은 나중에 영화 촬영 중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고, 촬영 막바지에는 자신과 존 리처드슨이 촬영 과정에서 축적된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리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바바가 영화 촬영 감독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고보니는 카메라 기사인 우발도 테르자노가 실제 촬영 감독 역할을 했으며, 세트를 "바바가 그를 수정할 필요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조명했다고 주장했다. 루카스는 바바가 스토리보드를 제공하고 조명과 렌즈를 가끔 조정했지만, 테르자노가 주로 어떤 테이크를 사용할지 통제했다고 언급하며 이에 동의한다.
촬영 일정의 마지막 주는 특수 효과 작업과 트래킹 샷을 위해 할애되었으며, 바바는 감독 경력 중 드물게 카메라 돌리를 사용할 수 있었다. 자부티치가 바이다 왕자 쪽으로 떠오르는 장면에서 도미니치는 다른 임시 돌리에 의해 끌려가면서 클로즈업으로 촬영되었다. 나중에 카티아와 콘스탄틴이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은 바바의 아버지인 에우제니오 바바가 개조한 특수 제작 카메라를 사용하여 180° 회전 기법으로 촬영되었는데, 이 카메라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할 수 있는 후방 방사형 핸들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움직임이 너무 미묘해서 배우 이보 가라니는 편집을 통해 회전 효과를 낸 것으로 믿었다.
2. 5. 특수 효과
촬영 일정의 마지막 주는 특수 효과 작업과 트래킹 샷을 위해 할애되었다. 이때 마리오 바바 감독은 그의 감독 경력에서 드물게 카메라 돌리를 사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자부티치가 바이다 왕자 쪽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배우 아르투로 도미니치를 임시 돌리에 태워 끌면서 클로즈업으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또한, 카티아와 콘스탄틴이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독특한 카메라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 장면을 위해 마리오 바바의 아버지인 에우제니오 바바는 특수 카메라를 개조했다. 이 카메라는 후방 방사형 핸들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카메라 축을 중심으로 180° 회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움직임이 매우 미묘했기 때문에, 배우 이보 가라니는 해당 장면의 회전 효과가 촬영 기법이 아닌 편집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3. 등장인물
3. 1. 주요 등장인물
- 바바라 스틸: 아사 바이다 / 카티아 바이다 역. 아사는 17세기에 처형된 뱀파이어 마녀이며, 200년 후 부활하여 복수를 꿈꾼다. 카티아는 아사와 똑같이 생긴 후손으로, 아사의 음모에 휘말린다.
- 존 리처드슨: 안드레이 고로베츠 박사 역 (미국 국제 영화사 더빙판에서는 안드레아스 고로베츠 박사). 카티아와 사랑에 빠지는 젊은 의사이다.
- 안드레아 체키: 크루바얀 박사 역 (미국 국제 영화사 더빙판에서는 토마스 크루바얀 박사). 안드레이의 동료 의사이다.
- 아르투로 도미니치: 이고르 야부티치 역 (미국 국제 영화사 더빙판에서는 자부토). 아사의 하수인이다.
- 이보 가라니: 바이다 공작 역.
- 엔리코 올리비에리: 콘스탄틴 바이다 역.
- 티노 비안키: 이반 역. 바이다의 하인이다.
- 안토니오 피에르페데리치: 신부 역.
- 클라라 빈디: 여관 주인 역.
- 마리오 파산테: 니키타 역. 마부이다.
- 레나토 테라: 보리스 역. 바이다의 마부이다.
- 게르마나 도미니치: 소냐 역. 여관 주인의 딸이다.
3. 2. 기타 등장인물
- 이보 가라니 - 바이다 공작
- 엔리코 올리비에리 - 콘스탄틴 바이다
- 안토니오 피에르페데리치 - 신부
4. 줄거리
17세기 몰다비아에서 마법 혐의로 처형된 뱀파이어 마녀 아사 바이다 공주가 200년 후 부활하여 자신을 처형한 가문의 후손들에게 복수하려는 이야기를 다룬다. 의사 크루바얀과 그의 조수 고로벡은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고로벡은 아사와 닮은 후손 카티아를 만나 그녀를 지키려 한다. 아사의 복수와 이를 막으려는 고로벡 일행의 갈등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4. 1. 몰다비아의 전설 (17세기)
1630년대 몰다비아, 뱀파이어 마녀인 아사 바이다 공주와 그녀의 연인 자부티치는 아사의 오빠 그리아비에 의해 마법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아사는 이에 복수를 맹세하고 그리아비의 후손에게 저주를 내린다. 처형 과정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안쪽에 달린 청동 가면이 아사와 자부티치의 얼굴에 씌워지고 망치로 박혔으나, 갑작스러운 폭풍우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계획했던 화형을 집행하지 못한다.4. 2. 200년 후 (19세기)
2세기 후, 의사 크루바얀 박사와 그의 조수 안드레이 고로벡 박사는 의료 학회 참석차 몰다비아를 여행하던 중 마차 바퀴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는다. 마부가 마차를 수리하는 동안, 두 사람은 근처의 오래된 묘지에 이끌려 들어가 아사의 무덤을 발견한다. 크루바얀은 유리창 너머로 아사의 데스마스크를 살피던 중, 날아든 박쥐를 피하려다 실수로 유리창과 그 위에 있던 십자가를 깨뜨린다. 그는 아사의 데스마스크를 벗겨내 부분적으로 보존된 시신을 확인하는데, 이때 깨진 유리에 손을 베어 흘린 피가 아사의 시신 위로 떨어진다.밖으로 나온 크루바얀과 고로벡은 아사와 매우 닮은 카티아 바이다를 만난다. 카티아는 아버지 바이다 공작과 오빠 콘스탄틴과 함께 근처 성에 살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 성에 유령이 나온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고로벡은 카티아의 아름다움과 슬픔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카티아를 뒤로하고 여관으로 향한다. 한편, 크루바얀의 피로 인해 아사는 부활하여 텔레파시로 자부티치와 교신한다. 자부티치는 무덤에서 일어나 바이다 공작의 성으로 향하고, 공작은 십자가를 들어 맞서려 하지만 그의 모습에 극심한 공포를 느껴 몸이 마비된다. 콘스탄틴이 하인을 보내 크루바얀 박사를 부르려 하지만, 하인은 여관에 도착하기 전에 살해당한다. 자부티치는 크루바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그를 성으로 유인한 뒤, 아사의 묘지로 데려간다. 아사는 크루바얀에게 최면술을 걸어 그의 피를 마시고 하인으로 삼는다. 아사의 명령에 따라 크루바얀은 바이다 공작을 돌보는 척하며 방 안의 십자가를 치우게 하는데, 이는 자부티치가 공작을 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사의 계획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카티아의 젊음과 생명력을 빼앗아 완전한 부활을 이루는 것이었다. 크루바얀이 환자를 버렸다는 소식에 의아함을 느낀 고로벡은 자부티치가 크루바얀을 성으로 데려가는 것을 목격한 소녀 소냐의 증언을 듣고 자부티치의 정체를 확인한다. 사제와 함께 자부티치의 무덤을 파헤친 고로벡은 관 속에서 크루바얀의 시체를 발견하고 그가 언데드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그의 눈에 말뚝을 박아 처치한다.
자부티치는 콘스탄틴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카티아를 아사에게 데려간다. 아사는 카티아의 젊음을 흡수하기 시작하지만, 카티아가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 때문에 피를 완전히 빼앗지는 못한다. 고로벡은 카티아를 구하기 위해 묘지로 달려가 자부티치와 싸우게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콘스탄틴이 마지막 힘을 다해 자부티치를 함정으로 끌어들이고 고로벡을 구한다. 고로벡은 아사와 카티아를 찾아내지만, 아사는 카티아인 척하며 고로벡을 속이려 한다. 그러나 고로벡은 카티아가 걸고 있는 십자가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보고 진실을 간파한다. 그는 아사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녀의 옷을 열어 앙상한 해골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과 사제가 도착하여 아사를 불태워 죽인다. 카티아는 정신을 차리고 생명과 아름다움을 되찾아 고로벡과 재회한다.
4. 3. 복수와 갈등
크루바얀의 피로 인해 되살아난 아사는 텔레파시를 이용해 자부티치와 교신한다. 아사의 부름에 응답한 자부티치는 무덤에서 일어나 바이다 공작의 성으로 향한다. 자부티치를 직접 마주한 바이다 공작은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몸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른다.이후 아사는 자신을 도우러 온 크루바얀 박사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의 하인으로 만들고 그의 피를 마신다. 아사의 명령에 따라 크루바얀은 바이다 공작을 돌보는 척하며, 공작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핑계로 방 안에 걸려 있던 십자가를 치우게 한다. 이는 결국 자부티치가 아무런 방해 없이 성으로 돌아와 바이다 공작을 살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고로벡은 크루바얀 박사가 환자를 버리고 사라졌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소녀 소냐의 증언을 통해 자부티치가 크루바얀을 성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로벡은 사제와 함께 자부티치의 무덤을 조사하다가 관 속에서 크루바얀의 시체를 발견하고, 그가 이미 언데드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크루바얀의 눈에 못을 박아 그를 처치한다.
그 사이 자부티치는 콘스탄틴을 함정에 빠뜨려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 넣고 카티아를 아사에게 데려간다. 아사는 카티아의 젊음을 흡수하여 자신의 생명력을 되찾으려 하지만, 카티아가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 때문에 실패한다. 카티아를 구하기 위해 묘지로 달려간 고로벡은 자부티치의 공격을 받지만, 죽어가던 콘스탄틴이 마지막 힘을 발휘하여 자부티치를 구덩이로 끌어들이면서 목숨을 구한다.
고로벡은 아사와 카티아를 찾아내지만, 아사는 카티아인 척하며 고로벡을 속이려 한다. 그러나 고로벡은 카티아가 지닌 십자가를 보고 진실을 간파한다. 때마침 도착한 사제와 마을 사람들은 아사를 붙잡아 불태워 죽인다. 모든 사건이 끝난 후, 카티아는 원래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되찾고 고로벡과 재회한다.
4. 4. 최후
자부티치는 콘스탄틴을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 넣고 카티아를 아사에게 데려간다. 아사는 카티아의 젊음과 생명력을 흡수하기 시작하지만, 카티아 목에 걸린 십자가 때문에 피를 완전히 빼앗지는 못한다.고로벡은 카티아를 구하기 위해 묘지로 달려가지만, 자부티치의 공격을 받아 죽음의 구덩이 가장자리까지 밀려난다. 이때 콘스탄틴이 마지막 힘을 짜내 자부티치를 구덩이로 끌어들이고 고로벡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낸다.
고로벡은 아사와 카티아를 발견한다. 아사는 자신이 카티아인 척하며 진짜 카티아를 마녀라고 속인다. 고로벡은 속아서 카티아를 죽이려 하지만, 그녀가 지닌 십자가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다. 그는 아사에게 다가가 그녀의 옷을 열어젖히고, 그 안에는 살이 없는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다.
바로 그때, 횃불을 든 많은 마을 사람들과 사제가 도착하여 아사의 정체를 목격하고 그녀를 불태워 죽인다. 모든 저주가 풀리자 카티아는 원래의 생기와 아름다움을 되찾고, 마침내 고로벡과 재회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5. 주제 및 분석
(내용 없음)
6. 영향 및 유산
《사탄의 가면》은 이탈리아 영화 역사, 특히 공포 영화 장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리오 바바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며, 이후 이탈리아 고딕 호러 영화의 부흥을 이끄는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영화는 주연 배우 바바라 스틸을 국제적인 스타이자 1960년대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으며, 그녀는 이후 다수의 공포 영화에 출연하며 장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수준의 노골적인 폭력 묘사와 흑백의 강렬한 대비를 활용한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은 후대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지알로와 같은 이탈리아의 다른 장르 영화는 물론, 팀 버튼과 같은 현대 감독들에게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봉 당시 이탈리아 내에서는 흥행 성적이 다소 제한적이었으나, 미국에서는 《Black Sunday》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여 AIP 배급사 역사상 손꼽히는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영국에서는 폭력적인 장면들로 인해 초기 상영이 금지되었다가 수년이 지난 후에야 검열된 버전으로 개봉하는 등, 국가별로 상반된 반응과 평가를 받기도 했다.
6. 1. 이탈리아 고딕 호러의 선구자
《사탄의 가면》은 1960년 8월 11일 이탈리아에서 La maschera del demonioita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비록 흥행 성적은 으로 다소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주연 배우 바바라 스틸을 이탈리아 내 스타로 만들었고, 이후 이탈리아 영화계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1962년 영화 《I motorizzati》에서는 우고 토냐치가 《사탄의 가면》을 보고 겁에 질리는 공포 영화 팬 역할을 연기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AIP(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가 배급을 맡아 1961년 2월 3일 《Black Sunday》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여, AIP 역사상 5년 동안 가장 높은 수익(국내 임대 수익 70.6만달러)을 올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영국에서는 초기에 상영이 금지되었다가 1968년에야 검열된 버전으로 개봉했고, 무삭제판은 1992년에 이르러서야 공개되었다.
영화의 성공 이후 감독 마리오 바바에게는 더 많은 공포 영화 제작 요청이 이어졌으며, 배우 바바라 스틸은 킴 뉴먼이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아이콘"이라고 칭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부상하여 로저 코먼의 《공포의 관》(1961), 프레다 감독의 《The Horrible Dr. Hichcock》(1962) 등 여러 공포 영화에 출연했다. 스틸은 이후 공포 영화 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1963)과 같은 예술 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사탄의 가면》은 특히 화면 폭력 묘사에서 당시 기준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동시대의 영국 해머 필름 프로덕션 영화들이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가 폭력을 암시하거나 빠른 편집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과 달리, 《사탄의 가면》은 폭력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지알로와 같은 이탈리아 장르 영화, 특히 바바 자신의 《Blood and Black Lace》(1964)나 다리오 아르젠토, 루치오 풀치 감독의 작품들에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또한, 영화는 고통받는 육체를 통해 에로티시즘과 공포를 결합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장 롤랭이나 헤수스 프랑코 같은 다른 유럽 공포 영화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 특히 마녀 아사(Asa)가 종교 재판을 받고 고문당하는 이미지는 매우 인상적이어서 후대의 많은 공포 영화에서 참조되었다. 《The Brainiac》(1962), 《Terror in the Crypt》(1964), 《Bloody Pit of Horror》(1964), 《The She Beast》(1966) 등이 그 예이다. 특히 팀 버튼 감독은 《슬리피 할로우》(1999)에서 리사 마리가 연기한 캐릭터가 아이언 메이든 안에서 얼굴에 구멍이 뚫리는 장면 등 《사탄의 가면》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차용했으며, 바바 감독과 이 영화가 자신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버튼은 "아마 어떤 것보다도 제게 강하게 남아있는 영화 중 하나는 ''블랙 선데이''입니다."라고 말하며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6. 2. 바바라 스틸의 대표작
''사탄의 가면'' 개봉 이후 바바라 스틸은 킴 뉴먼이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아이콘"이라고 묘사한 인물이 되었다. 스틸은 이 영화에서 마녀 아사 바이다와 그의 후손 카티아 바이다라는 1인 2역을 소화했다. 이 영화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스틸은 코먼 감독의 ''함정과 진자''(1961), 프레다 감독의 ''히치콕 박사의 공포''(1962), 그리고 ''유령''(1963) 등 여러 공포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다.
바바 감독은 스틸의 에이전트를 통해 자신의 다음 영화 ''채찍과 시체''의 네벤카 역을 스틸에게 제안했지만, 에이전트 측에서 이를 거절했다. 2002년 이 일에 대해 질문을 받자, 스틸은 그 제안이 자신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만약 알았다면 매우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틸은 이후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1963)과 같은 코미디 영화나 유럽 예술 영화에도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는 공포 영화 연기의 어려움에 대해 "그 특정 시기에 그런 공포 영화를 모두 찍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려운 점은 대부분의 감독들이 과도한 연기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매우 과장된 반응을 원하는데, 한 번의 촬영에는 괜찮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항상 조금 지나쳐 보입니다 [...] 여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스틸은 나중에 ''사탄의 가면''에 대해 "제가 만들었던 그 장르의 영화 중 최고였을지 모르지만, 배우로서 저에게 최고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레임별로 보면 너무 아름답지만 ... 누구나 그 여자를 연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평가했다.
6. 3. 후대 영화에 미친 영향
《사탄의 가면》은 개봉 이후 여러 영화와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코미디 영화 《I motorizzati》(1962)에서 우고 토냐치가 《사탄의 가면》을 보고 겁에 질리는 공포 영화 팬 캐릭터를 연기하는 등 간접적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바바 감독의 아들 람베르토 바바는 《사탄의 가면》 개봉 후 제작자들이 아버지에게 더 많은 공포 영화 연출을 의뢰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주연 배우 바바라 스틸은 이 영화를 통해 킴 뉴먼이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아이콘"이라고 칭할 정도의 인물로 부상했으며, 이후 코만 감독의 《함정과 진자》(1961), 프레다 감독의 《The Horrible Dr. Hichcock》(1962), 《유령》(1963) 등 여러 공포 영화에 출연하며 장르 영화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특히 영화의 오프닝 장면, 즉 마녀 아사 공주(바바라 스틸 분)가 종교 재판을 받고 얼굴에 '사탄의 가면'이 씌워져 못 박히는 장면은 후대 공포 영화에서 자주 오마주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The Brainiac》(1962), 《Terror in the Crypt》(1964), 《Bloody Pit of Horror》(1964), 《The She Beast》(1966), 《The Blood Demon》(1967), 그리고 《The Haunting of Morella》(1990) 등이 있다.
팀 버튼 감독은 마리오 바바와 《사탄의 가면》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밝혔으며, "아마 어떤 영화보다도 제게 강하게 남아있는 영화 중 하나는 《사탄의 가면》(원제: 블랙 선데이)"이라고 언급했다. 버튼은 자신의 영화 《슬리피 할로우》(1999)에서 《사탄의 가면》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차용했는데, 리사 마리가 연기한 캐릭터가 아이언 메이든 안에서 얼굴에 못이 박히는 장면은 아사 공주의 처형 장면과 매우 유사하다. 버튼은 1998년 10월 AMC 채널의 '몬스터페스트(Monsterfest)' 축제에서 이 영화를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사탄의 가면》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수준의 노골적인 폭력 묘사로도 주목받았다. 동시대 해머 영화들이 주로 분장이나 분위기를 통해 공포를 조성하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가 몽타주 기법을 활용해 폭력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과 달리, 《사탄의 가면》은 가면이 얼굴에 박히는 장면 등 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지알로 같은 이탈리아 장르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마리오 바바 자신의 후속작 《피와 검은 레이스》(1964)를 비롯해 다리오 아르젠토, 루치오 풀치 등 여러 감독의 작품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고통받는 육체를 관능적으로 묘사하며 에로티시즘과 공포를 결합하는 방식은 장 롤랭이나 헤수스 프랑코와 같은 다른 유럽 공포 영화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7. 평가
'사탄의 가면'은 개봉 초기 이탈리아 내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했지만, 프랑스와 영국 등 해외에서는 마리오 바바의 독창적인 시각적 스타일과 연출력에 주목하며 호평을 받았다. 특히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와 포지티프, 영국의 먼슬리 필름 불레틴 등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미국에서는 영화의 독특한 촬영 기법과 특수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줄거리에 대해서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탄의 가면'은 마리오 바바의 대표작이자 이탈리아 고딕 호러 영화의 중요한 작품으로 재평가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후대의 평론가들은 영화 특유의 음산하고 시적인 분위기, 키아로스쿠로를 활용한 뛰어난 촬영 기법, 인상적인 미술과 분장 등을 높이 평가하며 바바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꼽는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 팬들과 후대 영화 제작자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서 실시한 역대 최고의 공포 영화 설문 조사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7. 1. 초기 평가
당시 이탈리아 영화 평론가들은 "사탄의 가면"을 대체로 강하게 비판했지만, 일부는 영화의 촬영 기법에 주목했다. 프랑스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페레이둔 호베이다는 영화의 유연한 카메라 움직임과 바바의 시각적 스타일이 환상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칭찬하며, 바바를 "화가의 영혼"을 가졌으며 단번에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선언했다. 포지티프의 장-폴 토로크 역시 영화를 호평했으며, 영화 스틸 사진이 1961년 7월호 잡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영국 개봉 당시, 먼슬리 필름 불레틴의 톰 밀른은 "사탄의 가면"을 바바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으며, 유연한 시각적 스타일과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탄탄한 서사적 장악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름다움과 공포가 뒤섞인 소름끼치는 순간들이 있으며, 이는 바바가 이후 작품에서 능가하지 못한 성취"라고 덧붙였다. 다만 밀른은 영어 더빙판이 영화를 "망쳤다"고 생각했으며, 사운드가 "마치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 것처럼 화면의 거의 히스테리적인 이미지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서의 평가는 영화의 줄거리와 촬영 기법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보여주었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도로시 마스터스는 영화 자체는 끔찍하다고 평하면서도, "특수 효과와 촬영의 전반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했다. 타임지는 이 영화를 "터무니없는 실수를 훌륭한 직관으로 만회하는, 뛰어난 이탈리아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버라이어티는 "관객을 즐겁게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촬영 기법과 제작 역량이 엿보인다"고 언급했다. 반면, 뉴욕 타임스의 유진 아처는 영화를 "헛소리"라고 일축하며 "방만하게 촬영되었다"고 비판했다. 영화 평론가 카를로스 클라렌스는 1967년 저서 공포 및 SF 영화 삽화사에서 "사탄의 가면"을 "바바의 최고 작품"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바바의 후기 작품들이 화려한 색채를 선호하여 명암법을 포기했으며, "사탄의 가면"에서 보여준 연출 대신 불필요한 갑작스러운 컷과 제한 없는 줌 렌즈 사용 같은 형식적인 기교에 치중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7. 2. 재평가
회고적인 평가에서 티모시 설리번은 1986년 ''공포와 초자연에 대한 펭귄 백과사전''에서 이 영화를 "최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포 영화"라고 평했다. 그는 이 작품이 바바의 "최초이자 최고의 연출작이며, 1960년대 이탈리아 고딕 시네마의 시작"을 알렸다고 평가하며, "[이 영화는] 의심할 여지 없이 [바바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며, 역대 최고의 공포 영화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올무비의 리처드 길리엄은 이 영화에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반의 평점을 주면서, 바바가 "이상하고 금지된 것들의 시각적인 향연"을 창조했으며, 이는 "비현실적인 세상에 대한 청소년과 같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이탈리아 고딕 호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제임스 매리엇은 이 영화를 "이탈리아 고딕 호러의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칭찬했다. 그는 "여기서는 이야기와 캐릭터 묘사(기껏해야 형식적)가 웅장한 분위기의 시각적 효과에 밀려나지만, 이 영화의 일부 시퀀스[...]는 진정으로 소름 끼친다"고 언급했다. ''Sight & Sound''의 제임스 블랙포드는 2013년 리뷰에서 "이탈리아 호러 영화는 강렬한 분위기, 과장된 시각적 스타일, 고어 장면으로 유명하며, ''블랙 선데이''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처음으로 개척한 영화"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아름답게 구성된 키아로스쿠로 촬영 기법, 표현주의적인 세트 디자인과 미술 감독, 그리고 기괴하고 매력적인 분장은 이 영화에 독특한 분위기를 더한다. 이것은 가장 웅장하고 풍성하며, 고상한 이미지가 가득한 영화"라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 팬과 영화 제작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1996년 영국 팬 매거진 ''쉬버스''가 실시한 역대 공포 영화 25선 설문 조사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또한, ''팡고리아''가 1970년 이전에 제작된 최고의 공포 영화 10편을 독자 투표로 선정했을 때, 피셔의 ''드라큘라''와 함께 7위에 올랐다. 2010년대에는 ''타임 아웃''이 공포 장르에서 활동한 작가, 감독, 배우,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고의 공포 영화 투표에서 100위 중 84위로 선정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Black Sunday by Giuliano Nistri (American International, c.1996)
https://movieposters[...]
2021-01-07
[2]
웹사이트
La Maschera Del Demonio / Black Sunday • Preorders Are Open
https://www.spikerot[...]
Spikerot Records
2019-05-30
[3]
웹사이트
Black Sunday - Les Baxter
http://www.kritzerla[...]
Kritzerland
2021-01-07
[4]
문서
『妖女』『妖婆』とも訳される。[[ヴィイ]]も参照。
[5]
뉴스
Fantastic Gore: Mario Bava's ''The Mask of Satan''
https://www.theguard[...]
guardian.co.uk
2005-04-16
[6]
뉴스
THE MARIO BAVA COLLECTION, VOLUME 1
https://www.ny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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