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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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산탈어는 몬다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인도, 방글라데시, 부탄, 네팔 등지에서 700만 명 이상이 사용한다. 1925년 올치키 문자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구어로만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올치키 문자 외에도 라틴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벵골 문자, 오리야 문자를 사용한다. 산탈어는 교착어이며, 명사, 대명사, 동사 등에서 다양한 문법적 특징을 보인다. 인도의 22개 공용어 중 하나이며, 자르칸드주와 서벵골주의 추가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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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폴 시드웰(Paul Sidwell)에 따르면, 몬다어족은 약 4000~3500년 전 본토 동남아시아에서 오디샤 해안에 도착하여 인도-아리아인의 이동 이후 오디샤로 퍼져나갔다.[4]
19세기까지 산탈어는 문자가 없었고, 모든 지식은 구전으로 전해졌다. 이후 인도의 언어 연구에 대한 유럽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탈어를 기록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1860년대 이전에 유럽의 인류학자, 민속학자, 선교사들(A. R. 캠벨, 라스 스크레프르드, 폴 보딩 등)은 벵골 문자, 오디아 문자, 로마자를 사용하여 산탈어를 기록했다.
라구나트 무르무(Raghunath Murmu)는 1925년 마유르반지에서 산탈어를 위한 올치키 문자를 창안하였고, 1939년에 처음 공개되었다.[5] 현재 서벵골주, 오디샤주, 자르칸드주에서 산탈어 문학 및 언어의 공식 문자로 사용되고 있다.[6][7]
2013년 12월, 인도 대학교육위원회는 전국자격시험(National Eligibility Test)에 산탈어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8]
2. 1. 인도-아리아인의 이동과 산탈족
언어학자 폴 시드웰(Paul Sidwell)에 따르면, 몬다어족은 약 4000~3500년 전 본토 동남아시아에서 오디샤 해안에 도착하여 인도-아리아인의 이동 이후 오디샤로 퍼져나갔다.[4]2. 2. 19세기: 유럽의 기록과 문자 도입
몬다어족에 속하는 산탈어는 인도-아리아인의 이동 이후 오디샤로 퍼져나갔으며, 본토 동남아시아에서 약 4000~3500년 전 오디샤 해안에 도착했다는 설이 폴 시드웰(Paul Sidwell)에 의해 제기되었다.[4]19세기까지 산탈어는 문자가 없어 모든 지식이 구전으로 전해졌다. 이후 인도의 언어 연구에 대한 유럽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탈어를 기록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1860년대 이전에 유럽의 인류학자, 민속학자, 선교사들(A. R. 캠벨, 라스 스크레프르드, 폴 보딩 등)은 벵골 문자, 오디아 문자, 로마자를 사용하여 산탈어를 기록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산탈어 사전, 민담 번역본, 언어의 형태론, 통사론, 음성 구조 연구가 이루어졌다.
라구나트 무르무(Raghunath Murmu)는 1925년에 마유르반지에서 산탈어를 위한 올치키 문자를 창안하였고, 1939년에 처음 공개되었다.[5]
올치키 문자는 산탈 공동체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현재 서벵골주, 오디샤주, 자르칸드주에서 산탈어 문학 및 언어의 공식 문자로 사용되고 있다.[6][7] 그러나 방글라데시의 사용자들은 벵골 문자를 사용한다.
2013년 12월, 인도 대학교육위원회는 강사들이 대학에서 산탈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국자격시험(National Eligibility Test)에 산탈어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8]
2. 3. 20세기: 올치키 문자 창제와 공인
올치키 문자는 1925년 마유르반지 시인 라구나트 무르무(Raghunath Murmu)에 의해 산탈어를 위해 창안되었고, 1939년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5] 19세기까지 산탈어는 문자가 없었고, 모든 공유 지식은 세대를 거쳐 구전으로 전해졌다. 인도의 언어 연구에 대한 유럽의 관심은 산탈어를 기록하려는 최초의 노력으로 이어졌다. 1860년대 이전에 유럽 인류학자, 민속학자, 선교사들, A. R. 캠벨, 라스 스크레프르드, 폴 보딩 등이 산탈어를 기록하는 데 벵골 문자, 오디아 문자와 로마자를 처음 사용했다. 그들의 노력은 산탈어 사전, 민담 번역본, 그리고 언어의 형태론, 통사론, 음성 구조 연구로 이어졌다.올치키 문자는 산탈어 문자로서 산탈 공동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서벵골주, 오디샤주, 자르칸드주에서 올치키 문자는 산탈어 문학 및 언어의 공식 문자이다.[6][7] 그러나 방글라데시 사용자들은 벵골 문자를 사용한다.
2013년 12월, 인도 대학교육위원회가 강사들이 대학에서 산탈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국자격시험(National Eligibility Test)에 산탈어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영예를 안았다.[8]
2. 4. 21세기: 전국자격시험 도입
폴 시드웰(Paul Sidwell)에 따르면, 몬다어족은 약 4000~3500년 전 본토 동남아시아에서 오디샤 해안에 도착하여 인도-아리아인의 이동 이후 오디샤로 퍼져나갔다.[4]2013년 12월, 인도 대학교육위원회는 강사들이 대학에서 산탈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국자격시험(National Eligibility Test)에 산탈어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8]
3. 문자
산탈어는 주로 구어로만 쓰여왔으나, 1925년 올치키 문자가 개발되었다. 산탈어는 라틴 문자, 올치키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벵골 문자, 오리야 문자로 표기한다.
3. 1. 올치키 문자
올치키 문자는 1925년에 개발되었으며, 산탈어를 표기하는데 사용된다.[1] 산탈어는 주로 구어로만 쓰여왔다.[1] 산탈어 표기에는 라틴 문자, 올치키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벵골 문자, 오리야 문자가 사용된다.[1]3. 2. 기타 문자
라틴 문자 또는 올치키 문자를 사용한다. 데바나가리 문자, 벵골 문자, 오리야 문자도 사용한다.4. 음운
산탈어에는 8개의 구개모음과 6개의 비음화모음 음소가 있다. /e o/를 제외하고 모든 구개모음은 비음화된 대응어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이중모음이 존재한다.
4. 1. 닿소리 (자음)
:*ɳ은 /n/ 앞의 /ɖ/에서만 동위음으로 나타난다.
산탈어에는 10개의 유기음(有氣音)을 제외하고 21개의 자음이 있다. 이 유기음은 주로, 하지만 전적으로는 아닌, 인도아리아계 차용어에서 나타나며, 위 표의 괄호 안에 제시되어 있다.[20] 모든 파열음은 음절 말에서 불파음으로 나거나 성문음화된다. 고유어에서 무성 파열음과 유성 파열음의 대립은 어말 위치에서 중화된다. 전형적인 문다어(Munda) 특징으로 어말 파열음은 '억제(checked)'되며, 즉 성문화(glottalised)되고 방출되지 않는다.
4. 2. 홀소리 (모음)
산탈어는 8개의 구개모음과 6개의 비음화모음 음소를 가지고 있다. /e o/를 제외하고 모든 구개모음은 비음화된 대응어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이중모음이 존재한다.
5. 형태론
산탈어는 다른 모든 문다어와 마찬가지로 접사를 사용하는 교착어이다.[1]
5. 1. 명사
산탈어의 명사는 수와 격에 따라 활용된다.[1]5. 1. 1. 수
단수, 쌍수, 복수의 세 가지 수를 구분한다.[1]
5. 1. 2. 격
격 조사는 수 조사 뒤에 온다. 다음과 같은 격들이 구분된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