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서세옥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서세옥은 1929년 대구에서 태어난 한국의 동양화가로, 서예 기법을 수묵화에 통합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묵림회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탐구했으며,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가르치며 교육자로서도 기여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사람들' 연작이 있으며, 2020년에 별세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화가 - 천경자
    천경자는 전라남도 고흥 출신의 대한민국 화가이자 수필가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여 '길례언니',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등 다수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미인도' 위작 사건 이후 절필 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다.
  • 한국화가 - 고희동
    고희동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서양화와 동양화, 독립운동, 교육, 정치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으며, 대표 작품으로 〈정자관을 쓴 자화상〉 등이 있고 종로구 원서동에 고희동 가옥이 있다.
  •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자 - 송순천
    송순천은 대한민국의 복싱 선수이자 체육인으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밴텀급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고, 은퇴 후 용인대학교 교수를 거쳐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체육계 발전에 기여했다.
  •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자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김소희는 1992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종합 우승,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출신 스포츠인으로, 은퇴 후 스포츠마케팅 석사 및 서울대학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스포츠 외교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 - 오윤 (화가)
    오윤은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이자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대표 작가로, 흑백 목판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삶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한국 전통 예술과 서구 미술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한국 현대 판화의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 - 김민기 (가수)
    김민기는 1970년대 저항가요를 대표하며, 가수, 작곡가,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했고,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연출했으며, 2024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서세옥
기본 정보
서세옥
서세옥
출생1929년 2월 22일
사망2020년 11월 29일 (91세)
국적대한민국
직업화가, 교수
학력
학력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학사
경력
경력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수상
수상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제1회 자랑스러운 경기인상

2. 생애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32] 1955년 한국미술가협회, 1960년 묵림회(墨林會)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국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화단에 기여했다.[32] 국내외 미술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여러 차례 수상하였고, 다양한 국제 전시에 참여하여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32] 그의 아들 서도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이다.[33] 2020년 11월 29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서세옥은 1929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태어났다.[7] 성장 과정에서 문학에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 문학 등단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문학이 문자에 의존하여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생각하여 미술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8][9]

미술 공부를 시작하며 처음에는 길진섭 (吉鎭燮, 1907–1975)에게서 석고 정물화를 스케치하는 법을 배웠다.[10][11][12] 1946년 미술대학이 설립된 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10][11][12] 대학에서는 화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근원 김용준 (近園 金瑢俊, 1904–1967)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김용준은 단순하고 깔끔한 공간 활용과 옅은 색의 먹을 덧칠하는 담채(薄彩) 기법을 중심으로 한 ‘신(新) 문인화’를 강조했는데, 이는 두꺼운 색과 먹을 사용하고 거미줄 같은 윤곽선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식 화풍인 진채(眞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13][14][8]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주최한 미술 전시회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大韓民國美術展覽會, 약칭 국전)에서 작품 '꽃장수'(1949)로 1등 상을 받았다.[15] 졸업 후에는 월전(月田) 장우성 (張遇聖, 1912–2005)에게서 수묵화를 더 배우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16] 서세옥은 그림뿐만 아니라 서예가이자 한시(漢詩) 시인, 그리고 뛰어난 전각가로서도 활동했다.[9]

2. 2. 화가로서의 활동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서세옥은 일제 강점기 동안 동양화 분야를 지배했던 일본화( 日本画|니혼가일본어 )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한국적 수묵화 양식을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17] 이는 당시 많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공통된 지향점이었으며, 서세옥은 서울대학교 동문들과 함께 1959년 묵림회를 결성했다. 묵림회는 먹을 사용한 아방가르드 및 추상 양식을 실험하는 동양화가 그룹이었다.[18][19] 묵림회는 앵포르멜과 같은 서구의 전후 예술 운동을 탐구하기도 했지만, 서세옥은 서구 아방가르드의 단순한 모방이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잃게 할 수 있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19][17]

뛰어난 서예가이기도 했던 서세옥은 1950년대부터 서예 기법을 자신의 회화에 적극적으로 통합하기 시작했다.[20] 그는 절제된 톤의 옅은 먹, 손수 만든 닥종이나 화선지, 서정적인 붓놀림, 그리고 동양 수묵화의 특징인 여백의 미를 활용하여 현대적인 조형 언어를 추구했다.[4]

서세옥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52년 제1회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1954년 제3회 국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1970년 제19회 국전에서는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베트남 사이공에서 열린 국제미술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55년에는 한국미술가협회, 1960년에는 묵림회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국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32] 국제적으로는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1966년 말레이시아 한국미술전, 1967년 프랑스 한국미술전, 1969년 이탈리아 제1회 현대회화 비엔날레, 1969년 제1회 회화제 등에 작품을 출품하며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렸다.[32][21] 1966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조형예술협회(IAA) 정기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북미와 유럽의 미술계를 순방하며 견문을 넓혔다.[32][22]

그의 대표작으로는 《설화이장: 태양을 다투는 사람들》(1969), 《장생》(1972), 《행인》(1978), 《춤추는 사람들》(1989) 등이 있다.[23] 그의 작품 속 인물 형상은 닥종이에 먹으로 그린, 굵기, 농담, 길이가 다양한 독특한 붓놀림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20]

서세옥은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가르쳤으며,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했다.[24][25] 또한 1961년부터 1982년까지 국전 심사위원을 지내며 한국 화단의 발전에 기여했다.[24]

그의 아들 서도호 역시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33] 서세옥은 2020년 11월 2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2. 3. 교육자로서의 활동

서세옥은 교육자로서도 활동하여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가르쳤다.[24][25] 또한 1961년부터 1982년까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심사위원을 지냈으며,[24] 1982년부터 1985년까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했다.[24][25]

2. 4. 말년

그의 아들 서도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서 뉴욕에 거주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33]

2020년 11월 29일에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3. 작품 및 경향

서세옥은 서정적인 추상 계통의 동양화가로, 동양 수묵담묵(淡墨)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려 현대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추구했다.[32] 1945년 일제 강점기로부터의 해방과 한국 전쟁을 겪으며, 그는 당시 동양화 분야에 남아있던 일본화(日本画)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한국 수묵화 스타일을 창조하고자 했다.[17] 이는 당시 많은 한국 예술가들의 공통된 목표였으며, 그는 서울대학교 동문들과 함께 1959년 묵림회(墨林會)를 결성하여 먹을 이용한 추상 양식과 새로운 기법을 실험했다.[18][19] 서구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을 탐구하면서도, 서세옥은 서구 양식의 무분별한 모방이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잃게 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19][17]

뛰어난 서예가였던 서세옥은 1950년대부터 서예 기법을 자신의 회화에 접목하기 시작했다.[20] 그는 절제된 톤의 옅은 먹, 닥종이나 화선지와 같은 전통 재료, 서정적인 붓놀림, 그리고 여백의 활용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을 선보였다.[4]

국제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여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1966년 말레이시아 한국 미술전, 1969년 이탈리아 제1회 현대 회화 비엔날레 등 다수의 해외 전시에 참여했다.[21] 또한 196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조형예술협회(IAA)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북미와 유럽 미술계를 시찰하기도 했다.[22]

그의 작품 세계는 서양과 동양, 구상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 평가받는다.[24] 대표적인 '사람들' 연작은 한자 '인'(人) 자를 변형한 것으로, 서예적 필치를 회화에 접목한 예이다.[24]

교육자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했다.[24][25] 또한 1961년부터 1982년까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심사위원을 지냈다.[24]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화풍은 점차 기교를 덜어내고 더욱 최소화되며 즉흥적인 경향을 보였고, 특히 후기로 갈수록 여백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서세옥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말하며,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예술 철학을 설명하기도 했다.[30] 그의 작업은 먹과 흰 종이, 즉 존재와 부재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동양화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동시에, 일제 강점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국 회화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이었다.[31][24]

3. 1. 주요 작품

서정적인 느낌의 추상적인 동양화를 그리는 작가로, 동양 수묵의 옅고 짙음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려 현대적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주요 작품으로는 〈설화이장(說話二章)〉, 〈태양을 다루는 사람들〉 등이 있다.[32]

3. 2. '사람들' 연작

서세옥의 유명한 '사람들' 연작은 그림문자인 한자 '인'(人)을 변형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서예적 회화에서 영감을 얻었다.[24] 이 연작은 그의 추상 수묵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종종 서양 추상 구도와 전통 재료 및 기법의 결합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전통 문인화의 '직관'(直觀)과 선과 점의 내성적인 적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24]

'사람들' 연작에서 머리를 표현하는 점과 팔다리를 표현하는 선들은 집합적이고 반복적으로 구성되어, 마치 군중 속에서 조화로운 패턴이나 사람들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이는 점과 선의 반복적인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인 '군중'은 획일적이고 연결된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 '사람'의 묘사는 움직임과 형태 면에서 저마다 독특함을 지닌다.[27] 서세옥은 이를 통해 특정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삶, 인간, 그리고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암시하고자 했다.[26][28]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 연작은 추상과 구상 묘사 사이의 매혹적이고 몰입적인 결합을 보여주며, "얽힌 형태는 표현과 순수한 마크 만들기를 오간다"는 평가를 받는다.[29][4]

서세옥은 그림에서 다양한 종류의 먹 붓 터치를 사용했는데, 특히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먹을 뿌리고 쏟는 '발묵'(潑墨) 기법과 절제된 먹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석묵'(惜墨) 기법이 두드러진다.[24] 그의 작업은 서양과 동양, 구상과 추상의 이분법적 구분을 초월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먹과 흰 종이, 즉 존재와 부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표현 방식은 동양 회화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롭게 부상하던 한국 회화의 '정체성'을 탐구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31][24]

3. 3. 기법

서세옥은 동양화수묵 기법과 여백의 미를 살려 서정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추상 화풍을 구축했다. 그는 특히 담묵(淡墨)의 절제된 사용과 여백의 조화를 통해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추구했다.[32]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서세옥은 동양화 분야에 남아있던 일본화(日本画)의 영향, 특히 그 구성 방식과 색채 사용에서 벗어나고자 했다.[17]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서울대학교 동문들과 함께 1959년 묵림회(墨林會)를 결성하여, 먹을 이용한 추상 양식과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며 독창적인 한국 수묵화 스타일을 모색했다.[18][19] 묵림회 활동을 통해 앵포르멜 등 서구의 전후 미술 운동을 탐구하기도 했지만, 서세옥은 서구 아방가르드의 무분별한 수용이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잃게 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19][17]

뛰어난 서예가이기도 했던 그는 1950년대부터 서예의 필법과 정신을 자신의 회화에 적극적으로 통합하기 시작했다.[20] 그는 절제된 톤의 옅은 먹, 닥종이나 화선지와 같은 전통 재료, 그리고 서정적인 붓놀림과 여백의 활용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의 수묵화를 구현했다.[4] 그의 작업은 서양 추상과 한국 전통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 전통 문인화(文人畫)의 '직관'(直觀)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선과 점 하나하나에 내적인 성찰을 담아내고자 했다.[24]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서양과 동양, 구상추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독창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예 기법의 적용은 《비문》(1962)과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그는 글자 대신 신중하게 배치된 점들을 사용하여 마치 비문을 '쓰듯' 표현했는데, 의미 없는 점들이지만 관람객은 이를 마치 해독하듯 감상하게 된다.[26] 한자 '인'(人, 사람) 자를 변형하여 발전시킨 그의 대표 연작 '사람들' 역시 서예적 발상에서 출발했다.[24] 이 연작에서 머리를 상징하는 점과 팔다리를 나타내는 선들의 반복적인 구성은 군중의 움직임이나 물결 같은 조화로운 패턴을 형성하면서도, 동시에 점과 선 자체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는 연결된 군중의 모습이지만, 개별적인 '사람' 형상은 저마다 다른 움직임과 형태를 지니며 독특함을 유지한다.[27] 서세옥은 이를 통해 특정 인물을 묘사하기보다는 삶과 인간 존재, 그리고 그 움직임의 보편적인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다.[26][28] '사람들' 연작은 추상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얽힌 형태는 표현과 순수한 마크 만들기를 오간다."[29][4] 독특한 조형 세계를 보여준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신화적 주제를 다룬 구상적인 작품들도 제작했는데, 이 시기 작품들 역시 고도로 압축되고 절제된 구성과 최소한의 필묵 사용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15] 그는 먹을 다루는 데 있어 자유롭게 뿌리거나 번지게 하는 '발묵'(潑墨) 기법과 먹 사용을 극도로 아끼는 '석묵'(惜墨)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다양한 표현을 시도했다.[24]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화풍은 점차 기교를 덜어내고 더욱 최소화되며 즉흥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고, 특히 후기로 갈수록 여백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말하며,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예술 철학, 특히 여백에 대한 이해를 설명했다.[30] 먹과 흰 종이, 즉 존재(있음)와 부재(없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동양화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동시에, 일제 강점기의 영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국 회화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이었다.[31][24]

4. 수상

5. 가족 관계

그의 아들 서도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서 뉴욕에 거주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33]

참조

[1] 뉴스 수묵추상 개척한 산정 서세옥 별세 https://www.sedaily.[...]
[2] 웹사이트 Naver people http://people.search[...]
[3] 웹사이트 Suh Se-ok 서세옥 徐世鈺 (Sanjeong 산정 山丁) https://www.britishm[...] 2023-07-04
[4] 논문 Suh Se-ok: Museum of Fine Arts https://search.ebsco[...] 2008-11
[5] 서적 Saramdeul Suh Se-ok Daejeon Sirip Misulgwan
[6] 논문 Where I Work: Do-Ho Suh 2013
[7] 웹사이트 Doosan Encyclopedia - 서세옥 http://terms.naver.c[...]
[8] 논문 Jakga ui bang: Sanjeong Suh Se-ok: Hyeondae misul 40-nyeon ui eolgul Suh Se-ok hwabaek ui sam gwa geurim segye 2015-11
[9] 서적 Suh Se-ok: 2014 gijeung jakpum 100 Gukrip Hyeondae Misulgwan
[10] 서적 Suh Se-ok: 2014 gijeung jakpum 100 Gukrip Hyeondae Misulgwan
[11] 논문 Gil Jin-seop, Joseon Mijeon eul geobu hatdeon geundae hwadan ui jiseong 1989-04
[12] 서적 Suh Se-ok Graphic Korea
[13] 서적 Geunwon jeonjip ihu ui Geunwon Yeolhwadang
[14] 서적 Suh Se-ok: 2014 gijeung jakpum 100 Gukrip Hyeondae Misulgwan
[15] 서적 Suh Se-ok Graphic Korea
[16] 웹사이트 Suh Se-ok: Saramdeul https://www.mmca.go.[...] 2023-11-03
[17] 웹사이트 SUH SE-OK (1929–2020) https://www.artforum[...] 2023-11-03
[18] 논문 Flash of Inspiration: Byeol i jida: Suh Se-ok, Kim Tschang-yeul, Gong Seong-hun, 3 in ui geojang eul jomyeong handa 2021-07
[19] 웹사이트 Artist Suh Se Ok, Pillar of Korean Contemporary Painting, Dies at 91 https://www.artnews.[...] 2023-11-03
[20] 웹사이트 'Suh Se Ok {{!}} Artworks, Exhibitions, Profile & Content' https://ocula.com/ar[...] 2019-03-05
[21] 서적 Suh Se-ok: 2014 gijeung jakpum 100 Gukrip Hyeondae Misulgwan
[22] 문서 Korea Art / Trend in Korean Art / Modern Art of Korea / Artists of the Modern Era / Seo, Se Ok, 《Global World Encyclopedia》
[23] 웹사이트 Misulgye sosik: Go Suh Se-ok hwabaek do Lee Kun-hee cheoreom... 3290 jeom Seongbukgu e gijeung https://m.kartprice.[...] 2023-11-03
[24] 서적 Suh Se-ok Graphic Korea
[25] 서적 Saramdeul Suh Se-ok Daejeon Sirip Misulgwan
[26] 서적 Saramdeul Suh Se-ok Daejeon Sirip Misulgwan
[27] 서적 Saram, geu sam ui chammoseup Solkwahak
[28] 간행물 Jakga ui bang: Sanjeong Suh Se-ok: Hyeondae misul 40-nyeon ui eolgul Suh Se-ok hwabaek ui sam gwa geurim segye 2015-11
[29] 서적 Suh Se-ok Graphic Korea
[30] 서적 Suh Se-ok: 2014 gijeung jakpum 100 Gukrip Hyeondae Misulgwan
[31] 서적 Suh Se-ok: 2014 gijeung jakpum 100 Gukrip Hyeondae Misulgwan
[32] 문서 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한국 현대미술/현대의 미술가/서세옥, 《글로벌 세계 대백과》
[33] 웹인용 네이버캐스트 미술가 서도호 https://web.archive.[...] 2014-06-0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