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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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부야계는 1990년대 일본 도쿄 시부야를 중심으로 등장한 음악 장르이다. 1980년대 후반 시부야가 문화 중심지로 부상하며, 다양한 서구 음악을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플리퍼즈 기타 해산 이후 "시부야계"라는 용어가 정착되었으며, 피치카토 파이브, 오리지널 러브, 플리퍼즈 기타 등이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꼽힌다. 시부야계는 음악뿐만 아니라 디자인, 패션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 영향을 미쳤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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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계 | |
---|---|
장르 개요 | |
![]() | |
다른 이름 | 시부야 스타일 |
어원 | 시부야에서 유래 |
스타일 기원 | 팝 음악 인디 팝 시티 팝 오케스트라 팝 소울 음악 라운지 음악 프렌치 팝 선샤인 팝 힙합 하우스 음악 재즈 펑크 보사노바 이탈리아 사운드트랙 |
문화적 기원 | 1990년대, 시부야, 도쿄, 일본 |
악기 | 현악기 관악기 |
파생 장르 | 아키시부케이 |
하위 장르 | 네오 시부야케이 |
관련 토픽 | 체임버 팝 키치 프로그레시브 음악 |
2. 역사적 배경
1980년대 후반 일본 도쿄 시부야는 세련된 레스토랑, 바, 레코드 가게, 서점 등이 밀집한 문화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부야계는 탄생했다.
2. 1. 시부야계의 기원과 명칭
1980년대 후반, 도쿄도 시부야는 세련된 레스토랑, 바, 레코드 가게, 서점 등이 밀집한 문화 중심지로 떠올랐다. FM 라디오 방송국 J-Wave는 서구적인 사운드의 일본 음악을 지칭하기 위해 "J-po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6] 1991년, HMV 시부야점은 인디 레코드들을 소개하는 J-pop 코너를 열었고, 이 코너에서 "시부야계"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25]피치카토 파이브의 코니시 야스하루에 따르면, 1991년 여름 무렵 잡지 취재에서 멤버 타카나미 케이타로가 "피치카토 파이브, 오리지널 러브, 플리퍼즈 기타 같은 밴드를, 지금 시부야계라고 하는 거죠?"라고 발언했다고 한다.[26] 편집자 카와카츠 마사유키는 1993년 봄 무렵 정보지 『apo』의 편집자 야마자키 지로가 HMV 시부야점을 취재했을 때 생긴 말이라고도 한다.[27]
"시부야계"라는 단어의 최초 출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플리퍼즈 기타 해산(1991년) 이후 정착된 것으로 여겨진다.[21] 『ROCKIN'ON JAPAN』지 1993년 12월호 러브 탬버린즈 인터뷰에서 "시부야 모노"라고 표기된 것이 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사례라고 한다. 당시 『Rockin'on』지에 재직했던 음악 평론가 타나카 소이치로는 "우다가와 정의 외자계 CD 샵을 중심으로 한 반경 수백 미터 내에서 유통되는 음악"을 비꼬는 의도로 명명했다고 한다.[29]
이러한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오리지널 러브의 타지마 타카오 등 시부야계로 분류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아티스트도 많았다. 그러나 "시부야계"로 범주화되는 음악이 팬을 늘리면서, 본래의 부정적인 의미는 옅어지고 "세련된 음악"을 가리키는 긍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2. 2. 시부야계의 음악적 특징과 영향
시부야계는 1980년대 시티팝의 영향을 받아 서구의 다양한 음악 장르를 혼합하여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1990년대 아이돌 음악이나 엔카 등 전형적인 일본 음악에 반기를 든 젊은 뮤지션들이 서구의 일렉트로닉 음악, 프렌치 팝 등을 차용하여 만들기 시작하였다. 시부야계 음악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골격으로 보사노바, 힙합 등 갖가지 장르가 혼합된 형태를 다룬다.[18]시부야계 아티스트들은 1960년대 문화와 팝 뮤직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17] 버트 바카락, 브라이언 윌슨, 필 스펙터 등 오케스트럴 팝을 구축한 프로듀서와 프렌치 팝스(예예)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세르주 갱스부르 등이 그 예이다.[17] 오타키 에이이치・야마시타 타츠로 등의 나가이아라계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이들은 과거의 음악을 샘플링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을 통해 창의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음악학자 모리 요시타카는 시부야계를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적 자원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규정될 수 있는 그들의 절충적으로 세련된 하이브리드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피치카토 파이브, 플리퍼스 기타, 코넬리우스, ORIGINAL LOVE 등이 있다. 플리퍼스 기타는 오자와 겐지와 오야마다 케이고(코넬리우스)가 이끈 듀오로, 시부야케이의 기반을 다졌고 모든 그룹에 영향을 미쳤다.[12] 피치카토 파이브는 주류 J-pop과 재즈, 소울, 라운지 뮤직의 영향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펼쳐나갔다.[13] 오야마다의 솔로 데뷔곡 "The Sun Is My Enemy"는 일본 싱글 차트에서 15위에 그쳤지만, 시부야케이를 정의하는 데 기여한 "핵심 트랙"으로 평가받는다.[11] 그의 1997년 앨범 ''Fantasma'' 역시 이 장르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여겨진다.[12]
시부야계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시부야계 아티스트들의 CD 재킷 디자인이나 패션은 1960년대, 70년대의 디자인을 다시 해석한 참신한 것이었으며, 음악 팬층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시부야계는 주요 연주자들이 다른 음악 스타일로 이동하면서 쇠퇴했다.[15]
3. 시부야계의 발전과 확산
시부야계는 1990년대 일본 대중음악 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발전했다. 이 장르는 시부야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다양한 음악 스타일과 패션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위 섹션의 내용과 겹치지 않도록 시부야계의 발전과 확산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원본 소스에 존재하지 않아, 더 이상 작성할 내용이 없음.)
3. 1. 시부야계의 전성기
Flipper's Guitar는 오자와 겐지와 오야마다 케이고(코넬리우스)가 이끈 듀오로, 시부야케이의 기반을 다졌다.[12] 오야마다의 솔로 데뷔 이후 그는 가장 성공한 시부야케이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데뷔곡 "The Sun Is My Enemy"는 일본 싱글 차트에서 15위에 그쳤지만, 시부야케이를 정의하는 데 기여한 "핵심 트랙"으로 평가받는다.[11] 1997년 앨범 ''Fantasma'' 역시 이 장르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여겨진다.[12][4]가장 유명한 시부야케이 밴드는 Pizzicato Five로, J-pop과 재즈, 소울 및 라운지의 영향을 융합하여 ''Made in USA''(1994)로 상업적 정점을 찍었다.[13]
1990년대 말, 시부야계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용어는 보다 주류적인 감성을 반영하는 음악 스타일을 가진 많은 밴드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일부 아티스트들은 "시부야케이"로 분류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HMV 시부야 등 시부야의 상점들이 이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결국 "시부야계"라는 이름은 널리 정착되었다. HMV 시부야는 시부야케이 음반을 일본 전통 음악 섹션에서 판매했다.
Momus, La Casa Azul, Dimitri from Paris, Ursula 1000, Nicola Conte, Natural Calamity, 그리고 Phofo 등 일본 외 음악가들도 시부야케이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Clazziquai Project, Casker, 그리고 Humming Urban Stereo와 같은 대한민국의 밴드들은 "한국의 네오 시부야케이 운동"을 대표한다고 여겨진다.[14]
3. 2. 시부야계의 해외 진출과 영향
시부야계는 미국, 유럽 등 서구의 인디 음악 씬에 적극적으로 소개되었다. 모마스, 스테레오랩, 세인트 에티엔느, 디미트리 프롬 파리영어, 자미로콰이, 카디건스 등의 아티스트는 일본에서 시부야계와 공통된 리스너에게 지지를 받았다.[20] 1990년대 중반 이후, 시부야계 음악은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 일본의 팝 문화 붐과 함께 해외의 청소년들에게 국지적으로 받아들여졌다.[20]가장 유명한 시부야계 밴드는 피치카토 파이브로, 주류 J-pop과 재즈, 소울, 라운지의 영향을 융합시켜 1994년에 Made in USA를 발매하여 상업적인 정점에 도달했다.[36] 1990년대 말 스타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용어는 음악 스타일이 더 주류의 감성을 반영한 많은 밴드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일부 아티스트는 '시부야계'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저항했지만, 시부야 센터가이의 HMV 시부야 등 지역 비즈니스에서 선호했기 때문에, 결국 이 이름이 정착되었다.
영국의 모마스, 프랑스의 디미트리, 미국의 내추럴 칼라미티나 포포 등, 일본 이외의 뮤지션도 서서히 시부야계라고 불리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클래지콰이, 캐스커, 허밍 어반 스테레오와 같은 밴드들은 "한국의 네오 시부야케이 운동"을 대표한다고 여겨진다.[14]
3. 3. 시부야계의 쇠퇴와 유산
Flipper's Guitar 해체 이후, 오자와 겐지와 오야마다 케이고(코넬리우스)는 각자 솔로 활동을 통해 시부야계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오야마다는 1997년 앨범 ''Fantasma''를 통해 평론가들로부터 "현대판 브라이언 윌슨" 또는 "일본의 Beck"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시부야계의 정점을 찍었다.[12]1990년대 말, Pizzicato Five와 같은 시부야계 밴드들이 주류 J-pop 시장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시부야계는 더욱 다양한 스타일의 밴드들을 포괄하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시부야 센터 스트리트의 HMV 시부야와 같은 음반 매장들은 시부야케이 음반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이러한 흐름을 주도했다.[13]
그러나 시부야계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주요 아티스트들이 다른 음악 스타일로 이동하면서 시부야계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15] 2000년대 이후 시부야계는 팝 음악의 구성 요소로 흡수되었고, 우라하라주쿠계 패션과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이후 시부야는 재개발과 온라인 문화의 발달로 인해 젊은이들의 거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37][38][39][40] 신오쿠보, 시모키타자와 등 다른 지역들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38][39][4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부야계는 1990년대 일본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여전히 그 유산이 남아있다. 클래지콰이, Casker, 허밍 어반 스테레오와 같은 대한민국의 밴드들은 "한국의 네오 시부야케이 운동"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14]
4. 시부야계의 주요 아티스트
피치카토 파이브, 플리퍼스 기타, ORIGINAL LOVE, 코넬리우스는 시부야계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융합하는 스타일을 추구했다. 특히, 피치카토 파이브는 주류 J-POP과 재즈, 소울, 라운지 뮤직을 융합하여 시부야계 밴드 중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36] 오야마다 케이고(코넬리우스)와 오자와 겐지가 이끄는 듀엣 플리퍼스 기타는 이 장르의 기반을 형성하여 모든 그룹에 영향을 미쳤다.[23][24]
시부야계 주요 아티스트는 다음과 같다.
아티스트 |
---|
피치카토 파이브 |
플리퍼스 기타 |
ORIGINAL LOVE |
Cornelius |
카히미 카리 |
미네카와 다카코 |
테이 토와 |
버팔로 도터 |
러브 탬버린즈 |
United Future Organization |
4. 1. 시부야계
시부야에 모여든 중고 레코드 가게나 외자계 CD 샵에서 발흥한 팝 뮤직이다.[18] 시부야계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장르의 팝스를 컷 앤 페이스트하는 스타일을 키치·융합·기교에 기반하여 조립된 과거 팝 뮤직에서 영감을 받아 도입했다. 시부야계는 1980년대 초기의 일본 시티 팝에서 음악적 특징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22], 버트 바카락, 브라이언 윌슨, 필 스펙터 등 오케스트럴 팝을 구축한 프로듀서와 프렌치 팝스(예예)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세르주 갱스부르 등 1960년대 문화와 팝 뮤직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17] .미국에서는 마타도르 레코드나 Grand Royal Records 등의 메이저 인디 레이블에서 발매되었기 때문에 인디 팝 팬들에게 지지를 받았다[23][24]. 오야마다 케이고 (현 Cornelius)와 오자와 겐지가 이끄는 듀엣 플리퍼즈 기타는 이 장르의 기반을 형성하여 모든 그룹에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유명한 시부야계 밴드는 주류 J-POP과 믹스를 융합한 피치카토 파이브로, 재즈, 소울, 라운지 뮤직의 영향도 보였다.
이전 유행이었던 "이카텐밴드" 등의 흐름과는 선을 긋고, 1980년대의 뉴 웨이브나 기타 팝, 네오 아코, 하우스, 힙합, 1960년대・1970년대의 소울 뮤직이나 라운지 뮤직 등 폭넓은 장르의 음악을 바탕으로 1980년대 말에 등장한 도시형 지향의 음악으로 여겨진다. 이토 세이코는 "시부야 레코드 가게 계열"이라고 분석하며 "시부야의 레코드 가게에 다니며 전 세계의 음악을 들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말했고, 시부야계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세련됨", "힘들이지 않는 목소리", "주류와의 절묘한 거리감"을 꼽았다[30]。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피치카토 파이브(고니시 야스하루・노미야 마키), ORIGINAL LOVE(타지마 타카오), 플리퍼즈 기타(오야마다 케이고・오자와 겐지), bridge(카지 히데키) 등이 있다. 뮤지션 자신은 "시부야계"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많은 음악적 요소를 받아들인 그들의 음악을 표현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또한 그들의 CD의 재킷 디자인과 패션은 1960, 70년대의 디자인을 인용하고 재해석한 참신한 것으로, 이러한 음악의 팬층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음악 학자 모리 요시타카는, 이 지역의 인기 그룹이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 리소스의 영향을 받은, mode적으로 패셔너블한 하이브리드 음악으로,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식별될 수 있는 방식으로 반응했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음악을 믹스, 더빙하고, 최종적으로 새로운 하이브리드 음악을 제작. 즉, ''시부야계''는 소비주의의 부산물이었다" 라고 하였으며, 저널리스트 W. 데이비드 마르크스는, 뮤지션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소리를 만드는 것보다, 오리지널 소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고, 음악은 "이 수집 프로세스에서 문자 그대로 구축되었다"라고 말하며,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곡을 재현하고, 멜로디를 조금 바꾸지만, 프로덕션의 모든 부분을 그대로 놔두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이 큐레이션"이라고 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으로는, 프랑스의 예예 음악의 세르주 갱스부르, 반 다이크 파크스의 오케스트라 팝스 ,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31], 버트 바카락의 라운지 팝스[32], 어소시에이션 등의 선샤인 팝이 있다.
버트 바카락이나 나가이아라 계(오타키 에이이치・야마시타 타츠로 등)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음악 중 하나이며, 야마시타 타츠로와 타지마 타카오가 함께 큰 영향을 받은 음악가로 커티스 메이필드의 이름을 언급하는 등, 두 사람의 음악적 기원이 공통된다. 일례로 과거 슈가 베이브가 커버했던 오타키 에이이치의 "약속"이라는 곡을, 일부러 타지마가 재적했던 시절의 피치카토 파이브가 커버했으며, 그러한 점을 고려해도, 음악적으로 시부야계에 대한 나가이아라의 강한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코야마 케이고나 피치카토 파이브의 악곡에는 로저 니콜스 & 더 스몰 서클 오브 프렌즈의 악곡 (특히 "Don't take your time"이나 "Love so fine" 등)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다수 존재하며, 그들의 음악성을 방향 지은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야마시타는 하기와라 겐타의 『음악과 사람』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과거에는 원조 여름 남자, 지금은 원조 시부야계"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플리퍼즈 기타는, 코넬리우스로도 알려진 코야마 케이고와 오자와 켄지가 이끄는 듀오로, 시부야계의 기반을 형성하며, 모든 그룹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현상 이후에 만들어졌으며[34], 그 정확한 정의는 1993년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아티스트의 대부분은 키치, 퓨전, 그리고 아티피스 등 이전의 장르에서 영감을 받은 컷 앤 페이스트 스타일에 열중해 갔다. 서양에서는 체임버 팝의 발전과 칵테일 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병행해서 파악한다. 레이놀즈에 따르면 "정말로 국제적이었던 것은, ''근본적인'' 감성이었습니다... 힙스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시부야계 그룹의 음악과 그 파생물은 일본의 거의 모든 카페나 부티크에서 들을 수 있었다. 레이놀즈는 이것을 "고도 소비주의와 창조로서의 큐레이션의 모델"이라는 문제로 언급하고 있다. 음악은, 표현력 있는 긴급함이 아닌 난해한 지식을 반영하면, 그 가치는 쉽게 무효가 되었다. 코야마가 솔로가 된 후, 그는 시부야계 최대의 성공자 중 한 명이 된다. 그의 데뷔작 "THE SUN IS MY ENEMY 태양은 나의 적"은 일본 싱글 차트에서 15위에 그쳤지만, 작가 이안 마틴은 그것을 시부야계를 정의하는 데 기여한 "키 트랙"이라고 불렀다. 1997년 그의 앨범 ''Fantasma''는, 이 장르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여겨진다[34]. 코야마는 미국의 음악 평론가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그는 "현대의 브라이언 윌슨" 또는 "재패니스 벡"이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이 앨범을 "바흐, 바카락, 비치 보이스가 대승을 거둔 음악사의 중요한 교과서"라고 평했다[34].
동시기에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매니악한 레코드점이나 클럽을 중심으로 이러한 다양한 음악을 소비하는 환경이 생겨났기 때문에, 시부야계적인 음악 씬은 1990년대 초반에 각국에서 잇따라 등장했다. 모마스, 스테레오랩, 세인트 에티엔느, 디미트리 프롬 파리, 자미로콰이, 카디건스 등의 아티스트는 일본에서는 시부야계와 공통된 리스너에게 지지를 받았고, 반대로 시부야계 아티스트도 유럽과 미국의 인디 씬에 적극적으로 소개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부야계 음악은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 일본의 팝 문화 붐 속에서 해외의 청소년들에게 국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시부야계를 수용하는 층 (주로 양악이나 인디 음악을 지지하고, 비잉계 등의 메인 스트림에 반발하는 층)이 넓어졌고, 1990년대 중반, 단카이 주니어 세대의 선구적인 층을 공략하는 마케팅상의 키워드로서, 메이저 레이블과 각종 기업들 사이에 일종의 "시부야계" 붐이 발생했다. 붐 종결 후, 현재는 정통파 록 밴드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는 Mr.Children, 스피츠, 울플루즈 등도 초창기에는 시부야계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았다. 1990년대의 밴드는 "○○계" (이카텐계, 비잉계, 비주얼계) 등으로 분류되어 불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이러한 호칭이 필요했다.
가장 유명한 시부야계 밴드는 피치카토 파이브로, 주류 J-pop과 재즈, 소울, 라운지의 영향을 융합시켜, 1994년의 『Made in USA』로 상업적인 피크에 달했다[36]。1990년대 말 스타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용어는 음악 스타일이 더 주류의 감성을 반영한 많은 밴드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일부 아티스트는 "시부야계"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저항했지만, 시부야계 레코드를 일본의 전통적인 음악 섹션에서 판매한 시부야 센터가이의 HMV 시부야 등, 지역 비즈니스에 선호되었기 때문에, 이름은 최종적으로 정착되었다.
다음은 시부야계에 영향을 받은 주요 아티스트들이다.
아티스트 |
---|
피치카토 파이브 |
플리퍼스 기타 |
ORIGINAL LOVE |
Cornelius |
카히미 카리 |
미네카와 다카코 |
테이 토와 |
버팔로 도터 |
러브 탬버린즈 |
United Future Organization |
4. 2. 네오 시부야계
5. 시부야계 관련 인물
- 신도 미츠오
- GROOVISIONS
- 소마 아키히로
- CONCORDE GRAPHICS
- 토키와 히비키
- HIROMIX
6. 시부야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
레이놀즈는 시부야케이를 "고급 소비주의와 큐레이션으로서의 창조라는 모델"의 문제로 언급하며, "음악이 표현의 절박함보다는 난해한 지식의 반영이 되면, 그 가치는 쉽게 무효화된다"라고 비판했다.[12]
시부야케이의 쇠퇴는 주요 연주자들이 다른 음악 스타일로 이동하면서 나타났다.[15] 1990년대 후반에는 시부야계 아티스트들이 해산하는 경우도 있어, 음악적 공통점이 옅었던 시부야계 씬은 확산・소멸해 갔다.
2010년대 고쿠가쿠인 대학 학생 대상 조사에서 시부야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게 나타났다. 우노 츠네토모는 "일본의 팝 컬처는 지난 20년(2018년 당시) 웹에서밖에 나오지 않고 있다. 더 이상 거리에서 문화를 발신하는 힘은 약해져서, 그것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것이 시부야"라고 언급하며, 시부야는 중장년층의 거리로 변했다고 말했다.[37]
2023년 12월 도시 저널리스트 타니가시라 카즈키는 시부야가 젊은이의 거리가 아니게 된 대신 신오쿠보, 시모키타자와, 산겐자야 등 부도심 주변 지역이나, 기요스미시라카와, 몬젠나카초 등 도쿄 동부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젊은이가 많다고 지적했다.[38][39][40]
다나카 소이치로는 2006년 플리퍼스 재발매 당시 "있을 수 없는 퀄리티다. 이 비범함에 준하는 재능이 지금의 일본에 존재하는가 묻는다면, 완전히 No다"라고 칭찬했다.[41]
오기우에 치키는 음악 평론가 업계 전반에 대한 비판을 펼치며, 시부야계는 의문점이 많은 무브먼트 중 하나라고 말했다.[42]
참조
[1]
웹사이트
第14回 ─ シティー・ポップ
http://www.bounce.co[...]
bounce.com
2008-11-17
[2]
웹사이트
Singles Club: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it'll be robotized
http://www.factmag.c[...]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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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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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ラジオ「荻上チキSession22」の「Session袋と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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