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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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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십팔기는 조선 시대 군사 훈련을 위해 중국 무술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무예로, 1759년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명하여 편찬한 『무예신보』를 거쳐 열두 가지 기술로 완성되었다. 이후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18가지 기예를 포함하여 24가지 기예를 십팔기 또는 24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는 김광석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대한십팔기협회와 십팔기보존회를 통해 수련되고 있다.

2. 역사

조선 시대의 병법서인 『무예신보』에 쓰인 무술이다. 김광석이 부활시킨 현대의 십팔기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참고한다.

『무예신보』는 『무예제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무예제보』는 임진왜란(문록·경장의 역)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은 일본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징비록』에 따르면, 1593년 유성룡이 명나라 장수 낙상지에게 중국 무술을 배울 것을 권유받았다. 이후 군 장병들이 낙상지의 부하로부터 창, 검, 낭선 등의 기술을 배웠다. 1594년 조선 조정은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일본에 대항할 전술을 연구했다.

조선에서는 궁술마술을 중요하게 여겼으나, 선조는 일본군의 칼과 창에 많은 병사들이 죽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 배운 도검, 창, 곤 훈련을 명했다.

훈련도감에서는 척계광의 『기효신서 18권본』(1560년)을 교재로 사용했고, 1598년 한교가 "곤",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의 여섯 가지 기술을 뽑아 번역한 『무예제보』를 간행했다. 1604년에는 내용을 추가한 『무예제보속집』이 나왔다. 군에서는 "항왜"로부터 일본 검술을 배우기도 했다.

1759년 영조의 명으로 사도세자가 『무예신보』를 편찬했다. 1728년 이인좌의 난(무신란)을 겪은 영조는 군대를 강화하기 위해 나라에서 직접 책을 만들도록 했다. 『무예신보』는 『무예제보』의 여섯 가지 기술에 중국 무술과 일본 무술에서 가져온 11가지 기술, 그리고 조선에서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는 "본국검"을 더해 모두 18가지 기술을 담고 있으며, 이로써 십팔기가 완성되었다.

2. 1. 무예제보(武藝諸譜)

조선 선조 때인 1598년 한교척계광의 『기효신서 18권본』(1560년)을 바탕으로 "곤",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의 여섯 가지 기술을 발췌하여 번역한 병법서이다. 1604년에는 내용을 덧붙인 『무예제보속집』이 나왔다.

문록·경장의 역에서 조선은 일본군의 맹공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593년 여름, 치질 치료 중이던 유성룡을 명나라 무장인 락상지가 문병하여, 중국 병술 습득을 권했다. 그래서 군 장병을 락상지의 부하로 붙여 창, 검, 낭선 등의 기술을 배우게 했다. 이를 계기로 조선 조정은 1594년훈련도감을 설립하여 병사 훈련과 대일 전술 연구를 진행했다.

조선에서는 궁술마술이 중시되어 근접 전투는 소홀히 여겨졌지만, 선조는 일본군의 칼과 창에 의한 사상자를 고려하여 중국에서 배운 도검, 창, 곤의 훈련을 명했다.

훈련도감의 교본으로 척계광의 『기효신서 18권본』을 채택하고, 1598년 이를 바탕으로 『무예제보』가 간행되었다. 군에서는 "항왜"로부터 일본 검술 습득도 이루어졌다.

2. 2. 무예신보(武藝新譜)

조선 병법서인 무예신보와 김광석이 부활시킨 현대의 십팔기에 대해 해설한다.

무예제보는 무예신보의 원전이다. 이 병법서가 성립된 계기는 문록·경장의 역이다. 문록·경장의 역에서 조선은 일본군의 맹공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징비록에 따르면, 1593년 여름, 치질 치료 중이던 유성룡을 명나라 무장인 락상지가 문병하여, 중국 병술 습득을 권했다. 그래서 군 장병을 락의 부하로 붙여 창, 검, 낭선 등의 기술을 배우게 했다. 이를 계기로 조선 궁궐은 1594년에 훈련도감을 설립하여 병사 훈련과 대일 전술 연구를 진행했다.

조선반도에서는 궁술마술이 중시되어 근접 전투는 소홀히 여겨졌지만, 선조는 일본군의 칼과 창에 의한 사상자를 고려하여 중국에서 배운 도검, 창, 곤의 훈련을 명했다.

훈련도감의 교본으로 척계광기효신서 18권본(1560년)을 채택하고, 1598년 이를 바탕으로 한교가 "곤",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장도"의 '''여섯 가지 기술'''을 발췌하여 번역한 무예제보가 간행되었다. 1604년에는 내용을 덧붙인 무예제보속집이 나왔다. 군에서는 "항왜"로부터 일본 검술 습득도 이루어졌다.

1759년 영조의 명으로 사도세자가 편찬한 것이 무예신보이다. 1728년 무신란(이인좌의 난)으로 대규모 반란을 경험한 영조가 군대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관수(官修)를 명했다. 내용은 무예제보의 육기(六技)에 중국 무술과 일본 무술에서 따온 11가지 기술, 그리고 조선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 "본국검"을 더하여 '''열두 가지 기술'''을 더한 것으로, 여기에 십팔기가 완성되었다.

2. 3.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1759년 영조의 명으로 사도세자가 편찬한 것이 『무예신보』이다. 1728년의 무신란(이인좌의 난)으로 대규모 반란을 경험한 영조는 군대 강화를 위해 관수(官修)를 명했다. 『무예신보』는 『무예제보』의 육기(六技)에 중국과 일본 무술에서 가져온 11가지 기술, 그리고 조선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 "본국검"을 더해 '''열두 가지 기술'''을 추가하여 완성된 십팔기를 담고 있다.

3. 종류

1759년 영조의 명으로 사도세자가 편찬한 《무예신보》에는 무예제보의 여섯 가지 기술에 중국과 일본 무술에서 가져온 11가지 기술, 그리고 조선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 "본국검"을 더해 '''열두 가지 기술'''이 추가되어 십팔기가 완성되었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십팔기는 다음과 같다.


  • 장창: 조선에서 무술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 곤봉: "무예의 어머니"라고 불렸다.
  • 등패: 등나무로 만든 방패 기술.
  • 낭선: 긴 대나무에 가시를 붙여 독을 묻힌 무기.
  • 당파: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창.
  • 쌍수도: "여러 손"이라는 의미.
  • 죽장창: 20척 길이의 긴 창.
  • 기창: 의식이나 호위에 사용.
  • 월도: 칼날이 달처럼 보임.
  • 쌍검: 두 자루의 칼을 사용.
  • 예도: "조선세법"
  • 협도: 나기나타와 유사.
  • 제독검: 이여송을 칭송하여 붙여진 이름.
  • 권법: 수박이라고도 불림.
  • 편곤: 플레일과 유사.
  • 왜검: 왜구의 검술.
  • 교전: 가라테의 약속 대련과 유사.
  • 본국검: 신라 화랑의 고대 검법.

3. 1.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십팔기는 다음과 같다.

종류설명
장창주목 나무로 만든 4m 정도의 . 조선에서 무술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개인무예가 아닌 진법을 이루고 싸우는데 사용되는 무예로써 그 자세는 대적, 기만, 방어, 공격을 연속으로 반복하는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죽장창(竹長槍)전체길이 20척이 넘는 대나무로 만든 긴 창. 자루가 길어 자세는 매우 단순하며, 적의 기병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이다. 한 개의 대나무로 만든 것과 엮은 대나무로 만든 것이 있으며, 후자가 더 튼튼하다고 여겨진다.
기창(旗槍)깃발이 달린 창으로 창 종류중에서 길이가 가장 짧아 단창(短槍)이라고도 한다. 신호와 의장에 사용되었으며 고려시대때는 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이 사용하였다. 적의 기병을 상대함은 물론, 사방의 적을 두고 싸우는 개인무예의 형태를 띠고 있다. 길이는 약 2.75m, 칼날 길이는 23cm로 근접전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당파세갈래로 날이 있어 적군의 긴 칼과 기병을 상대하기에 용이하다. 상대의 병기를 걸어 젖히고 찌르고 내려치는 데 효과적이다. 흔히 사극에서 많이 등장하는 무기지만 실제로 조선군의 당파 사용율은 저조하였다.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창과 같은 무기이며, 십자수처럼 상대의 무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낭선중국 명나라때 척계광이 만든 무기로 길이는 죽장창과 같다. 가지를 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날카로운 날을 달아 거기에 독을 묻혀 사용한다. 울타리가 없는 곳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효과적이다. 여타 장창류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몇가지 동작을 반복하는 형태를 나타낸다. 긴 대나무에 가시를 붙인 후, 독에 담가 만든다. 등패와 함께 최전열에 나와 적을 위협하는 데 사용하며, 임진왜란(문록·게이초의 역)에서는 조선 측이 사용해 효과를 거두었다.
쌍수도척계광이 왜구를 상대하고자 만든 무기로 장도(長刀)라고도 한다. 매우 길기 때문에 기예에서도 방어 후 공격하는 단순한 형태를 구사한다. 현대에 해동검도 단체들이 수련하는 쌍수검법 12번이 바로 이 쌍수도를 복원한 것이다. "쌍수"는 두 자루의 칼이 아닌 "여러 손"이라는 의미이며, 왜구의 검술을 명나라 병사가 도입한 것이 시작이라고 여겨진다. "용검", "평검"이라고도 불렀다.
예도조선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칼을 의미하며, 속칭 단도(短刀)라 한다. 예도의 기예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기본기에 속하는 조선세법, 이를 하나로 연결하여 하나의 품새로 만든 예도 총보로 나뉜다. 이른바 "조선세법"이다.
왜검일반적인 일본도를 말한다. 일본도는 크기가 일정치 않으며 일본인은 한 사람당 3자루의 칼을 찬다고 한다. 무예도보통지의 왜검은 크게 천유류, 류피류, 토유류, 운광류로 나뉘며 기법자체가 모두 전진 만으로 구성되어있다. 왜도(倭刀)로 언급된다.
교전(交戦)왜검을 전한 군교 김체건이 왜검의 기법을 이용하여 만든 기예이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서 약속교전을 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가라테의 약속 대련과 같은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독검(提督剣)임진왜란때 출병한 이여송의 부하인 낙상지가 전한 기예이다. 전진하여 전,좌,우를 상대하고 뒤로 후퇴하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어 적진을 뚫고 나아가는데 효과적이다.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이씨 조선의 무장인 이여송을 칭송하여 이름 붙여진 검법.
본국검(本国剣)조선에서 탄생된 독창적인 기예로 신라 황창랑의 고사에서부터 출발한다. 조선의 금군 기록인 금위영등록-1696에 본국검을 수련하였다고 나오므로 아마도 조선 전기에도 수련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전,우,좌,후를 모두 대적하는 기예로써 도는 동작과 찌르는 동작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신라화랑이 만든 고대 검법이라고 하며, 원래는 양날의 검을 사용하는 검술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외날이 되었다.
쌍검(双剣)두 칼 검술이다. 일본과는 달리 두 자루의 대도(보통 칼)로 싸운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기예로 다양한 방향에서 적을 대적하는 것이 특징이다.
월도송나라때 등장한 대도(大刀)류 병장기이다. 기병, 보병, 수병 모두 사용 가능하며 기예의 움직임이 크고 위력적이며, 특히 조선의 월도는 중국것보다 작지만 날카로워 왜검을 상대하는데 효과적이다. 칼날이 달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조선 후기에는 차기보(車騎步) 전법으로 기병이 사용했다.
협도(挾刀)미첨도라고도 하며, 나기나타에 가까운 무기이다. 칼날이 미첨도(眉尖刀)라고도 불린다. 주로 보병이 사용한 병기이며, 기예는 본래 협도곤이란 곤봉의 기예를 사용하였다가 사도세자가 무예신보를 만들면서 대도류 병장기에 맞게 새롭게 만들었다. 무예도보통지 무기들 중 가장 무겁다.
등패등나무로 만든 방패 기술이다. 같은 글자를 쓰는 류큐의 틴베(Tinbe)는 로친(소도)과 세트로 사용하지만, 조선에서는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검술의 보조로 사용하는 듯하다. 일본의 진갓술에 가깝다. 진을 짤 때, 최전열에 선다.
권법송태조 조광윤에 만든 장권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는 맨손무예이다. 권법 수련의 목적은 병장기를 익히기 전 신체단련은 물론, 유사시 맨손으로도 싸울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발보다 손을 많이 사용하며 문헌에서는 두사람이 겨루는 약속교전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수박(手縛)이라고도 불린 체술이며, 무예의 기본으로 여겨졌다.
곤봉나무로 만든 몽둥이다. 병장기에 입문할 때 배우는 기본기예로 양손을 사용하는 음양수(陰陽手)를 익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사람이 겨루는 약속교전 형태로 수록되어있다. "무예의 어머니"라고 불리거나, 사서육경의 사서에 비유되었다.
편곤(鞭棍)긴 막대 끝에 짧은 막대기가 달린 것. 이른바 플레일이다. 서융에서 사용된 철편(鐵鞭)에서 기원하였으며, 임진왜란때 명군 소속 타타르 기병대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문헌에서는 약속교전 형태를 띠고 있다.


4. 현대의 십팔기

현대의 십팔기는 조선 시대의 병법서인 『무예신보』에 쓰인 무술이다. 『무예신보』의 성립과 김광석이 부활시킨 현대의 십팔기에 대해 해설한다.

1970년대 초, 유수남(劉秀南)은 아르헨티나에서 '연비류'라는 유파를 전파했다. 연비류는 15개의 무기술과 3개의 맨손 무술, 호신술, 명상 등을 가르친다.

4. 1. 대한십팔기협회

대한십팔기협회의 김광석이 복원한 십팔기 (현대)이다.

현대의 십팔기는 대한민국의 김광석(金光淑)이 부활시킨 무술이다. 김광석은 일제강점기에 산속의 무남(武南)이라고 불리는 도교 마을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윤명덕이라는 인물로부터 조선 무술, 동양 의학, 호흡법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김광석의 제자들이 대한십팔기협회를 설립했다. 김광석은 1987년부터 2002년 사이에 한국 무술에 관한 4권의 책을 출판했다.

4. 2. 경당과 무예24기보존회

임동규의 경당과 무예24기보존회는 현대 십팔기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의 김광석(金光淑)은 일제강점기에 산속의 무남(武南)이라고 불리는 도교 마을에서 윤명덕에게 조선 무술, 동양 의학, 호흡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 김광석의 제자들은 한국십팔기협회를 설립했으며, 김광석은 1987년부터 2002년 사이에 한국 무술에 관한 책 4권을 출판했다.

유수남(劉秀南)은 1970년대아르헨티나에서 '연비류'라는 유파를 전파했다. 연비류는 15개의 무기술과 3개의 맨손 무술, 호신술, 명상 등을 가르친다.

4. 3. 유사 개념

중국에서는 여러 가지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을 전통적으로 십팔반무예(十八般武艺중국어)라 불렀다. 대한민국에는 공산 정권 수립 후 이민 온 중국 화교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흔히 국술(國術)이라고 불렸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무술 단체는 이덕강, 황주환이 만든 중국무술 십팔기협회로 십팔반, 십팔계, 십팔기 등으로 불리며 수련하였다. 조선시대의 십팔기와는 그 의미와 뜻이 다르다.

조선시대에서 이어져온 십팔기와 중국 사람들이 중국에서 부르던 18반 병기, 18반 무예와 혼동하여 십팔기라고도 불렀다. 일본은 중국에서 전해진 무예 18기(武芸十八般일본어)라는 말을 사용하나, 각 유파별로 그 내용은 상이하며, 전승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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