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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니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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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스카니오스는 그리스 및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와 프리아모스의 딸 크레우사의 아들이다. 트로이 전쟁 이후 아이네이아스는 아스카니오스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도망쳤으며, 아스카니오스는 라비니움의 왕이 되어 메젠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알바 롱가를 건설하여 초대 왕이 되었다. 그는 율리우스 씨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는 이울루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아스카니오스는 여러 전승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며, 다른 아스카니오스에 대한 언급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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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니오스
전설 속 인물 정보
암포라에 그려진 아스카니오스 ([[뮌헨]], [[:en:Staatliche_Antikensammlungen|주립_고대_미술_박물관]])
암포라에 그려진 아스카니오스 (뮌헨, 주립_고대_미술_박물관)
이름아스카니오스
다른 이름알바 왕
로마자 표기Askanios
그리스어 표기Ἀσκάνιος
라틴어 표기Ascanius
통치 정보
군주 칭호라티움 왕
재위 기간기원전 1179년 - 1141년
계승자실비우스
계승 방식계승
가문 정보
아버지아이네이아스
어머니크레우사(베르길리우스), 라비니아(티투스_리비우스)
출생과 사망
출생지트로이아(베르길리우스), 라티움_베투스(티투스_리비우스)
사망일기원전 1141년
사망 장소알바_롱가

2. 전승

그리스 신화로마 신화에서 아이네이아스크레우사(프리아모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아스카니오스는, 트로이 전쟁 이후 도시가 불타자 아버지, 할아버지 안키세스와 함께 이탈리아라티움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크레우사는 탈출 중에 죽었다.[2]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오스의 원래 이름은 에우리레온이었으며, 트로이에서 도망친 후 이름이 바뀌었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스카니오스가 율루스(Iulus) 또는 줄루스(Julus)라고도 불렸다고 전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속한 율리우스 씨족은 아스카니오스/율루스, 그의 아버지 아이네이아스, 그리고 아이네이아스의 어머니인 여신 비너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티투스 리비우스는 다른 전설을 언급하는데, 아스카니오스는 아이네이아스와 라비니아의 아들이며, 라티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 전쟁에서 싸웠다.

아이네이아스가 죽은 후, 아스카니오스는 라비니움의 왕이 되었고, 에트루리아 왕 메젠티우스가 도시를 포위했다.[4] 메젠티우스는 도시에 항복을 받아내 연공을 바치도록 했으나, 퇴각하자 아스카니오스는 그와 그의 군대를 기습하여 격파하고 그의 아들 라우소스를 죽였다. 이후 아스카니오스는 라비니움 건국 30년 후, 알바 롱가를 건설하고 그 첫 번째 왕이 되었다. 그는 라비니아를 라비니움의 관리자로 남겨두었다. 아스카니오스는 그의 동생 또는 아들인 실비우스에게 왕위를 계승했고, 통치 28년에 사망했다.

안키세스를 업고 가는 아이네이아스, 아내가 앞장서고 아스카니오스가 그들 사이에 있다(적색상 암포라 (그리스 공방, 기원전 470년경))

2. 1. 생애와 가계

그리스 신화로마 신화에서 아스카니오스(Ascanius)는 아이네이아스크레우사(프리아모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트로이 전쟁 이후 도시가 불타자 아이네이아스는 아버지 안키세스와 아들 아스카니오스를 데리고 이탈리아라티움으로 탈출했지만, 크레우사는 탈출 중에 죽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오스의 원래 이름은 에우리레온이었으며, 트로이에서 도망친 후 아스카니오스로 바뀌었다.[2] 베르길리우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오스는 율루스(Iulus) 또는 줄루스(Julus)라고도 불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속한 씨족인 율리우스 씨족(gens Julia)은 아스카니오스/율루스, 그의 아버지 아이네이아스, 궁극적으로 신화 속에서 아이네이아스의 어머니인 여신 비너스(Venus)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디오니시오스는 율루스를 아스카니오스의 아들로, 아스카니오스가 죽은 후 알바 롱가 왕국의 계승을 실비우스와 다툰 인물로 묘사했다.[3] 반면 베르길리우스는 율루스가 아스카니오스의 다른 이름이며, 율리우스 가문이 율루스(아스카니오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리비우스가 언급한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아스카니오스는 아이네이아스와 라비니아의 아들이며, 트로이가 아닌 라티움에서 태어났다. 아스카니오스는 아버지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이탈리아 전쟁에서 싸웠다.

아이네이아스가 죽은 후, 아스카니오스는 라비니움의 왕이 되었고, 메젠티우스라는 에트루리아 왕은 도시를 포위했다.[4] 메젠티우스는 도시에 항복을 받아내 연공을 바치도록 했다. 메젠티우스가 퇴각하자 아스카니오스는 그와 그의 군대를 기습하여 격파하고 그의 아들 라우소스를 죽였다. 메젠티우스는 연공을 바치는 데 동의해야 했다. 그 후, 라비니움 건국 30년 후, 아스카니오스는 알바 롱가를 건설하고 그 첫 번째 왕이 되었다. 그는 라비니아를 라비니움의 관리자로 남겨두었다. 아스카니오스는 그의 동생 또는 아들인 실비우스에게 왕위를 계승했고, 통치 28년에 사망했다.

베르길리우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오스는 아이네아스와 크레우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트로이 멸망과 어머니 크레우사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와 함께 방랑했다. 이탈리아 도착 후에는 라틴 왕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를 새로이 아내로 맞이한 아버지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알바 롱가를 건설했다. 아버지 사후 라티움 왕을 칭하며 알바에서 통치했기에, 라틴인의 왕은 알바 왕이라고도 불렸다. 아스카니우스가 사망하자 왕위는 이복 형제 실비우스에게 계승되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우스에게는 율루스라는 아이가 있었으며, 아스카니우스 사후 실비우스와 왕위를 다투었다.[5] 왕위는 실비우스에게 계승되었고, 율루스는 알바의 귀족으로서 왕을 따랐다고 전해진다.

티투스 리비우스에 따르면, 트로이 멸망 당시 아이네아스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라티움에서 만난 라비니아와 처음으로 아이를 가졌다. 그 아이가 아스카니우스와 실비우스이며, 둘은 같은 부모를 둔 형제였다. 중세 시대 브리튼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브루투스에서는 "실비우스는 아스카니우스를 아버지로 한다"라고 전해진다.

어떤 전승에서도 아이네이아스를 아버지로 둔다는 점과, 아버지의 장남으로서 라티움의 왕(공주 라비니아와의 공동 통치)이 되었다는 점은 같다. 왕이 되자마자 중북부에 거주하는 에트루리아인의 왕 메젠티우스와 전쟁을 벌여[6] 패배한 아스카니우스는 메젠티우스에게 세금 지불을 약속하고 강화했다. 그리고 메젠티우스의 군대가 물러서는 틈을 타 기습하여 에트루리아 군을 괴멸시켰다. 또한 아스카니우스는 보복으로 메젠티우스의 아들을 처형한 뒤, 거꾸로 세금 지불을 명령했다.

30년 동안 라비니움의 궁전에서 라비니아와 통치하던 아스카니우스는 실비우스가 성인이 되자 알바 롱가를 건설하고 그곳으로 궁전을 옮겼다(알바 왕). 실비우스가 아스카니우스의 동생인지 아들인지, 라비니아가 의붓어머니인지 친어머니인지는 불분명하다. 아스카니우스는 사후에 라비니아와 실비우스에게 도시를 양도했고, 왕위를 계승한 실비우스는 알바 롱가를 궁전으로 사용했다.

2. 2. 왕으로서의 통치

어떤 전승에서도 아이네이아스를 아버지로 둔다는 점과, 아버지의 장남으로서 라티움의 왕(공주 라비니아와의 공동 통치였다)이 되었다는 점은 같다. 왕이 되자마자 중북부에 거주하는 에트루리아인의 왕 메젠티우스와 전쟁을 벌여[6] 패배한 아스카니오스는 메젠티우스에게 세금 지불을 약속하고 강화했다. 그리고 메젠티우스의 군대가 물러서는 틈을 타 기습하여 방심하고 있던 에트루리아 군을 괴멸시켰다. 또한 아스카니오스는 보복으로 메젠티우스의 아들을 처형한 뒤, 거꾸로 세금 지불을 명령했다.

그 후 30년 동안 라비니움의 궁전에서 라비니아와 통치를 계속하던 아스카니우스였지만, 실비우스가 성인이 되자 알바 롱가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그곳으로 궁전을 옮겼다고 한다 (알바 왕). 실비우스가 아스카니우스의 동생인지 아들인지, 라비니아가 의붓어머니인지 친어머니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아스카니우스는 사후에 라비니아와 실비우스에게 도시를 양도했고, 왕위를 계승한 실비우스는 알바 롱가를 궁전으로 사용했다.

2. 3. 율리우스 씨족과의 연관성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오스의 원래 이름은 에우리레온이었으며, 트로이 전쟁에서 도망친 후 아스카니오스로 바뀌었다.[2] 베르길리우스는 아스카니오스를 율루스(Iulus) 또는 줄루스(Julus)라고도 불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속한 율리우스 씨족(gens Julia)은 아스카니오스/율루스, 그의 아버지 아이네이아스, 그리고 아이네이아스의 어머니인 여신 비너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아스카니오스가 실비아의 수사슴을 쏘는 모습, 5세기 로마의 베르길리우스 사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큰 찬사를 받았으며, "율리우스=율루스=아스카니오스"라는 베르길리우스의 설은 대중에게 퍼져나갔다. 이는 베르길리우스가 로마 제정을 시작한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씨족의 일원인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족보에 주요 3신(유피테르, 베누스, 마르스)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많은 시인들에게 율리우스 가문이 아이네이아스의 혈통임을 강조하게 했다. 로마 최초의 군주 "로물루스" 또한 조상을 통해 신들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권위로 이어졌다.

3. 《아이네이스》에서의 묘사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아스카니오스는 전쟁 경험이 없는 십대이지만, 이탈리아인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투르누스의 막내 여동생의 남편인 누마누스에게 화살을 쏘는 장면이 묘사된다.[2] 누마누스를 죽인 후, 아폴론이 나타나 아스카니오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2]

: ''Macte nova virtute, puer: sic itur ad astra,''

: ''dis genite et geniture deos.''

이 구절은 "소년이여, 새로운 용기를 내어라: 이것이 별에 이르는 길이다; 신들의 아들이여, 신들을 낳을 자여." 또는 "새로운 용기에 축복이 있기를, 소년이여, 신들의 후손이자 앞으로 신들의 조상이 될 자여, 그렇게 사람은 별에 이른다."로 번역될 수 있다.[2] 이 구절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자신의 혈통이라고 주장한 이울루스의 자손을 분명하게 언급하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가문인 율리우스 씨족(Gens Julia)을 언급한다.[2]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사후에 신격화되었다.[2]

아스카니오스가 실비아의 수사슴을 쏘는 풍경(1682), 클로드 로랭의 마지막 그림


''시크 이투르 아드 아스트라''(Sic itur ad astra)는 격언이 되었고, 여러 모토에서 "ad astra" 구절을 사용한다.[2] 이 에피소드 이후 아폴론은 트로이인들에게 아스카니오스를 전쟁에서 멀리하라고 명령한다.[2]

같은 에피소드에서 아스카니오스는 누마누스에게 치명적인 화살을 쏘기 전에 유피테르에게 "Jupiter omnipotens, audacibus annue cœptis" (전능하신 유피테르, 제 대담한 시도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2] 이 헥사미터의 마지막 부분은 미국의 모토인 ''안누이트 코엡티스''(annuit coeptis)가 되었다.[2]

이울루스라는 이름은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아이네이스''에서 대중화되었다.[2] 그리스 이름인 아스카니오스를 이울루스로 대체하여 로마의 율리우스 가문을 초기 신화와 연결했다.[2] 이 작품을 의뢰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예술의 위대한 후원자였다.[2] 율리우스 가문의 일원으로서 그는 자신의 가계도에 4명의 주요 올림포스 신 (유피테르, 유노, 비너스 그리고 마르스)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많은 시인들에게 아이네아스로부터의 자신의 가계를 강조하도록 장려했다.[2]

4. 다른 아스카니오스


  • 아스카니아의 왕 알레타온의 아들로, 포르키스와 형제이다[7]。트로이 전쟁 때 포르키스와 함께 아스카니아의 프리게아인을 이끌고 트로이를 구원하여 그리스 군과 싸웠다[8]。트로이 군이 그리스 군의 방벽을 깨고 침입했을 때 가장 격전지에서 싸웠다[9]
  •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중 한 명[10]

또한 스미르나의 퀸토스에 따르면, 위의 아스카니아인 중 한 명이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11]

5. 계도

시인 베르길리우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오스는 아이네이아스와 크레우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트로이 멸망과 어머니 크레우사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와 함께 방랑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도착 후에는 라틴 왕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를 새로이 아내로 맞이한 아버지의 측근으로서 활동하며, 알바 롱가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아버지의 사후 라티움 왕을 칭하며 알바에서 통치를 시작했기에, 라틴인의 왕은 알바 왕이라고도 불렸다. 아스카니우스가 사망하자 왕위는 이복 형제 실비우스에게 계승되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아스카니우스에게는 율루스라는 아이가 있었으며, 아스카니우스 사후 실비우스와 왕위를 다투었다고 한다.[5]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율루스는 아스카니우스 자신의 다른 이름이며, 율리우스 가문은 율루스(아스카니우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율리우스 가문과 신들을 연결하려 했다.

제정 시대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에 따르면, 원래 트로이 멸망 당시 아이네아스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라티움에서 만난 라비니아와 처음으로 아이를 가졌다. 그 아이가 아스카니우스와 실비우스이며, 둘은 같은 부모를 둔 형제였다. 또한 중세 시대에 성립된 브리튼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브루투스에서는 "'''실비우스는 아스카니우스를 아버지로 한다'''"라고 전해지며, 알바 왕조는 더욱 복잡한 혈연 관계를 갖게 되었다.

참조

[1] 서적 Roman Antiquities
[2] 서적 Roman Antiquities
[3] 서적 Roman Antiquities
[4] 서적 Roman Antiquities
[5] 서적 Roman Antiquities
[6] 서적 Roman Antiquities
[7] 서적 E(摘要)
[8] 서적 イーリアス
[9] 서적 イーリアス
[10] 서적 3巻12・5
[11] 서적 9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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