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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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시타 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군이 동남아시아에서 징발한 금괴를 숨겨두었다는 전설이다. 이 보물은 일본군 지휘관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전범으로 처형되면서 그 위치에 대한 정보가 유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세기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약탈한 보물의 일부라는 주장도 있으며, 스털링 시그레이브의 소설 《야마토 왕조》와 《황금전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필리핀에서는 "금 백합" 작전과 관련된 도시 전설로도 전해지며, 실제로 1942년 미군에 항복할 때 은닉된 니켈이나 필리핀에 정착한 일본인이 묻어둔 재산이 발견되기도 했다. 야마시타 보물은 대중문화에서도 다양한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으며, 필리핀 정부는 보물 발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소유권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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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시타 보물 | |
|---|---|
| 개요 | |
| 다른 이름 | 야마시타 골드 (Yamashita's gold) |
| 배경 | |
| 약탈 주장 |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일본군이 약탈한 보물 전쟁 후 필리핀 각지에 은닉되었다는 소문 |
| 관련 인물 | 야마시타 도모유키 (일본군 장군)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
| 탐사 및 소송 | |
| 주요 탐사자 | 로겔리오 록사스 (Rogelio Roxas) |
| 소송 | 록사스 대 마르코스 사건 (Roxas v. Marcos) 록사스가 마르코스를 상대로 보물 반환 소송 제기 |
| 논란 | |
| 존재 여부 |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 지속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입장 견지 |
| 관련 주장 |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약탈 자산을 은닉했다는 주장 전후 혼란기에 정보 조작 및 유언비어 확산 가능성 |
| 대중 문화 | |
| 영화 | 황금을 찾아서 (2010년 영화) |
| 기타 | 야마시타 보물을 소재로 한 다양한 소설, 다큐멘터리 제작 |
2. 전설의 내용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동남아시아에서 약탈한 보물을 필리핀에 숨겼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는 도시전설이다. 이 전설은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의 이름과 연관되어 '야마시타 보물'이라고 불린다.
일본이 19세기부터 1945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약탈한 보물의 일부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스털링 시그레이브의 소설 《야마토 왕조》와 《황금전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시그레이브는 "금 백합"이라는 가상의 보물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의 감독 하에 필리핀에 보물이 숨겨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허구와 진실이 섞인 내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사실로 믿게 되었다.
1942년 미군 항복 당시 정글에 숨겨진 니켈이나 필리핀 정착 일본인이 묻은 재산 등이 실제로 발견되면서, 이러한 전설은 더욱 진실성을 얻게 되었다.
야마시타 보물 전설은 '메달 오브 아너 라이징 선', 닐 스티븐슨의 소설 '크립토노미콘', 클라이브 커슬러의 소설 '드래곤 센터를 파괴하라' 등 다양한 매체에서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2. 1. 도시 전설
필리핀에서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도시전설에 따르면,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은 동남아(주로 버마)에서 징발한 금괴를 싱가포르에서 필리핀으로 중계하여 일본 본토에 해상으로 운송하려 했다. 그러나 잠수함과 항공기에 의한 해상 수송로에 대한 공격이 심해졌기 때문에 일단 숨겨두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회수하려 했는데, 관계자인 야마시타 도모유키 등이 전범으로 처형되었기 때문에 금괴가 숨겨진 곳의 정보가 유실되었다.[5]이 이야기는 아시아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인 스털링 시그레이브가 쓴 《야마토 왕조》(''The Yamato Dynasty: The Secret History of Japan's Imperial Family'', 2000) 또는 《황금전사》(''Gold Warriors:America's Secret Recovery of Yamashita's Gold'', 2003)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금 백합”("''Golden Lily''")이라는 가상의 보물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종전까지 그 일부가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의 감독 하에 필리핀에 흩어져 숨겨졌기 때문에 일부가 지금도 필리핀에 남겨진 채로 있다고 하는 내용이었지만, 허실이 섞인 시그레이브의 교묘한 줄거리로 인해 진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이 속출했다.[5]
1942년 미군에게 항복할 때 정글에 대량으로 은닉된 니켈과 또한 필리핀에 정착한 일본인이 인양 시 묻은 재산 등을 실제로 찾을 수도 있었고, 이러한 전설이 진실성을 가졌다는 설도 있다.
시그레이브 부부는 6,000톤 이상의 금을 포함한 약탈이 고다마 요시오와 같은 야쿠자 갱스터와 히로히토 천황을 포함한 일본 사회의 최고위층에 의해 대규모로 조직되었다고 주장한다.[5] 일본 정부는 동남아시아에서 약탈한 자금으로 일본의 전쟁 노력을 지원하려 했다.[5] 시그레이브 부부는 히로히토가 그의 형제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을 황제가 쓴 시에서 이름을 따온 金の百合|긴노 유리|"금 백합"일본어이라는 비밀 조직의 수장으로 임명했다고 주장한다.[6][7]
약탈물의 위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에 죽거나, 나중에 연합군에 의해 전쟁 범죄로 재판을 받고 처형되거나 투옥되었다고 한다. 야마시타 자신은 전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1946년 2월 23일 필리핀 로스 바뇨스, 라구나에서 미국 육군에 의해 처형되었다.[5]
시그레이브 부부에 따르면, 여러 개의 금 백합 금고는 에드워드 렌스데일과 세베리노 가르시아 디아스 산타 로마나에 의해 발견되었다.[5]
보고된 도난 재산에는 은행, 보관소, 기타 상업 시설, 박물관, 개인 주택 및 종교 건물에서 약탈한 다양한 종류의 귀중품이 포함되어 있었다.[5]
다양한 설명에 따르면 약탈물은 처음에는 싱가포르에 집중되었고, 나중에는 필리핀으로 운송되었다.[5]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 필리핀에서 일본 본토로 보물을 수송하려 했다.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면서 미국 해군 잠수함과 연합군 군용기가 일본 상선에 점점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으로 전리품을 운반하는 일부 선박이 전투에서 침몰했다.
시그레이브 부부와 몇몇 다른 사람들은[5] 미국 군사 정보 요원들이 약탈물의 상당 부분을 찾아냈고, 히로히토 및 기타 일본 고위 인사들과 공모하여 그 존재를 숨기고, 냉전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미국의 은밀한 정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이를 "블랙 골드"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문은 많은 희망적인 보물 사냥꾼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와 필리핀 역사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1][10]
1992년, 이멜다 마르코스는 야마시타의 금이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증거 없이 주장했다.[11][12]
많은 개인과 컨소시엄이 필리핀과 외국을 모두 포함하여 보물 장소를 계속 찾고 있다. 보물 사냥꾼이 겪은 여러 건의 사고사, 부상 및 재정적 손실이 보고되었다.[13] 필리핀 국립 박물관은 보물 사냥 허가 및 면허 발급을 담당한다.[14]
2. 2. "금 백합" 작전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은 동남아(주로 버마)에서 징발한 금괴를 싱가포르에서 필리핀으로 중계하여 일본 본토에 해상으로 운송하려 했다. 그러나 잠수함과 항공기에 의한 해상 수송로 공격이 심해져 일단 숨겨두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회수하려 했으나, 관계자인 야마시타 도모유키 등이 전범으로 처형되어 금괴가 숨겨진 곳의 정보가 유실되었다는 도시전설이 필리핀에서 일반적으로 전해지고 있다.[5]이 이야기는 아시아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유명 작가인 스털링 시그레이브가 쓴 《야마토 왕조》(''The Yamato Dynasty: The Secret History of Japan's Imperial Family'', 2000) 또는 《황금전사》(''Gold Warriors:America's Secret Recovery of Yamashita's Gold'', 2003)로 널리 알려지게 된 소설이다.
“금 백합”("''Golden Lily''")이라는 가상의 보물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종전까지 그 일부가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의 감독 하에 필리핀에 흩어져 숨겨졌기 때문에 일부가 지금도 필리핀에 남겨진 채로 있다고 하는 내용이었지만, 허실이 섞인 시그레이브의 교묘한 줄거리로 인해 진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1942년 미군에게 항복할 때 정글에 대량으로 은닉된 니켈과 또한 필리핀에 정착 한 일본인이 인양 시 묻은 재산 등을 실제로 찾을 수도 있었고, 이러한 전설이 진실성을 가졌다는 설도 있다.
야마시타의 금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 두드러지는 인물은 이 주제와 관련된 두 권의 책, 『야마토 왕조: 일본 제국 가문의 비밀 역사』(2000)와 『골드 워리어: 야마시타의 금을 찾은 미국의 비밀』(2003)을 저술한 스털링 시그레이브와 그의 아내 페기 시그레이브이다. 시그레이브 부부는 6,000톤 이상의 금을 포함한 약탈이 고다마 요시오와 같은 야쿠자 갱스터와 히로히토 천황을 포함한 일본 사회의 최고위층에 의해 대규모로 조직되었다고 주장한다.[5] 일본 정부는 동남아시아에서 약탈한 자금으로 일본의 전쟁 노력을 지원하려 했다.[5] 시그레이브 부부는 히로히토가 그의 형제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을 황제가 쓴 시에서 이름을 따온 金の百合|킨노 유리|"금 백합"일본어이라는 비밀 조직의 수장으로 임명했다고 주장한다.[6][7] 약탈물의 위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에 죽거나, 나중에 연합군에 의해 전쟁 범죄로 재판을 받고 처형되거나 투옥되었다. 야마시타 자신은 전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1946년 2월 23일 필리핀 로스 바뇨스, 라구나에서 미국 육군에 의해 처형되었다.[5]
시그레이브 부부에 따르면, 여러 개의 금 백합 금고가 에드워드 렌스데일과 세베리노 가르시아 디아스 산타 로마나에 의해 마닐라 북쪽의 높은 계곡과 'M자금'의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메이저 제너럴 윌리엄 마르퀘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산타 로마나와 렌스데일의 작업에서 시작되었다.[5] 스털링 시그레이브는 산타 로마나가 약탈물의 추정 위치를 얻기 위해 야마시타의 운전기사인 고지마 카시이 소령을 고문했다고 주장했다. 시그레이브 부부는 렌스데일이 도쿄로 날아가 맥아더와 그의 정보부장 찰스 윌러비에게 보고했고, 나중에 미국으로 날아가 클라크 클리포드에게 보고한 후 로버트 앤더슨과 함께 더글러스 맥아더와 함께 필리핀의 여러 동굴을 조사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썼다. 170개 이상의 터널과 동굴이 발견되었다.[6] 레이 클라인은 로버트 앤더슨과 폴 헬리웰이 약탈물을 배로 옮긴 후 향후 미국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42개국에 176개의 "블랙 골드" 은행 계좌를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6]
보고된 도난 재산에는 은행, 보관소, 기타 상업 시설, 박물관, 개인 주택 및 종교 건물에서 약탈한 다양한 종류의 귀중품이 포함되어 있었다.[5]
다양한 설명에 따르면 약탈물은 처음에는 싱가포르에 집중되었고, 나중에는 필리핀으로 운송되었다.[5]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 필리핀에서 일본 본토로 보물을 수송하려 했다.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면서 미국 해군 잠수함과 연합군 군용기가 일본 상선에 점점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으로 전리품을 운반하는 일부 선박이 전투에서 침몰했다.
시그레이브 부부와 몇몇 다른 사람들은[5] 미국 군사 정보 요원들이 약탈물의 상당 부분을 찾아냈고, 히로히토 및 기타 일본 고위 인사들과 공모하여 그 존재를 숨기고, 냉전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미국의 은밀한 정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이를 "블랙 골드"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문은 많은 희망적인 보물 사냥꾼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와 필리핀 역사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1][10]
3. 역사적 배경 및 진위 논란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이 동남아시아에서 징발한 금괴를 필리핀에 숨겼다는 도시전설은 스털링 시그레이브의 소설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시그레이브 부부는 일본 고위층이 약탈을 조직했고, "금 백합"이라는 비밀 조직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와 역사가들은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1][10]
1942년 미군 항복 당시 정글에 은닉된 니켈이나 필리핀 정착 일본인이 묻은 재산 등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야마시타 보물의 존재는 불분명하다. 필리핀 대학교 리카르도 트로타 호세 교수는 일본이 1943년까지 해상 통제권을 상실했기에 보물을 필리핀으로 옮겼다는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고,[15] 암베스 오캄포 필리핀 국립 역사 연구소 소장은 "지난 50년간 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1992년 이멜다 마르코스는 야마시타의 금이 남편 재산의 대부분이라고 주장했지만,[11][12] 증거는 없다. 1988년 로헬리오 록사스는 마르코스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4] 바기오에서 보물 금고를 발견하고 금불상과 금괴를 찾았지만, 마르코스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록사스 주장을 일부 인정했지만, 금괴 양에 대한 판결은 증거 부족으로 번복되었다.[4] 미국 제9 연방 항소 법원은 "야마시타 보물은 록사스가 발견했고 마르코스의 사람들이 록사스에게서 훔쳤다"고 요약했다.[19]
대동아 전쟁 당시 대본영 정보 참모였던 호리 에이조는 "야마시타 보물"은 동남아시아에서 징발한 금괴가 아니라, 필리핀에서 미국군의 위조 통화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에서 보낸 '''마루후쿠'''라는 특제 금화였다고 기술했다.[20] 이 금화는 1944년 2월에 공수되었으며,[20] 총 2만 5천 매였다.[20] 1945년 루손섬 전투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졌으나, 수송 관계자들의 전멸로 자세한 내용은 불분명하다.[20] 1950년 일본 국내에서 마루후쿠 금화 1매가 환전된 사례가 있다.[20]
3. 1. 역사적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은 동남아시아에서 징발한 금괴를 일본 본토로 운송하려 했으나, 연합군의 공격으로 인해 필리핀에 숨겨야 했다는 도시전설이 널리 퍼져 있다.[20] 이 전설에 따르면, 관계자인 야마시타 도모유키 등이 전범으로 처형되면서 금괴의 위치 정보가 유실되었다고 한다.19세기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세계 각지에서 약탈한 보물의 일부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스털링 시그레이브의 소설 《야마토 왕조》, 《황금전사》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허구에 가깝다. 시그레이브는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가 "금 백합"이라는 비밀 조직을 이끌고 필리핀에 보물을 숨겼다고 주장했지만, 신빙성이 낮다.
1942년 미군 항복 당시 정글에 은닉된 니켈이나 필리핀 정착 일본인이 묻은 재산 등이 실제로 발견되기도 했지만, 야마시타 보물 전설의 진실성은 불분명하다.
시그레이브 부부는 고다마 요시오와 같은 야쿠자 갱스터와 히로히토 천황을 포함한 일본 사회 최고위층이 약탈을 조직했고, 에드워드 렌스데일과 세베리노 가르시아 디아스 산타 로마나가 마닐라 북쪽 동굴에서 금괴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5] 또한, 렌스데일이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보고하여 170개 이상의 터널과 동굴을 발견했으며, 레이 클라인은 로버트 앤더슨과 폴 헬리웰이 약탈물을 옮겨 42개국에 176개의 "블랙 골드" 은행 계좌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6]

이멜다 마르코스는 야마시타의 금이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1][12]
한편, 대동아 전쟁 당시 대본영 정보 참모였던 호리 에이조는 자신의 저서에서, 필리핀에서 계획된 금괴에 의한 병참 유지 계획에 대해 기술했다. 호리에 따르면, "야마시타 보물"은 동남아에서 징발한 금괴가 아니라, 필리핀 내 경제 교란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에서 보내진 '''마루후쿠'''라는 특제 금화였다.
마루후쿠 금화는 1944년 2월에 일본 본토에서 공수되었으며, 총 2만 5천 매였다.[20] 미국군 루손섬 상륙 후, 약 1만 5천 매는 바기오로 수송되었으나,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종전 후, 1950년에 일본 국내에서 마루후쿠 금화 1매가 환전되기도 했다.[20]
3. 2. 진위 논란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이 동남아시아에서 징발한 금괴를 필리핀에 숨겼다가 나중에 회수하려 했으나, 관계자들이 전범으로 처형되면서 정보가 유실되었다는 도시전설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스털링 시그레이브의 저서 《야마토 왕조》, 《황금전사》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5]시그레이브 부부는 고다마 요시오와 같은 야쿠자와 히로히토 천황을 포함한 일본 사회 고위층이 약탈을 조직했고,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가 "금 백합"이라는 비밀 조직을 이끌었다고 주장한다.[6][7]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와 필리핀 역사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1][10]
1942년 미군 항복 당시 정글에 은닉된 니켈이나 필리핀 정착 일본인이 묻은 재산 등이 실제로 발견되기도 했지만, 야마시타 보물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필리핀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리카르도 트로타 호세는 일본이 1943년까지 해상 통제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본토의 보물이 필리핀으로 옮겨졌다는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15] 암베스 오캄포 필리핀 국립 역사 연구소 소장은 "지난 50년간 많은 사람들이 야마시타 보물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1992년, 이멜다 마르코스는 야마시타의 금이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주장했지만,[11][12] 이는 증거가 없는 주장이다.
1988년 로헬리오 록사스는 마르코스 부부를 상대로 절도 및 인권 유린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4] 록사스는 바기오에서 보물 금고를 발견하고 금불상과 금괴를 찾았다고 주장했지만, 마르코스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하와이 법원은 록사스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지만, 금고 속 금괴의 양에 대한 판결은 증거 부족으로 번복되었다.[4] 미국 제9 연방 항소 법원은 "야마시타 보물은 록사스가 발견했고 마르코스의 사람들이 록사스에게서 훔쳤다"고 요약했다.[19]
대동아 전쟁 당시 대본영 정보 참모였던 호리 에이조는 자신의 저서에서 "야마시타 보물"은 동남아시아에서 징발한 금괴가 아니라, 필리핀에서 미국군의 위조 통화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에서 보내진 '''마루후쿠'''라는 특제 금화였다고 기술했다.[20] 이 금화는 1944년 2월에 일본 본토에서 공수되었으며,[20] 총 2만 5천 매였다.[20] 1945년 루손섬 전투 이후, 이 금화들은 여러 곳으로 옮겨졌으나, 수송 관계자들의 전멸로 자세한 내용은 불분명하다.[20] 1950년 일본 국내에서 마루후쿠 금화 1매가 환전된 사례가 있다.[20]
3. 3. 일본 정부의 "마루후쿠" 금화 계획
도시 전설과는 달리, 대동아 전쟁 당시 대본영의 정보 참모였던 호리 에이조는 자신의 저서에서 미국군과 영국군 등 연합군의 반격에 대비해 "결전장"으로 여겨졌던 필리핀에서 금괴를 이용한 병참 유지 계획에 대해 기술했다.
호리 에이조에 따르면, "야마시타 보물"은 동남아시아에서 징발한 금괴가 아니라, 필리핀에서 미국군의 위조 통화로 인한 경제 혼란(일본군이 군표를 남발하여 신용이 하락하고, 미군 상륙 전 매점매석으로 물자가 부족했던 것이 실태)에 대항하기 위해, 필리핀 화교계 재벌에게 물자 조달 협력을 얻고자 일본에서 보낸 '''마루후쿠'''(원형 금화에 '福'자가 각인됨)라는 특제 금화였다. 이는 야마시타 도모유키 대장의 전임자인 구로다 시게노리 중장이 군 사령관이었던 1944년 2월에 일본 본토에서 공수되었다고 한다.[20]
마루후쿠 금화는 총 2만 5천 매였으며[20], 제14방면군 사령부가 있던 마닐라에 보관되었다. 1945년 1월 미군 루손섬 상륙 이후, 약 1만 5천 매는 방면군 사령부와 함께 바기오로 옮겨졌다. 이후 바기오에서 철수할 때 북부 산속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호리에 따르면 수송 관계자가 전멸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바기오로 옮겨진 것 외의 약 1만 매는 바기오 이외의 거점이나 각 부대에 분배되었다.[20]
종전 후, 1950년에 일본 국내에서 마루후쿠 금화 1매를 환전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당시 가격으로 3만 엔이었다고 한다.[20]
4. 마르코스 일가와 야마시타 골드
1992년 이멜다 마르코스는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야마시타의 보물을 발굴해 재산을 모았다고 주장했다.[26][27] 이 주장은 로헬리오 록사스 소송 등에서 언급되며, 마르코스 일가와 야마시타 골드 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야마시타 골드의 존재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스털링 시그레이브와 그의 아내 페기 시그레이브이다. 이들은 『야마토 왕조: 일본 제국 가문의 비밀 역사』(2000)와 『골드 워리어: 야마시타의 금을 찾은 미국의 비밀』(2003) 등의 저서를 통해 관련 주장을 펼쳤다.[5]
시그레이브 부부는 고다마 요시오 등 야쿠자 갱스터와 히로히토 천황을 포함한 일본 사회 최고위층이 6,000톤 이상의 금을 포함한 약탈을 조직했다고 주장한다.[5] 일본 정부는 동남아시아에서 약탈한 자금으로 전쟁을 지원하려 했으며, 히로히토가 그의 형제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을 '金の百合|킨노 유리|금 백합일본어'이라는 비밀 조직의 수장으로 임명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6][7]
시그레이브 부부에 따르면, 여러 금 백합 금고가 에드워드 렌스데일과 세베리노 가르시아 디아스 산타 로마나에 의해 발견되었다.[5] 산타 로마나가 야마시타의 운전기사 고지마 카시이 소령을 고문해 약탈물 위치를 알아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렌스데일은 더글러스 맥아더와 그의 정보부장 찰스 A. 윌러비에게 보고했고, 이후 미국에서 클라크 클리포드에게 보고한 후 로버트 앤더슨과 함께 필리핀의 여러 동굴을 조사, 170개 이상의 터널과 동굴을 발견했다고 한다.[6]
레이 S. 클라인은 로버트 앤더슨과 폴 헬리웰이 약탈물을 배로 옮긴 후 미국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42개국에 176개의 "블랙 골드" 은행 계좌를 만들었다고 믿는다.[6]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와 필리핀 역사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1][10]
4. 1. 이멜다 마르코스의 주장
1992년, 부정 축재 혐의로 기소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는 남편이 야마시타의 보물을 발굴해 재산을 모았다고 주장했다.[26][27] 그녀는 1945년에 결혼하기 전 페르디난드가 금의 일부를 팔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의 경제난에 국가를 돕기 위해 금 판매 이익을 국비로 투입했으며, 남편이 나머지 돈을 루손섬 북쪽 그들의 집 벽을 포함한 여러 곳에 숨겼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필리핀 정부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28][23]4. 2. 로헬리오 록사스 소송
1988년 3월, 필리핀의 보물 사냥꾼 로헬리오 록사스는 필리핀의 전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를 상대로 절도 및 인권 유린 혐의로 미국 하와이 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4] 록사스는 1961년 바기오에서 일본군 전직 군인의 아들을 만나 전설적인 야마시타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4]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중 야마시타의 통역관으로 일했던 사람에게서 지하 금고가 있는 곳을 방문하여 금과 은이 보관되어 있었고, 지하 금고 근처의 수녀원에 금색 불상이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고 주장했다.[4] 이후 록사스는 몇 년 동안 보물을 찾기 위한 그룹을 결성하여 페르디난드의 친척인 피오 마르코스 판사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4]1971년, 록사스와 그의 그룹은 바기오 근처의 국유지에서 폐쇄된 금고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총검, 사무라이 검, 라디오, 일본군 군복을 입은 유골을 발견했다.[4] 록사스는 금고에서 약 0.91m 크기의 불상과 약 6피트 x 6피트 x 35피트 크기의 공간을 채우는 수많은 상자를 발견했다. 그는 상자 중 하나를 열어 금괴로 가득 차 있는 것을 확인하고, 금고에서 무게 1,000kg으로 추정되는 금색 불상과 24개의 금괴가 든 상자 하나를 꺼내 자신의 집에 숨겼다. 나머지 상자들도 금괴로 가득 차 있을 것으로 보고 안전을 위해 금고를 다시 봉인한 뒤, 금괴를 옮길 준비를 했다.[4] 록사스는 열었던 상자에서 금괴 7개를 팔았고, 금색 불상의 잠재적 구매자를 찾았다. 그는 잠재적 구매자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불상의 금속을 검사하고 테스트한 결과 20캐럿 순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4]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록사스의 발견을 알고 그를 체포하여 구타하고 불상과 나머지 금을 압수하라고 명령했다고 록사스는 주장했다.[4] 그는 불상과 압수된 보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공개적인 캠페인에 대한 보복으로 페르디난드가 자신을 계속 위협하고 구타했으며, 결국 1년 넘게 투옥했다고 주장했다.[4]
록사스는 석방된 후 1986년 페르디난드가 대통령직을 잃을 때까지 마르코스에 대한 주장을 보류했다. 1988년, 록사스와 골든 부다 공사(록사스가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보물의 소유권을 가진)는 하와이 주 법원에 페르디난드와 이멜다를 상대로 절도 및 록사스에 대한 인권 유린에 대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록사스는 재판 전날 사망했지만,[16] 사망 전에 증거로 사용될 증언을 남겼다.[4] 1996년, 록사스 유산과 골든 부다 공사는 당시 역사상 가장 큰 판결인 220억 달러(이자는 405억 달러로 증가)를 받았다.[17] 1998년, 하와이 대법원은 록사스가 보물을 발견했고 마르코스가 이를 횡령했다는 배심원단의 판결을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결했다.[4] 그러나 법원은 금으로 가득 찬 금고에 대한 220억 달러의 손해 배상 판결은 수량이나 품질에 대한 증거가 없어 너무 추측적이라고 판단하여 판결을 뒤집고, 금색 불상과 금괴 17개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심리를 명령했다.[4] 몇 년 동안의 추가 법적 절차를 거쳐 골든 부다 공사는 이멜다 마르코스가 마르코스 재산에 갖는 지분 범위 내에서 13,275,848.37달러의 최종 판결을 받았고, 록사스 유산은 인권 유린에 대한 소송에서 600만 달러의 판결을 받았다.[18]
이 소송은 궁극적으로 록사스가 보물을 발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와이 주 법원은 이 특정 보물이 전설적인 야마시타의 금인지 여부를 결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판결을 내리는 데 법원이 의존한 증언은 그 방향을 가리켰다. 록사스는 일본 군인의 아들의 지도를 따랐고, 야마시타의 통역관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이용했으며, 보물 금고에서 사무라이 검과 죽은 일본 군인들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제9 연방 항소 법원은 록사스의 최종 판결로 이어진 주장을 "야마시타 보물은 록사스가 발견했고 마르코스의 사람들이 록사스에게서 훔쳤다"라고 요약했다.[19]
5. 보물 발굴 규제 및 소유권
2007년부터 필리핀 정부는 야마시타 보물 찾기와 관련된 문제들이 자주 발생하자 규제를 강화했다.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고, 환경천연자원부에 10000PHP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했다. 보물이 발견될 경우, 문화 유산은 국가가 몰수하고, 공유지에서 발견되면 정부가 75%, 발굴자가 25%를 가진다. 사유지에서 발견될 경우에는 정부가 30%, 발굴자와 토지 소유자가 70%를 나눠 갖는다.[24] 허가는 필리핀 국민이나 자금 보증이 있는 단체(외국인 포함)가 받을 수 있으며, 토지 소유자의 사전 허가와 보증금 예치가 필요하다. 허가 유효 기간은 1년이며 연장 가능하다.
1969년 12월, 마닐라 인근 산에서 금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일본군이 남긴 철모와 기관총만 발견되었다.[21] 2018년 6월에는 카보네스 섬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불법 채굴을 한 혐의로 일본인 4명과 필리핀인 13명 등 17명이 현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22]
5. 1. 필리핀 정부의 규제 강화
2007년부터 보물 찾기를 둘러싼 문제들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필리핀 정부는 야마시타 보물 찾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기존의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고 환경천연자원부에 10000PHP의 수수료를 지불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24]동시에 발견 시의 조치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권리 배분이 정해졌다.
- 문화유산으로 판단되는 경우 → 국가가 전부 몰수
- 공유지에서 발견된 경우 → 정부가 75%, 발굴자가 25%
- 사유지에서 발견된 경우 → 정부가 30%, 발굴자와 토지 소유자가 70%
허가 대상은 필리핀 국민 또는 자금 보증이 있는 단체(외국인도 가능)이며, 발굴 시에는 토지 소유자 등의 사전 허가와 토지 보전을 위한 보증금 예치 의무도 발생한다. 유효 기간은 1년이지만, 신청하면 1년 연장도 가능하다.
5. 2. 보물 소유권
2007년부터 보물 찾기를 둘러싼 문제들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필리핀 정부는 야마시타 보물 찾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기존의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고 환경천연자원부에 10000PHP의 수수료를 지불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24]동시에 발견 시의 조치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권리 배분이 정해졌다.
- 문화유산으로 판단되는 경우 → 국가가 전부 몰수
- 공유지에서 발견된 경우 → 정부가 75%, 발굴자가 25%
- 사유지에서 발견된 경우 → 정부가 30%, 발굴자와 토지 소유자가 70%
허가 대상은 필리핀 국민 또는 자금 보증이 있는 단체(외국인도 가능)이며, 발굴 시에는 토지 소유자 등의 사전 허가와 토지 보전을 위한 보증금 예치 의무도 발생한다. 유효 기간은 1년이지만, 신청하면 1년 연장도 가능하다.
6. 대중문화 속 야마시타 골드
- 닐 스티븐슨의 소설 ''크립토노미콘'', 클라이브 커슬러의 소설 ''드래곤'', 게임 ''메달 오브 아너: 라이징 선''에서 야마시타의 금괴가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5]
- 치토 S. 로뇨 감독의 영화 ''야마시타: 타이거의 보물(Yamashita: The Tiger's Treasure)''은 전직 필리핀 포로와 그의 손자가 비밀 요원들과 매장된 보물을 탐내는 부패한 전 일본 군인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 미국 TV 시리즈 ''미스터리 해결(Unsolved Mysteries)''의 한 에피소드에서 야마시타 장군이 축적했다고 알려진 금괴의 운명을 다루었다.
- 덩컨 플래스터의 연극 ''오레, or 오어''는 야마시타의 금괴를 현대 캐릭터들의 사랑 생활에 대한 은유로 사용한다.
- 제임스 맥켄지의 소설 ''야마시타의 지도 미스터리(The Mystery of Yamashita's Map)''(2007)는 야마시타의 금괴를 찾아 나서는 보물 사냥꾼 그룹의 이야기를 다룬다.
- 2010년 싱가포르 미디아코프(Mediacorp)에서 TV 쇼 ''야마시타의 보물''을 방송했다.
- 2013년 인도네시아 외딴 섬을 배경으로 한 공포 영화 ''데드 마인(Dead Mine)''에서 야마시타의 금괴가 주요 플롯 요소로 등장한다.
- 탄 트완 엥의 2012년 소설 ''저녁 안개의 정원(The Garden of Evening Mists)''의 줄거리는 일본 제국의 황금 백합 계획을 기반으로 한다.
- 콜린 하웰은 야마시타의 금괴를 되찾는 사기극으로 아내를 살해하여 얻은 돈의 대부분을 잃었으며, 이는 2016년 ITV에서 ''더 시크릿(The Secret)''으로 드라마화되었다.
- 비주얼 노벨 ''괭이갈매기 울 적에(Umineko no Naku Koro ni)''에서 우시로미야 가문 당주가 숨겨야 하는 금괴 이야기는 야마시타의 금괴에서 영감을 받았다.
- TV 시리즈 ''익스페디션 언노운(Expedition Unknown)''에서 진행자 조시 게이츠가 잃어버린 금괴를 찾기 위해 보물 사냥꾼들을 돕기 위해 필리핀으로 간다.
- 히스토리 채널은 2019년 3월부터 ''2차 세계 대전의 잃어버린 금괴(Lost Gold of World War II)''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 2020년 한국 코미디 영화 ''#황금 연휴''는 금괴를 찾는 내용을 다룬다.
- 이 보물은 2021년 영화 ''데인저러스(Dangerous)''의 플롯 요소이다.
- TRPG '소드 월드 RPG 리플레이 앤먼트 재보 편'에서 야마시타의 금괴가 패러디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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