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마 에이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구마 에이지는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평론가로, 1995년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으로 데뷔하여 내셔널리즘과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연구해왔다. 그는 도쿄 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게이오기주쿠 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6년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일본인>의 경계』, 『<민주>와 <애국>』, 『1968』 등이 있으며, 저서와 논문들을 통해 일본 사회와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했다. 그의 연구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좌편향성, 1968년 학생 운동 관련 논란 등 비판도 받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게이오기주쿠 대학 교수 - 아베 요시시게
아베 요시시게는 일본의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칸트 철학 연구와 한국 문화 연구에 기여했으며, 전후 일본 교육 제도 개혁을 이끌고 가쿠슈인대학 총장으로 재임하며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게이오기주쿠 대학 교수 - 시가 기요시
시가 기요시는 메이지 시대의 세균학자이자 면역학자로, 이질균인 시겔라를 발견하여 학명에 그의 이름이 명명되었으며, 결핵 연구와 BCG 백신 도입에도 기여했지만, 경성제국대학 총장 재임 시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 1962년 출생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1962년 출생 - 원유철
원유철은 고려대학교 졸업 후 5선 국회의원,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핵무장을 주장하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오구마 에이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오구마 에이지 |
원어명 | 小熊英二 |
로마자 표기 | Oguma Eiji |
출생일 | 1962년 9월 6일 |
출생지 | 東京都昭島市(도쿄도 아키시마시) |
학력 | |
출신 학교 | 동경대학교 농학부 졸업 |
학위 | 박사(학술) |
경력 | |
직업 | 역사사회학자, 영화감독 |
연구 기관 | 동경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국제사회과학 전공 게이오기주쿠대학교 종합정책학부 교수 |
개인 정보 | |
부모 | 오구마 겐지(부) |
연구 활동 | |
연구 분야 | 역사사회학・상관사회과학 |
주요 작품 | 『「日本人」の境界-支配地域との関係において』(「일본인」의 경계-지배지역과의 관계에서) 『〈民主〉と〈愛国〉』(〈민주〉와 〈애국〉) |
수상 내역 | |
수상 | 산토리 학예상 제57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제2부문 제3회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 카도카와 재단 학예상 제14회 고바야시 히데오상 |
기타 정보 | |
공식 웹사이트 | 오구마 에이지 연구회 |
2. 생애 및 학력
도쿄도아키시마시 출신이다. 도쿄도립 다치카와 고등학교를 거쳐, 나고야 대학 이학부물리학과를 중퇴하고, 1987년도쿄 대학 농학부를 졸업했다. 이와나미 쇼텐에 입사하여(1996년까지 재직) 처음에는 잡지 『세계』 편집부에 재적했지만, 영업부로 이동된 후에 휴직하고, 도쿄 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국제사회과학전공에 입학, 1998년 『「일본인」의 경계 - 지배 지역과의 관계에서』로 박사(학술)을 취득했다. 1997년게이오기주쿠 대학 종합정책학부 전임 강사, 2000년 조교수, 2007년 교수가 되었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아트 센터 소속이다.[3]
아버지인 오구마 겐지는 시베리아 억류를 겪었고, 1948년 8월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 후, 전 일본군 병사의 조선계 중국인이 일본국 정부를 상대로 시베리아 억류의 전후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의 공동 원고가 되었다.[3]
1995년의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과 1998년의 『<일본인>의 경계』에서, "일본 = 단일 민족"설이 전후에 제창된 것이며,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전전 일본에서는 "복수 민족이 공유하는 일본"이 사상적으로 제창되었다고 주장했다.
2002년의 『〈민주〉와 〈애국〉』의 출판 동기로서,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이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고바야시나 "만드는 모임"도 그 비판자도 전후사에 대한 무지가 두드러진 것을 보고, 전후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4] 『〈민주〉와 〈애국〉』에서 전후 사상사 속에서, 언뜻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민주"와 "애국"이라는 개념이, 마루야마 마사오 등의 논의에서는 오히려 궁합이 좋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등을 소개하며, 전후 일본에서의 내셔널리즘의 다양성을 주장했다.
2012년8월 22일에는, 노다 요시히코총리와 반원전 시민 단체 "수도권 반원전 연합"의 대표자 11명(오구마 포함. 단 오구마는 "수도권 반원전 연합"의 멤버가 아님)과의 총리 관저에서의 면회를, 칸 나오토 전 총리와의 파이프를 사용하여 실현시켰다.[5]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서는, 나고야 대학 이학부 물리학과에 일시 재학했던 것도 있어서, "물리학을 배운 적도 있어서, 원전 사고 때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도, 이건 상당히 심각하다"고 보았다고 한다.[6]
2014년 8월에 아사히 신문이, 동 신문에 의한,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 캠페인에 대해, "요시다 씨가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고 하는 증언은 허위라고 판단하고, 기사를 취소합니다"라고 했을 때에는[7], "일본의 보수파에는, 군인이나 관리가 직접 여성을 연행했는지 여부만을 논점으로 삼고,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논점은, 일본 이외에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 주장이 보기 흉한 변명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8], 보수 정치인 등의 "갈라파고스적" 논의를 비판하는 코멘트를 남겼다.
사적으로는 어쿠스틱 악기로 세계 각국의 트래드를 기반으로 한 악곡을 연주하는 밴드・'''Quikion''' ('''키키온''')을 토키 유키코, 사사키 에미와 결성하여, 도쿄도 내를 중심으로 라이브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2015년까지 6장의 인디·앨범을 릴리스하고 있다.[9] 오구마는 기타, 부주키 등을 담당[10]. 이 외 토키를 제외한 키키온의 멤버와 쿠도 겐타(퍼커션)와 함께 결성한 '''KION'''(키온)에서도 활동하고 있다.[9]
2. 1. 출생과 성장
도쿄도아키시마시 출신이다. 도쿄도립 다치카와 고등학교를 거쳐, 나고야 대학 이학부물리학과를 중퇴하고, 1987년도쿄 대학 농학부를 졸업했다.[3] 처음에는 잡지 『세계』 편집부에 재적했지만, 영업부로 이동된 후에 휴직하고, 도쿄 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국제사회과학전공에 입학, 1998년 『「일본인」의 경계 - 지배 지역과의 관계에서』로 박사(학술) 취득했다.[3]아버지인 오구마 겐지는 시베리아 억류를 겪었고, 1948년 8월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 후, 전 일본군 병사의 조선계 중국인이 일본국 정부를 상대로 시베리아 억류의 전후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의 공동 원고가 되었다.[3]
1995년의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과 1998년의 『<일본인>의 경계』에서, "일본 = 단일 민족"설이 전후에 제창된 것이며,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전전 일본에서는 "복수 민족이 공유하는 일본"이 사상적으로 제창되었다고 주장했다.
2014년 8월에 아사히 신문이, 동 신문에 의한,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 캠페인에 대해, "요시다 씨가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고 하는 증언은 허위라고 판단하고, 기사를 취소합니다"라고 했을 때에는[7], "일본의 보수파에는, 군인이나 관리가 직접 여성을 연행했는지 여부만을 논점으로 삼고,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논점은, 일본 이외에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 주장이 보기 흉한 변명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8], 보수 정치인 등의 "갈라파고스적" 논의를 비판하는 코멘트를 남겼다.
사적으로는 어쿠스틱 악기로 세계 각국의 트래드를 기반으로 한 악곡을 연주하는 밴드・'''Quikion''' ('''키키온''')을 토키 유키코, 사사키 에미와 결성하여, 도쿄도 내를 중심으로 라이브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2015년까지 6장의 인디·앨범을 릴리스하고 있다.[9] 오구마는 기타, 부주키 등을 담당[10]. 이 외 토키를 제외한 키키온의 멤버와 쿠도 겐타(퍼커션)와 함께 결성한 '''KION'''(키온)에서도 활동하고 있다.[9]
2. 2. 학력
도쿄도아키시마시 출신.[3] 도쿄도립 다치카와 고등학교를 거쳐, 나고야 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 중퇴[6]하고, 1987년도쿄 대학 농학부를 졸업[3]했다. 1998년 『「일본인」의 경계 - 지배 지역과의 관계에서』로 박사(학술) 취득.[3]3. 경력
3. 1. 학계 경력
3. 2. 출판 및 기타 경력
OCLC/월드캣에 따르면, 오구마 에이지는 4개 언어로 된 150개 이상의 출판물에 약 53개의 저작물과 1,500개 이상의 도서관 소장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2]- ''"일본인" 자아상 계보.'' (2002)
- ''1968.'' (2009)
- 유령 도시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일본 3.11 재해와 재건의 경로 의존성/Nobody Dies in a Ghost Town: Path Dependency in Japan's 3.11 Disaster and Reconstruction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11권, 44호 (2013년 11월 3일).[2]
- ''"일본인"의 경계.'' (2014)
- 일본의 1968년: 격동의 시대에 급격한 경제 성장에 대한 집단적 반응/Japan's 1968: A Collective Reaction to Rapid Economic Growth in an Age of Turmoil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13권, 12호 (2015년 3월 28일).[2]
- 바위에 맞선 새로운 물결: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이후 일본의 새로운 사회 운동/A New Wave Against the Rock: New Social Movements in Japan after the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Accident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14권, 13호 (2016년 7월 1일).[2]
4. 주요 연구 분야 및 관점
4. 1. 주요 연구 분야
4. 2. 연구 관점 및 방법론
5. 주요 저작 및 수상 내역
OCLC/월드캣에 따르면, 오구마 에이지는 4개 언어로 된 150개 이상의 출판물에 약 53개의 저작물과 1,500개 이상의 도서관 소장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2]
- ''"일본인" 자아상 계보.'' (2002)
- ''1968.'' (2009)
- 유령 도시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일본 3.11 재해와 재건의 경로 의존성/Nobody dies in a ghost town: path dependency in Japan's 3.11 disaster and reconstruction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2013년 11월 3일.[2]
- ''"일본인"의 경계.'' (2014)
- 일본의 1968년: 격동의 시대에 급격한 경제 성장에 대한 집단적 반응/Japan’s 1968: A Collective Reaction to Rapid Economic Growth in an Age of Turmoil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2015년 3월 28일.[2]
- 바위에 맞선 새로운 물결: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이후 일본의 새로운 사회 운동/A New Wave Against the Rock: New Social Movements in Japan after the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Accident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2016년 7월 1일.[2]
-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 - <일본인>의 자화상의 계보』(신요샤 1995년)
- 『<일본인>의 경계 - 오키나와·아이누·타이완·조선: 식민지 지배에서 복귀 운동까지』(신요샤 1998년)
- 『인도 일기 - 소와 컴퓨터의 나라에서』(신요샤 2000년)
- 『<민주>와 <애국> -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신요샤 2002년)
- 『시미즈 이쿠타로 - 어느 전후 지식인의 궤적』(오차노미즈 서방 2003년)
- 『시민과 무장 - 미국 합중국에서의 전쟁과 총기 규제』(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04년)
- 『대화의 회로 - 오구마 에이지 대담집』(신요샤 2005년)
- 『일본이라는 나라』요리미치 빵!세(이론사 2006년/이스트 프레스 2011년)
- 『1968』상하(신요샤 2009년)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오구마 에이지 시평집』(마이니치 신문사 2011년)
- 『사회를 바꾸려면』(고단샤 현대신서 2012년)
- 『살아서 돌아온 남자 - 어느 일본 병사의 전쟁과 전후』(이와나미 신서 2015년)
- 『아웃테이크스 - 오구마 에이지 논문집』(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15년)
- 『논단 일기 - 2011.4-2013.3』(신요샤 2015년)
- 『우리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마이니치 신문 출판 2016년)
- 『수상 관저 앞에서
』(슈에이샤 인터내셔널 2017년) - 『누가 무엇을 논하고 있는가: 현대 일본의 사상과 상황』(신요샤 2017년)
- 『일본 사회의 구조』(고단샤 현대신서 2019년)
- 『기초부터 알 수 있는 논문 작성법』(고단샤 현대신서 2022년)
- (우에노 요코) 『<치유>의 내셔널리즘 - 풀뿌리 보수 운동의 실증 연구』(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03년)
- (쓰루미 슌스케・우에노 치즈코) 『전쟁이 남긴 것』(신요샤 2004년)
- (아카사카 노리오・야마우치 아케미) 『「도호쿠」재생』(이스트 프레스 2011년)
- (후루이치 노리토시 외) 『진지하게 이야기합시다 - 오구마 에이지 대담집』(신요샤 2014년)
- (강상중) 『재일 1세의 기억』 (슈에이샤 신서 2008년)
- (아카사카 노리오) 『"변방"에서 시작하다 - 도쿄/도호쿠 론』 (아카시 쇼텐 2012년)
- 『헤이세이 시대사』 (가와데 북스 2012년/ 증보 신판 2014년)
- 『원전을 멈추는 사람들 - 3.11부터 관저 앞까지』 (분게이슌주 2013년)
- (아카사카 노리오) 『고스트 타운에서 죽은 자는 나오지 않는다 - 도호쿠 부흥의 경로 의존』 (진분샤 2015년)
- (강상중) 『재일 2세의 기억』 (슈에이샤 2016년)
- (히구치 나오토) 『일본은 "우경화"했는가』 (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20년)
- 1996년 -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 - <일본인>의 자화상의 계보』로 산토리 학예상 사회·풍속 부문 수상.
- 2003년 - 『<민주>와 <애국> -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으로 제2회 일본 사회학회 장려상 저서 부문, 제57회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 제2부문 수상.
- 2004년 - 『〈민주〉와 〈애국〉』으로 제3회 오오부츠 지로 론단상 수상.
- 2010년 - 『1968』로 카도카와 재단 학예상 수상.
- 2013년 - 『사회를 바꾸려면』으로 신서 대상 수상.
- 2015년 - 『살아 돌아온 남자 - 어떤 일본 병사의 전쟁과 전후』로 제14회 고바야시 히데오상 수상.
- 2016년 - 『수상 관저 앞에서』로 일본 영화 부흥 장려상 수상.
5. 1. 주요 저작
OCLC/월드캣에 따르면, 오구마 에이지는 4개 언어로 된 150개 이상의 출판물에 약 53개의 저작물과 1,500개 이상의 도서관 소장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2]- ''"일본인" 자아상 계보.'' (2002)
- ''1968.'' (2009)
- 유령 도시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일본 3.11 재해와 재건의 경로 의존성/Nobody dies in a ghost town: path dependency in Japan's 3.11 disaster and reconstruction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2013년 11월 3일.[2]
- ''"일본인"의 경계.'' (2014)
- 일본의 1968년: 격동의 시대에 급격한 경제 성장에 대한 집단적 반응/Japan’s 1968: A Collective Reaction to Rapid Economic Growth in an Age of Turmoil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2015년 3월 28일.[2]
- 바위에 맞선 새로운 물결: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이후 일본의 새로운 사회 운동/A New Wave Against the Rock: New Social Movements in Japan after the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Accident영어, 아시아 태평양 저널, 2016년 7월 1일.[2]
-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 - <일본인>의 자화상의 계보』(신요샤 1995년)
- 『<일본인>의 경계 - 오키나와·아이누·타이완·조선: 식민지 지배에서 복귀 운동까지』(신요샤 1998년)
- 『인도 일기 - 소와 컴퓨터의 나라에서』(신요샤 2000년)
- 『<민주>와 <애국> -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신요샤 2002년)
- 『시미즈 이쿠타로 - 어느 전후 지식인의 궤적』(오차노미즈 서방 2003년)
- 『시민과 무장 - 미국 합중국에서의 전쟁과 총기 규제』(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04년)
- 『대화의 회로 - 오구마 에이지 대담집』(신요샤 2005년)
- 『일본이라는 나라』요리미치 빵!세(이론사 2006년/이스트 프레스 2011년)
- 『1968』상하(신요샤 2009년)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오구마 에이지 시평집』(마이니치 신문사 2011년)
- 『사회를 바꾸려면』(고단샤 현대신서 2012년)
- 『살아서 돌아온 남자 - 어느 일본 병사의 전쟁과 전후』(이와나미 신서 2015년)
- 『아웃테이크스 - 오구마 에이지 논문집』(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15년)
- 『논단 일기 - 2011.4-2013.3』(신요샤 2015년)
- 『우리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마이니치 신문 출판 2016년)
- 『수상 관저 앞에서
』(슈에이샤 인터내셔널 2017년) - 『누가 무엇을 논하고 있는가: 현대 일본의 사상과 상황』(신요샤 2017년)
- 『일본 사회의 구조』(고단샤 현대신서 2019년)
- 『기초부터 알 수 있는 논문 작성법』(고단샤 현대신서 2022년)
- (우에노 요코) 『<치유>의 내셔널리즘 - 풀뿌리 보수 운동의 실증 연구』(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03년)
- (쓰루미 슌스케・우에노 치즈코) 『전쟁이 남긴 것』(신요샤 2004년)
- (아카사카 노리오・야마우치 아케미) 『「도호쿠」재생』(이스트 프레스 2011년)
- (후루이치 노리토시 외) 『진지하게 이야기합시다 - 오구마 에이지 대담집』(신요샤 2014년)
- (강상중) 『재일 1세의 기억』 (슈에이샤 신서 2008년)
- (아카사카 노리오) 『"변방"에서 시작하다 - 도쿄/도호쿠 론』 (아카시 쇼텐 2012년)
- 『헤이세이 시대사』 (가와데 북스 2012년/ 증보 신판 2014년)
- 『원전을 멈추는 사람들 - 3.11부터 관저 앞까지』 (분게이슌주 2013년)
- (아카사카 노리오) 『고스트 타운에서 죽은 자는 나오지 않는다 - 도호쿠 부흥의 경로 의존』 (진분샤 2015년)
- (강상중) 『재일 2세의 기억』 (슈에이샤 2016년)
- (히구치 나오토) 『일본은 "우경화"했는가』 (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20년)
5. 2. 수상 내역
- 1996년 -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 - <일본인>의 자화상의 계보』로 산토리 학예상 사회·풍속 부문 수상.
- 2003년 - 『<민주>와 <애국> - 전후 일본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으로 제2회 일본 사회학회 장려상 저서 부문, 제57회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 제2부문 수상.
- 2004년 - 『〈민주〉와 〈애국〉』으로 제3회 오오부츠 지로 론단상 수상.
- 2010년 - 『1968』로 카도카와 재단 학예상 수상.
- 2013년 - 『사회를 바꾸려면』으로 신서 대상 수상.
- 2015년 - 『살아 돌아온 남자 - 어떤 일본 병사의 전쟁과 전후』로 제14회 고바야시 히데오상 수상.
- 2016년 - 『수상 관저 앞에서』로 일본 영화 부흥 장려상 수상.
6. 한국과의 관계
6. 1. 한국 관련 연구
6. 2. 한국 내 평가
오구마 에이지는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내셔널리즘과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정치 사상과 그 역사를 연구하며, 사회학의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초기 저작인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과 『<일본인>의 경계』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후기 저작인 『<민주>와 <애국>』, 『1968』은 리버럴 계열의 아사히 신문부터 보수 계열의 요미우리 신문, 분게이슌주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정론, 주니치 신문, 주간 금요일 등에서는 비판적인 기사가 실리는 등 평가가 엇갈렸다.; 긍정적 평가
- 카와무라 미나토는 오구마의 아버지의 전기 『살아 돌아온 남자』를 야나기타 민속학이 목표로 한 '상민=보통의 사람'의 정신사로 평가했다.[11]
- 혼마 타카시는 기행 『인도 일기』에 대해 스테레오 타입의 선입견 없이 인도와 일본의 정체성 확립 문제를 비교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12]
-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에 대해 이안 아시는 일본인이 외부인을 포용하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고,[13] 고마츠 카즈히코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듯한 지적"이라고 호평했다.[14]
- 무라카미 류는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만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극찬했다.[15]
- 노무라 스스무는 『<일본인>의 경계』를 통해 일본 정부가 '일본인'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결정해 온 역사를 비판하며, 아시아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필독서라고 평가했다.[16]
- 이케자와 나츠키는 『<일본인>의 경계』를 "앞으로 이것을 무시하고 근대 일본사를 생각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17]
- 타케다 테츠는 『<일본인>의 경계』에서 미군 점령기 오키나와의 복잡한 상황을 정성껏 풀어썼다고 평가했다.[18]
- 이노우에 히사시는 『<민주>와 <애국>』에 대해 "전후" 논쟁에 대한 훌륭한 분석이라고 평가하며, 마루야마 마사오, 타케우치 요시미, 요시모토 타카아키 등 전후 사상을 이끈 인물들의 전기가 흥미롭다고 언급했다.[19]
- 유이 다이 사부로는 오구마를 "혁신적인 입장의 연구자"라고 칭하며, 『<민주>와 <애국>』에서 '전후 민주주의자'의 '애국'적인 측면을 지적한 점을 주목했다.[20]
- 잡지 『다카포』 편집부는 『<민주>와 <애국>』을 "'민주'와 '애국'은 모순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거의 전후 지식인에게는 쉽게 양립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21]
- 전공투 출신 하시즈메 다이스케는 『1968』에 대해 "기술은 대체로 공정하고 정확하다"며 필독의 역사 자료라고 극찬했다.[22]
- 공안조사청의 비밀 조서를 읽은 사토 마사루는 『1968』을 "성실한 분석"이라고 인정했다.[23]
- 오구마는 1968년 운동의 "불합리성"과 "유치한 폭력"을 지적하면서도, 이 책을 통해 냉정한 '역사화'가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24]
; 부정적 평가
- 니시오 간지는 『<민주>와 <애국>』이 마루야마 마사오 등 좌파 계열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어 편향되었다고 비판하며, "전후 진보주의 혹은 전후 좌익주의는, 그들에게 있어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무엇보다도 좋은 〈힐링〉"이라고 비판했다.[25]
- 이가라시 히토시는 『<민주>와 <애국>』의 인물 언급 기준이 불분명하며, 시바 료타로에 대한 언급이 적은 점을 지적했다.[26]
- 타나카 히데미치는 『<치유>의 내셔널리즘--』에서 오구마의 좌익적 당파성을 비판하며, "좌익으로부터의 내셔널리즘은 긍정할 수 있고, 보수파로부터의 그것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이중 기준을 지적했다.[27]
- 츠루미 슌스케 등 베헤이렌에 대한 오구마의 긍정적 평가와 달리, 신좌익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대해 타케이 아키오,[29] 시타 쇼미[30] 등은 KGB로부터의 원조 사실[31]을 언급하며 더블 스탠더드라고 비판했다.[32]
- 히라사와 고우는 『1968』이 68년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수정주의적 의도로 쓰였다고 비판하며, 단일 관점을 거부하는 68년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33]
- 2010년 4월 21일 주니치 신문 칼럼은 『1968』의 사실 오류를 지적하며, 오카 쇼헤이의 『레이테 전우기』와 비교하며 오구마에게는 68년 세대에 대한 공감이 없다고 비판했다.
- 이치다 요시히코는 『1968』이 당사자 취재 없이 회상기를 인용한 점을 문제 삼고, 당시 운동의 미숙함을 지적한 것에 대해 "변변한 지도자도 객관적 제반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일어날 리도 없었던 곳에서 일어난, 그것이 68년"이라고 반론했다.[35]
- 카사이 키요시는 『1968』이 대학 분쟁의 보편성을 띠게 된 "반란의 집단 형성이나 유토피아의 꿈과 폭력 등의 문제계"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36]
- 타나카 미츠는 『주간 금요일』 2009년 12월 25일호에 『1968』 하권 17장의 내용에 대해 오독, 오용, 날조가 45곳이나 있다며 "오독과 날조에 의한 처참한 노작"이라고 비판했다.[37] 우에노 치즈코는 오구마에게 "자신이 잘 모르는 것,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충고했다.[38]
- 토미타 타케시는 『1968』이 이론을 경시하고 탈이데올로기적 시점에서 역사를 소급하며, 사실 오류가 많다고 비판했다.[39]
- 토모나가 츠토무는 『1968』에 새로운 발견이 없고, 문자 자료를 뒷받침하는 청취가 부족하며, 츠루미 슌스케의 담화에 의존하는 등 폐쇄적이라고 비판했다.[40]
-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시카타 이누히코는 오구마가 1968년을 문화의 문제로 파악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문헌 자료를 자의적으로 몽타주하여 허위의 책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41], 오시마 나기사, 아다치 마사오, 아사카와 마키가 나오지 않는 것도 문제시하며, "정치와 문화를 떼어놓는 곳에서 나는 위험한 것을 느낍니다"라고 비판했다.[33]
- 이케다 노부오는 오구마의 책이 장황하고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사회를 바꾸려면』은 대부분 전후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의 역사를 복습하고 원자력에 대한 감정론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평가했다.[42]
7. 비판 및 논란
오구마 에이지의 연구는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내셔널리즘과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정치 사상과 역사를 다루며, 사회학의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초기 저작인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과 『<일본인>의 경계』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후기 저작인 『<민주>와 <애국>』, 『1968』은 진보, 보수 양측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 긍정적 평가
- 가와무라 미나토는 오구마의 아버지 전기인 『살아 돌아온 남자』를 야나기타 민속학이 목표로 한 '상민=보통 사람'의 정신사라고 평가했다.[11]
- 혼마 다카시는 기행문 『인도 일기』에 대해, 흔한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 체험을 냉정하게 사고하며, 인도와 일본의 정체성 확립 문제를 비교하여 쉽게 썼다고 평가했다.[12]
- 이안 아시는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을 읽고 일본인이 외부인을 포용하는 민주적 사회를 구축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13]
- 고마쓰 가즈히코는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에 대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듯한 지적"이 있다고 평했다.[14]
- 무라카미 류는 『단일 민족 신화의 기원』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만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며 지인에게 권했다.[15]
- 노무라 스스무는 『<일본인>의 경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일본인'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가운데 소수자들이 차별받아왔음을 지적하며, 아시아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필독서라고 평했다.[16]
- 이케자와 나쓰키는 『<일본인>의 경계』를 "앞으로 이것을 무시하고 근대 일본사를 생각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17]
- 다케다 데쓰는 『<일본인>의 경계』에 대해 미군 점령기 오키나와의 복잡한 상황을 정성껏 풀어썼다고 평가했다.[18]
- 이노우에 히사시는 『<민주>와 <애국>』에 대해 "전후"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대작이라며, 전후 사상을 이끈 인물들의 전기가 흥미롭다고 평했다.[19]
- 유이 다이 사부로는 오구마를 "혁신적인 입장"이라 칭하며, 『<민주>와 <애국>』에서 '전후 민주주의'의 '애국'적 측면을 지적하고, '전후 좌파'의 인식을 냉정하게 분석했다고 평가했다.[20]
- 잡지 『다카포』 편집부는 『<민주>와 <애국>』을 "'민주'와 '애국'은 모순된다는 통념을 깨는 명저"라고 평가했다.[21]
- 전공투 참가자 하시즈메 다이스케는 『1968』에 대해 "기술은 대체로 공정하고 정확하다"며 필독의 역사 자료라고 평가했다.[22]
- 사토 마사루는 『1968』을 "성실한 분석"이라 인정했다.[23]
- 오구마는 1968년 운동의 "불합리성"과 "유치한 폭력"을 지적하며 "냉정한 '역사화'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24]
; 부정적 평가
- 니시오 간지는 『<민주>와 <애국>』이 좌파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어 "전후 진보주의 혹은 전후 좌익주의"에 대한 힐링이라며, 전후 사상사의 전체 모습이 아니라고 비판했다.[25]
- 이가라시 히토시는 『<민주>와 <애국>』의 언급 기준이 불분명하며, 시바 료타로에 대한 검토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26]
- 다나카 히데미치는 『<치유>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오구마의 좌익적 당파성을 비판하며, "좌익으로부터의 내셔널리즘은 긍정, 보수파로부터의 그것은 비난"이라는 이중 기준을 적용한다고 비판했다.[27]
- 타케이 아키오,[29] 시타 쇼미[30] 등 신좌익 계열 언론인들은 오구마가 베헤이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KGB 지원 사실을 검증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31]
- 히라사와 고우는 『1968』이 "수정주의적 의도"로 쓰였다고 비판하며, 단일 관점을 거부하는 68년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33]
- 2010년 4월 21일 『주니치 신문』 칼럼은 『1968』의 사실 오류와 68년 세대에 대한 공감 부족을 지적하며, 오카 쇼헤이의 『레이테 전우기』와 비교하며 당사자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 이치다 요시히코는 『1968』이 당사자 취재 없이 회상기를 인용한 점, 운동의 미숙함을 지적한 점을 문제 삼았다.[34][35]
- 카사이 키요시는 『1968』이 대학 분쟁의 보편성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36]
- 타나카 미츠는 『1968』 하권 17장의 내용이 오독・오용・날조로 가득 차 있다며, "오독과 날조에 의한 처참한 노작"이라고 비판했다.[37] 우에노 지즈코는 오구마에게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은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38]
- 토미타 타케시는 『1968』이 이론 경시와 사실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39]
- 토모나가 츠토무는 『1968』에 새로운 발견이 없고, 문자자료 중심의 서술로 인해 당사자 청취가 부족하며, 사실 오류와 독단이 있다고 비판했다.[40]
- 시카타 이누히코는 오구마가 1968년을 문화적으로 파악하지 않았고, 무명인의 체험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문헌 자료를 자의적으로 몽타주하여 허위의 책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41][33]
- 이케다 노부오는 오구마의 책이 장황하고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사회를 바꾸려면』은 원자력에 대한 감정론과 구체성 없는 내용만 있다고 비판했다.[42]
7. 1. 전후 좌파 편향성 비판
7. 2. 1968년 학생 운동 관련 논란
7. 3. 기타 비판
참조
[1]
웹사이트
Documentary captures anti-nuclear protest movement's evolution
http://www.japantime[...]
2016-09-09
[2]
웹사이트
WorldCat Identities
http://www.oclc.org/[...]
[3]
서적
『〈民主〉と〈愛国〉』「あとがき」
[4]
웹사이트
小熊英二さんに聞く(上)戦後日本のナショナリズムと公共性 『七人の侍』をみて、「これが戦後思想だな」と思った
https://web.archive.[...]
[5]
뉴스
刺青ストリッパー、「ベ平連」礼賛学者、パンクロッカー…「反原発デモ」野田官邸にのり込んだ活動家11人の正体
週刊文春
2012-09-06
[6]
서적
『私たちはどこへ行こうとしているのか』298ページ
[7]
뉴스
朝日新聞2014年8月5日、「済州島で連行」証言 裏付け得られず虚偽と判断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14-08-05
[8]
뉴스
朝日新聞2014年8月6日、ガラパゴス的議論から脱却を 小熊英二さん(慶応大教授)
https://web.archive.[...]
朝日新聞
2014-08-06
[9]
웹사이트
■■弦と蛇腹の夜 Quikion
http://homepage2.nif[...]
2016-08-31
[10]
웹사이트
■■弦と蛇腹の夜 Quikion prof
http://homepage2.nif[...]
2016-08-31
[11]
뉴스
平凡な父の一生 聞き書き
東京新聞
2015-08-30
[12]
서적
『リテレール別冊 ことし読む本いちおしガイド2001』「冷静に思考した新しい旅行記」
[13]
뉴스
日本人の自画像覆す痛快さ
産経新聞
1997-02-03
[14]
뉴스
日本民族『神話』描き出す小熊著
朝日新聞
1995-08-20
[15]
뉴스
ジャパン・メール・メディア
1999-06-07
[16]
뉴스
揺れ動いた定義 綿密に検証
読売新聞
1998-09-08
[17]
뉴스
私の読書日記
週刊文春
1998-10-01
[18]
간행물
本の時間
プレジデント
2000-08-14
[19]
뉴스
不毛な言葉争いに終止符
読売新聞
2002-11-24
[20]
서적
未完の占領改革
東京大学出版会
2016
[21]
간행물
ダカーポ「ブック・オブ・ザ・イヤー2002~03」
[22]
뉴스
膨大な資料基に若者の思考を探る
日本経済新聞
2009-09-06
[23]
간행물
AERA
2009-11-09
[24]
간행물
歴史化される六八年
新潮
2009-12
[25]
간행물
憐れな、余りにも憐れな懐かしのメロディー
諸君!
2003-09
[26]
간행물
大原社会問題研究所雑誌 544号 2004年3月号
https://oisr-org.ws.[...]
大原社会問題研究所
2004-03
[27]
간행물
日本の若い知識人の退廃--小熊英二『〈癒し〉のナショナリズム』の党派性
正論 (雑誌)
2003-10
[28]
웹사이트
小熊英二さんに聞く(下)戦後日本のナショナリズムと公共性 思想も運動も度量の広さが大切 戦後史を振り返って思う
https://web.archive.[...]
[29]
웹사이트
武井昭夫による鶴見俊輔批判 あるいは片付かない「転向」
http://www.dknprojec[...]
[30]
간행물
「リベラル・デモクラシーの共犯-鶴見俊輔の場合」
http://www.linelabo.[...]
en-taxi
2004-06
[31]
서적
Revelations from the Russian archives : Documents in English Translation
Library of Congress
1997
[32]
웹사이트
https://web.archive.[...]
[33]
뉴스
図書新聞
2010-11-27
[34]
뉴스
望遠・広角
毎日新聞
2010-02-02
[35]
간행물
情況
2009-12
[36]
간행물
小説トリッパー
2009
[37]
뉴스
週刊金曜日
https://www.kinyobi.[...]
2009-12-25
[38]
간행물
現代思想
2011-12
[39]
간행물
あれは自分探しだったのか、異議あり
2009
[40]
뉴스
図書新聞
2009-09-05
[41]
문서
1968年文化論
[42]
서적
戦後リベラルの終焉 なぜ左翼は社会を変えられなかったのか
PHP研究所
2015-04-15
[43]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s://web.archive.[...]
2016-06-11
[44]
Youtube
https://www.youtub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