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 요시히코
1. 개요
노다 요시히코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2011년 9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1957년 지바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수학했다. 1987년 지바현 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1993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여러 차례 당선되었으며, 민주당 내에서 재무대신, 간사장 대리 등을 역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에는 동일본 대지진 복구, 소비세 인상 등을 추진했으나, 2012년 총선 패배로 사임했다. 이후에도 중의원 의원직을 유지하며, 2024년 입헌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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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노다 요시히코 |
|---|---|
| 로마자 표기 | Noda Yoshihiko |
| 출생일 | 1957년 5월 20일 |
| 출생지 | 후나바시시, 지바현, 일본 |
| 배우자 | 노다 히토미(1992년 결혼) |
| 자녀 | 2명 |
| 학력 | 와세다 대학 (문학 학사) |
| 웹사이트 | 정부 웹사이트 |
| 직책 | 일본의 총리 |
|---|---|
| 재임 기간 | 2011년 9월 2일 – 2012년 12월 26일 |
| 국왕 | 아키히토 |
| 부총리 | 오카다 가쓰야(2012년) |
| 이전 총리 | 간 나오토 |
| 다음 총리 | 아베 신조 |
| 직책 1 | 입헌민주당 대표 |
| 부대표 1 | 나가쓰마 아키라 쓰지모토 기요미 오구시 히로시 |
| 임기 시작 1 | 2024년 9월 23일 |
| 직책 2 | 민주당 사무총장 |
| 대표 2 | 렌호 |
| 임기 시작 2 | 2016년 9월 |
| 임기 종료 2 | 2017년 9월 |
| 이전 사무총장 2 | 에다노 유키오 |
| 다음 사무총장 2 | 오시마 아쓰시 |
| 직책 3 | 민주당 대표 |
| 임기 시작 3 | 2011년 8월 29일 |
| 임기 종료 3 | 2012년 12월 25일 |
| 이전 대표 3 | 간 나오토 |
| 다음 대표 3 | 가이에다 반리 |
| 직책 4 | 일본의 재무대신 |
| 총리 4 | 간 나오토 |
| 임기 시작 4 | 2010년 6월 8일 |
| 임기 종료 4 | 2011년 9월 2일 |
| 이전 재무대신 4 | 간 나오토 |
| 다음 재무대신 4 | 아즈미 준 |
| 직책 5 | 일본의 재무부 부대신 |
| 장관 5 | 후지이 히로히사 간 나오토 |
| 임기 시작 5 | 2009년 9월 16일 |
| 임기 종료 5 | 2010년 6월 8일 |
| 겸임 5 | 미네자키 나오키 |
| 이전 부대신 5 | 다케시타 와타루 이시다 마사토시 |
| 다음 부대신 5 | 이케다 모토히사 미네자키 나오키 |
| 직책 6 | 일본의 중의원 의원 |
| 임기 시작 6 | 2000년 6월 26일 |
| 선거구 6 | 지바현 제4구(2000–2024) 지바현 제14구(2024–현재) |
| 임기 시작 7 | 1993년 7월 19일 |
| 임기 종료 7 | 1996년 9월 27일 |
| 이전 선거구 7 | '다선거구' |
| 다음 선거구 7 | '선거구 폐지' |
| 선거구 7 | 지바현 제1구 (1947-1993) |
| 직책 8 | 지바현 의회 의원 |
| 임기 시작 8 | 1987년 4월 23일 |
| 임기 종료 8 | 1993년 7월 5일 |
| 선거구 8 | 후나바시시 |
| 정당 | 입헌민주당(2020년 이후) |
|---|---|
| 기타 정당 | 일본신당(1992–1994) 신진당(1994–1997) 민주당(1998–2016) 민진당(2016–2018) 무소속(2018–2020) 무소속 그룹(2018–2019) 사회보장(2019) |
| 전직 | 가정교사 도시가스 점검원 |
|---|---|
| 형제자매 | 남동생 - 노다 다케히코 (지바현 의회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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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 | 노다 내각 노다 제1차 개조 내각 노다 제2차 개조 내각 노다 제3차 개조 내각 |
|---|---|
| 임기 시작 | 2011년 9월 2일 |
| 임기 종료 | 2012년 12월 26일 |
| 국왕 | 상황 (아키히토) |
| 내각 | 간 나오토 내각 간 나오토 제1차 개조 내각 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 |
|---|---|
| 임기 시작 | 2010년 6월 8일 |
| 임기 종료 | 2011년 9월 2일 |
| 선거구 | (구 지바 1구 →) (지바 4구 →) 지바 14구 |
|---|---|
| 당선 횟수 | 10회 |
| 임기 시작 | 1993년 7월 18일 - 1996년 9월 27일, 2000년 6월 25일 |
| 임기 종료 | 현재 |
| 선거구 | 후나바시시 선거구 |
|---|---|
| 당선 횟수 | 2회 |
| 임기 시작 | 1987년 4월 23일 |
| 임기 종료 | 1993년 7월 5일 |
| 직책 1 | |
|---|---|
| 직책 1 설명 | '노다 요시히코 "다음 내각"' |
| 임기 시작 1 | 2024년 9월 30일 |
| 임기 종료 1 | 현재 |
| 직책 2 | |
| 임기 시작 2 | 2024년 9월 23일 |
| 임기 종료 2 | 현재 |
| 직책 3 | |
| 임기 시작 3 | 2011년 8월 29일 |
| 임기 종료 3 | 2012년 12월 25일 |
| 직책 4 | |
| 직책 4 설명 | ' (대표: 렌호) ' |
| 임기 시작 4 | 2016년 9월 |
| 임기 종료 4 | 2017년 9월 |
| 직책 5 | |
| 직책 5 설명 | ' (대표: 간 나오토, 마에하라 세이지)' |
| 임기 시작 5 | 2002년 12월 - 2004년 5월, 2005년 9월 |
| 임기 종료 5 | 2006년 2월 |
| 직책 6 | |
| 직책 6 설명 | '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 |
| 임기 시작 6 | 2009년 5월 |
| 임기 종료 6 | 2009년 9월 |
| 직책 7 | |
| 직책 7 설명 | ' 오카다 가쓰야 "다음 내각", 제2차 오카다 가쓰야 "다음 내각"' |
| 임기 시작 7 | 2004년 5월 20일 |
| 임기 종료 7 | 2005년 9월 15일 |
| 직책 8 | |
| 직책 8 설명 | '제3차 하토야마 유키오 "넥스트 캐비넷"' |
| 임기 시작 8 | 2001년 9월 8일 |
| 임기 종료 8 | 2002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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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요시히코 -
노다 내각
노다 내각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제95대 내각으로 출범하여 피해 복구, 경제 재건, 소비세 인상, 미일 동맹 강화 등을 추진했으나, 정치적 쟁점과 국민적 불신으로 2012년 총선에서 패배하며 짧게 집권했다. -
노다 요시히코 -
조만간 해산
조만간 해산은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조만간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는 발언 이후 100일 만에 단행된 2012년 일본 중의원 해산으로, 소비세 증세 관련 법안 통과 과정의 여야 갈등 속에 결정되어 언론에서 "조만간 해산"으로 불렸으며, 이후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자유민주당이 압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
후나바시시 출신 -
타카나시 린
타카나시 린은 하라주쿠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하여 아이돌 그룹 활동 후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는 일본 배우로, 《사무라이전대 신켄저》와 《라이크 썸원 인 러브》가 대표작이며 다카사키 영화제 최우수 신인 여우상을 수상했고, 모델로도 활동한다. -
후나바시시 출신 -
야마시타 토모히사
야마시타 토모히사는 1996년 쟈니스 사무소에 입소하여 쟈니스 주니어, NEWS 멤버,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배우로서 드라마, 영화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2020년 쟈니스 사무소를 퇴소한 후에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일본의 자유주의 -
하토야마 유키오
하토야마 유키오는 일본의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도쿄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제93대 일본 총리를 지냈으며, 재임 중 복지 정책 추진과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정치자금 비리 의혹 등으로 사임 후 정계 은퇴, 사회 활동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일본의 자유주의 -
마루야마 마사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도쿄 대학 법학부 교수 출신의 일본 정치학자이자 사상가로, 전후 일본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일본 정치 사상사 연구』,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등의 저서를 통해 '초국가주의' 비판과 '세' 개념 발견 등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노다 요시히코는 1957년 후나바시시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마쓰시타 정경숙 1기생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7년 지바현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1993년 신일본당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이후 신진당, 민주당, 민진당을 거쳐 현재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서 재무부대신, 간 나오토 내각에서 재무대신을 역임했으며, 2011년 8월 간 나오토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표 및 제9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되었다. 총리 재임 중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복구와 소비세 인상 문제 등을 다루었으나, 2012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총리 퇴임 후에도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야당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졌고, 2024년 9월 입헌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어 현재 당을 이끌고 있다.
2.1. 초기 생애 (1957년 ~ 1987년)
노다는 1957년 5월 20일 후나바시시에서 일본 자위대 낙하산 부대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른 유명 정치인들과 달리 나가타초의 정계와 가족적인 연고는 없었으며, 그의 부모는 결혼식 피로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도야마현의 농가에서 태어나 육상자위대에서 근무한 자위관이었고, 어머니는 지바현 농가 출신이었다. 노다는 스스로 "농가의 막내끼리 낳은 아이가 바로 저입니다. 선거구가 도시 지역인데 시티보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 살 반 무렵, 당시 일본사회당 위원장이었던 아스누마 이네지로가 사망한 아스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을 접하고 처음으로 정치를 의식했다고 한다. 보육원에 다닐 때는 존 F. 케네디 암살 소식을 듣고, 어린 마음에 정치가는 목숨을 거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바현립 후나바시 고등학교를 1976년에 졸업하고 (고교 시절 유도부 소속), 같은 해 와세다 대학교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저널리스트 타치바나 다카시를 동경해 기자를 지망하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신자유 클럽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1977년 참의원 선거에서 전단 배포 활동을 했으며, TBS의 퀴즈 프로그램 '퀴즈 세계를 당신에게'에 출연해 우승하여 미국 여행권을 얻기도 했다. 1980년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NHK와 요미우리 신문에 합격했지만 입사하지 않고,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의 미래 지도자 육성을 위해 설립한 마쓰시타 정경숙에 1기생으로 들어갔다. 노다는 당시 마쓰시타 고노스케와의 최종 면접에서 정치인 친척이나 부유한 집안 배경이 없는 점이 오히려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정경숙 재학 중에는 학동보육 연구 등을 했으며, 훗날 선거 출마를 준비하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향 지바현에서 가스 계량기 검침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1985년 마쓰시타 정경숙을 졸업했다.
1987년, 29세의 나이로 지바현 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2. 정치 입문 (1987년 ~ 1993년)
가정교사와 도시가스 검침원 등 여러 직업을 경험한 후, 1987년(쇼와 62년) 지바현 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시 지바현 내 최대 격전지로 꼽히던 후나바시시 선거구에서 모금으로 마련한 5과 20대 자원봉사자 약 50명의 도움으로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금권 치바의 정치 풍토를 바꾸자", "골목길 정치"와 같은 구호를 내걸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역 앞에서 유세를 펼쳤고, 예상을 깨고 당선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헤이세 3년)에는 같은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하여 지바현 의원으로 총 2기(임기)를 역임했다.
이후 1993년(헤이세 5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신일본당 공천을 받아 구 지바 1구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국회에 처음 진출했다. 같은 해 중의원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3. 국회의원 활동 (1993년 ~ 2011년)
1992년(헤이세이 4년), 마쓰시타 정경숙 동문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구마모토현 지사가 주도한 신일본당 창당에 고이케 유리코, 마에하라 세이지 등과 함께 참여했다. 이듬해인 1993년(헤이세이 5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구 지바 제1구에 신일본당 후보로 출마하여 최다 득표로 당선되어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 입성했다. 이 선거에서 신일본당 등의 약진으로 자유민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호소카와 내각, 하타 내각 등 비자민 연립 정권이 잠시 수립되었으나 단명으로 끝났다. 이후 야권 재편 과정에서 1994년 12월 신진당 결성에 참여했다.
1996년(헤이세이 8년) 소선거구제 도입 후 처음 실시된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바현 제4구에서 신진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자민당의 타나카 쇼이치에게 불과 105표 차이로 아쉽게 낙선했다. 낙선 후 신진당을 탈당하고, 1998년(헤이세이 10년) 결성된 민주당에 합류했다.
2000년(헤이세이 12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지바현 제4구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 국정에 복귀했다. 같은 해 민주당 총무국장에 임명되었고, 2001년(헤이세이 13년)에는 민주당 "다음 내각"에서 행정개혁 및 규제개혁 담당 대신을 맡았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9월 민주당 대표 선거에 마에하라 세이지 등 중진·소장파 의원들의 추대를 받아 출마했으나, 하토야마 유키오에게 패배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이 선거를 통해 당내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같은 해 12월,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어 2003년(헤이세이 15년) 11월까지 활동했다. 2003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2004년(헤이세이 16년)에는 민주당 "다음 내각"의 재무대신을 맡아 당의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
2005년(헤이세이 17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바현 제4구에서 자민당 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았으나 944표 차로 신승하며 4선 고지에 올랐다. 당시 지바현 내 소선거구에서 당선된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었다. 같은 해 10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A급 전범을 "전범"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지지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총선 패배 후 새로 출범한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 체제 하에서 다시 국회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2006년(헤이세이 18년) 2월, 나가타 히사야스 의원이 제기한 호리에 이메일 문제와 관련하여 초기 대응 미숙으로 비판을 받았다. 노다는 해당 이메일의 신빙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에서 이를 공개하고 나가타 의원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고, 결국 이 문제의 책임을 지고 국회대책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당내 과학기술정책 워킹팀 위원장 등을 맡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2007년(헤이세이 19년)에는 민주당 홍보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08년(헤이세이 20년) 민주당 대표 선거 출마를 모색했으나, 당내 기반 부족과 호리에 이메일 문제 책임론 등으로 인해 추천인(20명) 확보에 실패하며 결국 출마를 단념했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5월 오자와 이치로 대표 사임 후 치러진 후임 대표 선거에서는 오카다 가쓰야를 지지했다. 오카다는 하토야마 유키오에게 패했지만, 하토야마 대표 체제에서 오카다가 간사장에 임명되자 노다는 간사장 대리로 발탁되어 당 집행부에 합류했다. 같은 해 8월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며 정권 교체를 이루었고, 노다 역시 5선에 성공했다. 9월 출범한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서 재무부대신으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정부 각료 경험을 쌓았다.
2010년(헤이세이 22년) 6월, 간 나오토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노다는 재무대신으로 승격되어 정식으로 입각했다. 그는 당내에서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를 비판하는 그룹을 이끌었으며, 재무대신 취임 후에는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일본의 막대한 재정 적자 감축과 국채 발행 억제 의지를 밝혔다. 2011년(헤이세이 23년) 1월에는 급격한 엔화 가치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6년 만에 외환 시장에 개입하여 2.13 규모의 달러 매입을 단행하기도 했다.
2.4. 내각총리대신 재임 (2011년 ~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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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간 나오토 총리가 사임하자 노다 요시히코는 후임자를 결정하는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결선 투표에서 가이에다 반리를 누르고 승리하여 제95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총리로서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복구 계획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민주당 대표 선거 당시 당 의원 간담회에서 노다는 15분간의 연설을 통해 자신을 진흙탕 속 도조 잉어( ドジョウ일본어 )에 비유하며 소신을 밝혔다. 그는 시인 아이다 미쓰오의 시구를 인용하며 "화려한 금붕어는 되지 않겠지만, 진흙 속 도조 잉어처럼 국민을 위해 땀 흘려 일하며 정치를 전진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도조 잉어 연설'은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그의 임기 초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 노다는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했으며, 2011년 8월 연설에서 미일 안보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항복 기념일인 2011년 8월 15일, 그는 연합국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일본의 A급 전범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법적으로 전범이 아니라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다만, 일본 총리로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이전 정권들이 설정한 기준을 따를 것이며, 중국 및 한국과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2년, 노다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했으나, 민주당은 참패했다. 이에 따라 2012년 12월 26일, 노다 내각은 총사직했으며,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482일이었다.
2.5. 총리 퇴임 이후 (2012년 ~ 현재)
2012년 12월 16일 2012년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은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에게 참패하여 의석의 약 4분의 3을 잃었다. 노다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민주당 대표직 사퇴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12월 26일 내각 총사직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총리 퇴임 후에도 중의원 의원직을 유지하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2012년),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2014년)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연이어 당선되었다.
2016년 3월, 민주당(DPJ)과 일본혁신당이 합당하여 민진당을 결성했다. 같은 해 9월, 렌호가 당 대표로 선출되자 노다는 당 간사장에 임명되었으나, 2012년 총선 패배 책임론으로 당내 논란이 있었다. 2017년 7월 2017년 도쿄도의회 선거 부진의 책임을 지고 렌호 대표와 함께 간사장직에서 사임했다.
2017년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진당 분열 과정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8선)되었고, 2019년에는 원내 교섭단체 '사회보장을 바로 세우는 국민회의' 대표를 맡았다. 이후 입헌민주당에 합류하여 2021년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9선)되었다.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살 사건 이후, 노다는 전직 총리 자격으로 9월 27일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아베 신조의 국장에 참석했다. 이는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등 다른 민주당계 전직 총리들과 입헌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불참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였다. 노다는 같은 해 10월 25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아베 신조에 대한 추도 연설을 했다.
2024년 8월 말, 노다는 2024년 입헌민주당 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9월 23일 치러진 선거에서 1차 투표 1위를 했으나 과반에 미달했고, 결선 투표에서 에다노 유키오를 누르고 제3대 입헌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대표 취임 직후인 2024년 10월 27일 실시된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노다는 지바현 제14구에서 당선되어 10선 고지에 올랐다. 노다가 이끈 입헌민주당은 이 선거에서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의석을 크게 늘리며 약진했고,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 여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3. 정책 및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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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요시히코의 기본적인 정치적 입장은 언론 등에서 중도 또는 보수로 평가받으며, 노다 자신도 "중도에서 온건한 보수"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시기에 따라 다소 입장의 변화를 보였으나 대체로 긍정적인 경향을 나타냈다. 2017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조사에서는 "어느 정도 찬성",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조사에서는 "찬성"이라고 답변했으나, 같은 해 NHK 설문조사에서는 "잘 모르겠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헌법을 개정하여 긴급사태 조항을 신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조사에서 "반대"라고 답변했다.
3.1. 외교 및 안보
노다 요시히코는 외교 정책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하며, 2011년 8월 연설에서 미일 안보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2012년 10월 14일 해상자위대 관함식 훈시에서는 "안보환경이 이전과 달리 점차 악화됐고 영토와 주권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자위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러일 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사용된 '용전 분투'(一層奮励努力)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는 2021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조사에서 "개정하여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적기지공격능력 보유에 대해서는 같은 설문조사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으며, 아베 신조 정권 하에서 제정된 안전보장관련법에 대해서도 2017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조사에서 "별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푸텐마 기지의 헨노코 이전에 대해서는 2021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조사에서 정부가 매립을 중단하고 오키나와현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핵 삼원칙 고수에 대해서는 2017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조사에서 "다소 찬성한다"고 답했다.
주변국과의 관계
* 중국: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섬 매입을 추진하자, 노다 내각은 2012년 9월 11일, 2050에 섬 일부를 매입하여 국유화했다. 이는 중국 외교부의 강한 반발을 샀으며, 노다 총리는 국제 사회에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오키노토리시마를 암초라고 주장한 중국 측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역사 현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2011년 이명박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독도 및 위안부 문제로 의견 대립을 겪었다. 총리 재임 중이던 2012년에는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단독 제소를 11월 이후로 미루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징용공 소송 등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해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조사에서 "더 강경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 북한: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2017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조사에서는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역사 인식
2011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항복 기념일에 연합국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일본의 A급 전범들이 자신의 견해로는 법적으로 전범이 아니라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다만 총리로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은 이전 정권들의 기준을 따를 것이며, 중국 및 한국과의 관계를 바꾸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논란이던 2005년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는 이유로 총리 참배에 반대하는 논리는 파탄"이며, 이는 A급 전범들에 대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질문 주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총리 취임 후에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했으며, 각료들에게도 자제를 요구했다.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의 재검토 논의에 대해서는 2014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조사에서 답변하지 않았다.
3.2. 경제 및 재정
노다 요시히코 총리 시절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는 2011년 11월 11일에 발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 추진이었다. 이는 일본 사회 내에서 상당한 논란과 광범위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노다 총리의 또 다른 핵심 과제는 일본의 소비세를 기존 5%에서 10%로 인상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법안 통과에 자신의 "정치적 인생을 걸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해당 법안은 2012년 6월 26일 중의원을 통과했으며, 같은 해 8월 10일 참의원에서도 가결되었다. 소비세 인상안을 제안한 후인 2012년 8월 10일, 노다 총리는 불신임 투표를 넘기기도 했다. 세금 인상 협상 과정에서 그는 조만간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후 소비세 인상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비세 인상을 관철시킨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2009년 총선에서 자민당을 누르고 승리할 당시의 공약을 지키기보다는 오히려 경쟁 상대인 자민당의 정책에 가까워졌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한 논평가는 그를 "자민당이 가졌던 최고의 총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노다는 재정정책에서 재정 재건과 증세를 중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동일본대지진 직후에는 부흥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임시 증세를 실시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채 발행에 대해서는 재정 적자가 심각한 수준이므로 발행을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재원 확보 방안으로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유력하게 검토했으며, 스즈키 슌이치 재무대신에게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금융소득 과세 문제를 다룰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세금 낭비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2009년 7월 중의원 본회의에서는 2만 5천 명의 국가공무원 출신들이 4500개의 법인에 낙하산 인사를 했고, 이 법인들에 12.1의 세금이 흘러 들어간다고 지적하며, 이를 "세금에 기생하는 흰개미"에 비유하고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세금 낭비를 철저히 없애는 것이 소비세 인상 논의의 전제 조건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3.3. 사회 및 젠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2017년 아사히 신문 설문조사에서는 "어느 정도 찬성"이라고 답했으며, 2021년 NHK 설문조사에서는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한다. 2017년 아사히 신문 설문조사에서 "어느 정도 찬성", 2021년 NHK 설문조사에서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참여 확대를 위한 쿼터제 도입에 대해서도 2021년 NHK 설문조사에서 "어느 정도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편,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선거권 부여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외국인이 귀화하기 쉽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4. 논란
2012년 1월 13일, 내각 개조를 단행하여 노다 제1차 개조내각을 발족시켰다. 같은 해 3월 30일, 정부는 현행 5%인 소비세를 1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포함한 사회보장·세제 일체개혁 관련 법안을 각의 결정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노다는 국회 답변에서 증세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 소비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그 의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 시절에는 이와 반대로 증세로 인해 "일본 경제가 폐렴에 걸린다"라고 발언했던 사실이 보도되면서, 과거 발언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4.1. 발언 논란
2012년 10월 14일, 해상자위대 관함식 훈시에서 노다 총리는 악화되는 안보 환경과 영토/주권 문제를 언급하며 자위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위대 여러분들이 가일층 용전 분투하길 간절히 바란다."(諸君が一層奮励努力することを切に望む일본어)고 말했는데, 이 '용전 분투'(一層奮励努力일본어)라는 표현은 러일 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사용된 'Z(줄루) 깃발' 문구와 같아 논란이 되었다. 또한, 훈시에서 구 일본해군학교에서 사용하던 '오성(五省)'을 낭독한 점도 과거 군국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6년 6월 22일, 제24회 참의원 선거 지원 연설에서는 아베 정권의 정치 수법을 스모 선수 하쿠호의 플레이 스타일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그는 "하쿠호는 힘이 약해진 만큼, 붙는 자세가 더럽다. 왼손을 상대의 얼굴에 내밀고, 주춤하는 순간 오른쪽 팔꿈치로 엘보를 날린다. [...] 아베 정권도 마찬가지다. 왼손으로 아베노믹스를 말하고, 오른손으로 헌법 개정. 안면 골절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하쿠호 후원회가 항의했고, 결국 7월 5일 민진당 소속 다른 의원 2명이 노다의 자필 사과문을 들고 대신 사과했다. 그러나 노다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여전히 해당 비유를 사용하여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글이 남아있다.
4.2. 역사 인식 논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논란이 되었던 2005년 10월 17일, 노다 요시히코는 A급 전범으로 불린 사람들은 전쟁 범죄자가 아니며, 이들이 합사되었다는 이유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내용의 질문 주의서를 제출했다. 그는 참배의 옳고 그름은 국제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며, 잘못된 A급 전범 이해에 기반한 논의는 오히려 A급 전범으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이자 국가 명예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 정부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 재판) 결과를 수용하는 것은 난징 대학살이나 일본의 소련 침략 같은 허구를 포함하여, 일본이 만주 사변 이후 일관되게 침략 전쟁을 해왔다는 오해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1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항복 기념일에 그는 연합국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일본의 A급 전범들이 자신의 견해로는 법적으로 전범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발언했다. 다만 총리로 취임한 이후에는 이 문제에 대해 이전 정권들의 기준을 따를 것이며, 중국 및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했다. 또한, 2012년 8월 15일 참배 의향을 밝혔던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대신과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에게도 참배 자제를 요구했다.
5. 역대 선거 결과
| 실시일 | 선거명 | 연령 | 직책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정수 | 순위 | 후보자수 | 당락 |
|---|---|---|---|---|---|---|---|---|---|---|---|
| 1987년 4월 12일 | 지바현 의회의원 선거 | 29 | 현의회 의원 | 후나바시시 선거구 | 무소속 | 18,707표 | 10.12% | 7 | 4위 | 14 | 당선 |
| 1991년 4월 7일 | 지바현 의회의원 선거 | 33 | 현의회 의원 | 후나바시시 선거구 | 무소속 | 20,405표 | 12.52% | 7 | 3위 | 10 | 당선 |
| 1993년 7월 18일 |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36 | 중의원 의원 | 구 지바 1구 | 일본신당 | 175,671표 | 20.54% | 5 | 1위 | 9 | 당선 |
| 1996년 10월 20일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39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신진당 | 73,687표 | 31.94% | 1 | 2위 | 4 | 낙선 |
| 2000년 6월 25일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43 | 중의원 의원 | 지바 4구 | 민주당 | 116,156표 | 47.27% | 1 | 1위 | 4 | 당선 |
| 2003년 11월 9일 |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46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민주당 | 135,522표 | 55.77% | 1 | 1위 | 3 | 당선 |
| 2005년 9월 11일 |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48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민주당 | 129,834표 | 44.90% | 1 | 1위 | 4 | 당선 |
| 2009년 8월 30일 |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2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민주당 | 162,153표 | 53.64% | 1 | 1위 | 5 | 당선 |
| 2012년 12월 16일 |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5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민주당 | 163,334표 | 57.28% | 1 | 1위 | 4 | 당선 |
| 2014년 12월 14일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7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민주당 | 119,193표 | 51.69% | 1 | 1위 | 4 | 당선 |
| 2017년 10월 22일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60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무소속 | 131,024표 | 59.59% | 1 | 1위 | 4 | 당선 |
| 2021년 10월 31일 |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64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4구 | 입헌민주당 | 154,412표 | 64.55% | 1 | 1위 | 2 | 당선 |
| 2024년 10월 27일 |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67 | 중의원 의원 | 지바현 제14구 | 입헌민주당 | 145,821표 | 66.40% | 1 | 1위 | 4 |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