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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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04년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 창설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1930년대 "분데르테암"으로 불리며 유럽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1934년 FIFA 월드컵 4위, 1936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으나, 1938년 독일 병합으로 인해 한동안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재건된 대표팀은 1954년 FIFA 월드컵 3위를 기록하며 부활했고, 1978년과 1982년 월드컵에서 2회 연속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90년대 이후 침체기를 겪었으나, UEFA 유로 2008을 공동 개최하며 본선에 처음 진출했고, UEFA 유로 2016에서도 본선에 진출했다. 2020년에는 39년 만에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등 부활의 조짐을 보이며, 2024년 현재 랄프 랑닉 감독 체제 하에 UEFA 유로 2024 본선에 진출했다.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의 라이벌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토니 폴스터가 44골로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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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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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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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팀 (Das Team) 청년들 (Burschen) 우리 청년들 (Unsere Burschen) |
협회 | Österreichischer Fußball-Bund (ÖFB) |
연맹 | 유럽 축구 연맹 (Europe) |
웹사이트 | oefb.at |
FIFA 코드 | AUT |
FIFA 최고 랭킹 | 10위 |
FIFA 최고 랭킹 날짜 | 2016년 3월~6월 |
FIFA 최저 랭킹 | 105위 |
FIFA 최저 랭킹 날짜 | 2008년 7월 |
Elo 최고 랭킹 | 1위 |
Elo 최고 랭킹 날짜 | 1934년 5월 |
Elo 최저 랭킹 | 75위 |
Elo 최저 랭킹 날짜 | 2011년 9월 2일 |
코칭 스태프 | |
감독 | 랄프 랑니크 |
주장 | 다비드 알라바 |
경기장 | |
홈 경기장 | 다양한 경기장 |
주요 선수 | |
최다 출장 선수 |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 (121) |
최다 득점 선수 | 토니 폴스터 (44) |
유니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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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기 | |
첫 경기 | 5–0 (빈, 오스트리아; 1902년 10월 12일) |
최대 점수차 승리 | 9–0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1977년 4월 30일) |
최대 점수차 패배 | 1–11 (빈, 오스트리아; 1908년 6월 8일) |
월드컵 | |
월드컵 출전 횟수 | 7회 |
첫 월드컵 출전 | 1934년 |
월드컵 최고 성적 | 3위 (1954년) |
유럽 선수권 대회 (유로) | |
유로 출전 횟수 | 4회 |
첫 유로 출전 | 2008년 |
유로 최고 성적 | 16강 (2020년, 2024년) |
메달 기록 | |
1954 스위스 | 팀, 동메달 |
1936 베를린 | 팀, 은메달 |
2. 역사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904년 3월 18일에 창설되었다.[1][2][3]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에 전래된 축구는 1890년경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빈에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일하던 영국인 정원사들이 축구를 즐겼던 것이 빈 사람들에게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22] 1894년 오스트리아 최초의 축구 클럽으로 퍼스트 비엔나 FC 1894와 비엔나 크리켓 앤드 풋볼 클럽이 빈에 설립되었다.[22]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첫 경기는 1902년 10월 12일 헝가리와의 경기로, 5-0으로 승리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빈 대 부다페스트" 형태의 경기였으며, 이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라이벌 관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22][23] 1902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는 단일 협회나 국가대표팀이 없었고, 이 시점의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제국 내 오스트리아 지역을 대표했다.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오스트리아는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0-1로 패하고, 3·4위전에서 독일에게 2-3으로 패하며 4위를 차지했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유럽에서 막강한 팀으로, "분데르테암 (기적의 팀)"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마티아스 진델라가 팀의 스타였다.[36] 1931년 5월 16일, 오스트리아는 스코틀랜드를 꺾은 최초의 대륙 유럽 팀이 되었다.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 1-2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8강전에서 페루에 패했지만, 페루가 기권하면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페루의 기권은 아돌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효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6]
오스트리아는 193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같은 해 3월 12일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독일에 합병되었다. 3월 28일, FIFA는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가 해체되었고, 오스트리아는 월드컵에서 기권했다는 통보를 받았다.[4] 대신 독일 대표팀이 오스트리아의 옛 영토를 대표하게 되었다. 독일 감독 제프 헤르베르거는 매우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들을 통합할 시간과 경기가 부족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재건되었고, 1945년 8월 헝가리 대표팀과 두 차례 맞붙었다. 프라터슈타디온이 복구되자, 같은 해 12월 6일 8년 만에 홈 경기를 치렀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4-1로 승리하며, “'''신성팀'''” 시절을 연상케 하는 호조기에 다시 진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는 1938년 독일 병합에서 벗어나 다시 국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1950년 FIFA 월드컵에는 기권했지만,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미드필더 에른스트 오크비르크(Ernst Ocwirk)의 활약으로 20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준결승에서 우승팀 독일에 1-6으로 패했지만, 3·4위 결정전에서 우루과이를 3-1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 8강전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7-5 승리를 거둔 경기는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경기로 회자된다.
195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브라질, 소련에 패하고, 잉글랜드와 비기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62년 FIFA 월드컵에는 예산을 이유로 기권하였다. 1965년 10월 20일, 오스트리아는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3-2로 꺾으며 홈에서 잉글랜드를 이긴 세 번째 유럽 팀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토니 프리치(Toni Fritsch)는 "웸블리 토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헝가리와 동독에 밀려 탈락했다.
이후 16년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1978년 FIFA 월드컵과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2회 연속 8강에 진출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둔 후, 195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이후 16년 동안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5]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 한스 크랑클, 브루노 페체이 등이 활약한 오스트리아는 1978년 FIFA 월드컵과 1982년 FIFA 월드컵에 연속 진출하여 두 대회 모두 2라운드(당시에는 조별리그로 진행)에 진출했다.[5] 헬무트 세네코비치 감독이 이끈 이 시기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는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1차 리그에서 브라질, 스페인, 스웨덴과 같은 조에 속했지만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26] 8강에서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 패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26] 이후 서독과의 경기에서 한스 크랑클의 2골 활약과 베르티 포크츠의 자책골로 3-2 역전승을 거두었다.[26] 47년 만에 이웃 나라를 꺾은 이 경기는 오스트리아에서 코르도바의 기적이라 불린다.[26]
1982년 스페인 월드컵 1차 리그에서는 칠레와 알제리를 각각 1-0, 2-0으로 꺾고 2차 리그 진출을 거의 확정지었다.[27] 이후 서독과의 경기에서 서독이 전반에 선제골을 넣은 후, 양 팀은 소극적인 경기 운영으로 일관하여 결국 1-0으로 서독이 승리했다.[27] 이 경기는 히혼의 수치로 불리며, 경기 조작 의혹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27] 이 경기를 계기로 1984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와 1986년 FIFA 월드컵부터 국제 대회 조별 리그 최종전은 동시에 개최되기 시작했다.[27] 오스트리아는 2차 리그에서 프랑스에 패하며 탈락했다.[27]
1990년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 본선에 진출한 오스트리아는 미국을 2-1로 이겼지만, 이탈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에 각각 0-1로 패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28] 안톤 폴스터(Anton Polster)와 “알프스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가진 안드레아스 헤르초크(Andreas Herzog) 등 국제적인 수준의 젊은 선수들이 활약했다. 1992년 유럽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는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페로 제도에게 1-0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 팀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굴욕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페로 제도에는 잔디 경기장이 없었기 때문에 이 경기는 스웨덴 란스크루나에서 열렸다.
1998년 월드컵 프랑스 대회에서 오스트리아는 카메룬, 칠레와 각각 1-1로 비기고, 이탈리아에 1-2로 패하며 또다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28] 각 경기에서 추가 시간에만 득점하는 기록을 세웠다. 카메룬과의 경기에서는 피에르 은장카(Pierre Njanka)의 골이 토니 폴스터(Toni Polster)의 후반 추가시간 득점으로 상쇄되었고, 칠레와의 경기에서는 이비차 바슈티치(Ivica Vastić)가 마지막 순간 동점골을 터뜨리며 마르셀로 살라스(Marcelo Salas)의 선제골을 취소시켰다. 이탈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안디 헤르초크(Andi Herzog)가 추가시간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만회했지만, 이탈리아가 크리스티안 비에리(Christian Vieri)와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의 골로 앞서나가며 결국 조 3위로 탈락했다.
1998년 이후 오스트리아는 2002년 월드컵과 유로 2000 진출에 실패했고, 1999년 스페인에 9-0, 이스라엘에 5-0으로 패하는 등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2002년 월드컵 한일 대회 예선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터키에 패하며 출전권을 놓쳤다.[29]
2008년 대회를 스위스와 공동 개최하여 개최국 특권으로 EURO 본선에 처음 출전했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일부 서포터들이 대회 참가 포기를 요구하는 탄원서 서명 운동을 벌여 만 명이 넘는 서명이 모이기도 했다.[30] 결과적으로 폴란드와 비겼지만, 크로아티아와 독일에게 패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오스트리아는 UEFA 유로 2008을 스위스와 공동 개최하며 사상 처음으로 유로 대회 본선에 자동으로 진출했다.[31] 이후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 9승 1무의 뛰어난 성적으로 본선에 진출, 2015년 FIFA 랭킹 10위까지 올랐으나,[31] 본선에서는 1무 2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7][8][9]
2007 FIFA U-20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했던 제바스티안 프뢰들, 마르쿠스 슁너, 마르틴 하르니크 등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벨기에, 튀르키예, 독일과 경쟁했다. 2014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5승 2무 3패(승점 17점)로 3위를 기록,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일랜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하고 독일과 접전을 벌이는 등 선전했다.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는 스웨덴 원정 4-1 승리, 러시아 상대 홈/원정 1-0 승리 등 무패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UEFA 유로 2020에서는 북마케도니아를 3-1로 꺾고 대회 첫 승을 기록했고, 우크라이나를 1-0으로 꺾으며 조 2위로 사상 첫 16강에 진출했다.[32] 이는 1982년 FIFA 월드컵 이후 39년 만의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 진출이었다. 16강에서는 이탈리아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만나 연장전 끝에 1-2로 석패했지만, 사샤 칼라이지치가 득점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2018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D조 4위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022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조 4위에 그쳤으나, UEFA 네이션스리그 성적에 따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웨일스에 패하며 탈락했다.[33]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있다.
UEFA 유로 2024에서는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으나, 네덜란드를 3-2로 꺾는 등 2승 1패,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34] 하지만 16강에서 터키에 패하며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2. 1. 초기 역사 (1890년대 ~ 1930년대)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904년 3월 18일에 창설되었다.[1][2][3]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에 전래된 축구는 1890년경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빈에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일하던 영국인 정원사들이 축구를 즐겼던 것이 빈 사람들에게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22] 1894년 오스트리아 최초의 축구 클럽으로 퍼스트 비엔나 FC 1894와 비엔나 크리켓 앤드 풋볼 클럽이 빈에 설립되었다.[22]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첫 경기는 1902년 10월 12일 헝가리와의 경기로, 5-0으로 승리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빈 대 부다페스트" 형태의 경기였으며, 이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라이벌 관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22][23] 1902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는 단일 협회나 국가대표팀이 없었고, 이 시점의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제국 내 오스트리아 지역을 대표했다.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오스트리아는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0-1로 패하고, 3·4위전에서 독일에게 2-3으로 패하며 4위를 차지했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유럽에서 막강한 팀으로, "분데르테암 (기적의 팀)"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마티아스 진델라가 팀의 스타였다.[36] 1931년 5월 16일, 오스트리아는 스코틀랜드를 꺾은 최초의 대륙 유럽 팀이 되었다.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 1-2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8강전에서 페루에 패했지만, 페루가 기권하면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페루의 기권은 아돌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효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6]
오스트리아는 193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같은 해 3월 12일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독일에 합병되었다. 3월 28일, FIFA는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가 해체되었고, 오스트리아는 월드컵에서 기권했다는 통보를 받았다.[4] 대신 독일 대표팀이 오스트리아의 옛 영토를 대표하게 되었다. 독일 감독 제프 헤르베르거는 매우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들을 통합할 시간과 경기가 부족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재건되었고, 1945년 8월 헝가리 대표팀과 두 차례 맞붙었다. 프라터슈타디온이 복구되자, 같은 해 12월 6일 8년 만에 홈 경기를 치렀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4-1로 승리하며, “'''신성팀'''” 시절을 연상케 하는 호조기에 다시 진입했다.
2. 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0년대 ~ 196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는 1938년 독일 병합에서 벗어나 다시 국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1950년 FIFA 월드컵에는 기권했지만,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미드필더 에른스트 오크비르크(Ernst Ocwirk)의 활약으로 20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준결승에서 우승팀 독일에 1-6으로 패했지만, 3·4위 결정전에서 우루과이를 3-1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 8강전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7-5 승리를 거둔 경기는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경기로 회자된다.195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브라질, 소련에 패하고, 잉글랜드와 비기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62년 FIFA 월드컵에는 예산을 이유로 기권하였다. 1965년 10월 20일, 오스트리아는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3-2로 꺾으며 홈에서 잉글랜드를 이긴 세 번째 유럽 팀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토니 프리치(Toni Fritsch)는 "웸블리 토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헝가리와 동독에 밀려 탈락했다.
이후 16년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1978년 FIFA 월드컵과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2회 연속 8강에 진출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2. 3. 1970년대 ~ 1980년대: 코르도바의 기적과 히혼의 수치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둔 후, 195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이후 16년 동안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5]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 한스 크랑클, 브루노 페체이 등이 활약한 오스트리아는 1978년 FIFA 월드컵과 1982년 FIFA 월드컵에 연속 진출하여 두 대회 모두 2라운드(당시에는 조별리그로 진행)에 진출했다.[5] 헬무트 세네코비치 감독이 이끈 이 시기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는다.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1차 리그에서 브라질, 스페인, 스웨덴과 같은 조에 속했지만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26] 8강에서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 패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26] 이후 서독과의 경기에서 한스 크랑클의 2골 활약과 베르티 포크츠의 자책골로 3-2 역전승을 거두었다.[26] 47년 만에 이웃 나라를 꺾은 이 경기는 오스트리아에서 코르도바의 기적이라 불린다.[26]
1982년 스페인 월드컵 1차 리그에서는 칠레와 알제리를 각각 1-0, 2-0으로 꺾고 2차 리그 진출을 거의 확정지었다.[27] 이후 서독과의 경기에서 서독이 전반에 선제골을 넣은 후, 양 팀은 소극적인 경기 운영으로 일관하여 결국 1-0으로 서독이 승리했다.[27] 이 경기는 히혼의 수치로 불리며, 경기 조작 의혹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27] 이 경기를 계기로 1984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와 1986년 FIFA 월드컵부터 국제 대회 조별 리그 최종전은 동시에 개최되기 시작했다.[27] 오스트리아는 2차 리그에서 프랑스에 패하며 탈락했다.[27]
2. 4. 1990년대 ~ 2000년대: 침체기
1990년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 본선에 진출한 오스트리아는 미국을 2-1로 이겼지만, 이탈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에 각각 0-1로 패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28] 안톤 폴스터(Anton Polster)와 “알프스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가진 안드레아스 헤르초크(Andreas Herzog) 등 국제적인 수준의 젊은 선수들이 활약했다. 1992년 유럽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는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페로 제도에게 1-0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 팀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굴욕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페로 제도에는 잔디 경기장이 없었기 때문에 이 경기는 스웨덴 란스크루나에서 열렸다.1998년 월드컵 프랑스 대회에서 오스트리아는 카메룬, 칠레와 각각 1-1로 비기고, 이탈리아에 1-2로 패하며 또다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28] 각 경기에서 추가 시간에만 득점하는 기록을 세웠다. 카메룬과의 경기에서는 피에르 은장카(Pierre Njanka)의 골이 토니 폴스터(Toni Polster)의 후반 추가시간 득점으로 상쇄되었고, 칠레와의 경기에서는 이비차 바슈티치(Ivica Vastić)가 마지막 순간 동점골을 터뜨리며 마르셀로 살라스(Marcelo Salas)의 선제골을 취소시켰다. 이탈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안디 헤르초크(Andi Herzog)가 추가시간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만회했지만, 이탈리아가 크리스티안 비에리(Christian Vieri)와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의 골로 앞서나가며 결국 조 3위로 탈락했다.
1998년 이후 오스트리아는 2002년 월드컵과 유로 2000 진출에 실패했고, 1999년 스페인에 9-0, 이스라엘에 5-0으로 패하는 등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2002년 월드컵 한일 대회 예선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터키에 패하며 출전권을 놓쳤다.[29]
2008년 대회를 스위스와 공동 개최하여 개최국 특권으로 EURO 본선에 처음 출전했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일부 서포터들이 대회 참가 포기를 요구하는 탄원서 서명 운동을 벌여 만 명이 넘는 서명이 모이기도 했다.[30] 결과적으로 폴란드와 비겼지만, 크로아티아와 독일에게 패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2. 5. 2010년대 ~ 현재: 부활의 조짐과 유로 2020 16강 진출
오스트리아는 UEFA 유로 2008을 스위스와 공동 개최하며 사상 처음으로 유로 대회 본선에 자동으로 진출했다.[31] 이후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 9승 1무의 뛰어난 성적으로 본선에 진출, 2015년 FIFA 랭킹 10위까지 올랐으나,[31] 본선에서는 1무 2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7][8][9]2007 FIFA U-20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했던 제바스티안 프뢰들, 마르쿠스 슁너, 마르틴 하르니크 등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벨기에, 튀르키예, 독일과 경쟁했다. 2014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5승 2무 3패(승점 17점)로 3위를 기록,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일랜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하고 독일과 접전을 벌이는 등 선전했다.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는 스웨덴 원정 4-1 승리, 러시아 상대 홈/원정 1-0 승리 등 무패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UEFA 유로 2020에서는 북마케도니아를 3-1로 꺾고 대회 첫 승을 기록했고, 우크라이나를 1-0으로 꺾으며 조 2위로 사상 첫 16강에 진출했다.[32] 이는 1982년 FIFA 월드컵 이후 39년 만의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 진출이었다. 16강에서는 이탈리아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만나 연장전 끝에 1-2로 석패했지만, 사샤 칼라이지치가 득점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2018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D조 4위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022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조 4위에 그쳤으나, UEFA 네이션스리그 성적에 따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웨일스에 패하며 탈락했다.[33]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있다.
UEFA 유로 2024에서는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으나, 네덜란드를 3-2로 꺾는 등 2승 1패,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34] 하지만 16강에서 터키에 패하며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3. 주요 성적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본선에 7번 진출하여 1954년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는 4번 진출하여 UEFA 유로 2020과 UEFA 유로 2024에서 16강에 진출했다.[37] 올림픽 축구에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38]
FIFA 월드컵 본선 기록 | FIFA 월드컵 예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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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1930년 | 불참 | 불참 | ||||||||||||||
1934년 | 준결승 | 4위 | 4 | 2 | 0 | 2 | 7 | 7 | 6 | 1 | 1 | 0 | 0 | 6 | 1 | 3 |
1938년 | 로 참가 | 1 | 1 | 0 | 0 | 2 | 1 | 3 | ||||||||
1950년 | 기권 | 기권 | ||||||||||||||
1954년 | 준결승 | 3위 | 5 | 4 | 0 | 1 | 17 | 12 | 12 | 2 | 1 | 1 | 0 | 9 | 1 | 4 |
1958년 | 조별리그 | 15위 | 3 | 0 | 1 | 2 | 2 | 7 | 1 | 3 | 1 | 0 | 14 | 3 | 10 | |
1962년 | 기권 | 기권 | ||||||||||||||
1966년 | 예선 탈락 | 4 | 0 | 1 | 3 | 1 | 6 | 1 | ||||||||
1970년 | 6 | 3 | 0 | 3 | 12 | 7 | 9 | |||||||||
1974년 | 7 | 3 | 2 | 2 | 15 | 9 | 11 | |||||||||
1978년 | 8강 | 7위 | 6 | 3 | 0 | 3 | 7 | 10 | 9 | 6 | 4 | 2 | 0 | 14 | 2 | 14 |
1982년 | 2라운드 | 8위 | 5 | 2 | 1 | 2 | 5 | 4 | 7 | 8 | 5 | 1 | 2 | 16 | 6 | 16 |
1986년 | 예선 탈락 | 6 | 3 | 1 | 2 | 9 | 8 | 10 | ||||||||
1990년 | 조별리그 | 18위 | 3 | 1 | 0 | 2 | 2 | 3 | 3 | 8 | 3 | 3 | 2 | 9 | 9 | 12 |
1994년 | 예선 탈락 | 10 | 3 | 2 | 5 | 15 | 16 | 11 | ||||||||
1998년 | 조별리그 | 24위 | 3 | 0 | 2 | 1 | 3 | 4 | 2 | 10 | 8 | 1 | 1 | 17 | 4 | 25 |
2002년 | 예선 탈락 | 10 | 4 | 3 | 3 | 10 | 14 | 15 | ||||||||
2006년 | 10 | 4 | 3 | 3 | 15 | 12 | 15 | |||||||||
2010년 | 10 | 4 | 2 | 4 | 14 | 15 | 14 | |||||||||
2014년 | 10 | 5 | 2 | 3 | 20 | 10 | 17 | |||||||||
2018년 | 10 | 4 | 3 | 3 | 14 | 12 | 15 | |||||||||
2022년 | 11 | 5 | 1 | 5 | 20 | 19 | 16 | |||||||||
합계 | 7회 진출(7/21[37]) | 준결승(3위, 4위) | 29 | 12 | 4 | 13 | 43 | 47 | 40 | 123 | 59 | 28 | 36 | 212 | 136 | 205 |
순위 | FIFA 월드컵 역대 순위 : 20위 | 월드컵 예선 승점 순위 : 35위 (유럽 18위) |
UEFA 유로컵 본선 기록 | UEFA 유로컵 예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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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1960년 | 예선 탈락 | 4 | 2 | 0 | 2 | 10 | 11 | 6 | ||||||||
1964년 | 2 | 0 | 1 | 1 | 2 | 3 | 1 | |||||||||
1968년 | 5 | 2 | 1 | 2 | 7 | 9 | 7 | |||||||||
1972년 | 6 | 3 | 1 | 2 | 14 | 6 | 10 | |||||||||
1976년 | 6 | 3 | 1 | 2 | 11 | 7 | 10 | |||||||||
1980년 | 8 | 4 | 3 | 1 | 14 | 7 | 15 | |||||||||
1984년 | 8 | 4 | 1 | 3 | 15 | 10 | 13 | |||||||||
1988년 | 6 | 2 | 1 | 3 | 6 | 9 | 7 | |||||||||
1992년 | 8 | 1 | 1 | 6 | 6 | 14 | 4 | |||||||||
1996년 | 10 | 5 | 1 | 4 | 29 | 14 | 16 | |||||||||
2000년 | 8 | 4 | 1 | 3 | 19 | 20 | 13 | |||||||||
2004년 | 8 | 3 | 0 | 5 | 12 | 14 | 9 | |||||||||
2008년 | 조별리그 | 13위 | 3 | 0 | 1 | 2 | 1 | 3 | 1 | 자동참가(개최국) | ||||||
2012년 | 예선 탈락 | 10 | 3 | 3 | 4 | 16 | 17 | 12 | ||||||||
2016년 | 조별리그 | 22위 | 3 | 0 | 1 | 2 | 1 | 4 | 1 | 10 | 9 | 1 | 0 | 22 | 5 | 28 |
2020년 | 16강 | 9위 | 4 | 2 | 0 | 2 | 5 | 5 | 6 | 10 | 6 | 1 | 3 | 19 | 9 | 19 |
2024년 | 16강 | 9위 | 4 | 2 | 0 | 2 | 7 | 6 | 6 | 8 | 6 | 1 | 1 | 17 | 7 | 19 |
합계 | 4회 진출(4/17) | 16강 | 14 | 4 | 2 | 8 | 14 | 18 | 14 | 117 | 57 | 18 | 42 | 219 | 162 | 189 |
순위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순위 : 24위 | 유로 예선 승점 순위 : 22위 |
대회 | ]]}}!!}]]}}!!}]]}}!!총계 |- |align=left|FIFA 월드컵 |0||0||1||1 |- | align="left" |올림픽 |0||1||0||1 |- | align="left"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0||0||0||0 |- !총계!!0!!1!!1!!2 |} 4. 라이벌 관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경기는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치러진 국가대표팀 경기이다 (이웃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만이 더 많은 경기를 치렀다).[10] 오스트리아 대 헝가리 경기는 또한 두 국가가 최초의 국제 축구 경기 이후 30년 만에 국제 경기를 치른 최초의 유럽 비영국 국가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1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의 최대 라이벌은 독일이다.[10] 오스트리아는 (스코틀랜드-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언더독이었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이 일방적인 라이벌리는 언더독인 오스트리아의 주목할 만한 승리를 만들어냈다.[11] 가장 유명한 것은 1978년 FIFA 월드컵 코르도바에서 기록한 3-2 승리이다.[11] 5. 선수
2024년 11월 17일 와의 경기 후 기준,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했던 주요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17][18][19] '''굵은 글씨'''는 현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 중인 선수이다. ![]()
포지션별 주요 선수
5. 1. 현재 선수 명단UEFA 유로 2020과 2024-25 UEFA 네이션스리그에 참여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15]
5. 2. 역대 주요 선수2024년 11월 17일 와의 경기 후 기준,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했던 주요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17][18][19]'''굵은 글씨'''는 현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 중인 선수이다.
포지션별 주요 선수
6. 역대 감독
2024년 4월 기준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은 독일 출신의 랄프 랑닉이다.[12] 수석코치는 라스 코르네트카, 페터 페어히톨트, 오누르 치넬이며, 골키퍼 코치는 미하엘 슈푸르닝, 경기 분석관은 슈테판 외젠이다. 참조
[1]
웹사이트
Hakoah Wien and Muscular Judaism
https://physicalcult[...]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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