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축구 국가대표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은 인도를 대표하는 남자 축구팀으로, 1933년 첫 해외 투어를 시작으로 국제 경기에 참여했다. 팀은 아시아 축구 연맹(AFC) 소속으로, FIFA 월드컵에는 아직 본선 진출 경험이 없지만, 1950년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으나 기권했다. AFC 아시안컵에서는 1964년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아시안 게임에서는 1951년과 1962년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AFC 챌린지컵 우승을 통해 2011년 AFC 아시안컵에 진출하기도 했다. 2013년부터 "푸른 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홈 유니폼은 파란색을 사용한다. 수닐 체트리는 팀의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2024년 현재 마놀로 마르케스가 감독을 맡고 있다.
인도 대표팀은 한때 아시아의 강호 중 하나로 여겨졌다. 195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버마(현 미얀마)와 필리핀이 기권하면서 195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얻었지만, 대회 직전 참가를 포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맨발 참가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이후 축구 경기 규칙에 신발 착용 의무가 명확히 규정되었다.[309] 실제로는 당시 인도에게 올림픽 축구가 더 중요했고 월드컵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재정난에 시달리던 인도 축구 협회(AIFF)가 올림픽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310]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3년부터 "푸른 호랑이(The Blue Tigers)"라는 별명으로 불린다.[107][108] 이는 국기 속 아쇼카 차크라 색상과 인도의 국수(國獸)인 호랑이에서 유래했다.
2. 역사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4위를 차지했으며, Neville D'Souza|네빌 드수자영어는 개최국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1948년, 1952년, 1960년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4회 연속 올림픽에 진출했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1951년과 1962년에 우승, 1970년에 3위를 차지했다.
2. 1. 초기 (1930년대~1940년대)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해외 원정은 1933년 실론으로 이루어졌다. 인도 대표팀은 원정 첫 경기에서 실론을 1-0으로 이겼다. 당시에는 전 벵골 팀이었지만, 모든 면에서 인도 팀이었다.
1934년에는 인도와 영국 선수들로 구성된 인도 팀의 두 번째 공식 국제 원정이 고스타 팔의 지휘 아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루어졌다.[3]
1935년에는 캘커타의 무하마단 스포팅 클럽 축구팀이 실론을 방문했다.[4][170][5]
1930년대 후반, 전적으로 인도 선수들로 구성된 축구팀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1938년, 인도는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협회의 요청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장기 원정을 떠났다. 8월부터 10월까지 다양한 주, 지역 및 클럽 팀과 17경기,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 5경기를 치렀다.[6] 이 중 첫 번째 경기는 9월 3일 시드니에서 열렸으며, FIFA가 인정한 인도의 첫 국제 경기였고 5-3으로 패했다.[6] 브리즈번에서 두 번째 경기를 4-4로 비긴 후, 인도는 뉴캐슬에서 세 번째 경기를 4-1로 이기며 첫 국제 승리를 거머쥐었다.[172]
1948년 하계 올림픽 1라운드에서 국가대표팀은 독립국가로서 첫 경기를 프랑스와 치러 2-1로 패했다. 인도 팀은 부츠를 신지 않고 맨발이나 양말을 신고 경기를 했는데, 이는 같은 해 FIFA에서 금지되었다.[7][8]
2. 2. 황금기 (1950년대~1960년대)
인도 대표팀은 한때 아시아의 강호 중 하나로 여겨졌다. 195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버마(현 미얀마)와 필리핀이 기권하면서 195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얻었지만, 대회 직전 참가를 포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맨발 참가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이후 축구 경기 규칙에 신발 착용 의무가 명확히 규정된 것을 볼 때, 실제로는 당시 인도에게 올림픽 축구가 더 중요했고 월드컵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재정난에 시달리던 인도 축구 협회(AIFF)가 올림픽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310]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4위를 차지했으며, Neville D'Souza|네빌 드수자영어는 개최국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1948년, 1952년, 1960년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4회 연속 올림픽에 진출했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1951년과 1962년에 우승, 1970년에 3위를 차지했다.
2. 3. 쇠퇴기 (1970년대~2000년대)
21세기 인도의 첫 공식 경기는 2002년 FIFA 월드컵 1차 예선이었다. 인도는 아랍에미리트를 1-0으로, 예멘과 1-1로 비기며 좋은 출발을 보였고, 브루나이를 상대로 두 번의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중 벵갈루루에서 5-0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라운드 진출에는 1점이 부족했다.[40] 2003년에는 2003년 SAFF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방글라데시에 2-1로 패했다.[41]
2003년 후반,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아프로-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스티븐 콘스탄틴 감독 지휘하에 인도는 당시 FIFA 랭킹에서 85계단 위에 있던 짐바브웨를 5-3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42] 그러나 금메달 결정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1-0으로 패했다.[43] 이러한 성과로 콘스탄틴 감독은 2003년 10월 아시아축구연맹 이달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이 대회 결과는 인도가 국내외에서 더 많은 인정을 받는 데 기여했다.[42]
2005년 콘스탄틴 감독은 사이드 나예무딘으로 교체되었지만, 인도가 2007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많은 대패를 당하면서 1년 조금 넘게 재임했다.[44] 이 기간 동안 인도는 일본에 6-0,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에 각각 3-0으로 패했고, 제다 원정에서는 7-1로 대패했다.[45] 2006년 5월 말뫼와 중국의 전 감독인 밥 호턴이 감독으로 부임했다.[46]
호턴 감독 체제에서 인도는 축구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2007년 8월 호턴 감독은 인도가 결승전에서 시리아를 1-0으로 꺾고 재개된 네루컵 우승을 차지하게 했다.[47] 파파첸 프라딥이 결승골을 넣었다. 이듬해 호턴 감독은 하이데라바드와 델리에서 열린 2008년 AFC 챌린지컵에서 인도를 이끌었다. 인도는 조별 예선을 가볍게 통과한 후 준결승에서 미얀마를 꺾었다. 타지키스탄과의 결승전에서 수닐 체트리의 해트트릭으로 4-1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인도에게 우승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27년 만에 2011년 AFC 아시안컵 진출권도 확보해 주었다.[48]
2. 4. 부흥기 (2001년~2011년)
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이후, 인도는 AFC 챌린지컵 예선을 통해 2015년 아시안컵 예선에 참가했다. 밥 호턴 감독은 I리그의 인디언 애로우즈 소속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구성하여 예선을 통과했다.[52][53] 그러나 호턴 감독은 심판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혐의로 계약이 해지되어 감독직에서 사임했다.[54][55][56][57]
이후 뎀포 SC의 감독 아르만도 콜라코가 임시 감독을 맡았고,[58] 2011년 10월 사비오 메데이라가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59] 메데이라 감독은 SAFF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2012년 AFC 챌린지컵에서는 조별 예선 3경기 모두 패하며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60]
2. 5. 최근 역사 (2011년~2018년)
제공된 소스에는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역사는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고, 2019년 이후의 내용만 다루고 있다. 따라서 해당 기간에 대한 정보는 소스에서 찾을 수 없다.
2. 6. 이고르 슈티마츠 감독 시대 (2019년~2024년)
2024년 7월 20일, 전인도축구연맹(AIFF)은 마놀로 마르케스(Manolo Márquez)가 인도 슈퍼리그(ISL) 시즌 동안 FC 고아에서의 임무를 유지하면서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05] 그의 첫 임무는 모리셔스와 시리아를 상대로 하는 2024 인터컨티넨탈컵이었다.[106]
2. 7. 마놀로 마르케스 감독 선임 (2024년~)
Manolo Márquez영어 감독 선임 (2024년~) 관련 내용은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 문서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3. 팀 이미지
크리켓과 필드하키 대표팀의 성공으로 파란색 유니폼이 널리 알려졌지만, 축구 대표팀도 수십 년간 파란색 계열 유니폼을 사용해 왔다.[109] 21세기 초 인도는 하늘색 상의, 검은색 하의, 하늘색 양말을 착용했다.[109] 2002년 전인도 축구 연맹은 아디다스와 유니폼 제작 계약을 맺었고,[110] 첫 유니폼은 흰색이었다.[110] 2006년에는 나이키와 7년 계약을 체결,[111] 어두운 파란색 홈 유니폼과 주황색 원정 유니폼을 선보였다.[112]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브라질 대표팀과 유사한 디자인을 사용했다.[113] 2013년 계약이 5년 연장되었고,[114] 2017년 FIFA U-17 월드컵을 앞두고 성인 및 청소년 대표팀을 위한 하늘색 유니폼을 공개했다.[115]
2018년 인도 제조업체 SIX5SIX가 나이키를 대신해 유니폼 제작사가 되었다.[116] SIX5SIX는 2019년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홈 유니폼은 하늘색, 원정 유니폼은 흰색으로 하고, 소매에 호랑이 줄무늬를 넣어 "블루 타이거스" 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117][118]
21세기까지 인도 축구 팬은 서벵골 주, 인도 북동부, 고아 주, 케랄라 주에 주로 분포했다.[131][132][133][134][135] 아시안 게임, 네루컵, SAFF 챔피언십 외에는[136][137][138] 조직적인 응원이 부족했으나, 2017년 "블루 필그림스(Blue Pilgrims)"라는 최초의 조직적인 팬클럽이 결성되었다.[139][140][141][142]
블루 필그림스는 2017 U-17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결성,[143] 처음에는 300여 명이었으나[144][143] 현재는 수천 명이 활동하며 '블루 타이거스'를 위해 하나가 되었다.[139][140] 이들은 팀의 12번째 선수로 불린다.[144][143]
블루 필그림스는 "오 인도!", "반데 마타람" 등의 구호와 "오, 블루스가 행진할 때", "험 혼게 카미야브" 등의 응원가를 사용한다.[144][145][146] 경기 후에는 바이킹 클랩으로 선수들과 함께 축하한다.[147][148] 국기를 내걸고 파란색 유니폼을 착용하며, "인킬라브-에-인디언 풋볼"(인도 축구 혁명) 배너를 내건다.[139][140][149]
2018년 수닐 셰트리 주장의 호소로[150] 2018 인터컨티넨탈컵부터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고,[151][152] 결승전에서는 약 9.14m 높이의 3D 티포를 선보였다.[147][153][154]
인도 경기는 스타 스포츠와 OTT 서비스 핫스타를 통해 방송된다.[155] 이전에는 AIFF가 지 스포츠와 계약하여 '골 2010' 계획 하에 2010년 월드컵 진출을 목표로 경기를 방송했다.[156]
3. 1. 별명
인도는 2013년부터 공식적으로 "푸른 호랑이(The Blue Tigers)"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별명은 팀의 홈 유니폼의 주요 색상인 파란색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는 국기에 나타나 있는 아쇼카 차크라의 색상이며(다른 종목의 인도 국가대표팀과 유사함) 호랑이는 인도의 국수(國獸)이기 때문이다.[107][108]
3. 2. 유니폼 및 팀 색상
인도 크리켓팀과 필드하키팀의 성공으로 파란색 유니폼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은 수십 년 동안 파란색 계열의 유니폼을 사용해왔다.[109]
21세기 초, 인도는 하늘색 상의, 검은색 반바지, 하늘색 양말을 유니폼으로 착용했다.[109] 2002년, 전인도 축구 연맹은 독일 제조업체 아디다스와 인도 대표팀 유니폼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110] 아디다스가 제작한 첫 유니폼은 전부 흰색이었다.[110] 아디다스와 4년간 계약한 후, 전인도 축구 연맹은 2006년 2월 27일 미국 회사 나이키와 7년 계약을 체결했다.[111] 나이키가 인도 대표팀을 위해 처음 제작한 유니폼은 보다 어두운 파란색이었으며, 원정 유니폼은 흰색에서 주황색으로 변경되었다.[112] 2011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한 인도 대표팀을 위해 나이키는 브라질 등 다른 국가 대표팀에 사용했던 것과 같은 디자인 템플릿을 사용하여 유니폼을 제작했다.[113] 2013년 1월, 나이키와 전인도 축구 연맹의 계약이 5년 더 연장되었다고 발표되었다.[114] 2017년 9월, 인도 U-17팀의 FIFA U-17 월드컵 참가를 앞두고 나이키는 인도 성인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을 위한 하늘색 유니폼을 공개했다.[115] 1년 후인 2018년 12월 17일, 인도 제조업체 SIX5SIX가 나이키를 대신하여 인도 대표팀 유니폼 제작사가 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116] SIX5SIX는 인도 대표팀 유니폼 제작권을 구매한 최초의 제조업체가 되었는데,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었다.[116] SIX5SIX는 2019년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대표팀을 위한 첫 유니폼을 공개했으며,[117] 홈 유니폼은 비슷한 하늘색 계열이었고, 원정 유니폼 색상은 주황색에서 흰색으로 변경되었다. 두 유니폼 모두 소매에 호랑이 줄무늬를 장식한 독특한 디자인을 채택하여, "블루 타이거스"라고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부르는 인도 축구 팬들에게 경의를 표했다.[118]
3. 3. 홈 경기장
21세기까지 인도 축구 팬들은 주로 서벵골 주, 인도 북동부, 고아 주, 케랄라 주에 흩어져 있었다.[131][132][133][134][135] 아시안 게임, 네루컵, SAFF 챔피언십 경기 외에는[136][137][138] 유럽이나 남미처럼 하나의 배너 아래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중 수가 적었다. 각 클럽의 팬들은 각자 지역 경기장에서 국가대표팀을 응원했지만, 2017년 "블루 필그림스(Blue Pilgrims)"가 국가대표팀 최초의 조직적인 팬클럽으로 설립되기 전까지는 국가대표팀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결집하지 않았다.[139][140][141][142]
블루 필그림스는 역사적인 2017 U-17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과 U-17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결성되었다.[143] 인도의 첫 FIFA 대회 참가였다.[144] 300명 남짓한 팬들로 시작했지만,[144][143] 이제는 수천 명에 이르는 팬들이 서로 다른 지역과 충성심을 가진 팬들이 하나의 목표, 블루 타이거스(Blue Tigers)를 위해 하나가 되었다.[139][140] 그들은 자신들을 블루 타이거스의 신봉자라고 부르며,[140][141] 모토는 모든 성별과 연령의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을, 어디에서든 응원하는 것이다.[139][140] 이러한 헌신으로 그들은 팀의 12번째 선수로 불린다.[144][143]
블루 필그림스의 가장 흔한 구호는 "오 인도!", "우리는 하나다", "오 인도, 우리는 당신을 위해 싸운다!", "반데 마타람"이다.[145][146] 응원가는 "오, 블루스가 행진할 때, 나는 그들 중 한 명이 되고 싶다!"와 "험 혼게 카미야브"(우리는 극복할 것이다)이다.[144] 결성 이후 블루 필그림스는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매 경기 후 바이킹 클랩으로 축하한다.[147][148] 인도 국가대표팀 팬들은 국가의 삼색기를 국기로 내걸고 팀과의 연대를 위해 파란색 유니폼을 착용한다. 그들은 "블루 필그림스" 배너와 함께 "인킬라브-에-인디언 풋볼"(인도 축구 혁명)[139][140][149] 배너를 내걸고 종종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따릅니다!"라는 슬로건을 외친다.[145]
2018년 6월 2일, 당시 주장 수닐 셰트리는 소셜 미디어에 영상을 게시했다. 이 영상에서 그는 2018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중화 타이베이와의 경기에서 관중이 2,569명에 불과했던 후 뭄바이에서 팀을 응원해 줄 것을 팬들에게 호소했다. 인도는 셰트리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0으로 승리했지만, 축하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150][151] 주장의 호소에 따라 블루 필그림스와 만자파다, 웨스트 블록 블루스, 이스트 벵골 울트라스와 같은 팬클럽을 포함한 축구 팬들은 다음 경기부터 경기장이 가득 차도록 했다.[151][152] 그 대회 결승전에서 블루 필그림스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약 9.14m 높이의 3D 티포인 블루 타이거를 선보였다.[147][153][154]
3. 4. 서포터
인도의 국제 경기는 스타 스포츠와 OTT 서비스인 핫스타를 통해 방송된다.[155] 이 계약 이전에 AIFF는 2006년에 '골 2010' 계획 하에 자사 채널에서 인도 국가대표팀 경기를 방송하기 위해 지 스포츠와 10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획의 목표는 인도가 2010년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을 돕는 것이었다.[156]
4. 국제 대회 기록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은 여러 국제 대회에 참가해왔다.
FIFA 월드컵인도는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경험이 없다.[205] 195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으나, 선수단 파견 비용 문제 등으로 기권했다.[205] 이후 1986년 예선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지만, 아직 본선 진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210]
AFC 아시안컵인도는 AFC 아시안컵에 총 5번 출전했다. 1964년 AFC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4번의 대회에서는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311] 2019년 대회에서는 태국을 4-1로 꺾고 55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 승리를 기록했다.[77] 2023년 대회에서는 예선 전승으로 본선에 진출하며, 아시안컵에 연속으로 진출하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87]
올림픽 축구인도는 1948년 하계 올림픽부터 1960년 대회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244] 1956년 대회에서는 4강에 진출하며 아시아 팀 최초로 올림픽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246]
아시안 게임인도는 1951년과 196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253][254] 1970년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255]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SAFF 챔피언십)인도는 SAFF 챔피언십에서 총 8번 우승하며 최다 우승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269] [270] [271] [272] [273]
AFC 챌린지컵인도는 2008년 대회에서 우승하며 AFC 주관 대회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이 우승으로 27년 만에 2011년 아시안컵 진출권을 획득했다.[289][290]
남아시아 경기 대회인도는 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308]
4. 1. FIFA 월드컵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은 현재까지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경험이 없다.[205] 2002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6경기 3승 2무 1패, 11골을 기록하며 인도 축구 역사상 월드컵 지역 예선 최다 승점 및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217]인도는 1947년 독립 후 195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으나,[206]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예선 라운드 기권으로 자동 진출하게 되었다.[205] 그러나 대회 시작 전, 선수단 파견 비용 문제로 기권했다.[205] FIFA가 인도(AIFF)의 브라질 여행 경비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207] FIFA가 인도 선수들의 맨발 경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과[208] 전인도 축구 연맹이 FIFA 월드컵을 올림픽보다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는 점이[205] 기권 이유로 제기되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맨발" 이유는 AIFF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한다.[209]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기권한 후, 인도는 1954년부터 1982년까지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210] 1986년 예선부터 1990년 대회를 제외하고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지만, 아직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210]
4. 2. AFC 아시안컵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64년 AFC 아시안컵을 시작으로 총 5번의 AFC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다. 첫 출전한 1964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4번의 대회에서는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311] 2019년 대회 A조 첫 경기에서 태국을 4-1로 크게 이기면서 1964년 대회 이후 55년 만에 아시안컵 본선 승리를 기록했다.[77] 2022년 6월에는 2023년 AFC 아시안컵 예선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며 2023년 AFC 아시안컵 진출을 확정, 아시아 대륙 선수권 대회에 연속으로 진출하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87]1964년 대회에서 인도는 다른 국가들이 정치적 이유로 인도와의 경기를 거부하면서 자동 진출하여, 개최국 이스라엘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인더 싱은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223][224]
4. 3. 올림픽 축구
인도는 1948년 하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1960년 대회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244] 1956년 대회에서는 개최국 오스트레일리아를 8강에서 4-2로 꺾고 아시아 팀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246]1948년 올림픽에서 인도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2-1로 패했다. 이 경기는 1947년 독립 이후 인도의 첫 국제 경기였으며, 대부분의 인도 선수들은 맨발로 경기를 했다.[7] 사랑가파니 라만(Sarangapani Raman)이 인도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7]
1952년 올림픽 예선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 10-1로 대패하며 탈락했다.[245]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1라운드 상대였던 헝가리가 기권하여 8강에 진출,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네빌 드소자(Neville D'Souza)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4-2로 승리했다.[246] 이는 아시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기록한 최초의 해트트릭이었다. 준결승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 4-1로 패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불가리아에 3-0으로 패하며 최종 4위를 기록했다.[246]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인도는 헝가리, 프랑스, 페루와 함께 D조에 속했으나, 1무 2패로 조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247] 이후 인도는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4. 4. 아시안 게임
인도는 1990년과 1994년을 제외하고 1951년부터 1998년까지 11번의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252] 1951년 아시안 게임에서 인도는 1라운드에서 인도네시아를,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꺾고 결승전에서 이란을 제압하며 홈 관중 앞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인도 대표팀은 축구 종목에서 최초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최초의 아시아 축구 챔피언이 되었다는 특별한 업적을 달성했다.[253][254]다음 두 대회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1962년 아시안 게임에서 결승전에서 아시안컵 우승팀인 대한민국을 꺾고 두 번째 대륙 타이틀을 획득하며 다시 부활했다. 1966년 대회에서는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고 1970년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255]
이는 인도가 메달 시상대에 오른 마지막 대회였으며, 이후 인도 대표팀은 쇠퇴기를 겪으며 다시는 그러한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256] 1974년과 1978년 대회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후, 인도는 두 번째로 개최한 1982년 아시안 게임에서 8강에 진출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 패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당국은 다음 대회 출전을 결정하지 않았다.[257] 인도 대표팀은 1998년 대회에 복귀했다.
4. 5.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SAFF 챔피언십)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은 SAFF 챔피언십에서 최다 우승국이다. 1993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총 8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준우승 4회, 3위 1회를 기록하며 남아시아 축구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269] [270] [271] [272] [273]
4. 6. AFC 챌린지컵
인도는 2006년 AFC 챌린지컵을 시작으로 총 4번의 대회 중 3번의 대회에 출전했다.[287] 2006년 대회에서는 U-20팀으로 참가하여 8강에 진출했다.[287] 자국에서 열린 2008년 대회에서는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사상 첫 AFC 주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이 우승으로 27년 만에 2011년 아시안컵 진출을 확정지었다.[289][290] 2010년 대회에는 U-23팀으로 참가하였으나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287] 2012년 대회에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며, 2014년 대회는 예선에서 탈락했다.인도는 AFC의 초청으로 북한, 미얀마, 방글라데시와 같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함께 AFC 챌린지컵에 참가하였다.[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