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스(Independence)는 미주리주에 위치한 도시로, 1827년에 설립되어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에 편입되었으며, 19세기에는 산타페 길, 캘리포니아 길, 오리건 길의 출발지로 번성했다. 후기 성도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미국 남북 전쟁 중 두 차례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고향이며, 현재 해리 S. 트루먼 국립 역사 유적지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주요 산업은 밀 생산이며, 국립 프론티어 트레일 박물관, 레일라의 헤어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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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 전쟁 당시 인디펜던스에서는 두 번의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 1862년 8월 11일 첫 번째 전투에서는 남부 연합군이 도시를 장악했고,[7] 1864년 10월 두 번째 전투에서는 연합군이 승리했다.[7] 전쟁은 인디펜던스에 큰 피해를 입혔고, 전쟁 직후 활발한 건설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번영을 되찾지 못했다. 인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부상은 인디펜던스가 잭슨 카운티에서 부차적인 위치로 격하되는 데 기여했지만, 인디펜던스는 현재까지 카운티 청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인디펜던스에서 성장했으며, 1922년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 법원 판사(사법직이 아닌 행정직)로 선출되었다.[7] 1924년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1926년에 다시 당선되어 1930년에 재선되었다.[7] 트루먼은 자동차 사용 증가에 발맞춘 도로 개선, 인디펜던스에 새로운 카운티 법원 건물 건설, 1928년과 1929년에 전국적으로 헌정된 개척 시대 여성들을 위한 12개의 ''매돈나 오브 더 트레일'' 기념물 건립 등 여러 공공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7]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인디펜던스로 돌아왔다. 영부인 베스 트루먼도 인디펜던스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두 사람 모두 이곳에 묻혔다.[7] 해리 S. 트루먼 국립 역사 유적지(트루먼 자택)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이 모두 인디펜던스에 있으며, 트루먼의 소년 시절 거주지 중 하나도 그곳에 있다.[7]
2. 1. 초기 역사와 서부 개척 시대
미주리와 오세이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원래 거주했으며, 그 뒤 스페인과 짧은 기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미국에 편입되었다. 루이스와 클라크는 일기에 1804년에 도시의 일부가 될 장소에서 자두, 라즈베리, 야생 사과를 따기 위해 멈췄다고 기록했다. 인디펜던스는 또한 서쪽으로의 여정이 비극으로 끝난 19세기 마차 행렬 이민자들의 불운한 집단인 도너 일행의 정류장이었으며, 개척 시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금기시되는 이야기 중 하나를 낳았다.[7]
독립 선언을 기려 명명된 인디펜던스는 1827년 3월 29일에 설립되었으며,[8] 빠르게 중요한 개척 도시가 되었다. 증기선이나 다른 화물선이 여행할 수 있는 미주리 강의 최서단 지점이었는데, 이는 캔자스 강이 도시에서 서쪽으로 약 6마일 떨어진 현재의 캔자스-미주리 경계 근처에서 미주리 강과 합류했기 때문이다. 인디펜던스는 곧 떠오르는 모피 무역의 출발점이 되어, 산타페 길을 따라 서쪽으로 긴 여정을 시작하는 상인과 모험가들을 수용했다.
인디펜던스의 법원 조각, 1855
1831년, 후기 성도 운동의 일원들이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 창시자 조셉 스미스는 법원 광장 서쪽 부지를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상하며, 그가 예언한 새 예루살렘의 사원으로 선언했다. 지역 미주리 주민들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후기 성도들은 1833년에 이 지역에서 추방되었고, 이는 1838년 몰몬 전쟁으로 절정에 달하는 갈등의 시작이었다. 이 운동의 여러 분파들은 1867년부터 점차적으로 도시에 돌아와 본부를 설립했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 공동체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재조직 교회), 그리스도 교회(사원 부지), 예수 그리스도 교회(커틀러파) 및 복원 분파가 포함된다.
인디펜던스는 1830년대 후반부터 1840년대 중반까지 개척자들을 위한 장비를 갖추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큰 번영을 누렸다. 1848년에서 1868년 사이에 캘리포니아 길의 중심지였다. 1849년 3월 8일, 미주리 주 의회는 도시에 자치헌장을 부여했고, 1849년 7월 18일, 윌리엄 맥코이가 초대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 의회의 법안은 인디펜던스를 오리건 길의 시작으로 정의했다.
오리건 길 지도, 인디펜던스 표시
2. 2. 후기 성도 운동과의 관계
1831년, 후기 성도 운동의 일원들이 미국미주리주 잭슨 카운티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 창시자 조셉 스미스는 법원 광장 서쪽 부지를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상하며, 그가 예언한 새 예루살렘의 사원으로 선언했다. 지역 미주리 주민들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후기 성도들은 1833년에 이 지역에서 추방되었고, 이는 1838년 몰몬 전쟁으로 절정에 달하는 갈등의 시작이었다.[7]1867년부터 이 운동의 여러 분파들은 점차적으로 도시에 돌아와 본부를 설립했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 공동체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재조직 교회), 그리스도 교회(사원 부지), 예수 그리스도 교회(커틀러파) 및 복원 분파가 포함된다.
2. 3. 남북 전쟁과 이후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인디펜던스에서는 두 번의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 1862년 8월 11일 첫 번째 전투에서는 남부 연합군이 도시를 장악했고,[7] 1864년 10월 두 번째 전투에서는 연합군이 승리했다.[7] 전쟁은 인디펜던스에 큰 피해를 입혔고, 전쟁 직후 활발한 건설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번영을 되찾지 못했다. 인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부상은 인디펜던스가 잭슨 카운티에서 부차적인 위치로 격하되는 데 기여했지만, 인디펜던스는 현재까지 카운티 청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인디펜던스에서 성장했으며, 1922년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 법원 판사(사법직이 아닌 행정직)로 선출되었다.[7] 1924년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1926년에 다시 당선되어 1930년에 재선되었다.[7] 트루먼은 자동차 사용 증가에 발맞춘 도로 개선, 인디펜던스에 새로운 카운티 법원 건물 건설, 1928년과 1929년에 전국적으로 헌정된 개척 시대 여성들을 위한 12개의 ''매돈나 오브 더 트레일'' 기념물 건립 등 여러 공공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7]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인디펜던스로 돌아왔다. 영부인 베스 트루먼도 인디펜던스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두 사람 모두 이곳에 묻혔다.[7] 해리 S. 트루먼 국립 역사 유적지(트루먼 자택)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이 모두 인디펜던스에 있으며, 트루먼의 소년 시절 거주지 중 하나도 그곳에 있다.[7]
2. 4. 해리 S. 트루먼과 현대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인디펜던스에서 성장하여, 1922년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 법원 판사(사법직이 아닌 행정직)로 선출되었다.[7] 1924년 재선에는 실패했으나, 1926년 다시 당선되어 1930년에 재선되었다.[7] 트루먼은 자동차 사용 증가에 발맞춰 훌륭한 도로를 건설하고, 인디펜던스에 새로운 카운티 법원 건물을 짓는 등 여러 공공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7] 특히 1928년과 1929년에 전국적으로 헌정된 개척 시대 여성들을 위한 12개의 ''매돈나 오브 더 트레일'' 기념물 시리즈는 그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7]
대통령으로서 두 임기를 마친 후, 트루먼은 인디펜던스로 돌아왔다.[7] 그의 부인 영부인 베스 트루먼 역시 인디펜던스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두 사람 모두 이곳에 묻혔다.[7] 해리 S. 트루먼 국립 역사 유적지(트루먼의 자택)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은 모두 인디펜던스에 있으며, 트루먼의 소년 시절 거주지 중 하나도 그곳에 있다.[7] 트루먼 부부는 현재도 인디펜던스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3. 지리
인디펜던스는 북위 39도 4분 47초, 서경 94도 24분 24초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202.7km2이다.
잭슨 카운티 내 위치
3. 1. 기후
인디펜던스는 미주리 강 남쪽 강변, 미주리 주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도시의 총 면적은 약 202.67km2이며, 이 중 약 200.90km2는 육지이고 약 1.76km2는 수역이다.[9]
인디펜던스의 기후는 다음과 같다.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 최고 기온 (°F)
약 3.1°C
약 6.1°C
약 12.5°C
약 18.1°C
약 23.3°C
약 28.3°C
약 30.5°C
약 30.0°C
약 25.8°C
약 19.2°C
약 11.7°C
약 5.4°C
평균 최저 기온 (°F)
약 -7.1°C
약 -4.9°C
약 0.3°C
약 5.9°C
약 12.1°C
약 17.5°C
약 19.9°C
약 18.7°C
약 13.9°C
약 7.3°C
약 0.8°C
약 -4.5°C
평균 강수량 (인치)
약 3.81cm
약 4.72cm
약 7.32cm
약 11.25cm
약 15.21cm
약 13.41cm
약 12.98cm
약 12.85cm
약 12.12cm
약 8.99cm
약 6.10cm
약 4.67cm
평균 적설량 (인치)
약 9.14cm
약 6.60cm
약 4.32cm
약 0.51cm
약 0.00cm
약 0.00cm
약 0.00cm
약 0.00cm
약 0.00cm
약 1.02cm
약 3.05cm
약 8.89cm
[10][11]
4. 인구
인디펜던스 시의 인구 변화[41]
연도
인구
1860
3,164
1870
3,184
1880
3,146
1890
6,380
1900
6,974
1910
9,859
1920
11,686
1930
15,296
1940
16,066
1950
36,963
1960
62,328
1970
111,630
1980
111,806
1990
112,295
2000
113,288
2010
116,830
2019[40]
116,672
1980년대 이후 인디펜던스의 인구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 111,806명에서 2010년 116,830명으로 소폭 증가했으며, 2019년 추정치는 116,672명이다.[40]
4. 1. 인구 통계
2020년 미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디펜던스에는 123,011명, 48,836가구, 28,955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인종 구성 (인종별 집계에서 히스패닉 포함)은 백인 72.61% (89,323명),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8.68% (10,678명), 아메리카 원주민 0.76% (936명), 아시아인 1.19% (1,468명), 태평양 섬 주민 0.67% (826명), 기타 인종 5.52% (6,795명), 둘 이상의 인종 10.56% (12,985명)이었다. 히스패닉 또는 모든 인종의 라틴 아메리카인은 인구의 12.2% (15,042명)를 차지했다.
48,836가구 중 24.0%가 18세 미만의 자녀를 두고 있었고, 40.1%가 부부가 함께 살고 있었으며, 33.0%는 남편이 없는 여성 가구주가 있었다. 모든 가구 중 33.5%는 개인으로 구성되었고, 14.2%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는 2.4명, 평균 가족 구성원 수는 3.1명이었다.
인구의 21.5%가 18세 미만, 7.6%가 18~24세, 24.8%가 25~44세, 24.0%가 45~64세, 17.3%가 65세 이상이었다. 중간 연령은 39.5세였다. 여성 100명당 남성은 91.4명이었다. 18세 이상 여성 100명당 남성은 89.4명이었다.
미국 공동체 조사의 2016-2020년 5년 추정치에 따르면 가구 중간 소득은 50797USD이고 가족 중간 소득은 64271USD이었다. 남성의 중간 소득은 40007USD인 반면 여성은 26762USD였다. 16세 이상 인구의 중간 소득은 32462USD였다. 대략 11.2%의 가족과 14.0%의 인구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으며, 여기에는 18세 미만의 23.3%와 65세 이상의 7.1%가 포함되었다.
2010년 인구 조사[19]에 따르면, 이 도시에는 116,830명의 인구, 48,742가구, 30,165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도시의 인종 구성은 백인 85.7%, 흑인 5.6%, 아메리카 원주민 0.6%, 아시아인 1.0%, 태평양 섬 주민 단독 0.7% (1.0% 태평양 섬 주민 단독 또는 다른 인종과 혼합), 기타 인종 3.2%, 두 개 이상의 인종 3.2%, 어떤 인종이든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는 인구의 7.7%였다. 비히스패닉 백인은 인구의 82.2%를 차지했는데,[20] 이는 1970년의 98.4%에서 감소한 수치이다.[21]
48,742가구 중 29.3%가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42.5%가 함께 사는 부부였으며, 13.9%는 남편이 없는 여성 가구주가 있었고, 5.4%는 아내가 없는 남성 가구주가 있었으며, 38.1%는 비가족이었다. 전체 가구의 31.7%는 개인으로 구성되었으며, 11.5%는 65세 이상인 혼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가구당 평균 구성원은 2.37명이었고, 가족당 평균 구성원은 2.97명이었다.
도시의 중간 연령은 39.4세였다. 주민의 23%가 18세 미만이었고, 8.6%가 18세에서 24세 사이였으며, 24.9%가 25세에서 44세 사이였고, 27.4%가 45세에서 64세 사이였으며, 16.1%가 65세 이상이었다. 도시의 성별 구성은 남성 48.0%, 여성 52.0%였다.
2000년 인구 조사[2]에 따르면, 시에는 113,288명의 인구, 47,390가구, 30,566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디펜던스는 1980년에 111,806명, 1990년에 112,301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22] 시의 인종 구성은 백인 91.87%, 흑인 2.59%, 아시아인 0.70%, 아메리카 원주민 0.64%, 태평양 섬 주민 0.46%, 기타 인종 1.43%, 둘 이상의 인종 2.31%였다.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는 모든 인종을 통틀어 3.69%였다.
47,390가구 중 28.1%가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47.9%가 함께 사는 기혼 부부였으며, 12.3%는 남편 없이 여성 가장이 있었고, 35.5%는 비가족이었다. 전체 가구의 30.1%는 개인으로 구성되었으며, 11.3%는 65세 이상의 혼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가구당 평균 인원은 2.37명이었고, 가족당 평균 인원은 2.93명이었다.
시의 인구는 18세 미만이 23.9%, 18세에서 24세가 8.7%, 25세에서 44세가 28.9%, 45세에서 64세가 23.0%, 65세 이상이 15.5%로 분포되어 있었다. 중앙 연령은 38세였다. 여성 100명당 남성은 91.6명이었다. 18세 이상 여성 100명당 남성은 87.3명이었다.
시의 가구 중간 소득은 38012USD였고, 가족 중간 소득은 45876USD였다. 남성의 중간 소득은 34138USD였고, 여성의 중간 소득은 25948USD였다. 시의 1인당 소득은 19384USD였다. 가족의 약 6.4%와 인구의 8.6%가 빈곤선 이하에 있었으며, 여기에는 18세 미만의 11.8%와 65세 이상의 6.7%가 포함되었다.
비히스패닉 백인의 비율은 1970년 98.4%에서 2020년 69.71%로 감소하였다.[20][21]
4. 3. 종교
후기 성도 운동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디펜던스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재건 교회)를 포함한 여러 분리 교파의 후기 성도 운동 본부가 있으며, 이곳에 사원이 있다. 이 도시에 본부를 둔 다른 후기 성도 교파로는 그리스도 교회 (성전 부지)와 예수 그리스도 교회 (커틀러파) 등이 있다. 또한 인디펜던스 안팎에 여러 재건 지부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마을에 방문자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23][24]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인디펜던스에 사원을 건설했으며, 근처에 대규모 강당 및 기타 건물도 유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사원 옆에 상당한 규모의 방문자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1830년 조셉 스미스가 지정한 최초의 성전 부지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부지 자체에는 그리스도 교회(성전 부지)의 본부와 지역 회의소 역할을 하는 작은 흰색 골조 교회 건물이 있다.
인디펜던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는 1826년에 설립된 제일 장로교회이다.[23]해리 S. 트루먼이 1890년에 엘리자베스(베스) 월리스를 처음 만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23][24] 트루먼은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돌아온 후 그녀와 결혼했다.[24]
5. 경제
인디펜던스 시는 2016년 연례 종합 재무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고용주를 가지고 있다.[25] 이곳은 오래전부터 미국 유수의 곡창 지대였으며, 현재도 밀 생산이 활발하다.
인디펜던스 타운 스퀘어에는 필라델피아의 독립 기념관을 본떠 만든 옛 법원이 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가족 소유 상점이 있다.[1] 이 법원에는 해리 S. 트루먼의 옛 법정과 사무실이 있다.[1]
6. 1. 축제
산타칼리곤 데이즈(Santa-Cali-Gon Days)는 1940년부터 간헐적으로, 1973년부터는 매년 노동절에 열리는 축제로, 산타페 길, 캘리포니아 길, 오리건 길과 같은 세 개의 주요 개척 시대 트레일의 출발점이었던 도시의 유산을 기념한다.[1] 또 다른 인기 있는 연례 축제는 바일 스트로베리 축제로, 역사적인 광장에서 북쪽으로 5블록 떨어진 1500 N. 리버티의 바일 저택에서 6월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1] 인디펜던스 헤리티지 페스티벌은 인디펜던스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를 기념한다.[1] 인디펜던스 타운 스퀘어에는 옛 법원 주변에 수많은 가족 소유 상점이 있으며, 이 법원은 필라델피아의 독립 기념관을 본떠 만들어졌다.[1] 이 법원에는 해리 S. 트루먼의 옛 법정과 사무실이 있다.[1]
6. 2. 박물관
이름
설명
미드웨스트 계보 센터(Midwest Genealogy Center)
미국에서 가장 큰 독립형 공공 계보 연구 도서관이다.
한국 전쟁 연구 센터(The Center for the Study of the Korean War)
미국에서 가장 큰 한국 전쟁 기록 보관소로, 그레이스랜드 대학교에 위치해 있다.
메릴 J. 매티스 연구 도서관(Merrill J. Mattes Research Library)
오버랜드 트레일과 미국 서부 정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국립 프론티어 트레일 박물관에 위치해 있다.
트루먼 도서관 연구 센터(Truman Library Research Center)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에 위치해 있다.
잭슨 카운티 역사 협회 기록 보관소 및 연구 도서관
미드컨티넨트 공공 도서관(Mid-Continent Public Library)
인디펜던스에 두 개의 일반 도서관 분관을 운영한다.[30]
캔자스시티 공공 도서관(Kansas City Public Library)
인디펜던스에 트레일 웨스트 분관을 운영한다.
국립 프론티어 트레일 박물관(National Frontier Trails Museum)
416 W. 메이플에 위치. 서부 개척 시대와 미국 서부 정착의 역사에 전념하는 박물관이자 해석 센터이다. 인디펜던스는 트레일의 여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산타페, 캘리포니아, 오리건 등 세 개의 길을 따라 평원을 건너기 위해 준비한 수천 명의 정착민, 개척자, 군인 및 상인들을 맞이했다. 박물관은 영화, 어린이 활동실, 유물, 일기, 지도, 덮인 마차 등을 제공한다.[31][32]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Harry S. Truma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500 U.S. Highway 24에 위치한 미국의 33대 대통령의 공식 도서관이다. 댈러스 모닝 뉴스에서 미국 최고의 대통령 박물관으로 칭송받는 트루먼 도서관은 극장, 박물관, 상점, 인터랙티브 체험 전시와 의사 결정 극장을 제공한다. 박물관에는 토마스 하트 벤턴의 화려한 벽화, 인디펜던스와 서부 개척과 대통령 집무실 복제품이 있다. 안뜰에는 해리, 베스, 딸 마가렛의 묘지가 있다. 박물관은 트루먼이 대통령으로서 관여했던 주요 세계를 바꾸는 결정과 그의 개인적인 삶의 세부 사항에 대해 후원자들을 교육하고자 한다. 하위 층에서는 아이들이 해리와 베스처럼 옷을 입고, "만져보는" 상자를 탐험하고, 인터랙티브 컴퓨터 경주에 참여하고, 우편물을 분류하고, 선거 운동 버튼과 포스터를 만들고, 퀴즈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오웬스-로저스 박물관(Owens-Rogers Museum)
100 W. 무어 스트리트에 위치. 1911년 이 집에서 태어난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겸 프로듀서 레일라 E. 로저스와 아카데미상 수상 배우 진저 로저스를 기리는 박물관이다. 이 집은 레일라와 진저 로저스의 기념품,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 잡지 및 소장품을 갖춘 박물관으로 복원 및 재구상되었다.
레일라의 헤어 박물관(Leila's Hair Museum)
1333 S. 놀랜드 로드에 위치. 빅토리아 시대의 머리카락 장신구와 화환 예술 박물관이다.
인형극 예술 연구소(Puppetry Arts Institute)
11025 E. 위너 로드에 위치. 이 비영리 단체는 전 세계 수백 개의 인형과 마리오네트를 소장하고 있다.
해리 S. 트루먼 국립 사적지(Harry S. Truman National Historic Site)
223 N. 메인 (방문객 센터); 219 N. 델라웨어 (집)에 위치. 트루먼 집은 국립공원관리청에서 운영한다.
1859년 감옥, 보안관의 집 및 박물관(1859 Jail, Marshal's Home and Museum)
217 N. 메인에 위치. 1859년 감옥은 잭슨 카운티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시기에 수천 명의 죄수를 수용했다. 유명한 손님으로는 프랭크 제임스와 윌리엄 클라크 퀀트릴이 있다.
빙엄-와거너 부동산(Bingham-Waggoner Estate)
313 W. 퍼시픽에 위치. 산타페 트레일을 따라 1852년에 지어진 이 웅장한 집은 유명한 미국 남북 전쟁 예술가 조지 케일럽 빙엄이 소유했다.
시카고 앤 앨턴 데포(Chicago and Alton Depot)
318 W. 퍼시픽에 위치. 1879년에 지어진 이 나무 창고는 미주리 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2층 프레임 철도 창고로 여겨진다.[33][34]
베일 저택(Vaile Mansion)
1500 N. 리버티에 위치. 이 31개 방짜리 저택은 1881년 변경 개척 시대의 사업 거물 하비 베일에 의해 지어졌다. 제2제국 빅토리아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로 인정받는 이 호화로운 저택은 수세식 변기, 내장된 6,000갤런 물탱크, 칠해진 목공예품과 천장, 9개의 서로 다른 대리석 벽난로와 같은 편의 시설을 자랑했다.
그리스도 국제 본부 커뮤니티(Community of Christ International Headquarters)
201 S. 리버에 있는 사원과 1001 W. 월넛 맞은편에 있는 강당은 25만 명의 회원을 가진 이 기독교 종교의 세계 본부 역할을 한다.
LDS 방문자 센터(LDS Visitors Center)
937 W. 월넛에 위치. 인디펜던스의 초기와 격동적인 역사 동안 말일성도들이 수행한 역할을 설명한다.
7. 교통
인디펜던스는 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갖추고 있다.
암트랙 역에서는 세인트루이스와 캔자스시티를 오가는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캔자스시티 지역 교통국(KCATA)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통해 도시 곳곳을 이동할 수 있다.
7. 1. 도로
70번 주간고속도로는 캔자스시티, 컬럼비아, 세인트루이스와 인디펜던스를 연결하는 주요 동서 횡단 주간 고속도로이다.
470번 주간고속도로는 MO-291을 따라 39번가/I-70에서 시작하여 리즈 서밋까지 남쪽으로 이어진다.
435번 주간고속도로는 인디펜던스와 캔자스시티 사이의 서쪽 시 경계 밖을 지난다.
24번 국도는 슈가크릭과 인디펜던스 북쪽 경계의 일부를 형성하며, 인디펜던스를 캔자스시티, 버크너와 연결하는 주요 동서 횡단 미국 국도이다. 페어몬트 비즈니스 지구,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 윌리엄 크리스만 고등학교를 지나 인디펜던스 스퀘어 북쪽으로 통과한다. 24번 국도의 일부는 위너 로드(Winner Road)와 인디펜던스 애비뉴(Independence Avenue)로 알려져 있다.
40번 국도는 캔자스시티와 인디펜던스 남쪽 경계의 일부를 형성하며, 인디펜던스를 리즈 서밋, 레이크 타파윙고, 블루스프링스와 연결한다.
7번 주도는 24번 국도와 트와이먼 로드(Twyman Road)(포트 오세이지 고등학교 근처)를 블루스프링스와 연결하며, 레이크 시티 육군 탄약 공장을 지나간다.
12번 주도는 인디펜던스 스퀘어와 캔자스시티의 I-435를 연결하는 짧은 고속도로이며, 일반적으로 트루먼 로드(Truman Rd.)로 알려져 있다.
78번 주도는 캔자스시티를 레이크 시티 육군 탄약 공장 근처의 MO-7로 연결하는 동서 횡단 고속도로이다. 78번 주도의 일부는 23번가(구 E. 알톤 St.)와 레이크 시티-버크너 로드(Lake City-Buckner Road)로 알려져 있다.
291번 주도는 한때 71번 우회 국도로 지정되었던, 인디펜던스를 리즈 서밋, 슈가크릭, 리버티와 연결하는 작은 남북 횡단 고속도로이다. 리버티 벤드 다리는 미주리 강을 가로질러 이 고속도로를 연결한다. I-470은 I-70에서 리즈 서밋까지 이 고속도로를 연결한다. 구 노선의 일부는 바스 프로(Bass Pro) 지역의 거리인 올드 71 우회로(Old 71 Bypass)로 알려져 있다.
트루먼 로드는 인디펜던스를 캔자스시티 시내 및 잭슨 카운티의 동쪽 미편입 지역과 연결하는 주요 간선 도로이다. 반 호른 고등학교, 메이우드 비즈니스 지구,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집, 인디펜던스 스퀘어를 지나간다. 트루먼 로드는 MO-12와 함께 인디펜던스로 들어와 주도 FF와 함께 나간다.
7. 2. 대중교통
암트랙 역과 캔자스시티 지역 교통국(KCATA)이 있다.
8. 자매 도시
인디펜던스는 1978년에 일본도쿄도히가시무라야마시와 자매 도시 관계를 맺었다.[35] 히가시무라야마 스트리트는 트루먼 로드 남쪽, 메모리얼 드라이브와 린 스트리트 사이, 시청과 인디펜던스 광장 사이에 있다. 이 자매 결연은 E 렉싱턴 애비뉴와 메모리얼 드라이브 근처에 있는 선(禪) 정원으로 기념된다. 이 정원은 인디펜던스 시와 히가시무라야마 시 국제우호협회가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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