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몰자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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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몰자의 계곡은 스페인 내전 승리 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좌우파 전몰자를 함께 안장하기 위해 건설한 기념물이다. 1942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59년에 완공되었으며, 2만여 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고, 4만 구의 유해가 안치되었다. 그러나 이 기념물은 프랑코 정권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특히 공화파 정치범의 강제 노동을 통해 건설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프랑코 사후, 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 유해 이장 및 기념물 재설계 등 역사적 기억과 관련된 논쟁의 중심에 섰다. 2019년 프랑코의 유해는 이장되었으며, 2022년 민주 기억법에 따라 전몰자의 계곡은 민간 묘지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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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몰자의 계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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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정식 명칭 | 전몰자의 계곡 (Valle de los Caídos) |
위치 | 스페인 마드리드 지방 산 로렌소 데 엘 에스코리알 근처 시에라데과다라마 산맥 |
역사 | |
기공 | 1940년 |
완공 | 1959년 |
봉헌 | 1959년 4월 1일 |
건축 정보 | |
유형 | 바실리카, 기념비 |
건축 양식 | 신고전주의 건축, 파시스트 건축 |
높이 | 150 m (십자가) |
면적 | 13.65 km² (3,373 에이커) |
지하 묘지 길이 | 262 m |
돔 지름 | 40 m |
관리 | |
소유주 | 국가유산청 |
운영 | 스페인 국립 유산 |
이미지 | |
![]() | |
추가 정보 | |
비판 및 논쟁 |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시기에 건설되어 정치적 논란이 지속됨. 희생자들의 유해 이장 문제, 기념 장소의 의미 등에 대한 논쟁이 있음. |
특징 | 바실리카, 수도원, 거대한 십자가 등으로 구성됨. 스페인 내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소로 건설되었으나, 프랑코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어 논란이 됨. |
관련 법률 | 1940년 4월 1일자 법령에 따라 건설됨. |
2. 배경
전몰자의 계곡의 공식 명칭은 'Basílica Menor de la Santa Cruzdel Valle de los Caídoses'(산타 크루스 델 바예 데 로스 카이도스 성당)이다. 이곳은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전선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다 숨진 국민파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묘지이다. 가운데에 150미터 높이의 거대한 십자가상이 있고, 성당과 납골당으로 구성되어 있다.[65]
스페인 사람들은 이 기념물이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한 모든 전몰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기념물이 위치한 곳의 이름을 따 쿠엘가무로스 기념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드리드 인근 과다라마 산맥의 쿠엘가무로스 계곡에 위치하며, 엘 에스코리알에서 북동쪽으로 10km 떨어져 있다.
오늘날 사회노동당 정권(사파테로 총리)은 전몰자의 계곡을 "민주주의 기념비" 또는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스페인인을 위한" 시설로 재설계하는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정당, 특히 중도 가톨릭 정당은 "전몰자의 계곡"이 이미 민족주의자와 공화파 양측의 군인, 민간인 희생자 모두를 위해 바쳐졌다고 생각하며, 정권의 움직임은 공화파만을 위한 재편이라고 비판한다.[60]
2. 1.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1936년 발생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새로운 집단의례 (노래, 깃발, 거수경례, 가톨릭 의례) 등을 만들고 자유주의나 공화주의의 상징들을 지우고 파시스트 상징들로 교체했다. 프랑코는 또 에스파냐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동상과 기념물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좌파와 우파 전몰자 모두를 안장할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건립 승인은 1940년에 났지만 공사는 1942년에 시작해 1959년 4월 1일에야 완공됐다. 약 20년에 걸친 공사 기간 동안 2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동원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스페인 내전의 전쟁 포로와 정치범들이었다.[59]이 계곡에는 민족주의자 병사와 공화파 병사 모두가 매장되어 있다고 여겨지지만 (스페인 내전 말기에 공화파 유해가 임시 매장지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기념물은 분명히 민족주의적·반공주의적 색채를 띤다. 이는 프랑코의 민족주의 정권과 가톨릭 교회의 강한 결합을 반영하며, "신과 스페인에 순교한 자들이여!"("¡Caídos por Dios y por España!")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게다가 프랑코가 이 기념물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시점을 보면 이 기념물이 민족주의자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공화국에 대한 프랑코의 승리 1주년을 축하하는 전승 퍼레이드가 열린 1940년 4월 1일, 프랑코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웅장한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개인적인 결정을 발표했다.[59]
2. 2. 건설 결정과 착공
1936년 발생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새로운 집단의례 (노래, 깃발, 거수경례, 가톨릭 의례) 등을 만들고 자유주의나 공화주의의 상징들을 지우고 파시스트 상징들로 교체했다. 프랑코는 또 에스파냐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동상과 기념물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좌파와 우파 전몰자 모두를 안장할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59] 건립 승인은 1940년에 났지만 공사는 1942년에 시작해 1959년 4월 1일에야 완공되었으며, 약 20년에 걸친 공사기간에 노동자들 2만여 명이 동원됐고 대부분이 스페인 내전의 전쟁포로와 정치범들이었다.[59]"전몰자의 계곡"을 포함하는 기념물은 엘 에스코리알에서 북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국립 공원에 지정되어 있다. 계곡 지하에는 4만 구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으며, 각 유해의 이름은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이 계곡에는 민족주의자 병사, 공화파 병사 모두가 매장되어 있다고 여겨지지만 (스페인 내전 말기에 공화파 유해가 임시 매장지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기념물은 분명히 민족주의적·반공주의적 색채를 띤다.[59] 이는 프랑코의 민족주의 정권과 가톨릭 교회의 강한 결합을 반영하며, "신과 스페인에 순교한 자들이여!"("¡Caídos por Dios y por España!")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59] 프랑코가 이 기념물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시점을 보면 이 기념물이 민족주의자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공화국에 대한 프랑코의 승리 1주년을 축하하는 전승 퍼레이드가 열린 1940년 4월 1일, 프랑코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웅장한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개인적인 결정을 발표했다.[59]
2. 3. 강제 동원 논란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국민 화합을 명분으로 좌우파 전몰자 모두를 안장할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1942년에 착공되어 1959년에 완공된 이 기념물 건설에는 약 2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동원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전쟁 포로와 정치범이었다.[27]이 기념물 부지가 "나치 강제 수용소와 같다"는 비난은 죄수 노동의 사용을 언급하는 것이다. 당시 스페인 법은 죄수들이 하루 일하면 이틀의 형을 감면받는 것을 허용했다. 이 감면 제도는 성당에서 노동이 이루어질 때 하루 7페세타의 임금과 함께 6일로 늘어났으며, 죄수의 가족은 다른 노동자들이 계곡에 지은 주택과 가톨릭 어린이 학교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27] 국민주의 정부는 "노동은 고귀하게 한다(el trabajo enoblece)"라는 좌우명을 사용했다.
최대 20,000명의 수감자가 기념물 건설에 사용되었으며 강제 노동이 사용되었다고 주장된다.[29] 공식 기록에 따르면 2,643명의 노동자가 건설에 직접 참여했으며, 그 중 243명이 죄수였다. 18년의 건설 기간 동안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공식 집계는 14명이었다.[30]
스페인 국민주의 정권은 "고상하게 일하게 한다"는 모토를 내걸었지만,[63] 바실리카와 십자가 건설을 죄수의 강제 노동으로 시킨 것은 논란이 되고 있다. 죄수 노동자 중에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자도 있었고, 유죄 판결을 받은 정치범도 있었다. 큰 돌덩어리 운반은 안전 대책이 부족하여 사고가 잦았고,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1940년 스페인 법에서는 1일 노동으로 2일간의 "속죄"를 할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바실리카에서 노동을 하면 이 혜택은 6일분에 해당한다고 했다.
기념비 건설에 있어서, 공화파 정치범은 정권에 의한 산야 개척에 참가를 강요당했고, 또한 자신의 정치 사상을 지키기 위해 판결로서 부과된 죄의 속죄도 하게 했다.
3. 규모 및 시설
전몰자의 계곡은 마드리드 인근 과다라마 산맥의 쿠엘가무로스 계곡, 엘 에스코리알에서 북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기념물은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한 모든 전몰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페인 사람들은 이 곳을 쿠엘가무로스 기념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방 시간은 화요일~일요일 10:00~18:00시이다.[65]
이 기념물은 거대한 바위산을 뚫어 만든 바실리카, 바위산 정상에 세워진 높이 152.4m의 거대한 십자가, 베네딕토회 수도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지하 성당, 30000m2의 산책길, 폭 100m의 화강암 계단이 있고, 정면 입구에는 높이 5m, 길이 12m의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피에타 상이 있다.
이 기념물은 넓은 광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곡과 멀리 떨어진 마드리드 외곽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3. 1. 바실리카
거대한 바위산을 뚫어 만든 바실리카는 길이가 260미터이고 최대 높이가 40미터이다. 이 바실리카 공간을 만들기 위해 4억 입방미터의 바위를 파내야 했는데, 모두 포로들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58] 바실리카 위에는 높이 150미터, 무게 20만 톤의 거대한 십자가가 서 있는데,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이다. 1960년, 교황 요한 23세는 지하 묘역을 바실리카로 선포했다.[58]
발굴된 이 지하 바실리카의 크기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크다. 바티칸 언덕에 있는 사도의 무덤 교회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입구 안쪽에 칸막이 벽을 세우고 상당한 크기의 입구를 봉헌하지 않은 채로 두었다.[58] 바실리카의 전몰자를 기리는 기념 조각품은 스페인 조각가 루이스 상기노의 작품이다. 정문과 십자가 기단의 기념 조각은 후안 데 아발로스의 경력의 정점을 이루었다.
철제 문에는 프랑코의 신-합스부르크 쌍두 독수리가 눈에 띄게 전시되어 있다. 바실리카에 들어서면 방문객들은 칼을 든 두 개의 큰 아르 데코 천사 조각상으로 둘러싸인다. 바실리카와 십자가 기단을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있다. 십자가 안에는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어 바실리카 돔 상단과 십자가 상단의 작은 출입구를 연결하지만, 사용은 유지 보수 직원으로 제한된다.[58]
페드로 무르후사와 디에고 멘데스가 각각 동일한 넓이로 설계한 본당은, 프랑코에 따르면 "시간이 잊기를 거부하는 불후의 업적"이며, 20세기 스페인 건축의 기념비가 되었다. 그것은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을 만든 후안 데 에레라의 고전 건축 부활을 의도한, 스페인 특유의 네오 엘레리아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알베르트 슈페어나,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한 로마의 에우로파와 같은 국제적 고전주의에 뿌리를 둔 이 건축 양식은, 전후 스페인의 공공 건축에서 널리 채택되었다.
3. 2. 십자가
바위산 정상에는 높이 152.4m, 무게 20만 톤의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으며, 50km 떨어진 곳에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웅장하다. 이 십자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십자가 중 하나로, 화강암 능선을 깎아 만든 바예 데 로스 카이도스의 산타 크루스 성당 (Basílica de la Santa Cruz del Valle de los Caídos)과 함께 전몰자의 계곡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십자가는 돌로 건설되었으며, 십자가 안에는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유지 보수 직원만 사용할 수 있다. 십자가 기단에는 후안 데 아발로스의 기념 조각상이 있으며, 계곡과 멀리 떨어진 마드리드 외곽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이 있다.3. 3. 수도원


산 반대편에는 베네딕토회 소속 전몰자의 계곡 성십자가 수도원(Abadía Benedictina de la Santa Cruz del Valle de los Caídos|전몰자의 계곡 성십자가 베네딕토회 수도원es)이 있다. 이곳의 사제들은 스페인 내전과 이후 전쟁, 그리고 스페인 육군이 수행한 평화 유지 임무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안식을 위해 영원한 미사를 드린다. 이 수도원은 왕립 수도원으로 분류된다.[58]
3. 4. 기타 시설
주요 시설로는 3만 평방미터의 산책길, 폭 100미터의 화강암 계단이 있으며, 정면 입구에는 높이 5m, 길이 12m의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피에타 상이 있다. 지하성당의 총길이는 262m이며, 십자가 뒤편에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바실리카와 십자가 기단을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운행된다.[3] 십자가 안에는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유지 보수 직원만 사용이 제한된다.[3]전몰자의 계곡 성십자가 베네딕토회 수도원(Abadía Benedictina de la Santa Cruz del Valle de los Caídoses)은 산 반대편에 위치하며, 스페인 내전과 이후 전쟁, 그리고 스페인 육군이 수행한 평화 유지 임무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이 있다.[3] 이 수도원은 왕립 수도원으로 분류된다.[3]
4. 전몰자 계곡의 상징성
전몰자의 계곡(공식 명칭: Basílica Menor de la Santa Cruzdel Valle de los Caídos)은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전선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국민파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묘지이다. 가운데 150미터 높이의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으며, 성당과 납골당으로 구성되어 있다.[65]
스페인 사람들은 이 기념물이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한 모든 전몰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기념물이 위치한 곳의 이름을 따 '쿠엘가무로스 기념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기념물은 마드리드 인근 다라마 산맥의 쿠엘가무로스 계곡, 엘 에스코리알에서 북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다.
오늘날 스페인의 사회노동당 정권은 전몰자의 계곡을 "민주주의 기념비" 또는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스페인인을 위한" 시설로 재설계하는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정당, 특히 중도 가톨릭 정당은 "전몰자의 계곡"이 이미 민족주의자와 공화국 양측의 군인, 민간인 모든 희생자를 위해 바쳐졌다고 생각하며, 정권의 움직임은 공화국 측만을 위한 재편이라고 간주하고 있다.[60]
4. 1. 프랑코 정권의 상징
1936년 발생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새로운 집단의례를 만들고 자유주의나 공화주의의 상징들을 파시스트 상징들로 교체했다. 프랑코는 에스파냐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동상과 기념물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좌파와 우파 전몰자 모두를 안장할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66]경북대 사학과 황보영조 교수는 《프랑코 정권의 기억 만들기와 그 기억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전몰자의 계곡이 가지는 중요성은 그 상징성에 있다고 보았다. 전몰자의 계곡은 1936년 봉기, 프랑코 군의 승리, 독재 프랑코 체제의 상징이다. 이는 또한 국민군을 선의 수호자로, 공화군을 악의 세력으로 비유하는 역사 인식의 산물이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 따르면 스페인 내전은 해방전쟁이자 이단절멸전쟁이자 교황청의 축복 가운데 치른 악의 세력을 무찌른 십자군 전쟁이었다.[66]
전몰자 계곡은 프랑코의 개인 능이기도 하고 프랑코주의를 그리워하는 집단이나 극우 세력의 성지이기도 하다. 프랑코 체제의 기념일인 7월 18일, 11월 20일 등에는 수도원 공터에서 가톨릭 종교 행사와 정치 집회가 열리는데, 이때는 입장료도 받지 않고 개방한다. 이곳은 프랑코 체제를 그리워하는 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이념을 재확인하는 장소였고, 반대로 좌파 세력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의 장소이다.[66]
계곡 바닥 아래에는 4만 명의 유해가 있으며, 그 이름은 기념비의 명부에 기록되어 있다. 계곡에는 국민파와 공화파의 무덤이 모두 있지만, 석문에 새겨진 헌사는 "Caídos por Dios y por España" (신과 스페인을 위해 쓰러진 자, 이는 프랑코주의 스페인의 모토였기 때문에 비판받고 있다)이며, 프랑코주의 정권의 수많은 상징이 있다. 또한 공화파는 대부분 가족의 동의나 심지어 가족의 인지 없이 이곳에 매장되었으며,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프랑코주의 희생자 33,800명이 매장되어 있으며, 그 가족들은 가족의 유해를 찾는 데 법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12]

4. 2. 국민 통합과 분열
1936년 발생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좌파와 우파 전몰자 모두를 안장할 거대한 무덤인 전몰자의 계곡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1940년에 건립이 승인되었지만, 실제 공사는 1942년에 시작되어 1959년 4월 1일에 완료되었다. 약 20년에 걸친 공사에는 2만여 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스페인 내전의 전쟁 포로와 정치범이었다.[66]황보영조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프랑코 정권의 기억 만들기와 그 기억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전몰자의 계곡이 1936년 봉기, 프랑코 군의 승리, 독재 프랑코 체제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또한 국민군을 선의 수호자로, 공화군을 악의 세력으로 비유하는 역사 인식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 따르면 스페인 내전은 해방전쟁이자 이단 절멸 전쟁이며, 교황청의 축복 가운데 치른 악의 세력을 무찌른 십자군 전쟁이었다.[66]
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의 개인 능이자 프랑코주의를 그리워하는 집단이나 극우 세력의 성지이기도 하다. 프랑코 체제 기념일인 7월 18일, 11월 20일 등에는 이곳에서 가톨릭 종교 행사와 정치 집회가 열렸으며,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이념을 재확인하는 장소였지만, 좌파 세력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의 장소였다.
계곡 바닥 아래에는 4만 명의 유해가 있으며, 국민파와 공화파의 무덤이 모두 있지만, 석문에 새겨진 헌사는 "Caídos por Dios y por España" (신과 스페인을 위해 쓰러진 자)이며, 프랑코주의 정권의 상징이 많다. 공화파는 대부분 가족의 동의나 인지 없이 매장되었으며,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프랑코주의 희생자 33,800명이 매장되어 있으며, 그 가족들은 유해를 찾는 데 법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12]
기념물 건설에는 공화파 정치범들이 강제 동원되었으며, 이들은 정권에 의한 산야 개척과 더불어 자신의 정치 사상을 지키기 위해 부과된 죄의 속죄를 강요당했다.
현재, 전 독재자를 기리는 정치 집회는 2007년 10월 16일 스페인 하원 투표로 금지되었다. 전몰자의 계곡을 운영하는 조직은 내전 시대에 죽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2018년 6월 발족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좌파 스페인 사회노동당 정권은 프랑코의 유해를 전몰자의 계곡에서 이장하는 것을 8월에 각의 결정했고, 9월 13일 스페인 하원은 이를 결의했다.[64]
4. 3. 역사적 기억의 왜곡
황보영조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전몰자의 계곡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군의 승리와 독재 체제를 상징한다. 이곳은 국민군을 선의 수호자로, 공화군을 악의 세력으로 묘사하는 역사 인식의 산물이며, 스페인 내전을 해방전쟁이자 이단 절멸 전쟁, 그리고 교황청의 축복을 받은 십자군 전쟁으로 규정한다.[66]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 개인의 묘지이자 프랑코주의를 그리워하는 극우 세력의 성지이기도 하다. 프랑코 체제 기념일에는 이곳에서 가톨릭 종교 행사와 정치 집회가 열리며, 좌파 세력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의 장소로 여겨진다.
계곡 지하에는 4만 명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으며, 국민파와 공화파 양측의 무덤이 존재한다. 그러나 석문에 새겨진 헌사("Caídos por Dios y por España", 신과 스페인을 위해 쓰러진 자)는 프랑코주의 스페인의 모토였기에 비판받고 있다.[12] 또한, 공화파 유해는 대부분 가족의 동의나 인지 없이 매장되었으며, 프랑코주의 희생자 가족들은 유해를 찾는 데 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12]
기념물은 민족주의적·반공주의적 색채를 띠며, "신과 스페인에 순교한 자들이여!"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프랑코는 승리 1주년 기념일에 이 기념물 건설을 발표했는데, 이는 기념물이 민족주의자만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59]
스페인 국민주의 정권은 "고상하게 일하게 한다"는 모토를 내걸었지만,[63] 죄수의 강제 노동으로 바실리카와 십자가를 건설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죄수 노동자 중에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정치범도 있었으며, 안전 대책 부족으로 인한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 전몰자의 계곡에서 독재자를 기리는 정치 집회는 금지되었으며, 운영 조직은 내전 시대에 죽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2018년, 스페인 하원은 프랑코의 유해를 전몰자의 계곡에서 이장하는 것을 결의했다.[64]
5. 프랑코 사후의 변화와 논쟁
1975년 프랑코 총통 사망 이후 스페인 전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 개인을 위한 전승 기념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카를로스 아리아스 나바로 총리가 이끄는 과도 정부는 이곳을 프랑코의 묘지로 지정했다.[13] 프랑코 가족은 과도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전몰자의 계곡에 묻히는 것에 동의했다.
프랑코가 죽기 전에는 그가 전몰자의 계곡에 묻힐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무덤은 이틀 안에 준비해야 했고, 성당 배관 시스템도 변경해야 했다. 스페인 내전 전사자들은 성당 옆 예배당 뒤 무덤에 안치되었지만, 프랑코는 중앙 제대 뒤, 중앙 본당에 묻혔다. 그의 무덤은 이름과 성이 새겨진 묘비로 표시되어 있으며, 주 제대 합창단 쪽에 있다.[13]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하지 않은 유일한 안장자였다.
프랑코는 산타 크루스 바실리카에 묻힌 두 번째 인물이다. 팔랑헤 운동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1936년 공화 정부에 의해 처형된 후, 프랑코 정부에 의해 제단 본당 쪽에 묻혔다. 프리모 데 리베라는 프랑코보다 39년 전인 1936년 11월 20일에 사망했고, 그의 무덤은 제단 반대편에 있다. 매년 11월 20일은 프랑코 지지자들과 팔랑헤 후계 운동가들이 그들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한 진혼 미사를 올리는 기념일이다.
2009년 11월, 국립 유산 관리청은 보존 문제를 이유로 성당의 무기한 폐쇄를 명령했다.[5] 일부 전문가와 베네딕토 수도회는 이에 반박했고, 보수 여론은 기념물에 대한 괴롭힘 정책으로 간주했다.[34] 2010년 '피에타' 조각상이 망치와 중장비로 해체되기 시작하자, 후안 데 아발로스 재단은 손상을 우려해 스페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35]
2011년 스페인 총선 이후, 2012년 6월 1일 마리아노 라호이의 국민당 정부는 십자가 기단부를 제외하고 기념물을 재개방했다. 2012년 6월 1일부터 입장료는 5유로였고, 2013년 5월 2일 9유로로 인상되었다.[41][42][43] 기념물 케이블카 건물에 위치한 카페 레스토랑도 재개장했다.[45]
5. 1. 민주화 운동과 역사적 기억 복원
1975년 프랑코 총통 사망 이후, 스페인 전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 개인을 위한 전승 기념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프랑코독재희생자가족회>, <프랑코체제반대투쟁복원회>, <역사적기억복원회> 등 10여 개의 단체들은 프랑코 체제 처벌과 희생자 인정을 요구하며, 프랑코가 말살한 역사적 기억을 복원하는 '역사적 기억 복원 작업'을 주도했다.[67] 이 작업은 2004년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가 집권하면서 탄력을 받았다.2006년 3월 17일, 유럽 평의회 상설위원회는 프랑코 정권에 대한 처벌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스페인 정부에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예우를 촉구했다.[67] 이 기구는 7월 18일을 프랑코 정권 처벌의 날로 지정하고, 전몰자의 계곡에 독재 탄압 관련 상설 전시장을 설치하며, 희생자 기념비 건립 및 범죄 조사를 요구했다.[67] 이들은 정부에 전몰자의 계곡에서 프랑코 묘 이전을 요구했으나, 프랑코 유족 측의 반대와 국민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오늘날 스페인의 사회노동당 정권은 전몰자의 계곡을 "민주주의 기념비" 또는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스페인인을 위한" 시설로 재설계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정당, 특히 중도 가톨릭 정당은 전몰자의 계곡이 이미 양측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공화국 측만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60]
5. 2. 프랑코 묘 이장 논쟁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사회노동자당 (PSOE) 정부는 역사적 기억법에 따라 2011년 5월 27일 전몰자의 계곡의 미래를 위한 전문가 위원회를 설립했다.[14] 이 위원회는 2011년 11월 29일, 계곡을 "내전과 그 이후 프랑코 정권의 희생자들을 존중하고 재활하는 기억의 중심지"로 전환하기 위한 자문을 제공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15] 위원회의 주요 제안은 프랑코의 유해를 가족이 선택할 장소에 재매장하기 위해 계곡에서 발굴하는 것이었지만, 먼저 이러한 조치에 대한 광범위한 의회 합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위원회는 프랑코가 내전에서 사망하지 않았다는 점과 위원회의 목표가 계곡이 내전에서 사망한 양측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같이 결정했다. 프리모 데 리베라와 관련해서는, 그가 내전의 희생자였으므로 그의 유해는 계곡에 남겨두되, 갈등 중에 사망한 다른 사람들의 유해와 동등한 위치로 바실리카 영묘 내로 옮겨야 한다고 권고했다.1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 중 3명은 프랑코의 유해를 계곡에서 발굴하는 것에 반대하는 공동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그러한 조치가 스페인 사회를 더욱 "분열시키고 긴장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16]
2019년 3월 15일,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프랑코가 엘 파르도의 밍고루비오 묘지에 부인 카르멘 폴로와 함께 발굴되어 재매장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9][20] 2019년 6월 4일, 대법원은 발굴 반대 항소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발굴을 만장일치로 중단했다.[22][23][24]
2019년 9월 24일, 대법원은 발굴에 찬성하는 만장일치 판결을 내리고 프랑코 가족이 제기한 주장을 기각했다.[25] 2019년 10월 24일, 프랑코의 유해가 안치된 관이 전몰자의 계곡 바실리카에서 발굴되었다. 관은 독재자의 가족 구성원들이 광장으로 옮겼고, 그들은 관을 운반하는 동안 "¡비바 에스파냐! ¡비바 프랑코!" (스페인 만세! 프랑코 만세!)라고 외쳤다. 이후 헬리콥터로 엘 파르도 밍고루비오 시립 묘지로 운송되어 프랑코는 부인 카르멘 폴로와 함께 재매장되었다. 프랑코 가족은 1981년 2월 23일 실패한 군사 쿠데타 당시 스페인 의회를 폭력적으로 습격한 안토니오 테헤로 민병대 중령의 아들이자 안달루시아 교구 사제인 라몬 테헤로를 재매장식 미사 집전자로 선택했다.[26]
5. 3. 2019년 프랑코 유해 이장
2019년, 스페인 정부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유해를 전몰자의 계곡에서 엘 파르도의 밍고루비오 묘지로 이장하기로 결정했다.[19][20] 이는 오랜 논란 끝에 이루어진 조치였다.프랑코는 1975년 사망 이후 전몰자의 계곡 내 바실리카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의 무덤은 주 제단 성가대 쪽에 이름만 새겨진 간소한 묘석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13] 그러나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하지 않았고, 전몰자의 계곡은 내전 희생자들을 위한 장소여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16]
2011년, 전문가 위원회는 프랑코의 유해를 이장하고, 전몰자의 계곡을 내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14][15] 그러나 이 문제는 정치적 갈등을 야기하며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다.
2019년 3월,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프랑코 유해 이장을 공식 발표했다.[19][20] 프랑코 가족과 일부 단체들은 반발했지만,[21] 2019년 9월, 대법원은 이장에 찬성하는 판결을 내렸다.[25]
2019년 10월 24일, 프랑코의 유해는 전몰자의 계곡에서 발굴되어 밍고루비오 묘지에 있는 그의 부인 카르멘 폴로 옆에 재매장되었다.[26] 이장 과정에서 프랑코 지지자들은 "스페인 만세! 프랑코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26]
프랑코 유해 이장은 스페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과거사 청산과 역사적 기억 회복을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6. 한국의 관점과 시사점
전몰자의 계곡 사례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과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교훈과 시사점을 제시한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등 역사적으로 큰 시련을 겪으며 수많은 희생자를 겪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전몰자의 계곡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를 안겨준다.
특히, 한국은 전몰자의 계곡과 같이 국가적 기념 시설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이러한 시설을 통해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전몰자의 계곡과는 달리,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은 전몰자의 계곡 사례를 참고하여,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인 역사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몰자의 계곡 사례는 한국 사회에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교훈과 시사점을 제공한다.
7. 논란
이 기념물은 프랑코 정권의 강제 노동 동원과 스페인 내전 희생자 안치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논란에 직면해 있다.
기념물 건설에는 공화파 수감자들을 포함한 죄수 노동이 사용되었으며, 당시 스페인 법은 죄수들이 노동을 통해 형기를 감면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28],[29] 하루 노동에 대해 이틀의 형기 감면이 주어졌고, 성당 노동의 경우 6일로 늘어났다.[30] 또한, 죄수 가족들은 계곡 내 주택과 가톨릭 학교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은 품행이 좋은 죄수에게만 주어졌으며, 작업 환경은 저보안으로 간주되었다. 국민주의 정부는 "노동은 고귀하게 한다"(el trabajo ennoblecees)는 좌우명을 사용했다. 최대 20,000명의 수감자가 기념물 건설에 동원되었고, 강제 노동이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9] 공식 기록에 따르면 2,643명의 노동자가 건설에 참여했으며, 이 중 243명이 죄수였다. 18년의 건설 기간 동안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공식적으로 14명이었다.[30]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스페인 사회주의 정부는 공공장소에서 프랑코주의 상징을 제거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는 기념물과의 관계에서 긴장을 야기했다.[31] 2007년 역사 기억법에 따라 프랑코를 기념하는 정치 집회는 금지되었고, 기념물 관리 기관은 내전 희생자 모두의 기억을 기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했다.[31] 기념물을 "민주주의 기념물"로 재지정하려는 제안도 있었지만, 이미 양측 희생자 모두를 위해 헌정되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2022년 10월 민주 기억법은 전몰자의 계곡을 민간 묘지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프리모 데 리베라의 가족은 그의 유해를 성 이시드로 묘지로 이장했다.[33]
현재 전몰자의 계곡에는 4만 구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으며, 각 유해의 이름은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이 계곡에는 민족주의자와 공화파 병사 모두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기념물은 민족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색채를 띤다. 이는 프랑코의 민족주의 정권과 가톨릭 교회의 강한 결합을 반영하며, "신과 스페인에 순교한 자들이여!"(¡Caídos por Dios y por España!es)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프랑코는 이 기념물을 민족주의자만을 위해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59]
오늘날 스페인 사회노동당 정권은 전몰자의 계곡을 "민주주의 기념비"로 재설계하는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정당들은 "전몰자의 계곡"이 이미 양측 희생자 모두를 위해 바쳐졌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움직임을 공화파만을 위한 것으로 간주한다.[60]
건설 사업은 20,000명의 공화파 정치범의 강제 노동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중 14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당했다. 강제 노동자들은 "스스로 속죄하고, 죄를 자각하는" 기회를 갖도록 의도되었다.[62]
2018년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좌파 정권은 프랑코의 유해를 전몰자의 계곡에서 이장하는 것을 결정했고, 스페인 하원은 이를 승인했다.[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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