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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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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는 스페인의 정치인으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스페인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바야돌리드에서 태어나 레온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986년 하원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후,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이라크 주둔군 철수, 동성 결혼 합법화, 성 정체성 법안 통과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2011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국무원 위원, 문화 외교 연구소 자문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베네수엘라 중재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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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로마자 표기Jose Lluise Rodurigese Sappatelo
2011년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2011년의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출생일1960년 8월 4일
출생지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 바야돌리드
정당스페인 사회노동당 (1979년~)
배우자손솔레스 에스피노사 (1990년 결혼)
자녀2명
학력레온 대학교
서명
주요 경력
소속 정당스페인 사회노동당
직업정치인
총리 임기2004년 4월 17일 ~ 2011년 12월 21일
국왕후안 카를로스 1세
제1 부총리마리아 테레사 페르난데스 데 라 베가
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
엘레나 살가도
제2 부총리페드로 솔베스
엘레나 살가도
마누엘 차베스
총리 이전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 이후마리아노 라호이
사회노동당 사무총장2000년 7월 22일 ~ 2012년 2월 4일
사무총장 이전호아킨 알무니아
사무총장 이후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
야당 대표2000년 7월 22일 ~ 2004년 4월 16일
야당 대표 이전루이스 마르티네스 노발
야당 대표 이후마리아노 라호이
하원 의원 (마드리드 선거구)2004년 3월 24일 ~ 2011년 9월 27일
하원 의원 (레온 선거구)1986년 7월 9일 ~ 2004년 8월 2일
참고
이름 정보이며, 오디오 파일에서 들을 수 있음.}}
역대 총리 정보총리 연대기

2. 개인 생활 및 어린 시절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는 1960년 8월 4일 바야돌리드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가족은 레온 출신이며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부유한 좌파 성향의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후안 로드리게스 이 가르시아-로자노(1928년 출생)는 유명한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마리아 데 라 푸리피카시온 사파테로 발레로(1927년 ~ 2000년)이다. 사파테로가 바야돌리드에서 태어난 것은 어머니가 그곳에 사는 가족들과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였던 외할아버지의 직업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및 형과 정치, 법, 문학에 대해 늦은 밤까지 토론하곤 했다고 회고했지만, 때때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사파테로가 자신의 법률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는 그에게 상처로 남았다고 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관대함, 사려 깊음, 신중함, 검소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사파테로의 정치적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그의 할아버지 후안 로드리게스 이 로자노(1893년 ~ 1936년)이다. 그는 스페인 공화국 육군의 대위이자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인 1936년 8월,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민파에 합류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할아버지의 기억은 그가 처형되기 24시간 전에 남긴 마지막 유언을 통해 가족에게 생생히 전해졌다. 유언에는 재산 상속, 시민 장례 요청, 자신을 처형한 이들에 대한 용서, 그리고 최고 존재에 대한 믿음 고백과 함께, 자신의 신념이 "평화, 선함, 그리고 하층 계급의 생활 조건 개선에 대한 사랑"에 있음을 밝히며 가족에게 자신의 명예를 회복해달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스페인의 일부 보수파 역사학자들은 사파테로 역시 할아버지처럼 프리메이슨 회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외조부 파우스티노 발렌틴 사파테로 발레스테로스(1899년 ~ 1978년)는 소아과 의사였으며 중산층 자유주의자였다. 외할머니 마리아 데 라 나티비다드 발레로 이 아센시오(1902년 ~ 2006년)는 보수적인 성향이었으며 103세까지 장수했다.

이스라엘 신문 마아리브는 사파테로가 자신의 가족(사파테로 가문)이 유대인 후손, 아마도 강제 개종한 유대인인 마라노 출신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종교적으로 불가지론자이다.

사파테로는 1966년 9월 레온에 있는 기독교 초등학교 '디스시풀라스 데 헤수스'(es)에 입학했고, 1970년 9월에는 사립 중등학교인 '콜레히오 레오네스'(es)에 들어갔다. 이후 레온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1982년에 졸업했다. 대학 입학 전 성적은 평균 이상이었으나, 그의 형 후안에 따르면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학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학창 시절 그는 중국소련토지개혁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1986년까지 레온 대학교에서 헌법학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1991년까지는 주당 몇 시간씩 무보수로 강의를 계속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정식 선발 과정 없이 임용되었다며 정치적 특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파테로 자신은 정치가 아니라면 가르치는 일이나 학문 연구가 자신을 가장 매료시키는 활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86년 스페인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1991년 레온 대학교 법률 고문단은 그가 교수와 하원의원직을 겸직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대학 측은 그의 교수 계약을 종료했다.

사파테로는 대학생 시절인 1981년 레온에서 손솔레스 에스피노사를 만났다. 그녀는 장교 라파엘 에스피노사 아르멘다리스의 딸이다. 두 사람은 1990년 1월 27일 결혼하여 두 딸 라우라(1993년생)와 알바(1995년생)를 두었다. 그의 가족은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두 딸의 사진 역시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생 및 조교수 신분으로 징병을 연기하다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의무 군 복무를 최종적으로 면제받았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코 총통 사망 후 첫 민주 선거가 치러진 1977년, 17세의 사파테로는 펠리페 곤살레스가 이끄는 사회노동당의 정치 집회에 참가했고, 이듬해인 1978년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3. 정치 경력

사파테로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 정부군 대위였던 할아버지가 프랑코 측에 처형된 좌파 성향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다. 1976년 스페인 사회노동자당(PSOE) 정치 집회에서 펠리페 곤잘레스의 연설에 감명받아 정치에 입문했으며, 1979년 PSOE에 정식 입당했다.

레온 대학교 법학부 졸업 후 1986년, 26세의 나이로 스페인 역사상 최연소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레온주 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지역 기반을 다졌고, 1997년 당 중앙 집행부 위원으로 선출되어 중앙 정치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사회노동당이 2000년 총선에서 국민당에 연이어 패배하자 당내 세대교체 요구가 높아졌고, 같은 해 7월 사파테로는 39세의 나이로 당 서기장(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그는 영국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노선에 영향을 받은 Nueva Vía|누에바 비아es(새로운 길)를 제시하며 당의 변화를 이끌었다.

야당 대표 시절(2000-2004)에는 '침착한 야당'(Oposición Tranquila|오포시시온 트란킬라es) 전략을 표방하며 아스나르 정부와 주요 현안에서 대립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한 정부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반전 여론을 이끌었다.

2004년 스페인 총선 직전 발생한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사건과 이에 대한 당시 정부의 대응[21][23][24] 논란 속에 사회노동당은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26] 2004년 4월 총리로 취임한 그는 공약대로 이라크 주둔 스페인군 철수를 단행하고, 동성결혼 합법화 등 진보적인 사회 개혁을 추진했다.

2008년 스페인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2기 집권 기간은 세계 금융 위기와 유럽 국가 부채 위기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 속에 진행되었다. 높은 실업률과 재정 악화 문제에 직면한 그는 2011년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같은 해 11월 조기 총선에서 국민당에 패배하며 7년간의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3. 1. 초기 정치 활동 (1979-2000)

사파테로바야돌리드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레온 출신으로 전통적인 좌파 성향의 집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스페인 내전 초기인 1936년에 프랑코 장군 측에 의해 처형된 공화국 정부군 대위였다. 이러한 가족 배경은 그의 정치적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1976년, 사파테로는 히혼에서 열린 스페인 사회노동자당(PSOE)의 정치 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PSOE는 아직 합법 정당이 아니었지만(1977년 2월 합법화), 이 집회에서 미래의 스페인 총리가 될 펠리페 곤잘레스의 연설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곤잘레스는 PSOE가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과 생산 수단 변혁을 목표로 하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경험은 사파테로가 프랑코 독재 시절 유일하게 조직되었던 공산당 대신 PSOE가 스페인 좌파의 미래라고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코 사후 첫 민주 선거가 열린 1977년, 사파테로는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 모두를 지지하며 두 정당의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그는 결국 1979년 2월 23일, 만 18세의 나이에 PSOE에 입당했다. 펠리페 곤잘레스의 영향이 입당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같은 해 PSOE는 특별 의회를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당의 이념적 기반에서 제외했다. 그는 부모님이 너무 어리다고 걱정할 것을 우려해 입당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982년, 사파테로는 레온주의 사회주의 청년 조직 책임자가 되었다. 그해 여름, 그는 펠리페 곤잘레스를 만나 1982년 총선을 앞두고 PSOE의 정치 노선을 더 좌클릭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곤잘레스는 오히려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했다.

사파테로(Zapatero)가 1988년 사회노동당(PSOE) 동료 의원들과 의회 회의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1986년 6월 20일 총선에서 사파테로는 레온 주 대표로 스페인 하원 의원에 당선되어 당시 최연소(만 26세) 의원이 되었다. 그는 이후 1989년, 1993년, 1996년, 2000년 총선에서도 레온 지역구 명단 1순위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당시 자신을 "좌파 보수주의자"라고 정의하며,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한 좌파로서의 가족사와 스페인 좌파의 현대화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1988년, 사파테로는 복잡한 내부 권력 다툼 끝에 레온주 PSOE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지역 당 조직의 오랜 분열을 수습하고 안정기를 이끌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PSOE는 알폰소 게라 전 부총리를 따르는 강경 좌파 성향의 '게리스타스'와 펠리페 곤잘레스 총리가 이끄는 실용주의적 '개혁파'로 나뉘어 있었으나, 사파테로는 어느 파벌에도 공식적으로 속하지 않았다.

1993년에는 레온 사회주의 연맹(FSL)에서 일부 지역의 당원 수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하는 스캔들이 발생했다. 이는 중앙당의 '게리스타스' 세력이 지역 당 장악을 위해 허위 당원을 등록시킨 것이라는 의혹을 낳았다. 사파테로는 당시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 지도부를 지지하며 지역 '게리스타스'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엘 파이스, 디아리오 데 레온 등 유력 언론들이 그의 레온 대학교 조교 임명 과정(1991년까지 재직)에 정치적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파테로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부인하며 지역 당권 다툼과 연관된 음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그는 1994년 7월, 허위 당원 문제가 정리된 후 치러진 지역 당 대회에서 68%의 지지를 얻어 레온 사무총장직을 지켜냈다.

1995년 지방 선거에서 PSOE는 레온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이는 당시 좋지 않았던 경제 상황과 당을 둘러싼 부패 스캔들의 영향이 컸다. 사파테로는 이 선거 운동을 직접 지휘했다. 1996년 총선에서는 아스나르가 이끄는 국민당에 패배하여 PSOE가 정권을 내주었지만, 사파테로는 의원직을 유지했다.

1997년, 사파테로는 레온 사무총장으로 다시 선출되었고, 같은 해 열린 당 전국 대회를 통해 중앙 집행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중앙 정치 무대에서의 입지를 넓혔다. 1999년 12월, 의회 기자 협회는 그의 활발한 의정 활동을 인정하여 '올해의 유망한 의원'(Diputado Revelación) 상을 수여했다. 이 시기 그의 주요 활동으로는 정부의 전기 부문 정책 반대(특히 레온 지역의 주요 산업인 석탄 부문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 국회 공공 행정 위원회에서 PSOE 대변인 역할 수행 등이 있었다. 특히 1999년 11월에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을 위해 싸웠던 비전문 군인들의 연금을 전문 군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예산 수정안 통과를 주도하며 주목받았다.

2000년 3월 총선에서 PSOE가 국민당에 다시 패배하자, 당내에서는 세대교체와 노선 전환의 요구가 높아졌다. 같은 해 7월 22일 열린 당 정례 회의에서 사파테로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당 서기장(중앙 집행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는 영국의 블레어 총리가 내세운 "제3의 길" 노선에 영향을 받아 Nueva Vía|누에바 비아es(새로운 길)를 주창하며 당내 신세대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3. 2. PSOE 사무총장 선출 (2000)

2000년 3월 12일, 스페인 사회노동자당(PSOE)은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가 이끄는 국민당에게 총선에서 두 번째 연속으로 패배했다. 사파테로 자신은 의석을 유지했지만, 사회당 전체적으로는 1996년보다 16석 줄어든 125석을 얻는 데 그쳤다. 특히 예상과 달리 국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면서 사회당의 패배는 더욱 뼈아팠다. 당시 사회당 대표였던 호아킨 알무니아는 선거 당일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알무니아의 사임 이후, 사파테로는 그해 6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사회당 제35차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2000년 4월, 그는 다른 사회주의 당원들과 함께 당내에 '누에바 비아'(Nueva Vía|누에바 비아es, 새로운 길)라는 새로운 파벌을 만들었다. '누에바 비아'라는 이름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내세운 "Third Way|제3의 길영어"(tercera víaes)과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Neue Mitte|노이에 미테de"(nuevo centro|누에보 센트로es, 새로운 중도) 개념을 참고한 것이었다.

2000년 6월 25일, 사파테로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레온에서 열린 사회당 특별 전당대회에서 연방 사무총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제시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인종이나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외국인을 포용하는 사회 건설
  • 교육 우선 투자 및 청년 일자리 창출
  • 부모가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노인을 돌볼 수 있는 환경 조성
  • 문화 지원 및 창작자 육성
  • 국제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국가를 돕는 존경받는 스페인 건설
  • 진취적이고 기업가적인 활동 지원
  • 민주주의 발전 및 가치 중심 정치 추구


당시 사회당 내 유력 인사들 중 파스쿠알 마라갈만이 전당대회 전에 사파테로 지지를 공식 선언했고, 호세프 보렐 역시 그를 지지했다.

사파테로는 당 대표 경선에서 세 명의 경쟁자와 맞붙었다: 호세 보노, 로사 디에스, 마틸데 페르난데스.[7] 마틸데 페르난데스는 당내 전통적 좌파 성향의 '게리스타스'(Gueristases)를 대표했고, 호세 보노는 중도 개혁 성향의 '개혁가'(Reformerses) 진영의 후보였다. 로사 디에스는 바스크 지역 정치인으로 중간 지대에 위치했다. 사파테로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경험이 부족했지만, 개혁적인 이미지와 후보 중 유일한 국회의원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스페인 정치에서는 야당 지도자가 총선 승리 전에 국회의원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특히 호세 보노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게리스타스' 진영이 사파테로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2000년 7월 22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사파테로는 총 995표 중 414표를 얻어 405표를 얻은 호세 보노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새로운 당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8] 표 차이는 적었지만, 다른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결선 투표 시 차선책으로 사파테로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 그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사파테로는 1차 투표 직후, 경쟁자인 보노와의 결선 투표를 치르지 않기로 합의하며 통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무총장 당선 후, 그는 프랑스 총리 리오넬 조스팽,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그리고 당시 스페인 총리였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이후 사파테로는 가족과 함께 마드리드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중앙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3. 3. 야당 대표 시절 (2000-2004)

2000년 7월 22일, 스페인 사회노동자당(PSOE) 정례 회의에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는 39세의 나이로 서기장(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이는 1996년과 2000년 총선에서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가 이끄는 국민당에 연달아 패배한 이후, 당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사파테로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내세운 "제3의 길"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길"(Nueva Vía|누에바 비아es)을 주창하며 당내 신세대 대표로 부상했다.

사파테로는 야당 대표로서 대화를 정치 활동의 기초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을 당시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의 "오만하고 권위적인" 방식과 대조하며 차별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침착한 야당'(Oposición Tranquila|오포시시온 트란킬라es)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는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국민에게 최선이 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대화에 열려 있고", "부드러우며", "건설적인" 태도('talante constructivo', 줄여서 'talante')를 지향하는 전략이었다. 사파테로가 이 'talante'를 자주 강조하면서 이 단어는 스페인 사회에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화적인 태도 때문에 초기에는 '밤비'나 '소소맨'(dull man)과 같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파테로는 자신의 정치 철학이 공화주의, 특히 정치 철학자 필립 페팃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엘 문도''와의 인터뷰에서 시민 공화주의가 강조하는 시민적 덕목이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관용 및 정치 참여 확대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9]

사파테로가 야당 대표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좌우 진영 간의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사파테로 지지자들은 이러한 긴장의 책임이 국민당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반대로 국민당 측은 이라크 전쟁 전후로 자신들을 향한 비난과 공격이 증가했다며 사파테로를 비판했다.[10] 이 시기 스페인 사회의 분열 양상을 나타내는 '게라시빌리스모'(guerracivilismoes, 스페인 내전을 연상시키는 내전주의)[11]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사파테로는 아스나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정부가 화석 연료 가격 상승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며 관련 세금 인하를 요구했다. 2000년 영국 핵 잠수함 HMS 타이어리스가 원자로 수리를 위해 지브롤터 항구에 정박했을 때, 아스나르 총리는 국민에게 위험이 없다고 밝혔으나, 사파테로는 영국 정부에 잠수함 이동을 강력히 요구하지 못한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타이어리스'는 약 1년 후 수리를 마치고 별다른 문제 없이 지브롤터를 떠났다.[12][13]

에브로강 물을 스페인 남동부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대규모 수자원 계획(National Hydrological Plan) 역시 주요 쟁점이었다. 이 계획은 일부 사회주의 정치인들과 엑스트레마두라, 안달루시아, 카스티야-라 만차 등 사회당 소속 지방 정부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사파테로는 환경 파괴 우려와 물 부족 가능성을 이유로 아라곤의 사회당 지방 정부, 환경 단체 등과 함께 계획에 강력히 반대했다. 국민당 정부는 이 계획을 승인했지만, 사파테로는 훗날 총리가 되자마자 이 계획을 취소했다. 반면, 사파테로는 2000년 12월 8일 서명된 "테러에 반대하는 자유 협약"(Pacto de las Libertades contra el Terrorismoes)에는 주요 지지자로 참여했다.

2000년 말, 광우병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사파테로는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15]

2001년에는 국민당 정부가 추진한 교육 개혁, 특히 대학 시스템을 변경하는 LOU(Ley Orgánica de Universidadeses)와 중등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LOCE(Ley Orgánica de Calidad de la Educaciónes, 교육 품질 유기법)에 대해 사파테로는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국민당은 의회 절대 다수 의석을 이용해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같은 해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 사회노동당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5월 바스크 지방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소폭 상승했으나 의석을 하나 잃었고, 국민당과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정당의 집권을 막지 못했다. 선거 패배 이후 바스크 사회당 대표였던 니콜라스 레돈도 테레로스는 내부 갈등 끝에 사임했고, 사파테로를 지지했던 파트치 로페스가 후임으로 선출되었다. 10월 갈리시아 지방 선거에서도 의석을 2석 늘리는 데 그쳐, 마누엘 프라가 이리바르네가 이끄는 국민당의 절대 다수 집권을 저지하지 못했다. 연이은 선거 부진은 사파테로의 '침착한 야당' 전략의 효과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2001년 12월, 모로코 정부가 스페인 대사를 추방하는 외교적 갈등이 발생하자 사파테로는 모로코를 방문했다. 국민당 사무총장 하비에르 아레나스는 이를 스페인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했지만, 사파테로는 위기 해결을 돕기 위한 방문이었다고 반박했다.

2002년, 사파테로는 차기 총선에서 사회노동당 총리 후보로 공식 선출되었다. 그해 국민당 정부가 실업 수당 제도를 개혁('Decretazo')하려 하자, 사파테로는 이를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는 조치로 규정하고 강력히 반대하며 야당의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 이는 아스나르 정부와의 첫 번째 주요 충돌 지점이 되었다. 6월 20일에는 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벌어졌고, 사파테로와 노동조합은 파업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결국 정부는 11월에 노동조합과 합의에 이르렀다.

같은 해 5월, 펠리페 곤잘레스 전 총리는 공개 석상에서 사파테로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며 "내 마음의 상태는 변화가 있었고, 아마도 두 번째 수레즈가 일어났지만 내용과 아이디어가 담긴 새로운 프로젝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고 발언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사파테로는 침착하게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곤잘레스는 다음 날 자신의 발언이 잘못 해석되었다며 물러섰다. 10월 국가 예산 토론에서는 당초 예정되었던 조르디 세비야 대신 사파테로가 직접 연설에 나서 아스나르 총리와 설전을 벌였는데, 이는 그의 정치적 결단력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2002년 11월, 유조선 '프레스티지'호가 갈리시아 연안에서 침몰하여 심각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16] 사파테로는 사고 발생 전후 정부의 미흡한 대응과 정보 은폐 의혹을 강하게 비판하며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17]

아스나르 정부와의 가장 큰 대립 지점은 이라크 전쟁이었다. 스페인 국민의 압도적 다수(약 90%)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사파테로는 사담 후세인 정권에 대한 군사 개입은 국제법 위반이며 선제 전쟁 개념 자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스나르 정부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참전을 결정하자, 사파테로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반전 운동의 선두에 섰다.

2003년 5월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이던 스페인 군인들을 태운 야코블레프 야크-42 군용기가 터키에서 추락하여 62명의 군인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파테로는 정부가 비행기의 안전 및 보험 문제를 소홀히 다루었다고 비판하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18] 훗날 시신 신원 확인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18][19]

유럽 헌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도 사파테로는 국민당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였다. 국민당 정부가 2001년 니스 조약에서 확보한 스페인의 의결권 비중을 유지하려 한 반면, 사파테로는 유럽 통합을 위해 스페인이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년 5월 25일에 치러진 지방 및 지역 선거에서 사회노동당은 전체 득표수에서는 국민당을 앞섰으나, 의석수에서는 뒤처졌다. 특히 마드리드에서는 연합 좌파와의 연정을 통해 집권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으나, 사회노동당 소속 의원 2명(에두아르도 타마요, 마리아 테레사 사에스)이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하면서 연정 구성이 무산되는 이른바 '마드리드 의회 스캔들'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0월에 재선거가 치러졌고, 국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사파테로는 이 사건의 배후에 좌파 정부 출범을 막으려는 부동산 투기 세력의 음모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국민당은 마드리드 지부 내 권력 다툼 과정에서 사파테로 측의 약속 파기가 원인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스캔들은 사파테로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주었다.

같은 해 11월 카탈루냐 지방 선거에서도 카탈루냐 사회주의자당(PSC)은 득표율 1위를 기록했지만, 의석수에서는 민족주의 정당인 수렴과 연합(CiU)에 밀렸다. 하지만 카탈루냐 공화 좌파(ERC), 카탈루냐 녹색당-대안좌파 연합(ICV)과의 좌파 연정을 통해 파스쿠알 마라갈이 주 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연정 파트너인 ERC의 대표 호셉 루이스 카로드-로비라가 분리주의 무장 단체 ETA 조직원과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사실이 2004년 1월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또 다른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카로드-로비라는 카탈루냐 내에서 ETA 활동 중단을 조건으로 정치적 지원을 약속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실제로 ETA는 총선 전 카탈루냐 지역에 한정된 휴전을 선언했다. 이 사건은 ETA 문제에 민감한 스페인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고, ERC와의 연정 가능성이 거론되던 사파테로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3년 말부터 2004년 초까지 각 정당은 2004년 3월 총선 준비에 돌입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국민당의 재집권을 예측하며 사파테로와 사회노동당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3. 4. 총리 재임 (2004-2011)

2000년 7월 스페인 사회노동자당(PSOE) 서기장으로 선출된 사파테로는 2004년 3월 14일 실시된 2004년 스페인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의 총리 후보로 나섰다.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는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가 이끄는 국민당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선거 사흘 전인 3월 11일 발생한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사건이 판세를 뒤바꾸었다. 사건 초기 ETA의 소행으로 몰아갔던 아스나르 정부의 대응[22]과 정보 통제 시도[23][24]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21], 사회노동당은 예상을 깨고 하원 350석 중 164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26] 사파테로는 4월 16일 하원에서 총리로 선출되었고, 다음 날인 4월 17일 공식 취임했다.

취임 직후 사파테로는 선거 공약대로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스페인군 철수를 명령하여 아스나르 정부의 친미 노선과 차별화를 꾀했다. 이는 국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집권 1기 동안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 여성 및 가족 정책 강화 등 진보적인 사회 개혁을 추진하며 젊은 층의 지지를 얻었다.

2008년 3월 2008년 스페인 총선에서는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인한 경제 침체 우려 속에서 접전을 벌였으나, 사회노동당은 다시 승리하여 사파테로는 재선에 성공했다. 2기 내각에서는 각료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등 진보 노선을 이어가는 한편,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여 2009년 아프가니스탄 증파 결정 및 미국 공식 방문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2기 집권 기간 동안 경제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유럽 국가 부채 위기 속에서 스페인의 재정 악화 문제가 부각되었고, 실업률은 2007년 말 9% 전후에서 2011년 3/4분기에는 21.5%가 되는 등[28] 경제 운용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사파테로는 2011년 4월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같은 해 7월에는 2012년으로 예정되었던 총선을 앞당겨 2011년 11월 20일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선거에서 사회노동당은 마리아노 라호이가 이끄는 국민당에 대패했고, 사파테로 정부는 7년 만에 막을 내렸다.

3. 4. 1. 주요 정책

사파테로 정부는 이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가 이끈 국민당 정부와 차별화되는 정책 노선을 추구했다. 2004년 총선 캠페인 당시부터 변화를 예고했으며, 집권 후에는 국내외 정책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2004년 총선 공약'''[20]

2004년 총선 당시 사파테로와 스페인 사회노동자당은 다음과 같은 주요 공약을 제시했다.

  • 주택 정책: 매년 180,000채의 새 주택을 매입 또는 임대 방식으로 공급
  • 재정 정책: 적자 없는 균형 예산 유지 (단, 국민당보다 유연한 접근 방식)
  • 교육 정책: 이중 언어 교육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해당 지역의 공식 지역 언어) 강화, 학생 2명당 컴퓨터 1대 보급
  • 사법/행정 개혁: 소송 절차 또는 재정적 보상에 대한 처리 기간을 최대 2년으로 제한
  • 과학 기술: 연구 개발(R&D) 투자 증대
  • 언론 정책: 국영 텔레비전 회사 이사진이 의회에 책임을 지도록 하여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강화


'''주요 정책 실행'''

  • 외교 및 안보 정책:
  • 이라크 철군: 취임 직후인 2004년 4월 18일, 이라크에 파병된 스페인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명령했다. 이는 선거 공약 이행이자 아스나르 정부의 친미 노선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조치로, 국제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21][22][23][24][25][26][27] 아스나르 정부가 미국, 영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우선시하며 이라크 전쟁 참전을 결정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 대미 관계: 1기 정부에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가 소원했으나, 2기 들어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2009년 9월에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증파를 결정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취임 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 테러 대응: "테러에 대해 유약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특히 ETA 등 스페인의 통합을 위협하는 분리주의 운동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천명했다.

  • 사회 정책:
  • 동성결혼 합법화: 2005년, 가톨릭 교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스페인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로 만들었으며, 사파테로 정부의 대표적인 진보적 개혁으로 평가받는다.
  • 여성 및 가족 정책: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2기 내각에서는 각료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임명하며 이러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가족 정책에서도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러한 사회 개혁 정책들은 젊은 세대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 경제 정책:
  • 1기 정부는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유지했으나, 2기 집권 시기인 2008년 이후 세계 금융 위기와 유럽 국가 부채 위기의 여파로 스페인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 실업률이 급증하여 2007년 말 9% 전후였던 것이 2011년 3분기에는 21.5%까지 치솟는 등 경제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28] 재정 악화 문제도 심화되어 긴축 정책을 시행해야 했다.
  • 경제 위기 심화와 높은 실업률은 정권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결국 2011년 조기 총선 실시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3. 4. 2. 평가

정권 출범 초기에는 다소 가볍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동성 결혼 합법화, 여성 정책, 가족 정책 등 진보적인 사회 개혁을 추진하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넓혀갔다. 특히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 노선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길" (Nueva Vía|누에바 비아es)을 내세우며 당내 신세대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2004년 스페인 총선에서는 선거 직전 발생한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사건과 이에 대한 당시 국민당 정부의 미흡한 대처[21][23][24]가 선거 판세를 뒤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 예상을 뒤엎고 사회노동당의 승리를 이끌었다.[26] 그는 취임 직후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스페인군 철수를 단행했는데, 이는 아스나르 정권의 친미 일변도 외교 노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로 평가받으며 국제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테러에 대해 유약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거나 "스페인의 통일을 위협하는 지역 민족주의자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 (ETA)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집권 1기에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어려움을 겪으며 외교 분야가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2008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에는 내각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 기조를 이어갔고, 2009년에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증파를 결정하고 미국을 공식 방문하는 등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하지만 집권 2기 들어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이어진 유럽 부채 위기의 여파로 스페인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면서 국정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 말 9% 전후였던 실업률이 2011년 3분기에는 21.5%까지 치솟는 등 경제난이 심화되자, 결국 2012년으로 예정되었던 총선을 앞당겨 2011년 11월에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선거에서 사회노동당은 마리아노 라호이가 이끄는 국민당에 대패하며 7년 만에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3. 5. 총리 퇴임 이후 (2011-)

사파테로 2기 정권 시기에는 경제 위기가 심화되었고, 2010년 이후 유럽 국가 부채 위기 속에서 스페인의 재정 악화 문제가 부각되었다. 2007년 말 약 9%였던 실업률은 2011년 3분기에 21.5%까지 치솟는 등 경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파테로는 2011년 4월,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5월 22일에 치러진 자치주 및 지방 선거에서 사회노동당이 역사적인 참패를 당하자, 야당의 조기 총선 실시 요구를 수용하여 2012년으로 예정되었던 총선을 앞당겨 2011년 11월 20일에 실시하기로 발표했다. 이 선거 결과, 마리아노 라호이가 이끄는 국민당에게 크게 패배하며 7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었다.

4. 기타

로드리게스 사파테로는 스페인어만 구사하며, 그의 아버지가 그를 영국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몇 번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FC 바르셀로나세사르 로드리게스 알바레스의 팬으로 보도된 바 있다.

미스터 빈을 연기하는 배우 로언 앳킨슨과 외모가 닮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2009년 1월 4일, 당시 스페인이 의장국을 맡고 있던 유럽 연합 의장국 홈페이지에 그의 얼굴 사진 대신 미스터 빈의 사진이 올라와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기능 정지되는 사건이 있었다.[90]

그의 별명은 '밤비'인데, 이는 그의 가벼운 몸가짐과 이상주의적인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전직 교사인 Sonsoles|손솔레스es 부인과의 사이에 딸 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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