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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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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교좌는 '카테드라'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주교가 교구의 주요 교회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좌석을 의미한다.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주교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에서 사도 계승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주교좌는 'Cathedrae apostolorum'과 'Ex cathedra'와 같은 신학적 의미를 가지며, 성 베드로의 좌, 막시미아누스 주교의 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좌 등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주교좌의 배치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에서 다르게 나타나며, 제대 뒤편이나 성가대석 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2. 어원

"카테드라"(cathedra)라는 영어 단어는 복수형으로 "카테드래"(cathedrae)이며, "안락의자"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다시 καθέδρα|카테드라grc에서 파생되었다. 4세기 이후, 로마 제국에서 황제에게만 부여되던 권위의 의미는 주교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 단어는 의자라는 단어의 어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 역사

"주교좌"라는 용어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cathedrae apostolorum''"(cathedrae apostolorum|카테드라이 아포스톨로룸la)이라는 구절로 나타나며, 이는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된 권위를 의미한다.[1][2]

교황 무류성의 교리는 라틴어 표현으로 ''ex cathedra''(ex cathedra|엑스 카테드라la) (직역하면 "좌로부터")이며,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오 9세에 의해 선포되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이자 교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자신의 최고 사도적 권위에 의해, 로마 주교가 온 교회에 의해 지켜져야 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할 때"를 의미한다.[3][4]

초창기 주교좌는 중앙 제대 뒤편의 후진(後陣)에 있었다. 로마 시대 공회당 중에는 나중에 초기 기독교 성당 건물로 용도가 변경된 것들도 있는데, 이때 집정관이 앉는 좌석이 주교좌로 바뀌었다. 중세 시대에는 제대가 성당 내부의 동쪽 끝 반원 형태의 벽에 자리 잡게 되면서 제대 왼쪽에 주교좌를 놓는 관행이 생겨났다.[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의 성당들은 제대가 벽면에 붙어있지 않고 떼어져 하나의 독립된 구조물이 생긴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현대에 들어 새로 신축되는 성당이나 기존 성당을 현대 전례용에 알맞게 개보수하는 경우에는 고대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처럼 주교좌가 제대 뒤편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다. 주교좌 양옆에는 일반적으로 주교를 보좌하는 부제들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명의 주교는 자신의 교구가 없으므로 주교좌가 없다.

동방 정교회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좌 성당에는 일반적으로 거룩한 식탁(제대) 뒤편 후진(後陣)에 주교가 앉는 의자인 주교좌가 있으며, 주교좌 양옆에는 주교를 보좌하는 사제들이 앉는 의자들(신트라논, σύνθρονον|신트로논grc)이 있다. 이 장소는 ‘산당’이라고 불리며, 주교가 없을 때에도 전례를 관장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낸다. 이 때문에 종종 주교좌에 그리스도의 이콘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 정교회 계열에서는 보통 성당의 남쪽 방향 벽에 있는 성가대석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 계열에서는 흡사 커다란 광장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동이 용이하고 등받이가 없는 성당 회중석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주교좌(Episcopal see)의 의미로 cathedra를 처음 사용했다.[4] 결국, 교구의 주요 교회로서 주교가 주된 교회로 사용하는 곳이 '주교좌 성당'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5] 주교좌 성당은 문자 그대로 주교의 공식적인 ''좌(cathedra)''가 설치된 교회이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간의 신학적 대화를 위한 국제 공동 위원회는 각 지역 기독교 교회의 주교의 존재, 즉 사도 계승의 핵심적인 ''주교좌 성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6]

3. 1. ''Cathedrae apostolorum'' (사도들의 좌)

"주교좌"라는 용어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cathedrae apostolorum"이라는 구절로 나타나며, 이는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된 권위를 의미한다.[1][2]

3. 2. ''Ex cathedra'' (좌로부터)

교황 무류성의 교리는 라틴어 표현으로 ''ex cathedra''(직역하면 "좌로부터")이며,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오 9세에 의해 선포되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이자 교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자신의 최고 사도적 권위에 의해, 로마 주교가 온 교회에 의해 지켜져야 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할 때"를 의미한다.[3][4]

3. 3. 주교좌 성당의 발전

초창기 주교좌는 중앙 제대 뒤편의 후진(後陣)에 있었다. 로마 시대 공회당(바실리카) 중에는 나중에 초기 기독교 성당 건물로 용도가 변경된 것들도 있는데, 이때 집정관이 앉는 좌석이 주교좌로 바뀌었다. 중세 시대에는 제대가 성당 내부의 동쪽 끝 반원 형태의 벽에 자리 잡게 되면서 제대 왼쪽에 주교좌를 놓는 관행이 생겨났다.[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의 성당들은 제대가 벽면에 붙어있지 않고 떼어져 하나의 독립된 구조물이 생긴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현대에 들어 새로 신축되는 성당이나 기존 성당을 현대 전례용에 알맞게 개보수하는 경우에는 고대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처럼 주교좌가 제대 뒤편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다. 주교좌 양옆에는 일반적으로 주교를 보좌하는 부제들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명의주교(보좌주교, 대목구장, 교황대사)는 자신의 교구가 없으므로 주교좌가 없다.

동방 정교회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좌 성당에는 일반적으로 거룩한 식탁(제대) 뒤편 후진(後陣)에 주교가 앉는 의자인 주교좌가 있으며, 주교좌 양옆에는 주교를 보좌하는 사제들이 앉는 의자들(synthranon)이 있다. 이 장소는 ‘산당’이라고 불리며, 주교가 없을 때에도 전례를 관장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낸다. 이 때문에 종종 주교좌에 그리스도의 이콘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 정교회 계열에서는 보통 성당의 남쪽 방향 벽에 있는 성가대석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 계열에서는 흡사 커다란 광장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동이 용이하고 등받이가 없는 성당 회중석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주교좌(Episcopal see)의 의미로 cathedra를 처음 사용했다.[4] 결국, 교구의 주요 교회로서 주교가 주된 교회로 사용하는 곳이 '주교좌 성당'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5] 주교좌 성당은 문자 그대로 주교의 공식적인 ''좌(cathedra)''가 설치된 교회이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간의 신학적 대화를 위한 국제 공동 위원회는 각 지역 기독교 교회의 주교의 존재, 즉 사도 계승의 핵심적인 ''주교좌 성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6]

4. 주요 사례


  • '''성 베드로의 좌 (Cathedra Petri)'''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1657년에 설계하여 1666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한 ''cathedra Petri의 승리'' 안에 보관되어 있는 ''cathedra''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8세기 초부터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과 일부 별자리를 묘사한 상아판으로 덮인 고대 나무 의자는 성 베드로의 주교좌로 숭배받았다.[7] 이 의자는 아카시아 나무 틀로 된 비잔틴 양식의 왕좌로, 참나무로 덮여 있으며 철 띠로 보강되었다. 오랫동안 사도 성 베드로가 사용한 것으로 믿어졌지만, 교황청은 이 의자가 875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대머리 카를이 교황 요한 8세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8] 여러 개의 고리가 있어 행렬 시 운반을 용이하게 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7세는 베르니니에게 이 유물을 승리의 모습으로 전시할 기념물을 세우도록 의뢰했다. 베르니니의 금박 청동 왕좌는 풍부한 ''부조''로 장식되어 유물을 감싸고 있다. 1666년 1월 17일, 바티칸 시국성 베드로 대성전 제대 위에 엄숙하게 설치되었다. 네 명의 교회 박사의 실물보다 큰 조각상이 호위병을 형성하는데, 왼쪽에는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타나시오가 있고, 오른쪽에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성인 달력에 따라 2월 22일에 기념되는 Cathedra Petri 축일(사도 베드로의 좌 축일)은 로마의 교회 창립을 기념하고 성 베드로의 업적에 감사를 드린다.

  • '''막시미아누스 주교의 좌'''


라벤나 대성당의 성구 보관실에는 5세기 또는 6세기의 정교한 상아 조각으로 장식된 주교좌가 보존되어 있다. 앞면에는 "Maximianus ep."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주교좌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1908년 가톨릭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막시미아누스(431년 사망)로, 라벤나의 막시미아누스(556년 사망)보다 더 유력하다고 본다.[4]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좌'''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좌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교좌 중 하나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퍼벡 대리석 또는 베데스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6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제작되었다. 더 오래된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의자가 켄트 왕국의 왕을 즉위시키는 데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주교좌가 보관되어 있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는 이 의자가 한때 해체된 성 토마스 베켓의 성구함의 가구 일부였다고 주장한다.[9]

중세 이후로 이 의자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삼중 즉위식에 항상 사용되었다. 대주교는 교구 주교로서 성가대석, 명목상 수도원장으로서 교회 회의소, 잉글랜드 전체의 수석 주교로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자에 앉는다. 이것이 주교좌가 사용되는 유일한 경우이다. 대주교가 참석하는 다른 행사에는 두 번째 주교좌가 사용된다.

4. 1. 성 베드로의 좌 (Cathedra Petri)



''cathedra''의 대표적인 예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1657년에 설계하여 1666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한 ''cathedra Petri의 승리'' 안에 보관되어 있다. 8세기 초부터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과 일부 별자리를 묘사한 상아판으로 덮인 고대 나무 의자는 성 베드로의 주교좌로 숭배받았다.[7] 이 의자는 아카시아 나무 틀로 된 비잔틴 양식의 왕좌로, 참나무로 덮여 있으며 철 띠로 보강되었다. 오랫동안 사도 성 베드로가 사용한 것으로 믿어졌지만, 교황청은 이 의자가 875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대머리 카를이 교황 요한 8세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8] 여러 개의 고리가 있어 행렬 시 운반을 용이하게 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7세는 베르니니에게 이 유물을 승리의 모습으로 전시할 기념물을 세우도록 의뢰했다. 베르니니의 금박 청동 왕좌는 풍부한 ''부조''로 장식되어 유물을 감싸고 있다. 1666년 1월 17일, 바티칸 시국성 베드로 대성전 제대 위에 엄숙하게 설치되었다. 네 명의 교회 박사의 실물보다 큰 조각상이 호위병을 형성하는데, 왼쪽에는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타나시오가 있고, 오른쪽에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성인 달력에 따라 2월 22일에 기념되는 Cathedra Petri 축일(사도 베드로의 좌 축일)은 로마의 교회 창립을 기념하고 성 베드로의 업적에 감사를 드린다.

4. 2. 막시미아누스 주교의 좌

라벤나 대성당의 성구 보관실에는 5세기 또는 6세기의 정교한 상아 조각으로 장식된 주교좌가 보존되어 있다. 앞면에는 "Maximianus ep."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주교좌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1908년 가톨릭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막시미아누스(431년 사망)로, 라벤나의 막시미아누스(556년 사망)보다 더 유력하다고 본다.[4]

4. 3.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좌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좌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교좌 중 하나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퍼벡 대리석 또는 베데스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6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제작되었다. 더 오래된 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의자가 켄트 왕국의 왕을 즉위시키는 데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주교좌가 보관되어 있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는 이 의자가 한때 해체된 성 토마스 베켓의 성구함의 가구 일부였다고 주장한다.[9]

중세 이후로 이 의자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삼중 즉위식에 항상 사용되었다. 대주교는 교구 주교로서 성가대석, 명목상 수도원장으로서 교회 회의소, 잉글랜드 전체의 수석 주교로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자에 앉는다. 이것이 주교좌가 사용되는 유일한 경우이다. 대주교가 참석하는 다른 행사에는 두 번째 주교좌가 사용된다.

5. 배치

초창기 주교좌는 중앙 제대 뒤편의 후진(後陣)에 있었으며, 로마 시대 바실리카 공회당 건물이 초기 기독교 성당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집정관 좌석이 주교좌로 바뀌었다.[5] 중세 시대에는 제대가 성당 동쪽 끝 반원형 벽에 자리 잡으면서 제대 왼쪽에 주교좌를 놓는 관행이 생겼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제대가 독립된 구조물이 되면서 고대 바실리카 양식처럼 주교좌가 제대 뒤편에 놓이기도 한다. 주교좌 양옆에는 주교를 보좌하는 부제들의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5. 1. 서방 교회

초창기 주교좌의 위치는 중앙 제대 뒤편의 후진(後陣)에 있었다. 로마 시대 공회당(바실리카) 중에는 나중에 초기 기독교 성당의 건물로 용도가 변경된 것들도 있는데, 이때 집정관이 앉는 좌석이 주교좌로 탈바꿈하였다. 중세 시대에는 제대가 성당 내부의 동쪽 끝 반원 형태의 벽에 자리 잡게 되면서 제대 왼쪽에 주교좌를 놓는 관행이 생겨났다.[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들은 제대가 벽면에 붙어있지 않고 떼어져 하나의 독립된 구조물이 생긴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현대에 들어 새로 신축되는 성당이나 기존 성당을 현대 전례용에 알맞게 개보수하는 경우에는 고대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처럼 주교좌가 제대 뒤편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다. 주교좌 양옆에는 일반적으로 주교를 보좌하는 부제들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명의주교(보좌주교, 대목구장, 교황대사)는 자신의 교구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주교좌가 없다.[1]

성공회에서는 주교좌가 성가대석의 한쪽에 놓이는 경향이 있지만, 더 현대적인 관행에서는 성가대석의 복음 측(즉, 정면에서 볼 때 제단의 왼쪽)에 흔히 놓인다.[1]

5. 2. 동방 교회

동방 정교회동방 가톨릭교회의 주교좌 성당에는 일반적으로 거룩한 식탁(제대) 뒤편 후진(後陣)에 주교가 앉는 의자인 주교좌가 마련되어 있으며, 주교좌 양옆에는 주교를 보좌하는 사제들이 앉는 의자들(synthranon)이 있다. 이 장소는 ‘산당’이라고 불리며, 주교가 없을 때에도 전례를 관장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낸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종종 주교좌에 그리스도의 성상이 그려져 있다.[1]

그리스 정교회 계열에서는 보통 성당의 남쪽 방향 벽에 있는 성가대석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러시아 정교회 계열에서는 흡사 커다란 광장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동이 용이하고 등받이가 없는 성당 회중석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1]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전례 가톨릭 교회는 제단 뒤 앱스에 주교의 옥좌가 있으며, 사제들을 위한 좌석(''synthranon'')이 양쪽에 배치되어 있다.[1] 이 위치는 "지고의 자리"라고 불리며, 주교가 없을 때에도 예식을 주재하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내므로, 그리스도의 성상이 종종 주교의 옥좌 위에 놓인다.[1] 주교는 신성한 전례 중 ''삼위일체 성가'' 때에만 지고의 자리에 오른다.[1] 이러한 이유로, 주교의 서품은 ''삼위일체 성가'' 때에 이루어져, 그는 서품을 받은 전례 동안 주교로서 처음으로 지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1]

교회 본당에는 주교를 위한 또 다른 옥좌가 마련되어 있다.[1]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남쪽 벽을 따라 클리 로스에 위치한다.[1] 이 양식에서, 그것은 수도원 성가대 석(''카티스마'') 중 하나이며, 더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보통 세 개의 계단 위에 있고, 그 위에는 덮개가 있다.[1] 신성한 전례 동안, 부제는 복음을 읽기 위해 이 옥좌에 올라 서쪽을 향한다.[1]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카페드라''(кафедра|카몌드라ru)는 본당의 정중앙에 놓인 커다란 사각형 플랫폼으로, 그 위에 이동 가능한 의자 또는 팔드스툴이 놓여 있다.[1] 이 배치는 고대 비마 (''암본'')의 잔재로, 유대교 회당에서 차용된 것으로, 고대에는 교회의 중앙에 있었다.[1] 때때로 전례 동안, 부제는 복음을 읽기 위해 이 플랫폼에 서서 동쪽을 향한다.[1]

''올레츠''는 일반적으로 지고의 자리와 본당의 옥좌 모두에 놓인다.[1] 올레츠는 의자가 제거된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러시아 ''카페드라''에 영구적으로 보관된다.[1] 그러나 부제가 복음을 읽기 위해 ''카페드라''에 설 때에는 올레츠가 제거된다.[1]

참조

[1] 간행물 "De Praescriptione Haereticorum: XXXVI" http://www.tertullia[...] Tertullian.org 2010-01-30
[2] 간행물 "The Prescription Against Heretics: Chapter 36" http://www.tertullia[...] Tertulllian.org 2010-01-30
[3] 서적 'De Fide' https://books.google[...] 2020-01-15
[4] 백과사전 Cathedra http://www.newadvent[...] Robert Appleton Co. 2020-01-04
[5] 백과사전 Cathedra (chair) https://www.britanni[...] 2020-01-04
[6] 간행물 Orthodox - Roman Catholic International Dialogue
[7] 웹사이트 Cathedra Petri, 9th century. Römisches Germanisches Museum Mainz. Archived copy. https://web.archive.[...] 2009-01-30
[8] 웹사이트 Interior of the Basilica https://web.archive.[...] 2013-03-20
[9] 웹사이트 Welcome to Canterbury Cathedral http://www.canterbur[...]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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