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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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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차나키야는 고대 인도의 사상가, 정치가, 경제학자로, 마우리아 제국 건국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생애는 전설적인 이야기와 얽혀 있으며, 불교, 자이나교, 카슈미르 문헌, 비샤카다타의 희곡 등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진다. 그는 난다 왕조의 다나 난다 왕에게 모욕을 당한 후 찬드라굽타를 만나 마우리아 제국을 세우는 데 기여했으며, 제국의 재상으로서 정치 고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저서인 《아르타샤스트라》는 고대 인도의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전략을 담은 책으로, '국왕즉국가'라는 현실주의적 정치관을 바탕으로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지침을 제시한다. 차나키야는 공리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을 통해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으며, 학문으로는 철학, 베다학, 실업학, 정치학을 제시했다. 그는 '인도의 마키아벨리'로 평가받으며, 그의 사상은 인도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정치 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 인도에서는 위대한 사상가로 존경받으며, 뉴델리의 외교 구역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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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키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차나키야 (화가의 상상도)
존칭아차리야
이름차나키야
다른 이름챠나키야
비슈누굽타
출생지기원전 375년경, 남인도 골라 지역의 차나카 마을 (자이나교 전설)
또는 탁샤실라 (불교 전설)
사망지기원전 283년경, 마우리아 제국파탈리푸트라
직업교사
철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최고 자문관
총리
주요 업적마우리아 제국 건국에 핵심적인 역할
실리론
차나키야니티
계승마가다의 총리
선임자직책 신설
친척차나크 (아버지)
통치
재임 기간기원전 322년 ~ 기원전 275년
군주찬드라굽타 마우리아
빈두사라
개인 정보
종교브라만교
참고 자료
저서실리론
로마자 표기
산스크리트어 표기चाणक्य (Cāṇakya)
다른 표기कौतिल्य (Kautilya)

2. 생애와 전설

차나키야와 찬드라굽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전설에 기반한다. 토마스 트라우트만은 고대 차나키야-찬드라굽타 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다른 버전을 확인했다.[4]


  • 불교 버전: ''마하വം사''(5-6세기 CE)와 그 주석서 ''Vamsatthappakasini''(팔리어)
  • 자이나교 버전: 헤마찬드라의 ''파리시시타파르반''(12세기 CE, 1-8세기 자료를 바탕으로 함)
  • 카슈미르 버전: 소마데바의 ''카타사리트사가라''(11세기 CE), 크셰멘드라의 ''Brihat-Katha-Manjari''
  • 비샤카다타의 버전: 비샤카다타의 산스크리트 희곡 ''무드라락샤사''(4-8세기 CE, 대부분 허구)


이들 버전에서 공통적으로 차나키야는 난다 왕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를 파멸시키겠다고 맹세하며, 난다 왕조를 무너뜨린 후 찬드라굽타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

불교 및 자이나교 전설에 따르면 차나키아는 탁실라(불교) 또는 골라 지역 차나카 마을(자이나교) 출신의 브라만(불교) 또는 자이나교도(자이나교)였다. 그는 난다 왕에게 모욕을 당한 후 복수를 맹세하고, 어린 찬드라굽타를 만나 그를 훈련시켜 왕위에 올린다. 카슈미르 버전에서는 차나키야가 난다 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법 의식을 행하고, 샤카탈라의 도움을 받아 찬드라굽타를 왕위에 올린다. 《무드라락샤사》에서는 차나키야가 난다 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찬드라굽타와 동맹을 맺고, 난다 왕조를 멸망시킨다.

2. 1. 초기 생애와 배경

차나키아(IAST: Cāṇakka, 마하വം사에서는 짜낙카)는 탁실라(탁샤실라) 출신의 브라만이었다.[32] 그는 세 개의 베다와 정치에 정통했다. 불교 전설에 따르면, 그는 개와 같은 이빨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는 왕족의 표식으로 여겨졌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황제가 된 후 자신을 돌보지 않을까 염려했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차나키아는 자신의 이빨을 부러뜨렸다.[12][13]

자이나교 기록에 따르면, 차나키아는 차닌(Chanin)과 차네슈바리(Chaneshvari)라는 두 명의 재가 자이나교도(shravak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골라(Golla) vishaya(지역)의 차나카(Chanaka) 마을이었다.[21] "골라"의 정체는 확실하지 않지만, 헤마찬드라(Hemachandra)는 차나키아가 드라밀라(Dramila) 즉, 남인도 출신이라고 말한다.[5] 차나키아는 모든 이가 다 난 이빨을 가지고 태어났다. 승려들에 따르면, 이것은 그가 장차 왕이 될 징조였다. 차닌은 아들이 거만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차나키아의 이를 부러뜨렸다. 승려들은 그 아기가 섭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21]

차나키아는 부러진 이빨과 구부러진 발로 인해 더욱 강조된 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학식 있는 shravaka로 성장하여 브라만 여성과 결혼했다. 그의 처가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친척들은 그녀를 조롱했다. 이 일은 차나키아가 파탈리푸트라를 방문하여 브라만들에게 관대한 것으로 유명한 난다 왕(난다)에게 기부를 요청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21][22]

2. 2. 찬드라굽타와의 만남과 마우리아 제국 건국

카우틸리야는 난다 왕조의 다나 난다 왕에게 모욕을 당한 후, 그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것을 결심한다. 이후 그는 젊은 찬드라굽타를 만나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훌륭한 지도자로 훈련시킨다.

불교 전설에 따르면, 찬드라굽타의 스승인 차나키아(Cāṇakka, 마하വം사에서는 짜낙카)는 탁실라(탁샤실라) 출신의 브라만이었다. 그는 세 개의 베다와 정치에 정통했다. 어느 날, 다나 난다 황제가 브라만들을 위한 시식 의식을 열었고, 차나키아는 이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 푸샤푸라로 갔다. 그러나 그의 추한 외모에 혐오감을 느낀 황제는 그를 의식장에서 쫓아내라고 명령했다. 분노한 차나키아는 황제를 저주했고, 황제의 체포 명령을 피해 아지비카로 변장하여 도망쳤다.[4]

차나키아는 빈자 숲으로 도망쳐, 비밀 기술로 8억 개의 금화(''카하파나'')를 만들었다. 이 돈을 숨겨 놓고 다나 난다를 대신할 만한 사람을 찾던 중, 아이들과 놀고 있는 어린 찬드라굽타(마하வம்사에서는 찬다구타)를 만났다. 찬드라굽타는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찬탈자에게 살해당한 후 사냥꾼에게 길러졌다. 차나키아는 찬드라굽타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의 양부에게 1000개의 금화를 지불하고 그를 데려가 훈련시켰다.[4]

자이나교 기록에 따르면, 차나키아는 차닌(Chanin)과 차네슈바리(Chaneshvari)라는 두 명의 재가 자이나교도(shravak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골라(Golla) 지역의 차나카(Chanaka) 마을이었다. 파탈리푸트라를 방문하여 난다왕(난다)에게 기부를 요청하려 했으나, 왕좌에 앉은 문제로 시녀에게 쫓겨나게 되자 이에 격분한 차나키아는 난다와 그의 모든 세력을 몰아낼 것을 맹세했다.[5] 방황하던 중, 차나키아는 마을 우두머리의 임신한 딸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 조건은 그녀의 아이가 자신에게 속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찬드라굽타는 이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찬드라굽타가 자라자, 차나키아는 그의 마을에 와서 그가 아이들 무리 중에서 "왕" 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고 그를 시험하기 위해 차나키아는 그에게 기부를 요청했다. 그 소년은 차나키아에게 근처의 소를 가져가라고 말하며, 아무도 그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권력 과시는 차나키아에게 찬드라굽타가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5]

카슈미르 지역 전설에서는 바라루치, 인드라닷타, 비야디는 바르샤라는 리시(sage)의 세 제자였는데, 어느 날, 그들은 스승 바르샤를 대신하여 아요디아로 가서 난다 황제에게 구루닥시나(스승께 드리는 사례)를 구하러 갔다. 그들이 난다를 만나러 가는 도중 황제가 죽었다. 인드라닷타는 자신의 요가 능력을 사용하여 난다의 몸에 들어가 바라루치의 요청대로 천만 개의 금 디나르(금화)를 받았다. 궁정 대신인 샤카탈라는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인드라닷타의 시체를 불태우도록 했다. 샤카탈라는 길을 가다 발에 풀잎이 찔린 것을 이유로 길에 있는 모든 풀을 뽑고 있던 브라만 차나키야를 만났고, 그렇게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을 이용하여 가짜 황제를 파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제사 의식을 주재하는 대가로 10만 개의 금화를 약속하며 차나키야를 황제의 집회에 초대했다.[4]

차나키아는 찬드라굽타를 데리고 난다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를 정복하러 갔다. 그는 연금술을 통해 얻은 부로 군대를 모았다. 그러나 군대는 큰 패배를 당했고, 차나키아와 찬드라굽타는 전장에서 도망쳐야 했다. 이후 차나키아는 히마밧쿠타(Himavatkuta)라는 산악 왕국의 왕인 파르바타카(Parvataka)와 동맹을 맺고 난다 제국의 절반을 그에게 제안했다.[5]

《무드라락샤사》에 따르면, 난다 황제는 한때 차나키야를 "제국의 최고 자리"에서 제거했고, 이 때문에 차나키야는 난다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전까지는 상투(śikhā)를 묶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차나키야는 난다를 폐위하고 그의 자리에 차우드라굽타(덜 중요한 황후의 아들)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차나키야는 차우드라굽타가 또 다른 강력한 왕인 파르바테슈바라(또는 파르바타)와 동맹을 맺도록 조작했고, 두 통치자는 난다를 정복한 후 그의 영토를 나누기로 합의했다. 그들의 연합군에는 바흘리카, 키라타, 파르시카(페르시아인), 캄보자, 샤카, 야바나 병사들이 포함되었다. 군대는 파탈리푸트라(쿠수마푸라)를 침략하여 난다를 패배시켰다.[4]

기원전 323년경 다나 난다의 제국


파르바타카의 도움을 확보한 후, 차나키아와 찬드라굽타는 파탈리푸트라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점차적으로 차나키아와 찬드라굽타는 수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진압했다. 마침내 그들은 파탈리푸트라를 함락시켰고 찬드라굽타는 황제가 되었다.

카우틸리야의 지략과 찬드라굽타의 용맹함이 결합하여, 마우리아 제국은 기원전 322년경에 건국된다. 찬드라굽타 즉위 이후, 카우틸리야는 제국의 재상이자 왕의 정치 고문으로서 활동하며, 제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32]

2. 3. 말년

찬드라굽타 사후, 차나키야는 그의 아들 빈두사라 왕을 보좌하며 정치 고문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32] 16세기 티베트 불교 작가 타라나타에 따르면, 차나키야는 빈두사라를 도와 16개 도시의 귀족과 왕들을 제거하고, 동쪽 바다(벵골 만)와 서쪽 바다(아라비아해) 사이의 모든 영토를 지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3. 저서와 사상

차나키야는 ''아르타샤스트라''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아르타샤스트라''는 고대 인도의 정치, 외교, 군사에 대한 지침서로, '국왕즉국가'(國王卽國家)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국가와 국왕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주의적 관점을 제시한다.[32] 영토 확장과 국왕의 이익 증대를 위한 실리적인 방법을 강조하며, "인민에게 기초를 두지 않은 국왕은 쉽게 멸망한다"고 경고하면서도 인민을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32]

외교와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군대 양성과 성곽 건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 국내 정치 기구 개혁과 경제력 강화를 통한 국력 증진, 유능한 인재 등용과 관리를 중심으로 한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강조한다.[32]

''아르타샤스트라''는 통화, 재정, 복지, 국제 관계, 전쟁 전략을 상세히 논의하고 통치자의 의무를 개략적으로 설명한다.[13][14] 다르마 유다(정의로운 전쟁)가 아닌 전쟁을 쿠타유다(부정한 전쟁)로 묘사한다.

1905년 루드라파트나 샤마샤스트리가 마이소르 동양 연구소에서 ''아르타샤스트라''를 발견하기 전까지, 카우틸리야의 저술은 6세기 굽타 제국 말에 유실되어 있었다.[12]

3. 1. 아르타샤스트라

전통적으로 차나키아에게는 ''아르타샤스트라''[9]와 ''차나키야 니티''(''차나키야 니티 샤스트라''로도 알려짐)라는 두 권의 책이 귀속된다.[10] ''차나키야 니티''는 차나키아가 다양한 샤스트라에서 선정한 격언 모음이다.

''아르타샤스트라''는 저자를 카우틸리야(Kauṭilya)라는 고트라 이름으로 밝히지만, 비슈누굽타(Vishnugupta)라는 개인 이름으로 그를 지칭하는 한 구절을 제외하고는 카우틸리야로 칭한다.[11] 카우틸리야는 아마도 저자의 고트라(씨족) 이름으로 추정된다.[2] 비슈누굽타를 차나키아와 명시적으로 동일시한 가장 초기 산스크리트 문헌 중 하나는 ''판차탄트라''(2세기)였다.

《아르타샤스트라》는 고대 인도의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전략을 총망라한 저서로, '국왕즉국가'(國王卽國家)라는 현실주의적 정치관을 바탕으로 한다. 국가의 부국강병과 영토 확장을 위한 통치 기술을 제시하며, 외교, 군사 전략뿐만 아니라 내정 개혁, 경제 정책, 법률, 조세 제도 등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

"인민에게 기초를 두지 않은 국왕은 쉽게 멸망한다"고 하지만, 인민은 다수 수단으로서의 의의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서민 천 명의 손실보다도 지도자 한 사람의 손실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등 철저한 현실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

카우틸랴의 인생관은 공리주의적 입장에 서 있었다. "실리(實利)야말로 가장 주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법도 애욕(愛欲)도 실리에 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화(財貨)는 일체의 사업을 달성시킨다"고 했다. 그의 학문론에 따르면 학문에는 철학, 베다학, 실업학, 정치학의 네 가지 종류가 있으며, 철학을 독립된 학문으로서 인정한 것은 그가 최초였다. 그렇지만 학문의 보람은 이들 네 가지 종류에 의하여 법과 실리를 아는 데에 있다고 한다.

1965년 이후 현대 학문은 차나키아의 저술을 부정하며, ''아르타샤스트라''를 서기 초에 새로운 텍스트로 편찬된 다양한 저자들이 쓴 여러 초기 텍스트의 편집물로 간주한다. 이 텍스트는 1세기 말 또는 2세기에 주요 수정 또는 확장을 거쳤다. 패트릭 올리벨은 가장 오래된 텍스트 계층인 "카우틸리야의 원전"이 기원전 150년~서기 50년 사이에 작성되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의 진화의 다음 단계인 이러한 원전의 일부를 새로운 ''샤스트라''로 편집한 "카우틸리야 수정판"은 서기 50년~125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샤스트라 수정판"(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은 서기 175년~300년 사이로 추정한다.

굽타 왕조는 "찬드라굽타"와 "굽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등 상징적으로 마우리아의 정통 후계자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며, 이러한 연관성은 굽타 시대에 작곡된 연극 ''무드라락샤사''에서도 이루어졌다.

카우틸리야의 저술은 6세기 서기 굽타 제국 말기에 유실되어 20세기 초까지 재발견되지 않았다. 1905년 루드라파트나 샤마샤스트리가 알 수 없는 판딧이 마이소르 동양 연구소에 기증한 고대 팜잎 사본의 분류되지 않은 그룹에서 ''아르타샤스트라''를 발견했다.[12] 이 책은 통화재정 정책, 복지, 국제 관계, 전쟁 전략을 자세히 논의한다.[13] 또한 통치자의 의무를 개략적으로 설명한다.[14] 카우틸리야는 다르마 유다(정의로운 전쟁)가 아닌 다른 전쟁을 묘사하기 위해 쿠타유다(부정한 전쟁)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카우틸리야의 작품은 고전 경제학의 중요한 전조로 여겨진다.[15][16][17]

3. 2. 사상

카우틸리야의 사상은 공리주의적이며 현실주의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는 "실리(實利)야말로 가장 주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법도 애욕(愛欲)도 실리에 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32]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학문으로서는 철학과 베다학과 실업학과 정치학의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며, 철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렇지만 학문의 보람은 이들 네 가지 종류에 의하여 법과 실리를 아는 데에 있다고 하였다.[32]

4. 평가와 영향

찬드라굽타와 차나키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반(半)전설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토마스 트라우트만은 고대 차나키야-찬드라굽타 카타(전설)에 대한 네 가지 서로 다른 버전을 확인했다.[4]


  • 불교 버전: ''마하വം사''(5-6세기 CE)와 그 주석서 ''Vamsatthappakasini''(팔리어)
  • 자이나교 버전: 헤마찬드라의 ''파리시시타파르반''(12세기 CE), 1-8세기 자료를 바탕으로 함
  • 카슈미르 버전: 소마데바의 ''카타사리트사가라''(11세기 CE), 크셰멘드라의 ''Brihat-Katha-Manjari''
  • 비샤카다타의 버전: 비샤카다타의 산스크리트 희곡 ''무드라락샤사''(4-8세기 CE)


네 가지 버전 모두에서 차나키야는 난다 왕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를 파멸시키겠다고 맹세한다. 난다를 폐위시킨 후, 그는 찬드라굽타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

전통적으로 차나키아에게는 ''아르타샤스트라''[9]와 ''차나키야 니티''[10]라는 두 권의 책이 그의 저서라고 알려져 있다. ''차나키야 니티''는 ''차나키야 니티 샤스트라''로도 알려져 있으며, 차나키아가 다양한 샤스트라에서 선정한 격언 모음이다.[10]

초기에는 차나키아가 ''아르타샤스트라''를 저술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1965년 이후 현대 학문은 차나키야 저술을 부정하며, ''아르타샤스트라''를 서기 초에 새로운 텍스트로 편찬된 다양한 저자들이 쓴 여러 초기 텍스트의 편집물로 간주한다. 패트릭 올리벨은 가장 오래된 텍스트 계층인 "카우틸리야의 원전"이 기원전 150년~서기 50년 사이에 작성되었다고 말한다.

''아르타샤스트라''는 저자를 카우틸리야(Kauṭilya)라는 고트라 또는 씨족 이름으로 밝히지만, 비슈누굽타(Vishnugupta)라는 개인 이름으로 그를 지칭하는 한 구절을 제외하고는 카우틸리야로만 지칭한다. 비슈누굽타를 차나키아와 명시적으로 동일시한 가장 초기 산스크리트 문헌 중 하나는 ''판차탄트라''(2세기)였다.[11] K. C. 오자는 비슈누굽타와 카우틸리야의 전통적인 동일시는 텍스트의 편집자와 창시자를 혼동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비슈누굽타가 카우틸리야의 원작을 수정한 사람이라고 제안한다.[2]

1960년대에 글을 쓴 R. P. 캉글은 마우리아 총리 차나키아에게 전통적으로 귀속된 것을 받아들였으므로 아르타샤스트라를 마우리아 시대의 것으로 간주한다. 캉글 이후 토마스 트라우트만과 패트릭 올리벨과 같은 학자들은 굽타 시대 이후의 발전이라는 이유로 차나키아와 카우틸리야의 동일시를 거부한다. 트라우트만은 차나키아를 언급하는 초기 자료 중 어느 것도 ''아르타샤스트라''의 저작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올리벨은 "그러나 차나키아라는 이름은 텍스트에 전혀 없다"고 언급한다.

굽타 왕조는 "찬드라굽타"와 "굽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등 상징적으로 마우리아의 정통 후계자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며, 이러한 연관성은 굽타 시대에 작곡된 연극 ''무드라락샤사''에서도 이루어졌다. 이 구절은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며, 올리벨은 이것이 굽타 왕조가 따랐던 정치 논문의 저자를 유명한 마우리아 총리와 동일시하려는 시도였다고 주장한다.

카우틸리야의 저술은 6세기 서기 굽타 제국 말기에 유실되어 20세기 초까지 재발견되지 않았다. 1905년 사서 루드라파트나 샤마샤스트리가 알 수 없는 판딧이 마이소르 동양 연구소에 기증한 고대 팜잎 사본의 분류되지 않은 그룹에서 ''아르타샤스트라''를 발견했다.[12] 이 책은 통화재정 정책, 복지, 국제 관계, 그리고 전쟁 전략을 자세히 논의한다.[13] 카우틸리야는 다르마 유다(정의로운 전쟁)가 아닌 다른 전쟁을 묘사하기 위해 쿠타유다(부정한 전쟁)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14]

4. 1. 평가

카우틸리야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치 사상으로 인해 '인도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린다.[15][16][17] 그의 사상은 후대 인도의 정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막스 베버는 《아르타샤스트라》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훨씬 냉혹하고 현실적인 정치론이라고 평가했다.[15][16][17]

현대 인도에서 카우틸리야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외교관으로 존경받는다.[15][16][17] 많은 인도 국수주의자들은 그를 인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된 인도를 처음으로 구상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한다.[15][16][17] 인도 전 국가안보보좌관 시브 샹카르 메논은 카우틸리야의 《아르타샤스트라》가 권력을 정확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묘사했다고 칭찬하며, 전략적 문제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장했다.[8]

하지만 카우틸리야가 《아르타샤스트라》의 저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65년 이후 현대 학문은 차나키야 저술을 부정하며, 《아르타샤스트라》를 서기 초에 새로운 텍스트로 편찬된 다양한 저자들이 쓴 여러 초기 텍스트의 편집물로 간주한다. 패트릭 올리벨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텍스트 계층인 "카우틸리야의 원전"은 기원전 150년~서기 50년 사이에 작성되었으며, 이 원전의 일부를 새로운 샤스트라로 편집한 "카우틸리야 수정판"은 서기 50년~125년 사이, "샤스트라 수정판"(현재 텍스트)은 서기 175년~3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4. 2. 영향

인도 전 국가안보보좌관 시브 샹카르 메논은 차나키야의 아르타샤스트라가 권력을 정확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묘사했다고 칭찬했다. 그는 전략적 문제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장했다.[8]

카우틸리야의 작품은 고전 경제학의 중요한 전조로 여겨진다.[15][16][17] 카우틸리야와 차나키야의 동일시를 바탕으로 K.N. 자는 차나키아를 인도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의 선구자로 간주한다.[18]

패트릭 올리벨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텍스트 계층인 "카우틸리야의 원전"은 기원전 150년~서기 50년 사이에 작성되었으며, "카우틸리야 수정판"은 서기 50년~125년, "샤스트라 수정판"은 서기 175년~3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2]

뉴델리의 외교 구역은 차나키야를 기념하여 차나키야푸리(Chanakyapuri)로 명명되었다. 그를 기념하여 명명된 기관은 다음과 같다.

기관명
차나키야 훈련함(Training Ship Chanakya)
차나키야 국립 법과대학(Chanakya National Law University)
차나키야 공공 지도자 양성소



마이소르(Mysore)의 차나키야 서클 또한 그를 기념하여 명명되었다.[19]

5. 대중문화 속의 카우틸리야

카우틸리야(차나키야)는 연극, 영화, TV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분야작품명내용비고
영화《차나키야 찬드라굽타》(1977)차나키야와 찬드라굽타의 이야기를 다룸아키네니 나게스와라 라오 (차나키야 역), N. T. 라마 라오 (찬드라굽타 역)[21]
TV 드라마《차나키야》(1991)《무드라락샤사》를 바탕으로 차나키야의 삶과 시대를 보여줌찬드라프라카시 드비베디 (차나키야 역)
《찬드라굽타 마우리아》(2011)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와 차나키야의 삶을 다룬 전기 시리즈 (제작: 사가르 아트)마니시 와드와 (차나키야 역)
《차크라바르틴 아쇼카 삼라트》(2015)찬드라굽타의 아들 빈두사라 통치 시대의 차나키야를 보여줌
《포러스》(2017~2018)체탄 판딧, 타룬 칸나 (차나키야 역)
TV 드라마《찬드라굽타 마우리아》(2018~2019)타룬 칸나 (차나키야 역)
희곡《찬드라굽타》(1911)난다 왕에게 추방당한 찬드라굽타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에 합류하고, 이후 찬드라굽타와 카탸야나의 도움으로 난다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다룸[20]
소설《차나키야의 노래》고대 인도의 정치 전략가 차나키야의 삶을 허구적으로 그린 소설. 차나키야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이야기와 현대 인물 갱가사가르 미슈라의 이야기가 평행적으로 전개됨
황제의 수수께끼차나키야 생애의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다룸
궁녀와 사두마우리아 제국 형성에 있어 카우틸야의 역할을 다룸[28]
기타바라타다 삼스크뤼티게 차나키야나 코두게갈루인도 문화 유산에 대한 차나키야의 공헌을 다룸[29]


참조

[1] 웹사이트 Mauryan Empire https://education.na[...] 2022-01-20
[2] 논문 The Date of the Arthaśāstra American Oriental Society
[3] 서적 Transaction and Hierarchy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7-08-09
[4] 서적 Between the Patterns of History: Rethinking Mauryan Imperial Interaction in the Southern Deccan https://www.academia[...] 2024-12-09
[5] 서적 Age of the Nandas and Mauryas https://books.google[...] Motilal Banarsidass
[6] 서적 The Clever Adulteress and Other Stories: A Treasury of Jaina Literature Motilal Banarsidass Publ.
[7] 서적 Sthavir̂aval̂i charita, or, Pariśishtaparvan https://books.google[...] Asiatic Society
[8] 뉴스 India needs to develop its own doctrine for strategic autonomy: NSA https://economictime[...] 2012-10-18
[9] 서적 Kautilya's Arthashastra https://archive.org/[...] 2020-08-23
[10] 서적 Sri Chanakya Niti-shastra; the Political Ethics of Chanakya Pandit Hardcover http://www.hinduism.[...] Ram Kumar Press
[11] 기타
[12] 뉴스 Year of the Guru https://www.outlooki[...] 2009-07-27
[13] 웹사이트 Indian History Sourcebook: Kautilya: from the Arthashastra c. 250 BC https://resources.sa[...] 2012-06-19
[14] 웹사이트 Workshop on Kautilya: Creating Strategic Vocabulary https://idsa.in/even[...] 2021-11-11
[15] 논문 Kauṭilya's Arthashastra: A neglected precursor to classical economics https://ideas.repec.[...]
[16] 논문 A Western perspective of Kauṭilya's Arthashastra: does it provide a basis for economic science? https://espace.libra[...] School of Economics, The University of Queensland
[17] 논문 Kauṭilya on institutions, governance, knowledge, ethics and prosperity
[18] 논문 Chanakya: the pioneer economist of the world
[19] 서적 Chanakya's Views on Administration https://books.google[...] Lulu.com 2015-04-23
[20] 서적 Dwijendralaler Chandragupta Modern Book Agency
[21] 영화 Chanakya Chandragupta https://www.imdb.com[...] 2017-05-24
[22] 서적 Economics in Arthashastra Deep& Deep Publications Pvt. Ltd.
[23] 뉴스 Year of the Guru http://www.outlookin[...] 2009-07-27
[24] 웹사이트 Chanakya in the Classroom: Life Lessons for Students https://rupapublicat[...]
[25] 웹사이트 Corporate Citizen https://corporatecit[...] 2015-12
[26] 웹사이트 Books - Radhakrishnan Pillai https://www.crosswor[...]
[27] 서적 Chanakya https://books.google[...] Diamond Pocket Books
[28] 서적 The Courtesan and the Sadhu, A Novel about Maya, Dharma, and God Dharma Vision 2008-10
[29] 웹사이트 Bharatiya Samskrutige Chanakyana Kodugegalu Part 1 – Shatavadhani Dr.R.Ganesh — Spiritual Bangalore http://www.spiritual[...]
[30] 기타
[31] 웹사이트 アルタ・シャーストラとは https://kotobank.jp/[...]
[32] 기타
[3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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