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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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리아바타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활동한 고대 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그는 정확한 이름 표기, 출생지, 교육 배경을 둘러싼 논쟁이 있으며, 쿠수마푸라에서 활동하며 날란다 대학교의 수장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리아바타는 굽타 왕조 시대에 활동하며 베다 시대의 천문학과 수학을 부흥시키는 데 기여했다. 주요 저서로는 수학과 천문학을 다룬 《아리아바티야》와 현존하지 않는 《아리아싯단타》가 있다. 《아리아바티야》는 산술, 대수, 삼각법, 연분수 등을 포함하며, 지구의 자전과 달의 공전 주기를 계산하는 등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원주율 근사, 삼각 함수, 디오판토스 방정식 해법, 수열의 합 공식 등 다양한 수학적 업적을 남겼으며, 지구 자전에 기반한 우주 모델을 제시하고 일식과 월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아리아바타의 업적은 인도 및 이슬람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름을 딴 위성과 달 분화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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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바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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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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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네임 | 해당 사항 없음 (정보 없음) |
출생일 | 476년 |
출생 장소 | 쿠수마푸라 / 파탈리푸트라, 굽타 제국 (현재의 파트나, 비하르 주, 인도) |
사망일 | 550년 (73–74세) |
사망 장소 | 해당 사항 없음 (정보 없음) |
시대 | 굽타 시대 |
주요 관심사 | 수학, 천문학 |
주요 아이디어 | 월식 및 일식 설명 지구의 자전 달의 빛 반사 정현파 함수 단일 변수 이차 방정식 해법 π 값 (소수점 아래 4자리까지 정확) 지구의 지름 항성년 길이 계산 |
주요 저서 | 아리아바티야 아리아-싯단타 |
영향 | 수르야 싯단타 |
영향 받은 인물 | 랄라 바스카라 1세 브라마굽타 바라하미히라 |
이름 | |
IAST 표기 | Āryabhaṭa |
데바나가리 문자 | आर्यभट |
2. 생애
아리아바타는 《아리아바티야》에서 칼리 유가 3,600년째에 23세였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서기 499년에 해당하며 그가 476년에 태어났음을 의미한다.[6] 그는 쿠수마푸라(파탈리푸트라, 현재의 파트나)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다.[1]
바스카라 1세는 아리아바타를 "아슈마카" 출신이라고 묘사했다. 아슈마카는 나르마다강과 고다바리강 사이 지역으로 추정된다.[9] 아리아바타가 아슈마카(산스크리트어로 "돌")라고 불린 곳이 현재의 코둥갈루르이며, 고대 케랄라의 역사적인 수도인 "티루반치쿨람"이라는 주장도 있다.[10] 그러나 옛 기록에 따르면 코둥갈루르는 코둠-콜-루르("엄격한 통치의 도시")였으며, 《아리아바티야》에 대한 여러 주석이 케랄라 외부에서 나왔고, 아리아시단타는 케랄라에서는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9]
그는 심화 학습을 위해 쿠수마푸라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13] 힌두교와 불교 전통, 그리고 바스카라 1세(서기 629년)는 쿠수마푸라를 현대의 파트나인 파탈리푸트라와 동일시한다.[9] 아리아바타가 쿠수마푸라의 한 기관(kulapa|쿨라파sa)의 수장이었다는 언급과 당시 날란다 대학교가 파탈리푸트라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아리아바타가 날란다 대학교의 수장이었을 수도 있다고 추측된다.[9]
아리아바타는 굽타 왕조 시대(5세기 말 ~ 6세기 초)에 활동했다. 당시 인도 수학 연구의 중심지는 쿠스마푸라, 우자이니, 마이소르였으며, 아리아바타는 쿠스마푸라에서 활약했다. 쿠스마푸라는 굽타 왕조의 수도였던 비하르 주파트나를 가리키며, 5~6세기에 번영했던 날란다 사원이 있었다. 날란다 사원에는 큰 천문대가 있었고, 아리아바타는 이 사원의 원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리아바티야》 제3장에는 "세계가 칼리 유가에 들어선 지 3600년이 되는 해, 23세에 이것을 썼다"는 내용이 있다.
바스카라 1세는 아리아바타를 아슈마카 출신이라고 불렀는데, 아슈마카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살았던 시대의 아사카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후기 굽타 왕조의 왕 부다굽타는 현장이 마가다국의 왕으로 전하는 인물과 동일인으로 여겨진다. 아리아바타는 부다굽타의 통치 아래 쿠스마푸라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리아바타가 부다굽타에 의해 날란다 사원의 원장으로 아슈마카에서 초빙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쿠스마푸라 근처에는 현장과 의정도 공부한 날란다 사원이 있었다.
《아리아바티야》 이후 아리아바타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1] 그의 제자로는 라타데바, 판두란가 스와미, 니샹크 세 명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1]
브라마굽타는 브라만의 입장에서 아리아바타를 비판했지만, 소련의 인도학자 레빈은 브라마굽타가 아리아바타의 과학적 태도를 옹호하고 있다고 해석했다.[1]
2. 1. 이름
아리아바타의 이름은 "bhatta" 접미사를 가진 다른 이름과의 유추에 의해 "Aryabhatta"로 잘못 표기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의 이름은 정확히 Aryabhata로 표기된다.[9] 모든 천문학 텍스트가 그의 이름을 이렇게 표기하며,[9] 여기에는 "100곳이 넘는 곳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한" 브라마굽타의 언급도 포함된다.[1]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Aryabhatta"는 운율에도 맞지 않는다.[9]2. 2. 출생 및 교육
아리아바타는 《아리아바티야》에서 칼리 유가 3,600년째에 23세였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서기 499년에 해당하며 그가 476년에 태어났음을 의미한다.[6] 그는 쿠수마푸라 (파탈리푸트라, 현재의 파트나)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다.[1]바스카라 1세는 아리아바타를 "아슈마카" 출신이라고 묘사했다. 아슈마카는 나르마다강과 고다바리강 사이 지역으로 추정된다.[9] 아리아바타가 아슈마카(산스크리트어로 "돌")라고 불린 곳이 현재의 코둥갈루르이며, 고대 케랄라의 역사적인 수도인 "티루반치쿨람"이라는 주장도 있다.[10] 그러나 옛 기록에 따르면 코둥갈루르는 코둠-콜-루르("엄격한 통치의 도시")였으며, 아리아바티야에 대한 여러 주석이 케랄라 외부에서 나왔고, 아리아시단타는 케랄라에서는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9]
그는 심화 학습을 위해 쿠수마푸라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13] 힌두교와 불교 전통, 그리고 바스카라 1세(서기 629년)는 쿠수마푸라를 현대의 파트나인 파탈리푸트라와 동일시한다.[9] 아리아바타가 쿠수마푸라의 한 기관(kulapa|쿨라파sa)의 수장이었다는 언급과 당시 날란다 대학교가 파탈리푸트라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아리아바타가 날란다 대학교의 수장이었을 수도 있다고 추측된다.[9]
아리아바타가 활동한 시기는 서기 500년 전후의 굽타 왕조 시대로, 베다 시대의 천문·수학이 부활한 시기였다. 당시 인도 수학 연구의 중심지는 쿠스마프라, 우자이니, 마이소르였으며, 아리아바타는 쿠스마프라에서 활약했다. 쿠스마프라는 굽타 왕조의 수도였던 비하르 주파트나를 가리키며, 5~6세기에 번영했던 날란다 사원이 있었다. 날란다 사원에는 큰 천문대가 있었고, 아리아바타는 이 사원의 원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아바타는 부다굽타에 의해 날란다 사원의 원장으로 아슈마카에서 초빙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쿠스마푸라 근처에는 현장과 의정도 공부한 날란다 사원이 있었다. 날란다 사원은 인도의 고대 교육 기관 중 하나였으며, 당시 매우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2. 3. 활동 시기 및 배경
아리아바타는 굽타 왕조 시대(5세기 말 ~ 6세기 초)에 활동했다. 굽타 왕조는 서방 세계와의 문화 교류를 통해 베다 시대의 천문학과 수학을 부흥시켰다. 5세기부터 10세기 무렵까지 인도 수학 연구의 중심지는 쿠스마푸라, 우자이니, 마이소르였으며, 아리아바타는 굽타 왕조의 수도였던 쿠스마푸라에서 활동했다. 쿠스마푸라는 현재의 비하르 주파트나를 가리키며, 5~6세기에 번영했던 날란다 사원이 있었다. 날란다 사원에는 큰 천문대가 있었으며, 아리아바타는 이 사원의 원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아리아바티야》 제3장에는 "세계가 칼리 유가에 들어선 지 3600년이 되는 해, 23세에 이것을 썼다"는 내용이 있다. 칼리 유가 기원 3600년은 서기 499년에 해당하므로, 아리아바타의 출생 연도는 서기 476년으로 추정된다.
바스카라 1세는 아리아바타를 아슈마카 출신이라고 불렀는데, 아슈마카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살았던 시대의 아사카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후기 굽타 왕조의 왕 부다굽타는 현장이 마가다국의 왕으로 전하는 인물과 동일인으로 여겨진다. 부다굽타의 통치 기간 중 가장 늦은 해는 서기 494년이고, 다른 굽타 왕의 이름이 나오는 기록이 가리키는 가장 가까운 연도가 510년이다. 아리아바타가 《아리아바티야》를 저술한 것이 499년이므로, 아리아바타는 부다굽타의 통치 아래 쿠스마푸라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증거에 따르면 부다굽타 시대 굽타 왕조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북벵골, 서쪽으로는 말와 지방, 북쪽으로는 카나우지국까지 이르렀으며, 남쪽으로는 나르마다 강 유역에서 바카타카 왕조와 접해 있었다. 따라서 데칸의 아슈마카는 당시 굽타 왕조의 영토 밖에 있었고, 아리아바타는 고다바리 강과 나르마다 강을 건너 쿠스마푸라로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리아바타가 부다굽타에 의해 날란다 사원의 원장으로 아슈마카에서 초빙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쿠스마푸라 근처에는 현장과 의정도 공부한 날란다 사원이 있었다. 아리아바타가 "시설의 장"을 의미하는 ''Kulpa''라는 칭호로 불렸다는 점도 확인된다. 날란다 사원은 인도의 고대 교육 기관 중 하나였으며, 당시 매우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굽타 왕조는 바카타카 왕조와 혼인을 통해 동맹 관계를 맺어 관계가 좋았다.
2. 4. 후반 생애 및 제자
《아리아바티야》 이후 아리아바타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1]。 그의 제자로는 라타데바, 판두란가 스와미, 니샹크 세 명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1]。 이 중 라타데바는 바라하미히라에 따르면 동로마 제국에 전해진 그리스 수학을 소개하는 『Romaka Siddhanta|로마카 시드한타영어』와 『Paulisa Siddhanta|파울리샤 시드한타영어』의 주석서를 썼다고 한다[1]。브라마굽타는 브라만의 입장에서 아리아바타를 격렬하게 비판했지만, 소련의 인도학자 Бонгард-Левин, Григорий Максимович|그리고리 막시모비치 봉가르드=레빈|label=레빈ru은 브라마굽타가 아리아바타의 과학적 태도를 옹호하고 있다고 해석했다[1]。 레빈에 따르면, 아리아바타가 과학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에 반(反)과학으로부터 비난받은 것을 브라마굽타가 암시하고 있으며, 아리아바타가 정통파 브라만이나 그 충실한 신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비난과 박해를 피한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1]。
바라하미히라의 『판차시드한티카』는 아리아바타가 살았던 시대에 각광받던 저작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성전에서 성자를 통해 전해졌다고 주장한다[1]。 이에 대해 아리아바타는 과거의 지식을 연구하고 자신의 지성으로 서적을 저술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사학자 M.L.Sharma는 아리아바타를 "인도 천문학 최초의 아차르야(학자)"라고 평가했다[1]。 아차르야(학자)는 저자 자신이 연구하여 저서를 쓴 사람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다[1]。
3. 주요 저서
아리아바타는 수학과 천문학에 관한 여러 논문을 저술했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아리아바티야》뿐이다.[15]
《아리아바티야》는 인도 수학 문헌에서 언급되며 현대까지 전해졌다.[17] 이 책은 산술, 대수, 평면 삼각법, 구면 삼각법, 연분수, 이차 방정식, 거듭제곱 급수의 합, 사인표 등을 다룬다.[17]
《아리아-시단타》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바라하미히라 등 당대와 후대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수르야 시단타에 기반하여 자정-일 계산법을 사용하고, 규형 등 다양한 천문 기기에 대한 설명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16]
《Al ntf》 또는 《Al-nanf》는 아랍어 번역본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아리아바타의 저서로 추정되지만, 아부 레이한 알 비루니가 언급한 것 외에 산스크리트어 원본 이름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2]
3. 1. 《아리아바티야》(Āryabhaṭīya)
아리아바타의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세부 사항은 《아리아바티야》에서만 알려져 있다. "아리아바티야"라는 이름은 후대의 해설가들이 붙인 것이다. 아리아바타 자신은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8] 그의 제자 바스카라 1세는 그것을 《아슈마카탄트라》(Ashmakatantra, 또는 아슈마카의 논문)라고 부른다. 또한 텍스트에 108개의 구절이 있기 때문에 가끔 《아리아-샤타스-아슈타》(문자 그대로 아리아바타의 108)라고도 불린다.[17][8] 각 줄은 복잡한 시스템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트라 문학의 전형적인 매우 간결한 스타일로 쓰여졌다. 따라서 의미의 설명은 해설가들의 몫이다. 텍스트는 108개의 구절과 13개의 서론 구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4개의 '파다' 또는 장으로 나뉜다.1. '''기티카파다'''(13개의 구절): 초기 텍스트인 라가다의 《베당가 조티샤》(Vedanga Jyotisha, 기원전 1세기)와 다른 우주론을 제시하는 대규모 시간 단위—''칼파'', ''만반타라'', ''유가''. 단일 구절에 주어진 사인(''자'')의 표도 있다. ''마하유가'' 동안의 행성 회전 기간은 432만 년으로 주어진다.
2. '''가니타파다'''(33개의 구절): 계측법(''크셰트라 비아바하라''), 산술 및 기하 급수, 그노몬/그림자(''샹쿠''-''차야''), 단순, 이차, 연립, 부정 방정식(''쿠타카'')을 다룬다.[18]
3. '''칼라크리야파다'''(25개의 구절): 다양한 시간 단위와 주어진 날짜의 행성 위치를 결정하는 방법, 윤달(''아디카마사''), ''크샤야-티티'' 및 요일 이름을 가진 7일 주기에 대한 계산.[18]
4. '''골라파다'''(50개의 구절): 천구의 기하학적/삼각법 측면, 황도, 천구 적도, 노드, 지구의 모양, 밤낮의 원인, 지평선에서 황도대의 상승 등.[18] 또한 일부 버전에서는 작품의 미덕 등을 칭찬하며 끝에 몇 개의 발문을 인용한다.[18]
《아리아바티야》는 수 세기 동안 영향력을 미친 시 형식의 수학 및 천문학 분야에서 여러 혁신을 제시했다. 텍스트의 극단적인 간결함은 그의 제자 바스카라 1세(''바샤'', 서기 600년경)와 닐라칸타 소마야지에 의해 그의 《아리아바티야 바샤》(1465년)에서 자세히 설명되었다.[17][18]
《아리아바티야》는 또한 운동의 상대성에 대한 묘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러한 상대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앞으로 움직이는 배 안의 사람이 정지된 물체(해안)가 뒤로 움직이는 것을 보듯이, 지구에 있는 사람들도 정지된 별들이 정확히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8]
3. 2. 《아리아싯단타》(Aryasiddhānta)
《아리아싯단타》는 바라하미히라 등 6세기 천문학자들의 저서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제목은 아리아바타의 천문학(싯단타)을 의미한다. 7세기 북인도에서 크게 유행했으며, 아리아바타를 비판했던 브라마굽타는 이를 비난하기 위해 '달콤한 설탕으로 조리한 음식'을 의미하는 《칸다 카디야카》라는 제목으로 《아리아싯단타》의 요약본을 만들기도 했다.K. V. Sarma영어에 따르면 《아리아싯단타》는 안드라프라데시 주에서 인도 북서부, 이란을 거쳐 아바스 왕조의 궁정에 전해졌다. 《칸다 카디야카》는 아랍어로 번역되어 《알-칸드》라는 이름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천문 계산을 위한 간편한 안내서로 널리 사용되었다. 알 비루니는 인도의 과학 기술을 이슬람 세계에 전한 페르시아 학자로, 《칸다 카디야카》를 개정하기도 했다.
4. 수학적 업적
아리아바타는 수학 분야에서 여러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리값 체계를 사용했으며, 0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저서 『아리아바티야』는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으며, 원주율의 근사값()을 제시했는데, 이는 소수점 이하 4자리까지 정확한 값이다.
원주율(π)의 근삿값에 대해 연구했으며, π가 무리수라는 것을 알아냈을 가능성이 있다. 『아리아바티암』(gaṇitapāda|가니타파다sa 10)에서 그는 원의 둘레와 지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āsanna"(접근)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 값이 근삿값일 뿐만 아니라 무리수임을 의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22] 이는 1761년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트에 의해 유럽에서 증명된 π의 무리수 성질을 훨씬 앞서 파악한 놀라운 통찰이다. 『아리아바티아』가 아랍어로 번역된 후, 이 근삿값은 알콰리즈미의 대수학 책에 언급되었다.[2]
아리아바타는 "반현"을 뜻하는 아르다-쟈(ardha-jya)라는 이름으로 사인의 개념을 설명했고, 최초로 사인 삼각법 표를 작성했다. 그의 사인 개념은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현재 사용되는 "sine"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되었다.[24]
그는 디오판토스 방정식에 대한 정수 해를 찾는 कुट्टक|kuṭṭakasa 방법'을 제시했다.[25] Kuṭṭaka는 "분쇄"를 의미하며, 1차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푸는 표준 방법이 되었다.
또한 제곱수와 세제곱수의 수열의 합에 대한 공식을 제시했다.[26]
:
: (제곱 삼각수 참조)
4. 1. 자리값 체계와 영(0)
아리아바타는 자리값 체계를 사용했으며, 영(0)에 대한 개념을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저서 『아리아바티야』는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123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주율의 근사값()을 제시하였다. 이는 소수점 이하 4자리까지 일치하는 값이다.4. 2. 원주율(π)의 근사
아리아바타는 원주율(π)의 근삿값에 대해 연구했으며, π가 무리수라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 『아리아바티암』의 두 번째 부분(gaṇitapāda|가니타파다sa 10)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100에 4를 더하고, 8을 곱한 다음 62,000을 더하라. 이 규칙에 의해 지름이 20,000인 원의 둘레에 접근할 수 있다."[21]
이는 지름이 20000인 원의 경우, 둘레가 62832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π = 62832/20000 = 3.1416이며, 이는 백만 분의 2의 정확도를 갖는다.[29]
아리아바타는 "āsanna"(접근)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는 근삿값일 뿐만 아니라 그 값이 무리수임을 의미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정교한 통찰인데, 왜냐하면 π의 무리수는 1761년에 람베르트에 의해 유럽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22]
『아리아바티아』가 아랍어로 번역된 후(c. 820 CE), 이 근삿값은 알콰리즈미의 대수학 책에 언급되었다.[2]
4. 3. 삼각법
아리아바타는 저서에서 "반현"을 뜻하는 아르다-쟈(ardha-jya)라는 이름으로 사인의 개념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이를 줄여 ''쟈''(jya)라고 불렀다. 아랍 작가들은 그의 작품을 산스크리트어에서 아랍어로 번역하면서 ''지바''(jiba)라고 불렀는데, 아랍어 표기에서는 모음이 생략되어 ''jb''로 축약되었다. 이후 이를 "주머니" 또는 "옷의 주름"을 의미하는 ''자이브''(jaib)로 대체했다. (아랍어에서 ''지바''는 의미 없는 단어이다.) 12세기에 제라르 드 크레모나가 이 작품들을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자이브''를 라틴어 ''sinus''로 대체했고, 이는 "만" 또는 "작은 만"을 의미하며, 여기서 영어 단어 ''sine''이 유래했다.[24]아리아바타는 최초로 사인 삼각법 표를 작성하고, 대수학, 무한소, 미분 방정식의 해법과 알고리즘을 개발했으며, 현대와 같은 방법으로 선형 방정식의 해를 구했다. 『아리아바티야』에는 삼각 함수를 구하는 방법과 간단한 표가 기록되어 있다.
4. 4. 방정식
아리아바타는 디오판토스 방정식에 대한 정수 해를 찾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कुट्टक|kuṭṭakasa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25] Kuṭṭaka는 "분쇄" 또는 "작은 조각으로 부수기"를 의미하며, 원래의 인수를 더 작은 숫자로 쓰는 재귀 알고리즘을 포함한다. 이 알고리즘은 인도 수학에서 1차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푸는 표준 방법이 되었다.아리아바타는 제곱수와 세제곱수의 수열의 합에 대한 공식을 제시했다.[26]
:
: (제곱 삼각수 참조)
5. 천문학적 업적
아리아바타는 천문학 분야에서 উল্লেখযোগ্য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지구가 자전하며, 이로 인해 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38][39][40] 행성 궤도가 타원일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44] 그의 천문학 체계는 "우다야카 체계"라고 불렸는데, 적도의 "랑카"에서 "우다이"(새벽)를 기준으로 날짜를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아리아바타는 일식과 월식이 지구와 달의 그림자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라후와 케투라는 존재가 식을 일으킨다는 당시의 믿음과는 다른 과학적인 설명이었다. 그는 월식이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들어갈 때 발생한다고 보았으며(gola.37|골라 37절sa), 지구 그림자의 크기와 범위, 식 동안 가려지는 부분의 크기를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gola.38–48|골라 38–48절sa).
이후 인도의 천문학자들은 아리아바타의 계산을 더욱 발전시켰다. 18세기 프랑스 과학자 기욤 르 장티는 퐁디셰리 방문 중 1765년 8월 30일 월식 지속 시간에 대한 인도 현지 계산이 아리아바타의 계산 방식을 따라 41초 짧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반면 기욤 르 장티가 참고한 토비아스 마이어의 자료는 68초 더 길었다.
아리아바타는 항성 자전 시간을 23시간 56분 4.1초로 계산했는데,[35] 이는 현대 값인 23:56:4.091과 매우 유사하다.
5. 1. 우주 모델
아리아바타는 지구가 자전하며 별들의 움직임은 이로 인한 상대적인 운동이라고 주장했다.[38][39][40] 그는 행성 궤도가 타원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44]아리아바타의 천문학 체계는 "우다야카 체계"라고 불렸는데, 이는 "랑카"(적도)에서의 "우다이"(새벽)부터 날짜를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그의 일부 텍스트에서는 하늘의 겉보기 운동을 지구 자전으로 설명했다.
『아리아바티야』에는 지구 자전을 인정하는 우주 모델이 포함되어 있다. 아리아바타는 만유인력의 지동설에 기반한 태양 중심의 우주 모델에서 행성이 타원 궤도를 가진다고 언급했다.
5. 2. 행성 운동
아리아바타는 지구 중심 모델을 설명했는데, 이 모델에서 태양과 달은 각각 주전원에 의해 운반되며, 이들은 차례로 지구 주위를 돈다. ''Paitāmahasiddhānta'' (c. 425 CE)에서도 발견되는 이 모델에서, 행성의 운동은 각각 작은 '만다'(느린) 주전원과 더 큰 '시그라'(빠른) 주전원, 두 개의 주전원에 의해 제어된다.[32]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기준으로 행성의 순서는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그리고 별자리 순으로 정해진다.행성의 위치와 주기는 균일하게 움직이는 점을 기준으로 계산되었다. 수성과 금성의 경우, 그들은 태양과 동일한 평균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돈다. 화성, 목성, 토성의 경우, 그들은 황도대를 통과하는 각 행성의 운동을 나타내는 특정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돈다. 대부분의 천문학 역사가들은 이 두 개의 주전원 모델이 프톨레마이오스 이전 시대의 그리스 천문학의 요소를 반영한다고 본다.[33] 아리아바타 모델의 또 다른 요소인 '시그로카', 즉 태양에 대한 기본 행성 주기는 일부 역사가들에게 태양 중심 모델의 기본 징후로 여겨진다.[34]
아리아바타는 지구가 자전하는 천문 모델을 옹호했다. 그의 모델은 또한 태양의 평균 속도를 기준으로 하늘에서 행성의 속도에 대한 보정(''śīgra'' 이상)을 제공했다. 따라서 아리아바타의 계산은 태양 중심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38][39][40]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41] 아리아바타의 시스템의 측면이, 인도 천문학자들이 알지 못했던, 이전의, 아마도 프톨레마이오스 이전의 그리스 태양 중심 모델에서 파생되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42] 증거는 부족하다.[43] 일반적인 합의는 합삭 이상(태양의 위치에 따라 달라짐)이 물리적으로 태양 중심 궤도를 의미하지 않으며(이러한 보정은 후기 바빌로니아 천문 텍스트에도 존재함), 아리아바타의 시스템이 명시적으로 태양 중심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44]
5. 3. 식(Eclipses)
아리아바타는 달과 행성이 반사된 햇빛으로 빛난다고 설명하며, 일식과 월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식이 라후와 케투에 의해 발생한다는 당시의 주류 우주론 대신, 지구와 달의 그림자로 인해 식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들어갈 때 발생한다(gola.37|골라 37절sa). 그는 지구 그림자의 크기와 범위, 식 동안 가려지는 부분의 계산과 크기를 상세히 설명했다(gola.38–48|골라 38–48절sa).이후 인도 천문학자들은 아리아바타의 계산을 개선했지만, 그의 방법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8세기 과학자 기욤 르 장티는 인도의 퐁디셰리를 방문했을 때, 1765년 8월 30일 월식 지속 시간에 대한 인도 현지 계산이 아리아바타의 계산 방식을 따른 결과 41초 짧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기욤 르 장티가 사용한 토비아스 마이어의 차트는 68초 길었다.
5. 4. 항성 주기
아리아바타는 항성 자전(고정된 별을 기준으로 한 지구의 자전)을 현대 영어 시간 단위로 23시간 56분 4.1초로 계산했는데,[35] 이는 현대적 값인 23:56:4.091과 매우 가깝다.6. 영향 및 유산
아리아바타의 업적은 인도 천문학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번역을 통해 여러 이웃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슬람 황금기(c. 820 CE) 동안의 아랍어 번역이 큰 영향을 미쳤다.[45] 그의 일부 결과는 알콰리즈미에 의해 인용되었으며, 10세기 알 비루니는 아리아바타의 추종자들이 지구가 자전한다고 믿었다고 언급했다.
그의 사인 (''jya''), 코사인 (''kojya''), 버사인 (''utkrama-jya''), 그리고 아크사인 (''otkram jya'')의 정의는 삼각법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0°에서 90°까지 3.75° 간격으로 4자릿수 정확도의 사인 및 버사인 (1 − cos ''x'') 표를 처음으로 지정했다.[45]
현대 용어 "사인"과 "코사인"은 아리아바타가 도입한 단어 ''jya''와 ''kojya''의 오역이다. 이들은 아랍어로 ''jiba''와 ''kojiba''로 번역되었고, 이후 제라르 드 크레모나가 아랍어 기하학 텍스트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해했다. 그는 ''jiba''가 아랍어 단어 ''jaib''("의복의 주름"을 의미)와 같다고 추정하여 L. ''sinus'' (c. 1150)로 번역했다.[45]
아리아바타의 천문학적 계산 방법 또한 매우 영향력이 있었다. 삼각법 표와 함께, 이들은 이슬람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많은 아랍 천문학 표 (zijes)를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아랍 스페인 과학자 알-자르칼리 (11세기)의 작품에 있는 천문학 표는 톨레도 표 (12세기)로 라틴어로 번역되었으며,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 사용된 가장 정확한 역서로 남아 있었다.
아리아바타와 그의 추종자들이 고안한 역법 계산은 판창감(힌두교 달력)을 정하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인도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오마르 하이얌을 포함한 일군의 천문학자들이 1073 CE에 도입한 잘랄력의 기초를 형성했으며,[46] 이 중 1925년에 수정된 버전은 오늘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되는 국가 달력이다. 잘랄력의 날짜는 아리아바타와 초기 Siddhanta 달력에서와 같이 실제 태양의 통과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유형의 달력은 날짜를 계산하기 위한 역서를 필요로 한다. 날짜를 계산하기는 어려웠지만, 계절적 오차는 그레고리력보다 잘랄력에서 더 적었다.
인도 최초의 위성 아리아바타와 달 분화구 아리아바타는 모두 그의 업적을 기려 명명되었으며, 아리아바타 위성은 인도 2 루피 지폐 뒷면에 등장했다.
천문학, 천체 물리학 및 대기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는 인도 나이니다르 근처에 있는 아리아바타 관측 과학 연구소(ARIES)이다. 학교 간 아리아바타 수학 경시대회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47] 2009년 ISRO 과학자들이 성층권에서 발견한 박테리아 종인 ''Bacillus aryabhata''도 마찬가지이다.[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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