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캐비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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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친 캐비닛은 대통령 또는 총리와 같은 최고 지도자의 비공식 자문단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1830년대 미국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비공식 자문단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후 영국, 호주, 캐나다, 인도, 이스라엘 등 다양한 국가에서 사용되었다. 키친 캐비닛은 공식적인 내각 회의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이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지도자에게 다양한 의견을 제공하고, 정책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소수 측근에 의한 의사 결정으로 투명성이 저해되고,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최순실이 대통령의 키친 캐비닛 역할을 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공식적인 내각 외에 비공식적인 자문 그룹을 운영했는데, 이들을 '키친 캐비닛'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잭슨 행정부 초기인 1829년부터 1831년까지 존 C. 칼훈 부통령과 마틴 밴 뷰런 국무장관 간의 불화로 인해 대통령 고문단 회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생겨났다.[3][5][6] 이 때문에 공식적인 대통령 고문단은 "응접실 내각(parlor cabinet)"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파라(parlor)'는 응접실이나 접견실을 의미하는데, 잭슨과 협의하려면 남몰래 부엌에서 뒷계단을 올라 잭슨의 서재를 개별 방문해야 한다는 추측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심판 답변서를 통해 최순실을 키친 캐비닛이라 주장하며, (최순실에게 자문한 것이) 합법이라고 주장했다.[13] 이와 관련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송기호 변호사, 참여연대 등은 최순실에게 기밀업무를 자문한 것을 공무상비밀누설죄 또는 외교상기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거나 고발했다.[14][15]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는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을 공무상비밀누설죄 혐의로 구속했다.[16]
2. 역사
잭슨은 공식적인 대통령 고문단 회의를 열지 않고, 대신 측근 지인과 자문역을 사적으로 중용했다. 이 비공식 집단은 반정부적인 언론에 의해 "키친 캐비닛"이라고 불렸다.
1831년, 이튼 스캔들(페티코트 사건) 이후 밴 뷰런 국무장관과 존 헨리 이튼 육군 장관이 사임하면서 잭슨은 공식 내각을 전면 교체했고, 비공식적인 키친 캐비닛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했다. '키친 캐비닛'이라는 개념이 처음 기록된 것은 밴 뷰런 등이 떠난 후인 1831년 12월 니컬러스 비들 총재의 발언이었으며, 1832년 3월에는 언론에서도 이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2. 1. 미국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키친 캐비닛에는 마틴 밴 뷰런, 프랜시스 프레스턴 블레어, 아모스 켄들, 윌리엄 B. 루이스, 앤드루 잭슨 도넬슨, 존 오버턴, 아이작 힐, 로저 B. 토니 등 오랜 정치적 동맹자들이 포함되었다. 신문 기자였던 블레어와 켄들은 라이벌 신문으로부터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3][5][6]
블레어는 켄들의 후임으로 잭슨주의 신문인 ''Argus of Western America''의 편집인이 되었으며, 이 신문은 신 법원을 지지하는 켄터키의 유력 신문이었다. 잭슨은 블레어를 워싱턴 D.C.로 불러 더프 그린과 맞서게 했는데, 그는 ''The United States Telegraph''의 편집인이었고, 새로운 신문인 ''Globe''를 창간했다. 루이스는 1812년 전쟁 당시 잭슨 밑에서 군수부로 복무했고, 앤드루 도넬슨은 잭슨의 양아들이자 개인 비서였으며, 오버턴은 1790년대부터 앤드루 잭슨의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였다.[5][7]
이 용어는 미국 은행의 은행장 니컬러스 비들의 서신에서 처음 확인되는데, 그는 대통령 고문단에 대해 "부엌이 응접실보다 우세하다"라고 썼다. 출판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32년 3월 13일 캘훈주의 신문 ''텔레그래프''에 게재된 기사에서 조지 포인덱스터 미시시피 주 상원 의원이 반 뷰런을 영국 주재 공사로 임명하는 것에 반대하는 자신의 투표를 옹호하면서였다.
> 대통령의 언론은 '클레이 당에서 탈당한 두 명' [켄달과 블레어]과 몇몇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의 눈 아래에서 편집되었으며, '키친 캐비닛'이라는 별칭으로 친숙하게 알려져 있으며, 연합에서 가장 타락한 인쇄물에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사소한 비방의 일반적인 저장소가 되었다.[3]
일상적인 미국 사용법에서 "키친 캐비닛"은 신뢰할 수 있는 친구와 동료의 집단을 의미하며, 특히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의 가장 가까운 비공식 고문단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2. 2. 영국
영국 총리 해럴드 윌슨이 재임(1964-1970, 1974–1976)하는 동안 그의 측근을 묘사하기 위해 이 용어가 영국 정치에 도입되었다. 토니 블레어 이전까지 윌슨은 노동당 출신 총리 중 최장수였다. 윌슨의 키친 캐비닛에는 마르시아 윌리엄스, 조지 위그, 조 하인스, 버나드 도노휴 등이 있었다. 이 용어는 이후, 특히 토니 블레어 재임 기간 동안 전통적인 민주주의적 내각 구조를 배제하고, 선출되지 않은 측근과 동맹 세력에 훨씬 더 의존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관행의 예로는 블레어가 내각 임명 전에 앤드루 아도니스 고문에게 의존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미국보다 약 1세기 반 늦게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영국에서도 제1차 윌슨 내각 (1964-1970년)에서 키친 캐비닛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되었으며, 블레어 내각 (1997-2007년)에서도 키친 캐비닛의 존재가 비판받았다.
노동당 소속 해럴드 윌슨은 정치 경제 전문가 지향이 강하다고 하며, 정부의 경제 개입에 적극적이었다. 윌슨의 키친 캐비닛에는 저널리스트인 Joe Haines (journalist)|조 하인스영어,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Bernard Donoughue, Baron Donoughue|버나드 도노휴영어, 교통부 차관을 맡았던 Albert Murray, Baron Murray of Gravesend|앨버트 머레이영어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윌슨의 사설 비서를 오랫동안 맡았던 Marcia Falkender, Baroness Falkender|마르시아 윌리엄스영어 (팰켄더 남작부인)은 윌슨과의 불륜 관계를 의심받아 언론으로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과 비판을 받았다.
같은 노동당 소속 토니 블레어는 의원내각제의 영국에서 미국 대통령형 리더십 스타일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당시 블레어 정권 하에서는 미국이 주체가 되어 수행한 이라크 전쟁에 영국도 파병했으며, 그 의사 결정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특별 고문들을 블레어가 중용하는 자세가 비판받았다. 그 비판의 선봉에 섰던 인물 중 한 명이 Clare Short|클레어 쇼트영어이다. 쇼트는 블레어 정권 하에서 Secretary of State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국제개발부 장관영어을 약 6년간 역임했으나, 블레어와의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2003년에 사임했다. 그리고 사임 발표 다음 달에는 블레어의 키친 캐비닛으로, 전 외교관이자 Downing Street Chief of Staff|수석 비서관영어인 Jonathan Powell (Labour adviser)|조나단 파월영어,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Downing Street Press Secretary|수석 보도관영어을 맡고 있는 Alastair Campbell|앨러스테어 캠벨영어, 정책 비서인 모건 여사, 그리고 주미 대사인 David Manning|데이비드 매닝영어을 지명하여 통렬하게 비판했다. 또한 이 4명 외에도 블레어의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앤지 헌터, 정책 담당 제프 멀건 및 데이비드 밀리반드 등이 키친 캐비닛 멤버로 간주된다.
블레어가 각료보다 사적인 어드바이저진인 키친 캐비닛을 중시하는 자세는 "소파 정치" 또는 "데노크라시" (denocracy영어)로도 형용되었다. 이는 블레어가 자리한 소파 주변, 혹은 은신처 (den영어)와 같은 방에 키친 캐비닛이 모여 의사 결정을 한 데서 유래한다.
2. 3. 기타 국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케빈 러드 전 총리는 줄리아 길라드를 포함한 측근 그룹에 의존했는데, 이는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8]
캐나다에서는 1982년 캐나다 헌법의 자국화 협상 과정에서 장 크레티앵 등 3명이 실제 주방에서 만나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키친 내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소니아 간디가 이끌었던 국가 자문 위원회가 "키친 캐비닛"이라고 불렸다.[9] 만모한 싱 총리 시절, 소니아 간디는 국가 자문 위원회(NAC) 의장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초총리"로 여겨졌다.
이스라엘에서 "키친 캐비닛"(המטבחון|하미트바혼he)은 총리의 최측근 고문 그룹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골다 메이어 전 총리가 자택에서 측근 장관들과 회의를 주최하던 관행에서 유래되었다.
3. 대한민국
3. 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016년 12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출한 탄핵심판 답변서가 공개되었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을 키친 캐비닛이라고 하며, (최순실에게 자문한 것이) 합법이라고 주장했다.[13]
2016년 11월 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기밀업무를 자문한 것이 공무상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 또는 외교상기밀누설죄(형법 제113조)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14]
2016년 11월 4일 09시 30분, 참여연대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공무상 비밀 누설죄(형법 제127조) 또는 외교상 기밀 누설죄(형법 제113조) 혐의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15]
같은 날 23시 30분,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47)을 공무상비밀누설죄 혐의로 구속했다. 정호성은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연설문 작성과 기획 업무를 맡아 보좌했다.[16]
4.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키친 캐비닛은 앤드루 잭슨 행정부에서 유래한 용어로, 공식 각료 회의가 제 기능을 못하자 잭슨 대통령이 비공식적인 측근들과 국정을 논의하면서 '부엌에서 뒷계단을 통해 몰래 만나 논의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13] 이 비공식 자문 그룹은 잭슨 행정부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프랜시스 프레스턴 블레어, 에이머스 켄달 등이 주요 인물이었다.[13]
키친 캐비닛은 대통령이 신뢰하는 사람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국정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고, 공식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키친 캐비닛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자주 거론된다.
4. 1. 부정적 측면
대한민국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최순실이 키친 캐비닛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다.[1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최순실에게 기밀업무를 자문한 것이 공무상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 또는 외교상기밀누설죄(형법 제113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14] 참여연대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같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15]'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는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을 공무상비밀누설죄 혐의로 구속했다.[16] 정호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입문 초기부터 연설문 작성과 기획 업무를 보좌해 온 인물이다.[16]
영국의 블레어 내각(1997-2007년)에서도 키친 캐비닛의 존재가 비판받았다.[13] 특히, 이라크 전쟁 파병과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특별 고문들을 중용한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클레어 쇼트는 블레어의 키친 캐비닛으로 조나단 파월, 앨러스테어 캠벨, 모건 여사, 데이비드 매닝을 지명하여 비판했다. 블레어가 각료보다 사적인 어드바이저진인 키친 캐비닛을 중시하는 자세는 "소파 정치" 또는 "데노크라시" (denocracy영어)로도 형용되었다.
인도의 소니아 간디는 만모한 싱 총리 시절 국가 자문 위원회(NAC) 의장으로서 "초총리"의 권력을 장악했고, 이 NAC가 키친 캐비닛에 해당한다고 여겨졌다.[13] 포브스는 2010년 소니아 간디를 세계 유력자 9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참조
[1]
웹사이트
Kitchen Cabinet
https://www.politics[...]
2023-02-14
[2]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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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W. Norton
2005-10-24
[3]
서적
The Life of Andrew Jackson
https://archive.org/[...]
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
2001-09-01
[4]
OED
Kitchen cabinet
[5]
서적
Andrew Jackson
https://archive.org/[...]
Henry Holt and Company
2005-12-27
[6]
서적
American Political Leaders: From Colonial Times to the Present
https://books.google[...]
1991
[7]
간행물
John Overton
http://tennesseeency[...]
[8]
웹사이트
Kitchen Cabinet with Annabel Crabb
http://www.abc.net.a[...]
2012-02-27
[9]
뉴스
Sonia Gandhi in the U.S. for Operation
https://www.nytimes.[...]
2011-08-04
[10]
간행물
The Nation: Scenario of the Shake-Up
http://content.time.[...]
2017-07-05
[11]
뉴스
Brewery magnate Joseph Coors dies at 85
https://www.usatoday[...]
2003-03-17
[12]
웹사이트
Building Your "Kitchen Cabinet"
2004-04-02
[13]
뉴스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노건평·이상득 전례도 있다
조선일보
2016-12-18
[14]
뉴스
“최순실, ‘비밀취급 인가’ 없어···문서보낸 비서실 처벌 대상”
경향신문
2016-11-02
[15]
뉴스
朴대통령, 뇌물죄·비밀누설죄 등 7개 혐의로 고발 당해
이데일리
2016-11-04
[16]
뉴스
‘靑 문건유출’ 정호성 전 비서관, 구속영장 청구
이데일리
20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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