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일제강점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함경남도 (일제강점기)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함경남도를 다룬다. 1925년 141만 명이었던 인구는 1944년 201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조선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3부 14군으로 행정 구역이 구성되었으며, 함흥, 원산, 흥남에 부가 있었다. 주요 산업으로는 중화학 공업이 발달했으며, 철도와 도로, 항만이 건설되었다. 함흥, 원산, 안변에 신사가 건립되었고, 함흥의학전문학교 등 교육 기관이 설립되었다. 조선방송협회 함흥방송국과 원산방송국이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으며, 조선시사신보, 원산매일신문 등 일본어 신문이 발행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함경남도의 역사 - 장진호 전투
장진호 전투는 1950년 한국 전쟁 중 중공군 개입 이후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혹독한 기상 조건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유엔군의 흥남 철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함경남도의 역사 - 동예
동예는 오늘날 원산에서 강릉에 이르는 동해안 중부 지역에 위치했던 부여족 계통의 군장국가로, 옥저와 함께 한사군에 속했으며, 매년 음력 10월에 무천이라는 축제를 열었고,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의 특산물이 있었다. - 강원도의 역사 - 백담사
백담사는 647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이름 변경과 소실 및 재건을 거쳐 1783년 현재 이름으로 개칭되었으며, 내설악의 대표 사찰이자 만해 한용운의 저술 활동 장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둔 생활 장소로 알려져 있고,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이자 목조아미타불좌상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강원도의 역사 - 강원도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강원도는 일제의 식민 통치하에 자원 수탈과 강제 노역, 징병에 시달렸으며, 전시 동원 체제 강화와 민족 문화 말살 정책으로 고통받고 해방 후 분단으로 아픔을 겪었다.
2. 역사
함경남도는 조선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함경도 지방의 서남쪽에 해당한다. 동북쪽으로는 함경북도, 남쪽으로는 강원도, 서남쪽으로는 황해도, 서쪽으로는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에 접해 있다. 북쪽으로는 압록강 상류부를 경계로 만주와 인접해 있으며, 최북단에는 백두산을 품고 있다. 도의 북부에는 개마고원이 펼쳐져 있다.
2. 1. 일제강점기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일제의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함경남도청이 함흥에 설치되었다. 일제는 함경남도의 지하자원과 수력 자원을 개발하고, 흥남, 원산 등을 중심으로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였다. 1930년대 이후 대규모 댐 건설을 통한 전력 자원 개발과 연해 지역의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민족 차별과 수탈 속에서도 3.1 운동 등 항일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3. 인구
1944년 (쇼와 19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는 2,015,352명이었다. 민족별 인구 구성은 다음과 같다.
1936년 현주 호구 조사에 따르면 총인구는 1,602,178명이었다. 민족별 인구 구성은 다음과 같다.
4. 행정 구역
1945년 광복 당시 함경남도는 3부 14군으로 구성되었다.
4. 1. 부 (府)
4. 2. 군 (郡)
5. 역대 도지사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도지사는 조선총독부가 임명하였으며, 초기에는 조선인 도지사도 임명되었으나, 점차 내지인(일본인)으로 대체되었다. 1919년 8월 이전에는 '함경남도 장관'으로 불렸다.
6. 사법
1941년 당시 함흥지방법원과 그 아래에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 함흥지방법원 북청지청, 함흥지방법원 혜산지청이 설치되어 있었다.
7. 경찰
1927년 당시 함경남도 경찰부 아래에는 16개의 경찰서가 있었다.
1915년 당시에는 헌병 경찰 제도로, 함흥 헌병대와 그 아래 분대가 운영되었다.
8. 경제
일제강점기 함경남도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중화학 공업이 육성되었으며, 대규모 댐 건설을 통한 전력 자원 개발과 연해 지역의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광업, 제조업, 운수업 등이 발달하였다.
1940년 당시 함경남도에 본사를 둔 자본금 50만엔 이상의 기업은 조선질소비료, 일본 마그네슘 금속, 함경남도 무진 등 16개였다.
주요 광산으로는 장흥광산(흑연), 함흥탄광, 문천탄광, 리원철산 등이 있었다.
함경선, 평원선 등 주요 철도 노선과 경성원산선 등 도로망이 건설되어 물자 수송과 인적 교류를 촉진하였다.
원산항은 주요 항구로 개발되었으며, 그 외에도 서호진항, 신포항, 신창항, 차호항, 여해진항, 전진항, 퇴조항 등이 개발되었다.
8. 1. 산업
일제강점기 함경남도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중화학 공업이 육성되었다. 조선질소비료를 비롯한 일본 마그네슘 금속 등 대규모 공장이 건설되었다.1930년대 이후 대규모 댐 건설을 통한 전력 자원 개발과 연해 지역의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광업, 제조업, 운수업 등이 발달하였다.
1940년 당시 함경남도에 본사를 둔 자본금 50만 엔 이상의 기업은 다음과 같다.
8. 2. 철도
함경선, 평원선, 경원선, 동해선 등 주요 철도 노선이 건설되어 물자 수송과 인적 교류를 촉진하였다. 신흥철도 등 사설 철도도 건설되었다.8. 3. 도로
1927년 당시 함경남도에는 다음과 같은 도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8. 4. 항만
원산항은 주요 항구로 개발되었으며, 그 외에도 서호진항, 신포항, 신창항, 차호항, 여해진항, 전진항, 퇴조항 등이 개발되었다.
9. 종교
함경남도에는 함흥 신사, 원산 신사, 안변 신사 등 일본 신사가 건립되었다.
10. 교육
함흥의학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11. 언론
조선방송협회 함흥방송국(호출 부호: JBDK), 조선방송협회 원산방송국(호출 부호: JBJK) 등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하였다. 조선시사신보, 원산매일신문 등 일본어 신문이 발행되었다.
12. 주요 인물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