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요리산 (센다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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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요리산 (센다이시)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위치했던 산으로,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 중반까지 유통 거점으로 번성했던 지역에 어부들이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센다이항 건설로 인해 낚시, 서핑 등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었으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산체가 소멸되었다. 이후 2014년 일본 국토지리원의 조사에서 해발 3m의 산으로 다시 인정받아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으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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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요리산 (센다이시)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위치 정보 | |
좌표 | 38° 15′ 20.7″ N, 141° 00′ 42.5″ E |
기본 정보 | |
이름 | 히요리산 (日和山) |
위치 | 일본 미야기현센다이시미야기노구 가모 |
종류 | 축산 (지형) |
표고 | 3m |
상세 정보 | |
형태 | 인공산 |
최초 등정 | 알 수 없음 |
2. 역사
히요리산은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 중반까지 유통 거점으로 번성했던 가모 지역에 위치한다. 철도 발달로 지역의 유통 기능이 쇠퇴한 후, 메이지 시대에 어부들이 날씨를 관측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쌓아 올린 산이다.[10][18]
이후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주변 환경이 변화하자, 본래의 목적보다는 인근 주민이나 방문객들의 휴식 공간으로 주로 이용되었다.
한때 국토지리원 지형도에 등재된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해발 6.05m)이었으나, 오사카시 덴포산의 재등재로 '원조'(元祖|간소일본어) 최저봉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어 산체가 유실되었으나,[3][4] 2014년 국토지리원 재조사 결과 해발 3m로 확인되어 다시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 되었다.[2]
2. 1. 에도 시대 ~ 메이지 시대
에도 시대 간분 연간(1661년 - 1672년)에 기타카타가와 하구가 현재의 시치가하마정 미나토하마에서 이곳 가모 지역으로 변경되었다. 이와 함께 센다이성의 성하 마을과 외항인 시오가마(마쓰시마만 내)를 잇는 운하와 물류 루트가 정비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센다이만에 접한 시오가마와 가모 사이에 "고후네이리보리"(현 테이잔 운하의 일부)를 새로 만들고, 가모의 고후네이리보리에는 하역을 위한 고후네타메와 창고인 가모미쿠라를 설치했다. 또한 가모미쿠라와 기타카타가와 하구를 잇는 다카세보리를 만들고, 기타카타가와를 거슬러 올라간 중류에는 하역을 위한 쓰루마키후네타메와 쓰루마키미쿠라를 설치했다. 더 나아가 쓰루마키미쿠라와 쿠리타케 사이에는 고후네히키보리를 만들어, 쿠리타케에는 하역을 위한 쿠리타케후네타메와 쿠리타케미쿠라를 설치했다. 쿠리타케미쿠라에서는 육로로 시오가마 가도(현 국도 45호선)의 첫 번째 숙역인 하라마치 숙으로 운반하여 하라마치미쿠라에 모은 뒤, 인접한 센다이 성하 마을로 배송하는 유통 시스템이었다. 이 루트를 통해 연공미와 소금 등이 운반되었으며, 가모는 중요한 유통 거점 중 하나가 되었다.1871년 8월 29일(메이지 4년 7월 14일) 폐번치현이 실시되면서 센다이번이 사라지자, 연공미 유통 거점으로서 가모의 지위는 상실되었다. 또한 내륙의 고후네히키보리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이곳의 선박 운송은 쇠퇴했다.
1875년(메이지 8년), 가모에 설탕, 소금, 청어 등을 취급하는 짐 위탁 도매상이 개설되었다. 이로 인해 시오가마에서 고후네이리보리를 통해 배로 운반하는 것은 이전과 같았지만, 가모에서 센다이까지는 말이나 짐마차 등으로 운반하는 루트가 확립되어 가모의 유통 거점으로서의 지위가 다시 살아났다. 같은 시기, 이곳에 현재의 센다이 가모 우체국의 전신이 설치되었다. 당시 센다이시 지역의 우체국 배치를 보면, 센다이 중심부에 1등 우체국이 있었고, 하라마치, 나가마치, 가모 세 곳에 4등 우체국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1878년(메이지 11년)에 성립된 센다이 구에 이어, 센다이로부터 리쿠우 가도(구 오슈 가도, 현 국도 4호선) 상행 첫 숙역이자 나토리군 역소가 설치된 나가마치, 시오가마 가도(현 국도 45호선) 하행 첫 숙역이자 미야기군 역소가 설치된 하라마치와 더불어 가모가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15]
1882년(메이지 15년) 2월, 미야기 키도사가 가모 미쿠라 앞에서 센다이 구 히가시로쿠반초(현재의 센다이역 동쪽 출구)까지 나무로 된 길을 부설하여 마차 궤도를 운영했다. 이로 인해 가모와 센다이 간의 유통은 미야기 키도사의 마차 궤도가 중심이 되었다.
1886년(메이지 19년) 9월 21일, 미야기군 시오가마 마을(현 시오가마시)에서 콜레라가 만연할 조짐을 보이자, 현은 여행객과 화물이 해당 마을을 피하도록 요청했고, 다음 날인 9월 22일에는 시오가마 마을과 다른 지역 간의 교통을 차단했다.[16] 이 때문에 시오가마항에서의 화물 하역이 불가능해지자, 센다이의 외항으로 가모가 활용되었다.[16] 같은 해 10월 19일, 시오가마 마을의 콜레라가 종식되면서 교통 차단이 해제되었다.[17]
1887년(메이지 20년) 12월 15일, 일본철도 본선(현 JR도호쿠 본선)이 센다이역을 거쳐 시오가마역(후의 시오가마선시오가마 부두역)까지 개통되었다. 이로 인해 철도로 시오가마와 센다이가 직접 연결되면서, 유통 거점이었던 가모의 지위는 크게 약화되었고 미야기 키도도 폐지되었다.
1890년(메이지 23년), "관유지 취급 조치"가 정해져 해수면 사용이 허가제가 되면서 연안 어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1909년 (메이지 42년)경, 지역 주민에 의해 히요리야마가 축조되었다[10][18]고 전해진다. 이후 1913년(다이쇼 2년)과 1919년(다이쇼 8년)에도 지역 주민들이 흙을 더 쌓아 올렸다[18]고 한다.
2. 2. 메이지 시대 이후 ~ 현재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 중반까지 유통 거점으로 번성했던 이 지역은 철도의 보급으로 그 지위를 잃고 반농반어촌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메이지 시대에 어부들이 출어 시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날씨를 보기 위해) 히요리야마가 축조되었다.- '''1909년 (메이지 42년)경''': 지역 주민에 의해 히요리야마가 축조되었다.[10][18]
- 1913년 (다이쇼 2년): 지역 주민이 히요리야마에 흙을 쌓았다.[18]
- 1919년 (다이쇼 8년): 지역 주민이 히요리야마에 다시 흙을 쌓았다.[18]
고도 경제 성장기에 이 지역 북쪽에 센다이항(센다이 신항)[13] 이 건설되면서, 옛 마을 서쪽의 농지는 공업·유통 지구로 정비되어 주민들의 생활도 일변했고, 히요리야마가 어부들에게 이용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 한편으로 낚시·서핑·승마, 또는 가모 갯벌의 조류 관찰이나 갯벌 체험 등으로 이 지역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히요리야마를 휴식 공간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 1967년 (쇼와 42년) 12월: 히요리야마의 인접지에서 센다이항[13] 의 건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 1971년 (쇼와 46년): 센다이항[13] 개항.
- 1972년 (쇼와 47년): 야마시나 조류 연구소가 실시하고 있는 조류 표식 조사가 농림성에서 환경청으로 소관이 옮겨졌을 때, 히요리야마가 새롭게 "조류 관측 스테이션"으로 지정되었다.[18]
- 1992년 (헤이세이 4년):
- 일본 지도 센터 발행의 『지도 뉴스』 4월호에서 국토지리원 직원의 조사에 의해 히요리산이 일본 최저봉(해발 6.05 m)이라고 소개되어 언론에 보도되었다. 단, 오사카시에 있는 덴포산이 산으로서의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이등 삼각점이 있고 해발 4.5m로 일본 최저봉이라는 다른 주장도 제기되었다.
- 7월 1일: 후지산의 산 개방일에 맞춰 히요리산에서도 산 개방 행사를 열었다.
- 1993년 (헤이세이 5년): 지형도에서 덴포산의 이름이 삭제되어, 히요리산이 지형도에 등재된 산 중에서는 일본 최저봉이 되었다.
- 1996년 (헤이세이 8년) 7월 1일: 지형도에 덴포산의 이름이 다시 등재되어 일본 최저봉으로 여겨지게 되자, 히요리산은 정상 안내 표지판에 '원조'(元祖)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원조 일본 제일 낮은 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 2006년 (헤이세이 18년) 9월 1일: https://tabiasi.sakuraweb.com/ 여행의 발자취 증명서 보급회 (홋카이도 오비히로시)가 히요리산의 '등정 인정서' 발행을 시작했다.[19]
- 2011년 (헤이세이 23년) 3월 11일: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침강했으며,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아 산의 형태가 사라졌다.[3][4] 동시에 산 북쪽 기슭의 가와구치 신사도 쓰나미에 휩쓸려갔다.
- 2014년 (헤이세이 26년):
- 4월: 국토지리원의 조사 결과 해발 3m의 산으로 다시 인정받았다.[2] 이 결과, 18년 만에 덴포산보다 낮아져 다시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 되었다.[2]
- 7월 1일: "일본 제일 낮은 산"으로 부활한 것을 기념하여 지역 유지들에 의해 산 개방 행사가 열렸다.[11]
3. 지리
히요리산은 센다이시 북동쪽 끝, 센다이만에 면하여 위치하며, 나나키타강 하구 북쪽, 가모 갯벌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해발 6.05m, 남북 약 40m, 동서 약 20m 크기의 암괴였으며[7],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 바다 쪽 조망이 좋았고, 새해 첫 일출 명소로도 꼽혔다. 산 정상에는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라는 안내 간판이 있었는데, 한때 일본 국토지리원의 지형도에 등재된 산 중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오사카시의 덴포산(해발 4.53m)이 지도에 다시 등재되면서 최저 산의 지위를 넘겨주었고[8], 이 때문에 안내 간판에는 '원조'(元祖|간소일본어)라는 글자가 덧붙여졌다. 산괴 남서쪽에는 14개의 계단이 있는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었고, 북쪽 기슭에는 1374년 창건된[7] 가와구치 신사가 쇼와 시대에 옮겨와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지반 침하가 일어났고,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아 산 자체가 주변의 가모 갯벌과 함께 거의 소멸되었다.[3][4][9][10] 동시에 가와구치 신사도 쓰나미로 유실되었다. 그러나 이후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자갈 등을 쌓아 올렸고, 2014년 4월 일본 국토지리원의 조사 결과 해발 3m의 산으로 다시 인정받았다.[2][6] 이로써 18년 만에 덴포산보다 낮아져 다시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 되었으며[2][6], 같은 해 7월 1일에는 지역 유지들에 의해 '산 개방'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11]
히요리산은 주변의 가모 갯벌, 나카노 전승의 언덕과 함께 센다이시의 "모리의 도시 센다이 레이와판 와가마치 녹색 명소 100선"에 선정되었다.[12]
3. 1. 주변 환경
- 가모 갯벌
- 센다이항 (센다이시오가마항 센다이항구)
- 테이잔 운하
- 센다이 승마 클럽
- 마루신 양어장
4. 교통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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