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아와지 대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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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신·아와지 대진재는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에 발생한 규모 7.3의 지진으로, 일본 효고현 남부를 강타하여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혔다. 이 지진은 '헤이세이 7년 효고현 남부 지진'으로 명명되었으며, 언론에서는 '한신대진재'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지진으로 인해 6,434명이 사망하고 43,792명이 부상했으며, 104,906채의 주택이 전파되고 144,274채가 반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는 이 재해를 '한신·아와지 대진재'로 공식 명칭을 정하고, 부흥을 위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쳤으며, 지진 이후 소방, 구조, 의료, 자위대, 건축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매년 1월 17일에는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지진 관련 기록 및 사진, 동영상이 공개되어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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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아와지 대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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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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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 1995년 1월 17일 |
발생 시각 | 오전 5시 46분 52초 (일본 표준시) |
진앙 | 아와지섬 북부 (북위 34.6도, 동경 135.0도) |
진원 깊이 | 16km |
지진 규모 | Mj 6.9 (일본 기상청 규모) |
최대 진도 | 진도7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
여진 횟수 | 2,254회 (1995년 1월 17일 ~ 1995년 12월 26일) |
피해 상황 | |
사망자 | 6,434명 |
부상자 | 43,792명 |
가옥 전파 | 104,906채 |
가옥 반파 | 144,274채 |
소실 가구 | 7,098채 |
피난 지시/권고 대상자 | 316,619명 |
경제적 피해 | 약 10조 엔 |
관련 정보 | |
정식 명칭 | 한신·아와지 대진재 |
다른 명칭 | 고베 대지진 (神戸大震災) 1.17 |
영향 | 재해 지진 단층 액상화 현상 |
특별법 | 지진방재응급대책시설의 정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
관련 재판 | 한신·아와지 대진재 소송 |
2. 명칭
이 지진으로 발생한 흔들림은 지진 이후 일본 기상청의 지진기동관측반이 현지 조사한 결과, 한신칸(효고현 남부의 고베시, 아시야시, 니시노미야시, 다카라즈카시) 및 아와지섬 북부(쓰나정, 호쿠단정, 이치노미야정)에서 진도7의 격진이었음이 확인되었다.[208] 고베해양기상대(현재의 고베지방기상대) 및 스모토 측후소에서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기준 진도6을 관측하였고, 효고현 남부 대부분 지역과 오사카부에서도 진도6으로 판정된 지역이 있었다.[208]
일본 기상청의 지진기동관측반이 현지조사 결과, 한신칸(효고현 남부 고베시, 아시야시, 니시노미야시, 다카라즈카시) 및 아와지섬 북부(쓰나정, 호쿠단정, 이치노미야정)에서 진도7의 격진이 관측되었다.[208] 고베해양기상대(현재의 고베지방기상대) 및 스모토 측후소에서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기준 진도 6, 효고현 남부 대부분 지역과 오사카부 일부 지역에서도 진도 6이 관측되었다.[208]
동쪽으로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까지, 서쪽으로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시까지, 북쪽으로는 니가타현 니가타시까지, 남쪽으로는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까지 넓은 지역에서 진도1 이상의 진동을 관측하였다.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1946년 난카이 지진과 1948년 후쿠이 지진의 피해를 크게 웃돌아 당시 지진재해로는 전후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도시 바로 아래에서 일어난 직하형지진의 재해가 발생하였으며, 일본에서의 도시형 지진재해로는 대도시를 직격한 1944년 도난카이 지진 이후 처음이었다. 후쿠이 지진을 계기로 처음 만들어진 진도7이 처음으로 적용된 지진으로, 일본 기상청의 지진기동관측반을 통한 현지조사인 '실지검분'으로 진도7이 처음으로 적용되었다.[209] 하지만 현지조사 후에 진도7을 발표하면 대응이 늦어진다는 비판을 참고하여 지진 발생 이듬해인 1996년부터 진도7도 지진계를 통해 계산한 계측진도를 통해 속보 가능한 체제로 변경되었다.[209]
건축물에 큰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진 주기 1~2초 사이의 "킬러 펄스"를 가진 지진동도 수치상으로 당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211] 10초 이상 킬링 펄스가 지속된 지역도 있었다. 고베해양기상대에서는 최대 지반 가속도가 818 gal,[212] 최대 지반 속도 105 m/s, 최대 변위가 27 cm인 지진동이 덮친 것으로 분석된다.[213] 고베시 롯코 아일랜드의 지진계에서는 최대 상하 흔들림 507 gal이 기록되었다.
도로, 철도, 전기, 수도, 가스, 전화선 등의 기반 시설이 지진으로 토막토막 끊어져 광범위한 지역의 생활권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도시형 재해와 지진 대책을 언급할 때 "기반 시설"의 조기 복구, 활단층에 대한 고려, 건축공법 상의 문제점, 가설주택 및 이재민 안정 대책 등의 행정적인 대책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전부터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국가로 일본의 대형건축물이 대지진에 취약한 구조임을 인지하고 1981년에는 이른바 '신내진기준'이라고 하는 대폭 개정된 건축기준법이 재정되었다.[215] 하지만 일본의 건축물들이 안전하다는 보도에 근거한 오해를 하는 시민들도 많았으며, 또한 신내진기준 개정 직후인 1982년 이후에 건축된 빌딩, 아파트, 병원, 철도 역사 중에서도 광범위하게 붕괴되거나 무너진 경우가 많았다.
3. 지진 특징
동쪽으로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 서쪽으로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북쪽으로는 니가타현 니가타시, 남쪽으로는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까지 넓은 지역에서 진도 1 이상의 진동이 관측되었다.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중 1946년 난카이 지진, 1948년 후쿠이 지진보다 피해 규모가 커 당시 지진재해로는 전후 최대 규모였다.
직하형지진으로, 1944년 도난카이 지진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대도시 직격 지진이었다. 후쿠이 지진을 계기로 만들어진 진도7이 처음으로 적용되었으며, 일본 기상청 지진기동관측반의 '실지검분'으로 확인되었다.[209] 그러나 현지조사 후 진도 7 발표는 대응 지연 비판을 받아, 1996년부터는 지진계를 이용한 계측진도로 신속하게 발표하는 체제로 변경되었다.[209] 이후 2004년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대진재), 2016년 구마모토 지진, 2018년 홋카이도 이부리 동부 지진에서 진도 7은 모두 지진계로 측정되었다.[210]
건축물에 큰 피해를 주는 주기 1~2초 사이의 "킬러 펄스" 지진동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211] 10초 이상 지속된 지역도 있었다. 고베해양기상대에서는 최대 지반 가속도 818 gal,[212] 최대 지반 속도 105 m/s, 최대 변위 27 cm가 관측되었다.[213] 이는 1993년 쿠시로 해역 지진(922 gal, 67 m/s, 최대 변위 93 cm), 1994년 미국 노스리지 지진(약 800 gal, 128 m/s)과 비슷하다. 고베시 롯코 아일랜드에서는 최대 상하 흔들림 507 gal이 기록되었다. 현재 일본 내 최대 상하 지반 가속도는 2008년 이와테·미야기 내륙지진 당시 이와테현 이치노세키시에서 기록된 4,022 gal이다.[214]
4. 피해
지진으로 발생한 흔들림은 일본 기상청의 지진기동관측반 현지조사에서 한신칸(효고현 남부 고베시, 아시야시, 니시노미야시, 다카라즈카시) 및 아와지섬 북부(쓰나정, 호쿠단정, 이치노미야정)에서 진도7의 격진이었음이 확인되었다.[208]
도로, 철도, 전기, 수도, 가스, 전화선 등의 기반 시설이 지진으로 토막토막 끊어져 광범위한 지역의 생활권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도시형 재해와 지진 대책을 언급할 때 "기반 시설"의 조기 복구, 활단층에 대한 고려, 건축공법 상의 문제점, 가설주택 및 이재민 안정 대책 등의 행정적인 대책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81년 일본에서는 '신내진기준'이라고 하는 대폭 개정된 건축기준법이 재정되었다.[215] 하지만, 일본 건축물들이 안전하다는 보도에 근거한 오해를 하는 시민들도 많았으며, 신내진기준 개정 직후인 1982년 이후에 건축된 빌딩, 아파트, 병원, 철도 역사 중에서도 광범위하게 붕괴되거나 무너진 경우가 많았다.도도부현 인명피해 주택피해 사망자 실종자 부상자 전괴 반괴 효고현 6,402 3 40,092 104,004 136,952 오사카부 31 3,589 895 7,232 교토부 1 49 3 6 도쿠시마현 21 4 84 나라현 12 시가현 9 와카야마현 7 가가와현 7 기후현 2 미에현 1 고치현 1 돗토리현 1 오카야마현 1 합계 6,434 3 43,792 104,906 144,274
간토대진재 당시에는 목조 주택 밀집 지역의 화재가 피해를 키워 대부분 사망자가 소사했고, 일본 자연 재해 중 가장 많은 사망자인 10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231] 동일본 대진재 당시에는 사망자 대부분이 쓰나미에 의한 익사로 15,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232] 이와 비교해 한신·아와지 대진재에서는 단층을 따른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어 피해 지역 영역은 좁았지만, 겨울철 이른 아침에 지진이 일어나 자택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망자 대부분이 압사로 6,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233]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니가와에서는 주택가와 맞닿은 경사면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34명이 사망하는 피해도 일어났다.[235]
4. 1. 외국인 사망자
지진으로 일본인 외에도 외국인이 많이 사망했다. 특히 긴키 지방에만 35만 명이 넘게 사는 재일교포의 경우, 지진 첫날에만 32명의 사망이 확인되었다.[236] 지진 이틀 후인 1월 19일에는 공식 사망자가 34명으로 늘어났으며, 추정 사망자는 500-600명으로 추정되었다.[237] 20일 집계에서는 79명 사망으로 증가했다.[238]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2월 26일 최종적으로 재일동포 130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하고 합동 영결식을 열었다.[239]
4. 2. 피해자의 사인
NHK의 사체검안서 분석에 따르면, 지진 당일에 사망한 5,036명 중 76%인 3,842명이 지진 발생 1시간 이내에 사망했으며, 이 중 90%가 압박사(압사, 질식사 등)였다.[240] 사망자 대부분은 목조 가옥 붕괴로 인해 가옥에 깔려 압사했다. 특히 1층에서 취침 중 지진으로 가옥이 무너져 즉사한 사람이 많았다. 2층 목조주택의 경우 1층 기둥이 부러져 찌그러진 경우가 많았지만, 2층은 생존 공간이 남아 생존자들이 있었다. 1시간 이내 압박사한 사람 중 압사한 경우는 8%이고, 92%가 흉부 압박으로 발생한 외상성 질식사였다.
지진 전체 사망자 중 90%가 압사로 추정된다.[241]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도 짧았다. 고베시에서 사망한 2,456명의 사망자를 검안한 검안의들의 정리에 따르면, 건물 붕괴 후 15분 내로 사망한 사람이 2,221명으로 92%에 달해 압사, 질식사로 '즉사'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242] 선데이 마이니치의 조사에서는 분석 대상 247명 중 47명이 건물에 깔렸으며, 2명이 가구에 깔려 사망했다.[243]
지진 사망자 중 100여 명은 지진 피해가 전혀 없는 건물 안에서 사망했는데,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지진으로 흔들린 가구에 깔려 질식사하거나 머리를 다쳐 즉사한 경우도 많았다. 지진 당일 이송된 부상자 75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이 중 49%인 372명이 가구에 맞아 발생한 부상이었다.
사망자 중 20대가 30대보다 200명 가까이 많은 등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사망자 수도 증가하였던 동일본 대지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244] 지진 당일 질식사한 사망자 2,166명을 연령순으로 보면 60대가 393명, 70대가 392명, 50대가 314명인데 20대도 160명으로 40대 사망자와 비슷했다. 20대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대학가인 고베시 나다구에서 고령자와 같이 집세가 싼 문화주택 등 목조 아파트에서 거주했던 학생이 무너진 아파트에 깔려 숨진 사례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245] 31개 대학에서 총 111명이 사망했으며 특히 고베 대학에서는 학생 39명, 교직원 2명이 사망하는 등 대학 중에서는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246][247]
4. 3. 건축물 피해
건축물 붕괴 피해는 대부분 고베시 동부의 오래된 주택가가 밀집된 히가시나다구에서 발생했으며, 이곳은 가장 큰 흔들림인 진도7이 많이 관측된 지역이었다. 초고층 건축물은 대부분 피해가 없었지만, 벽돌조, 콘크리트 구조의 낡은 창고와 빌딩, 필로티 구조 건축물의 피해가 컸다.
일본의 전통 기와를 사용하고 기초가 약하며 대각재가 적은 오래된 목조 주택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목조축조구법으로 지어진 주택은 지진 발생 시 건물 전체가 붕괴되면서 생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인명 피해가 컸다. 반면, 철근 콘크리트 구조 건물은 견고한 구조 덕분에 크게 파손되어도 기둥, 지붕, 바닥이 산산조각 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인명 피해가 적었다.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 이후 1981년 개정된 일본 건축기준법에 따라 건축된 건물은 피해가 적었다. 지진 당시 붕괴된 가옥의 98%가 개정 이전 건축기준법에 따라 지어진 건물이었다.[256] 이는 1982년 이전에 건축된 주택의 내진성이 약했음을 의미한다.
4. 3. 1. 창고, 병원, 빌딩, 멘션
건축물 붕괴 피해는 대부분 고베시 동부의 오래된 주택가가 밀집된 히가시나다구에 집중되었으며, 이곳은 가장 큰 흔들림인 진도7이 많이 관측된 지역이었다. 완전히 붕괴된 건물은 13,687채, 반파된 건물은 5,538채였다.[248]
초고층 건축물은 대부분 피해가 없었다.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의 피해를 토대로 1981년 개정된 건축기준법에 따라 건축된 건물도 피해가 적었다.[248] 그러나 항구 도시인 고베를 상징하는 수많은 벽돌조와 콘크리트 구조의 낡은 창고와 물류 시설, 낡은 빌딩, 1층이 주차장으로 되어 있는 필로티 구조의 빌딩 멘션 등에서 피해가 컸다.[249] 건축물 피해에 비해 사망자는 적었으며, 일부 철근 콘크리트 구조 아파트는 화재가 발생했으나 옆 건축물로 번지지는 않았다.
오래된 건축물의 경우 다층 건물에서는 누진붕괴 현상이, 저층 빌딩에서는 1층 붕괴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이전까지 일본에서 볼 수 없었던 건물이 기반 구조에서 떨어져 나가 옆으로 누워버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기울어진 상태였던 가시와이 빌딩은 다음날 아침 여진으로 옆 대로변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고베시 효고구의 미츠비시 은행 효고 지점(1968년 완공, 철근 6층), 호고현 약사회관(1967년 완공), 다이이치 간교 은행 고베 지점(1926년 완공, 2층 건물)도 붕괴하였다.
1981년 개정된 일본 건축기준법에 따라 1982년부터 건축된 주택은 피해가 매우 적었다. 지진 당시 붕괴된 가옥의 98%가 개정 이전 건축기준법에 따라 지어진 건물로, 대부분 1982년 이전에 건축되어 내진성이 약했다.[256] 결과적으로 건축기준법 개정안은 효과가 있었으며, 이후 1996년, 2000년, 2006년에 추가 개정이 이루어졌다.[257]
구 기준법에 따른 합법 주택의 경우, 낡은 주택은 내진성이 낮고 붕괴 위험이 높아도 위법하지 않았다. 건축기준법 위법 여부는 신축 당시 건축기준법을 따랐기 때문에, 신축 당시 기준을 준수한 건물은 이후 노후화되어 위험해져도 위법하지 않은 '기존부적격' 건물로 분류되었다. 예를 들어 건축기준법이 없던 에도 시대 건물은 매우 위험해도 합법이었다.[258] 1988년 건축기준법 개정 전까지 준방화지역에서 목조 3층주택 건축이 금지되어 내진성이 없는 합법적인 목조 3층주택이 없었기 때문에, 3층 주택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일본 국토교통성 추산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일본 전체 주택의 23%인 1,050만 호 이상이 내진성이 부족한 기존부적격 주택이다.[259]
4. 3. 2. 기와 지붕, 목조, 전통 가옥의 위험성
일본의 전통 기와를 사용하고, 기초를 돌 위에 기둥만 얹고 대각재가 적은 오래된 목조 주택에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지진 이후 고베 지역에서는 기와 지붕을 얹은 목조 주택이 사라졌다. 일본의 전통 건축 양식인 목조축조구법으로 지어진 주택에 피해가 집중되었으며, 새롭게 건설된 주택 중에서도 대각재가 부족한 주택은 큰 피해를 입었다.[253] 사카모토 이시오의 저서 "목조주택을 재검토하다"에서는 "사망자 중 5,000명 가까이가 축조구법으로 지어진 주택에 깔려 사망했다"라고 서술하며,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축법으로 지어진 기와 지붕이 많았다"는 점이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와가 무거워서 문제였다"라고 오해한다고 밝혔다.[254][255]
낡은 목조주택은 시간이 지나면서 건조해지고 화재를 막는 내염재를 사용하지 않아 화재 피해도 컸다. 고베 지역의 목조 주택은 지진보다는 태풍에 대비하여 건설되었기 때문에 기와 부분이 무거워 진동에 약했고, 기와를 고정하는 방법도 지붕 위에 흙을 덮고 그 위에 기와를 얹는 방식이어서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각재가 많은 목조주택은 내진성이 강했다. 또한 같은 목조주택 중에서도 서양식 조립식 건축이나 목조 틀막 건축(프레임 건축법)으로 건설한 주택은 내진성이 높았다.
4. 3. 3. 생존 공간
목조축조구법으로 지어진 주택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건물 붕괴 시 생존 공간이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전통 기와를 사용하고 대각재가 적은 오래된 목조 주택은 지진 발생 시 기와 지붕, 지붕토, 흙벽, 바닥, 기둥 등이 산산조각 나면서 붕괴되어, 깔린 사람들의 신체가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흔들림이 약한 경우에는 흙벽이 건물을 지탱하기도 했지만, 강한 흔들림에는 흙벽도 파괴되어 흉기로 변하기도 했다.[253][254][255] 지진 이후 고베 지역에서는 기와 지붕을 사용한 목조 주택이 사라졌다.
반면, 철근 콘크리트 구조 건물은 견고한 일체형 구조 덕분에 크게 파손되어도 기둥, 지붕, 바닥 등이 산산조각 나지 않았다. 기둥이 파괴되어도 천장만 주저앉을 뿐, 바닥이나 지붕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아 즉사하는 경우가 적었다. 일반적인 아파트는 벽이 많고, 이 벽들이 기둥 역할을 하는 내력벽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바로 붕괴되지 않았다. 아파트가 크게 파괴되어 문이 열리지 않거나 금이 가는 등의 피해는 있었지만, 건물에 깔려 다치거나 즉사하는 경우는 적었다. 예외적으로, 저층에 회사나 슈퍼마켓처럼 창문이 크고 기둥이 적으며 벽이 적은 공간이 있는 아파트의 경우 1층 기둥이 파괴되어 천장이 크게 주저앉는 경우가 있었다.
4. 3. 4. 건축기준법 개정 이전 주택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의 피해를 토대로 1981년 개정된 일본 건축기준법에 따라 건축된 건물의 피해는 적었다.[248] 하지만 지진 당시 붕괴된 가옥의 98%가 개정 이전 건축기준법에 따라 지어진 건물이었다.[256] 즉, 붕괴되어 사망자가 발생한 주택 대부분이 1982년 이전에 건축된 주택으로 내진성이 더 약했다.[256]
구 기준법에 따른 합법 주택은 낡은 경우 내진성이 낮고 붕괴 위험이 높았어도 위법하지 않았다. 건축기준법 위법 여부는 신축 당시 건축기준법을 따라 판단했기 때문에 신축 당시 건축기준법을 준수했던 건물은 이후 노후화되어 위험해져도 위법하지 않았다. 이를 "기존부적격" 건물이라고 부른다.[258] 예를 들어 건축기준법이 없던 에도 시대 건물은 매우 위험해도 합법이었다.[258]
일본 국토교통성 추산 기준 2008년 일본 내 내진성이 부족한 기존부적격 주택은 일본 전체 주택의 23%인 1,050만 호 이상에 달한다.[259] 결과적으로 건축기준법 개정안이 효과가 있었다. 이후에도 건축기준법은 1996년, 2000년, 2006년에 개정되었다.[257]
4. 4. 교통
한신·아와지 대진재로 인해 효고현을 중심으로 도로, 철도 등 교통망이 심각하게 마비되었다. 특히 고가도로와 지하철역이 붕괴되고, 철도 차량이 탈선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직후, 각 회사들은 버스나 타 회사 철도 노선을 이용한 대체 수송을 시작했지만, 파괴 구간 복구와 함께 점차 중단되었다. 서일본 여객철도(JR)는 4월 이후 모든 대체 수송을 종료하고 신년도 정기권 발매에서 우위를 점하며 이용자 점유율을 회복했다.[261]
지하에 있던 고베 고속선 다이카이역은 붕괴되어 상부의 국도 제28호선 구간도 침하되었다.
건설 중이던 아카시 해협 대교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전체 길이가 1m 늘어났다. 교량 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기념건축물 건설은 중단되었다가 2015년 완전히 중단되었다.[262]
4. 4. 1. 도로
주고쿠 자동차도, 국도 제43호선, 국도 제2호선은 지진으로 인해 도로 복구를 위한 차량 통제가 이루어져 극심한 정체 현상을 빚었다. 특히 한신 고속도로 제3호선 고베선은 고가도로가 붕괴되어 오랫동안 도로가 통제되었다.[260] 제2 신메이 도로와 히메지 바이패스와 직결되어 오사카-히메지를 잇는 주요 도로였기 때문에, 철도 피해와 맞물려 간사이 지방을 통과하는 도로 교통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복구 기간 동안 국도 제9호선, 제372호선(교토-히메지 구간 우회 가능), 제27호선 같은 일반도로에 장거리 운행 트럭이나 버스가 몰렸다. 당시에는 피해 구간을 일반 국도 없이 우회할 수 있는 경로가 없어 게이한신을 통과하지 않는 우회도로의 빈약함이 부각되었다.
사고 직후 도로 교통 관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국도 제43호선, 국도 제2호선, 야마테 간선 등 고베 방면으로 향하는 주요 간선도로에서 대규모 정체가 발생했다.
4. 4. 2. JR
서일본 여객철도(JR 서일본)는 다른 사철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철도 중에서는 가장 먼저 복구되어 피해 노선 중 최초로 전 노선의 운행이 재개되었다. JR 노선이 가장 빠르게 복구된 요인으로는 자본력 동원, 전국 지사에서의 지원 등이 꼽힌다.[261]
4. 4. 3. 사철
효고현을 지나는 한큐 전철, 한신 전기 철도 등의 노선이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한신 전기 철도 이시야가와 차고 붕괴는 한신 고속도로 붕괴와 함께 지진을 상징하는 사진이 되었다.[260]
재해 지역 내에서 가장 남쪽에 있던 한신 본선은 히가시나다구와 나다구의 고가도로 구간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한신 전기 철도 이시야가와 차고가 붕괴되어 유치 중이던 다수의 차량이 파손되었다. 이는 1967년 고도경제성장 시기에 준공된 고가도로의 내진구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76] 철교가 지상으로 떨어져 남북 통과 도로가 막히기도 했다. 신자이케역 지역에서는 고가도로 아래 토지 임대로 인해 복구 과정에서 임차인에게 철거 허가를 받는 어려움도 있었다.[277] 한신 본선 피해는 이후 일본 각지 교량 보강공사의 계기가 되었다.
산노미야 인근 지하 구간 운행 차량을 포함, 총 41량의 차량이 파괴되어 철거되었고, 차고는 이듬해까지 복구되었다. 한신 전기 철도는 JR이나 한큐 전철과 달리 복구 및 신규 차량 도입에 제한이 있어 감편 운행을 해야 했다. 다른 사철들도 선로와 역에 피해가 있었지만, 차고 단위의 피해는 한신 전철이 유일하다.
4. 4. 4. 해상
고베항은 지진으로 부두 시설이 파괴되어 정박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포트아일랜드와 롯코 아일랜드 등 매립지를 중심으로 액상화현상이 발생하여, 해로를 통한 지원도 어려워졌다.
고베항은 시코쿠나 규슈 방면으로 향하는 페리들이 발착하는 지점이었지만, 각 부두가 큰 피해를 입어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페리의 발착지를 오사카항 남항으로 바꿔 운행하였다.[285]
육상 교통이 마비되면서, 시코쿠나 규슈 방면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해상 교통을 사용하였다. 워터프론트의 지반이 함몰된 안벽에는 가설 부두를 설치하여 오사카-고베, 고베-니시노미야 간 단거리 임시항로도 정비해 대체 교통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 외에도 남아 있는 해안 부분을 이용해 의료 물자 반입 등도 이루어졌다. 고베항은 지진 2년 후인 1997년 3월 31일 모든 부두 복구가 완료되었고, 같은 해 5월 31일에는 '고베항 부흥선언'이 발표되었다.[286][287]
4. 4. 5. 공항
오사카 국제공항에서는 지진으로 활주로와 유도로에 균열이 생겼으며, 공항 터미널 건물의 외벽도 손상되었다. 1994년에 개항한 간사이 국제공항에서도 공항 터미널 건물, 간사이 공항역, 주차장에 금이 가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두 공항 모두 항공기 운행에 큰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288]
오사카 국제공항은 피해 지역에 있었지만, 경시청 및 도쿄 소방청, 자위대, 미군, 정부 전세기 등이 구조 지원을 위해 착륙했다. 또한, 지진 당시 운용 제한 시간(7시~21시) 외의 시간에도 임시편을 편성하는 특별 조치를 시행하여 복구 물자를 수송했다.[289]
5. 소화 및 구조활동
지진 발생 직후, 소방서와 경찰서는 구조 활동을 시작했지만 몇 가지 문제점에 직면했다. 특히, 한신·아와지 대진재는 크러시 증후군이라는 현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NHK의 사체검안서 분석에 따르면, 지진 당일 사망한 5,036명 중 76%인 3,842명은 지진 발생 1시간 이내에 사망했으며, 이 중 90%가 압박사(압사, 질식사 등)였다.[240] 사망자 대부분은 목조 가옥 붕괴로 인해 가옥에 깔려 압사했으며, 특히 1층에서 취침 중이던 사람들이 가옥 붕괴로 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2층 목조 주택의 경우 1층 기둥이 부러져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2층에는 생존 공간이 남아 생존자들이 있었다. 1시간 이내 압박사한 사람 중 압사한 경우는 8%였고, 절대다수인 92%가 흉부 압박으로 인한 외상성 질식사였다. 지진 전체 사망자의 90%가 압사로 추정된다.[241] 고베시에서 사망한 2,456명의 사망자를 검안한 검안의들의 정리에 따르면, 건물 붕괴 후 15분 내로 사망한 사람이 2,221명으로 92%에 달해 압사, 질식사로 '즉사'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242]
지진 사망자 중 100여 명은 지진 피해가 전혀 없는 건물 안에서 사망했는데,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지진으로 흔들린 가구에 깔려 질식사하거나 머리를 다쳐 즉사한 경우도 많았다.
동일본 대진재와는 달리, 한신·아와지 대진재에서는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20대의 사망자 수가 30대보다 200명 가까이 많았는데, 이는 대학가인 고베시 나다구에서 고령자와 함께 집세가 싼 문화주택 등 목조 아파트에 거주하던 학생들이 무너진 아파트에 깔려 숨진 사례가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245] 31개 대학에서 총 111명이 사망했으며, 특히 고베 대학에서는 학생 39명, 교직원 2명이 사망하여 대학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246][247]
지진 후 효고현과 고베시는 방화저수조 정비와 소방에서 헬리콥터 사용을 검토하였다. 당시 헬리콥터 소방 활동을 보류한 이유로 고베시 소방국은 화재 규모나 건물 구조를 고려할 때 소화 활동이 어려우면서도 효과가 매우 적고, 비행 중인 다른 헬리콥터나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294]
5. 1. 화재
고베시 나가타구와 같이 목조 주택이 밀집된 곳을 중심으로 화재 피해가 컸다. 총 7,000채가 넘는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었다.[290] 일본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291] 지진 이후 총 285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 중 70%인 205건이 지진 당일에 발생했지만, 오전 6시까지 발생한 화재는 총 87건으로 지진 발생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발생한 화재가 많았다. 화재 발생 원인이 파악된 화재는 절반으로, 가장 많았던 원인은 전기로 인한 발열 화재가 85건, 가스와 관련된 화재가 13건, 불씨와 관련된 화재가 12건이었다. 지진 당일에만 통전 화재가 39건 발생했고, 지진 다음 날부터 발생한 화재들도 주로 정전 이후 송전을 재개하면서 발생한 화재가 다수였다.지진으로 상수도가 파괴되어 긴급하게 화재용 저수조를 찾는 사이 불길이 번져 피해가 커진 경우도 있었다. 당시 단수로 물이 나오지 않는 호스를 들고 불길 가까이에서 버티고 있는 소방관의 모습도 찍혔다. 또한 바람에 따라 불똥이 휘날려 소화 작업이 어려운 곳도 많았다.[290] 불길이 너무 커져 진화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현장 소방관의 판단으로 이재민의 대피를 유도하는 "화재방임"이라는 소방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피해 지역 부근에서 화재방임이 일어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카시 공습 이래 최초였다. 이 외에도 주변 주민들이 양동이를 들고 릴레이로 서로 주고받으며 소화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293]
소방관들은 화재 방임 활동과 동시에 국도 제2호선, 국도 제28호선 등 대로변에 소방대를 배치해 진화보다는 연소 확대를 막는 소화 활동을 위주로 작업했다. 17일 오후부터 일본 전역에서 파견된 소방관들이 모여 소화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방대는 인근의 미나토가와강이나 효고 운하까지 호스를 이어 밤새 소화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 지진 이틀만인 1월 19일에 모든 화재를 진압하였다.
5. 2. 공공기관의 구조활동
한신 대지진 발생 후, 소방청, 경찰청, 자위대 등 공공기관이 구조 활동을 펼쳤으나, 교통 체증, 장비 및 정보 부족 등으로 구조 활동이 지연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하지만 도쿄 소방청 항공대는 소방헬리콥터를 통해 특별구조대를 신속하게 투입하여 구조 활동을 지원했다. 특히, 아와지섬 지역 소방단은 주민들과 협력하여 성공적인 구조 활동을 펼쳐 주목받았다.
5. 2. 1. 소방 및 경찰
지진 발생 후 소방서와 경찰서 각 조직들이 구조 활동을 시작했으나 몇 가지 문제점도 지적받았다. 소방청이나 경찰청의 조정으로 전국의 소방, 경찰 세력이 한신칸 지역에 지원을 받았으나 교통 체증으로 지원이 늦어졌다.[225] 또한 피해 지역에 도착하더라도 대규모 재해에 대한 기술, 지식, 장비, 자재 등이 모두 부족했고, 대규모 구조 요청이 쏟아져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225]도쿄 소방청은 도쿄 소방청 항공대의 소방헬리콥터를 통해 피해 지역에 특별구조대를 신속하게 투입하였다. 지진 당일 11시에는 하치오지 소방서에서 헬기로 직접 특별구조대를 출동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와 대형 헬리콥터인 '히바리'를 투입하여 지원하였다.
도시 지역의 소방서나 경찰서는 자신이 피해를 입기도 해서 초기 구조 활동에 지체가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아와지섬에서는 지역 소방단과 인근 주민을 중심으로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호쿠단정에서는 지진 발생 후 11시간 만에 모든 수색, 구조 활동과 시신 수용 작업을 끝냈다.[295] 건물 수나 인구 밀도를 감안해 고베시 시내와 소요 시간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진 발생 후 인근 주민 등 지역사회를 통한 구조 활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잔해 아래의 부상자를 구출하는 차량도 부족했으며, 방재 기관의 헬리콥터 이송자도 적었다. 예를 들어 지진 당일 니시노미야시의 헬리콥터 이송자는 단 1명이었다. 이 이송자도 오사카시 소방국에서 긴급하게 의약품을 수송하던 중 돌아가던 헬리콥터가 이송한 환자였다. 지진 1주일간 총 헬리콥터 이송자는 62명이었으며, 지진 발생 후 3일간 헬리콥터 이송자는 17명뿐이었다.[296] 이 때문에 전체적인 부상자 이송이 느려졌다.
소방서와 경찰서는 한신칸 지역의 지진 피해를 교훈으로 일본 전국의 재해 지원 체제인 긴급소방원조대(소방청 소속)와 광역긴급원조대(경찰청 소속)를 각각 창설하였고, 도쿄 소방청은 소방구조기동부대를, 요코하마시 소방국은 기동구조대(현재의 특별고도구조부대 슈퍼레인저)를 창설했다.
5. 2. 2. 자위대 및 현지사
일본 자위대는 지진 발생 수 분 후에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타미역 근방에 파견(재해파견)된 제36 보통과연대를 제외하고는 고베 중심지로 파견한 부대가 없었다.[233] 제36보통과연대는 자위대법 제83조 3항에 따른 '근방파견'에 따라 파견되었지만, 다른 부대는 현지사의 요청으로만 파견이 가능해(자위대법 제83조 1항) 대기 상태로만 있었다.[233] 지진 이후 자위대의 파견 요청을 도도부현지사 외에도 시정촌장이나 경찰서장도 할 수 있도록 자위대법이 개정되었다.[233]6. 부흥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호와 지원이 전해졌다. 피해 지역에는 구호 물자, 의연금, 자원 봉사 활동이 이루어졌다. 특히 정부의 대응이 늦어지는 동안, 민간 산업 분야에서도 활발한 지원 활동이 있었다.
- '''다이에이 그룹''': 고베시에 본사를 둔 슈퍼마켓 대기업 다이에이 그룹은 나카우치 이사오 사장의 지휘 아래, 효고현을 중심으로 간사이 권역 내 영업 가능 점포를 즉시 열고 식료품, 담요, 손난로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지진 발생 3일 후에는 영업 시간을 연장하여 24시간 영업 체제로 운영했다. 다이에이 산하의 로손도 피해 지원에 동참했다.
- '''세븐일레븐''': 지진 발생 3시간 만에 구호 물자와 식료품을 헬기로 공수했다. 고베시에 점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헬리콥터 6대를 임차하여 도시락과 주먹밥 약 6천 명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 '''생활협동조합 코옵 고베(생협)''': "재해 발생 시 식량을 민간으로 방출한다"는 계약에 따라 간사이 권역에 식량을 배급했다.
- '''닌텐도''': 게임보이 5천 개, 이어폰, 플레잉 카드 3천 개를 지진 피해 아동에게 무상 제공했다.[300]
- '''세가''': 리코더 2만 개를 지진 피해 아동에게 무상 제공했다.[300]
- '''아와지야''': 고베시에 본사를 둔 열차 도시락 제조 대기업으로, 재고품 재료로 긴급 제조한 도시락을 각 대피소에 제공하고, 이후 공장 설비를 복구하여 대피소 식량 지원 거점으로 활용했다.
- '''기린 맥주''': 교토 공장에서 맥주 빈 병 2,000개에 물을 채워 JR 서일본 임시열차로 고시엔구치역까지 운반하여 인근에 배포했다.[301]
이 외에도 구세군, 야마구치구미(일본 최대 보료쿠단 조직), 스쿄마히카리(숭교진광), 퍼펙트 리버티 교단(PL교단), 천리교, 창가학회, 금광교, 월드메이트,[302] 옴진리교 (두 달 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킴) 등 다양한 단체들이 식량, 식수, 화장실, 목욕, 대피소 등을 지원했다.
와타리 테츠야, 와타세 츠네히코 형제, 가와시마 에고, 카몬 타츠오, 자이언트 바바, 다나카 야스오,[303] 미나미무레 도요조, 유미나가 다쓰히로 등 간사이 출신 연예인, 탤런트, 문화인들도 개인적으로 식사를 제공하거나 지진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지진 직후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을 지원하기 위해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이 자원봉사에 참여했으며, 3개월간 연인원 117만 명이 자원하였다. 현지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헌혈이나 기부, 물자 지원 등 후방 지원에 자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자원봉사자 인원은 더 증가하여 최대 160만 명으로 추정된다.[308]
이 때문에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의 원년"(ボランティア元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08] 이후 일본 정부는 1월 17일을 방재와 자원봉사의 날로, 1월 17일을 중심으로 이전 3일과 이후 3일, 총 7일간을 방재와 자원봉사의 주간으로 정했다.[309]
간토대진재 당시 제도부흥원과 같은 부흥 조직으로 한신·아와지 부흥대책본부(초대 본부장은 당시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일본 총리부 산하에서 2000년까지 5년간 활동하였다. 시모코베 아쓰시 위원장의 한신·아와지 부흥위원회는 부흥대책본부를 지원하고 조언하는 조직으로 활동하였다.
태평양 전쟁 시기 피해가 적었던 오래된 목재 주택이 집중된 곳에 피해가 커, 고베시는 전재부흥도시계획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완료되던 시점에 발생한 지진을 전재부흥의 연장선으로 보고 진재부흥사업을 진행하였다.[310] 고베시의 부흥 사업은 1976년 10월 29일 사카타 대화재 복구 사례를 참조하였다.
6. 1. 거리의 부흥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호와 지원이 전해졌다. 피해 지역에는 구호 물자, 의연금, 자원 봉사 활동이 이루어졌다.
부흥 사업에서 최우선적인 일은 주요 인프라 복구였다. 대부분의 지진 피해 지역에서 3일에서 7일 이내에 전기 복구가 이루어졌지만, 지하에 매설된 상수도와 가스 복구에는 장기간이 소요되었다. 당시 고베시 수도국이 있던 고베 시역소 건물 2호관 7, 8층이 짓눌려 무너지는 바람에 자료를 준비하지 못해 수도관 경로 정보 파악에 시간이 걸리는 등 복구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이후 고베 시역소 2호관은 6~8층 부분이 철거되고 5층 건물로 재건축되면서 수도국도 4층으로 옮겨졌다.
일본 전역에서 부흥지원물자를 수송해 오기로 하였으나, 교통망이 단절되어 물자 이송이 어려운 곳이 많았다. 이 때문에 대량의 부흥지원물자를 신속하게 수송하기 위하여 복구보다는 우선 남은 도로를 정비하여 재해 지역과 오사카시를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고베시 인근에서도 "고베시로 간다"라고 하면 교통정리 과정에서 최우선적으로 통행할 수 있게 하는 등 부흥 활동을 지원하는 모습이 많았다.
지진 발생 한 달 후부터 건물의 본격적인 복구와 재건축 등 부흥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에는 많은 기자재와 인력이 재해 지역으로 들어와 잔해 철거 및 재건 작업을 진행했는데, 무질서한 복구를 막기 위해 일본 건축기준법 제84조에 따른 건축 규제를 가했다.[297] 이후 피해를 입은 시가지에 대한 특별조치법인 피재시가지부흥특별조치법이 시행되기도 하였다.[298]
6. 2. 대피소·가설주택·부흥주택
집이 반파되거나 전파된 주민들은 학교나 공공기관으로 피난을 갔다. 재해 지역 대부분의 학교는 휴교하였다. 이재민들은 체육관이나 교실에서 자고 일어났다. 공원에서 텐트를 치거나 자가용에서 취침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진 재해 초기에는 공공대피소로 학교 등의 공공시설만을 인정해 식료품과 음료수가 배급되었으나, 이후 공원에서 피난촌을 이룬 텐트촌에도 식량 등을 배급하게 되었다.지진 발생 1개월 후부터는 조립식 공법으로 지어진 가설주택이 건설되고 입주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가설주택 대부분이 피해 지역 밖의 교외 지역이나 인근 다른 지자체에 건설되어 대피소에서 가설주택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적었다. 학교 등의 공공대피소를 4월 이후 일본 입학 시점에 맞춰 비우기 위해 도심부에 가설주택을 건설하거나, 대피소에서 대기소로 옮겨 이주하거나, 민간 주택을 임차하여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효고현에 부흥지원주택(재해부흥주택)이라고 불리는 고층 영구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영구주택은 가설주택보다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졌지만, 이웃 간 사교 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려워 고독사 문제가 늘어나는 부작용도 있었다. 고독사 문제를 막기 위해 부흥지원주택의 상수도 사용이 장기간 없을 경우 자동으로 경고를 보내는 시스템 등을 활용하여 해결하려는 지자체도 있다.[299]
부흥지원주택에 입주할 주민들은 각 시정촌이 발급한 이재증명서를 기준으로 입주자를 정했다. 이재증명서 발급을 위한 조사가 단기간에 적은 규모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조사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6. 3. 민간 산업과 조직의 지원 활동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구호와 지원이 전해졌다. 피해 지역에는 구호 물자, 의연금, 자원 봉사 활동이 이루어졌다. 특히 정부의 대응이 늦어지는 동안, 민간 산업 분야에서도 활발한 지원 활동이 있었다.- '''다이에이 그룹''': 고베시에 본사를 둔 슈퍼마켓 대기업 다이에이 그룹은 나카우치 이사오 사장의 지휘 아래, 효고현을 중심으로 간사이 권역 내 영업 가능 점포를 즉시 열고 식료품, 담요, 손난로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지진 발생 3일 후에는 영업 시간을 연장하여 24시간 영업 체제로 운영했다. 다이에이 산하의 로손도 피해 지원에 동참했다.
- '''세븐일레븐''': 지진 발생 3시간 만에 구호 물자와 식료품을 헬기로 공수했다. 고베시에 점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헬리콥터 6대를 임차하여 도시락과 주먹밥 약 6천 명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 '''생활협동조합 코옵 고베(생협)''': "재해 발생 시 식량을 민간으로 방출한다"는 계약에 따라 간사이 권역에 식량을 배급했다.
- '''닌텐도''': 게임보이 5천 개, 이어폰, 플레잉 카드 3천 개를 지진 피해 아동에게 무상 제공했다.[300]
- '''세가''': 리코더 2만 개를 지진 피해 아동에게 무상 제공했다.[300]
- '''아와지야''': 고베시에 본사를 둔 열차 도시락 제조 대기업으로, 재고품 재료로 긴급 제조한 도시락을 각 대피소에 제공하고, 이후 공장 설비를 복구하여 대피소 식량 지원 거점으로 활용했다.
- '''기린 맥주''': 교토 공장에서 맥주 빈 병 2,000개에 물을 채워 JR 서일본 임시열차로 고시엔구치역까지 운반하여 인근에 배포했다.[301]
이 외에도 구세군, 야마구치구미(일본 최대 보료쿠단 조직), 스쿄마히카리(숭교진광), 퍼펙트 리버티 교단(PL교단), 천리교, 창가학회, 금광교, 월드메이트,[302] 옴진리교 (두 달 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킴) 등 다양한 단체들이 식량, 식수, 화장실, 목욕, 대피소 등을 지원했다.
와타리 테츠야, 와타세 츠네히코 형제, 가와시마 에고, 카몬 타츠오, 자이언트 바바, 다나카 야스오,[303] 미나미무레 도요조, 유미나가 다쓰히로 등 간사이 출신 연예인, 탤런트, 문화인들도 개인적으로 식사를 제공하거나 지진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6. 4. 언론 미디어의 부흥 지원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호와 지원이 전해졌다. 피해 지역에는 구호 물자, 의연금, 자원 봉사 활동이 이루어졌다.중앙경마에서는 1995년 6월 3-4일 교토 경마장(1월 21일, 22일 중지된 경기 대체 개최, 4일에는 GI 다카라즈카 키넨 기념경기)에서, 이듬해인 1996년 7월 7일에는 나카야마 경마장, 한신 경마장, 삿포로 경마장에서 부흥지원대회로 경마가 개최되어 마권 매상 일부 금액을 기부하였다.
1995년 1월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오사카 국제 여자 마라톤은 개최가 중단되었고, 미리 발주했던 선수용 타월이 지진 피난소로 기증되었다.[305]
일본 우정성(현 일본우편)은 1995년 4월 20일 한신·아와지 대진재 기부금부우표를 발행했다. 이 우표는 원가 80JPY의 우표를 100JPY에 판매하고 차액인 20JPY을 기부금으로 기부하는 형태로, 액면가는 "80+20엔"으로 적혔다. 다만 우표 디자인 준비가 되지 않아 연례적으로 발행하는 우표취미주간의 우표를 전환하여 사용했다. 결국 기부금부우표의 디자인은 가나시마 게이카의 회화인 '화실의 손님'으로, 지진 피해 지역과는 별로 상관없는 디자인이 채택되었다.[306] 인쇄된 우표 5천만 장 중 4728만 8천 장이 판매되어 원가 및 경비를 제외한 9.4억엔을 현지에 기부하였다. 이후 우정성은 2000년 12월 22일 발매한 "20세기 디자인 우표" 모음집 17권에서 한신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우표를 발행했다.[307] 우표 디자인은 부흥의 상징인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와 한신-아와지 지구의 지도, 무너진 고가도로를 그린 모양이다.
6. 4. 1. 텔레비전과 라디오
지진 발생 1주일 전후 시기부터 NHK와 민영 방송국은 전국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모금 홍보 방송을 진행했다. NHK와 민영 방송인 마이니치 방송은 지진 보도 중간중간 일본적십자사의 성금 접수 계좌를 소개하며 모금을 호소하였다. 또한 자체 성금도 운영해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등 이재민을 다양하게 지원하였다. 아래는 각 방송사의 모금 사례이다.- 도쿄 TBS 텔레비전 - 발신자 부담 전화번호인 '다이얼 Q2'를 이용한 특정 번호를 만들어 전화번호에 통화하면 1통화 당 100JPY을 자동으로 기부하는 "100엔 모금"을 실시했다.
- TV 아사히 - 도라에몽 모금을 실시했다.[304]
- 간사이 TV 방송 - 산하 프로그램이었던 터널즈의 해머프라이스(전국넷)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로 얻은 경매 낙찰 수입을 '진재부흥자원금'으로 일본적십자사 등에 기부하였다.
6. 4. 2. 신문
3월 7일에서 9일 사이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지역 음악가들이 모인 자선 콘서트인 "MARCH OF THE MUSIC"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였다.[196] 공연에 참여하지 않은 음악가들도 자신의 콘서트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모금 활동을 벌였다.[196] 이 부흥과 맞물려 일본 내에서 재즈 공연이 활발해진 계기로도 꼽힌다.[196]6. 4. 3. 인터넷, PC통신 및 휴대전화
(이전 출력과 동일하게, 주어진 원본 소스에 섹션 제목 '인터넷, PC통신 및 휴대전화'와 관련된 내용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6. 4. 4. 폭력단 관련 보도
일본 우정성(현 일본우편)의 구호 노력은 뒷전으로 밀려났음에도 여러 민간조직이나 단체, 특히 종교단체나 보료쿠단(폭력단)이 지진 피해 현장에서 구조하거나 지원한 활동은 여러 단체의 선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 내 매스미디어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 중 재팬 뉴스 네트워크(JNN, TBS 텔레비전 계열)가 지진 3일차인 1월 19일 방송한 JNN 뉴스에서 고베시에 본거지를 둔 일본 최대 광역지정폭력단인 야마구치구미 총본부가 비축하고 있던 대량의 식량을 현지 주민에게 기부하는 모습을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선택"이라고 보도하였다. 야마구치구미는 석유 난방기를 실은 트럭을 마련하여 매일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이재민 지원 활동을 펼쳤다. 여러 언론사는 야마구치구미를 선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중히 보도하였다.영국, 미국 등 일본 외 해외 언론사들도 뒤따라 보도하였으며, 영국의 BBC는 "정부의 구조작업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현지 마피아(야마구치구미)가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343]
6. 5. 문화 및 스포츠
지진 직후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을 지원하기 위해 하루 평균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참여했으며, 3개월간 연인원 117만 명이 자원하였다. 피해 지역에서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일반인의 중요도 인식도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현지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헌혈이나 기부, 물자 지원 등 후방 지원에 자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자원봉사자 인원은 더 증가하여 최대 160만 명으로 추정된다.[308]이 때문에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의 원년"(ボランティア元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08] 이후 일본 정부는 1월 17일을 방재와 자원봉사의 날로, 1월 17일을 중심으로 이전 3일과 이후 3일, 총 7일간을 방재와 자원봉사의 주간으로 정했다.[309]
6. 6. 백화점

소고 고베점은 지진으로 본관이 반파되어 붕괴, 건물을 해체하고 재건설하여 1996년 4월 28일 재개장하였다.[347] 다이마루 고베점도 본관 3층이 붕괴되어 해체 후 새 건물로 재건하여 1997년 3월 전면 재개장하였다.[348]
산노미야 한큐는 고베 한큐 빌딩 동관 위층이 완전히 붕괴되어 해체 및 철거가 결정되었고, 지진 발생 5일 후 폐점하였다. 이와 별개로 1992년 고베 하버랜드에 개점한 umie 사우스 몰의 고베한큐는 큰 피해가 없어 지진 3달 후인 4월 26일 재개장하였고, 2012년 자리를 옮겼다.[349] 소고, 다이마루, 한큐와 달리 개별 점포가 입주한 방식의 백화점인 고베 데파토도 지진으로 폐점하였다.
지진이 일어난 고베와 거리가 있는 오사카에서도 기타하마에 있는 미쓰코시 오사카점 본관이 지진 피해를 입어 해체하면서 매장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결국 2005년 폐점하였다.[350]
6. 7. 인구 변화
1995년 1월 1일, 고베시의 인구는 152만 365명이었다.[351] 같은 해 10월 1일 인구 조사에서는 142만 3,792명으로, 지진 사망자 4,571명을 넘는 약 10만 명이 감소해 교토시보다 인구가 적었다.[351] 2004년 11월 1일, 인구는 152만 581명으로 지진 발생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회복 기간은 9년 10개월이었다.[351]구별 인구 변화를 보면, 롯코 산지의 기타구와 니시구, 연안 동부의 히가시나다구, 나다구, 주오구는 지진 이전보다 인구가 증가했다. 그러나 연안 지역의 효고구, 나가타구, 스마구, 다루미구는 지진 이전 인구를 회복하지 못했다.[351][352] 특히 나가타구는 여전히 인구가 3만 명 적어, 지역별 복구 수준 차이가 컸다.[352]
6. 8. 석면 및 잔해
지진으로 붕괴되거나 크게 피해를 입은 건물에는 중피종을 일으킬 수 있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건물 붕괴 과정에서 석면이 누출되어, 지역 주민, 작업자, 자원봉사자 등 구조 및 복구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석면에 노출되어 흡입 피해를 입었다.[353]지진으로 해체된 건물은 11만 6천 동이며, 1995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약 1,450만 톤의 산업폐기물이 발생했다.[354] 이 중 약 262만 톤의 폐기물은 1987년부터 조성된 해안 매립지인 오사카만 피닉스 계획의 해안 광역쓰레기매립지에 매립되었다.[355]
6. 9. 범죄 행위
지진 피해 지역의 폭력단이 구조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지진을 틈타 재해지원금을 부당하게 받거나 건설 회사에게 공사 수주를 요구하는 등 청탁 행위가 일어났다. 일본 경찰은 폭력단의 범죄행위를 예상해 이동폭력상담차를 사용하여 "순회폭력상담소"를 개설하는 등 임시대책을 세웠다.[356] 폭력단 관계자와 건설회사를 이용해 부실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357]지진 이후 성범죄 발생 횟수가 증가했다는 정보도 나왔지만, 이를 유언비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효고현의 강간범죄 발생 횟수는 전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으며, 강제추행 사건 횟수와 절도 사건의 발생 횟수는 전년도보다 더 감소하였다. 다만 성범죄는 신고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신고하더라도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많아 신고 횟수 자체가 낮은데다, 지진이라는 재해 상황과 대피소라는 특수 환경으로 인해 강간이나 치안 범죄가 다수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하였다.[358]
지진 발생 직후인 1월 19일과 1개월 반 후인 2월 26일에는 간사이 지역에서 교토부 가메오카시의 가메오카 단층에서 진도7급의 여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가메오카시 지역의 여러 상점이 임시 휴업을 하거나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는 등 여러 혼란이 빚어졌다.
지진 재해로 피해를 입은 지장보살 등의 여러 물건을 훔쳐 전당포에 맡겨 현금화한 인물이 효고현 경찰에게 절도죄로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359]
6. 10. 재해 보도 문제
한신·아와지 대진재 당시 언론 보도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피해 보도와 안심 보도 중 어느 것이 우선인가"라는 논점을 제기했다. 주요 방송국들이 "만약 이번 지진이 도쿄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도쿄에서 일어난 지진이 아니라 다행이다"와 같은 보도를 내보내어 큰 비판을 받았다.[360] 전 NHK 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인 기무라 다로는 텔레비전 해설의 시기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360]오사카 지역의 준키국 방송인들은 한신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스스로도 지진 피해자였기 때문에 이재민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지진 발생 직후 여러 매스미디어가 항공 취재를 시작하여 피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헬리콥터 소리 때문에 무너진 건물에 깔린 이재민의 구조 요청 소리를 듣지 못해 구조 활동에 큰 방해가 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361] 월간 Wedge 편집장인 오에 노리요는 "방송사들이 경쟁하듯이 영상을 송출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고 비판하였다.[361]
1995년 2월 7일 중의원 지방행정위원회에서 과잉 취재 문제가 거론되었다. 이후 간사이 방송국들은 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헬리콥터 비행 수를 상호 조정하여 제한하고, 한 곳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유하는 대표취재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6. 10. 1. 보도 윤리 문제
한신·아와지 대진재 당시 언론 보도는 여러 윤리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피해자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보도 행태가 심각했다. 오사카 지역의 준키국 방송인들은 한신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 역시 지진 피해자였기 때문에 이재민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360]또한, 방송사들이 도쿄 중심적인 보도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주요 방송국들은 "만약 이번 지진이 도쿄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도쿄에서 일어난 지진이 아니라 다행이다"와 같은 보도를 내보내어 큰 비판을 받았다.[360] 이는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하고, 수도권 중심적인 시각에서 재난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전 NHK 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인 기무라 다로는 텔레비전의 강력한 영향력을 언급하며, 구조가 우선이라는 시각은 있지만 텔레비전 해설의 시기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360] 즉, 재난 상황에서 텔레비전 해설은 필요하지만, 그 내용과 시기가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들은 언론이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선정적인 보도에만 치중하는 경향을 비판하는 것이다.
6. 10. 2. 과잉 취재 문제
한신·아와지 대진재 당시 지진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보도윤리 문제 중 하나는 과잉 취재였다. 지진 발생 직후 여러 매스미디어가 항공 취재를 시작하여 피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헬리콥터 소리 때문에 무너진 건물에 깔린 이재민의 구조 요청 소리를 듣지 못해 구조대의 초기 구조 활동에 큰 방해가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361]월간 Wedge 편집장인 오에 노리요는 고등학교 시절 고베시 히가시나다구에서 지진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방송사들이 경쟁하듯이 영상을 송출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가? 1지구당 1개 방송사로 조정해 촬영하고 떠나 주었으면 하고, 주택 붕괴 현장에서 구조대에게 담요나 시트로 눈을 가리게 하는 인력을 붙여두는 것도 불필요하다"라고 비판하였다.[361]
1995년 2월 7일 중의원 지방행정위원회에서 전문정보와 함께 과잉 취재 문제가 거론되었다. 이후 간사이 방송국들은 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헬리콥터 비행 수를 상호 조정하여 제한하고, 한 곳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유하는 대표취재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7. 지진 이후 변화
한신·아와지 대진재는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 소방, 구조, 의료, 자위대, 건축, 지진 관측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지진 발생 당시, 효고현의 자위대 재해 파견 요청은 지진 발생 후 4시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현지에 있던 다카미 유우이치 중의원 의원이 방위청에 긴급 요청을 보냈지만, "과장된", "비공식적" 정보로 취급되었다.[319] 초동 대처 지연에 대해 일본 사회당의 반(反) 자위대 사상 등을 비난하는 주장이 있었지만, 억측이라는 지적도 많다.[320][321] 산케이 신문은 사회당의 자위대 폐지 공약을 비판했고, 해외 언론에도 비판이 전해졌다.[322][323]
당시 내각은 자사사 연립 정권이었고, 사회당은 자위대 존재를 인정했다. 오자와 기요시 국토청 장관과 오자토 사다토시 진재대책담당상은 모두 자유민주당 소속이었다. 가메이 시즈카 운수대신은 자위대 출동 지연은 지자체 요청이 있어야 한다는 법적 제약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326]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인터뷰에서 선거를 생각하지 않고 총리로서 일에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326] 또한, 재해 당시 정부의 대응 시스템이 미비했고, 초동 대응이 늦었다고 인정했다.[326]
일본 후생성은 2월 초부터 국립병원 인력을 현지에 파견했지만, 현지 봉사활동 희망자 파견이 지연되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방재과학기술연구소 오카다 요시미쓰 이사장은 사망자 대부분이 목조 가옥 붕괴로 인한 압사로 즉사했으며, 1981년 신내진설계법에 따라 건축되었다면 사망자가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327]
지진 당시 언론은 특별보도 체제로 전환하여 지진 관련 정보를 집중 보도했다. 특히, 오사카의 MBS 라디오는 한신 고속도로 붕괴를 가장 빨리 보도했다.[330] 아사히 방송은 지진 발생 순간 스튜디오 흔들림을 포착했다.[331] NHK는 지진 발생 직후부터 긴급 방송을 시작했다.[332][333][334]
고베 신문은 본사 붕괴에도 불구하고 교토 신문과의 협력으로 신문 발행을 계속했다.[338]
당시 일본의 인터넷 환경은 초기 단계였지만,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지진 정보와 안부 메시지가 교환되었다.[339]
휴대전화 보급률은 낮았지만, 초기에는 연결이 쉬웠다. 그러나 기지국 피해와 사용량 급증으로 통화 폭주 상태가 발생했고, 배터리 문제도 있었다.[340][341][342]
야마구치구미 등 폭력단체의 구조 및 지원 활동은 일본 언론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해외 언론에서 보도되었다.[343]
다카라즈카 가극단, 고베 국제회관, 한신 경마장 등 문화 시설도 큰 피해를 입어 공연 중단 및 장소 변경이 불가피했다.[344][345]
제67회 선발고교야구대회는 개최를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으나 응원가 등 음악과 악기 연주는 하지 않고 계획대로 야구경기를 진행했다.[346]
이후 일본에서는 소방, 구조, 의료 분야, 자위대의 역할, 내진 설계 및 건축 기준, 지진 관측 체계 등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7. 1. 소방, 구조, 의료 분야
한신·아와지 대진재를 계기로 일본은 전국적인 소방, 구조, 의료 시스템을 정비했다. 도쿄 소방청은 소방구조기동부대를,[362] 요코하마 소방국은 특별고도구조부대(구 구조기동중대)를 창설했다. 또한 긴급소방원조대(소방)와 광역긴급원조대(경찰)를 설치하여 전국 단위 구조 작전 체계를 갖추었다.[363]하지만, 일본 소방 조직은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운영되어 대규모 재해 시 광역 지휘, 통신, 장비 등에 문제가 있었다. 2009년까지도 광역 소방 및 구조 활동 지휘 조직은 임시 조직이며, 평상시 대규모 재해 대비 체계는 미흡했다.
의료 분야에서는 2005년 재해의료파견팀(DMAT)이 수립되었다.[364][365][366]
7. 2. 자위대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과 함께 자위대의 위기관리 기능이 주목받으면서, 지진 이후 일본 국민 내 자위대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늘어났다.[319] 재해가 발생할 때 자위대를 통한 위기관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320][321]도로가 끊겨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 헬기를 이용해 잔해 제거차나 소방차를 공수하는 방법이 생겨났다. 또한, 하수관 파열에 대비해 방화수조를 설치하는 것보다 자위대의 대형 수송 헬기(약 40기)로 물을 담은 컨테이너를 공수하여 소화 활동을 지원하는 방법도 제시되었다.
자위대가 보유한 CH-47 치누크 헬기는 1기당 가격이 수십억 엔에 달해, 개발도상국에서 대형 헬리콥터를 구입하기 어려운 경우 자위대의 CH-47을 지진 재해 현장에 파견하여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내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재정 문제로 구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7. 3. 내진 보강 및 기존부적격
한신·아와지 대진재 당시 일본의 전통 기와를 사용해 기초를 돌 위에 기둥을 얹기만 하고 대각재가 적은 오래된 목조 주택에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지진 이후 고베 지역에서는 기와를 쓴 목조 주택이 사라졌다. 특히 목조축조구법으로 지어진 주택에 피해가 집중되었으며, 새롭게 건설된 주택 중에서도 대각재가 부족한 주택은 큰 피해를 입었다.[253] 사카모토 이시오는 저서에서 "사망자 중 5,000명 가까이가 축조구법으로 지어진 주택에 깔려 사망했다"라고 언급하며,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축법으로 지어진 기와 지붕이 많았다"는 점이 중요하지만, 대부분 "기와가 무거워서 문제였다"라고 오해한다고 지적했다.[254][255]
낡은 목조주택은 시간이 지나면서 건조해지고 화재를 막는 내염재를 사용하지 않아 화재 피해도 많았다. 고베 지역의 목조 주택은 태풍에 대비해 건설되어 기와 부분이 무거워 진동에 약했고, 기와 고정 방식도 흙 위에 기와를 덮는 방식이어서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각재가 많은 목조주택은 내진성이 강했다. 또한 서양식 조립식 건축이나 목조 틀막 건축(프레임 건축법)으로 건설한 주택은 내진성이 높았다.
1981년 일본 건축기준법 개정 이후 1982년부터 건축된 주택의 피해는 매우 적었다. 지진 당시 붕괴된 가옥의 98%가 개정 이전 건축기준법에 따라 지어진 건물이었다.[256] 건축기준법 개정안이 효과가 있었으며, 이후에도 1996년, 2000년, 2006년에 개정되었다.[257]
구 기준법에 따른 합법 주택은 낡은 경우 내진성이 낮고 붕괴 위험이 높아도 위법하지 않았다. 신축 당시 건축기준법을 준수했다면 이후 노후화되어도 "기존부적격" 건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축기준법이 없던 에도 시대 건물은 매우 위험해도 합법이었다.[258] 1988년 건축기준법 개정 전까지 준방화지역에서 목조 3층주택 건축이 금지되어 내진성이 없는 합법적인 목조 3층주택이 없었기 때문에 3층 주택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일본 내 내진성이 부족한 기존부적격 주택은 2008년 일본 국토교통성 추산 기준 전체 주택의 23%인 1,050만 호 이상이다.[259]
한신·아와지 대진재는 긴키 지방 세토 내해 해안가가 지진 발생이 적었다는 점도 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였다. 일부 지진 전문가들은 작은 규모의 지진도 일어나지 않아 땅 속에 에너지가 축적되어 지진 발생 시 규모가 더 커질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16년 아카시 해협 부근 규모 M6.1 지진 이후 약 80년간 뚜렷한 지진 활동이 없어[367] "긴키 지방은 지진이 적다"는 오해가 확산되고 지진 자체를 의식하는 사람이 적어 전문가 지적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긴키 지방에는 큰 지진이 여러 차례 있었다.[368] 가부키 "지진가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샀던 가토 기요마사가 1596년 게이초 후시미 지진 때 후시미성에서 도요토미를 업고 도망치는 이야기이다. 고베 지역은 지진예지연락회에서 관측강화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전까지 대지진은 태평양판이나 필리핀해판이 일본 해구나 난카이 해곡에서 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하며 발생하는 해구형 지진에만 집중되었고, 내륙 활단층 이동으로 발생하는 직하형지진은 주목받지 못했다. 간토 지방, 도카이 지방, 기이반도 지역은 대지진 가능성이 높아 방재 훈련과 건축물 보강 조치가 이루어졌지만,[369] 미에현과 와카야마현과 달리 세토 내해에 있는 오사카부와 효고현은 대비가 거의 없었다.
이후 빌딩 등 건축물 건설이나 보수 시 한신·아와지 대진재를 교훈으로 일본 어디서든 최저한도의 내진성을 갖추도록 변경되었다. 고속도로, 일반 도로, 철도 등의 교각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행정 주도 하에 보강공사가 이루어졌다.
7. 3. 1. 건축기준법 개정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낡은 주택이 내진 설계가 아예 없어도 위법이 아닌 기존부적격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다만 1995년 건축물의 내진개수촉진에 관한 법률(내진개수촉진법)을 제정하여 오래된 건축물의 내진 설계 개조를 지원하였다.[370] 또한 일본 소방청은 공공시설의 내진 설계 도입을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한신·아와지 대진재가 일어났던 효고현조차 2003년 기준 공공시설의 내진화는 48.3%로, 도쿄도의 78.1%에 비해 매우 낮다. 특히 민간 회사나 주택, 맨션의 내진화율은 매우 낮다. 그나마 희생자가 거의 없던 공공시설은 내진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희생자의 80% 이상이 발생했던 민간 건축물의 내진성 없는 목조주택은 내진 보강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무역의 기술적 장애에 관한 협정 제2조에 따라 강제적 규제는 필요한 수준에서 무역 제한 조치가 되어서는 안되며, 건축심의회는 이에 동조하는 내용의 답신서를 제출했다. 결과적으로 1998년 법 개정을 통해 기술기준은 "성능규정화"가 되어가고 있다.[371] 지진 국가로 구조역학에 기반하여 건축 재료의 질이나 형태 등을 규제한 기존의 이른바 '사양규정'에서 정형적인 내진 사양이나 국제적인 검증 방법을 통한 실질적인 내진 특성을 측정하는 '성능규정'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런 규정 변화는 규제 완화가 목적이지, 내진화만을 바라보는 개정은 아니다.[372]
7. 3. 2. 내진 평가
건축기준법은 개정되었지만, 붕괴가 많았던 단독주택이나 저층 철근 구조물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내진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효고현 미키시에 철근 콘크리트 6층 건물까지 실제 건물에 진동을 가해 내진성을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인 E-디펜스가 건설되었다.[373] 또한 내진 설계 시 시뮬레이션 데이터는 고베해양기상대에서 실제로 관측한 지진 파형을 사용하도록 변경되었다.7. 4. 지진 관측
1995년 당시에는 도카이 지진의 전조 현상 관측 목적으로 간토, 도카이 지각활동 관측망이라고 하는 특정 지역의 지진관측망은 정비되었으나, 한신·아와지 대진재가 일어난 지역뿐 아니라 일본 전역을 망라하는 지진관측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효고현 남부 지진을 예측하거나 발생 매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기초 데이터를 축적하지 못했다.[374] 결국 지진 발생 후인 1995년 6월 16일 지진에 관한 조사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법률인 "지진방지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일본 전역을 20 km 간격의 망으로 뒤덮은 지진계들을 모아 둔 고감도 지진관측망과 기반강진관측망을 정비하기 시작했다.[374]7. 5. 가스레인지 및 가스통 규격
한신·아와지 대진재로 나온 이재민들이 피난 생활을 할 때 어디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이동식 가스레인지를 조리하는 데 사용했는데, 당시 가스레인지 및 가스통 규격은 1991년 7월 1일 일본공업규격(JIS) (JIS S 2147 / JIS S 2148)에서 정확하게 제정되어 있지 않았다. 가스통의 크기와 규격이 엄밀하게 지정되어 있지 않았고 부품도 정확하게 지정되지 않아 제조사마다 서로 다른 크기와 규격의 가스레인지 및 가스통은 서로 호환되지 않았다.[375] 이 때문에 이재민들끼리 가스통 규격이 달라 서로 빌려줄 수 없어 제조사 측에 이를 항의하거나 가스통 규격을 통일해야 한다는 여론이 늘어났다.[376]이후 1998년 2월 20일 일본공업규격 "카세트 풍로(JIS S 2147)", "카세트 스토브용 연료 용기"(JIS S 2148) 표준을 제정하여[375] 가스통 규격을 하나로 고정시켜 모든 제조사가 서로 다른 제조사의 가스레인지와 가스통을 장착할 수 있게 바뀌었다.[376]
7. 6. 수도꼭지
지진 이전에는 수도꼭지 레버를 위로 올려서 물을 잠그는 "올림 멈춤식" 수도꼭지가 보급되어 있었으나, 지진 이후에는 레버를 아래로 내려서 물을 잠그는 "내림 멈춤식" 수도꼭지가 보급되기 시작했다.[377] 수도꼭지 방식이 달라진 것이 지진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일본밸브공업회는 구미에서 "내림 멈춤식" 수도꼭지가 광범위하게 보급된 것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378] 또한 일본공업표준조사회는 지진 대책을 포함한 세계적 관점에서 내림 멈춤식으로 통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378]8. 지진 추모
한신·아와지 대진재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설들이 건설되었다.
- 사람과 방재미래센터 - 고베시 주오구에 있다.
- 호쿠단 지진재해기념공원 - 쓰난군 호쿠단정(현재 아와지시 북부)에 있다. 효고현 남부 지진의 진원 단층으로, 일부가 지표에 드러난 노지마 단층 보존관 옆에 지어졌다.[379]
-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 - 고베시 주오구 메리켄 파크에 있다. 지진 당시 무너졌던 메리켄 부두를 보존한 곳이다.
매년 1월 17일에는 일본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
- 고베시 주오구 산노미야 히가시유엔치 - 지진 발생 시각인 5시 46분과 그 12시간 전후인 오후 5시 46분에 묵념 행사를 연다. 광장에는 6,000개의 "1.17" 글자 모양 등을 북쪽에 있는 고베시청 청사를 향해 전시한다. 매년 조금씩 다르지만 16일 저녁부터 다음 날인 17일 21시까지 촛불을 켜 놓는다. 이 행사를 진행하는 "한신·아와지 대진재 1.17의 모임"은 2019년부터 도쿄도 히비야 공원 안에서도 추모식을 열고 있다.[380]
- 이타미시 고야이케공원 - 지진 발생 12시간 전인 16일 오후 5시 46분에 묵념행사를 가지고 지진 발생 시각인 17일 오전 5시 46분까지 촛불을 켜 놓는다.
- 고베 대학 - 학생들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고베 대학에서는 매년 위령제를 열고 있다.[247]
또한 1995년부터 매년 12월에 희생자들을 기리고, 도시의 부흥을 기원하는 고베 루미나리에가 열리고 있다.[381]
9. 지진 20주년 정보 공개
2014년 12월 9일, 고베시는 지진 20주년을 맞아 지진 경험과 교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진 당시 촬영한 사진을 모아 "1.17의 기록"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지진 재해 직후부터 1년간 고베시 공무원이 촬영한 기록 동영상을 공개하기로 계획하였다.[382][383][386]
9. 1. 한신·아와지 대진재 "1.17의 기록"
2014년 12월 9일, 고베시는 한신·아와지 대진재 20주년을 맞아 지진 경험과 교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진 당시 촬영한 사진을 모아 "1.17의 기록" 웹사이트를 개설했다.[382][383] 이 웹사이트에는 지진 직후 및 복구 과정 사진 등 고베시 홍보과가 촬영한 약 14,700점 중 엄선된 1,000여 점의 사진이 공개되었다.[384]사진은 방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주택 및 화재 분류를 지역별로 검색할 수 있다. 고베 교통센터와 같은 시내 주요 건축물의 복구 및 재건축 과정을 담은 "정점 관측 사진"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사진은 일부를 제외하고 CC-BY 2.1 JP를 적용하여 자유로운 2차 이용이 가능하다.[385]
9. 2. 기록 동영상 공개
고베시 공무원이 지진 20주년에 맞춰 기록 동영상을 공개하기로 계획하고 있다.[386] 그동안은 시민의 감정이나 피해 주민에 대한 배려 등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20년 만에 후대에 보여주기 위해 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공개된 총 동영상 시간은 약 48시간이다.[386]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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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年(平成13年)4月23日に気象庁が、マグニチュードの算出方法の変更により修正したものである。そのため、古いモニュメントや資料の中にはM7.2とするものも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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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地震発生直後の放送各局が被害報道したのが、亀岡市内の住宅全壊・半壊だった。読売テレビでは、同市内に別荘を持つ辛坊治郎に電話取材を試みた
讀賣テレビ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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徳島の平成史【平成7年】阪神大震災、県内も被害 丸新が閉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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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城県栗原市で2933ガル=強い揺れ2分強続く-気象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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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回 栗田勝実 助教授「阪神・淡路大震災から10年〜この10年で見えてきた地震防災とその課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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メモリアル・フォト M7.2の恐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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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災報道 『阪神』淡路島では不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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関西大震災 死者不明3000人に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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避難の15人死亡、ストレスや疲労原因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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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災死者数計上ミス問題 名簿確認、宮城単独では困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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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淡路の焼死者、2つの公式数の「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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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ータでみる阪神・淡路大震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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埋もれた記憶 西宮・仁川の地滑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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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年前「日頃の景色が一変」 大規模な地すべり「災害の怖さ語り継ぐ」 西宮・仁川百合野地区で追悼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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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ピロティ住宅」津波に耐えた 1階は柱、波の力受け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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設計は ASTM(アステム)(芦屋浜・新日本製鐵・竹中工務店・高砂熱学工業・松下電工〈現:パナソニック電工〉・松下興産)。管理は日本住宅公団・兵庫県住宅供給公社・兵庫県・民間。14〜29階建て、総戸数3,381戸。1979年(昭和54年)竣工。階段室と5階毎の共用部分の鉄骨によるラーメン構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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限界以上の力がかかった時の破壊順序が決められており、中核になる部分が最後に壊れるようになっている。その後の余震でも大きな変化は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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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2(5/14 兵庫県南部地震における地震動と被害概要、5/21 兵庫県南部地震における戸建住宅の被害、5/28 兵庫県南部地震におけるRC・S造建物の被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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さよならファミコン通信 199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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瓶の中身はビールじゃなくて水だった スマホで伝える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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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見教祖現地入り 盲人救援へ ワールドメイ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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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24]
기타
[125]
서적
阪神大震災の被災者にラジオ放送は何ができたか
同朋舎出版
[126]
서적
大震災放送局24時間
朝日新聞社
[127]
기타
[128]
기타
[129]
기타
[13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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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災害時の情報源 若い世代にも広がるラジオの役割 阪神大震災27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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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ニュース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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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阪神大震災」全記録
神戸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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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震災とインターネット「神戸からの提言」
NECクリエイティ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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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和二年度 情報通信白書 |情報通信機器の保有状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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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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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兵庫県/携帯について
https://web.pref.hyo[...]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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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淡路大震災教訓情報資料集【01】通信途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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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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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実話時代
三和出版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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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淡路大震災2日後に開催された全日本大阪大会の舞台裏…どうなる? 5年9カ月ぶりの“大阪三冠戦”【週刊プロレス歴史街道・大阪編】
https://www.bbm-japa[...]
2024-10-10
[139]
웹사이트
阪神・淡路大震災から2日…川田vs小橋の三冠戦は60分フルタイム【週刊プロレス昔話】
https://www.bbm-japa[...]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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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三越大阪店、5日閉店…315年の歴史に幕
https://web.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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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神戸市統計報告 特別号
http://www.city.kobe[...]
神戸市
2004-11-09
[142]
웹사이트
人口統計
http://www.city.kobe[...]
[143]
서적
終わりなきアスベスト
岩波ブックレット
[144]
간행물
厚生白書(平成8年版)
[145]
웹사이트
97/03/31 大阪湾フェニックス計画の変更の認可について
https://www.env.g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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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平成7年『警察白書』
https://www.npa.go.j[...]
阪神・淡路大震災
[147]
뉴스
宮城県、復興工事からの暴力団排除を要請
http://www.nikkanspo[...]
2011-03-31
[148]
뉴스
ネットに震災デマ許すな 警察が対策強化
http://www.daily.co.[...]
2011-04-02
[149]
뉴스
器物損壊:震災慰霊碑の照明壊される−−神戸の公園
http://mainichi.jp/s[...]
2013-07-17
[150]
뉴스
阪神・淡路大震災のモニュメントに落書き 神戸
https://web.archive.[...]
NHKニュース
2017-12-22
[151]
뉴스
六甲山の震災慰霊の木柱にペンキ 神戸
https://web.archive.[...]
NHKニュース
2017-12-25
[152]
뉴스
震災の鎮魂碑、盗難か 六甲山頂付近建立
https://mainichi.jp/[...]
2019-01-31
[153]
뉴스
窃盗容疑:地蔵7体を盗む…22歳男を書類送検 兵庫県警
http://mainichi.jp/s[...]
2014-01-07
[154]
뉴스
朝日新聞
1995-02-03
[155]
Twitter
norihiroe
https://twitter.com/[...]
[156]
문서
取材時の言葉使い、無理なインタビューを避ける、早朝、深夜の避難所取材で迷惑を掛けないなどの被災者の生活を邪魔する印象を与えない、飲食物の粗末な扱いをしない。
[157]
Youtube
アナウンサーが語り継ぐ「阪神淡路大震災20年」第3回
https://www.youtube.[...]
[158]
웹사이트
「人が憧れる者でありたい」-みちのくプロレス・のはしたろう選手に聞く
https://kobe.keizai.[...]
2024-10-10
[159]
웹사이트
ブードゥー総帥TARU「支援続ける」 - プロレスニュース
https://www.nikkansp[...]
2024-10-10
[160]
웹사이트
TARU『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
https://ameblo.jp/vm[...]
2024-10-10
[161]
뉴스
陳舜臣さん死去 阪神大震災経験、「神戸の笑顔をみたい」復興見守る
https://withnews.jp/[...]
朝日新聞社
2015-01-21
[162]
뉴스
悲しみを超えて 阪神大震災 神戸よ
1995-01-25
[163]
문서
震災当時、筒井は[[筒井康隆#断筆宣言以後|断筆中]]だったため、1997年に断筆を解除してから震災について執筆した文をいくつか発表している。筒井康隆『笑犬樓の逆襲』(2004年[[新潮社]]、2006年[[新潮文庫]])収録『阪神大震災はいまだ終わらず』など。また1995年4月25日付『読売新聞』夕刊掲載のインタビューで「今回の震災で五千五百もの人が死に、自分がその一人ではないという不思議さを感じる時、もう小説なんてどうでもよくなった。」と答えている。
[164]
웹사이트
東京文化財研究所『東文研アーカイブス』津高和一記事
https://www.tobunken[...]
[165]
서적
将棋王手飛車読本
別冊宝島
[166]
웹사이트
大人気「涼宮ハルヒの憂鬱」の谷川流さん「楽しませ、楽しみたい」
https://web.archive.[...]
[167]
서적
元・阪神 そしてミスタータイガースは去った
廣済堂
2006
[168]
뉴스
時代の証言者 桂文珍⑳震災 芸道の転機に
2014-01-06
[169]
뉴스
間寛平 真冬の中学校で避難生活送った
https://www.daily.co[...]
2015-01-08
[170]
웹사이트
亡き友への思い胸に 安田大サーカス 団長安田さん
https://www3.nhk.or.[...]
2024-01-12
[171]
Youtube
辛坊治郎「文春騒動その後/阪神淡路大震災」ほか~KissFM KOBE「辛坊治郎SundayKiss」1/26前半~
https://www.youtube.[...]
[172]
문서
震災後に発売したシングルCD『怒りのグルーブ 〜震災編〜』のジャケットに表記されている。
[173]
웹사이트
連載・特集|阪神・淡路大震災|震災20年目|語る20年 (4) 「ダンスリー・ルネサンス合奏団」代表 岡本一郎さん
https://www.kobe-np.[...]
神戸新聞社
2015-01-04
[174]
문서
たとえば、大阪府は1971年(昭和46年)までは自衛隊と共同して防災訓練を行っていたが、[[黒田了一]]の知事就任以降、「自衛隊に頼らない防災訓練」を目指した。その理由には「関西には地震が来ない」ということも挙げられていた。また、[[淀川]]の水害で自衛隊が出動した際には自衛隊に抗議を行っていた。黒田の退任後も、阪神大震災までそのままの関係であった。震災後、大阪府でも自衛隊との連携が再度模索され始め、大阪市も1995年(平成7年)、22年振りに防災訓練を自衛隊と共同実施することを決定した。(田中伯知「阪神大震災と自衛隊の出動」『自由』1996年6月)
[175]
문서
"「鼎談 危機管理と自衛隊」『セキュリタリアン』1995年3月
田中伯知「阪神大震災と自衛隊の出動」『自由』1996年6月等
『セキュリタリアン』の鼎談では、[[佐々淳行]]により災害対策基本法とともに、自衛隊法83条の問題点なども挙げられている。"
[176]
서적
官かくあるべし―7人の首相に仕えて
[177]
간행물
兵庫県南部地震の概要 (地殻調査部 橋本学)
https://www.gsi.go.j[...]
国土地理院
1995
[178]
문서
寒川(2010), p255-265
[179]
PDF
観測強化地域・特定観測地域の経緯
https://cais.gsi.go.[...]
[180]
문서
柱に、鉄板または炭素繊維を巻きつけるのが主流
[181]
웹사이트
建築物の耐震改修の促進に関する法律
https://laws.e-gov.g[...]
e-Gov
2019-12-28
[182]
PDF
はしがき
http://www.nilim.go.[...]
国交省
[183]
서적
プロが明かす欠陥住宅はこうして防げ
時事通信出版局
2004
[184]
웹사이트
地震に関する基盤的調査観測計画 平成9年8月29日
https://www.jishin.g[...]
地震調査研究推進本部
[185]
뉴스
いろいろつないで活用できる、接続性の高いアイテムをピックアップ
https://news.mynavi.[...]
2004-10-22
[186]
웹사이트
カセットガスボンベの消費期限と互換性
http://www.sonaeru.j[...]
2010-01-28
[187]
웹사이트
下げて止める蛇口「大震災を機に統一」都市伝説の真相は(1/2ページ)
http://www.asahi.com[...]
2011-01-14
[188]
웹사이트
下げて止める蛇口「大震災を機に統一」都市伝説の真相は(2/2ページ)
http://www.asahi.com[...]
2011-01-14
[189]
문서
損害保険では「オールリスク」タイプが一般向け保険であるが、「戦争」「自然災害」「自損」は入らない
[190]
뉴스
地震保険の支払い4781億円に 大震災、阪神の6倍超
https://web.archive.[...]
2011-05-06
[191]
서적
動物園を100倍楽しむ! 飼育員が教えるどうぶつのディープな話
緑書房
2023-07-10
[192]
뉴스
「地震の教訓 今も手探り/断層保存館 減る入館者
https://www.asahi.co[...]
2019-01-12
[193]
문서
2012年以降は東日本大震災発生時刻の14時46分にも黙祷を行っている
[194]
뉴스
「阪神震災つどい 東京で初の開催」
https://mainichi.jp/[...]
2019-01-18
[195]
뉴스
響け、ふるさと再生の歌 「しあわせ運べるように」CDブックで出版
http://mainichi.jp/s[...]
2011-06-30
[196]
웹사이트
公式サイト
http://www.shiawaseh[...]
[197]
뉴스
阪神・淡路大震災から29年 今の被災地支援に教訓どう生かすか
https://www3.nhk.or.[...]
NHKNEWSWEB
2024-01-17
[198]
뉴스
地震の備え、阪神に学ぶ 東京・消防博物館で企画展」
https://www.nikkei.c[...]
2019-01-10
[199]
뉴스
菅田将暉:祖父の手紙懐に震災20周年ドラマ主演
https://mantan-web.j[...]
毎日新聞デジタル
2015-01-07
[200]
뉴스
朝日新聞
1995-12-10
[201]
뉴스
読売新聞
1995-12-18
[202]
뉴스
阪神大震災:神戸市が当時の写真1000枚、ネットで公開
http://mainichi.jp/s[...]
[203]
뉴스
阪神大震災の写真約1000枚、神戸市がCCライセンスで公開 2次利用OK
https://www.itmedia.[...]
[204]
웹사이트
〈阪神・淡路大震災20年〉神戸市、大震災『1.17の記録』 写真1000点公開
http://www.bosaijoho[...]
防災情報新聞 防災情報機構
2014-12-15
[205]
뉴스
阪神・淡路大震災の写真千点、ネットで公開 神戸市
http://www.kobe-np.c[...]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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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阪神・淡路大震災直後の記録動画 全容を公開 神戸
http://www.kobe-np.c[...]
201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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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兵庫県南部地震最終報告書
https://www.kenken.g[...]
建築研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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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章 現地調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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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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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阪神・淡路大震災における初動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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気象庁 震度と加速度
http://www.data.jma.[...]
気象庁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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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寒川(2010), p25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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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淡路大震災の概要
http://www.bousa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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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第2章 兵庫県南部地震
http://www.lib.kobe-[...]
神戸大学
null
[214]
뉴스
宮城県栗原市で2933ガル=強い揺れ2分強続く-気象庁
http://www.jiji.com/[...]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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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住宅・建築物の耐震化について
http://www.mlit.go.j[...]
国土交通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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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メモリアル・フォト M7.2の恐怖
http://www.lib.kobe-[...]
神戸大学附属図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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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perational Procedures of Contributing Agencies
http://www.isc.ac.uk[...]
英国国際地震センタ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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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地震と津波 ― 防災と減災のために ― Earthquakes and Tsunamis – Disaster prevention and mitigation efforts –
https://www.jma.go.j[...]
気象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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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震災報道 『阪神』淡路島では不評
199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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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1分で決まった『阪神大震災』
毎日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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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関西大震災 死者不明3000人にも
199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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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淡路大震災教訓情報資料集阪神・淡路大震災の概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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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キュメント希望新聞 阪神大震災と報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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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淡路大震災の被害確定について(平成18年5月19日消防庁確定)
http://web.pref.hyog[...]
null
[226]
웹인용
阪神・淡路大震災の概要と被害状況
http://www.bousai.go[...]
null
[227]
뉴스
避難の15人死亡、ストレスや疲労原因か
http://www.yomiuri.c[...]
2021-06-29
[228]
뉴스
震災死者数計上ミス問題 名簿確認、宮城単独では困難
http://www.kahoku.co[...]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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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阪神・淡路の焼死者、2つの公式数の「謎」
http://www.kobe-np.c[...]
20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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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阪神・淡路大震災の被害確定について(平成18年5月19日消防庁確定)
http://web.pref.hyog[...]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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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3.4 過去の大災害との比較
http://www.fdma.go.j[...]
総務省消防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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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死者・行方不明者 1万人超に
http://www3.nhk.or.j[...]
NHK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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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종합]日지진 사망자 3천명 넘어,전후 최대 육박"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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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島村(2014), p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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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埋もれた記憶 西宮・仁川の地滑り
http://www.kobe-n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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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일본 고베 대지진으로 동포 32명 사망
https://news.kbs.co.[...]
KBS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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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재일동포 피해 늘어
https://news.kbs.co.[...]
KBS
2023-01-09
[238]
뉴스
일본 고베 대지진
https://news.kbs.co.[...]
KBS
2023-01-09
[239]
뉴스
고베지진 동포 희생자 합동 위령제
https://news.kbs.co.[...]
KBS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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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震度7 何が生死を分けたのか -埋もれたデータ21年目の真実-
KKベストセラー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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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阪神・淡路大震災にみる在来木造都市型住宅の問題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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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連載<「圧死」を追う>被災地発・問わずにいられない(2)検案書は語る
http://www.kobe-n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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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阪神・淡路大震災 : 神戸市における死亡者発生要因分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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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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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神戸大学 神戸大学震災慰霊献花式(兵庫県南部地震犠牲者追悼行事) 2016年01月15日
http://www.kobe-u.ac[...]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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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지진 발생시 이런 구조물 붕괴
https://news.kbs.co.[...]
KBS
199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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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ピロティ住宅」津波に耐えた 1階は柱、波の力受けず
http://www.asahi.com[...]
朝日新聞デジタル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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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神戸新聞の100日-阪神大震災、地域ジャーナリズムの戦い
プレジデン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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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阪神淡路大震災15周年 ラジオ関西の取組と企画
ラジオ関西
200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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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日経アーキテクチュ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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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2(5/14 兵庫県南部地震における地震動と被害概要、5/21 兵庫県南部地震における戸建住宅の被害、5/28 兵庫県南部地震におけるRC・S造建物の被害)
http://www.shara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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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大震災における木造建築物の被害と対策〈その1〉
http://www.tetras.ui[...]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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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大震災における木造建築物の被害と対策〈その2〉
http://www.tetras.ui[...]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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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淡路から20年。耐震基準が明暗をわけた
http://www.taishin-j[...]
日本耐震診断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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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築基準法
https://kotobank.jp/[...]
Koto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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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築物の耐震改修の促進に関する法律の一部を改正する法律」の施行について(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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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土交通省
20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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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築物の耐震改修の促進に関する法律の一部を改正する法律」の施行について(P9)
http://www.mlit.go.j[...]
国土交通省
20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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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특집:일본대지진 1개월](상)'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199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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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開通後はJRリード
交通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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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仏モニュメント未完で幕 主体の日本委解散
http://www.kobe-np.c[...]
神戸新聞NEXT
2020-12-15
[263]
웹인용
震災資料保管庫 〜阪神淡路大震災での被災経験を後世に語り継ぐために〜
http://www.hanshin-e[...]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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衝撃の瞬間〜神戸を襲った大震災
ナショナルジオグラフィックチャンネル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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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兵庫の鉄道全駅 JR・三セク
神戸新聞総合出版センター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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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JR西日本 震災復旧工事が完了 山陽線新長田の新駅舎完成
交通新聞社
199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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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よみがえれ! 線路よ街よ - 阪神・淡路大震災 JR西日本100人の証言
交通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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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阪神大震災から1年
鉄道ジャーナル社
199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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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災害に強い交通基盤整備のあり方に関する調査研究報告書
1996-03
[270]
보고서
災害に強い交通基盤整備のあり方に関する調査研究報告書
1996-03
[271]
저널
阪神大震災から1年
鉄道ジャーナル社
1996-04
[272]
보고서
災害に強い交通基盤整備のあり方に関する調査研究報告書
1996-03
[273]
뉴스
JR7社14年のあゆみ
交通新聞社
2001-04-02
[274]
웹인용
阪神・淡路大震災 鉄道の被災と復旧の記録
http://www.lib.kobe-[...]
社団法人/日本鉄道建設業協会 大阪支部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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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JR、私鉄動き出す――阪神間なお運行ストップ
1995-01-18
[276]
뉴스
阪神電鉄 3月20日ダイヤ改正 被災の施設、車両全て復旧
交通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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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淡路大震災から20年、 復興の軌跡と継承
https://www.hankyu-h[...]
阪急阪神ホールディングス株式会社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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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兵庫の鉄道全駅 私鉄・公営鉄道
神戸新聞総合出版センター
201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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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阪神大震災から1年
鉄道ジャーナル社
1996-04
[280]
저널
駅の変遷
山陽電気鉄道株式会社
2007-11
[281]
뉴스
神戸市営地下鉄が全通
交通新聞社
1995-02-17
[282]
저널
阪神大震災から1年
鉄道ジャーナル社
1996-04
[283]
문서
『歴史でめぐる鉄道全路線 公営鉄道・私鉄』14号 13頁
[284]
저널
阪神大震災から1年
鉄道ジャーナル社
1996-04
[285]
뉴스
한.일항로 취항선사들 항로 수정운항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21-07-27
[286]
뉴스
고베항 정상화 임박, 동북아 항만경쟁 가열 전망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21-07-27
[287]
뉴스
항만 `투톱 체제' 유행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21-07-27
[288]
웹인용
平成7年度 運輸白書
http://www.mlit.go.j[...]
運輸省
20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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関西3空港
イカロス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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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多発火災の周囲で発生する火災旋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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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地震時における出火防止対策のあり方に関する調査検討報告書について
http://www.fdma.go.j[...]
総務省消防庁
199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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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東北電力からのお願い
http://www.tohoku-ep[...]
東北電力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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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咄嗟のバケツリレーが功を奏して-兵庫県南部地震・市民の防災活動-(1995年4月号掲載)
http://www.city.k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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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淡路大震災教訓情報資料集【03】消防施設・資機材と水利の確保/教訓情報資料集
http://www.bousai.go[...]
内閣府 防災情報のペー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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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連載<「圧死」を追う>被災地発・問わずにいられない(4)地域の力/高めたか淡路の救命率
http://www.kobe-n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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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HEM-Net
http://business3.pla[...]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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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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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被災地、建築制限8カ月に 特例法案を閣議決定
http://mainichi.jp/s[...]
201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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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伝えたい―阪神から〉孤独死防ぐ「つながり」を
http://www.asahi.com[...]
202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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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さよならファミコン通信 199503
http://fami.tamahobb[...]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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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瓶の中身はビールじゃなくて水だった スマホで伝える117
https://www3.nhk.or.[...]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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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深見教祖現地入り 盲人救援へ ワールドメイト
http://www.lib.kobe-[...]
201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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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1994年に発表した小説『オン・ハッピネス』(新潮社 後に文庫化)は神戸を舞台とした作品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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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ラえもん募金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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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아사히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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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阪国際女子マラソン20年誌
日本陸上競技連盟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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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切手趣味週間「阪神・淡路大震災」(199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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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00年(平成12年)12月22日発行切手「20世紀デザイン切手」シリーズ第17集(最終)の発行 〜20世紀最後に発行する郵便切手〜
日本郵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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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167万人が被災地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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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신문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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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震に備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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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청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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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一卵性双生児/「戦後」と重なる神戸復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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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淡路大震災教訓情報資料集 『内閣府・ひょうご震災記念21世紀研究機構』 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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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情報、官邸に達せず
新潮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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気象衛星の役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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気象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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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かくあるべし―7人の首相に仕えて
小学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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首相官邸の決断―内閣官房副長官 石原信雄の2600日
中央公論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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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Japan News Network報道特別番組「失われた街で〜阪神大震災から1ヵ月」
199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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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阪神大震災。なぜ自衛隊出動が遅れたか
PRESIDENT(プレジデント社)
201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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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震災10年 守れ いのちを 第3部 史上最大の派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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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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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官邸応答せよ』から「クビを賭ける、自衛隊を呼べ!」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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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sahi Evening News
199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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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阪神大震災と自衛隊の出動
199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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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読売新聞調査研究本部主任研究員、高浜賛による社会・共産・革新系政党からの支持を受けた自治体首長への批判など
199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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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지진이 일본에 관해 나타낸 것"
199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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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국민의 안전 잊은 무라야마 정권
19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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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한신 대지진과 자위대의 출동"
199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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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무라야마 도미이치, "책임은 자신이 진다"고 모든 것을 맡긴 명재상
주간현대
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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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일본의 지진 지도 남해 트로프 수도 직하 지진 대응판
도쿄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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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
중의원 회의록 정보 제134회 국회 재해 대책 특별위원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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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김영삼 대통령, 일본 총리에 위로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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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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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TBS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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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1995/01/17 阪神淡路大震災 地震発生の瞬間 関西で唯一生放送していた朝日放送のスタジオ~大きな被害が出た神戸 【まいにち防災】/ Great Hanshin-Awaji Earthqu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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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震災メモリアル2001 第12分科会 阪神大震災〜その日私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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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庫県立舞子高等学校
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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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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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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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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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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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현 남부 지진 안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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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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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한신 대지진의 피해자에게 라디오 방송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동붕사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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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방송국 24시간
아사히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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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의 거리에 신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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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지진과 인터넷 "고베로부터의 제언"
NEC 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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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레이와 2년도 정보 통신 백서 |정보 통신 기기의 보유 상황
https://www.soumu.go[...]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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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현/휴대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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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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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한신・아와지 대지진 교훈 정보 자료집【01】통신 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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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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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실화시대
삼화출판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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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이미지는 남유럽풍 한큐 전철 신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준공
교통신문사
199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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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다카라즈카 가극 90년사 - 스미레의 꽃 세월을 거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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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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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80년사
매일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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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극복하고 86년 소고 고베점이 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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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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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다이마루 고베점의 등불은 끄지 않는다" 당시 신문 광고에서 보는 지진부터 1995년 4월 8일의 "재회"까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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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워커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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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한큐 폐점 기획 고베 한큐의 "마음과 추억" 전
주식회사 한큐한신백화점 고베한큐
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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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미쓰코시 오사카점, 5일 폐점…315년의 역사에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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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戸市統計報告 特別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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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戸市
200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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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口統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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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戸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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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わりなきアスベスト
岩波ブックレッ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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厚生白書(平成8年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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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3/31 大阪湾フェニックス計画の変更の認可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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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成7年『警察白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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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宮城県、復興工事からの暴力団排除を要請
http://www.nikkanspo[...]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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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ネットに震災デマ許すな 警察が対策強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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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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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窃盗容疑:地蔵7体を盗む…22歳男を書類送検 兵庫県警
http://mainichi.jp/s[...]
202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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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朝日新聞 1995年2月3日付 夕刊 芸能面
199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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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
norihir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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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防救助機動部隊(ハイパーレスキュー)の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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関東管区警察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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用語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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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日本高速道路 (NEXCO西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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広島県DMAT指定病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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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立病院機構東広島医療センタ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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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AT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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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土地理院 兵庫県南部地震の概要 (地殻調査部 橋本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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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東海地方に予想される大地震の再検討―駿河湾地震の可能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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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震予知連絡会会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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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築物の耐震改修の促進に関する法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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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が明かす欠陥住宅はこうして防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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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に一台、実物大構造物動的破壊試装置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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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震工学研究発表会講演概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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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震に関する基盤的調査観測計画 平成9年8月29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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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震調査研究推進本部
199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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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ろいろつないで活用できる、接続性の高いアイテムをピックアッ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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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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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セットガスボンベの消費期限と互換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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備える.jp
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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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下げて止める蛇口「大震災を機に統一」都市伝説の真相は(1/2ページ)
http://www.asahi.com[...]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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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下げて止める蛇口「大震災を機に統一」都市伝説の真相は(2/2ページ)
http://www.asahi.com[...]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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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震の教訓 今も手探り/断層保存館 減る入館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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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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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震災つどい 東京で初の開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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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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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観光振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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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閣府
201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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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阪神大震災:神戸市が当時の写真1000枚、ネットで公開
http://mainichi.jp/s[...]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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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阪神大震災の写真約1000枚、神戸市がCCライセンスで公開 2次利用OK
http://www.itmedi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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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淡路大震災20年〉神戸市、大震災『1.17の記録』 写真1000点公開
http://www.bosaijoho[...]
防災情報新聞 防災情報機構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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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阪神・淡路大震災の写真千点、ネットで公開 神戸市
http://www.kobe-np.c[...]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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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阪神・淡路大震災直後の記録動画 全容を公開 神戸
http://www.kobe-np.c[...]
201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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