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다쓰오
1. 개요
가와바타 다쓰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1986년부터 2017년까지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교토 대학을 졸업하고 도레이에 근무했으며, 민사당, 신진당, 민주당 등 여러 정당에서 활동했다. 2011년에는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총무대신을 역임했다. 그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반대, 원자력 발전소 재개 주장 등 다양한 정책적 입장을 보였으며, 2017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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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川端 達夫 (가와바타 다쓰오) |
|---|---|
| 출생일 | 1945년 1월 24일 |
| 출생지 | 시가현가모군 |
| 소속 정당 | 국민민주당 (이전: 민사당, 신진당, 신당우애, 민주당, 민진당, 구 국민민주당) |
| 학력 | 교토대학대학원 공학연구과 수료, 교토대학 공학부 졸업 |
| 전직 | 도레이 직원 |
| 칭호 및 훈장 | |
| 가족 (정치인) | 가와바타 고헤이 (형) |
| 웹사이트 | 가와바타 다쓰오 (2016년 4월 10일 시점 아카이브) |
| 중의원 부의장 | 제66대 |
|---|---|
| 임기 시작 | 2014년12월 24일 |
| 임기 종료 | 2017년9월 28일 |
| 의장 | 마치무라 노부타카, 오시마 다다모리 |
| 총무대신 | 제15대, 지역 활성화 담당 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지역 주권 추진) |
| 내각 | 노다 내각, 노다 제1차 개조 내각, 노다 제2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 | 2011년9월 2일 |
| 임기 종료 | 2012년10월 1일 |
| 문부과학대신 | 제12-13대 |
| 내각 |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간 나오토 내각 |
| 임기 시작 | 2009년9월 16일 |
| 임기 종료 | 2010년 9월 17일 |
| 내각 |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간 나오토 내각 |
| 임기 시작 | 2010년1월 7일 |
| 임기 종료 | 2010년 9월 17일 |
| 선거구 | (시가현 전현구 →) (시가 1구 →) ( 비례긴키블록) (시가 1구 →) 비례긴키블록 |
| 당선 횟수 | 10회 |
| 임기 시작 | 1986년7월 7일 - 2012년11월 16일, 2014년 5월 15일 |
| 임기 종료 | 2017년 9월 28일 |
| 기타 직책 | |
| 대표 | 하토야마 유키오 |
| 임기 시작 | 1999년9월 - 2000년 9월, 대표: 오카다 가쓰야, (2004년5월 - 2004년 9월), 대표: 가이에다 반리, (2014년 9월) |
| 임기 종료 | 2015년1월 |
| 기타 직책 | |
| 대표 | 오카다 가쓰야 |
| 임기 시작 | 2004년 9월 |
| 임기 종료 | 2005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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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부과학대신 -
다나카 고타로
다나카 고타로는 일본의 법학자이자 판사로,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상법 연구와 정치 활동을 거쳐 최고재판소 장관과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를 역임했으며, 1974년에 사망했다. -
일본의 문부과학대신 -
가와무라 다케오
가와무라 다케오는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게이오기주쿠 대학을 졸업하고 야마구치현 의회 의원과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문부과학대신과 내각관방장관,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 등 주요 당직을 지냈으나 정치자금 문제 등 논란 속에 2021년 정계를 은퇴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
1945년 출생 -
존 허드
존 허드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아버지 역으로 유명해졌고, 《소프라노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배우이다. -
1945년 출생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는 브라질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으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고 2023년부터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으며,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빈곤 감소에 기여하고, 부패 스캔들과 아마존 열대우림 벌채 문제 등의 논란을 겪었으나, 2022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현재 브라질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생애
가와바타 다쓰오는 1945년 1월 24일 시가현 가모군(현 오미하치만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시가현립 히코네히가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 대학 공학부 및 대학원 공학 연구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대학원 졸업 후 도레이에 입사하여 개발 연구 및 노동 조합 운동에 참여했다. 1986년, 니시다 하치로의 은퇴로 민사당 공천을 받아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시가현 전현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4년 민사당 해산 후 신진당 창당에 참여했다. 1995년에는 야마하나 사다오 전 일본사회당 위원장, 아카마츠 히로타카 전 사회당 서기장, 카이에다 반리 등과 함께 리버럴 신당 결성을 지지하며 신진당을 탈당했지만,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신당 결성이 무산되자 같은 해 10월 신진당에 복당했다. 1997년 신진당 해산 후 신당 우애를 거쳐, 1998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2.1. 초기 생애 및 학창 시절
1945년 1월 24일 시가현 가모군(현 오미하치만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시가현립 히코네히가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 대학 공학부 및 대학원 공학 연구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3. 정치 입문
1986년, 니시다 하치로의 은퇴로 민사당 공천을 받아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시가현 전현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4년 민사당 해산 후 신진당 창당에 참여했다. 1995년 일본사회당을 탈당한 야마하나 사다오 전 사회당 위원장, 아카마츠 히로타카 전 사회당 서기장, 일본신당을 탈당해 당시 무소속이었던 카이에다 반리 등과 함께 리버럴 신당 결성을 지지하며 신진당을 탈당했지만,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신당 결성이 무산되자 같은 해 10월 신진당에 복당했다. 1997년 신진당 해산 후 신당 우애를 거쳐, 1998년 구 민주당, 민정당과 신당 우애가 합류한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3. 정치 경력
가와바타 다쓰오는 1986년부터 2017년까지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2011년 9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내각에서 총무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지역 주권 추진)을 겸임하며, "지역의 활성화를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획 입안 및 행정 각 부의 소관 사무의 조정"을 담당했다. 같은 해 11월 16일, 국빈으로 방일 중인 부탄 국왕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부부를 환영하기 위해 열린 궁중만찬에 결석하여, 다음 날 참의원총무위원회에서 사과했다.
2012년 1월 13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내각 개조로 노다 제1차 개조 내각이 발족하면서 가와바타는 총무대신 및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직을 유임했다. 6월 4일, 노다 제2차 개조 내각에서도 유임되었으나, 10월 1일, 노다 제3차 개조 내각의 발족에 따라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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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민주당 활동
2004년 5월, 오카다 가쓰야가 민주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가와바타는 오카다 신 집행부에서 국회대책위원장에 취임했다. 국회대책위원장 시절, "질의서의 증가로 인해 관료의 잔업이 늘고 있다"고 지적하며, 자유민주당이 질의서 제출 제한을 주장한 것에 대해, 질의서 제출 제한은 일본국 헌법으로 보장된 국정조사권에 대한 모독이라며, "국민의 위임을 받아 우리가 요구하는 것에 (관료가) 밤샘해서라도 제대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발했다. 2004년 9월, 후지이 히로히사 간사장의 대표 대행 취임에 따라 가와바타는 민주당 간사장으로 승격했다.
2005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민당의 우에노 겐이치로에게 시가 1구에서 패했지만, 중복 입후보했던 비례 긴키 블록에서 부활하여 7선 의원이 되었다. 가와바타가 선거구에서 낙선한 것은 이 총선거가 처음이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오카다 대표가 사임하면서 집행부도 총사퇴했다. "포스트 오카다"를 선출하는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는 마에하라 세이지에게 투표했다.
마에하라 집행부에서는 당 상임간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2006년 2월, 노다 요시히코 국회대책위원장의 사임 후, 국회대책위원장 취임을 요청받았지만 고사했다. 국회대책위원장에는 베테랑인 와타나베 쓰네조가 취임했고, 와타나베 아래에서 국회대책위원장 대리를 겸임했다. 또한, 전년 총선거에서 구 민사당 계열의 베테랑인 요네자와 다카시 전 위원장이나 나카노 히로나리 전 서기장 등이 낙선했기 때문에, 구 민사당 계열의 정치 단체인 민사협회의 이사장에 취임했다.
마에하라 대표의 사임에 따른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는 가와바타 그룹(민사협회의 통칭)을 내세워 오자와 이치로 지지를 표명했다. 오자와 신 대표 아래에서는 당 상임간사회 의장에 재임했다.
2009년 5월 11일, 오자와 이치로가 민주당 대표 사임을 표명했다. 오자와의 사임에 따른 대표 선거 (5월 16일 투개표)에서는 오카다 가쓰야의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8월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이전에 패배했던 자민당의 우에노 겐이치로를 꺾고 8선 의원이 되었다.
3.2. 하토야마·간 내각
2009년 9월,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서 문부과학대신으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입각했다. 고속증식로 '몬주' 연구 개발 지속 의사를 밝혔다. 고교 무상화 법안과 관련하여 당초 가정에 급부하는 안을 중지하고 학교 측에 급부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강조하면서도, "중학교를 밟아"라는 표현으로 집약하여 설명했다. 2010년 1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과학기술정책)을 겸임했다. 2010년 6월, 간 나오토 내각에서 문부과학대신 및 내각부 특명담당대신(과학기술정책)으로 재임명되었다. 2010년 9월, 간 나오토 제1차 개조 내각 발족으로 퇴임했다.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에 취임했다.
3.3. 노다 내각
2011년 9월, 가와바타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내각에서 총무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2년 10월 1일에 총무대신 직에서 물러났다.
4. 정책 및 주장
*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한 정부의 헌법 해석을 재검토하는 것에 반대한다.
* 원자력 규제 위원회의 새로운 기준을 충족한 원자력 발전소는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여성 궁가 창설에 찬성한다.
* 일본의 TPP 참여에 찬성한다.
*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의 도입에 어느 쪽인가 하면 찬성한다.
5. 활동
2004년 11월 스즈키 무네오 의혹과 관련, 1심 실형판결에 대해 가와바타는 "스즈키 전 의원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을 국회에서 엄하게 추궁했고, 사법부의 엄정한 심판을 평가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2006년 7월 시가현 지사 선거에서 가다 유키코가 당선되었으나, 가와바타는 현직 구니마쓰 요시쓰구 지사 추천을 결정했다. 이는 신칸센 신역 건설을 둘러싼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거 후 가와바타는 민주당 지지층의 가다 지지, 신칸센 신역 건설 동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2008년 민주당 신시대 오락 산업 건전 육성 프로젝트 팀 고문을 맡았다.
하토야마 내각 문부과학대신 재임 시절, 애니메이터 저임금 문제 해결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국가 공무원에 대해서는 "밤샘해서라도 답변을 작성해야 한다"고 발언하여, 노동자로서의 관료를 보호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6. 논란
가와바타 다쓰오는 자신의 정치 자금 관리 단체가 1987년부터 2008년까지 도레이 노동조합 간부 자택과 공설 비서 자택을 사무소로 신고하고 사무소비를 계상한 것에 대해 "뉴스레터를 제작할 장소가 필요했고, 경비가 발생했다. 법에 따라 계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가와바타가 대표를 맡고 있는 정당 지부와 자금 관리 단체 등이 스낵 등을 정치 활동에 이용한 것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정확하고 적절하게 기재하고 있다", "당으로부터의 기부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010년 3월 5일, 중의원 문부과학위원회에서 가와바타는 자민당의 마츠노 히로카즈 의원에게 이 문제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받았다. 마쓰노 의원은 "이것이 적절하고 문제가 없다면, 회계 장부나 영수증 등의 서류를 위원회에 꼭 제출해 주시길 바랍니다", "법률상으로도 정치 윤리상으로도 사회적 도의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면, 앞으로 이 문제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대신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가와바타 대신의 정치 단체의 자금 관리 책임자를 본 위원회에 불러 질의를 할 기회를 마련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질의했다. 그러나 가와바타는 "저는 적절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그때그때에 맞는 보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하며 구체적인 해명을 회피했다.
7. 기타
한신 타이거스의 팬으로, "한신 타이거스를 응원하는 의원 모임"의 23명 발기인 중 한 명이다. 이 모임은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하면 국회에서 롯코 오로시를 부른다"는 활동 방침을 가지고 있다.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에 조예가 깊다. 좋아하는 게임은 코에이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서 문부과학대신을 지냈을 때 애니메이터의 저임금 문제를 제기하며, 노동 상황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취미는 독서이며, 민주당 내에서 잡학 지식이 많기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영화 ROOKIES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정치가는 저 정도일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스포츠 관람, 컴퓨터, 모터스포츠, 고장난 것을 고쳐서 쓰는 것 등을 취미로 꼽았다.
존경하는 인물은 니시오 스에히로(민사당 초대 위원장)이다。
2018년 봄,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8. 소속 단체·의원 연맹
* 민사협회 이사 (2006년~2012년)
* 베이징 올림픽을 지원하는 의원 모임 부회장
* 일한의원연맹
* 재일 한국인을 비롯한 영주 외국인 주민의 법적 지위 향상을 추진하는 의원 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