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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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관봉 정상에 위치한 석조 여래 좌상이다. 638년 신라의 승려 의현이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작했으며, 현재는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갓을 쓴 모습으로 유명하며,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제작 시기는 9세기 초로 추정되며, 과거에는 미륵불로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약사여래불로 여겨진다. 갓바위 부처는 간절한 기도를 하면 영험한 효험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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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명칭 | |
공식 한국어 명칭 |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
속칭 | 갓바위 |
사진 | |
![]() | |
정보 | |
위치 |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 |
높이 | 약 4미터 |
갓 크기 | 약 15센티미터 |
해발고도 | 약 850미터 |
지정 번호 | 보물 제431호 |
지정일 | 1965년 9월 1일 |
문화재 분류 | 보물 |
상세 정보 | |
시대 | 638년(선덕여왕 7년)으로 "선본사 사적기"에 기록이 있으나, 학계는 남북국 시대의 신라로 추정 |
특징 |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모습 |
의미 |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음 |
관련 링크 | 문화재청 |
약사여래 | 팔공산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갓바위의 정식 이름은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
2. 위치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원래 불상이 있는 봉우리의 이름이 관봉이 아니었는데, 고려시대부터 '갓(冠)'을 쓴 불상이 유명해져 봉우리의 이름이 관봉으로 바뀐 특이한 경우이다.
2. 1. 지세
팔공산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이다. 팔공산의 중앙부는 산세가 좋은 편이며, 동화사가 있는 자리는 봉황의 아기궁이라 하여 따뜻하고 바람을 막아준다. 동화사라는 이름 자체가 한 겨울 눈 속에서도 오동나무 꽃이 핀다고 붙인 이름이다.반면 갓바위가 있는 관봉은 날개부분이라 경사가 심한 편이고 험하다. 중앙부에서 능선을 타고 외곽인 관봉까지 올 경우 밧줄로 암벽을 타고 오는 등산로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경사가 완만한 경산시에서 선본사를 통해 오거나, 대구광역시에서는 40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오는 것이 현명하다.
2. 2. 오는 길

팔공산은 대구광역시 쪽에서는 경사가 가파르고 경상북도 쪽에서는 경사가 완만하다.
등산로는 제외한 길은 다음과 같다.
- 대구광역시
팔공산 갓바위시설 지구 주차장에 자가용, 401번 버스, 관광용 버스를 타고 내린다. 팔공산 관리사무소를 지나 관광해설소, 관암사에 도착하면 1년 365일을 뜻하는 1365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길을 따라 45분 정도 올라가면 갓바위에 도착한다. 한 겨울 눈이 내리면 빙판이 되어 올라가기가 힘들다. 대구는 대중교통으로 401번 버스가 10분마다 운행해서 편리하다.
- 경상북도 경산시
자가용, 803번 버스, 관광용 버스를 타고 선본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선본사 계단이 대구 쪽 계단 보다 훨씬 더 좋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사찰에서 제설가루를 뿌려 빙판이 되는 일도 없다. 보통 25분이 걸린다. 그러나 대중교통의 경우 경산 803번 버스의 운행간격이 30분 ~ 1시간에 달해 불편하다.
2. 2. 1. 대구광역시
팔공산 갓바위시설 지구 주차장에 자가용, 401번 버스, 관광용 버스를 타고 내린다. 팔공산 관리사무소를 지나 관광해설소, 관암사에 도착하면 1년 365일을 뜻하는 1365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길을 따라 45분 정도 올라가면 갓바위에 도착한다. 한 겨울 눈이 내리면 빙판이 되어 올라가기가 힘들다. 대구는 대중교통으로 401번 버스가 10분마다 운행해서 편리하다.2. 2. 2. 경상북도 경산시
자가용, 803번 버스, 관광용 버스를 타고 선본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선본사 계단이 대구 쪽 계단 보다 훨씬 더 좋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사찰에서 제설가루를 뿌려 빙판이 되는 일도 없다. 보통 25분이 걸린다. 그러나 대중교통의 경우 경산 803번 버스의 운행간격이 30분 ~ 1시간에 달해 불편하다.3. 관리
한때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직영 사찰이었으나, 현재는 은해사의 말사인 선본사가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다.[3]
4. 제작
4. 1. 제작자
638년(선덕여왕 7년)에 신라의 승려인 의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하여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4] 전설에 따르면 밤이면 학들이 양식을 물고 날아와 허기와 추위를 달래주었다고 한다.[4]4. 2. 제작 시기
학계에서는 표현 방식을 바탕으로 남북국시대의 신라 작품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해인사의 사례로 보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5]당초 해인사 쌍둥이 비로자나불의 표현 양식이 조선시대라 하여, 조선시대 작품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미국까지 불상을 보내 조사한 결과 남북국시대(신라) 작품으로 밝혀졌다.[5]
5. 특징
팔공산의 봉우리에 있던 천연 암석을 깎아 들어가며 만든 불상이다.[6] 후에 팔각형 연꽃무늬 관(冠)을 불상의 머리에 얹었으나 지금이 많이 훼손되어 '갓'처럼 보인다.
신체적 특징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 인자한 불상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어깨는 다소 올라가고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두 손은 투박하지만 정교하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검은 색깔1990년대 초만 해도 부처의 몸에 촛불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을음으로 지금보다 더 시커멨다.[7] 예전에 가뭄이 들면 사람들이 팔공산 관봉(갓바위) 부처에게 불을 질렀는데, 부처가 쌔까매지면 용이 놀라 부처를 씻기 위해 비를 내려주었다고 한다.[7]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부처의 색깔이 군데군데 거뭇하다.
수인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석굴암 본존상과 같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불좌상이다.
대좌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
광배불상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 바위하고는 떨어져 따로 존재하고 있다.
제작 시기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9세기 불상의 특징이 있다.[8] 하지만 부처의 얼굴이 입체적이면서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대좌 형식이 고식이어서 8세기 불상의 특징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8] 그러므로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초반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8]
5. 1. 신체적 특징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 인자한 불상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어깨는 다소 올라가고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두 손은 투박하지만 정교하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5. 2. 검은 색깔
1990년대 초만 해도 부처의 몸에 촛불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을음으로 지금보다 더 시커멨다.[7] 예전에 가뭄이 들면 사람들이 팔공산 관봉(갓바위) 부처에게 불을 질렀는데, 부처가 쌔까매지면 용이 놀라 부처를 씻기 위해 비를 내려주었다고 한다.[7]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부처의 색깔이 군데군데 거뭇하다.5. 3. 수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석굴암 본존상과 같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불좌상이다.5. 4. 대좌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5. 5. 광배
불상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 바위하고는 떨어져 따로 존재하고 있다.5. 6. 제작 시기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9세기 불상의 특징이 있다.[8] 하지만 부처의 얼굴이 입체적이면서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대좌 형식이 고식이어서 8세기 불상의 특징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8] 그러므로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초반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8]6. '갓(冠)'에 대한 논란
2012년 경에 선본사는 1억 6천만 원을 들여 불교문화연구소와 3D 촬영을 하고 분석을 하였다.[9]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9]
=== '갓'은 자연석인가? ===
갓바위의 '갓'은 자연석을 단순 가공해 머리에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갓 윗면에는 보상화(寶相華)가 새겨져 있었다. 보상화는 꽃잎이 5개인 가상의 꽃으로, 불교에서 만다라화라고 부르는 흰색 연꽃이다. 그러므로 돌을 8각형으로 가공하고 보상화 무늬를 새긴 다음 홈을 내어 부처의 머리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되고 사람들이 불을 지르는 등의 훼손을 가해 깔끔한 8각형의 '관(冠)'이 현재의 불규칙한 '갓'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 '갓'은 언제 올렸나? ===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의 신체는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되고, '갓'은 고려 시대에 올렸다고 가장 널리 알려져 왔었다.[10]
2012년 8월에 선본사와 불교문화연구소는 3D 촬영을 통해 '갓' 또한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 이유는 보상화 무늬는 통일신라 기와 등에 나타나고 있어 '갓'도 통일신라 시기에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11]
하지만, 보상화무늬는 통일신라시대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계속 유행하였으므로,[12] 갓의 정확한 제작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해 보인다.
6. 1. '갓'은 자연석인가?
갓바위의 '갓'은 자연석을 단순 가공해 머리에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갓 윗면에는 보상화(寶相華)가 새겨져 있었다. 보상화는 꽃잎이 5개인 가상의 꽃으로, 불교에서 만다라화라고 부르는 흰색 연꽃이다. 그러므로 돌을 8각형으로 가공하고 보상화 무늬를 새긴 다음 홈을 내어 부처의 머리에 올린 것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되고 사람들이 불을 지르는 등의 훼손을 가해 깔끔한 8각형의 '관(冠)'이 현재의 불규칙한 '갓'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6. 2. '갓'은 언제 올렸나?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의 신체는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되고, '갓'은 고려 시대에 올렸다고 가장 널리 알려져 왔었다.[10]2012년 8월에 선본사와 불교문화연구소는 3D 촬영을 통해 '갓' 또한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 이유는 보상화 무늬는 통일신라 기와 등에 나타나고 있어 '갓'도 통일신라 시기에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11]
하지만, 보상화무늬는 통일신라시대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계속 유행하였으므로,[12] 갓의 정확한 제작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해 보인다.
7. 불상의 종류에 대한 논란
일반적으로 갓바위 부처는 약사여래불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갓바위 불상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 등으로 다르게 불렸다.
=== 제작자에 따른 유추 ===
의현은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갓바위를 조성하였다. 따라서 극락정토에 있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13]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에 따른 유추 ===
수인(手印)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석굴암 본존불의 석가모니불,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의 아미타불과 똑같다.[14] 따라서,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 또는 아미타불 둘 중 하나로 유추할 수 있다.
=== '갓'에 따른 유추 ===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갓(冠)'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미륵불로 유추된다.[15] 고려시대 문화재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에서 볼 수 있듯이 미륵불상은 흔히 관을 쓰고 있다. 그래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가모니불(또는 아미타불)에다가 8각 보관을 고려시대에 씌워서 미륵불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16]
1934년 편찬된 화성지(花城誌)에는 "관봉 석조여래좌상을 관봉 미륵불이라고 불렀고, 이 부처님에게 비를 빌거나 복을 빌면 바로 이루어졌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17]
1930년대까지는 미륵불로 인식하다가 1960년 이후에 약사여래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8]
=== 약합에 따른 유추 ===
1963년 태고종 종정 백암대종사가 미륵불로 불리던 갓바위 불상을 약사여래불로 명명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한 뒤로 약사여래불로 불린다고 한다.[19] 약사여래불로 불린 근거는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합이 있다고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왼손바닥에 있는 것은 약합이 아닌 엄지손가락으로 밝혀졌다.[20]
=== 시대별 갓바위 부처 종류의 변천 ===
통일신라 시대의 갓바위 부처는 아미타불 또는 석가모니불이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미륵불로 불렸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약사여래불로 여겨진다.
7. 1. 제작자에 따른 유추
의현은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갓바위를 조성하였다. 따라서 극락정토에 있는 아미타여래를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13]7. 2.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에 따른 유추
수인(手印)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석굴암 본존불의 석가모니불,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의 아미타불과 똑같다.[14]따라서,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불 또는 아미타불 둘 중 하나로 유추할 수 있다.
7. 3. '갓'에 따른 유추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갓(冠)'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미륵불로 유추된다.[15] 고려시대 문화재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에서 볼 수 있듯이 미륵불상은 흔히 관을 쓰고 있다. 그래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가모니불(또는 아미타불)에다가 8각 보관을 고려시대에 씌워서 미륵불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16]1934년 편찬된 화성지(花城誌)에는 "관봉 석조여래좌상을 관봉 미륵불이라고 불렀고, 이 부처님에게 비를 빌거나 복을 빌면 바로 이루어졌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17]
1930년대까지는 미륵불로 인식하다가 1960년 이후에 약사여래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8]
7. 4. 약합에 따른 유추
1963년 태고종 종정 백암대종사가 미륵불로 불리던 갓바위 불상을 약사여래불로 명명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한 뒤로 약사여래불로 불린다고 한다.[19] 약사여래불로 불린 근거는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합이 있다고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왼손바닥에 있는 것은 약합이 아닌 엄지손가락으로 밝혀졌다.[20]7. 5. 시대별 갓바위 부처 종류의 변천
통일신라 시대의 갓바위 부처는 아미타불 또는 석가모니불이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미륵불로 불렸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약사여래불로 여겨진다.8. 전설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일명 갓바위 부처를 조성할 당시 큰 학이 매일 밤 날아와 갓바위를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갓바위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험한 효험이 있다는 신령스러운 부처 석상으로 알려져 있다.
9. 문화재 지정
1965년 9월 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으로 지정되었다.[21]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21]
10. 교통편
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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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불은 약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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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일보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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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모 쓴 부처 앞… 간절한 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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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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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보시금 많은 연주암·선본사 직영해제…“다시 권승들 사금고 되나”
https://www.hani.co.[...]
한겨레신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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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팔공산갓바위
https://gbgs.go.kr/o[...]
경산시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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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왕위도 버린 로맨스 ‘단짝 불상’…17년 만에 국보
https://www.hani.co.[...]
한계
2022-10-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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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성지 갓바위는 어떤 부처님일까
http://www.bulgyofoc[...]
불교포커스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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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팔공산갓바위
https://gbgs.go.kr/o[...]
경산시
2019-06-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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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성지 갓바위는 어떤 부처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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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포커스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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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 부처…국보 지정 신청할 것”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10-06-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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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대구 팔공산(선본사) 갓바위를 찾아서'
https://www.tnews.kr[...]
주식회사 세계문화정보
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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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부처님 복원자료 마련
https://www.hyunbuln[...]
현대불교신문사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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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동아시아의 유행: 상상의 꽃, 보상화의 이미지와 문양
https://www.kci.go.k[...]
한국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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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효, 그리고 감동 뮤지컬 갓바위
http://www.hyunbulne[...]
현대불
200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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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석굴암 본존불의 도상 문제
http://www.beopbo.co[...]
법보신문사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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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광장] 갓바위 불상에 관한 단상(斷想)'
http://news.imaeil.c[...]
매일신문
2019-04-20
[16]
뉴스
'[탐방] 대구 팔공산(선본사) 갓바위를 찾아서'
http://www.tnews.kr/[...]
티뉴스
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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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기도성지 갓바위는 어떤 부처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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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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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 부처, 미륵·약사신앙의 상징”
https://www.hyunbuln[...]
현대불교신문사
2013-05-30
[19]
웹인용
인향과 법향이 머무는 곳… 대구 관암사(冠巖寺)
https://www.kbmaeil.[...]
경북매일
2020-09-21
[20]
웹인용
'[광장] 갓바위 불상에 관한 단상(斷想)'
http://news.imaeil.c[...]
매일신문
201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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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0-89호(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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