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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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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의 불교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과 관련된 기록과 여러 학설, 고고학적 증거를 다룬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중국 승려 담시가 395년경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했다는 설이 유력하며, 372년에 순도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구려 불상 자료는 중국, 북한, 한국에서 발견되었으며, 5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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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불교
고구려의 불교
한국어고구려의 불교
문화관광부 2000년식 로마자 표기Goguryeoui Bulgyo

2. 기록

고구려에 불교가 언제 전래되었는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혜교의 『고승전』과 최치원의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기록에서는 모두 동진의 승려 담시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래하였다고 전하고 있다.[1]

2. 1. 고승전

혜교가 저술한 『고승전』에는 "석담시는 관중 사람이다. 출가한 이후 많은 기이한 행적이 있었다. 효무제의 태원 연간 말에 경률 수십 부를 가지고 요동으로 가서 교화하고, 삼승을 드러내 가르치고 계를 세웠다. 고구려에서 불교를 들은 것이 시작이다. 의희 초에 다시 관중으로 돌아와 삼보를 개도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1]

최치원이 저술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에는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과정을 서술하는 가운데 "옛날, 이 동쪽(고구려)에 鼎峙(정치)의 가을이 나타났고, 백제에 소도의 의식이 있었으니, 감천의 금인의 제사와 같았다. 그 후 서진의 담시가 고구려에 불교를 시작하니, 섭등이 동쪽으로 들어오는 것과 같고, 고구려의 아도에게 건너가는 것은 강회가 남쪽으로 가는 것과 같았다"라고 기록하여, 서역 승려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중국에 불교를 전래한 것과 마찬가지로 담시에 의해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최치원은 담시의 시대를 서진으로 잘못 언급하고 있다)[1]

2. 2.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최치원이 저술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에서는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과정을 서술하면서, "옛날 이 동쪽(고구려)에 鼎峙(정치)의 가을이 나타났고, 백제에 소도의 의식이 있었으니, 감천의 금인의 제사와 같았다. 그 후 서진의 담시가 고구려에 불교를 시작하니, 섭등이 동쪽으로 들어오는 것과 같고, 고구려의 아도에게 건너가는 것은 강회가 남쪽으로 가는 것과 같았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다만, 최치원은 담시의 시대를 서진으로 잘못 언급하고 있다.[1]

3. 전래 시기에 대한 여러 학설

고구려에 불교가 언제 전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며,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1]

한국과 중국의 사료에는 고구려 불교 전래 시기에 대한 여러 기록이 남아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양나라 혜교가 저술한 『고승전』으로, 승려 담시동진 효무제 태원 연간 말에 요동으로 가서 불교를 전파했다는 내용이 있다.[1] 한국 사료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최치원이 저술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로, 담시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래했다고 언급하고 있다.[1]

3. 1. 372년 전래설 (삼국사기)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372년 중국 전진승려 순도에 의해 불교가 고구려에 전래되었다.[1]

3. 2. 357년 이전 전래설 (동수묘 연화문)

동수묘에 그려진 연화문을 통해, 357년 이전인 4세기 중엽에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설이 있다.[1]

3. 3. 366년 이전 전래설 (고승전)

혜교가 찬술한 『고승전』에는 지둔(314년 - 366년)이 고려도인에게 보낸 「여고려도인서」가 인용되어 있다.[1] 이 기록에서 고려도인을 고구려의 불교도로 보고, 366년 이전에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설이 있다.[1]

3. 4. 395년 전래설 (고승전,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혜교의 『고승전』에는 승려 담시동진 효무제 태원 연간 말(395년)에 경률 수십 부를 가지고 요동으로 가서 가르침을 폈다는 기록이 있다.[1] 최치원의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는 담시가 고구려에 불교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중국에 불교를 전래한 것과 비견된다. 다만, 최치원은 담시의 시대를 서진으로 잘못 기록했다.[1]

3. 5. 390년 ~ 396년 전래설 (고고학적 자료)

혜교의 『고승전』, 최치원의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고구려 불상 자료 등을 종합하면, 동진 태원 말기(390년 - 396년)에 중국 후진의 승려 담시(曇始)에 의해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1]。 담시는 관중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요서를 거쳐 요동반도를 통해 고구려에 들어왔다[1]

고구려 불상 자료는 중국, 북한, 한국에서 모두 발견되었으며, 1985년 중국 연구자가 국내성에서 금동불을 발견했다. 북한에서 발견된 불상 자료 일부는 1945년 이전 일본인 연구자에 의한 고구려 불사 발굴 출토품이며, 한국에서 발견된 고구려 불상 대부분은 채집품이다[1]

고구려 불상 자료의 연대는 서울 뚝섬에서 발견된 뚝섬 금동불상을 제외하고는 5세기 초를 넘지 않는다. 이유군은 뚝섬 금동불이 5세기 초 중국 동북부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김원룡도 뚝섬 금동불이 중국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1]。 그러나 뚝섬 금동불 출토지 주변에는 백제묘제・유적이 있고, 고구려 유적・유물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뚝섬 금동불은 고구려 불상이 아니다[1]

4. 고고학적 증거

고구려의 불상 자료는 중국, 북한, 한국에서 모두 발견되었으며, 1985년에 중국인 연구자는 국내성에서 금동불을 발견했다. 북한에서 발견된 불상 자료의 일부는 1945년 이전 일본인 연구자에 의한 고구려 불사 발굴의 출토품이며, 한국에서 발견된 고구려 불상의 대부분은 채집품이다[1]。고구려 불상 자료의 연대는 서울 뚝섬에서 발견된 뚝섬 금동불상을 제외하고는 5세기 초를 넘지 않지만, 이유군은 뚝섬 금동불은 5세기 초에 중국 동북부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김원룡도 뚝섬 금동불은 중국에서 수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1]。그러나 뚝섬 금동불의 출토지 주변에는 모두 백제묘제・유적이 위치하고 있으며, 고구려 유적・유물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뚝섬 금동불은 고구려 불상이 아니다[1]

참조

[1] 서적 三燕高句麗蓮華文瓦当の出現およびその関係 奈良文化財研究所 2020-03-27
[2] 백과사전 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불교 > 한국의 불교〔서설〕 > 불교의 전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3] 백과사전 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불교 > 한국의 불교〔서설〕 > 삼국시대의 불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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