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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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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불교는 5교9산과 5교양종으로 대표되며, 신라 원효 이후 11개의 교파가 6종으로 정리되었다. 의천은 교종과 선종의 융합을 시도했고, 지눌은 선의 입장에서 선과 교의 일치를 주장하며 천태종과 조계종 양종의 선풍을 이루었다. 고려 시대에는 승과 제도를 통해 승려를 등용했고, 사찰은 의료 활동, 농업 지원, 숙박 시설 제공 등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사찰이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며 대지주 역할을 하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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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불교

2. 역사와 종파

고려 시대 불교는 크게 5교9산(五敎九山)과 5교양종(五敎兩宗)으로 나뉜다. 5교9산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5교양종은 고려 중기 이후 천태종조계종을 중심으로 한 불교 종파 체제를 의미한다. 대각국사 의천은 교종과 선종의 융합을 추구했지만 교종의 입장을 유지했고, 보조국사 지눌은 선의 입장에서 선과 교의 일치를 주장하여 천태종조계종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1]

2. 1. 초기 종파 (5교9산)

신라 원효 이후 불교 교파는 11종이 전해졌으나, 고려 시대에 와서 6종으로 정리되었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세워진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의 묘지(墓誌)에는 계율종, 법상종, 열반종, 법성종, 원융종, 선적종이 기록되어 있다. 선적종은 선종이라고도 불리며, 여러 분파로 나뉘기도 했다.

선종은 신라 후기에 20여 개의 선파(禪派)가 생겨났는데,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9산(九山)으로 정리되었다. 9산은 가지산도의 선사, 실상산의 홍척 선사, 사굴산의 범일 선사, 사자산의 철갑선사, 희양산의 진감 선사, 봉림산의 현욱 선사, 수미산의 이엄 선사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이 당시의 불교 종파를 통칭하여 6종 혹은 5교9산이라 하였다.[1]

2. 2. 5교양종의 성립

신라 원효 이후 11개의 불교 교파가 있었으나, 고려 시대에 들어서 6개 종파로 통합되었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세워진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의 묘지에는 계율종, 법상종, 열반종, 법성종, 원융종, 선적종(선종)의 6종이 기록되어 있다.[1]

선종은 신라 후기에 20여 개의 선파(禪派)가 생겨났으나,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9산으로 정리되었다. 9산은 가지산도의 선사, 실상산의 홍척 선사, 사굴산의 범일 선사, 사자산의 철갑선사, 희양산의 진감 선사, 봉림산의 현욱 선사, 수미산의 이엄 선사 등을 말한다. 당시에는 이들을 통칭하여 6종 혹은 5교9산이라 불렀다.[1]

이후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5교9산은 5교양종으로 변화하였다. 5교양종은 고려 원종(1206)부터 조선 태종(1418) 때까지의 각 종파를 총칭하는 것으로, 사실상 7종이 성립된 시기였다. 의천이 송나라에서 귀국한 후, 중국에서 교종의 한 종파였던 천태종이 한국에서는 선종에 가까운 불교로 성립되었다. 이에 따라 5교도 명칭이 변경되었다.[1]

대각국사 의천은 교종과 선종의 융합을 추구하면서도 교종의 입장을 견지하였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선의 입장에서 선과 교의 일치를 주장하여, 이 두 사상이 천태종조계종 양종의 대조적인 선풍을 이루게 되었다.[1]

2. 3. 교종과 선종의 융합

신라 원효 이후의 불교 교파는 11종이 전해졌으나, 서로 융합하다가 고려 시대에 와서 계율종(戒律宗)·법상종(法相宗)·열반종(涅槃宗)·법성종(法性宗)·원융종(圓融宗)·선적종(禪寂宗)의 6종으로 정리되었다.[1] 이 중 선적종을 선종(禪宗)이라 하여 다시 여러 분파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였다.

선종은 신라 후기에 20여 개 선파(禪派)가 개창되었는데 신라 시대 말기와 고려 시대 초기에 9산(九山)으로 정리되었다. 9산은 가지산(迦智山)의 도의(道義) 선사, 실상산(實相山)의 홍척 선사, 사굴산의 범일 선사, 사자산(獅子山)의 철갑선사, 희양산(曦陽山)의 진감 선사, 봉림산(鳳林山)의 현욱 선사, 수미산(須彌山)의 이엄 선사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이 당시의 불교 종파를 통칭하여 6종(六宗) 혹은 5교9산(五敎九山)이라 하였다.

그 후 대각국사 의천 이후에는 5교9산이 5교양종(五敎兩宗)으로 바뀌었다. 의천송(宋)나라에 다녀온 후 중국에서는 교종(敎宗)의 한 종파였던 천태종(天台宗)이 우리나라에서는 선종(禪宗)에 가까운 불교로 성립되었다.[1]

대각국사 의천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을 융합하되 교종의 입장을 떠나지 아니하였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는 (禪)의 입장에서 선과 교의 일치를 제창함으로써 이 두 사상이 천태종조계종 양종(兩宗)의 대조적 선풍을 이루게 되었다.[1]

3. 승려 제도

광종은 승려들의 등용문으로 승과(僧科)를 설치하였다. 승과 합격자는 대선(大選)을 시작으로 대덕, 대사, 중대사, 삼중대사의 법계로 승진했다. 삼중대사 이상은 교종과 선종이 달랐는데, 교종은 수좌와 승통, 선종은 선사와 대선사로 승진했다. 덕이 높은 승려는 왕사나 국사가 되었는데, 국사가 왕사보다 높았다.

고려 원 간섭기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대처승이 많았다는 주장이 있으나,[2]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3]

3. 1. 승과 제도

광종은 일반 과거 제도와 함께 승과(僧科)를 설치하여 승려들의 등용문을 마련하였다. 교종과거인 교종선(敎宗選)은 개성에 있던 교종의 총본산인 삼륜사(三輪寺)에서 실시되었고, 선종과거인 선종선은 개성에 있던 선종의 총본산인 광명사(廣明寺)에서 실시되었다. 승과에 합격한 자에게는 교종과 선종에 관계없이 대선(大選)이라는 첫 단계의 법계(法階)가 주어졌다. 이로부터 대덕(大德: 주지의 자격이 있음), 대사(大師), 중대사(中大師), 삼중대사(三中大師)의 법계로 차례로 승진하였다. 삼중대사 이상의 법계는 교종선종이 각각 달랐는데, 교종의 경우 수좌(首座)와 승통(承統)으로 승진하였고, 선종의 경우 선사(禪師)와 대선사(大禪師)로 승진하였다. 특히 덕이 높은 승려에게 왕사(王師)와 국사(國師)의 법계를 주었는데, 이들은 승통이나 대선사의 상위에 위치하였다. 나라의 스승(사표, 師表)인 국사는 임금 한 사람의 스승인 왕사보다 높았다.

고려의 원 간섭기에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승려의 절반(1/2)이 대처승이었다는 주장이 있으나,[2] 이를 주장한 자현의 논문을 보면 단순히 원 간섭기와 고려에 대처승이 많았던 시기가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이라고 단정짓고 있어 근거 보완이 필요하다.[3]

3. 2. 티베트 불교의 영향 (논란)

고려 원 간섭기에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승려의 절반이 대처승이었다는 주장이 있다.[2] 그러나 이를 주장한 자현의 논문은 원 간섭기와 고려에 대처승이 많았던 시기가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이라고 단정짓고 있어 근거 보완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있다.[3]

4. 주요 인물

고려 불교의 주요 인물로는 의천, 지눌, 보우가 있다. 의천은 교관겸수를 주창하고 천태종을 일으켰으며, 지눌조계종을 창립하고 돈오점수, 정혜쌍수 등을 제창하여 한국의 독자적 선 사상을 개발하였다. 보우는 9산선종을 통합하였다.

고려 말에는 보우를 비롯하여 혜근, 무학 같은 고승도 나타났으나, 불교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 파쟁이 심했다.[1]

4. 1. 의천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의 넷째 아들로, 출가하여 송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돌아와 불경을 간행하고 선(禪)과 교(敎)가 각기 한쪽에 치우치는 폐단을 시정하여 교관겸수(敎觀兼修) 사상을 주창하고 천태종(天台宗)을 일으켰다.[4] 의천의 사상은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을 융통하되 교종의 입장을 떠나지 아니한 경우였다.[4]

4. 2. 지눌 (보조국사)

지눌은 구산의 선문(禪門)을 통합하여 조계종을 창립하고 돈오점수, 정혜쌍수, 무심합도를 제창하여 선문에 독특한 경지를 개척하고 한국의 독자적 선(禪) 사상을 개발하였다. 그 후 혜심, 진각 등 16국사(國師)가 뒤를 이었다.

4. 3. 보우 (태고)

고려 말, 태고보우는 9산선종을 통합하였으며, 이 점에서 이후 선계의 모든 스님들은 태고에 맥을 댔었다.[1] 이후의 사계(嗣系) 문제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1]

5. 사회적 기능

고려시대 사찰에서는 백성들을 위한 의료 활동과 농업 지원을 하였다.[4] 사찰에서는 원(院)을 운영하며 백성들을 구휼하고 치료하였으며,[4] 농민들에게 농업용 와 종자를 대여하기도 하였다.[5] 또한 불교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을 꺼려 개고기를 멀리했다는 것이 통설이다.[6]

5. 1. 의료 활동

고려 시대에는 의원이 되는 방법으로 국가가 주관하는 과거 시험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도제식 교육이었다.[4] 특히 불교 사찰은 의술 도제 교육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었다.[4] 많은 사찰에서는 원(院)을 운영하며 백성들을 구휼하고 치료했는데,[4] 이 원(院)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숙박이었다.[4]

5. 2. 농업 지원

사원은 농업용 와 종자를 소유하고 농민들에게 대여하여 농사에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5]

5. 3. 음식 문화

불교 전통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을 극히 꺼려하여, 고려시대는 개고기를 멀리했다는 것이 통설이다.[6]

5. 4. 역기능

고려 시대 불교는 많은 토지와 노비(奴婢)를 소유하며 대지주처럼 행세하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참조

[1] 백과사전 한국사 > 중세 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무인시대의 문화 > 5교 양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웹인용 대처엔 정화, 파계는 뭘로 대처? http://www.bulkyo21.[...] 불교닷컴 2014-04-18
[3] 논문 指空의 戒律觀과 티베트불교와의 충돌양상 고찰
[4] 뉴스 '[성보유전] 4. 숙박·의료 담당한 사찰들' http://www.hyunbulne[...] 현대불교신문 2020-02-21
[5] 웹인용 고려시대의 사원경제와 한국불교의 과제 https://web.archive.[...] 불교평론 2020-04-19
[6] 웹인용 불교와 보신탕 https://web.archive.[...] 법보신문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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