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용
1. 개요
김웅용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여 5세에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미분 방정식 문제를 풀었으며, 2세에 5개 국어를 구사하고 미적분학 문제를 풀었다고 알려졌다. 콜로라도 대학교 졸업 및 NASA 연구원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후 충북대학교에서 토목 공학을 전공하고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에는 '실패한 천재'라는 평가에 대해 자신의 행복을 강조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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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토목공학자 -
선우중호
대한민국의 토목공학자이자 교육자인 선우중호는 서울대학교, 명지대학교, 광주과학기술원 총장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 총장 재임 시절 총장 직선제 폐지 강행과 평화의 댐 건설 관련 논란이 있었다. -
대한민국의 토목공학자 -
이청 (1936년)
이청은 1936년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이우의 후계자였으나 작위를 잃고 평민이 되었으며, 운현궁을 소유하고 미국에서 토목공학 학위를 받은 후 연세대 강사, 서울시립대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문화재 보존에 기여했다. -
신한대학교 교수 -
이범수
이범수는 1990년 영화 데뷔 후 영화 《싱글즈》,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온에어》, 《자이언트》, 최근 영화 《범죄도시 3, 4》,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신한대학교 교수 -
김종환 (가수)
김종환은 1985년 데뷔하여 여러 음반을 발표하고 골든 디스크 어워즈 인기상 등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
충북대학교 대학원 동문 -
신장식
신장식은 대한민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 방송인으로, 진보신당과 정의당에서 활동했으며 조국혁신당에 합류하여 제22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TBS FM과 MBC 표준FM에서 시사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
충북대학교 대학원 동문 -
윤용남
윤용남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육군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쳐 5군단장, 3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제27대 합동참모의장까지 오른 인물이며, 학문에도 힘쓴 군인이다.
2. 생애
김웅용은 1962년 3월 8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수선은 건국대학교 물리학 교수였고, 어머니 유영현은 교사였다.
김웅용은 한 살 때 이미 한글과 1,000개의 한자를 천자문을 통해 익혔고, 세 살 때 미적분학 문제를 풀었다. 247페이지 분량의 에세이, 영어 및 독일어 서예 및 삽화로 엮은 책을 출판했으며, 두 살 때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를 구사했다.
2.1. 유년 시절 및 교육
김웅용은 1962년 3월 8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수선은 건국대학교 물리학 교수였고, 어머니 유영현은 교사였다. 유영현에 따르면, 김웅용은 한 살 때 이미 한글과 1,000개의 한자를 천자문을 공부하여 익혔다.
세 살 때 미적분학 문제를 풀 수 있었고, 247페이지 분량의 에세이, 영어 및 독일어, 서예 및 삽화로 엮은 책을 출판했다. 두 살 때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5세에 일본 후지 TV에 출연하여 미분 방정식을 풀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후 다시 일본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복잡한 미분 및 적분 문제를 풀었다. 그는 나중에 그 경험을 회상했다.
> 나는 정말 외로웠다. 아무도 나와 친구가 되려 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는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즐길 수 있었지만, 아무도 함께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왔고 어렸기 때문에, 모두가 어른인데도 아이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2.2. 학력 논란 및 진실
김웅용의 아버지는 그가 콜로라도 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하고 나사의 연구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콜로라도 대학교에 문의한 결과, 김웅용이라는 학생은 학교를 다닌 적도, 졸업한 적도 없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또한 김웅용이 한국을 떠난 출입국 기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아버지는 거짓말을 했음을 인정했다.
김웅용은 검정고시를 치렀으나, 낮은 점수를 받고 간신히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8세에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핵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갔다고 알려졌으나, 대학 입학 시험 적성 검사 당시 그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그가 후지 TV 쇼 촬영을 위해 일본에 간 것이 "그가 유일하게 해외에 나간 경험"이며, 미국에서의 철학 박사 및 석사 학위 과정에 대한 정보는 "언론의 헛소리"라고 밝혔다. 김웅용의 어머니는 "잠시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수업을 청강하기 위해 떠났지만", 시설이 김웅용의 천재성을 "충족시키지 못해" 즉시 귀국했으며, 이후 대학 입학 시험 때까지 홈스쿨링을 했다고 밝혔다.
2.3. 충북대학교 및 이후의 삶
1981년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국립대학교인 충북대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전공을 물리학에서 토목공학으로 바꾼 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충북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3월 14일에는 신한대학교 부교수가 되었으며, 북경기개발연구센터 부센터장을 맡았다.
2010년, 김웅용은 자신이 "실패한 천재"라는 평가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이 꼬리표를 되돌아보며 "나는 지금의 모습에 행복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려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의 행복을 실패라고 부르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높은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이 전지전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를 보라, 나는 음악적 재능도 없고, 스포츠에도 뛰어나지 않다. [...] 사회는 단일한 기준으로 누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학습 수준, 희망, 재능, 꿈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3. 학력
김웅용은 8세에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핵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학 입학 시험 적성 검사 당시 그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그가 후지 TV 쇼 촬영을 위해 일본에 간 것이 "그가 유일하게 해외에 나간 경험"이며, 미국에서의 철학 박사 및 석사 학위 과정에 대한 정보는 "언론의 헛소리"라고 밝혔다. 김웅용이 전혀 출국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김웅용의 어머니가 "잠시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수업을 청강하기 위해 떠났지만", 시설이 김웅용의 천재성을 "충족시키지 못해" 즉시 귀국했으며, 이후 대학 입학 시험 때까지 홈스쿨링을 했다고 밝힌 발언에 의해 약간 수정되었다.
3.1. 정규 학력
3.2. 검정고시
김웅용은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후,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했다. 그는 중학교 및 고등학교 입학 자격과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