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루드
1. 개요
님루드는 고대 아시리아의 도시로, 기원전 13세기 살만에세르 1세에 의해 건설되어 아슈르나시르팔 2세 시대에 수도로 번영했다. 주요 유적으로는 여러 궁전과 신전, 지구라트 등이 있으며, 아시리아 조각의 보고로서 라마수, 부조, 상아 조각 등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님루드는 7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으나, 사르곤 2세의 두르-샤루킨 천도와 센나케리브의 니네베 천도 이후 수도의 지위를 잃고 기원전 612년 신바빌로니아와 메디아 연합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2014년 ISIL 점령 이후 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복원 노력이 진행 중이다.
| 다른 이름 | 칼라, 칼라흐, 칼후 |
|---|---|
| 위치 | 이라크 니나와주 누마네아 |
| 지역 | 메소포타미아 |
| 종류 | 도시 |
| 면적 | 3.6km2 |
| 위치 | 티그리스강과 대자브강의 합류 지점 북쪽 티그리스강 동쪽 제방 |
|---|---|
| 거리 | 살라미야에서 남쪽으로 약 20마일 (32km) 모술에서 남쪽으로 약 3마일 (4.8km) |
| 건설 | 아슈르나시르팔 2세 |
|---|---|
| 파괴 | 2015년 ISIL에 의해 상당 부분 파괴됨 |
| 발굴 | 시작 |
|---|---|
| 고고학자 |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 막스 말로완 데이비드 오츠 조안 오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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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와주 -
니네베
니네베는 현재의 이라크 모술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 도시이자 신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수도로, 기원전 6000년경 건설되어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나 기원전 612년 파괴된 후 쇠퇴하여 현재는 유적으로 남아있다. -
니나와주 -
탈아파르
탈 아파르는 이라크 북서부 니네베 주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일부였으며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거쳐 이라크에 편입, 종파 갈등과 ISIL 점령을 겪은 후 2017년 이라크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
이슬람 국가 (단체)가 파괴한 건축물 -
아수르
아수르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고대 도시이자 국가, 수호신 이름이며 아시리아 문명의 발상지로 종교적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
이슬람 국가 (단체)가 파괴한 건축물 -
바알샤민 신전
바알샤민 신전은 고대 도시 팔미라에 위치한 신전으로 셈족의 하늘 신 바알샤민에게 봉헌되었으며, 고대 시리아와 로마 건축 양식이 융합된 건축 양식을 보여주었으나 ISIL에 의해 파괴되어 유네스코에 의해 전쟁 범죄로 규정되었고, 현재 디지털 기록 구축 및 재건 계획이 논의 중이다. -
아시리아 -
아시리아력
아시리아력은 아시리아인들이 사용하는 달력으로, 기원전 4750년을 원년으로 하여 12개의 달로 구성되며, 봄의 시작인 니산월 1일에 새해를 시작하고 윤달을 사용한다. -
아시리아 -
마르딘
마르딘은 터키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마르딘 주의 중심지로,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아 다양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으며, 다양한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여 '야외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2. 역사
기원전 13세기 아시리아의 왕 살만에세르 1세는 수도 아수르 북쪽의 칼후에 왕궁을 건설했다. 칼후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수도로 삼았던 기원전 9세기에 번영했다. 그는 거대한 궁전과 신전을 건설했는데, 이는 센나케리브가 건설한 니네베 궁전 유적과 함께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아시리아 궁전 유적이다.
기원전 879년 낙성식과 연회는 석비에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수도에는 수만 명이 살았고, 식물원과 동물원도 있었다. 살만에세르 3세는 거대한 지구라트, 신전, 요새 등을 건설했다.
칼후는 기원전 710년경까지 아시리아의 수도였다. 이후 사르곤 2세가 두르-샤루킨으로, 센나케리브가 니네베로 천도하면서 수도는 아니었지만, 왕궁이 있는 대도시였다. 기원전 612년 신바빌로니아와 메디아 왕국에 의해 니네베가 함락될 때 칼후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님루드라는 유적 명칭은 1766년 독일 탐험가 카르스텐 니부어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2.1. 초기 역사 (기원전 13세기 - 기원전 9세기)
살만에세르 1세(기원전 1274년 ~ 기원전 1245년)는 아수르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칼후에 두 번째 왕궁을 건설했다. 칼후는 번성한 무역로에 위치해 있었으며, 초기 상업 공동체에 의해 건설되었다가 수 세기 동안 쇠퇴하였다. 이후 기원전 13세기에 아시리아 왕 살만에세르 1세가 칼후를 건설하였다.
기원전 9세기에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수도로 삼으면서 칼후의 번영과 명성이 절정에 달했다. 그는 초기의 도시 폐허 위에 거대한 궁전과 신전을 건설했다. 이 궁전 유적은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아시리아 궁전 유적이며, 그 외에는 센나케리브가 건설한 니네베 궁전 유적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기원전 879년에 거행된 성대한 낙성식과 연회의 모습은 고고학 조사 도중에 발굴된 석비에 새겨져 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수도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 시내에는 진귀한 동식물을 모은 식물원과 동물원도 개설되었다. 그의 아들 살만에세르 3세(재위: 기원전 858년 - 기원전 824년)는 거대한 지구라트, 신전, 살만에세르 요새라고 불리는 요새 등을 건설했다.
기원전 883년부터 기원전 859년까지 아시리아를 통치한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칼후에 새로운 궁전과 수도로서의 기능을 추가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도시와 대궁전을 둘러싼 8km 길이의 성벽 건설에 종사했다. 석회암에 새겨진 석비가 유적 각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그로부터 그의 치세와 궁전, 정복 사업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것도 있다. "나의 왕의 거처와 나의 주님의 모든 시간의 기쁨을 위해, 히말라야시다, 노송나무, 노간주나무, 황양목, 뽕나무, 피스타치오, 갯버들로 만든 궁전, 나는 여기에 세운다. 흰 석회암과 앨러배스터로 만든 산과 바다의 짐승들, 나는 그것들을 만들어 문에 놓는다." 또한 비문에는 궁전에 축적된 전리품, 약탈품에 대한 내용도 쓰여져 있다. "은, 금, 납, 구리와 철, 나의 지배하에 둔 땅에서 나의 손에 들어온 전리품, 나는 많은 것을 얻어 여기에 바친다." 그 외에도 정복을 축하하는 축연 등의 일도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많은 곳에서 두려움을 샀다. "나는 포로들을 빼앗아 그 중 많은 사람들을 불 속에서 태웠다. 살려둔 자들 중 얼마는 손목을 잘라내게 했다. 나머지 자들에게는 코, 귀, 손가락을 잘라내게 했다. 병사들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는 눈을 뺐다. 그들의 젊은이, 딸, 아이들을 태워 죽였다." 다른 도시의 정복에 즈음한 축연에 대해 그는 비문에 이렇게 썼다. "반항한 귀족들의 피부를 나는 벗겨, 그들의 피부를 펼쳐 쌓아올렸다." 이러한 공포를 주는 전술과 선전은 각지의 정복에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기원전 877년에는 마침내 지중해까지 진군하여, 그 후 이렇게 포고했다. "나는 무기를 깊은 바다에서 정화하고, 신들에게 양을 바쳤다."
2.2.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기원전 9세기 - 기원전 8세기)
기원전 9세기,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님루드를 아시리아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삼고 대대적인 건설 사업을 벌였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이전 도시의 폐허 위에 거대한 궁전과 신전을 건설하고, 도시를 둘러싼 8km 길이의 성벽을 쌓았다. 그는 도시 내에 식물원과 동물원을 조성하여 제국의 위엄을 과시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석비가 있었다. "나의 왕의 거처와 나의 주님의 모든 시간의 기쁨을 위해, 히말라야시다, 노송나무, 노간주나무, 황양목, 뽕나무, 피스타치오, 갯버들로 만든 궁전, 나는 여기에 세운다. 흰 석회암과 앨러배스터로 만든 산과 바다의 짐승들, 나는 그것들을 만들어 문에 놓는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아들 살만에세르 3세(재위: 기원전 858년 - 기원전 824년)도 님루드에 아버지의 궁전보다 더 큰 궁전을 짓고, 대 지구라트와 신전을 건설했다. 님루드의 살만에세르 3세 궁전은 크기가 아버지 궁전의 두 배였으며, 면적은 49000m2였고, 방의 수는 200개가 넘었다.
님루드는 샴시-아다드 5세(기원전 822–811년), 아다드-니라리 3세(기원전 810–782년), 여왕 세미라미스(기원전 810–806년), 살마네세르 4세(기원전 782–773년), 아슈르-단 3세(기원전 772–755년), 아슈르-니라리 5세(기원전 754–746년),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기원전 745–727년) 및 살마네세르 5세(기원전 726–723년)의 통치 기간 동안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로 번영했다. 특히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는 님루드에서 대규모 건축 공사를 수행하고, 제국의 동부 아람어(Eastern Aramaic)를 공용어로 도입했다.
2.3. 쇠퇴와 파괴 (기원전 8세기 이후)
기원전 706년 사르곤 2세(재위: 기원전 722년 ~ 기원전 705년)가 수도를 두르-샤루킨으로 옮기면서 님루드는 수도의 지위를 잃었다. 이후 센나케리브(재위: 기원전 705년 ~ 기원전 681년)가 수도를 니네베로 옮기면서 님루드의 중요성은 더욱 감소했다.
기원전 612년, 신바빌로니아와 메디아 왕국 연합군에 의해 니네베가 함락될 때 님루드도 함께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님루드는 이후 폐허로 남아 있다가, 5세기경 크세노폰의 저서 《아나바시스》에서 "라리사"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다. 중세 시대 아랍 지리학자들은 님루드 근처 지역을 "아투르"(아시리아를 의미)라고 불렀다.
3. 고고학적 발굴
님루드 유적은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의 초기 발굴 이후, 여러 고고학자들이 님루드에서 발굴을 진행했다.
발굴을 통해 부조, 상아 조각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상은 매우 훌륭한 보존 상태로 발견되었다. 궁전 입구에는 약 9071.85kg에서 약 27215.55kg에 달하는 거대한 인두익수(라마수)가 두 쌍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다수 발견되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남긴 궁전 비문은 그와 그의 치세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며, 이는 동시대 다른 군주들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닌우르타 신과 엔릴 신의 신전, 서기관과 예술의 신 나부에게 바쳐진 건물, 대규모 요새 등도 발견되었다.
1846년 레이어드는 살마네세르 3세의 "흑색 오벨리스크"를 발견했다. 이 기념물은 높이가 197.85cm에 달하며, 기원전 859년부터 기원전 824년까지의 성공적인 원정을 기념한다. 꼭대기 부분은 지구라트와 같은 형태이며, 부조 중 한 면에는 예후가 이끄는 이스라엘인 집단이 살마네세르 3세 앞에서 엎드려 술을 땅에 붓고 그의 개인 신에게 제사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설형 문자로 "오므리의 아들 예후"라고 쓰여 있으며, 금, 은, 납, 화살 등의 공물에 대한 상세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
레이어드는 10쌍에 가까운 인두익수를 발견하고, 그중 약 9071.85kg 무게의 조각 2쌍을 1847년 런던으로 가져갔다. 특수 제작된 부선과 화물을 준비하고 18개월에 걸친 운송 끝에 대영 박물관에 성공적으로 반입했다. 1853년 폴 에밀 보타는 약 27215.55kg 무게의 조각을 코르사바드에서 파리로 운송했다. 1928년에는 에드워드 키에라(Edward Chiera)가 약 36287.40kg의 거상을 시카고로 운송했다.
님루드에 있는 유물은 이라크의 혹독한 기후에 노출되어 위기에 처해있다. 유물을 보호하는 건물이 없고, 비석 등은 풍우에 침식되고 있다.
3.1. 초기 발굴 (19세기)
1845년부터 1851년까지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가 님루드를 처음 발굴하여 거대한 궁전 터, 석상, 설화 석고 및 석회암 비석, 상아 조각 등을 발견했다. 레이어드는 이 유적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니네베 시의 일부로 추정했다. 칼후(님루드)의 초기 비문에 이 도시를 "니네베"라고 칭하고 있어, 레이어드가 님루드를 니네베로 잘못 추정했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저서 "니네베와 그 유적"(Nineveh And Its Remains, 1849년) 및 "니네베의 기념물"(The Monuments of Nineveh, 1849년-1853년)은 님루드 유적에 관한 것이다.
레이어드의 조수였던 아시리아인호르무즈 라삼이 1853-54년, 1877-79년에 발굴을 이어갔다. 윌리엄 로프터스는 1854-55년에 발굴에 참여했고, 조지 스미스는 1873년에 님루드에서 잠시 발굴 작업을 수행했다.
3.2. 20세기 이후 발굴
1949년, 맥스 맬로원이 이끄는 이라크 고고학 영국 학교 팀이 님루드 발굴을 재개하여 244개의 님루드 서한을 발견했다. 이 작업은 1963년까지 이어졌으며, 1958년에 데이비드 오츠, 1963년에 줄리안 오차드(Julian Orchard)가 각각 책임자가 되었다.
그 후 이라크 공화국 고대 유물 관리국(1956, 1959–60, 1969–78, 1982–92), 바르샤바 대학교 폴란드 지중해 고고학 센터의 야누스 메우진스키(Janusz Meuszyński)가 지휘한 팀 (1974–76), 토리노 고고학 연구 및 발굴 센터의 파올로 피오리나(Paolo Fiorina, 1987–89), 존 커티스(John Curtis, 1989)가 발굴 작업을 수행했다.
발굴 결과 부조, 상아 조각, 조각품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조각상과 궁전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게 약 9071.85kg에서 약 27215.55kg에 달하는 거대한 인두익수(날개 달린 사람 머리 사자상)가 발견되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 살만에세르 3세,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의 궁전이 발견되었고, 닌타와 엔릴의 신전, 글쓰기와 예술의 신 나부에게 바쳐진 건물, 그리고 광범위한 요새도 확인되었다.
1988년, 이라크 고대 유물 관리국은 이 유적에서 4개의 여왕 무덤을 발견했다.
4. 주요 유적 및 유물
님루드는 아시리아 조각의 주요 공급원 중 하나로, 유명한 궁전 부조를 포함한다.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는 궁전 입구와 출입구를 지키는 6쌍 이상의 거대한 수호신상 라마수를 발견했다. 라마수는 남성 인물 머리, 사자 또는 황소 몸통, 날개를 가진 조각상이다. 머리는 둥글게 조각되었지만, 측면 몸통은 부조로 되어 있다. 무게는 최대 약 27215.55kg까지 나간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조상 샴시-아다드 5세의 석비와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석비는 이 군주들의 초상화가 담긴 대형 조각품으로, 레이어드와 호르무즈드 라삼에 의해 대영 박물관에 보존되었다. 대영 박물관에는 1846년 레이어드가 발견한 살만에세르 3세의 흑색 오벨리스크도 있다.
궁전에서 제거된 독특한 아시리아 얕은 부조 시리즈는 현재 여러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사냥, 전쟁, 의식, 행렬 장면을 보여준다. 님루드 상아는 원래 가구 등을 장식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상아 조각품으로, 고대 근동 여러 지역에서 님루드로 가져와 궁전 창고 등에 보관되었다. 주로 대영 박물관과 이라크 국립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또 다른 창고에는 약 120개의 대형 청동 그릇(님루드 그릇)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수입된 것이다.
발굴된 "님루드 보물"은 613점의 금 장신구와 보석 컬렉션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혼란과 이라크의 고고학적 약탈을 겪었지만, 12년 동안 보관되었던 은행 금고에서 살아남아 2003년 6월 5일에 "재발견"되었다.
4.1. 건축물
님루드에는 여러 건축물이 있었다.
| 종류 | 내용 |
|---|---|
| 궁전 | |
| 신전 | |
| 지구라트 | |
| 요새 | |
| 기타 |
4.2. 주요 유물
님루드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은 다음과 같다.
* 라마수: 궁전 입구를 지키던 거대한 인두익수 조각상으로, 님루드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이다. 남성 인물 머리에 사자 또는 황소 몸통,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는 둥글게 조각되었고 측면 몸통은 부조로 되어 있다. 무게는 최대 약 27215.55kg에 달한다. 1847년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는 각 약 9071.85kg 무게의 사자상 1점과 황소상 1점을 런던으로 가져왔다.
* 부조: 궁전 벽면을 장식했던 부조들은 아시리아 조각의 정수를 보여준다. 사냥, 전쟁, 의식, 행렬 장면 등을 묘사하고 있으며, 대영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님루드 상아: 고대 근동 각지에서 수입된 상아로 만든 공예품으로, 정교한 조각 기술을 보여준다. 원래 가구 등을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대영 박물관, 이라크 국립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 살만에세르 3세의 흑색 오벨리스크: 살만에세르 3세의 업적을 기록한 기념비로, 높이 197.85cm에 달하며 기원전 859년부터 기원전 824년까지의 왕의 승리 캠페인을 비문과 24개의 부조 패널로 기념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 예후를 언급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 님루드 서한: 님루드에서 발견된 244개의 점토판 문서로, 아시리아 제국의 행정, 외교, 군사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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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SIL에 의한 파괴와 복원 노력
님루드는 [[이슬람 국가](ISIL)](ISIL)에 의해 2014년 점령당한 후, 2015년에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국제적인 공분을 샀다. 님루드의 다양한 기념물들은 이라크의 가혹한 기후에 노출되어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적절한 보호 지붕이 없어 바람에 날리는 모래와 강한 계절성 비로 인해 부조가 침식되기 쉬웠다.
ISIL은 우상 숭배적이거나 비이슬람적이라고 여겨지는 고대 유물을 파괴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모술 박물관의 아카드 기념물을 파괴하고 님루드 유적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ISIL은 망치질, 불도저, 폭발물 등을 동원하여 님루드의 유적을 파괴했다.
2016년 11월, 이라크군이 님루드를 탈환했을 때 도시 발굴 구역의 약 90%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는 이러한 문화 유산 파괴를 전쟁 범죄로 규정했다.
5.1. ISIL의 파괴 행위
2014년 중반, [[이슬람 국가](ISIL)](ISIL)은 님루드 주변 지역을 점령했다. ISIL은 모술의 예언자 요나 사원을 포함한 다른 성지들을 파괴했다. 2015년 초, ISIL은 우상 숭배적이거나 비이슬람적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고대 유물을 파괴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후 모술 도서관에서 수천 권의 책과 원고를 파괴했다. 2015년 2월, ISIL은 모술 박물관에서 아카드 기념물을 파괴했고, 2015년 3월 5일, 이라크는 ISIL 무장 세력이 신성 모독을 이유로 님루드와 그 유적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고 발표했다.
ISIL의 한 회원은 파괴 장면을 촬영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제 뒤에 있는 이 유적들은 과거 사람들이 알라 대신 숭배했던 우상과 조각상입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카에 들어갔을 때 맨손으로 우상을 쓰러뜨렸습니다. 우리는 예언자로부터 우상을 쓰러뜨리고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예언자의 동료들은 나라를 정복한 후 이를 행했습니다." ISIL은 니네베에 복원된 도시 성문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했다. ISIL은 이후 파르티아의 폐허가 된 도시 하트라에서 파괴 작업을 수행했다. 2015년 4월 12일, 온라인 무장 세력 영상은 ISIL 무장 세력이 님루드의 일부를 망치질하고, 불도저로 밀고, 마침내 폭발물을 사용하여 폭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는 "문화 유산의 고의적인 파괴는 전쟁 범죄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레바논 시리아 연맹 회장은 이 유적지에서 입은 손실을 몽골 제국에 의한 문화 파괴에 비유했다. 2016년 11월, 항공 사진은 지그라트가 중장비로 체계적으로 평탄화된 것을 보여주었다. 2016년 11월 13일, 이라크군은 ISIL로부터 도시를 탈환했다. 합동 작전 사령부는 이라크 국기를 건물 위에 게양하고, 도시 외곽의 아시리아 마을 누마니야도 점령했다고 밝혔다. 님루드가 탈환될 때까지 도시 발굴 구역의 약 90%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든 주요 구조물이 손상되었고, 님루드의 지그라트는 평평해졌으며, 아슈르나시르팔 2세 궁전에는 부서진 벽만 몇 개 남아 있었고, 한때 문을 지키던 라마수는 부서져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5.2. 복원 노력
2016년 11월, 이라크군이 님루드를 탈환한 후, 유네스코(UNESCO)를 중심으로 님루드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2017년부터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피해 조사, 유지 보수 팀 구성, 문화유산 보존 및 기록 작업 등이 진행되고 있다. 2019년에는 북부 궁전 복원을 목표로 하는 2단계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2020년부터는 님루드 구조 프로젝트의 고고학자들이 현장에서 이라크 고고학자들에게 유산 보호 교육을 실시하고 유적 보존을 돕고 있다.
6. 한국과의 관계 및 의의
님루드는 직접적으로 한국과 관련된 역사는 없지만, 고대 문명의 흥망성쇠와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문화재 보존과 역사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님루드의 유적과 유물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달과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