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슈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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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카하시 슈헤이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2011년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MVP를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2011년 드래프트에서 3개 구단의 1차 지명을 받아 주니치에 입단했다. 2019년에는 주니치의 팀 캡틴을 맡았으며, 그 해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2020년에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고, 2023년에는 2년 계약을 갱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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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슈헤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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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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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다카하시 슈헤이 |
로마자 표기 | Takahashi Shuhei |
출생일 | 1994년 1월 18일 |
출생지 |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
신장 | 180cm |
체중 | 90kg |
포지션 | 내야수 |
투구 | 우투 |
타석 | 좌타 |
현재 소속팀 | 주니치 드래건스 |
등번호 | 3 |
데뷔 | 2012년 3월 31일 |
프로 입단 정보 | |
드래프트 년도 | 2011년 |
드래프트 순위 | 1순위 |
선수 경력 | |
소속팀 | 주니치 드래건스 (2012년 ~ 현재) |
NPB 성적 (2023 시즌 종료 기준) | |
리그 | NPB |
타율 | 0.261 |
안타 | 768 |
홈런 | 55 |
타점 | 335 |
수상 경력 | |
골든 글러브 | 2회 (2019년, 2020년) |
베스트 나인 | 1회 (2019년) |
올스타 | 1회 (2019년) |
연봉 정보 | |
연봉 | 6000만 엔 (2025년) |
학교 | |
고등학교 | 도카이 대학 고후 고등학교 |
2. 프로 입단 전
다카하시는 후지사와 시립 젠코 초등학교 1학년 때 투수로 야구를 시작했다.[1] 그는 후지사와 시립 젠코 중학교 시절 지역 클럽인 쇼난 보이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1] 중학교 3학년 때 자이언츠 컵 결승에 진출했다.[2] 요코하마 고등학교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이즈미 준이치 감독의 초청을 받아 도카이 대학 부속 고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현재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와타나베 료는 다카하시보다 2년 후배로 같은 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봄, 그는 3루수와 4번 타자로 기용되며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가을부터는 유격수로 출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가시와 시립 고등학교와의 연습 경기에서 다카하시는 1이닝에 2개의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자 마지막 해인 봄, 그는 현 대회 우승에 기여했고,[3] 타율 .471을 기록했다. 결승전에서 다카하시는 야마나시현 기록인 57번째 홈런을 기록했다.[4] 여름, 그의 팀은 고시엔 야마나시현 예선 토너먼트에서 탈락했지만, 2011년 아시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5] 5경기 20타석에서 다카하시는 10개의 안타를 때려 13타점을 기록했다. 대한민국과의 결승전에서 그는 고교 통산 71번째 홈런인 2점 홈런을 쳐냈고,[6] 이는 고교 선수 역대 9위에 해당하며,[7] 대회 MVP를 수상했다.[8]
2011년 NPB 드래프트에서 다카하시는 오릭스 버팔로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주니치 드래곤스의 1차 지명을 받았고, 주니치 드래곤스가 다카하시와 계약할 권리를 얻었다.[9] 그는 고시엔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3개 팀으로부터 1차 지명을 받은 NPB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의 고교 선수가 되었다. 11월 25일, 요코하마 시내의 한 호텔에서 슈헤이는 연봉 1200만 엔, 계약금 1억 엔의 가계약에 서명했다. 이는 주니치 역사상 고교 선수에게 지급된 최고액이었다.[10]
다카하시는 2009년까지 1루수 모리노 마사히코가 사용했던 등번호 '''31'''번을 받았다.[10]
2. 1. 유소년 시절
다카하시 슈헤이는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출신으로, 후지사와 시립 젠코 초등학교 1학년 때 투수로 야구를 시작했다.[1] 후지사와 시립 젠코 중학교 시절에는 쇼난 보이즈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1] 중학교 2학년 때 일본 선수권 대회 우승, 자이언츠 컵 준우승을 경험했다.[42] 초등학교, 중학교, 보이즈 리그 4년 후배로는 오가사와라 신노스케가 있다.[43]요코하마 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했지만, 도카이 대학 고후 고등학교 코치 이즈미 준이치의 권유로 같은 학교에 진학했다.[44] 고등학교 1학년 봄부터 4번 타자, 3루수로 기용되며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고, 가을부터는 유격수로 출전했다. 2학년 봄에는 시립 가시와 고등학교와의 연습 경기에서 1이닝에 2개의 만루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3학년 봄에는 현 대회 우승에 공헌했고,[3] 결승전에서는 야마나시현 기록인 57호 홈런을 기록했다.[4] 고교 통산 7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3학년 여름에는 고시엔 야마나시현 예선 토너먼트에서 탈락했지만, 2011년 아시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5] 5경기에서 20타수 10안타 13타점을 기록했고, 대한민국과의 결승전에서는 고교 통산 71호째가 되는 2점 홈런을 쳐내며,[6] 대회 MVP를 수상했다.[8] 이는 고교 선수 역대 9위에 해당한다.[7] 같은 학교의 2년 후배로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와타나베 료가 있다.
2. 2. 고등학교 시절
다카하시 슈헤이는 요코하마 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했지만, 이즈미 준이치 코치의 권유로 도카이 대학 부속 고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1][44] 1학년 봄부터 3루수 겸 4번 타자로 주전으로 활약했고, 가을부터는 유격수로 기용되었다.[1] 2학년 봄에는 연습 경기에서 1이닝에 2개의 만루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3학년 봄에는 현 대회 우승에 기여했고,[3] 결승전에서는 야마나시현 기록인 통산 57호 홈런을 기록했다.[4]3학년 여름에는 고시엔 야마나시현 예선 토너먼트에서 탈락하여 고시엔 진출에는 실패했지만,[5]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5] 이 대회에서 5경기 20타수 10안타 13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특히 대한민국과의 결승전에서는 고교 통산 71호 홈런인 2점 홈런을 쳐내며[6] 대회 MVP를 수상했다.[8] 고교 통산 71홈런은 역대 9위에 해당한다.[7]
3. 프로 경력
주니치 드래건스(2012년 ~ )
'''2012년'''에는 6월 17일 오릭스 4차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테라하라 하야토를 상대로 결승타가 되는 프로 첫 홈런을 쳤다。18세 4개월의 홈런은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된 이후 고졸 신인 중 최연소였고, 주니치 고졸 신인으로는 1997년의 모리노 이후 8번째였으며, 결승타는 1960년의 다카기 모리미치 이후 2번째였다[46][47]。2군에서는 7개의 홈런을 쳐서 홈런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3년'''에는 헥토르 루나의 부상으로 시즌 후반부터 주로 3루수로서 1군에 정착했다. 8월 1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7번·3루수"로 첫 선발 출장하여 1점을 추격하는 6회에 가토 고스케를 상대로 역전 만루 홈런을 쳤다[48]。10대 선수가 만루 홈런을 친 것은 사상 14번째, 16번째였다[49]。또한, 19세 6개월의 선수가 만루 홈런을 친 것은 2008년의 사카모토 하야토(19세 3개월)에 이어 센트럴 리그 사상 2번째 최연소 기록이었다. 구단 사상에서는 최연소 기록이었다. 오프에 노모토 케이와 등번호를 교환하는 형태로 '''9'''로 변경했다. 이와 함께 등 네임이 '''TAKAHASHI'''로 성만 변경되었다.
'''2014년'''에는 전년 오프에 이바타 히로카즈가 퇴단하고 3루수 레귤러 후보에는 루나와 모리노가 있었기 때문에 GM으로 취임한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권유로 유격수로 재전향했지만, 오픈전에서 타격 부진에 빠져 2군으로 강등되었고, 개막도 2군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전년과 마찬가지로 루나의 부상도 있어 7월 14일에 1군 승격하여 주로 3루수로 출장했다. 7월 21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고향에서 시즌 1호 홈런, 25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나고야 돔)에서는 본인 첫 홈 구장 나고야 돔에서의 홈런을 치고, 8월 12일 DeNA전(나가라가와 구장)에서는 장외 홈런을 쳐서, 개인 최다인 시즌 6홈런을 기록했다[50]。오프에 등번호를 다치나미 가즈요시가 현역 시절에 착용했던 '''3'''으로 변경했다.
'''2015년'''에는 타율 .208로 고전하여 7월에 2군으로 강등된 이후에는 1군 복귀하지 못했다. 오프에는 하마다 토모히로, 가츠라 요리오리, 토모나가 쇼타, 기시모토 아츠키와 함께 대만 윈터 리그에 파견되어[51], 타율 .254, 2홈런을 기록했다[52]。
'''2016년'''에는 다카하시 사토시후미의 퇴단에 따라 등록명이 "다카하시"로 변경되었다. 오픈전에서는 타율 .196에 머물렀지만[53], "7번·3루수"로서 본인 처음 개막 스타팅 멤버를 획득하여[54], 맹타상을 기록했다. 또한, 3월 3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나카타 렌으로부터 역전 만루 홈런을 쳤다. 히라타 료스케가 이탈한 후에는 3번 타순으로 옮겨, 4월 종료까지 타율 .276, 3홈런, 13타점으로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30일 히로시마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오른손을 다쳐서 도중 교체. 검사 결과, 유구골 골절이 판명[55]되어, 다음 5월 1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2017년'''에는 8월 30일 DeNA전에서 에드윈 에스코바를 상대로 좌익선상에 러닝 홈런을 기록했다. 구단에서는 2006년의 후쿠도메 고스케가 기록한 이후였고, 1997년에 나고야 돔이 개장한 이후 처음 기록이었다.
'''2018년'''에는 후쿠다 나가마사의 3루수 고정에 따라, 개막부터 주로 2루수로서 기용되었다. 5월 31일 오릭스전부터 6월 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 걸쳐 NPB 타이 기록인 4타석 연속 2루타를 달성했다[58]。후반전부터 선발 투수의 좌우에 관계없이 스타팅 멤버로 기용되어, 본인 첫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128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54, 11홈런, 69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2019년'''부터는 주니치의 팀 캡틴(주장)을 맡게 되었다[59]。3·4월은 부진했지만, 5월에 월간 8번의 맹타상을 기록하여[60], 5월의 월간 MVP로 처음 선정되었다[61]。6월 4일에는 본인 첫 4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같은 달 27일에는 올스타전에 선수 간 투표로 선출되어[62], 2차전(고시엔)에서는 맹타상을 기록하여, 감투 선수상을 수상하는 활약을 보였다[63]。그러나, 7월 16일 한신전에서 1회 초, 1루로 귀루할 때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부상[64]。이후, 검사에서 "오른쪽 새끼손가락 요측 측부 인대 파열"로 진단받아 전선에서 이탈했다[65]。8월 4일부터 머신 타격을 재개하여[66], 8월 16일 야쿠르트전에서 6회 초 대타로 실전 복귀했다[67]。최종적으로 2년 연속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하여, 117경기에 출장, 타율 .293, 7홈런, 59타점으로[68], 본인 첫 3루수 부문에서 골든 글러브상[69]과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70]。
'''2020년'''에는 6월에 월간 타율 .359를 기록하는 등 개막을 호조로 맞이했지만, 7월 11일 히로시마전에서 왼쪽 허벅지 뒤쪽 근육 파열을 일으켜 전선에서 이탈했다[71]。25일에 복귀한[72] 후, 10월 15일 한신전에서 로베르토 수아레스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끝내기 홈런이 되는 6호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기록했다[73]。최종적으로 리그 6위인 타율 .305를 기록하여, 본인 첫 타율 3할을 달성했다. 또한, 오프에는 2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1월 26일, 2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8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4]。
'''2021년'''에는 같은 성의 선수인 다카하시 히로토의 입단에 따라, 스코어보드상의 표기를 풀 네임인 "'''다카하시 슈헤이'''"로 변경했다. 37번째 경기인 5월 11일 한신전에서 니시 유키를 상대로 1호 홈런을 쳤다. 6월 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3번 타자로 기용되어 2홈런을 포함한 4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75]。하지만, 전반전은 타율 .254로 고전했다[76]。후반전에는, 한때 컨디션이 좋아졌지만, 부진한 채 시즌이 종료. 개인 최다인 137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율 .259, 5홈런, 39타점 모두 전년을 밑돌았으며, 리그 최다인 21개의 병살타를 기록하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이 되었다. 11월 23일, 5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7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7]。
'''2022년'''에는 개막 직전에 왼쪽 발목을 삐끗했기[78] 때문에, 개막 2군 스타트가 되었다. 4월 29일에 1군 등록되어[79], 같은 날 히로시마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 시즌 첫 출장[80]。8월에, 오른쪽 옆구리 근육 파열로 2군 강등되는 등 소화 불량의 시즌으로 일관. 팀도 6년 만의 최하위에 머물렀고, 11월 23일에는 75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67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81]。
'''2023년'''에는 개막전이었던 3월 31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 3번·3루수로 선발 출장하여[82], 동점인 9회 초 1사 만루 찬스에 결승타가 되는 좌익수 넘기는 2점 적시 2루타를 쳐서, 팀에 2년 만의 개막전 승리를 안겨주었다[83]。이후에도 6월 1일 소프트뱅크전(후쿠오카 PayPay 돔)[84]과 6월 30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85]에서도 경기 막판에 결승타를 치는 등의 활약을 보였지만, 시즌 전체를 통해 정위치였던 3루수 수비 위치를 이시카와 다카야에게 양보하는 형태가 되어, 출장 86경기 중 선발은 34경기에 그쳤고, 대타나 수비 강화로 기용되는 경우가 두드러졌다[86]。홈런 수도 본인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0개였다. 오프인 11월 21일에 2년 계약으로 현상 유지의 연봉으로 계약을 갱신했다[87]。
'''2024년'''에는 개막전부터 15경기 연속으로 3루수로 선발 출장하고 있었지만, 4월 16일 야쿠르트전에서 수비 시 오른발을 부상하여 도중 교체. 다음 4월 17일에 오른쪽 외측 가자미근 손상으로 진단받아 등록 말소되었다[88]。
3. 1.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2011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건스, 오릭스 버팔로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3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주니치가 교섭권을 획득했다. 입단 초기에는 등번호 31번을 사용하다가, 2014년에는 9번, 2015년부터는 3번을 사용하고 있다.==== 2012-2015: 초기 ====
에는 6월 17일 오릭스 4차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테라하라 하야토를 상대로 결승타가 되는 프로 첫 홈런을 쳤다。18세 4개월의 홈런은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된 이후 고졸 신인 중 최연소였고, 주니치 고졸 신인으로는 1997년의 모리노 이후 8번째였으며, 결승타는 1960년의 다카기 모리미치 이후 2번째였다[46][47]。2군에서는 7개의 홈런을 쳐서 홈런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에는 헥토르 루나의 부상으로 시즌 후반부터 주로 3루수로서 1군에 정착했다. 8월 1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7번·3루수"로 첫 선발 출장하여 1점을 추격하는 6회에 가토 고스케를 상대로 역전 만루 홈런을 쳤다[48]。10대 선수가 만루 홈런을 친 것은 사상 14번째, 16번째였다[49]。또한, 19세 6개월의 선수가 만루 홈런을 친 것은 의 사카모토 하야토(19세 3개월)에 이어 센트럴 리그 사상 2번째 최연소 기록(당시)이었다. 구단 사상에서는 최연소 기록이었다. 오프에 노모토 케이와 등번호를 교환하는 형태로 '''9'''로 변경했다. 이와 함께 등 네임이 '''TAKAHASHI'''로 성만 변경되었다.
에는 전년 오프에 이바타 히로카즈가 퇴단하고 3루수 레귤러 후보에는 루나와 모리노가 있었기 때문에 GM으로 취임한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권유로 유격수로 재전향했지만, 적극적으로 기용된 오픈전에서 타격 부진에 빠져 2군으로 강등되었고, 개막도 2군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전년과 마찬가지로 루나의 부상도 있어 7월 14일에 1군 승격하여 주로 3루수로 출장했다. 7월 21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고향에서 시즌 1호 홈런, 25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나고야 돔)에서는 본인 첫 홈 구장 나고야 돔에서의 홈런을 치고, 8월 12일 DeNA전(나가라가와 구장)에서는 장외 홈런을 쳐서, 개인 최다인 시즌 6홈런을 기록했다[50]。오프에 등번호를 다치나미 가즈요시가 현역 시절에 착용했던 '''3'''으로 변경했다.
에는 타율 .208로 고전하여 7월에 2군으로 강등된 이후에는 1군 복귀하지 못했다. 오프에는 하마다 토모히로, 가츠라 요리오리, 토모나가 쇼타, 기시모토 아츠키와 함께 대만 윈터 리그에 파견되어[51], 타율 .254, 2홈런을 기록했다[52]。
==== 2016-2019: 도약과 주장 ====
에는 다카하시 사토시후미의 퇴단에 따라 등록명이 "다카하시"로 변경되었다. 오픈전에서는 타율 .196에 머물렀지만[53], "7번·3루수"로서 본인 처음 개막 스타팅 멤버를 획득하여[54], 맹타상을 기록했다. 또한, 3월 3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나카타 렌으로부터 역전 만루 홈런을 쳤다. 히라타 료스케가 이탈한 후에는 3번 타순으로 옮겨, 4월 종료까지 타율 .276, 3홈런, 13타점으로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30일 히로시마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오른손을 다쳐서 도중 교체. 검사 결과, 유구골 골절이 판명[55]되어, 다음 5월 1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에는 8월 30일 DeNA전에서 에드윈 에스코바를 상대로 좌익선상에 러닝 홈런을 기록했다. 구단에서는 의 후쿠도메 고스케가 기록한 이후였고, 에 나고야 돔이 개장한 이후 처음 기록이었다.
에는 후쿠다 나가마사의 3루수 고정에 따라, 개막부터 주로 2루수로서 기용되었다. 5월 31일 오릭스전부터 6월 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 걸쳐 NPB 타이 기록인 4타석 연속 2루타를 달성했다. 후반전부터 선발 투수의 좌우에 관계없이 스타팅 멤버로 기용되어, 본인 첫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128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54, 11홈런, 69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부터는 주니치의 팀 캡틴(주장)을 맡게 되었다. 3·4월은 부진했지만, 5월에 월간 8번의 맹타상을 기록하여, 5월의 월간 MVP로 처음 선정되었다. 6월 4일에는 본인 첫 4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같은 달 27일에는 올스타전에 선수 간 투표로 선출되어, 2차전(고시엔)에서는 맹타상을 기록하여, 감투 선수상을 수상하는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7월 16일 한신전에서 1회 초, 1루로 귀루할 때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부상. 이후, 검사에서 "오른쪽 새끼손가락 요측 측부 인대 파열"로 진단받아 전선에서 이탈했다. 8월 4일부터 머신 타격을 재개하여, 8월 16일 야쿠르트전에서 6회 초 대타로 실전 복귀했다. 최종적으로 2년 연속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하여, 117경기에 출장, 타율 .293, 7홈런, 59타점으로, 본인 첫 3루수 부문에서 골든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 2020-현재 ====
에는 6월에 월간 타율 .359를 기록하는 등 개막을 호조로 맞이했지만,7월 11일 히로시마전에서 왼쪽 허벅지 뒤쪽 근육 파열을 일으켜 전선에서 이탈했다. 25일에 복귀한 후, 10월 15일 한신전에서 로베르토 수아레스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끝내기 홈런이 되는 6호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리그 6위인 타율 .305를 기록하여, 본인 첫 타율 3할을 달성했다. 또한, 오프에는 2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1월 26일, 2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8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에는 같은 성의 선수인 다카하시 히로토의 입단에 따라, 스코어보드상의 표기를 풀 네임인 "'''다카하시 슈헤이'''"로 변경했다. 37번째 경기인 5월 11일 한신전에서 니시 유키를 상대로 1호 홈런을 쳤다. 6월 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3번 타자로 기용되어 2홈런을 포함한 4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반전은 타율 .254로 고전했다. 후반전에는, 한때 컨디션이 좋아졌지만, 부진한 채 시즌이 종료. 개인 최다인 137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율 .259, 5홈런, 39타점 모두 전년을 밑돌았으며, 리그 최다인 21개의 병살타를 기록하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이 되었다. 11월 23일, 5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7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에는 개막 직전에 왼쪽 발목을 삐끗했기 때문에, 개막 2군 스타트가 되었다. 4월 29일에 1군 등록되어, 같은 날 히로시마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 시즌 첫 출장. 8월에, 오른쪽 옆구리 근육 파열로 2군 강등되는 등 소화 불량의 시즌으로 일관. 팀도 6년 만의 최하위에 머물렀고, 11월 23일에는 75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67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에는 개막전이었던 3월 31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 3번·3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동점인 9회 초 1사 만루 찬스에 결승타가 되는 좌익수 넘기는 2점 적시 2루타를 쳐서, 팀에 2년 만의 개막전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후에도 6월 1일 소프트뱅크전(후쿠오카 PayPay 돔)과 6월 30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도 경기 막판에 결승타를 치는 등의 활약을 보였지만, 시즌 전체를 통해 정위치였던 3루수 수비 위치를 이시카와 다카야에게 양보하는 형태가 되어, 출장 86경기 중 선발은 34경기에 그쳤고, 대타나 수비 강화로 기용되는 경우가 두드러졌다. 홈런 수도 본인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0개였다. 오프인 11월 21일에 2년 계약으로 현상 유지의 연봉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에는 개막전부터 15경기 연속으로 3루수로 선발 출장하고 있었지만, 4월 16일 야쿠르트전에서 수비 시 오른발을 부상하여 도중 교체. 다음 4월 17일에 오른쪽 외측 가자미근 손상으로 진단받아 등록 말소되었다.
3. 1. 1. 2012-2015: 초기
2012년, 다카하시 슈헤이는 프로 데뷔 시즌에 인상적인 홈런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6월 17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테라하라 하야토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이자 결승 홈런을 쳤다. 이는 18세 4개월의 나이로 달성한 기록으로, 드래프트 제도 도입 이후 고졸 신인 최연소 홈런 기록이었다. 또한 주니치 소속 고졸 신인으로는 1997년 모리노 이후 8번째, 결승 홈런은 1960년 다카기 모리미치 이후 2번째였다.[46][47] 2군에서는 7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2013년에는 헥토르 루나의 부상으로 시즌 후반부터 3루수로 출전하며 1군에 정착했다. 8월 1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1점을 뒤진 6회에 가토 고스케를 상대로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48] 이는 10대 선수의 만루 홈런으로는 역대 14번째이자 16번째였으며,[49] 19세 6개월의 만루 홈런은 당시 센트럴 리그 최연소 2위 기록이었다. 구단 역사상으로는 최연소 만루 홈런 기록이었다. 오프 시즌에는 노모토 케이와 등번호를 교환하여 9번을 받았다.
2014년에는 이바타 히로카즈가 팀을 떠나면서 오치아이 히로미츠 GM의 권유로 유격수로 전향을 시도했다. 그러나 오픈전에서 타격 부진으로 2군으로 강등되어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7월에 1군으로 승격되어 주로 3루수로 출장했다. 7월 21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시즌 1호 홈런,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 나고야 돔 첫 홈런을 기록했다. 8월 12일 DeNA전(나가라가와 구장)에서는 장외 홈런을 기록하며 개인 최다인 시즌 6홈런을 달성했다.[50] 오프 시즌에는 다치나미 가즈요시가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 3번으로 변경했다.
2015년에는 타율 .208로 부진하여 7월에 2군으로 강등된 후 1군에 복귀하지 못했다. 오프 시즌에는 하마다 토모히로, 가츠라 요리오리, 토모나가 쇼타, 기시모토 아츠키와 함께 대만 윈터 리그에 파견되어[51] 타율 .254, 2홈런을 기록했다.[52]
3. 1. 2. 2016-2019: 도약과 주장
2016년에는 헥터 루나가 방출되면서 사실상 3루를 보장받았고,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7번 타순으로 출전하며 개막전부터 주전으로 기용되었다.[22][13] 히라타 료스케의 부상으로 타순이 3번으로 승격되었고, 4월 말까지 3개의 홈런과 13타점을 기록하며 .276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13] 그러나 4월 30일, 히로시마 카프와의 경기에서 손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교체되었고, 다음 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23] 7월 28일, 2군에서 재활 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상대로 복귀하여 6번 타순, 3루수로 출전, 15-2 승리에 2안타 4타점으로 기여했다.[24][25] 2016년 시즌은 타수, 타점, 안타, 출루율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2017년에는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5월 4일 알렉스 게레로의 부진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3루수, 6번 타순으로 1군에 콜업되었다.[26] 그러나 5월 18일, .111의 저조한 타율로 1군에서 제외되었다.[27]
2018년에는 후쿠다 노부마사가 3루수 자리를 굳히면서 2루수로 훈련받았고,[28] 5월 31일 오릭스 버팔로스를 상대로 4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NPB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29] 시즌 내내 주전으로 활약하며 128경기에 출전,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웠고, 두 자릿수 홈런(11개)을 기록했다.[30]
2019년 1월 16일, 팀 주장으로 임명되었다.[31] 3·4월에는 부진했지만, 5월에 월간 8번의 맹타상을 기록하며 월간 MVP로 선정되었다.[60][61] 6월 4일에는 처음으로 4번 타자로 기용되었고,[59] 6월 27일에는 올스타전에 선수 간 투표로 선출, 2차전에서 맹타상을 기록하며 감투 선수상을 수상했다.[62][63] 그러나 7월 16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오른손 새끼손가락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고,[64] 8월 16일 야쿠르트전에서 대타로 복귀했다.[67] 최종적으로 117경기에 출장, 타율 .293, 7홈런, 59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고,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69]과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70]
3. 1. 3. 2020-현재
에는 리그 6위인 타율 .305를 기록하여, 본인 첫 타율 3할을 달성했다. 또한, 2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6월에는 월간 타율 .359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71] 7월 1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왼쪽 허벅지 뒤쪽 근육 파열을 일으켜 전선에서 이탈했다. 25일에 복귀한[72] 후, 10월 15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로베르토 수아레스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끝내기 홈런이 되는 6호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기록했다.[73] 11월 26일에는 2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8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4]에는 같은 성을 가진 다카하시 히로토의 입단에 따라, 스코어보드상의 표기를 풀 네임인 "'''다카하시 슈헤이'''"로 변경했다. 개인 최다인 137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율 .259, 5홈런, 39타점 모두 전년을 밑돌았으며, 리그 최다인 21개의 병살타를 기록하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이 되었다. 5월 11일 한신전에서 니시 유키를 상대로 1호 홈런을 쳤다.[75] 6월 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3번 타자로 기용되어 2홈런을 포함한 4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11월 23일, 5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7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7]
에는 개막 직전에 왼쪽 발목을 삐끗했기[78] 때문에, 개막 2군에서 시작했다. 4월 29일에 1군 등록되어[79], 같은 날 히로시마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 시즌 첫 출장을 기록했다.[80] 8월에, 오른쪽 옆구리 근육 파열로 2군으로 강등되었다. 11월 23일에는 75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67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81]
4. 선수로서의 특징
4. 1. 타격
부드러운 스윙에서 타구 속도와 비거리 모두 고등학생 수준을 넘어선 타구를 날렸으며, 나무 배트로 130미터급 비거리를 내는 장타력을 자랑한다.[89][90] 타격에서는 "공을 불러들여 포인트를 가깝게 하여 친다"는 점을 유념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130미터 이상 날아가지 않으면 넘을 수 없는 특설 펜스가 설치되어 있었다.[91]고등학교 시절 감독인 무라나카 히데토는 "모리노 마사히코 이상의 소재"라고 평가했다.[92] (무라나카는 도카이 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 시절 모리노의 감독이기도 하다). 또한, 고등학교 코치인 이즈미 준이치는 "모리노는 천재형이지만 타카하시는 노력형이다. 누구보다 빨리 그라운드에 나타나 누구보다 늦게 그라운드에 있다"고 평했다.[93]
4. 2. 수비 및 주루
수비에서는 글러브 다루는 솜씨가 비범하다.[96] 1루 도달 시간은 4.6초대로 평균을 밑돌지만, 도루 시에는 3.4초대를 기록하는 주력을 갖추고 있다.[94] 송구 거리는 105m, 50m 달리기는 6초 4.[95]5. 인물
다카하시 슈헤이는 쇼핑을 즐기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라멘이다.[32] 형의 영향으로 나가부치 츠요시의 팬이다.[32]
어릴 적부터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의 전설인 마쓰이 히데키를 열렬히 존경했다. 드래곤스에 입단했을 때, 그는 새로운 팀 동료인 모리노 마사히코에 대한 존경심을 언급했다.[34]
오가사와라 신노스케와 같은 고향 출신이며, 둘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같은 유소년 야구팀인 쇼난 보이즈에서 뛰었다.[36][37] 그들은 어릴 적에 지역 공원에서 함께 야구를 했으며, 그들의 집은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고 한다.[36] 슈헤이가 드래곤스에서 프로 선수가 되었을 때, 당시 중학생이었던 오가사와라가 그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달했다.[38]
2014년부터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35]
2017년 1월 4일, 4년 간의 교제 끝에 지역 아이치 현청 직원인 유리와 결혼했으며, 2017 시즌 말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라고 발표되었다.[39] 2018년 11월 27일, 딸을 낳아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다.[40]
6. 상세 정보
6. 1. 수상 및 타이틀 경력
베스트 나인 1회(2019년) ※3루수 부문이며, 해당 부문에서의 헤이세이 태생 첫 수상골든 글러브상 2회(2019년 ~ 2020년) ※3루수 부문이며, 해당 부문에서의 헤이세이 태생 첫 수상
월간 MVP 1회(2019년 5월) ※야수 부문
월간 사요나라상 1회(2020년 10·11월)
올스타전 감투 선수상 1회(2019년 2차전)
6. 2. 개인 기록
- 첫 출장 : 2012년 3월 3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차전(나고야 돔), 8회초에 3루수로 출장
- 첫 타석 : 2012년 4월 4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7회초에 기쿠치 가즈마사로부터 2루 땅볼
- 첫 선발 출장 : 2012년 5월 1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7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8번·3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 상동, 5회초에 오타케 간으로부터 좌중간 2루타
- 첫 홈런·첫 타점 : 2012년 6월 17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4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8회초에 데라하라 하야토로부터 좌월 솔로
- 첫 도루 : 2015년 4월 15일, 대 한신 타이거스 5차전(나고야 돔), 6회말에 2루 안착(투수: 이와모토 아키라, 포수: 우메노 류타로)
6. 2. 1. 기타
올스타전 출장 : 1회(2019년)6. 3. 등번호
다카하시 슈헤이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등번호 31번을 사용했다. 2014년에는 9번을 사용했고, 2015년부터는 3번을 사용하고 있다.6. 4. 연도별 타격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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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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