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 르펜
1. 개요
마린 르펜은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창립자 장마리 르펜의 딸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2002년 르펜의 세대 대표를 역임했다. 2011년부터 2022년까지 국민전선 대표를 맡아 '탈극단화' 전략을 추진했고, 2017년과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현재는 국민연합 소속 하원의원이며, 보호무역주의, 경제 민족주의, 유럽회의주의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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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마리옹 안 페린 르펜 |
|---|---|
| 출생일 | 1968년 8월 5일 |
| 출생지 | 뇌이쉬르센,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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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 장마리 르펜 피에레트 르펜 |
|---|---|
| 친척 | 마리 카롤린 르펜 (여동생) 마리옹 마레샬 (조카) 필리프 올리비에 (매제) 조르당 바르델라 (조카사위) 빈첸초 소포 (조카사위) |
| 배우자 | 프랑크 쇼프로이 (1995년–2000년, 이혼) 에리크 로리오 (2002년–2006년, 이혼) |
| 파트너 | 루이 알리오 (2009년–2019년) |
| 자녀 | 3명 |
| 모교 | 팡테옹 아사스 대학교 (법학 석사, 고등 연구 학위) |
|---|
| 소속 정당 | FN/RN(1986년 이후) |
|---|
| 국회의원 | 파드칼레 11번 선거구 |
|---|---|
| 임기 시작 | 2017년 6월 18일 |
| 대통령 | 국민연합 그룹 국민의회 |
| 임기 시작 | 2022년 6월 28일 |
| 전임자 | 직책 신설 |
| 지역 평의회 의원 | 오드프랑스 |
| 임기 시작 | 2016년 1월 4일 |
| 임기 종료 | 2021년 7월 2일 |
| 지역 평의회 의원 | 노르파드칼레 |
| 임기 시작 | 2010년 3월 26일 |
| 임기 종료 | 2015년 12월 13일 |
| 지역 평의회 의원 | 노르파드칼레 |
| 임기 시작 | 1998년 3월 21일 |
| 임기 종료 | 2004년 3월 28일 |
| 지역 평의회 의원 | 일드프랑스 |
| 임기 시작 | 2004년 3월 28일 |
| 임기 종료 | 2010년 3월 21일 |
| 당 대표 | 국민연합 |
| 임기 시작 | 2011년 1월 16일 |
| 임기 종료 | 2022년 11월 5일 |
| 부대표 | 알랭 자메 루이 알리오 마리 크리스틴 아르노투 장 프랑수아 잘크 플로리앙 필리포 스테브 브리오 조르당 바르델라 |
| 전임자 | 장마리 르펜 |
| 후임자 | 조르당 바르델라 |
| 유럽 의회 의원 | 북서부 프랑스 |
| 임기 시작 | 2009년 7월 14일 |
| 임기 종료 | 2017년 6월 18일 |
| 유럽 의회 의원 | 일드프랑스 |
| 임기 시작 | 2004년 7월 20일 |
| 임기 종료 | 2009년 7월 13일 |
| 공동 의장 | 마르셀 데 그라프 |
| 임기 시작 | 2015년 6월 15일 |
| 임기 종료 | 2017년 6월 19일 |
| 전임자 | 직책 신설 |
| 후임자 | 니콜라 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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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치와 정부 -
필리프 페탱
필리프 페탱은 제1차 세계 대전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비시 프랑스 정권 수반으로서 나치 독일과 협력한 행위로 인해 반역죄로 기소되어 유배지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
프랑스 정치와 정부 -
악시옹 프랑세즈
악시옹 프랑세즈는 1899년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프랑스의 극우 왕당파 정치 운동으로, 샤를 모라스의 사상에 기반하여 군주제 복고를 주장하며 극우적 이념을 표방하고 폭력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내부분열과 외부탄압, 비시 정권 협력 등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산되었고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
르펜가 -
조르당 바르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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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펜가 -
장마리 르펜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은 국민전선을 창당하여 이민 배척, 치안 강화, EU 탈퇴 등을 주장하고 홀로코스트 관련 논란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대선에 여러 번 출마, 당수 자리에서 물러난 후 당에서 제명되었다. -
국민전선 (프랑스)의 정치인 -
조르당 바르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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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전선 (프랑스)의 정치인 -
장마리 르펜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은 국민전선을 창당하여 이민 배척, 치안 강화, EU 탈퇴 등을 주장하고 홀로코스트 관련 논란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대선에 여러 번 출마, 당수 자리에서 물러난 후 당에서 제명되었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파리 제2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한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장마리 르펜의 사상과 업적을 젊은이들에게 홍보하고 보급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인 "르펜의 세대"(Génération Le Pen) 대표를 역임했다.
2.1. 어린 시절
마린 르펜은 1968년 8월 5일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장마리 르펜은 브르타뉴 출신 정치인이자 전 낙하산부대원이었고, 어머니 피에르트 르펜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 마린 르펜은 세 자매 중 막내였다. 1969년 4월 25일,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대부는 아버지의 친척인 앙리 보테이였다.
1976년, 8세 때 아버지를 노린 폭탄 테러를 경험했다. 가족이 잠든 사이 아파트 계단에서 폭탄이 폭발했지만, 가족은 모두 무사했다.
생클루의 플로랑 슈미트 고등학교를 다녔다. 1984년, 16세 때 어머니가 가족을 떠났고, 1987년 부모는 이혼했다. 르펜은 자서전에서 어머니가 떠난 것에 대해 "가장 끔찍하고, 잔인하고, 가슴 아픈 고통: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썼다.
2.2. 법률 공부 및 변호사 활동
르펜은 파리 제10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1991년 석사 학위(Master of Laws)를, 1992년에는 형법 분야에서 심화 연구 석사 학위(DEA, Master of Advanced Studies)를 취득했다. 파리 변호사 협회에 등록된 그녀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파리 23구 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즉결심판 사건을 정기적으로 다루었고, 종종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3. 정치 경력
마린 르펜은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마르틴 오브리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4월 22일 프랑스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는 17.9%의 득표율(약 640만 표)로 3위를 기록했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과 달리 인종 차별적 발언을 자제하며 극우 정당의 이미지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2015년 8월에는 홀로코스트 부정 발언으로 장마리 르펜을 국민전선에서 퇴출시키기도 했다.
2017년 대선에 재도전했으나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패배했다. 2017년 대선에서 프랑스의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2019년에는 EU 개혁을 주장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하여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한 10명의 후보와 경쟁했다.
3.1. 국민전선 입당 및 초기 활동 (1986–2010)
마린 르펜은 1986년 18세의 나이로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이끌던 국민전선(FN)에 입당했다. 1998년 노르파드칼레 지역 의원으로 당선되며 처음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같은 해 국민전선의 법률 부서를 맡아 2003년까지 이끌었다.
2000년에는 당내 청년 조직인 '르펜 세대'(Generations Le Pen)의 회장을 맡았다. '르펜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르펜의 사상과 업적을 홍보하고, 국민전선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였다. 같은 해 국민전선 집행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2002년에는 "르펜의 세대" 대표를 역임하였다. 2003년에는 국민전선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2004년 유럽 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2009년, 2014년 유럽 의회 의원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2006년부터는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선거 대책 본부장을 맡았다. 2007년에는 교육, 홍보 및 대외활동을 담당하는 국민전선의 집행 부회장 중 한 명이 되었다.
2007년 프랑스 총선에서 파드칼레 제14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사회당 후보 알베르 파콩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3.2. 국민전선 대표 선출 및 '탈극단화' (2011–2022)
2010년 초, 마린 르펜은 국민전선의 지도자 자리에 출마할 의사를 표명하며, 당을 "우파 유권자뿐 아니라 모든 프랑스 국민에게 다가가는 거대 대중 정당"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2010년 9월 3일, 바르주 퀴에르에서 지도자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4개월 동안 국민전선 대표 선거운동을 벌이며, 51개의 주에 있는 국민전선 당원들과 회의를 가졌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그녀는 여러 차례 인민운동연합과의 정치적 연합을 배제했다. 또한 장마리 르펜의 가장 논란이 많은 발언들, 예를 들어 전쟁 범죄 관련 발언들과 거리를 두었는데, 이는 언론에서 당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시도로 보도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스실에서 유대인들의 대량 학살을 홀로코스트 동안의 "제2차 세계 대전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녀는 집단 학살을 "극악무도한 만행"이라고 묘사했다.
2011년 1월 16일, 마린 르펜은 67.65%의 득표율(11,546표 대 브루노 졸니슈 5,522표)로 국민전선의 새 대표로 선출되었고, 장마리 르펜은 명예 의장이 되었다.
국민전선 대표인 마린 르펜은 당연직으로 FN 집행부(8명), 집행위원회(42명), 중앙위원회(당연직 3명, 선출직 100명, 협의된 20명)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1월 16일 투르에서 열린 개막 연설에서 그녀는 "국가 공동체의 정치적 틀을 회복"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시민적 책임과 공동체적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또한 "어디서나 초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의 파괴적인 원리를 공공 서비스, 고용, 사회적 형평성, 심지어 2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약해진 우리의 경제 성장을 희생시키면서 부과한" "브뤼셀의 유럽"을 비난했다.
2011년 9월 10일과 11일, 그녀는 니스의 아크로폴리스 컨벤션 센터에서 "국민의 목소리, 프랑스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폐막 연설에서 그녀는 이민, 불안, 경제 및 사회 상황, 재산업화 및 '강력한 국가'를 다루었다.
이후 르펜은 당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온건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2015년 8월에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는 발언을 한 장마리 르펜을 국민전선에서 퇴출했다.
3.3. 세 차례의 대선 도전 (2012, 2017, 2022)
마린 르펜은 2012년, 2017년, 2022년 세 차례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
2011년 5월 16일, 국민전선(FN) 집행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마린 르펜을 대통령 후보로 승인했다. 201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7.90%(6,421,426표)를 얻어 3위를 기록하며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는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기록한 득표율(16.86%)과 득표수(4,804,772표)를 모두 뛰어넘는 결과였다. 르펜은 가르드(25.51%)와 자신의 지역구인 에냉보몽(35.48%)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21.3%(770만 표)를 득표하여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 투표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패배했지만, 33.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르펜은 23.15%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했다. 결선 투표에서 41.4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다시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패배했지만, 이는 프랑스 극우 정치 역사상 최고 득표율이었다.
3.4. 하원의원 당선 및 국민연합 약진 (2017–현재)
2017년 총선에서 마린 르펜은 파드칼레 제11선거구에 출마하여 1차 투표에서 약 4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2차 투표에서 약 58%의 득표율로 앙 마르슈의 앤 로케 후보를 누르고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는 르펜의 다섯 번째 하원의원 도전이었다. 당선 후 르펜은 국민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유럽 의회 의원(MEP)직을 사퇴했다.
2019년에는 르펜이 더 이상 프랑스의 유럽 연합 탈퇴나 유로화 탈퇴를 원하지 않으며, 대신 연합 정당들과 함께 EU를 내부에서 바꾸고자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2년 프랑스 총선에서 르펜은 자신의 정당인 국민연합이 창당 이후 국민의회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하도록 이끌었다. 국민연합은 89석을 얻어 원내 최대 야당이 되었다. 르펜은 국민연합당 의회 대표로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2022년 11월, 르펜은 국민연합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후임으로는 조르당 바르델라가 선출되었는데, 그는 이전에 르펜의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당의 임시 대표직을 수행한 바 있다.
4. 정치적 입장
마린 르펜은 보호 무역주의와 경제 민족주의를 지지하며, 세계화에 반대한다. 투자 및 소매 금융 분리, 에너지 다변화를 주장하고, 공공 서비스 및 사회 보장 민영화, 국제 원자재 시장 투기, 공동 농업 정책에 반대한다. 부문별 교섭 시스템 유지를 지지하며 마크롱의 노동법 개혁에 반대한다.
EU에 대해서는 유럽 연합 초국가주의와 연방주의에 반대하고, 느슨한 연합체인 '국가들의 유럽'을 지지한다. 2019년 이전에는 프랑스의 유로존 탈퇴와 EU 탈퇴 국민투표를 주장했으나, 이후 EU 개혁을 주장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리스본 조약에 반대하며, 터키와 우크라이나에 반대한다. 세계 무역 기구 대체와 국제 통화 기금 폐지를 제안한다.
이민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지며, 다문화주의 실패와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경계한다. 합법적 이민 유예 조치, 불법 이민자 합법화 금지, 이민자 혜택 축소를 주장하며, 솅겐 지역 탈퇴 및 국경 통제 재개를 촉구했다. 종교적 도축 제한을 지지한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반유대주의 증가에 대응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출생지주의를 부정하며, EU 가맹국이 아닌 국가와의 이중국적 폐지를 주장한다. 귀화 자체는 부정하지 않지만, 프랑스의 규칙, 가치관,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교적으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비판하고,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원한다고 비판했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와 긴밀한 관계를 지지한다. NATO 정책과 동유럽의 반러 정서, 경제 제재를 비판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러시아를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을 옹호했다. 당선 시 프랑스를 나토 통합 군사 사령부에서 탈퇴시키겠다고 밝혔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를 규탄하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했다.
낙태와 동성애를 용인하며,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만, 여성이 남성과 전쟁을 벌이는 "신페미니즘"은 비판한다. 과거 동성결혼 폐지를 공약했으나, 최근 입장이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형제도 부활을 주장했었다.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자력과 수력 발전을 지지하고, 풍력 에너지에 반대하며 풍력 터빈 해체를 제안한다.
5. 논란
마린 르펜은 여러 논란에 휩싸여 왔다.
* 과거사 관련 발언: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홀로코스트 부정 발언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았다. 마린 르펜은 집단 학살을 "극악무도한 만행"이라고 묘사했지만, 아버지의 발언과 거리를 두려는 시도는 당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인종차별 및 외국인 혐오 발언: 2010년, 프랑스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야외 예배를 하는 것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비유하여 논란이 되었다. 2023년 10월에는 프랑스 NGO 시마드(Cimade)를 "밀수업자의 공범"이라고 비난하고 마요트(Mayotte)에서 온 코모로(Comoros)의 "불법 이민 네트워크"에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500EUR의 벌금과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 선거 자금 관련 의혹: 2023년 12월, 유럽 의회 보좌관을 위한 자금을 통해 국민연합당 관계자들에게 돈을 지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르펜은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6. 개인사
장마리 르펜의 막내딸로, 두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하였고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1968년 8월 5일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은 국민전선 창립자이자 브르타뉴 출신 정치인이었고, 어머니 피에르트 르펜(Pierrette Le Pen)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 마린 르펜은 1969년 4월 25일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얀(Yann)과 마리 카롤린 르펜(Marie-Caroline Le Pen) 두 명의 언니가 있다. 1976년, 마린이 여덟 살이었을 때, 아버지를 노린 폭탄 테러가 발생했으나 가족은 무사했다.
생클루의 플로랑 슈미트 고등학교(Lycée Florent Schmitt)를 다녔다. 1984년, 16세 때 어머니가 가족을 떠났고, 1987년에 부모는 이혼했다.
1995년, 국민전선에서 근무하는 사업 임원 프랑크 쇼프루아와 결혼하여 세 자녀(제안, 루이, 마틸드)를 두었다. 2000년 쇼프루아와 이혼 후, 2002년 국민전선 전 국가 서기이자 노르파드칼레 지역 선거 전 고문이었던 에릭 로리오와 재혼했으나, 2006년 이혼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루이 알리오와 동거했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국민전선 사무총장을, 그 후에는 국민전선 부회장을 역임했다. 2014년 9월부터 세 자녀와 함께 라 셀 생 클루에 거주하고 있다. 에닌보몽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알리오와 함께 밀라에 집을 소유하고 있다.
자신을 비실천적 가톨릭 신자라고 묘사했다. 자녀들은 생니콜라 뒤 샤르도네 교회에서 생피우스 10세회 사제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
7. 저서
* À contre flots프랑스어, 자크 그랑셰르(Jacques Grancher), 2006 (자서전)
* Pour que vive la France프랑스어, 자크 그랑셰르(Jacques Grancher), 2012
* 自由なフランスを取り戻す―愛国主義か、グローバリズムか일본어, 木村三浩(키무라 미츠히로) 편집, 花伝社(카덴샤), 2017년
8. 역대 선거 결과
| | 직책명 || 대수 || 정당 || 1차 득표율 || 1차 득표수 || 2차 득표율 || 2차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 1993년 선거 | 하원의원 (파드칼레 제16선거구) | 10대 | 국민전선 | 11.10% | 3,963표 | 3위 | 낙선 | ||
| 2002년 선거 | 하원의원 (파드칼레 제13선거구) | 12대 | 국민전선 | 24.24% | 10,228표 | 32.30% | 12,266표 | 2위 | 낙선 |
| 2004년 선거 | 일드프랑스 주지사 | 4대 | 국민전선 | 12.26% | 448,983표 | 10.11% | 395,516표 | 3위 | 낙선 |
| 2004년 선거 | 유럽의원 (일드프랑스 선거구) | 6대 | 국민전선 | 8.58% | 234,893표 | 비례대표 1번 | |||
| 2007년 선거 | 하원의원 (파드칼레 제14선거구) | 13대 | 국민전선 | 24.47% | 10,593표 | 41.65% | 17,107표 | 2위 | 낙선 |
| 2009년 선거 | 유럽의원 (노르파드칼레 선거구) | 7대 | 국민전선 | 10.18% | 253,009표 | 비례대표 1번 | |||
| 2010년 선거 | 노르파드칼레 주지사 | 5대 | 국민전선 | 18.31% | 224,871표 | 22.20% | 301,190표 | 3위 | 낙선 |
| 2012년 선거 | 대통령 | 24대 | 국민전선 | 17.90% | 6,421,773표 | 3위 | 낙선 | ||
| 2012년 선거 | 하원의원 (파드칼레 제11선거구) | 14대 | 국민전선 | 42.26% | 22,460표 | 49.89% | 26,696표 | 2위 | 낙선 |
| 2015년 선거 | 노르파드칼레피카르디 주지사 | 1대 | 국민전선 | 40.64% | 909,025표 | 42.23% | 1,015,662표 | 2위 | 낙선 |
| 2017년 선거 | 대통령 | 25대 | 국민전선 | 21.30% | 7,678,491표 | 33.90% | 10,653,798표 | 2위 | 낙선 |
| 2017년 선거 | 하원의원 (파드칼레 제11선거구) | 15대 | 국민전선 | 46.02% | 19,997표 | 58.60% | 22,769표 | 1위 | -- |
| 2022년 선거 | 대통령 | 26대 | 국민전선 | 23.15% | 8,133,828표 | 41.46% | 13,297,760표 | 2위 | 낙선 |
| 2022년 선거 | 하원의원 (파드칼레 제11선거구) | 16대 | 국민전선 | 53.96% | 21,219표 | 61.03% | 22,303표 | 1위 | -- |
| 2024년 선거 | 하원의원 (파드칼레 제11선거구) | 17대 | 국민전선 | 61.03% | 22,303표 | 1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