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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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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소포타미아 속주는 로마 제국이 파르티아를 정복한 후 설치되었으며,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 잠시 존재했다. 트라야누스는 113년부터 117년까지 파르티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아르메니아와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속주로 만들었으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정복지를 포기했다. 이후 세베루스 왕조 시기에 메소포타미아가 다시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로마-페르시아 전쟁의 격전지가 되었고, 7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당하면서 동로마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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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속주
지도
로마 제국 내의 메소포타미아 속주 (117년)
로마 제국 내의 메소포타미아 속주 (117년)
기본 정보
일반 명칭메소포타미아
정치 체제속주
국가로마 제국
시대고대
수도아미다 (디야르바크르)
다라 (오우즈)
니시비스
역사
존속 기간116년–117년
198년–637년
시작 연도116년
시작 사건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설치됨
사건 1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철수
날짜 1117년
사건 2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재설치
날짜 2198년
종료 연도637년
종료 사건무슬림의 정복
현재 국가이라크
튀르키예
시리아
쿠웨이트
이전 국가파르티아
계승 국가라시둔 칼리파국

2. 트라야누스의 메소포타미아 정복과 속주 설치 (113년 ~ 117년)

113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파르티아 제국을 상대로 원정을 시작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하고 속주로 편입하였다.[1][2] 트라야누스114년에 아르메니아를 정복했고, 115년에는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정복했다. 116년에는 메소포타미아 중부 및 남부와 아디아베네를 정복하고, 수사를 점령하여 파르티아 왕 오스로에스 1세를 폐위시킨 뒤, 자신의 꼭두각시 통치자 파르타마스파테스를 파르티아 왕좌에 앉혔다.

그러나 트라야누스가 죽자 그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는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정복지를 포기했고, 그 지역은 다시 로마 제국의 동쪽 경계가 되었다.[3][4]

2. 1.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113년 ~ 116년)

113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재위 98년–117년)는 로마의 오랜 동방 경쟁국인 파르티아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114년에는 아르메니아를 정복하여 속주로 만들었고, 115년 말까지는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다. 이 지역 역시 116년 초에 속주로 조직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전이 주조되었다.[1]

같은 해 말, 트라야누스는 메소포타미아 중부 및 남부로 진격하여(메소포타미아 속주를 확장하고 완성) 티그리스 강을 건너 아디아베네를 점령하여 또 다른 로마 속주인 아시리아에 병합했다.[2]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16년 마지막 달에는 수사를 점령하고 파르티아 왕 오스로에스 1세를 폐위시킨 뒤, 자신의 꼭두각시 통치자 파르타마스파테스를 파르티아 왕좌에 앉혔다. 로마 제국이 이처럼 동쪽으로 멀리 진출한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2. 2. 속주 설치와 로마 제국의 확장

113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 (재위 98년–117년)는 로마의 오랜 동방 경쟁국인 파르티아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114년에는 아르메니아를 정복하여 속주로 만들었고, 115년 말까지는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했다. 이 지역 역시 116년 초에 속주로 조직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전이 주조되었다.[1]

같은 해 말, 트라야누스는 메소포타미아 중부 및 남부로 진격하여(메소포타미아 속주를 확장하고 완성) 티그리스 강을 건너 아디아베네를 점령하여 또 다른 로마 속주인 아시리아에 병합했다.[2] 116년 마지막 달에는 수사를 점령하고 파르티아 왕 오스로에스 1세를 폐위시킨 뒤, 자신의 꼭두각시 통치자 파르타마스파테스를 파르티아 왕좌에 앉혔다. 로마 제국이 이처럼 동쪽으로 멀리 진출한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2. 3. 하드리아누스의 철수와 유프라테스 강 경계 확립 (117년)

트라야누스가 죽고 황제가 된 하드리아누스 (재위: 117년–138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통치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정복지에서 철수했다.[15][16] 하드리아누스는 유프라테스 강을 로마 제국의 동쪽 경계로 재설정하였다.

3. 세베루스 왕조의 메소포타미아 재정복과 속주 재건 (195년 ~ 198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크테시폰을 약탈하는 것으로 파르티아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트라야누스의 선례를 따라 198년에 메소포타미아 속주를 다시 설치했는데, 니시비스는 완전한 콜로니아 지위로 격상되어 수도가 되었다.[7][8]

새로운 속주의 경계는 남쪽으로는 오스로에네 속주,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동쪽으로는 차보라스 강(현재의 하부르 강)으로 한정되었다. 이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포함했던 트라야누스 시대의 속주와는 다른 점이었다.[9]

3. 1. 루키우스 베루스의 메소포타미아 원정 (161년 ~ 166년)

공동 황제 루키우스 베루스는 파르티아의 침공에 대응하여 메소포타미아 원정을 실시, 오스로에네를 포함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재정복하였다.[1] 이 지역을 속주로 편입하지는 않고, 니시비스를 중심으로 로마군 수비대를 주둔시킨 채 현지 통치자에게 맡겼다.[1]

3. 2. 5황제의 해와 메소포타미아 반란 (195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페스체니우스 니게르 간의 내전 중이던 195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반란이 일어나 니시비스가 포위되었다. 세베루스는 신속하게 반란을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하여 오스로에네를 정식 속주로 편입했다.[5][6]

3. 3.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파르티아 원정과 속주 재건 (198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파르티아 원정을 감행하여 198년에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정복했다.[19][20] 그는 트라야누스의 사례를 따라 메소포타미아 속주를 설치했으며, 수도로 지정된 니시비스는 식민시로 승격되었다.[7][8]

트라야누스 시대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 전역을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속주와는 달리, 이때 신설된 속주의 영역은 남쪽으로는 오스로에네,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동쪽으로는 카보라스 강(현재 하부르 강)이라는 범위로 제한되었다.[9][21]

4. 로마-페르시아 전쟁과 메소포타미아 속주 (3세기 ~ 7세기)

메소포타미아 속주는 로마 제국과 사산 제국 간의 끊임없는 분쟁의 중심지였다. 3세기부터 7세기까지 이 지역은 양 제국 간의 전쟁터가 되었다.

1864년에 제작된 로마 제국 전역 지도

4. 1. 사산 제국의 침공과 로마의 대응 (3세기 ~ 4세기)



메소포타미아 속주는 로마의 지배 기간 동안 동쪽의 이웃 국가들과의 분쟁의 씨앗이 되었으며, 끊임없이 발발하는 로마-페르시아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6명의 황제의 해로 이어진 혼란기인 239년부터 243년까지, 쇠퇴해가는 파르티아를 대체한 사산 제국의 창시자 아르다시르 1세(재위 224–241)가 이 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했지만, 243년 티메시테우스에 의해 수복되었다.[10] 250년대에는 페르시아의 샤 샤푸르 1세(재위 약 240–270)가 메소포타미아를 공격하여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재위 253–260)와 전투를 벌였으며, 260년 에데사 전투에서 그를 사로잡았다.[11] 그러나 이듬해 팔미라오다에나투스가 샤푸르에게 대항하여 결국 샤푸르는 물러났다.[12]

4. 2.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1세의 개혁 (4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와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의 개혁에 따라 메소포타미아 속주는 동방 관구에 편입되었고, 이는 다시 동방 프라이토리아니 제국에 종속되었다.[25]

메소포타미아의 로마군 주둔지 지도. 1436년 사본에서


니시비스와 싱가라,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복한 아디아베네 지역은 363년 율리아누스의 페르시아 원정 실패 이후 상실되었고, 수도는 아미다로 이전되었다. 군사 지휘관인 ''dux Mesopotamiae'' (메소포타미아 공작)의 거점은 콘스탄티나에 위치했다. 다른 도시로는 마르티로폴리스와 케파스가 있었다.[25]

4. 3.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속주 분할과 동로마-사산 전쟁 (6세기 ~ 7세기)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전쟁 (502–506) 이후 니시비스에 대항하기 위해 다라 요새를 건설하고, 이곳을 '메소포타미아 공작'의 새로운 기지로 삼았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개혁 기간 동안, 메소포타미아 속주는 분할되었다. 마르티로폴리스가 있는 북부 지역은 새로운 아르메니아 IV 속주로 넘어갔고, 나머지는 티그리스강 남쪽 지역(아미다를 수도로 함)과 투르 압딘 지역(다라를 수도로 함)의 두 개의 민간 및 교회 구역으로 나뉘었다.[9] 이 속주는 6세기에 페르시아와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573년에는 페르시아가 다라를 점령하기까지 했지만, 동로마는 591년 평화 조약에 따라 이를 회복했다. 602–628년의 대전쟁에서 다시 페르시아에게 빼앗겼고, 이후 되찾았지만 633–640년에 무슬림 정복으로 인해 전체 지역을 영구적으로 잃었다.[9]

5. 이슬람 세력의 발흥과 메소포타미아 상실 (7세기)

7세기, 무함마드가 이끄는 이슬람 세력이 급격히 성장하여 비잔틴 제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7] 서적
[8] 서적
[9] 서적
[10] 서적
[11] 서적
[12] 서적
[13] 서적
[14] 서적
[15] 서적
[16] 서적
[17] 서적
[18] 서적
[19] 서적
[20] 서적
[21] 서적
[22] 서적
[23] 서적
[24] 서적
[25] 서적
[2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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