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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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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시족은 부르키나파소에 기원을 둔 민족으로, 베냉,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 주변 국가에도 거주하며, 2022년 부르키나파소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모시족은 15세기 중엽 텐코도고를 수도로 하는 모시 왕국을 건설하여 말리 제국과 송가이 제국에 대항했으며, 19세기 프랑스 식민 지배 하에서도 간접 통치를 통해 왕의 권위를 유지했다. 모시족은 언어,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며, 가족, 토지, 계층 구조를 중시하는 독특한 사회 조직을 가지고 있다. 모시족은 정치, 군사,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저명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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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족
기본 정보
민족명모시족
고유 명칭Mooaga
모시 나바 (지도자)
인구' 11,118,983명 (52%)'
' 120만 명'
' 160,140명'
주요 거주 지역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북부
가나 북부
사용 언어모시어
아프리카 프랑스어
종교이슬람교 65%
기독교 15%
아프리카 전통 종교 20%
관련 민족맘프루시족
구룬시족
다곰바족
구르마족
기타 구르족
민족명 정보
사람모아가
민족모세
언어모오레
국가모고

2. 역사

모시족은 현재 부르키나파소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민족이지만, 베냉, 코트디부아르, 가나, 말리, 토고 등 주변 국가에도 상당수가 살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부르키나파소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1,100만 명이 모시족이며, 코트디부아르에도 약 20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으로 모시족은 15세기 중엽[11]텐코도고를 수도로 삼아 모시 왕국을 세웠다. 이들은 강력한 기마 부대를 바탕으로 당시 강성했던 말리 제국이나 송가이 제국과 같은 주변 세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이후 모시 왕국은 여러 개로 나뉘어 발전했으며, 이러한 독립적인 왕국들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세력이 이 지역까지 확장되면서 1919년에는 프랑스령 오트볼타 식민지가 세워졌다. 그러나 모시 왕국들은 이미 잘 조직된 통치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에, 프랑스는 기존의 왕국 구조를 이용하는 간접 통치 방식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식민지 시대에도 모시족의 전통적인 왕의 권위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

1960년 오트볼타 공화국(현 부르키나파소)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모시족은 신생 국가의 다수 민족이 되었다. 독립 이후 부르키나파소 내에서는 특정 민족에게 부와 권력이 쏠리는 현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아, 모시족과 다른 민족 간의 심각한 갈등은 비교적 적었다.

2. 1. 기원

모시족의 기원에 관한 전승과 신화에 따르면, 모시족은 맘푸루시 또는 다곰바 왕국의 공주인 옌네가와 만데족 사냥꾼 리알레의 결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옌네가는 현재 가나 북부 지역에 있던 나아 그베와 왕의 딸이자 용맹한 전사 공주였다. 나아 그베와 왕의 무덤은 가나 동북부 지역의 푸시가에 있다. 옌네가는 말을 타고 왕국을 탐험하던 중 길을 잃었으나, 외딴 곳에 살던 만데족 사냥꾼 리알레에게 구조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아들 우에드라오고를 낳았으며, 우에드라오고는 모시족의 시조로 여겨진다.[1]

역사적으로는 15세기 중엽[11]에 현재의 부르키나파소 지역에 모시 왕국이 세워졌다. 첫 수도는 텐코도고였으며, 강력한 기마 부대를 바탕으로 당시 강성했던 말리 제국이나 송가이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했다. 이후 모시 왕국은 북부의 와히구야 왕국, 중부의 와가두구 왕국, 남부의 텐코도고 왕국으로 나뉘었으며, 이 세 왕국은 19세기까지 각자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이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프랑스령 수단, 세네감비아 니제르, 오트세네갈 니제르 등) 1919년 프랑스령 오트볼타 식민지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모시 왕국은 이미 잘 조직된 통치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직접 통치 대신 기존의 왕국 구조를 활용하는 간접 통치 방식을 채택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식민 지배 하에서도 모시족 왕들의 권력은 상당 부분 유지될 수 있었다.

2. 2. 모시 제국

모시족의 기록은 주로 아자미 문자로 작성되었으나, 그들의 역사는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이 때문에 정확한 기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모시족 국가의 시작을 11세기로 추정한다.[2] 모시족은 뛰어난 기마술을 바탕으로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번영하는 제국을 건설했으며, 19세기 프랑스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했다. 모시 제국의 확장은 19세기 프랑스의 본격적인 식민지화가 시작되면서 중단되었다.

모시 기병대는 한때 현재 부르키나파소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다.


모시족의 신화에 따르면, 모시 왕가는 현재 가나 북부에 위치한 다곰바족 공주와 만데족 사냥꾼 사이에서 태어난 우에드라오고라는 인물을 시조로 삼는다.

역사적으로 15세기 중엽[11]텐코도고를 수도로 하는 지역에 모시 왕국이 세워졌다. 이들은 강력한 기마군을 바탕으로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말리 제국이나 송가이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했다. 이후 와히구야를 수도로 하는 북부 모시와 와가두구를 수도로 하는 중부 모시가 텐코도고를 수도로 하는 남부 모시로부터 독립하여 세 왕국으로 나뉘었고, 19세기까지 각각 독립을 유지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이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프랑스령 수단, 세네감비아 및 니제르, 상류 세네갈 및 니제르) 프랑스의 통치는 모시 사회에 영향을 미쳐, 모시 황제인 ''모고 나바''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프랑스 침략 초기, 모고 나바는 모시족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맘프루시 왕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1896년, 모고 나바는 결국 프랑스의 보호령을 받아들였다. 1919년에는 프랑스령 오트볼타 식민지가 성립되었다. 모시 제국은 잘 조직된 국가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이 지역에 간접 통치를 도입하여 각 왕국을 이용한 식민 지배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시대에도 모고 나바는 모시족에 대한 일정 수준의 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고, 오늘날에도 사회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자문을 받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프랑스 군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프랑스어로 ''Tirailleurs Sénégalais''(세네갈 저격병)로 알려진 프랑스 서아프리카 군단에 소속되어 참전했다.[3]

오트볼타 공화국1960년 독립하면서 모시족은 신생 국가의 다수 민족이 되었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특정 민족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아, 모시족과 다른 민족 간의 심각한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다. 1985년에는 말리 공화국과 부르키나파소 사이에 아가셰 지구 전쟁(크리스마스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2. 3. 식민지 시대



19세기 후반, 프랑스는 현재 부르키나파소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모시 왕국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침략 초기, 당시 모시 황제인 모고 나바는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남쪽의 맘프루시 왕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1896년, 모고 나바는 결국 프랑스의 보호령 제안을 받아들였다.

프랑스의 통치는 모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모시 황제인 모고 나바의 권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1919년 프랑스령 오트볼타 식민지가 공식적으로 성립된 이후, 프랑스는 비교적 잘 조직된 모시 왕국의 구조를 이용한 간접 통치 방식을 채택했다. 이로 인해 모고 나바는 식민 통치 하에서도 모시족에 대한 일정 수준의 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고, 프랑스 당국은 모시족 관련 문제에 대해 그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프랑스 식민 당국에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많은 모시족 남성들이 다른 서아프리카 민족들과 함께 프랑스 군대에 징집되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프랑스 서아프리카 군대의 일원으로, 흔히 '세네갈 저격병'(Tirailleurs Sénégalais|티라이외르 세네갈레fra)으로 불렸다.[3]

2. 4. 독립 이후

오트볼타 공화국1960년에 독립하자 모시족은 오트볼타(현 부르키나파소)의 다수 민족이 되었다. 하지만 부르키나파소 국내에서는 특정 민족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모시족과 다른 민족 간의 갈등도 발생하지 않았다.

1985년에는 말리 공화국과 부르키나파소 사이에 크리스마스 전쟁이 발발하여 양국이 교전하였다.

3. 사회 조직

모시족 사회는 가족국가를 핵심 요소로 하는 독특한 계층 구조를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사회는 크게 정치적 지배 계급인 나콤세(mos)와 영적 계급인 텡가비시(mos)로 나뉜다. 모든 추장은 나콤세 출신이다. 텡가비시 계급 내에는 사야(mos, 대장장이), 뇨뇨세(mos, 농부), 야르세(mos, 직공 및 상인) 등 다양한 집단이 포함된다. 이 두 주요 계급은 일반적으로 융합되어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각자의 지배 가문을 가진 하위 집단으로 나뉜다. 모시족 사회는 모든 수준에서 계층이 존재하며, 일상생활에서는 특히 가족 단위의 계층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3. 1. 모고 나바와 나콤세

모시족 사회는 가족과 국가를 핵심 요소로 하는 독창적인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회는 크게 두 계층으로 나뉘는데, 남쪽에서 온 기마병의 후예인 나콤세(Nakomse, 복수형)와 기존 농경민의 후예인 텡가비시(Tengabisi)이다. 나콤세는 정치적 지배 계급이며, 모든 추장(나파, Naaba)은 이 계급 출신이다. 이들은 정치적인 예술로 형상을 사용하여 정복한 사람들에 대한 통치를 정당화한다. 반면 텡가비시는 영적 계급으로 간주되며, 땅의 소유권을 가진 이들로 여겨진다. 텡가비시에는 사야(대장장이), 야르세(직공 및 상인), 그리고 농부인 뇨뇨세(Nyon-nyonse) 등이 포함된다. 뇨뇨세는 모시 사회에서 가면을 만드는 주요 제작자이자 사용자이다. 일반적으로 대장장이와 상인은 가면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나콤세와 텡가비시는 역할과 문화적 표현(나콤세는 조각상, 텡가비시는 가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모시 사회의 최고 지위는 모고 나바(Mogho Naaba)이며, 행정 권한을 가지고 전체 인구를 통치하며 왕국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오늘날 모고 나바는 모시 제국의 역사적 수도이자 현재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 거주한다. 국가의 정치적 상황은 변했지만, 모고 나바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인정받으며 상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

나바 좀브 웝고, 안뎀텐가


모고 나바 아래에는 귀족 계층인 나콤세("권력의 사람들", 단수형: 나코암브가 Nakoambga)가 있다. 이들은 모고 나바의 형제, 자매, 사촌 등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고위직은 모고 나바의 가족 출신이며, 나콤세는 종종 왕국 내 영토를 할당받아 모고 나바의 이름으로 통치한다. 모고 나바가 권력을 완전히 행사하기 위해서는 '뇽뇽세'(Nyon-nyonse, 또는 그농그농세 Gnongnonse)라고 불리는, 모시족이 오기 전부터 해당 지역에 살았던 선주민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모시족의 무리 도착, 1892


독일의 인류학자 레오 프로베니우스는 1904년부터 1906년 사이 와가두구를 방문했을 때 모시족 황제를 칭하는 '모고 나바'라는 용어를 기록했다. 그는 당시 아프리카를 방문했던 유럽의 상인이나 군인들과 달리,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모시 사회를 관찰했다. 프로베니우스는 모고 나바의 궁정이 마치 유럽의 궁정처럼 귀족들이 상업, 권력, 산업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보고는 당시 아프리카 사회를 유럽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던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인종차별 없는 시각과 아프리카의 발전된 문명에 대한 기술은 W.E.B. 듀보이스와 같은 흑인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1960년대,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던 시기에 역사가 엘리엇 P. 스키너는 그의 저서 '상부 볼타의 모시족: 수단 민족의 정치적 발전'에서 모시족의 정교한 정치 시스템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스키너는 이를 통해 아프리카 민족이 스스로를 통치할 충분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강조하며, 식민주의적 시각에 도전했다.[5] 모시족 내 집단 정체성과 가치는 무엇보다도 언어와 관련되어 있으며, 다른 민족 집단과 비교를 통해 형성된다.

3. 2. 텡가비시와 뇨뇨세

모시족은 가족국가를 핵심 요소로 하는 독창적인 계층 구조로 사회를 조직했다. 모시족 사회는 남쪽에서 온 기마병 침략자들이 세운 정치적 지배 계급인 나콤세(단수형: 나콤방가)와 기존 토착민 중심의 영적 계급인 텡가비시로 크게 나뉜다. 모든 추장은 지배 계급인 나콤세 출신이다.

텡가비시는 사회의 영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사야(대장장이), 뇨뇨세(농부), 야르세(직공 및 상인) 등이 포함된다.

특히 뇨뇨세는 모시족 사회 형성 이전부터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여러 민족 집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쪽에서는 도곤족과 쿠룸바족, 남서쪽에서는 렐라족, 누나족, 시살라족 등이 조상이며, 극동 지역에서는 구르만체족이 조상이었다. 이 다양한 기원을 가진 집단들은 1500년경 모시족이라는 새로운 민족 정체성 아래 통합되었다.

따라서 '뇨뇨세 부족'이나 '뇨뇨세의 예술'과 같이 뇨뇨세를 모시족과 분리된 독립적인 집단으로 묘사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모든 뇨뇨세는 모시족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시 사회 내에서는 나콤세와 텡가비시 간의 문화적 역할 분담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마스크는 영적 계급인 텡가비시만이 사용하며, 정치적 축제에서 조각상을 사용하는 것은 정치 계급인 나콤세의 역할이다.

3. 3. 장인과 평민

모시족 사회는 가족국가를 핵심 요소로 하는 독특한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시족은 매우 다양하며, 사회는 크게 두 계급으로 나뉜다. 남쪽에서 온 기마 침략자들의 후예인 나콤세(mos, 단수형: mos)는 정치 또는 지배 계급을 형성했고, 정복당한 원주민들의 후예인 텡가비시(mos)는 영적 계급을 이루었다. 모든 추장은 지배 계급인 나콤세 출신이다.

텡가비시 계급 안에는 다양한 직업 집단이 포함되는데, 이들이 모시 사회의 장인과 평민 계층을 구성한다. 대표적으로 사야(mos, 대장장이), 뇨뇨세(mos, 농부), 야르세(mos, 직공 및 상인) 등이 있다.

특히 농민 계층인 뇨뇨세는 다양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북쪽에서는 도곤족과 쿠룸바족이 조상이었고, 남서쪽에서는 렐라족, 누나족, 시살라족 등이, 극동에서는 구르만체족이 조상이었다. 이 다양한 집단들은 1500년경 모시족이라는 새로운 민족 정체성 아래 통합되었다. '뇨뇨세 부족'이나 '뇨뇨세의 예술'과 같은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데, 뇨뇨세는 모시 사회라는 틀 안에서만 존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모든 뇨뇨세는 모시족의 일부이다.

동시에 모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문화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지배 계급인 나콤세와 영적 계급인 텡가비시 사이에는 뚜렷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스크는 텡가비시 계급만이 사용하며, 정치적 축제에서 조각상을 사용하는 것은 나콤세 계급에 국한된다.

모시족 인구의 대다수는 황제의 신하이며, 나콤세와 텡가비시 두 집단은 일반적으로 융합되어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각자의 지배 가문을 가진 하위 집단으로 나뉜다. 이들은 의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를 함께 수행한다. 모시족 사회는 모든 수준에서 계층이 존재하며,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강하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특히 가족 단위의 계층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4. 언어 및 문화

모시족은 가나 북부에 거주하는 다고바족이나 맘프루시족과 언어 및 문화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왕의 계통 또한 비슷하여 가까운 민족으로 여겨진다.

4. 1. 문화적 가치

모시족은 조상이 더 나은 세상에 도달하여 지상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조상은 자손의 행동에 따라 그들을 돕거나 벌할 수 있으며, 자손이 "조상의 판테온"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심판하는 권한을 가진다고 여겨진다. 만약 조상이 입장을 거부하면, 그 영혼은 영원히 방황하게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모시족은 조상이나 땅에 맹세하며, 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 단순한 상징을 넘어 즉각적인 정의를 요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토지는 조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조상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로 간주된다. 이러한 관념은 오늘날에도 모시족의 토지에 독특한 가치를 부여한다. 토지는 단순한 흙 이상의 영적인 차원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며, 모시족 개인의 삶과 가족 정착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가족은 모시족 문화의 핵심이며, 집단주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전통적인 모시 문화에는 개인주의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행동은 항상 가족 전체의 특징으로 간주된다. 어떤 일을 하든 어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며, 모든 사람은 가족의 이름으로 행동해야 한다. 따라서 가족은 모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전통적으로 사회는 부계 중심으로 운영되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상속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남성에게 아들이 없을 경우, 여성도 남편과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을 수 있다.

계층 구조는 모시족에게 기본적인 개념이며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가족은 마치 작은 왕국처럼 조직되는데, 남편이자 아버지가 왕, 그의 아내가 조언자, 그리고 자녀들이 백성의 역할을 한다. 고모와 삼촌은 자녀의 교육과 양육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모시족은 농경 민족으로, 주로 도조나 수수 등을 재배하며 정착 생활을 한다. 이들의 마을은 보통 산촌을 이루고 있다. 전통적인 주거 형태는 원통형의 흙벽 위에 원뿔 모양의 초가 지붕을 얹은 모습이며, 집 안에는 별도의 방 구분이 없다.

가나 북부에 거주하는 다고바족이나 맘프루시족과는 언어, 문화, 왕의 계통 등이 매우 유사하여 가까운 민족으로 여겨진다.

4. 2. 전통 및 문화 행사

부르키나파소 쿠리텐가주 안뎀텡가에서 모시족 추장 나바 좀보 워브고의 나쿠보 의식 중 공연하는 안뎀텡가 댄스단


모시족의 삶은 다양한 의례와 축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행사는 공동체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상을 기리는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의례 중 하나는 금요일마다 모고 나바의 법정에서 열리는 모로-나바 의식이다. 이 의식은 과거 모로 나바의 누이가 모든 권력의 상징인 '남'이라는 부적을 가지고 북쪽의 야텡가로 도망친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 모로 나바는 누이를 쫓아가 부적을 되찾을지, 아니면 남아서 백성을 다스릴지 고민했다. 그는 세 번이나 말을 타고 궁을 나섰다가 돌아왔고, 결국 누이를 쫓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야텡가의 왕들은 자신들이 모시 통치의 진정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시 사회의 정치 세력인 나콤세(단수형: 나코암브가)는 예술을 통해 자신들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특히 말과 관련된 고삐, 안장, 등자 등은 중요한 상징물로 여겨진다. 또한, 모시 족장들은 조각된 나무 조각상을 사용하여 왕족 조상을 나타낸다. 이 조각상들은 매년 열리는 '나 포섬'이라는 왕실 축제 기간에 전시된다. 이 축제에서 각 가문의 가장들은 족장에게 다시 한번 충성과 헌신을 맹세한다.[8]

5. 저명한 모시족

모시족 출신 인물들은 부르키나파소베냉 등에서 정치, 군사,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5. 1. 정치 및 군사

모시족 출신 인물 중 정치 및 군사 분야에서 활동한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름주요 경력/직책
블레즈 콩파오레부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1987년 ~ 2014년)
폴 앙리 산다오고 다미바부키나파소의 현 대통령
질베르 디앵데레군인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부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위베르 마가베냉의 전 대통령
토마 상카라부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1983년 ~ 1987년)
야코바 이삭 지다군인


5. 2. 스포츠

모시족 출신 인물 중에는 축구 분야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있다.


5. 3. 기타

이름주요 경력/직업
블레즈 콩파오레부르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1987~2014년)
폴 앙리 산다오고 다미바부르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질베르 디앵데레군인
샤를 카보레축구 선수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부르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자카리자 코네축구 선수
위베르 마가베냉의 전 대통령
프레쥐스 나쿨마축구 선수
이시아카 우웨드하우구축구 선수
세이두 파낭데티기리축구 선수
조나탕 피트로이파축구 선수
플로랑 루암바축구 선수
토마 상카라부르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1983~1987년)
부바카르 사노고축구 선수
야야 사노고축구 선수
에드몽 탑소바축구 선수
야코바 이삭 지다군인
뱅자맹 발리마축구 선수


참조

[1] 웹사이트 The Rise & Fall of The Powerful Mossi Kingdoms https://our-ancestor[...] 2022-04-25
[2] 웹사이트 Mossi states {{!}} historical empire, Africa {{!}}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2-04-25
[3] 논문 African colonial soldiers, memories and imagining migration in Seneg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8-07-17
[4] 서적 Le Noir du Yatenga Larose
[5] 서적 The Mossi of the Upper Volta: The Political Development of a Sudanese People Stanford University Press
[6] 서적 Gur 1989
[7] 서적 The Niger-Congo Languages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89
[8] 웹사이트 Mossi Political Art: Royal Figures for the Ruling Elite http://www.uiowa.edu[...] Department of Art History, [[The University of Iowa]] 2013-07-10
[9] 웹사이트 Mask styles http://www.uiowa.edu[...] Department of Art History, The University of Iowa 2020-12-03
[10] 웹사이트 Scanned photos catalogue http://www.uiowa.edu[...] 2020-12-03
[11] 문서 現地の伝説では[[1120年]]という説をと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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