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라
1. 개요
바르바라는 4세기 초 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 시대에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독교 성인이다. 7세기에 《순교자 행전》과 《황금전설》을 통해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부유한 이교도 디오스코루스의 딸로, 기독교로 개종한 후 아버지에 의해 고문과 사형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르바라는 14 성인 협조자 중 한 명으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받으며, 특히 포병, 광업, 탄약고, 터널 공사 등 위험한 직업군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성 바르바라의 날에는 '바르바라의 가지'와 '바르바라의 밀'과 같은 풍습이 전해지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기념 행사와 숭배가 이루어진다.
| 존칭 | 성녀 |
|---|---|
| 이름 | 바르바라 |
| 그리스어 | Αγία Βαρβάρα |
| 콥트어 | Ϯⲁⲅⲓⲁ Ⲃⲁⲣⲃⲁⲣⲁ |
| 교회 슬라브어 | Великомученица Варва́ра Илиопольская |
| 아랍어 | القديسة الشهيدة بربارة |
| 출생 | 3세기 중반 |
| 출생지 | 헬리오폴리스 (로마 페니키아) 또는 니코메디아, 비티니아 |
| 사망 | 3세기 후반 ~ 4세기 초 (아버지에 의해 처형) |
| 기념일 | 12월 4일 (가톨릭 교회 및 동방 정교회) 코이아크 8일 (콥트 정교회) 메스케렘 25일 (에티오피아 정교회) 11월 24일 (미국 성공회) |
| 숭배 |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아글리파얀 교회 성공회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칭호 | 동정녀 및 순교자 |
|---|---|
| 상징 | 3개의 창문이 있는 탑, 종려나무, 성작, 번개, 순교의 왕관 |
| 수호 | 파테르노, 리에티 (이탈리아) 갑옷 제작자 건축가 포병 소방관 불꽃놀이 제작자 수학자 광부 터널 작업자 번개 화학 공학자 죄수 레바논 왕립 공군 병기 담당관 |
| ISBN | 978-88-209-7210-3 |
|---|
-
306년 사망 -
사마옹
사마옹은 서진의 황족이자 군벌로, 팔왕의 난에 가담하여 혼란을 야기했으며, 진서장군으로서 관중 지역을 수비하다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암살당했다. -
306년 사망 -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는 로마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293년부터 306년까지 로마 제국의 부제와 정제를 역임하며 군사적 업적을 세우고 기독교 박해에 소극적이었으며 아들 콘스탄티누스 1세가 황제가 되었다. -
오리엔트 정교회 성인 -
엘리사벳
사가리아의 아내이자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친척으로, 오랫동안 불임이었으나 고령에 요한을 임신하여 마리아 방문 시 성령의 인도로 축복의 말을 전했으며, 이는 아베 마리아 기도의 일부가 되었다. -
오리엔트 정교회 성인 -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는 막센티우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한 기독교 성녀로, 황제의 유혹을 거절하고 이교도 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했으나 순교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역사적 실존 여부는 논란이 있지만 중세 이후 널리 숭배받으며 학문과 순교의 상징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
3세기 기독교 성인 -
교황 식스토 2세
교황 식스토 2세는 257년부터 258년까지 로마 교황으로 재임했으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했고, 아프리카 및 동방 교회와의 관계 회복에 기여했으며, 저술 활동의 진위 여부는 논란이 있다. -
3세기 기독교 성인 -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는 막센티우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한 기독교 성녀로, 황제의 유혹을 거절하고 이교도 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했으나 순교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역사적 실존 여부는 논란이 있지만 중세 이후 널리 숭배받으며 학문과 순교의 상징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3세기 로마 제국 니코메디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르바라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아버지 디오스코루스에 의해 탑에 갇혀 살았다. 그녀는 탑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창문을 내도록 했다.
딸의 개종에 분노한 아버지는 바르바라를 죽이려 했으나, 바위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 그녀를 보호했다. 그러나 양치기의 밀고로 붙잡힌 바르바라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기적으로 상처가 치유되고 알몸은 흰 옷으로 가려졌다. 바르바라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2월 4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천벌을 받아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2.1. 전승
바르바라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4세기 초 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 때의 박해로 순교한 것으로 보인다. 바르바라는 7세기에 《순교자 행전》이 편찬되고 뒤이어 《황금전설》이 출간되면서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성인전에 따르면, 바르바라는 헬리오폴리스 또는 니코메디아에서 태어났으며, 부유한 이교도 디오스코루스의 딸이었다. 디오스코루스는 바르바라를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탑에 가두고 철저히 감시했다. 바르바라는 몰래 기독교인이 된 후 아버지로부터 받은 결혼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에 대한 언급은 초기 기독교 문헌이나 성 히에로니무스의 순교록 원본에는 없다.
바르바라는 니코메디아의 왕 디오스코루스의 딸이었다. 바르바라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데다가 영특하기까지 한 자신의 딸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 딸이 좋지 못한 사람과 가까이하는 것을 우려하여 탑을 세우고 그 안에 딸을 감금하여 아무도 딸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더욱이 그녀는 아버지가 믿는 종교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공부하던 과정에서 아버지의 종교의 공허함을 깨닫게 되었고, 참된 진리를 알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되었다. 디오스코루스가 여행을 떠나 오랫동안 없는 사이 그리스도인과 사귀게 되어 그에게서 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독교야말로 참된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한 바르바라는 아버지가 지은 탑 속에서 은수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건축가를 설득하여 삼위일체를 기념하여 탑에 세 개의 창문을 내도록 했다.
바르바라의 아버지는 여행을 떠나기 전 그녀의 거주지 근처에 개인 목욕 시설을 짓도록 명령했고, 그가 부재한 동안 바르바라는 원래 의도했던 두 개의 창문 대신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창문을 설치했다.
바르바라는 기독교가 금지되었던 3세기의 로마 제국에서, 니코메디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구혼자들로부터 아름다운 딸을 멀리하려던 비기독교도인 아버지 디오스콜로스에 의해 바르바라는 탑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 감금 생활 속에서 그녀는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깨달았다. 어느 날, 두 개의 창문이 있는 욕실이 탑 내에 건설될 때, 바르바라는 창문을 3개로 늘렸다. 이 이유를 삼위일체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한 것에서, 딸이 기독교인임을 알게 된 아버지는 격앙하여 그녀를 죽이려 한다.
나중에 궁전으로 귀환한 니코메디아의 왕은 딸의 개종 소식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내며 그토록 사랑하던 딸을 매질하였다. 그러고는 빈사상태에 빠진 바르바라를 결박해 끌고 법정에 나가 재판관에게 내주어 고소하였다. 재판관은 바르바라를 타일러도 보고 위협하기도 하면서 바르바라에게 배교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한사코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이러한 바르바라를 괘씸하게 여긴 재판관은 형리에게 고문 명령을 내려 갈퀴로 온몸을 찢게 하고 횃불로 양쪽 배를 태운 다음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날 밤, 예수 그리스도가 탈혼 중에 발현하여 바르바라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해주었다. 다음날 다시 법정에 출두한 바르바라의 상처가 치유된 기적을 목격하고 재판관은 아연실색하였으나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전날보다 더 심한 고문을 가하며 그녀에게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역시 바르바라는 자신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끝내 바르바라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바르바라의 아버지는 그 사형 현장에 직접 참석하여 재판관을 충동질할 뿐 아니라, 사형이 선고되자 스스로 형리에게서 도끼를 빼앗아 딸의 사형 집행인이 되었다.
그 순간, 바위가 두 갈래로 갈라져 바르바라를 감싸 데려갔다. 그러나, 그녀를 발견한 양치기는 그 위치를 그녀의 아버지에게 밀고했다. 그 후, 양치기의 양들은 메뚜기로 변했다. 한편, 붙잡힌 바르바라는 기독교를 믿었다는 죄로, 불에 몸이 태워지는 등의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는 신이 가져온 기적으로 상처가 치유되었고, 그 알몸은 흰 얇은 옷으로 사람들의 눈에 직접 띄지 않도록 덮였다고 한다.
바르바라는 참수되었고, 곧바로 그녀의 아버지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아 온몸이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바르바라는 기독교인 발렌티누스에 의해 매장되었고, 그녀의 무덤은 기적의 장소가 되었다. 이 요약은 오래된 프랑스어 기록에서 보충된 그림 같은 세부 사항을 생략한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그녀의 순교는 "황제 막시미아누스와 총독 마르시엔이 통치하던" 12월 4일에 일어났고( 286–305), 성공회 부활 공동체의 해리 F. 윌리엄스 신부가 편집한 프랑스어 버전(1975)에서는 그 해가 267년으로 기록되었다. 12월 4일, 칼에 의해 그녀는 순교했지만, 그 아버지는 나중에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2.2. 역사적 검토
바르바라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4세기 초 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 때의 박해로 순교한 것으로 보인다. 바르바라는 7세기에 《순교자 행전》이 편찬되고 뒤이어 《황금전설》이 출간되면서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바르바라는 니코메디아의 왕 디오스코루스의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탑에 가두었으나, 바르바라는 그리스도인과 사귀게 되면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녀는 삼위일체를 기념하여 탑에 세 개의 창문을 내도록 했다.
딸의 개종 소식에 분노한 왕은 바르바라를 재판관에게 넘겼고, 재판관은 바르바라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르바라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기적이 일어났지만, 바르바라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바르바라는 사형 판결을 받았고,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사형을 집행하여 바르바라는 참수되었다. 바르바라의 아버지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바르바라는 3세기 로마 제국 니코메디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에 의해 탑 안에 갇혀 살았으나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바르바라는 탑에 세 개의 창문을 냈는데, 이는 삼위일체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그녀를 죽이려 했으나, 바위가 갈라져 바르바라를 보호했다. 그러나 양치기의 밀고로 붙잡힌 바르바라는 고문을 받았지만, 신의 기적으로 상처가 치유되고 알몸은 흰 옷으로 가려졌다. 결국 12월 4일, 바르바라는 순교했고, 아버지는 벼락에 맞아 죽었다.
3. 숭배
성 바르바라는 7세기에 로마에서 이름이 알려졌고, 숭배는 동방에서 9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 초기 순교록에는 그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역사적 실존 여부는 의심받고 있다. 그녀의 전설은 보베의 빈센트의 [[역사 거울]]라틴어과 이후 황금 전설에 포함되었다.
14 성인 협조자 중 한 명인 성 바르바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초래한 번개와 연관되어 번개와 불에 대한 기도로 불리게 되었으며, 폭발과의 연관성 때문에 포병과 광업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가톨릭 교회와 대부분의 성공회에서 그녀의 축일은 12월 4일이다. 12세기에 로마에서 도입되어 트리엔트 전례력에 포함되었으나, 1969년 성인의 생애와 순교에 대한 기록이 꾸며낸 이야기로 판단되어 전례력에서 삭제되었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는 여전히 언급되며, 2022년에는 성공회 전례력에 공식적으로 추가되어 11월 24일에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안티오크의 마가렛과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12세기에 성 바르바라의 유물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키예프의 성 미카엘 황금 돔 수도원으로 옮겨졌고, 1930년대까지 그곳에 보관되었다가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으로 이전되었다. 2012년 11월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 키예프 총대주교청의 필라레트 총대주교가 성 바르바라의 유물 일부를 블루밍데일, 일리노이에 있는 성 안드레아 우크라이나 정교회 대성당으로 옮겼다.
고문을 받던 바르바라가 꺾은 가지에서 꽃이 피었다는 일화에서, 독일과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는 벚꽃, 살구, 사과, 개나리 등의 가지를 12월 4일 성 바르바라의 날에 물에 꽂아 크리스마스 즈음에 핀 꽃의 수로 행복을 점치는 바르바라의 가지 풍습이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1969년에 성 바르바라를 성인력에서 제외했다.
3.1. 수호성인
성 바르바라는 14 성인 협조자 중 한 명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초래한 번개와 연관되어 번개와 불에 대한 기도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폭발과의 연관성 때문에 포병과 광업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숭배받는 성 바르바라는 천둥과 번개, 화약 폭발로 인한 모든 사고에 대항하여 기도를 받는다. 그녀는 포병, 갑옷 제작자, 군사 기술자, 총포 제작자, 그리고 대포와 폭발물을 취급하는 모든 사람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1600년대에 광업에서 화약이 널리 사용되면서, 광부, 굴착 기술자, 및 기타 지하 작업자의 수호성인으로 채택되었다. 광업과 관련된 지질학 및 광산 공학이 발전하면서 그녀는 이러한 직업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14구조 성인 중 한 명으로, 발열이나 급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며, 광산이나 불을 다루는 등 위험한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스페인어 [[:es:santabárbara스페인어, 이탈리아어 santabarbara이탈리아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프랑스어 Sainte-Barbe프랑스어는 배 또는 요새의 탄약고를 의미한다. 배나 요새를 갑작스러운 폭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탄약고에 성 바르바라의 조각상을 두는 것이 관례였다. 성 바르바라는 이탈리아 해군의 수호성인이다.
터널 산업에서는 오래된 전통으로, 각 새로운 터널링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업 중 하나는 터널 입구 또는 긴 터널 헤딩의 지하 교차점에 성 바르바라의 작은 사당을 세우는 것이다. 이어서 건설 기간 동안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보호를 위해 성 바르바라에게 헌신하고 기도를 드린다.
고문을 받던 바르바라가 꺾은 가지에서 꽃이 피었다는 일화에서, 독일과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는 벚꽃, 살구, 사과, 개나리 등의 가지를 12월 4일 성 바르바라의 날에 물에 꽂아 크리스마스 즈음에 핀 꽃의 수로 행복을 점친다. 이 점을 위한 가지를 바르바라의 가지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성 바르바라의 날에 물에 담근 밀이 크리스마스에 싹튼 수에 따라 다음 해의 풍흉을 점치는 일도 행해졌으며, 이 밀을 바르바라의 밀이라고 불렀다. 또한, 독일의 속담에 "흰 옷의 바르바라는 좋은 여름 계절을 알린다"고 하여, 성 바르바라의 날에 내리는 눈은 다음 해 여름의 풍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3.2. 전 세계의 숭배
성 바르바라의 이름은 7세기에 로마에서 알려졌으며, 그녀의 숭배는 동방에서 시작되어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에 대한 언급이 초기 순교록에 없기 때문에, 그녀의 역사적 실존 여부는 의심스럽게 여겨진다.
그녀의 전설은 보베의 빈센트의 [[역사 거울]]라틴어(xii.64)과 이후 버전의 황금 전설에 포함되어 있다.
성 바르바라는 14성인 협조자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을 초래한 번개와 연관되어 있어, 그녀는 번개와 불에 대한 기도로 불리게 되었으며, 폭발과의 연관성 때문에 포병과 광업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성 바르바라는 직장에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숭배받는다. 그녀는 천둥과 번개, 화약 폭발로 인한 모든 사고에 대항하여 기도를 받는다. 그녀는 포병, 갑옷 제작자, 군사 기술자, 총포 제작자, 그리고 대포와 폭발물을 취급하는 모든 사람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1600년대에 광업에서 화약이 널리 사용되면서, 그녀는 광부, 굴착 기술자, 및 기타 지하 작업자의 수호성인으로 채택되었다. 광업과 관련된 지질학 및 광산 공학이 발전하면서 그녀는 이러한 직업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스페인어 [[[산타바바라 (동음이의)스페인어, 이탈리아어 santabarbara이탈리아어, 프랑스어 Sainte-Barbe프랑스어는 배 또는 요새의 탄약고를 의미한다. 배나 요새를 갑작스러운 폭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탄약고에 성 바르바라의 조각상을 두는 것이 관례였다. 성 바르바라는 이탈리아 해군의 수호성인이다.
가톨릭 교회와 대부분의 성공회에서 그녀의 축일은 12월 4일이다. 2022년, 바르바라는 성공회 전례력에 공식적으로 추가되었으며, 11월 24일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안티오크의 마가렛과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12세기에 성 바르바라의 유물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키예프의 성 미카엘 황금 돔 수도원으로 옮겨졌고, 1930년대까지 그곳에 보관되었다가 같은 도시의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으로 이전되었다. 2012년 11월, 우크라이나 정교회 - 키예프 총대주교청의 필라레트 총대주교는 성 바르바라의 유물 일부를 블루밍데일, 일리노이에 있는 성 안드레아 우크라이나 정교회 대성당으로 옮겼다.
터널 산업에서는 오래된 전통으로, 각 새로운 터널링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업 중 하나는 터널 입구 또는 긴 터널 헤딩의 지하 교차점에 성 바르바라의 작은 사당을 세우는 것이다. 이어서 건설 기간 동안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보호를 위해 성 바르바라에게 헌신하고 기도를 드린다.
아일랜드 육군은 그녀를 포병 군단의 수호 성인으로 존경하며, 군단 휘장에 반쯤 옷을 입고 하프를 들고 야전 대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독일에서는 Barbarazweig독일어가 12월 4일에 가지를 집으로 가져와 크리스마스에 꽃을 피우는 풍습이 있다.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에서는 성 킹가 예배당에서 성 바르바라를 기린다.
아프로-쿠바 종교인 산테리아에서 바르바라는 불, 번개, 천둥의 신인 샹고와 종교적 혼합되었다.
조지아에서는 성 바르바라 축일이 12월 17일(구력으로는 12월 4일)에 Barbaroba조지아어로 기념된다. 전통적인 축제 음식은 콩소를 채운 빵인 [[lobiani]]조지아어이다.
그리스와 키프로스에서는 이 날을 그리스 육군과 키프로스 국가 방위군의 포병 부대가 기념한다. 두 나라의 포병 부대에서는 성녀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포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전통 과자인 루쿠마데스를 군인들과 방문객들에게 제공한다.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성 바르바라 축일을 동방 정교회에서 12월 17일에 Варвара마케도니아어 Varvara마케도니아어로 기념한다.
14구조 성인 중 한 명으로, 발열이나 급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 광산이나 불을 다루는 등 위험한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이탈리아 및 스페인에서는 배나 요새의 탄약고 폭발 사고를 막기 위해 성녀 바르바라의 상을 두고, 탄약고 자체를 성인의 이름을 따서 "산타 바르바라"라고 불렀다. 프랑스에서는 터널 공사 시 성 바르바라의 상을 둔다.
고문을 받던 바르바라가 꺾은 가지에서 꽃이 피었다는 일화에서, 독일과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는 벚꽃, 살구, 사과, 개나리 등의 가지를 12월 4일 성 바르바라의 날에 물에 꽂아 크리스마스 즈음에 핀 꽃의 수로 행복을 점친다. 이 점을 위한 가지를 바르바라의 가지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성 바르바라의 날에 물에 담근 밀이 크리스마스에 싹튼 수에 따라 다음 해의 풍흉을 점치는 일도 행해졌으며, 이 밀을 바르바라의 밀이라고 불렀다。또한, 독일의 속담에 "흰 옷의 바르바라는 좋은 여름 계절을 알린다"고 하여, 성 바르바라의 날에 내리는 눈은 다음 해 여름의 풍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널리 민간의 숭경을 받은 성인이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증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1969년에 성 바르바라를 성인력에서 제외했다.
3.3. 동방 정교회
우크라이나에서는 성 바르바라의 유물이라고 전해지는 것이 성 미카엘 황금 돔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대순교자 바르바라 교회(Храм великомучениці Варвари러시아어)는 키이우의 키릴리우스키 하이(키릴리우스키 공원) 근처에 있다. 2019년, 우크라이나 육군의 제19 미사일 여단은 "성 바르바라"라는 명예 칭호를 받았다.
조지아에서는 성 바르바라 축일이 12월 17일(구력으로는 12월 4일)에 Barbaroba조지아어로 기념된다. 전통적인 축제 음식은 콩소를 채운 빵인 [[lobiani]]조지아어이다.
그리스와 키프로스에서는 이 날을 그리스 육군과 키프로스 국가 방위군의 포병 부대가 기념한다. 두 나라의 포병 부대에서는 성녀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포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전통 과자인 루쿠마데스를 군인들과 방문객들에게 제공한다. 성 바르바라는 또한 북부 그리스 도시인 드라마의 수호 성인이며, 축일에는 콜리바의 좀 더 액체 형태와 비슷한 varvara그리스어라는 과자를 만들어 먹는다.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성 바르바라 축일을 동방 정교회에서 12월 17일에 Варвара마케도니아어 Varvara마케도니아어로 기념한다. 일부 마케도니아인들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기념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성 바르바라 축일에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그 해의 남은 기간 동안 행운이나 불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기념을 자제한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라 산의 비탈에 성 바르바라의 동굴 성지(쿠이스 바르바라)가 있으며, 촛불과 꽃 화환을 헌화한다.
러시아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성 바실리 대성당 옆의 모스크바의 교회와 야로슬라블의 교회가 있다.
4. 문화적 영향
14구조 성인 중 한 명으로, 발열이나 급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 광산이나 불을 다루는 등 위험한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이탈리아 및 스페인에서는 배나 요새의 탄약고 폭발 사고를 막기 위해 성녀 바르바라의 상을 두고, 탄약고 자체를 성인의 이름을 따서 "산타 바르바라"라고 불렀다. 프랑스에서는 터널 공사 시 성 바르바라의 상을 둔다.
고문을 받던 바르바라가 꺾은 가지에서 꽃이 피었다는 일화에서, 독일과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는 벚꽃, 살구, 사과, 개나리 등의 가지를 12월 4일 성 바르바라의 날에 물에 꽂아 크리스마스 즈음에 핀 꽃의 수로 행복을 점친다. 이 점을 위한 가지를 바르바라의 가지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성 바르바라의 날에 물에 담근 밀이 크리스마스에 싹튼 수에 따라 다음 해의 풍흉을 점치는 일도 행해졌으며, 이 밀을 바르바라의 밀이라고 불렀다。또한, 독일의 속담에 "흰 옷의 바르바라는 좋은 여름 계절을 알린다"고 하여, 성 바르바라의 날에 내리는 눈은 다음 해 여름의 풍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널리 민간의 숭경을 받은 성인이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증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1969년에 성 바르바라를 성인력에서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