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 (야구인)
1. 개요
박동희는 1980년대 후반 아마추어 시절부터 촉망받던 투수였으며,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 1990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신인으로서 10승을 기록했고, 1992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94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 사상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7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으나 이후 부진한 성적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건설업에 종사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수상 경력으로는 1986년 야구 월드컵 최다승, 1989년 대륙간컵 최우수 우완 투수, 1992년 한국시리즈 MVP 등이 있다.
| 선수명: 박동희 | |
| 원어명: Park Dong-Heui | |
| 소속 구단: | |
| 등번호: | |
| 국적: 대한민국 | |
| 출신지: 부산광역시 | |
| 생년월일: | |
| 사망일: | |
| 신장: 186 | |
| 체중: 98 | |
| 수비 위치: 투수 | |
| 투구: 우 | |
| 타석: 우 | |
| 프로 입단 연도: 1990년 | |
| 드래프트 순위: 1986년 1차 3순위(롯데 자이언츠) | |
| 첫 출장: KBO / 1990년 4월 11일 대구 대 삼성전 | |
| 마지막 경기: KBO / 2001년 10월 28일 잠실 대 두산전 | |
| 획득 타이틀: 1992년 한국시리즈 MVP | |
| 계약금: 1억 5,200만 원(롯데 입단시) | |
| 연봉: |
| 경력: 롯데 자이언츠 (1990년 ~ 1997년) 삼성 라이온즈 (1997년 ~ 2002년) |
| 대표 국가: 대한민국 | |
| 올림픽: 1988 서울 (시범종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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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구 출신 -
추신수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추신수는 KBO 리그 SSG 랜더스 소속 외야수로, 메이저 리그에서 16시즌 동안 활약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 20-20 클럽 가입 등의 기록을 세웠고, 2021년 KBO 리그에 데뷔하여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
수영구 출신 -
이대호
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NPB, MLB를 거쳐 다시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하여 은퇴한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방송인으로, 2015년 일본 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며 롯데 자이언츠에서 그의 등번호 10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
초량중학교 동문 -
진갑용
진갑용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로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
초량중학교 동문 -
김성현 (1963년)
김성현은 1986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삼성 라이온즈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다. -
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선수 명단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선수 명단 -
후루타 아쓰야
후루타 아쓰야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 감독, 해설가 및 방송인으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주전 포수로서 뛰어난 타격과 수비 능력으로 MVP를 수상하고 도루 저지율 신기록을 세웠으며, 선수회 회장으로서 파업을 주도하여 선수 권익 신장에 기여했고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을 역임했다.
2. 프로 선수생활
1990년 롯데 자이언츠에 신인으로 입단하여 데뷔전에서 6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10승 7패 7세이브를 기록하였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진영 감독은 박동희를 중반 이후부터 등판시킬 계획이었으나, 팀 순위 다툼이 치열해지자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투입했다. 이로 인해 롯데는 후반기부터 힘을 쓰지 못했고, 김진영 감독은 시즌 중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어 프로야구계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1991년 14승 9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47(다승 7위, 평균자책점 6위, 탈삼진 4위)을 기록했고, 1992년 한국시리즈 MVP(2승 1세이브)를 차지했다. 1993년 5월 13일 쌍방울전에서 6회 강우 콜드게임으로 비공인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1994년에는 6구원승 31세이브(구원부문 2위)로 롯데 자이언츠 구단 사상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웠으며, KBO 올스타전에 4회(1990, 1991, 1993, 1994) 출장했다. 그러나 이후 오른쪽 팔꿈치와 무릎 부상이 악화되어 성적이 나빠졌다. 박동희의 31세이브는 2012년 김사율이 34세이브를 기록하며 갱신되었다.
1993년 4완투승을 모두 완봉승(강우 콜드 노히트노런 1개 포함)으로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저실점 완투경기를 모두 완봉승으로 거둔 투수 중 최고 기록이다.
박동희 이후 1995년 강상수 (당시 롯데), 2009년 송승준 (롯데), 2011년 윤석민 (KIA)이 3완투 3완봉승으로 저실점 완투경기를 모두 완봉승으로 거둔 투수 2위 타이 기록을 세웠는데, 이들 중 1995년 강상수는 1993년 박동희처럼 방위 복무를 했다.
1997년 6월 26일, 이동수, 박석진(이상 삼성 라이온즈), 박동희, 김종훈(이상 롯데 자이언츠) 간의 2:2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박동희의 경기 경험을 높이 평가하여 영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박동희는 이적 후에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2002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된 후 은퇴했다.
2.1. 프로 입단 이전
時速중국어 150km가 넘는 빠른 강속구가 주무기였던 그는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시절, 1988년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올림픽에서 일본의 투수 노모 히데오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는 등 아마추어 선수 시절부터 '선동열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중학교 3학년 당시 포철공고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됐다. 부산고 3학년 때 1차 3순위 지명을 받았으며 이에 앞서 중앙대, 동아대, 한양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고려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 프로 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대학 1학년 때 최고 156km의 공을 뿌려 일본과 대만까지 명성이 알려졌는데, 일본에서는 1980년대 초 마운드 영웅 에가와에 비견됐고 대만에서도 "한국의 보물"로 일컬어졌다.
2.2. 롯데 자이언츠 시절
1990년 롯데 자이언츠에 신인으로 입단하여 데뷔전에서 6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10승(5선발승) 7패 7세이브를 기록하였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진영 감독은 박동희를 중반 이후부터 등판시킬 계획이었으나, 팀 순위 다툼이 치열해지자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투입했다. 이로 인해 롯데는 후반기부터 힘을 쓰지 못했고, 김진영 감독은 시즌 중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어 프로야구계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1991년 14승(13선발승) 9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47(다승 7위, 평균자책점 6위, 탈삼진 4위), 1992년 한국시리즈 MVP(2승 1세이브)를 기록했다. 1993년 5월 13일 쌍방울전에서 6회 강우 콜드게임으로 비공인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1994년에는 6구원승 31세이브(구원부문 2위)로 롯데 자이언츠 구단 사상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웠으며, KBO 올스타전에 4회(1990, 1991, 1993, 1994) 출장했다. 그러나 이후 오른쪽 팔꿈치와 무릎 부상이 악화되어 성적이 나빠졌다. 박동희의 31세이브는 2012년 김사율이 34세이브를 기록하며 갱신되었다.
1993년 4완투승을 모두 완봉승(강우 콜드 노히트노런 1개 포함)으로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저실점 완투경기를 모두 완봉승으로 거둔 투수 중 최고 기록이다.
박동희 이후 1995년 강상수 (당시 롯데), 2009년 송승준 (롯데), 2011년 윤석민 (KIA)이 3완투 3완봉승으로 저실점 완투경기를 모두 완봉승으로 거둔 투수 2위 타이 기록을 세웠는데, 이들 중 1995년 강상수는 1993년 박동희처럼 방위 복무를 했다.
2.3.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7년 6월 26일, 이동수, 박석진(이상 삼성 라이온즈), 박동희, 김종훈(이상 롯데 자이언츠) 간의 2:2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박동희의 경기 경험을 높이 평가하여 영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박동희는 이적 후에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2002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된 후 은퇴했다. 반면, 롯데로 이적한 박석진은 2001년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고, 삼성으로 이적한 김종훈은 14년간 삼성의 외야 백업으로 활약하여, 이 트레이드는 양 팀 모두에게 이득이 되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야구계를 완전히 떠났고, 서울 소재 건설 업체 '스파크산업개발'에서 건설 관련 업무에 종사했으며, 이후에는 해운대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했다. 2007년 3월 22일 식당 영업을 마치고 오전 3시 10분경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에서 자신의 다이너스티 차량을 운전하다 버스 승강장 기둥을 들이받는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향년 40세였다.
4. 수상 경력
* 1986년 야구 월드컵 최다승 (4승)
* 1989년 대륙간컵 최우수 우완 투수
* 1992년 한국시리즈 최우수 선수
6. 선수 경력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시절 1988년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올림픽에서 일본의 투수 노모 히데오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는 등 아마추어 선수 시절부터 '선동열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부산고 3학년 때 1차 3순위 지명을 받았으며, 고려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 152의 계약금을 받으며 연고 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당시 수퍼 베이비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으며, 대학 1학년 때 최고 시속 156km의 공을 뿌려 일본과 대만까지 명성이 알려졌는데, 일본에서는 1980년대 초 마운드 영웅 에가와에 비견됐고, 대만에서도 "한국의 보물"로 일컬어졌다.
* 야구 월드컵 국가대표 (1986)
* 올림픽 국가대표 (1988)
* 롯데 자이언츠
* 한일 프로 야구 슈퍼 게임 KBO 선발 (1991)
* 삼성 라이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