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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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추신수는 대한민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과 KBO 리그에서 활약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 유망한 투수로 이름을 알렸으며, 2000년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MVP를 수상하고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미국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MLB에서는 타자로 전향하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신시내티 레즈, 텍사스 레인저스 등에서 뛰며 통산 1652경기에 출전, 218홈런, 782타점을 기록했다. 2018년 MLB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KBO 리그 SSG 랜더스에 입단하여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2024년 은퇴를 발표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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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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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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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82년 7월 13일 (세) |
출생지 | 부산광역시 |
포지션 | 외야수 |
타석 | 좌타 |
투구 | 좌투 |
프로 입단 정보 | |
드래프트 | 아마추어 FA |
입단 연도 (MLB) | 2000년 |
첫 출장 (MLB) | 2005년 4월 21일 |
최종 출장 (MLB) | 2020년 9월 27일 |
입단 연도 (KBO) |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 |
첫 출장 (KBO) | 2021년 4월 4일 |
최종 출장 (KBO) | 2024년 10월 1일 |
선수 경력 (MLB) | |
팀 | 시애틀 매리너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신시내티 레즈 () 텍사스 레인저스 (–) |
선수 경력 (KBO) | |
팀 | SSG 랜더스 (–) |
수상 | |
MLB 올스타 | 2018년 |
KBO 한국시리즈 | 2022년 우승 |
통계 (MLB) | |
타율 | 0.275 |
홈런 | 218 |
타점 | 782 |
통계 (KBO) | |
타율 | 0.263 |
홈런 | 54 |
타점 | 205 |
국가대표 경력 | |
팀 | 대한민국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년 로스앤젤레스 (은메달) |
아시안 게임 | 2010년 광저우 (금메달) |
기타 정보 | |
영어 이름 | Choo Shin-Soo |
한글 이름 | 추신수 |
한자 이름 | 秋信守 |
로마자 표기 | Chu Sinsu |
일본어 표기 | 秋 信守 |
연봉 (2024년) | 3,000만원 |
2.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수영 선수 출신인 추소민이다. 남동생은 배우인 추민기로 외숙부는 SSG 랜더스 2군 감독인 박정태이다. 아버지와 외삼촌의 영향으로 8살 때 야구에 입문했으며,[75] 부산고등학교 시절에는 좌완 파이어볼러로 고교 야구계에서 유망한 투수로 활동했다. 고교 통산 OPS 1.385를 기록했고,[76]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추신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쳐 동급생들로부터 "야구의 신"이라고 불렸다.[77][78]
2000년에는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해 이대호, 이동현과 함께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투수로 출전해 18이닝 32탈삼진, 5실점, 평균자책점 2.50의 뛰어난 성적으로 대회 MVP를 수상했다.[159][79] 이 대회의 활약으로 시애틀 매리너스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KBO에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 2001년에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차 지명돼 계약금 4억 2,100만원을 제시받았으나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입단을 거부했다. 2000년 6월 29일에 협상이 완전히 결렬됐고,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카우트였던 이재우를 통해 시애틀 매리너스와 구두 계약을 했다. 결승전이 끝난 후 2000년 8월 14일에 계약금 135만 달러의 조건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그는 MLB에 진출했을 때 투수로 계약한 줄 알았으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는 5툴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샀기 때문에 타자로 전향시켰다.[160]
2. 1. 유년 시절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수영 선수 출신인 추소민이다. 남동생은 배우인 추민기로 외숙부는 SSG 랜더스 2군 감독인 박정태이다.[74] 아버지와 외삼촌의 영향으로 8살 때 야구에 입문했으며, 부산고등학교 시절에는 좌완 파이어볼러로 고교 야구계에서 유망한 투수로 활동했다.2000년에는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해 18이닝 32탈삼진, 5실점의 뛰어난 성적으로 대회 MVP를 수상했다.[159] 이대호, 이동현과 함께 우승에 기여했다. 이 대회의 활약으로 시애틀 매리너스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KBO에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 2001년에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차 지명돼 계약금 4억 2,100만원을 제시받았으나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입단을 거부했다. 2000년 6월 29일에 협상이 완전히 결렬됐고,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카우트였던 이재우를 통해 시애틀 매리너스와 구두 계약을 했다. 결승전이 끝난 후 2000년 8월 14일에 계약금 135만 달러의 조건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159] 그는 MLB에 진출했을 때 투수로 계약한 줄 알았으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는 5툴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샀기 때문에 타자로 전향시켰다.[160]
2. 2. 아마추어 경력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수영 선수 출신인 추소민이다. 남동생은 배우인 추민기로 외숙부는 SSG 랜더스 2군 감독인 박정태이다. 아버지와 외삼촌의 영향으로 8살 때 야구에 입문했으며,[75] 부산고등학교 시절에는 좌완 파이어볼러로 고교 야구계에서 유망한 투수로 활동했다. 고교 통산 OPS 1.385를 기록했고,[76]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추신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쳐 동급생들로부터 "야구의 신"이라고 불렸다.[77][78]2000년에는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해 이대호, 이동현과 함께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투수로 출전해 18이닝 32탈삼진, 5실점, 평균자책점 2.50의 뛰어난 성적으로 대회 MVP를 수상했다.[159][79] 이 대회의 활약으로 시애틀 매리너스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KBO에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 2001년에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차 지명돼 계약금 4억 2,100만원을 제시받았으나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입단을 거부했다. 2000년 6월 29일에 협상이 완전히 결렬됐고,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카우트였던 이재우를 통해 시애틀 매리너스와 구두 계약을 했다. 결승전이 끝난 후 2000년 8월 14일에 계약금 135만 달러의 조건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그는 MLB에 진출했을 때 투수로 계약한 줄 알았으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는 5툴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샀기 때문에 타자로 전향시켰다.[160]
3. 프로 경력
3. 1. 미국 프로야구 시절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금 137만 달러(약 16억 원)에 계약했다.[6] 미국 진출 후에는 타자로 전향하여 루키 리그에서 시작해 4년간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했다. 이 당시에는 단 하루라도 메이저 리그(MLB)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81]2001년 루키 레벨의 AZL 매리너스에서 프로 데뷔하여 51경기에서 타율 0.302, 4개의 홈런, 35타점을 기록했다.[7] 싱글 A 위스콘신 팀버 래틀러스로 승격되었고, 3경기에서 타율 0.462, 3타점을 기록했다.[7]
2002년 위스콘신에서 대부분의 시즌을 보냈고, 119경기에서 타율 0.302, 6개의 홈런, 48타점, 34개의 도루(55번 시도)를 기록했다.[7] 8월 22일, 싱글 A 샌버나디노 스탬피드로 승격되었다.[9] 11경기에서 추신수는 타율 0.308, 1개의 홈런, 9타점을 기록했다.[7] 시즌 후, 매리너스는 추신수를 싱글 A 위스콘신의 최우수 선수로 선정했다. 그의 총 37개의 도루는 구단에서 2위를 차지했고, 타율 0.303은 매리너스 팜 선수들 중 4번째로 높은 기록과 같았다.[7]
2003년 시즌 전체를 신설된 싱글 A 인랜드 엠파이어 66ers에서 보내며 110경기에서 타율 0.286, 9개의 홈런, 55타점을 기록했고, 팀의 캘리포니아 리그 챔피언십에 기여했다.[7][9]
2004년에 더블 A 샌안토니오 미션스에서 132경기에서 타율 0.315, 7개의 3루타, 15개의 홈런, 84타점, 40개의 도루를 기록했다.[7] 시즌 후, 추신수는 시애틀의 마이너 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9]
2005년 트리플 A 타코마 레이니어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4월 20일 스콧 스페지오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었다.[10] 4월 21일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대타로 미겔 올리보를 대신하여 출전하여 마지막 아웃으로 땅볼 아웃되었다.[11] 5월 3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의 스콧 쉴즈를 상대로 대타 안타를 기록하며 통산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12] 경기 후, 추신수는 타코마로 다시 내려갔다.[13] 9월에 다시 콜업되어,[14] 남은 시즌을 매리너스와 함께 보냈다.[15]
2006년 시즌 전반기에 추신수는 타코마로 돌아갔다. 7월 3일, 매리너스에 의해 다시 콜업되었다.[16] 시애틀에서 뛰는 동안 추신수는 총 17경기에 출전하여 29 타수에서 2개의 안타(타율 0.069)와 1타점을 기록했다.[17]
2006년 7월 2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마이너리거 숀 노팅엄과 함께 1루수 벤 브루사드와 트레이드되었다.[18]
3. 1. 1.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다. 미국 진출 후에는 타자로 전향하여 루키 리그에서 시작해 4년간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했다. 이 당시에는 단 하루라도 메이저 리그(MLB)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81]2001년부터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타자로 활동했다.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잠재력을 보여 줬지만, 시애틀 구단에서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2005년 4월 21일에 MLB로 첫 승격하며 데뷔했고, 주로 대수비나 대주자로 출전했다. 첫 출전은 4월 21일, 홈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9회에 대타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결과는 1루 땅볼이었다.[81] 5월 3일에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의 스콧 쉴즈를 상대로 대타 안타를 기록하며 통산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12]
2006년 시즌 중반에 MLB로 다시 승격됐다. 원래 수비 위치가 우익수이고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스즈키 이치로가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인이었던 그는 백업 중견수로 많이 출전했다. 첫 타석에서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지만, 이후 15 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2006년 7월 2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1루수 벤 브루사드를 상대로 현금 트레이드되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했다.[161]
3. 1. 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2006년 7월 26일, 추신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마이너리거 숀 노팅엄과 함께 1루수 벤 브루사드와 트레이드되었다.[18] 당시 벤 브루사드가 클리블랜드의 간판 1루수여서 트레이드 당시에는 추신수에 대하여 클리블랜드 팬들의 비판이 많았다.[163] 하지만 트레이드 상대였던 벤 브루사드가 시애틀 이적 후 2008년에 텍사스 레인저스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하면서 이 트레이드는 클리블랜드의 승리로 끝났다.[164]이적 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7월 29일에 전 소속 팀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결승 1점 홈런을 쳐 냈다.[19] 8월 4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조시 베켓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 냈다. 이적 후 첫 시즌에 2할대 타율,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17]
시즌 초반 몇 주를 인터내셔널 리그의 클리블랜드 산하 트리플A팀인 버팔로 바이슨스에서 보냈다. 시즌 초 베테랑 타자인 트롯 닉슨, 데이비드 델루치를 영입했는데, 이들은 그와 같은 좌타자이면서 외야 수비가 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출장 기회가 감소했다. 4월 23일 부상당한 3루수 앤디 마르테를 대신하여 콜업되었다.[20] 5월 3일 다시 버팔로로 내려갔다.[21] 설상가상으로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마감했다.[22]
에는 재활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채 시즌을 시작했다.[23] 트리플A 버팔로에서 재활 경기를 치른 후, 5월 31일 복귀하며 주전 우익수로 시즌을 시작했다.[24] 초반에는 2할 4푼~5푼대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했으나 지속적으로 출장하며 타격에 기복이 없어졌다. 시즌 중반부터 타격 재능을 폭발시키며 8월 한 달간 출루율 4할, 장타율 6할로 활약했다. 9월에 0.400의 타율, 34안타, 5홈런, 24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한 추신수는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9] 9월 12일에는 48타점을 기록해 최희섭의 한국인 타자 한 시즌 타점 신기록을 경신했다. 9월 20일에 87번째 안타를 쳐 내며 2004년 최희섭의 한국인 메이저 리거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이 활약으로 샤프에서 시상하는 아메리칸 리그 9월의 선수로 선정됐다. 그는 94경기에서 317타수 0.309의 타율, 98안타, 14홈런, 66타점으로 시즌을 마쳤다.[17] 그의 안타와 타점 기록은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새로운 기록이었다. 좌익수 외에도 지명타자로도 기용되었다. 수비에서는 우익수로 51경기에 출전하여 UZR -3.1, DRS+5[82], 좌익수로는 26경기에 출전하여 UZR+1.2, DRS+3을 기록했다[83]
2월, 추신수는 인디언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25] 3월에 개최된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었다[84]。대회 직전에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인디언스로부터 지명타자 외의 출전을 금지당했고, 2라운드까지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대회 통산 타율 .188로 타격 부진에 빠졌지만[85], 준결승 베네수엘라전과 결승 일본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중요한 순간에 활약했다. WBC에 참가해 준결승전, 결승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쳐 내며 한국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다만 2006년 대회와 달리 병역 특례가 부여되지 않아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레귤러 시즌에서는 MLB에서 첫 풀 타임으로 출전했고, 팀의 중심 타자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개막부터 우익수로 출전하여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7월 3일, 추신수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치고 개인 통산 최다인 7타점을 기록하며 15-3으로 승리했다.[26] 팀은 시즌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그는 고군분투하며 동양인 MLB 타자 최초 20-20을 달성했다. 특히 그래디6 같은 소속 팀의 중심 타자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경기에 결장하는 와중에 그는 4번 타자로 출장하며 존재감을 보였다.[165] 2009년 10월 3일, 추신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폴 버드를 상대로 시즌 20번째 홈런을 쳐 20-20 클럽에 가입했다. 그는 메이저 리그에서 이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27] 그는 또한 AL에서 0.300의 타율, 20홈런, 20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유일한 선수였다. 시즌 타율 3할, 20홈런, 86타점을 기록했다.[166] 그가 이번 시즌에 기록한 20홈런은 최희섭이 가지고 있던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을 경신한 것이었고, 아메리칸 리그에서 타율 3할, 20-20을 같이 달성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구단 역사상 8번째로 "시즌 20홈런 & 20도루"를 달성했으며, 아시아 선수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86][87][88]。수비에서는 UZR-2.7, DRS+5를 기록했다[89]。
은 7월에 손가락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타율 .300, 22홈런, 90타점, 22도루, 83볼넷, 출루율 .401을 기록하며, 최종적으로 2년 연속 "타율 .300, 20홈런 & 20도루"를 달성했다. 9월 2일 시애틀전에서 팀의 4연패에서 구해내는 역전 2점 홈런 포함 5타점을 기록했고, 9월 18일 캔자스시티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이후 20홈런-20도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에서 2시즌 연속 3할 및 20-20 클럽 달성에 성공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출루율은 4할 1리를 기록했다.
9월 17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추신수는 3개의 홈런을 치고 7타점을 기록하며 11-4로 승리했다.[28] 그는 4회 초 420피트 우측 투런 홈런을 날렸다. 다음 타석에서 그는 깊숙한 센터로 거대한 만루 홈런을 날렸다. 8회 초, 추신수는 405피트짜리 솔로 홈런을 오른쪽 담장 밖으로 날렸다.[29] 추신수는 "사이클링 홈런" 달성에 홈런 1개가 모자란 채 경기를 마쳤다. 2010년 9월 19일, 추신수는 2년 연속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30] 144경기에서 0.300의 타율, 22홈런을 기록했으며, 90타점과 22도루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17] 그는 또한 14개의 보살로 AL 우익수 중 1위를 차지했다.[31]
이 시즌에 그가 상대한 구단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구단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이기 때문에 '캔자스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타율 0.377를 기록했고, 출루율은 0.488, 장타율은 0.638, OPS는 1.126를 기록했다. 신시내티 레즈에도 강한 편이었는데 그는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타율 3할 1푼, OPS 1.006을 기록했다. 반대로 그를 가장 잘 막은 팀은 미네소타였다.
메이저 등록일 수 3년을 채워 연봉 조정 자격을 얻었다. 팀은 그에게 5년 4500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제시했지만 그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러스는 자유 계약 선수를 염두에 두고 장기 계약을 거부했다.[167] 그는 1년 397만 5000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32]
은 MLB 등록일수가 3년을 넘어서 연봉 조정 자격을 얻게 되면서, 인디언스에서 5년 총액 4500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제안받았지만,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자유 계약 선수를 염두에 두고 장기 계약을 거절했다[92]。협상 결과, 1월 18일 397만 5000달러로 인디언스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93]。
5월 2일 새벽에 클리블랜드에서 40km 떨어진 오하이오주 셰필드 레이크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순찰 중이던 경찰관에게 발각되어 675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94]。지역 경찰은 사건의 전말을 촬영한 비디오를 언론에 배포했고, YouTube 등을 통해 널리 보도되었다[95]。비디오에는 추신수가 경찰관에게 "제발 봐주세요. 한국에 알려지면 제 인생은 끝입니다. 두 번 다시 여기로 돌아갈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한국에서 비판을 받았다. 11월에 한국의 "힐링캠프"라는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 추신수는 "너무 부끄러워서 야구를 그만둘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96]。
한편, 정규 시즌에서는 6월에 사구를 맞아 왼손 엄지손가락이 골절되어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6월 24일, 추신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투수 조나단 산체스의 공에 왼쪽 엄지를 맞았다. 그 결과 발생한 골절로 인해 6주 동안 결장했다.[33] 수술 후 복귀전인 9월 15일, 텍사스 레인저스전 첫 타석에서 옆구리 부상을 입어 퇴장했다.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라 시즌을 마감했다. 8월 23일, 전 소속팀인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한 더블헤더 첫 경기에서 추신수는 3회에 2루타를 쳤고 지진이 발생했다. 같은 경기의 9회, 그는 첫 번째 끝내기 홈런을 쳐 인디언스가 7-5로 승리했다.[34] 9월 1일, 추신수는 옆구리 근육을 다쳐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시즌을 마감했다.[35] 시즌을 8홈런, 0.259의 타율, 12도루, 36타점으로 마쳤으며 313타석에서 78개의 삼진과 36개의 볼넷을 기록했다.[17] 수비에서도 UZR+2.1, DRS+2로 전년보다 수치가 하락했다[97]。
은 부상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고 15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3, 16홈런, 67타점, 21도루, 73볼넷, 출루율 .373을 기록했다. 4월 14일, 양 팀 모두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한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추신수는 2011년 추신수의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리고 2달 가까이 부상자 명단에 머물게 했던 산체스의 공에 오른쪽 무릎을 맞았다. 추신수는 경기를 마치고 10회에 2루타를 쳐 인디언스의 승리를 이끌었다.[36] 4월 24일, 추신수는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8회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 교체되었다.[37] 추신수는 5월 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6-3으로 인디언스가 승리하며 복귀했다.[38] 5월 2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추신수는 1회에 타이거스 선발 저스틴 벌랜더를 상대로 2층 홈런을 쳤다. 그것은 추신수의 첫 번째 리드오프 홈런이었다. 인디언스는 그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타이거스와의 스윕을 완성했다.[39] 그러나 수비에서는 UZR이 리그 최하인 -8.4, DRS에서는 -10으로 크게 악화되었다[98]。시즌 후 FA 자격을 1년 앞두게 됐고 팀은 트레이드 전략을 세웠다. 12월 12일 신시내티 레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 3개 구단이 참여한 3각 트레이드를 통해 내셔널 리그 중부 팀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하게 됐다. 따라서 MLB 진출 초기부터 있었던 아메리칸 리그에서 내셔널 리그로 옮겼다. 등번호는 17번을 그대로 사용했다. 팀은 신시내티 레즈로부터 외야수 드류 스텁스와 현금 350만 달러를 받았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부터 투수 유망주인 트레버 바우어와 투수 브라이언 쇼, 맷 앨버스 등 4명을 받았다. 신시내티 레즈는 팀으로로부터 그와 내야수 제이슨 도날드를 받았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유격수 유망주 디디 그레고리우스를 받았고 팀에서 투수 토니 십과 1루수 유망주 라스 앤더슨을 받았다.[168]
3. 1. 3. 신시내티 레즈 시절
2012년 12월 11일, 추신수는 제이슨 도날드와 함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관련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 이 트레이드로 트레버 바우어, 맷 앨버스, 브라이언 쇼, 드류 스텁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했다.[40][99] 2013년 2월 11일, 추신수는 새 팀인 레즈와 연봉 조정을 피하고 1년 737만 5천 달러에 합의했는데, 이는 양측의 중간값이었다.[41]
2013년, 커리어 사상 가장 뛰어난 한 해를 보냈다. 선발 출장한 모든 경기에서 1번 타자로 기용됐다. 수비에서는 중견수로 전향하여 리그 최악인 UZR-7.8, DRS-17을 기록하며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102] 하지만 타격에서는 개인 통산 3번째 20-20을 달성했고, 출루율 0.423(리그 2위), wRC+ 151(리그 3위), wOBA.323(리그 4위), Offensive WAR 6.4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101] 조이 보토와 더불어 시즌 300출루에 성공했다. MLB 역대 7번째 20홈런-20도루, 세 자릿수 볼넷, 세 자릿수 득점, 300출루에 가입했다.[100]
2013년 5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쳤다. 이는 그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통산 두 번째 끝내기 홈런이었다.[42] 8월 27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번째 홈런을 기록했다.[43] 9월 9일, 한 시즌 팀 최다 몸에 맞는 공 기록을 세웠다.[44]
이 시즌 동안 15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5, 21홈런, 54타점, 20도루를 기록하며 통산 세 번째 20-20 시즌을 달성했다.[17] 몸에 맞는 공(26개) 부문에서 메이저 리그 선두를 기록했으며,[17] 내셔널 리그에서 득점(107점, 2위), 출루율(.423, 2위), 볼넷(112개, 2위), OPS(.885, 8위) 등 여러 부문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었다.[45] 특히, 조이 보토도 135개의 볼넷을 골라 100볼넷 콤비를 이루었다.
2013년 내셔널 리그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8회초 토니 왓슨에게 홈런을 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포스트시즌에서 홈런을 친 최초의 대한민국 타자가 되었다.[46] 시즌 후 FA가 되었다.
3. 1. 4.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013년 12월 22일에 7년 총액 1억 3,000만 달러에 계약했다.[103] 그는 박찬호에 이어 팀의 두 번째 한국인이 됐다. 그의 계약 규모는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한 금액인 5년 9000만 달러를 뛰어넘었고 그의 연봉은 당시 아시아 야구 선수 역사상 최고의 금액이며, 계약 당시 MLB 역대 27위(외야수 역대 6위)에 해당했다. 그는 일본인 투수인 다르빗슈 유와 같은 팀이 됐다. 옵션으로 일부 구단에 대한 트레이드 거부권, 표창 등의 인센티브가 포함되어 있다.[104] 등번호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대부터 사용하던 '17'이다.2014년에는 6월부터 부진에 빠져 규정 타석도 채우지 못했다. 타율 .242, 13홈런, 40타점, 3도루, 58볼넷, 출루율 .340, 시즌 WAR 0.4로 부진했다.[105] 수비에서는 우익수로 12경기에 출전하여 UZR+0.3, DRS-2를 기록했고[106], 좌익수로는 64경기 출전하여 UZR-7.3, DRS-10을 기록했다.[107] 팀도 마찬가지로 부진했기 때문에 시즌이 종료되기 전에 팔꿈치와 발목 수술을 받고 부상자 명단에 올라 다음 시즌을 준비하게 되었다.
2015년에는 4월까지 타율이 .096으로 1할에도 미치지 못했고, 전반기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성적에 시달렸지만, 7월 21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레인저스 역사상 8번째, 한국인 최초로 사이클 안타를 달성했다.[108] 이후에는 컨디션을 끌어올려 9월에는 이달의 MVP를 수상하는 등 활약하며 팀의 4년 만의 지구 우승에 기여했다. 이 시즌에는 14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6, 22홈런, 82타점, 4도루, 76볼넷, 출루율 .375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우익수로 148경기를 지키며 UZR-5.9, DRS에서는 리그 최악인 -13을 기록하며 수비에 큰 과제를 남겼다.[109]
2016년에는 4월 10일 오른쪽 종아리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10] 이후, 복귀한 경기에서 햄스트링을 다쳐 그대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복귀 후에도 허리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부상을 반복했다. 8월 15일에는 사구를 맞고 왼팔이 골절되어 시즌 4번째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11] 이러한 부상의 영향으로 최종적으로는 4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42, 7홈런, 17타점, 6도루, 25볼넷, 출루율 .357의 성적에 그쳤다. 우익수 수비도 여전히 좋지 않아, 43경기에서 UZR-0.2, DRS-5의 기록을 보였다.[112] 이적 후에는 2015년 8월 이후에만 활약을 보였고, 텍사스 지역 신문에서는 "추신수와의 계약은 박찬호와 이번 세기 최악을 다투는 계약이다"라고 보도했다.[113]
2017년 9월 29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 라울 알칸타라를 상대로 커리어 하이인 시즌 22번째 홈런을 기록했다.[114] 14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1, 22홈런, 78타점, 12도루, 77볼넷, 출루율 .357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우익수로 77경기에 출전하여 UZR-6.8, DRS-7을 기록했다.[115]

2018년에는 마쓰이 히데키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출신 타자의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 176홈런을 기록했다.[116] 7월에는 구단 신기록인 48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했고[117], 최종적으로는 52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했다.[118] 이 52경기에서 타율 .337, 출루율 .468, 13홈런, 67안타, 48볼넷을 기록했다. 또한, 한국인 야수 최초로 올스타전에 선출되어[119], 교체 출전으로 첫 안타와 득점을 기록했다.[120] 그러나 9월에는 월간 타율 .178로 크게 부진했다. 14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4, 21홈런, 62타점, 6도루, 92볼넷, 출루율 .377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우익수로 34경기에 출전하여 UZR-1.5, DRS-1[121], 좌익수로는 26경기 출전하여 UZR-0.4, DRS-5를 기록했다.[122] 9월에는 미국 언론으로부터 "대실패 계약을 맺은 FA 선수" 30명 중 워스트 3위에 선정되었고, "그가 레인저스를 지구 우승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123]
2019년 6월 5일 딜런 번디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MLB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다.[124] 최종적으로 15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5, 커리어 하이인 24홈런, 61타점, 15도루, 78볼넷, 출루율 .371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우익수로 42경기에 출전하여 UZR-3.9, DRS-4[125], 좌익수로 40경기에 출전하여 UZR-5.1, DRS-13을 기록했다.[126]
2020년 4월 1일 레인저스 산하 선수 전원 191명에게 각각 1000달러, 총 19만 1000달러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127] 그 배경으로 자신의 마이너 시절을 회상하며, 2005년부터 3년간 주급 350달러로 아내와 아들을 부양하며, 원정에서 지급되는 식비 20달러를 기저귀나 생필품 구입에 사용했던 것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다. 마이너 시절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20년 전에 한국에서 왔을 때,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야구는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이번에는 제가 그 은혜를 갚고 싶다. 세계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더욱 돕고 싶다"고 말했다. 부상의 영향으로 인해 33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타율 .236, 5홈런, 15타점, 6도루, 13볼넷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16경기에 좌익수로 출전하여 UZR-1.9, DRS-2[128], 우익수에서는 단 3경기 출전하여 UZR-0.2, DRS±0을 기록했다.[129] 같은 해 오프시즌인 11월 1일에 FA가 되었다.[130]
3. 2. 한국 프로야구 시절
2007년 4월 2일에 열린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회의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는데, 한국에 복귀하면 지명받은 팀에서 최소 한 시즌 동안 의무적으로 활동해야 했다. SK 와이번스가 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 넘기면서 지명권이 자연스럽게 신세계로 넘어왔다.[175]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2021년 2월 23일에 SSG 랜더스와 연봉 27억원에 계약하며 입단했고, 이 중 10억원은 야구 발전 기금으로 기부했다. 이 계약으로 해외파 특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의 계약이 모두 완료됐다.[175] 2021년 2월 21일, KBO의 SSG 랜더스와 1년 24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62]2021년 시즌에는 137경기에서 .263/.409/.450의 타율, 21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7] 5월 21일에는 KBO 리그 최초 '술래잡기 끝내기'를 기록하기도 했다.[176] 시즌 후 2021년 11월 16일, SSG 랜더스와 1년 23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63]
2022년에는 선수 본인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로스터에 등록되었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단 역사상 4년 만에 5번째, SK에서 SSG로 개명한 후 처음이자 추신수 본인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023년 12월 14일, 2024년 KBO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64] 2024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으며, 같은 해 연봉은 최저 보장액인 3천만 원으로,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132] 11월 30일, SSG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133]
3. 2. 1. SSG 랜더스 시절
2007년 4월 2일에 열린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회의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는데, 한국에 복귀하면 지명받은 팀에서 최소 한 시즌 동안 의무적으로 활동해야 했다. SK 와이번스가 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 넘기면서 지명권이 자연스럽게 신세계로 넘어왔다.[175]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2021년 2월 23일에 SSG 랜더스와 연봉 27억원에 계약하며 입단했고, 이 중 10억원은 야구 발전 기금으로 기부했다. 이 계약으로 해외파 특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의 계약이 모두 완료됐다.[175] 2021년 2월 21일, KBO의 SSG 랜더스와 1년 24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62]2021년 시즌에는 137경기에서 .263/.409/.450의 타율, 21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7] 5월 21일에는 KBO 리그 최초 '술래잡기 끝내기'를 기록하기도 했다.[176] 시즌 후 2021년 11월 16일, SSG 랜더스와 1년 23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63] 2021년 2월 22일, KBO 리그의 SK 와이번스가 인수되어 팀명이 변경된 SSG 랜더스와 23억 원의 1년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있었다.[131]
2022년에는 선수 본인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로스터에 등록되었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단 역사상 4년 만에 5번째, SK에서 SSG로 개명한 후 처음이자 추신수 본인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023년 12월 14일, 2024년 KBO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64] 2024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으며, 같은 해 연봉은 최저 보장액인 3천만 원으로,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132] 11월 30일, SSG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133]
4. 국가대표 경력
추신수는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65] 클리블랜드는 추신수가 1라운드에서 외야수로 한 경기 이하로 출전하고, 2라운드에서는 이틀 연속으로 출전하지 않는 두 경기에만 출전하는 조건으로 출전을 허락했다.[65] 클리블랜드는 준결승부터 이러한 제한을 풀었고, 추신수는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에서 외야수로 선발 출전, 1회 초 카를로스 실바를 상대로 3점 홈런을 쳐내며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를 10-2로 이기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5회에 이와쿠마 히사시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냈지만, 대한민국은 일본에 5-3으로 패했다.
2010년 시즌 종료 시점까지 병역 면제를 받지 못해 30세까지 병역 면제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기소될 상황이었다. 추신수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병역의 현역 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2010년 11월, 추신수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5경기에서 타율 .571, 3 홈런, 11 타점, 2 도루, OPS 2.096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155] 한국팀의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면제의 혜택을 받았다.[156]
5. 논란
2011년 5월 2일 새벽 2시 25분(현지 시각), 추신수는 음주 운전 혐의로 현지 경찰에 입건되었다.[181] 경찰관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추신수가 운전하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좌우로 흔들려 길가에 정차하도록 유도했는데, 호흡할 때부터 술 냄새가 났다고 한다.[181]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01%로, 미국 현지 법정 기준치를 2배 이상 초과하는 수치였다.[182]
이 사건은 미국 언론에서도 언급되었으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 측에서는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183] 셰필드 레이크 법원에서 열린 재판 결과, 추신수는 집행 유예 1년, 구류 27일, 그리고 675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184]
6. 수상
추신수는 메이저 리그와 마이너 리그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185][186][187]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은메달,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3년에는 어니 롬바디 상을 수상했고,[185] 2009년과 2010년에는 밥 펠러 상을 받았다.[186] 2009년과 2013년에는 하트 앤 허슬 상을 수상했다.[187] 플레이어 오브 더 위크에 2회(2010년 4월, 9월), 이달의 선수에 2회(2008년 9월, 2015년 9월) 선정되었다. 밥 펠러 상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회 수상했는데, 이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 MVP에 해당한다. 어니 롬바디 상은 2013년에 1회 수상했으며, 신시내티 레즈 구단 MVP였다. 마이너 리그에서는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 3회(2002년, 2003년, 2005년) 선출되었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2015년 7월 21일에 한국인 최초로 사이클 히트를 기록했고,[157] 2018년에는 MLB 올스타전에 선출되었다.
7. 기타
- 미국에서는 그의 성인 '추'가 기차가 달리는 소리와 같다 하여 '추추 트레인'이라고 불린다.[144][145] 미국에서의 응원 구호는 "Go Choo!"이다.
- 이대호와는 수영초등학교 동기이며,[179]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대호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히기도 했다.[179] 그는 이대호에 대해 "다른 선수와는 레벨이 전혀 달라서 야구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추신수는 대단한 선수였고 제 영웅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146]
-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던 조성옥이 은사였던 인연[177]으로 조성옥의 아들 조찬희를 에이전트로 맞이하기도 했다.[178]
- 청주에서 열린 연예인 야구단 천하무적 야구단과 충주성심학교의 친선 경기에 충주성심학교의 일일 감독으로 출전하여 역전 승리에 기여했다.
- 2006년 아시안 게임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그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발하지 않았다.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예비 명단에 포함됐지만, MLB 사무국의 출전 불허로 참가하지 못했다.
- 2010년 아시안 게임에 앞서 남동생 추민기는 "형 앞에서 군대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형은 복잡한 생각 안 하고 오로지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선전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 그에게 약한 맥스 셔저는 인터뷰에서 "지난 오프 시즌 가장 마음에 든 뉴스는 그가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된 것"이라며 "그는 신시내티 유니폼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브론슨 아로요 역시 그에게 "너의 이적으로 내 평균자책점이 최소 0.5이상은 낮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츄바카와 그의 사진을 합쳐 만든 '추바카' 이미지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 구장인 프로그레시브 필드에 띄워진 적이 있었다.
- 2019년 4월 강원도 산불 피해 이재민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1억원을 기부했다.[180]
- 고향인 부산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이다.[148] 그는 "메이저 리그 은퇴 후에는 부산에 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마음껏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149]
- 2004년 오프 시즌에 한국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으며, 두 아들과 딸이 하나 있다.[141] 두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으며 미국 국적을 선택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이에 대해 병역 기피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한국 국내에서 제기되었으나, 추신수는 아들들에게 "한국에서 생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고, 아들은 "한국도 좋지만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며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142][143]
- 애칭은 '''토끼1'''이며, 이는 년 레즈 재적 시절 팀 동료였던 조이 보토가 지은 것이다.[150][151] 년 에서는 등 뒤 이름으로 사용했다.[152] 2018년 플레이어스 위크엔드에서는 18세 고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한글로 추신수라고 자수된 등 뒤 이름을 사용했다.[153] 2019년 플레이어스 위크엔드에서는 "'''코리안 키드'''"를 등 뒤 이름으로 사용했다.[154]
- 마이너 리그 시절에는 가난한 생활과 외로움으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145] 그러나 플레이를 즐기는 미국인들의 자세에 영향을 받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80]
- 그는 "마이너 리그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한국의 야구 유망주들은 한국 프로 야구에서 경험을 쌓아 메이저 리그 진출을 노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146]
- 미국 진출 후에는 통역을 전혀 쓰지 않고, 팀 동료와의 대화 등을 통해 영어 회화를 익혀갔다. 현재는 야구에 관한 영어 회화는 거의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80]
- 등번호
- * '54' - (2005년, 시애틀 매리너스)
- * '16' - (200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17' - (2006년, 시애틀 매리너스 / 2007년 ~ 2012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2013년, 신시내티 레즈 / 2014년 ~ 2020년, 텍사스 레인저스)
- * '5'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 * '17'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 * '17' - (2021년 ~ 2024년SSG 랜더스)
- 출연작품
- * 2010년 삼성전자 센스 노트북, CJ인터넷 마구마구, 데상트 코리아
- * 2013년 한국씨티은행
- * 2012년 SBS 《런닝맨》 119회
- * 2013년 영화 《미스터고》 - 추신수 역 (특별출연)
- * 2014년 MBC 《라디오 스타》 362회, 363회
- * 2015년 KBS2 《1박 2일》
- * 2024년 KBS2《살림하는남자들2》
- * 저서: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꿈꾸다 : 파이브툴 플레이어 추신수가 꿈을 향해 가는 다섯 가지 방법》(2011년 3월 30일, 시드페이퍼, )
- 등장곡
- * 강남스타일 – 싸이 (2014년 4월)
- * International Love – 핏불(Pitbull) (2014년 4월)
- * Turn Down for What – DJ 스네이크 & 릴 존 (2014년 4월)
- * Regulate – 워렌 지 (2016년 6월)
- * Despacito – 루이스 폰시 리믹스 (2017년 7월)
- * 불타오르네 – 방탄소년단 (2018년 4월)
8.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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